련 기사: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용기있게 고발하다 / 삼성 눈치 보며 비판 입 다문 <경향신문> 
관련 글: 삼성을 생각한다》삼성반도체와 백혈병》를 읽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인터넷교보에서 바로드림 서비스로 주문하려는데, 광화문점에서 대기일이 6일이 나오더군요. 1시간 후가 아니라 6일 후라니... 떠도는 말처럼 혹시나 삼성이 싹쓸이를 하는 건가 의심도 했습니다.

예전에도 이씨춘추》나 나는 삼성왕국 무노조 경영철학의 희생자였다》 같은 책들이 충분히 회자되기도 전에 서점 판매대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이씨춘추≫가 우연히 손에 들어와 봤는데, 이건희를 마약 중독으로 묘사한 게 기억나네요. 나머진 비실명이라 흥미 반감이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건희 마약 중독 소문은 과장된 것이라 말합니다. 다만, 이런 소문이 널리 퍼져 사실처럼 여겨진 건 일반인과 구별돼 살고자 하는 주류집단의 ‘귀족주의’, ‘신비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건희 흉 볼 게 하나 줄었다고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책을 보면 넘치거든요. 

김용철 변호사의 이 책은 용기가 넘칩니다. 그래서 삼성 소유주 일가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류집단" 전체를 불편하게 할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 결과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책이 됐습니다. 이건희 일가의 저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 입구에 그들이 미술관을 세운 이유는? 미술관 경비를 핑계로 그 동네 출입 자체를 막고 경비하는 것이랍니다. 전 탈세 목적의 미술품 보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2007년 10월 후 특검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1부가 최근 삼성 에버랜드 재판까지, 2부는 김 변호사의 삼성 입사부터 퇴사까지, 3부는 김 변호사는 대검에서 수사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입니다. 각 파트는 시간대 별이지만, 책 전체로 보면 과거로 거슬러 갑니다. 마지막 결론은 PD수첩 등 다시 현재 얘기로 돌아옵니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의 구성을 연상시키는데요, 김 변호사 자신이 삼성 비자금 관리와 로비 업무에 몸 담았던 만큼 이런 구성도 책읽는 재미를 늘려준 듯합니다. 

애초에 이번 서평은 삼성을 생각한다》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그리고 <레디앙>에 보도된 삼성공화국 관련 미발표 논문을 묶어 보려했는데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서평에서도 지면 사정상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을 더 다루지 못한 건 조금 아쉽네요.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는 활동 백서 성격이라 삼성을 생각한다》 만큼 판매순위가 높진 않지만, 김 변호사 책 판매를 보면 삼성반도체의 유족들과 투병 직원들을 응원해 줄 잠재적 독자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삼성과 노동부·근로복지공단·산업안전관리공단 모두 이들을 외면하지만, 최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벤젠이 사용됐다는 증거가 나오는 등 이곳에도 희망이 비추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에서도 삼성 노동자들의 무노조 삼성 노동자들의 고된 현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보이는 곳만 화려한 북한의 현실과 삼성 공장을 비교한 것은 신선했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은 삼성 창업주이자 이건희 아버지인 이병철 출생(일부 언론은 역겹게도 ‘탄생’이라더군요) 1백 년 맞이 용비어천가 쓰레기들을 판매 순위에서 멀찍이 제친 건 기쁜 일입니다. 이병철이 살아 있던 80년대만 해도 평범한 서민들은 그를 이름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돈병철’이라 불렀죠. 그의 라이벌은 ‘돈주영’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아래서 승승장구하는 문어발 재벌에게 이만큼 적절한 호칭도 없었을 겁니다. 

이 경멸스런 돈벌레 기업주가 한국 대표 재벌로 성장한 때가 공교롭습니다. 1998년과 1999년 삼성이 부도났고 김대중 정부가 다 막아주고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삼성 부도설이 사실이었다고 얘기합니다. 

놀랍게도 이 때가 바로 삼성이 1등 재벌 무리에서 치고 나가 단독 1등 재벌로 우뚝 서기 시작한 때입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혼자 잘나서 오늘날 성공한 것처럼 말하는 건 그래서 다 뻥입니다. 삼성만 해도 삼성자동차 부채를 해결해 준 건 정부였고, 삼성은 지금까지도 이 돈을 다 갚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또 삼성이 6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을 쳐낸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일방 해고된 노동자들 일부를 모아서 일반노조를 만들고 저항을 시작한 이가 바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입니다. 

김성환 위원장이 펴낸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삶이 보이는 창, 2007)에 실린 글들을 보면, 김성환 위원장의 대단한 저항 기록뿐만 아니라, 삼성에서도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바꿔 보려 몸부림친 기록들이 나옵니다. 

거제 삼성중공업의 어용노조 위원장 출신(무노조 경영의 앞잡이)인 최석철 씨가 쓴 나는 삼성왕국 무노조 경영철학의 희생자였다》는 양심고백서 성격이 있습니다. 최석철 씨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나중에 삼성 본관에 자동차로 돌진했으나 언론에는 단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나오게 되죠.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북, 2008)에는 김용철 변호사와 그를 도운 사제단, 김성환 위원장 등을 비롯해 검찰 X파일을 폭로한 MBC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의 고군분투가 각각 간결하게 잘 기록돼 있습니다. (재밌는 건 사제단도 김 변호사를 돕는데 주저하고, 삼성의 로비 대상이 됐다는 자기 고백이 나옵니다. 물론 삼성도 사제단에겐 돈으로 로비하지 않더군요.) 

이밖에도 삼성-선출되지 않은 권력》(다함께, 2008[개정판])에는 '고대녀' 김지윤 씨를 포함한 고려대 출교생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교수 감금 때문에 출교 징계를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1년 전 고대 당국의 이건희 명예박사학위 수여 반대 시위 조직에 대한 보복이 진짜 이유였습니다. 이들의 끈질긴 투쟁은 출교 철회라는 승리를 거뒀습니다. (뒤끝 있는 MB고대 전통에 따라 무기정학 소송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 삼성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 적지 않은 책들을 보면서 오히려 두려움보단 희망을 봅니다. 이 책들 모두 삼성 왕국에 저항한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대부분 삼성의 내부자입니다. 안팎에서 삼성의 가장 큰 특징을 요약하는 단어가 “관리 삼성”이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감시·닦달·조종한다는 건데, 그 “관리 삼성”에서 이토록 내부자들의 저항과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는 거야말로 삼성이 결코 빅브라더가 아니라는 방증이겠죠. 

10조 원에 이를 거라는 비자금도, 삼성 장학생들도 이건희 유죄와 비판을 막지 못했습니다. 5년 전 고대생들의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도 꽤 유명했죠.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주류집단이 반(反)삼성을 반(反)기업으로 여긴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비자금보다 더 강력하게 삼성장학생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거죠. 그래서 삼성공화국(왕국)은 기업공화국인 겁니다. 삼성 권력 비판은 한국의 기업권력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적지 않은 게릴라들이 전문 경영자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넘기는 해법은 진짜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전문 경영자도 기업 공화국(왕국)을 유지하는 데는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돈' 씨 일가에서 빼앗아 공기업화해 이 범죄왕국을 끝장내고 막대한 생산 능력을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

오늘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던 수많은 ‘돈병철’들의 기업에 노조가 버젓이 생겼고 그들이 투쟁도 하고 진보정당 지지도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윗들의 저항 기록들은 보존하고 떠받들 가치가 있습니다. 그 기억들이 전해져 또다른 다윗들을 낳고, 더 많은 다윗들이 한 뜻으로 단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다윗들 없인 저들이 골리앗을 굴러가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가장 강력한 것은 삼성 노동자들이 내부자 저항을 시작하는 겁니다.

(다음엔 재벌 개혁 논의들을 다뤄보려 합니다. 좋은 자료나 책들을 아시는 분들은 추천 좀 해주세요)

 

□ 추천 도서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 2010)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박일환·반올림, 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 2010)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기획취재팀, 프레시안북, 336쪽, 1만2천 원, 2008)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김성환 외, 삶이 보이는 창, 355쪽, 1만3천 원, 2007)
삼성-선출되지 않은 권력》[개정증보판] (한규한 외, 다함께, 120쪽, 3천 원, 2008)
《고르디우스의 매듭》(김병윤, 두레스, 239쪽, 1만2천 원, 2007)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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