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끝납니다. 후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인 김중수가 내정됐죠. 정권 초기 청와대 팀이었다가 촛불 후 개각에서 외곽으로 나갔던 인사입니다.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할 인사라는 거죠.

이젠 전임 총재인 이성태와 정부가 최근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은행 즉,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논쟁꺼리가 됐습니다.

오늘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이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에 제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한국에선 이른바 관치금융의 기억이 있어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지금 잡음이 인 신임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면서 청와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염두에 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독립은 금리 정책 등 화폐공급에 관해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중앙은행의 정책이 '정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 같은 때, 이 주장은 매우 솔깃하게 들립니다. 정부가 매우 인기 없는 친재벌 우파 정부기 때문이죠. 별로 실력도 없어 보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운 화폐의 공급과 수요를 다루는 재정정책과  환율정책, 아니면 출구전략 따위는 전문성도 없고 지지층 동향에 휩쓸리는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다 전문 관리들이 국가적 장기적 전문적 안목에서 처리하는 게 나을 듯도 합니다.

그래서 진보 언론들도 이명박 정부의 여러 차례 간섭을 두고 중앙은행 독립을 해친다고 비판했고,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은 정부의 한국은행 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신임 총재 김중수가 청와대와 친하고, 통화정책 전문가로서 검증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그것을 옳게 본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은행 독립성은 원리상 진보진영이 반대해야 하는 정책입니다.

지난 역대 정부들의 관치금융이 여러 관료적 부작용과 노조 탄압 문제를 낳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국가가 주도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주력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서 나타는 필연적 현상이었습니다. 국가가 은행을 통해 총저축을 통제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에서 은행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이젠 덩치가(덩치와 함께 자신감과 욕구도 함께) 커진 개별 대자본들의 욕구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에서 빌린 돈은 꼬리표가 붙어 자유로운(?) 투자에 제약이 따르니까요.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들에 화폐를 독점 공급하는 은행입니다. 통화 정책에 매우 핵심인 기구입니다. 이런 중앙은행을 선출권자인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영향력에 떼내온다는 건 실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통화주의') 핵심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하나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자본이 중앙은행과 금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크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은행의 독립성,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그것이 [잘된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출된 정부가 [대중에 책임을 지려고] 정책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를 빼앗으려는 겁니다. 결과적으론 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걸 막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에 필요한 정부 지출은 주로 복지 지출이잖아요.

1998년 독일 사민당이 슈뢰더를 앞세워 기민당을 물리치고 십수 년만에 집권했을 때, 사민당 정부는 독일연방은행을 통제할 연방정부의 재무부장관에 오스카 라퐁텐을 임명했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 좌파였고, 당시 당 대표였습니다. 라퐁텐은 정부 지출을 늘려 신자유주의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펴려했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해치려 한다는 비난을 시작으로 독일과 유럽 보수 언론들의 맹공격을 받다가 결국 취임 석 달 만에 사임합니다.(사임 압력에 굴복한 총리 슈뢰더와 사민당도 잘못을 했죠.)

한국도 IMF 위기 후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금융통화위원회를 만들어 형식상 독립기구를 통해 금리 등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한계기업들의 도산, 서민들의 불만이 어우러져 정권이 압력을 크게 받은 덕분에 IMF가 강요한 초고금리 정책을 1999년부터는 저금리로 역전되었던 겁니다.


문제는 이 저금리 정책이 카드-부동산-주식(펀드) 거품 정책으로 귀결됐다는 데 있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저금리 정책도 똑같습니다. 거품 유지에 목매다는 저금리 정책입니다.

지금 금리 정책 자체는 자본 간에도 이해관계가 틀립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현금 자산을 많이 보유한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을 바라겠죠. 반면에 부동산 자산을 많이 가진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에 반대할 겁니다. 아직까진 출구전략 논쟁은 저들의 논쟁입니다.

다만, 소득이 줄어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서민들 처지를 봐서 저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거죠.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를 두고 대학생들이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정부도 [기업주들의 영향으로] 대중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 하질 않는데, 시스템 상으로 어떤 책임도 기층에 지지 않는(선출직 임기와도 관련 없는) 전문관료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어찌 될까요.

이들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받을까요.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온양과 기흥의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 중에 같은 병으로 벌써 9명이 죽었고, 현재 투병중인 이까지 더하면 스무 명이 넘습니다. 박지연 씨는 고3 때부터 조기 취업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빛나던 청춘이 시들고 결국 스물셋에 한많은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나 언론들은 보도도 제대로 하질 않죠. 이쯤되면, 누구나 언론계의 삼성장학생들을 떠올릴겁니다. 삼성장학생은 언론계에만 있나요. 장학생은 삼성만 관리하나요? 경제관료들은 모든 대기업들의 핵심 관리 대상입니다.

이들은 공직을 떠나면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정권이 들어서면 고위적 관료로 다시 들어옵니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입니다. 핵심 금융관료였던 이헌재, 윤증현 등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거야말로 진짜 관료주의 아닐가요. 이런 자들에게 중요한 정책 결정을 민주적 통제 수단 없이 넘겨야 할까요.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 무상급식도 반대하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깎으면서 은행들이 돈놀이하다 위기를 겪자 3백억 달러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해 주면서 지원해 줬습니다. 나쁜 정부입니다.

그렇다고 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한국은행의 시스템상 독립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목욕물 버리다 애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은행가들은 정부 지원 덕분에 [돈놀이 하다 맞은] 경영 위기를 넘겨 놓고는 한숨 돌린 지금은, 다시 막대한 보너스 놀이를 하며 각국 정부들에게 흑자 재정을 유지하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돈놀이 경영을 막고 공공을 위한 서민 금융에 힘쓰도록 요구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중앙은행 독립이 아니라, 은행 국유화와 공공성(금융의 민주화) 강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합니다. 국유화는 시장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해 민주적·민중적 통제를 하라는 요구입니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권력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함축합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