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노동자 연대> 152호 | 발행 2015-07-06 | 입력 2015-07-04



■ 노동당 당대회 이후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당대회 유감 :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 본문의 파란색 문장들은 지면에 없는 부분.



진보재결집을 둘러싼 노동당 논쟁은 노동당 당세 약화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 합당 이후로만 따져도 당권자가 2천 명 넘게 줄었다. 20~30대 청년 당원들이 그 상당수를 차지한다. 당권자 감소 때문에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졌다.


권태훈 부대표 등은 이것이 진보의 분립·분열로 말미암은 위기의 일부라고 진단한다. 진보 재결집론은 이런 위기의 돌파구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더 성장하고 광밤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노동자 투쟁 수준이 전반적으로 더 높아져야 한다. 돌아보면, 옛 민주노동당의 등장과 성공의 배경에는 1997년 연초 민주노총 파업과 그해 말 경제공황의 후폭풍에 맞서는 만만찮은 투쟁들이 있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이것이 좌파가 양과 질에서 전혀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급 투쟁만이 이 사회의 지배자들인 자본가들의 이윤에 주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유지할 힘(현 사회를 운영하고 이끄는 생산력을 대표함)을 유일한 집단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일지라도 이윤 창출을 멈추는 투쟁에 참여해 노동 ‘계급’으로서 힘과 연대를 자각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의식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에서 각종 정치·사회 운동들이 활성화되곤 했다. 수동적으로 사회 상층부가 제공하는 개혁을 선물 받는 것은 계급의 정치의식 향상과 별 연관이 없다.


요컨대, 핵심 과제는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 좌파가 기여할 수 있느냐다.


경제와 지정학의 위기 시대에 계급 간 양극화는 노동운동 안에서도 좌우 정치 양극화를 낳는다. 개혁주의는 체제의 번영을 전제로 개혁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므로 체제의 위기 때는 개혁주의 운동 자체가 지배계급을 도와야 한다는 압력과 기층의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는 위기를 겪다가 좌우로 분열하곤 한다.


최근 유럽에서 주류 개혁주의가 심각한 배신을 저지르며 우경화한 것, 이를 비판하며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 10여년 만에 민주노총에 좌파 지도부가 등장한 것이나, 4·24 총파업 직후에 노동운동의 우파 지도자들이 연이어 배신 행위들을 저지른 것도 이런 운동 내 좌우 양극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좌파 개혁주의는 기층의 전투적 압력을 더 많이 수용하는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좌파 개혁주의가 좋은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일관되지 않고 기층의 압력 변동에 따라 동요한다는 뜻이다. 한편에선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하고 우경적 4자 통합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지역 연대, 세월호, 최저임금 투쟁 등에서 기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국적 계급 세력균형이 바뀌려면 기층의 전투성이 노동운동 상층의 보수성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결국 좌파의 좌파인 급진 좌파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급이 사회 전체에 그래야 하듯이 급진 좌파도 자신의 세력과 유용성을 노동계급 대중에게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013년 초에 보건노조, 그해 중반에는 전교조, 그해 말에는 철도노조가 전체 운동에 부양력을 제공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10여년 만에 좌파 지도부가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한 것이나, 이 집행부가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했을 때 기대와 지지를 많이 받은 것도 조직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감의 방증이 될 수 있다.


포섭된 노동?


그러나 이런 조직 노동운동의 힘을 고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 정치는 약점을 보여 왔다. 노동당은 주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섭된 노동”(옛 진보신당)이라고 평가절하하고, “불안정 노동”(옛 사회당)을 새로운 주체로 부각시켰다. 특히, 경제투쟁(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단위 작업장별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라며 폄하해 왔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을 기층 투쟁 활성화에 이용하는 것에도 별 의욕을 안 보였다.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조직 노동계급의 노동조건 방어에도 뜨듯미지근했다. 


일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운동보다 급진적 사회운동을 더 가치 있게 보기도 한다. 이는 장점도 있지만 약점이 더 크다. 생산 현장에 기반한 노동운동과 유리된 사회운동은 사회적 뿌리가 얕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체로 급속히 떠올랐다가 급속히 가라앉곤 한다. 그러면 일부는 우경화해 노골적인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같은 포퓰리즘으로 가기도 한다.


요컨대, 노동운동의 급진화를 요구하면서도 그 급진화에 꼭 필요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흔히 취하는 투쟁 형태(경제투쟁)에는 거리를 두는 모순이 노동당 정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하고 묻는다면, 리더들이 과거에 가졌던 ‘혁명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재편하는 전략’을 포기한 것, 즉 모종의 혁명주의에서 좌파 개혁주의로 옮겨 간 정치적 궤적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선거주의나 모종의 포퓰리즘으로 기운 것도 연관 있을 것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노동운동 안에 더 넓게 뿌리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현재 정치화 수준과 더불어 당세 위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진보신당에서 노, 심 등이 탈당한 분열 후 급속히 더 어려워진 것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경시하고 특정한 명망가 의존이 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의 리더십 위기와도 연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4·24 총파업 지지 논평에서 파업 요구의 하나인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동당 공식 논평에서 박근혜의 ‘공공부문 정상화’에 대한 폭로나 반대를 보기 힘들었다. 공공부문은 대표적인 ‘정규직 고임금 직장’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전통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 의제로 삼아 온 노동당이 현대차·기아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그 쟁점에 무관심한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이 투쟁들은 공장 안 모든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며, 각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도 큰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 현장 투사들과 조합원들은 2013년 봄 비공인 파업을 벌이며 투쟁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또한 이 노동자 부분들은 모두 지배자들이 노동계급 전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위해 제압해야 할 중요한 고지로 보는 부분들이다. 좌파가 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해서는 다른 투쟁에도 도움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노동자 투쟁이 아니어도 말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4월 총파업이 정말로 성공적이었다면, 세월호 투쟁에도 힘이 됐을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


정규직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며 열악한 비정규직 투쟁이어야만 더 급진적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장점보다 약점이 많다. 이것은 과학적 전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덕주의, 즉 이성과 선한 의지를 앞세워 사회 구성원의 조화와 설득을 추구한 공상적 사회주의(특히, 1858년의 ‘참 사회주의’)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런 정치는 전략, 계급투쟁 등을 경시하는 2000년대 초·중반 자율주의 정치의 유산일 수도 있다.


이런 도덕주의는 노동운동의 약점을 노동자 대중의 현재 의식 수준에서 찾는 데서 주로 비롯하는데, 이런 이데올로기주의적 접근법으로는 ‘이기적인’ 경제투쟁보다는 이데올로기 투쟁(교육과 선전, 선거)을 더 중시하게 된다.


또한 정규직이나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낮춰 보는 외관상의 급진성은 실제로는 기회주의를 낳기도 한다.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주의(관료주의)와 대중의 후진적 의식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이데올로기주의의 잣대로 바라보면,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과 기층의 이해관계가 꽤 다른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계급 간 중재자를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상층 개혁주의 지도층의 입맛에 딱 맞는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건강보험하나로, 보편증세론 등) 을 옛 진보신당 출신 지도자들 일부가 지지하고 사회당 계열이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은 것도 그 사례다.(사회당은 과거에 사회연대전략을 비판했다.) [이것은 노동당과 정의당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 문제로 볼 수 있다.]


결국 노동당 정치의 수동적 급진성도 경제 침체기 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수동적 급진성에는 물론 노동당의 다양한 정치적 구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옛 진보신당 지도부는 무지개연합 식의 진보 재구성을 표방해 왔다. 그러나 다양성의 공존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진보적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자율주의 관성이, 한편에서는 이른바 ‘당적 질서’가 작동한다. 그 결과, 이질적 구성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일종의 정치적 “늪”이 되기도 한다. [이런 조직적 요인 때문에 안 그래도 취약한 노동당 리더십 구조를 더 취약해진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노동당 내 논쟁은 민주적 토론을 통한 결정과 상호 승복보다는 종종 상호 불신 속에서 징계로 해결되곤 한다. 2012년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 지지 당원이 제명된 것이나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진보당·노동당의 단일후보가 된 김종철 전 부대표가 징계를 받은 것이 그 사례다.


반제국주의


끝으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가 제국주의 문제에 큰 의욕이 없는 것도 특별히 지적할 문제다. 최근 강상구 대변인은 <레디앙> 기고에서 이렇게 반성한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서] … 진보정당은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주요 행위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럴 만한 행위자들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의 일차 원인인 듯이 주장하고(미·중간 제국주의 갈등이 더 선차적 원인이다), 따라서 그 해법도 비핵선언과 남북 적대 청산으로 “한미동맹의 근거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키자고 주장한다.


이런 공상적 개혁주의의 관점으로는 박근혜 정부와 한미동맹에 일관되게 맞설 수가 없다. 사회당 경향도 제국주의 문제에서는 더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도 도덕주의와 평화주의가 현존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이해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전략이 부실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좌파는 끊임없이 진영 논리 그리고/또는 자국 지배계급 지지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며 길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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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당대회 유감: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자 연대> 152호 | 발행 2015-07-06 | 입력 2015-07-04



■ 노동당 당대회 이후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당대회 유감 :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는 국민연금하나로 계획을 담은 특별결의문을 표결로 채택했다. 이는 좌파 정당, 운동정당을 표방해 온 것과는 모순되는 결정이다.


국민연금하나로 운동은 공무원연금을 노동자들의 정당한 후불 임금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그 기원만을 따져,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대가로 받는 “떡고물”로 취급해 왔다. 그러니 그들의 연금 통합 발상은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노후 연금 차등을 없앤다는 명분 아래서 하향평준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특별결의문에서는 공무원노조 등의 비판을 염두에 둔 듯, ‘국민연금으로 통합 후 공무원들에게는 더 내는 만큼 더 받을 수 있게 하는 부가연금 지급’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모순이다. 국민연금하나로 쪽은 공무원연금의 문제점으로 소득비례성을 꼽아 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없애자고 연금 통합을 하면서 소득비례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무원칙한 것인지 보여 준다.


사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이런 희뿌연 태도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노동당 등 좌파 상당수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적극 옹호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무원연금은 크게 개악됐다. 이 투쟁은 긴축과 내핍 강요를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맥없이 진 것이다. 공무원연금 수익비는 국민연금보다 악화됐다. 그러니 이제 와서 ‘부가연금’ 운운하는 것은 무원칙에 더해 부정직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당이 당대회에서 사실상 박근혜의 공무원연금 개악을 전제로 한 국민연금하나로 같은 사회연대전략 파생 프로젝트를 채택한 것은 좌파답지 않은 결정이다.


사회연대전략은 세금과 복지를 매개로 ‘계급’과 ‘국민’을 조화시키려는 개혁주의 프로젝트의 주요한 기둥이다. 세금은 소득 있는 모든 계급이 내는 것이므로, 이 프로젝트가 ‘사회연대(계급 협력)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전 국가적 차원의 노사정 협약을 실행하려면 대표성 있는 노조, 개혁주의 정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사회연대전략이 경제투쟁을 억제해 ‘정치’투쟁에 종속시키려는 이유다.


이 점에서, 유럽식 노사정 대타협 모델에 대해 비판적인 옛 사회당 경향이 사회연대전략적 정책에 반대하지 않은 것도 모순된 일이다.(과거 사회당은 사회연대전략에 반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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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노동자 연대> 152호 | 발행 2015-07-06 | 입력 2015-07-04



■ 노동당 당대회 이후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당대회 유감 :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결집파가 내놓은 당원총투표 안건이 부결됐다. 이 안에 재석 대의원 2백86명 중 1백18명(41퍼센트)이 찬성했다.


이로써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의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이 주춤하게 됐다.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노동당 대의원들에게 진보 재결집 정당이 현재의 정의당보다 더 왼쪽의 정당으로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관련 기사인 151호 온라인 기사 ‘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를 참조하시오.)


노동당 자체의 정치 노선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적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통합 대 독자’ 갈등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가장 중대한 문제인 당의 통합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일반으로 당원 전체의 토론과 총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더 폭넓은 의견 수렴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나경채 대표 등이 내놓은 총투표 안은 당원들에게 통합 여부의 결정권을 주는 안이 아니었다.(결정권은 당대회에 있었다.) 이미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 추진”에 대표자 간 합의까지 한 마당이었다.


따라서 우경적 통합 결정을 위해 당대회를 무력화하려고 총투표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파의 의심을 풀 수 없었다. 결집파 지지 대의원들의 일부도 총투표 안건의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4자 통합보다 좌파적 정당으로서 투쟁 건설에 초점을 둔 총투표 반대 발언이 더 지지를 얻었던 이유다.


이런 불신에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정의당 천호선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천호선 대표는 “통합 신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이렇게 진보정당이 기반을 다진 후 …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 연합 … 정권교체 후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4자 통합에 반대하는 쪽이 경계해 온 우경 노선이다.


천호선 대표를 당대회에 초청한 나경채 대표 등 결집파 지도자들은 이날 자신들을 더 곤혹스럽게 한 천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누구도 나서서 비판하지 않았다.


4자 통합은 우경화


어쩌면 천 대표의 인터뷰는 노동당 내 좌파를 4자 통합 주도자들이 반기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치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 때 진보신당 좌파들의 합류를 꺼린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9월 진보신당 당대회를 앞두고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낸 일을 떠올리게 한다.


심상정 전 정의당 원내대표는 천호선과 대조적으로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함께하자며 옛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레디앙>, 6.24). 


그럼에도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부르크 강령(실천은 물론이고 말에서조차 자본주의 변혁과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반공주의를 표방한 강령)을 새 ‘이정표’로 내세워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천호선, 심상정 두 지도자는 이미 ‘헌법 내 진보론’이나 ‘튼튼한 안보’론으로 좌파와 선을 그은 바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의 일부인 노동당이 앞으로 우경화하지 않는 한, 4자 통합에 참여할 명분은 갈수록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당 내부에서 제동이 걸린 당대회 결과 때문에 진보 재결집 운동의 주도권은 지금보다 더 정의당 지도부에 쏠릴 것이다. 그래서 노동당 분열 위기는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이 글을 쓴 직후, 통합을 추진했던 나경채 대표와 권태훈·김윤희 부대표가 사퇴했다.)


다급해진 나머지, 노동·정치·연대와 연계된 민주노총의 중앙파·국민파 지도자들이 통합 정당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경화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의당과의 통합 때문에 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분열하는 것은 (선거적 성과는 거둘지 몰라도)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12년, 통합진보당이 총선에서 역대 최고 성과를 거뒀지만,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강요한 정치적 분화 탓에 다시금 분열로 이어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좌파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정치를 날카롭게 벼리며 기층에서 투쟁 건설에 기여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동당도 우경적 4자 통합에 합류하기보다 ‘운동 정당’으로 남아 노동자 투쟁, 각종 삭감, 세월호 등 여러 쟁점에서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 이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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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노동당 전국위가 통과시킨 연금 관련 결의문은 모순투성이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은 정당하다면서도 정작 내놓은 방안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전제로 해서 기초연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노동당 전국위 결의문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아 이를 지렛대로 국민연금 개선을 주장하자는 논리에 반대하면, 논리적으로 국민연금 개선도 어렵게 만든다’는 예측이 옳았다는 산 증거다. 


다만 기초연금의 액수를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20% 수준인 40만 원으로 올리고 보편적 지급을 하자는 것은 맥락과 관계 없이 지지할 만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를 위해 또 다시 보편증세와 보험료 확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편증세를 통한 보편복지 확대는 공동구매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장하준 식 복지 개념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계급간 재분배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에 약점이 있다. 보편증세로는 노동계급 내부도, 노동자들과 서민 대중을 단결시키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무원연금 개악은 자본에서 노동으로 소득을 역분배하는 전략이다. 이를 막는 것에 일차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문제를 흐리면서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를 지금 의제화하자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정신승리’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새누리-새정치가 합의한 안이 얼마나 공무원연금을 개악한 것인지는 http://wspaper.org/article/15868를 보시오. 한마디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사회적 연대인가???)


그럼에도 노동당 전국위 결의문이 노골적으로 여야 합의(개악)안을 지지했던 정의당이나 국민모임의 입장과 같은 것은 아니다. 기초연금의 대폭 상향과 지급의 보편화나 연금 기금에 대한 기업·정부의 책임을 추가로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아래 링크한 글의 필자인 노동당원이 노동당이 새정치, 정의당 등과 유사한 입장이 됐다고 한 것은 조금 과한 듯하다.(맥락상 이런 비판이 이해는 가지만) 


같지 않다고 해서, 실천적으로 더 우수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결과적으로 노동당 전국위 연금 관련 결의문은 개악 저지에 바탕한 공적연금 강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천적으로는 개악을 막으려고 (저들의 국회 일정상)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려는 공무원·전교조 조합원들 발목 잡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노동당 식의 기초연금 상향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동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자충수다. 자기 임금(노동자들의 연금은 지급이 미뤄진 임금이다!)도 못 지킨 사람들을 어떻게 기초연금/국민연금 투쟁에 동원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 임금 삭감에 동조한 사람들이 그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그러니 큰 틀에서는 정의당처럼 현재의 투쟁전선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아래 링크한 노동당원의 글이 노동당 전국위의 결의문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고 (공무원연금을 지렛대로 국민연금을 상향시키자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그 논거도 옳다.


노동당 전국위는 한마디로 모순된 태도를 내놓은 것이다. 경제 위기의 시대에 노골적으로 체제의 수호자 구실을 하는 우파 개혁주의와 달리, 좌우 양쪽의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수줍은 개혁주의, 즉 좌파 개혁주의의 모순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런 모순과 동요가 노동당의 내분 사태에 깔린 정치적 배경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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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결의문에 대한 노동당 당원의 비판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58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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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전국위원회 공적연금 강화 특별결의문]


기초연금 두배로, 공무원연금 통합, 국민연금 하나로

평등한 노후보장과  공적연금 강화 실현하자!



공무원연금 개편논의가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이 와중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강화하여 모든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고자 하는 길도 방향을 잃고 말았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은 2007년 국민연금 삭감, 2014년 기초연금 개악, 2015년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이어지는 ‘공적연금 하향평준화’의 완결판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적연금에 대한 철학도 없고, 당사자와 합의도 없으며, 자기가 한 약속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다.


초고령사회에서 연금이 노후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노조에서 연금수령액의 하향을 막기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150만 공무원(사학연금, 군인연금 포함)보다 형편없는 수준의 연금을 받고 있는 2100만명 국민연금 가입자와 ‘용돈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일 여야가 서명한 합의문에는 “국가 책임 하에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노후대비를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급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당 전국위원회는 연금개혁이 표류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며,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여야, 정부와 정치권에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국민적 논의를 모아 나갈 것을 촉구한다.



[공적연금 개혁의 목표] 모든 공적연금의 목표는 재정절감과 자본성장이 아니라 국민들의 전 생애에 걸친 소득보장에 있다. 노후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소득보장체계를 △선별연금에서 보편연금으로, △용돈연금에서 생활연금으로, △사적연금에서 공적연금으로 전환하고, 이를 전제로 보편적 복지증세와 목적세 신설, 사회보험료 확충이 필요하다.


1. 기초연금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기초생활보장 수급 여부에 상관없이,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A값)의 20% 수준(월 40만원)로 지급해야 한다.


2.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에 대한 보험료 지원 △출산, 돌봄, 군복무 등 공익적 활동과 실업, 휴직 등의 경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3. 노후소득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향상과 이에 따른 적정 보험료 기준에 대한 합의를 촉구한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 산정방식 변경 △보험료 소득상한액 인상 또는 폐지 △연금 지급액의 상한 설정 △고용보험 방식의 보험료 기업책임 확대 △연금세 및 공적연금소득세 신설 등이 필요하다.


4. 보편적 연금 실현 및 재분배 강화를 위해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자. 아울러 이 기회에 △공무원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참여권리를 보장하고 △고용보험/산재보험을 함께 가입하고, △국민연금보다 초과하여 납부하는 보험료(현행 소득이 5%)에 대해 기존 직역연금공단 등에서 운용하여 부가적 연금으로 지급하자.


5. 연금 통합과 함께 기존 특수직역연금에 명시된 국가의 지급의무규정을 국민연금이 승계하여야 한다.


6. 노동자의 퇴직적립금을 사보험 퇴직연금 상품이 아닌 국민연금공단에 추가납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여 해당 퇴직적립금에 대한 추가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려면 지금부터 고용안정과 복지증세가 필요하다. 보험료를 크게 올리지 않아도 전반적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임금이 오르며 및 가입자 증대가 가능하다. 여기에 ‘버는 만큼 내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면 연금보험료 수입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더불어 보육, 교육, 주거, 의료 등 복지 확대를 통한 부양률 개선과 노후복지 강화 역시 공적연금 강화에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미래세대 부담을 늘리는 건 정부의 저임금-저복지-저연금 정책이다. 당장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철회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누리과정 무상보육 대란에서 보듯이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로 드러났다. 기업과 고득소자부터 사회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세 등 목적세 도입, 법인세·소득세 강화 등 보편적 복지증세가 절실하다.


공무원연금 폐지, 기초연금 두배로, 국민연금 하나로, 공적연금 강화하고 노년이 기다려지는 세상을 노동당이 앞장서 실현하자!



2015년 5월 23일

노동당 전국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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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정치 방침 논쟁

어떤 노동자 정치가 필요한가



<노동자 연대> 139호 | 발행 2014-12-08 | 입력 2014-12-06



진보·좌파 다원주의는 단결을 위한 고육지책


처음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핵심 의제는 단연 박근혜 정부의 고통전가 파상 공세에 맞설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였다. 민주노총 정치 방침이 중요한 쟁점이긴 해도 부차적인 쟁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후보들의 정치 방침 정책에는 큰 차이가 확인됐다.

특히, 민주노총의 상층 지도부층이 연합한 전재환 후보 조는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 이를 지렛대로 정권 교체기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는 진보대통합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필수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노동계 진보정당들이 사분오열해 노동운동 안에서 분열ㆍ갈등하는 상황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허영구 후보 조 등도 진보대통합 계획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대변했다.

△ 자본가들의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파업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노동자 정치다. ⓒ이미진


민주노총 지도부가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가망도 없고 현명하지도 않다고 보는 이유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무리해서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려 하면 노동조합의 단결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노동조건을 공동으로 방어하려는 조직이니 말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노동자 연대>가 주장한 대로 민주노총이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를 정치 방침으로 채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이유다.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는 부르주아 정당들을 배제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여러 진보정당과 좌파 정치단체 사이에 지지 대상을 열어 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 정치는 의회와 정당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정치 방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과도 연결되므로 진보ㆍ좌파 다원주의 안에서도 어떤 정치를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 개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당 문제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을 획득하거나 사용하는 문제, 국가기관의 통치 행위에 대응하는 문제, 정치적 견해ㆍ사상ㆍ신념 문제, 노동자 계급 전체의 쟁점과 단결 문제 등이 모두 ‘정치’에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 제정, 정리해고 요건 완화 같은 법 개악 저지 등을 위해 파업과 시위를 수단 삼아 대중투쟁을 벌이는 것도 ‘노동 정치’다. 기업주들의 ‘철밥통론’ 같은 이간질에 맞서기,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주장하고 투쟁하기도 정치적 문제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정치 개념은 협소하다. 또한 그들은 정치와 경제 영역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고 의식적으로 분업을 추구한다. 노조는 작업장 문제(‘경제’)를 맡고, 정당은 선거와 의회 협상(‘정치’)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정치 방침 문제가 개혁주의 정당 건설로 곧장 환원되는 것도 이런 분업주의의 발로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상층 지도자들이 흔히 ‘정치(투쟁)로 해결하자’고 말할 때는 사실 사회적 타협(노사정위원회, 정당을 매개로 한 의회 협상 등)이나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정권을 세워서 노동 현안들을 해결하자는 뜻이다.

전재환 후보 조가 내세운 정치방침과 전략 노선이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2015년을 준비기로,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6~17년을 투쟁기로 설정했다.

사실 진보 대통합 → 야권연대 →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이 구상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방침이기도 했다. 결국 정치로 해결하자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해 정권을 바꿔 노동 현안을 해결하자는 말이었다.

이런 전략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투쟁회피주의와 결합돼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지키는 전투적 투쟁을 기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재환 후보 조의 계획도 당면 투쟁 과제를 회피하는 계획이라는 정당한 비판을 받았다.

총ㆍ대선이 있었던 2012년이 최근의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권 교체에 기대를 걸고 전략적 야권연대에 ‘올인’하며 선거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 대중투쟁 건설에 소홀했다. 그러다가 총선 결과가 시원찮자 그나마 공언했던 총력 투쟁 계획마저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 초기에 기세를 올렸던 언론 파업, 금속 작업장 투쟁들이 혹독하게 탄압받았다. 주목 받았던 쌍용차 투쟁에 대한 연대도 더 확산되지 못했다. 그해 총·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연달아 패배한 것은 어느 정도는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초한 세력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탄압과 민주노총 경찰 침탈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대중적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정치권’(심지어 새누리당 김무성까지 나선) 중재에 의존했다. 결국 대중적 공분이 크게 일었으나 조직되지 못해 투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 노동운동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보수적으로 투쟁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상층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정치다.


노동 정치의 진정한 독립성


민주노총 정치 방침은 첫째, 노동자 ‘계급’의 정치라는 출발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는 계급으로 분단돼 있고, 이 계급 분단선이 이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다.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포퓰리즘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피한 경우에 일회적ㆍ부분적 야권연대를 할 수 있다 해도, 연립정부 추진 같은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하려고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유보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둘째, 노동자 계급 고유의 힘, 즉 작업장에서 자본주의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것도 노동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진보 정당은커녕 대변할 의원 한 명도 없었던 1997년 1월, 민주노총은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 개악을 막아 냈다. 민주노총이 정치 파업으로 노동자 계급 전체를 위해 행동한 것이다. 

이 파업 동안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2013년 말 철도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으로 박근혜에 맞선 가장 강력한 야당 구실을 했듯이 말이다. 의회의 정치 협상은 노동자 정치에서 훨씬 덜 중요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작업장 안팎에서 계급적 단결을 추구해야 파업 같은 수단이 실질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부분 파업으로 진행되는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이 진정으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여야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내국인·이주 등의 차이로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와 억압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정규직 양보론을 함축한 사회연대전략이 정치 방침으로 부적절한 이유다. 이 점에서는 허영구 후보 조와 좌파노동자회가 불안정노동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간주하거나 노동당 지식인들이 ‘포섭된 노동, 배제된 노동’ 식의 구분을 하는 것도 약점이다.

이들 모두 작업장 파업과 그것을 위한 단결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이런 입장들은 아무리 좌익적 언사로 포장해도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데서 장애가 될 뿐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힘과 조직력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이 앞장서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하도록 고무하고 촉구해야 한다.

셋째, 진보정당들이 전략적 야권연대를 염두에 두거나, 투쟁을 고무하기보다 협상이나 민주당에 의존하며 불필요한 양보를 하려 할 때, 노동운동이 정치적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조는 총선과 대선 선거 방침 같은 소시기 정치 방침에도 적용돼야 한다.

이것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정치조직’인 정당에게서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대중조직이고, 노동조합도 정당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의 부분을 대표한다.

독립성의 진정한 쟁점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가 다른 계급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 모두에 적용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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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선동죄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원회”는 최근 ‘5월 12일 강연 녹취록’을 새롭게 정리해 공개했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참석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락망이 있다는 것과 이석기 의원과 참석자들의 (과장되고 잘못된) 정세 인식과 정치 노선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것은 이 재판이 전형적인 사상 탄압 재판이라는 뜻이다.


국가보안법은 머릿속 생각을 처벌하는 희대의 악법이다. 박근혜가 김정일을 만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이석기 의원이 북한 체제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한 것은 죄가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행위자의 ‘내심의 목적’을 재판부가 자의로 재단해 처벌하기 때문이다. 행위를 처벌하는 부르주아 사법 원리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형법(1953년)보다도 국가보안법(1948년)이 먼저 제정된 나라다. 냉전적 반공주의와 친서방 자본주의 확립을 목표로 미군정이 수립한 이 우익 국가는 냉전 격화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제압하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처음부터 “내부의 적”에 맞선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수호법’이었던 것이다.


형법 제90조 내란의 ‘예비ㆍ음모ㆍ선동ㆍ선전’의 죄 항목은 형법을 만들 때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대신 이 법의 기능을 형법으로 옮기려고 만든 ‘쌍둥이’ 조항이다. (거꾸로 말하면, 국가보안법이 우파의 말과 달리 ‘내부의 적’을 처벌하는 내란죄 처벌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승만과 그 후배 독재자들은 두 법을 모두 유지하며 저항 단속의 무기로 애용했다.


결국 ‘증거는 없지만 내란을 목적으로 모인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유죄’라는 자의적 판결은, 형법 제90조 자체가 내면의 양심을 처벌하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조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무장관 황교안은 지난해 국회에서 “내란 선동은 …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며, 행위로 옮겨지지 않은 말과 생각까지 처벌하는 조항임을 분명히 했다.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폭넓게 저항적 사상을 처벌할 수 있다. 

(※ ‘귀게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성격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 본인이 쓴 《국가보안법》[구판은 《국가보안법 해설》]도 ‘국가 변란’이 ‘국헌 문란’ 개념보다 더 좁은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국가 변란이 혁명이나 타국과의 전쟁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가체제가 수립하려는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국헌 문란은 그것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현 국가체제 안에서 특정 정부기관을 타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헌법기관 중 일부를 정지시키거나 변혁하는 것’에서 ‘상당 기간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차이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처럼 군사쿠데타를 통한 정부기관 접수 시도는 내란죄 국헌문란으로는 처벌돼도 국가보안법상 국가 변란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개념으로는 맘만 먹으면 정부 퇴진, 국정원 해체, 국회 보이콧 같은 주장과 투쟁 등도 처벌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예비와 음모, 선전과 선동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 퇴진 주장도 누가 하냐에 따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차상 합법이라도 민의에 반하는 정부의 중도 퇴진을 요구하고 행동할 귄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선거 기간과 이후가 판이한 정부를 제어할 수 없다면, 선거라는 것 자체가 이후에는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반기가 직선제로 유지된 독재였다는 것도 이런 사례다.


그래서 내란 선동죄의 성립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진보당 변호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한편, 이런 내란죄를 적용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와 우익 통치자들은 국가보안법만 썼을 때는 얻지 못할 또 다른 이점을 얻었다. 현존 국가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내란 음모’ 혐의자들을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이미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던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적 태도 때문에 노동운동은 진보당 방어 문제에서 분열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해 온 자유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꾀죄죄하고 위선적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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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노동ㆍ정치ㆍ연대’가 출범했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노동정치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만든 중앙추진체다.


연석회의에는 공공운수현장조직(준),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다함께,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포럼, 전국현장노동자회, 혁신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가입해 활동해 왔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전국에서 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가입을 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노동기본권과 고용안정 보장, 민영화 중단, 보편복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경제협정 폐기, 노동악법ㆍ반민주악법 폐기 등 노동계급의 당면 문제 해결을 기본 과제로 내놓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 진보정치의 분열로 ‘각개 기어가기’가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그것은 또,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왜소화시켰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의 전ㆍ현직 지도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모여서 노동계 정당을 재건해 노동자 정치운동의 사분오열 상황을 극복하자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날 출범식에 권영길ㆍ단병호ㆍ이수호ㆍ임성규ㆍ신승철 등 민주노총 전ㆍ현직 위원장들과 정의당ㆍ노동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것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단결 염원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진보정치 운동의 분열이 남긴 정치적 상처가 아직도 심하기 때문이다. (※ 물론 아직은 역량상 당장 당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활동을 할 수는 없다. 단체와 취지를 알리는 것과 함께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연계한 공동 선거대응 협의틀을 만드는 게 당분간은 주된 활동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노동ㆍ정치ㆍ연대의 출범은 노동운동 내 주요 지도자들이 진보정치의 분열과 그로 말미암은 주변화를 극복하려고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배신의 역사?



한편, 이런 재편과 단결을 위해서는 옛 민주노동당 등 정치세력화 운동의 최근 과거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평가하는 일도 중요할 테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민주노동당과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지도자들의 온통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로만 평가한다.(이런 평가에 따르면 노동·정치·연대의 출범도 과거의 재탕일 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또, NL계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대중과 배신적 지도부’라는 구도로만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으론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7년 무렵까진 선진 노동자들 속에서 이 당이 성장했고, 또 선거적 성공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배신적 지도자’론은 개혁주의를 지지했던 대중을 결국 수동적 허수아비로 보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로 빠질 뿐이다. 올바른 강령으로 무장한 좌파가 우파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지도권만 잡으면 노동운동의 정치적 약점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종파주의와 선전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배신과 음모로만 설명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체제 안에서 겪는 노동자들의 소외, 즉 자신들이 사회를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과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개혁주의를 벗어나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종파적ㆍ선전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개혁을 위한 투쟁 속에서 대중 자신이 자신감과 조직을 구축해 가는 과정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좌파가 대중과 교류하며 실천 경험 속에서 올바름을 입증해 가는 끈기 있는 노력과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회피했기 때문에, 2000년대 내내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그저 선전주의적 비판에 주력했던 일부 좌파들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후에 생긴 정치적 공백을 노렸던 일부 좌파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험뿐 아니라 그 바깥 좌파의 경험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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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현 지도부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서 개혁주의의 우파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줬다. 8월 28일(수) 당일만 해도 이정미 명의의 논평은 신중론이긴 했으나, 기계적 양비론은 아니었다. 비판의 무게중심은 국정원 비판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상무위원회에서 기조가 바뀌었다. 아마 하루종일 이석기 의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도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도] 녹취록의 존재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단순 국가보안법 사건이 아니라 ‘내란음모’ 건이니 최근 부쩍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해 온 정의당 리더들은 진보당을 애매하게 방어하는 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듯하다. 


자칭 ‘신중한 태도’를 공식 방침으로 하더니 급기야 ‘헌법 밖 진보는 보호할 수 없다’(심상정)는 발언을 거쳐 결국 체포동의안 찬성까지 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보당과의 경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진보당을 밀어내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제1파트너가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부차적 요소로 본다.)


천호선, 이정미, 박원석 등 현 지도부들은 수사를 받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며, 자신들을 진보당에게 그걸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국정원에게 현역 의원이 끌려가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책임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심지어 이는 수사기관에 범죄의 입증 책임이 있다는 부르주아 근대 법 논리에조차 못 미치는 발상이다.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렇다. 4·19 혁명광주민중항쟁 등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정해 놓은 나라에서 진보정당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황당하다


물론 소수의 무장 음모와 다수 민중의 봉기는 다르다그러나 이런 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기존의 헌정질서가 정당하냐 아니냐는 헌법에 대한 물신숭배가 아니라 정치적, 즉 민중의 의지를 실천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결국, 정의당 지도자들이 [아마 좌우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확고히 기존 국가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강요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상만 허용하고기존 체제 바깥을 상상하고 전복하려는 사상에 자유가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국가가 허용하는 사상에게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심 원내대표의 말대로라면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서도 무능할 수밖에 없다. 헌정질서를 지키려 대북심리전을 했다는 국정원의 국내수사권을 결국 인정하게 되므로 국정원 개혁을 일관되게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술 더 떠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 날 “아직도 골방에 앉아 1980년대 사회변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이런 후퇴를 정당화했다


국가가 보기에 ‘정의롭지 않은 논리는 골방에 모여 자신들끼리 한 토론마저 여론재판을 받고 비밀경찰과 사법기구의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정의당 지도자들의 엘리트적 국가 사랑은 사회민주주의 최신 버전의 ‘국가 공동체’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적 공동체’를 위협한 세력에게까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표상은 87년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근거해 이들은 진보당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공동체를 뒷전으로 놓는 ‘진영 논리’라고 하고 있다. 즉 진영 논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사민주의의 ‘국가·국민주의’(국민vs계급)의 새 버전이다. 공동체를 위해 모두 책임져야 하니, 노동자도 증세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무조건 노동운동 편을 들 순 없으며,(안 그러면 진영 논리니까.) 헌법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게임의 룰을 지켜가며 점진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틀린 이유는 이 사회가 근본에서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따위는 없다. 이 사회를 뿌리부터 분열시키는 그 분단선이 바로 계급인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 논리야말로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배척하는 친자본주의 ‘진영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새누리당의 제명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국회로 불러들여놓고 마녀사냥 반대라니 우습지만, 그거라도 반대를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결국, 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의 모순된 논리는 지배계급이 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현 기득권 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자세니 박근혜와 동맹을 할 수 있다느니, 노동자증세를 포함한 보편증세에 함께하겠다느니 하는 번짓수 없는 주장도 하게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정원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은 우파 지배자들은 목적을 위해서 현행 법과 선거정치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 독재가 끔찍한 유신 독재로까지 연장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본격화하려는 반동의 진격을 막고 복지와 민주주의의 확대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위해서는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필요하다


저들이 법과 제도를 어길 각오를 하고 반동으로 가는데, 헌법 내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는 데 강박을 가진 진보로는 이런 것을 쟁취할 수가 없다. 신호등만 믿고 길을 건널 순 없다. 차들이 신호등에 맞춰 멈춰서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진정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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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항쟁은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가 결집해 표현된 계기였다. 그때 광장에서 민주당과 달리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환영을 받았다. 강기갑 의원 등은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9월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서울시장 출마에 뜻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야권에선 “적수가 없다”(<국민일보>)고 할 만한 지지를 받고 있고 차기 대선주자 중 박근혜의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하며 앞서기도 하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런 안철수 현상을 두고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대부분 “정치 불신”, “정당 실패”, “정당정치의 위기”라고 분석한다.

지금 정치에서 일차적인 불신의 대상은 누구보다 실패했고 불신받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하고서 소수 부자를 위한 정책만 펴고 있기 때문이다. 

1퍼센트 정치가 99퍼센트 평범한 다수의 일자리와 복지, 즉 미래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갈수록 늘어나는 배경이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의 출발점은 반한나라당(MB·반보수·반재벌·반신자유주의) 정서다.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 집권 세력 … 나는 …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KSOI 여론조사에서도 “안 원장 지지층의 정당 지지도(복수응답)를 보면, 민주노동당(72.5%), 민주당(62.7%), 무당파(46.6%) … 이념 성향도 진보(57%), 중도(45.7%), 보수(23.2%) 순이었다.”[각주:1]

 
그래서 “‘안철수 현상’으로 표상되는 … 가치의 방향은 공익, 경제정의, 공정으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는 한귀영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 전문위원의 지적은 옳다.

그러므로 박근혜처럼 단순히 “한국 정치 전체의 위기”라고 뭉뚱그려 규정하는 것은 일면적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우파의 실패를 물타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MB 정서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박원순 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이 집권한 경험과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보여 준 모습 때문이다.

노무현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이명박 ‘비지니스 프렌들리’의 예고편이었고, MB 4년 동안 민주당은 “싸울 듯 하다가도 결국엔 무릎을 꿇[] … 갈짓자 행보”(시사평론가 김종배)를 보였다. 당장 한미FTA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노무현 추모 정서와 별개로 그 시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73퍼센트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자신의 가치와 이해를 대변해 줄 정치적 대안을 못찾는 것이다

한귀영 씨는 노무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중의 정치•경제적 인식은 이미 ‘좌클릭’하고 있는 데 반해, 정치권은 여전히 보수 편향에 머물러 있다”[각주:2]고 지적한다.

결국 거대 여당과 제1야당의 ‘통치’가 소수 특권층을 위해 다수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경험 때문에, 부패 소굴이 된 기성 정치 질서 바깥에서 “사회 공헌의 성공 신화”(<한겨레21>)를 써 온 안철수 원장, 박원순 후보 같은 이들이 지지를 받는 것이다.

김어준의 표현을 빌면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부자들의 집단과 사회 공헌에 앞장서 온 양식있는 인물들은 대칭의 존재로 보이게 마련이다. 

사실 이 MB 정서와 민주당 불신(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밑바탕에는 계급 문제가 놓여 있다.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를 희생시키는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 불신과 정당정치의 위기는 투표율 저하로 나타났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대선 투표율은 89.2퍼센트나 됐지만,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퍼센트였다. 2008년 총선 투표율은 과반도 안 되는 46.1퍼센트였다. 청년층의 투표율은 평균의 절반이었다.


계급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이를 두고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가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 ‘안철수·박원순 현상’을 초래했다. … 지금 갈등의 축은 세대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동과 고용의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의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최 교수는 진보정당이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수립한 뒤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기존 정당과 타협[했다면] … 상당한 힘을 갖는 주요 정당”이 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정당 노선에서 더 멀어져 “기존 정당과 타협”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야권연대’나 강령 후퇴,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야말로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존재감만 후퇴시켰다.

서울시장 야권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존재감이 미약했던 것은 이런 방향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각주:3]. 최근 야권연대로 쏠쏠한 선거 실적을 거든 민주노동당은 역설이게도 2008년보다 정당지지율이 낮다. 운동권 정당의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며 민주노동당에서 분열해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추구하려던 진보신당의 추락도 눈여겨 봐야 한다[각주:4].

대중의 정치 불신이 계급 문제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의 단견과 달리] 진보정당이 “노동자가 중심에 선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3세력으로 출발해 10년 이상 … 뿌리 내려온 정당이 있는가? … 진보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잠재적 세력이 우리 사회에 굳건히 존재한다.”(노회찬) “2004년 민노당의 역사적인 의회 진출 때도 국민들이 진보정당 사람들에게 열광했다.”(김영훈) 따라서 “민주노총 중심의 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권영길)

그러므로 문제는 애초의 좌표가 아니라 실제로 진보 개혁을 실현할 힘을 모으고 발휘하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각주:5].

그 점에서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후퇴하는 걸 막으려면최 교수의 제안[각주:6]보다는 “‘도로 민노당’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권영길 의원의 말이나 “진보의 개념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원래 설정된 좌표[] …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진보대통합 차별화된 정책과 담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권과 재벌을 무력화시킬 유일한 사회세력으로서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 건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진보정치의 신뢰 문제는 계급의식 문제일 뿐아니라 개혁 쟁취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며, 각국의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저항과 불만이 자라나고 있다.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월가 점령 시위 지지가 54퍼센트로 우익단체인 티파티나 오바마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이 ‘반한나라·비민주당의 진보적 제3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급진적 대안을 분명히 하되, 대중과 유연하게 대화[각주:7]하며, 진보 대중의 단결을 추구하며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버스’는 그처럼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한국에서도 보여 줬다. 좌파가 지금 후퇴하는 계급정치를 다시 전진시키려면 이런 과정에 개입해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 이글은 축약해 <레프트21> 67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1. 9월 19일 한겨레 보도. [본문으로]
  2. 최근 한귀영 씨가 박사 논문을 다듬어 출판한 ‘진보대통령 vs 보수대통령’은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국민참여경선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17,891명 참여자 중 467명만 지지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이 참가자를 조직했는데도 그 수치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최규엽을 찍지 않았다는 것인데, 어차피 사퇴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굳어지니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골수 지지자라도 어차피 사퇴할 후보를 적극 지지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본문으로]
  4. 어떤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에서 노회찬이 완주해 한명숙을 떨어뜨린 게 진보신당 추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때 노회찬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줏대 없는 사람이고, 한명숙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자기 능력을 과대망상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특정세력이나 인물의 지지율을 올릴 순 있지만 내릴 순 없다. 그리고 한명숙의 패배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결과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참패한 것은 이후 추락의 원인이 아니라 이전의 추락 과정을 확인시킨 계기에 불과했다. 의회적 사민주의로 가려던 목적의식적 기획인 진보신당 창당은 사실 2008년 총선에서 대표주자들이 낙선하면서 시작부터 일그러졌다. 조승수 전 대표의 당선조차 민주노동당의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자력으로 선거에서 주요 포스트를 확보할 수 없는 당의 능력을 최종 확인한 것이 2010년 6·2 선거인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바로 독자파를 위축시키고, 진보신당의 위기를 촉발한 것이다. [본문으로]
  5. 진보대통합의 실패, 민주노총의 무기력, 참여당 논란 등이 최근의 신뢰 추락과 존재감 상실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6. 최장집 교수는 정치란 의회정치이고, 따라고 정치의 핵심은 정당이라고 본다. 그래서 최 교수는 2008년 촛불항쟁이 정당정치를 위협한다며 정권퇴진으로 가지 말고 의회정치로 복귀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3년 후 당시 논쟁을 결산하면, 틀린 것은 최장집 교수인 것이 명백해 보인다. [본문으로]
  7. 이것은 사용하는 언어의 문제기도 하다. 예전부터 운동권 사투리에 대한 자각과 냉소는 있어 왔다. 문제는 진보의 논리적 개념들을 쉽게 표현하는 게 그 의미와 가치를 속류화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자유주의를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라고도 많이 사용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이 장기적 경제 위기 대응책이긴 하나, 단기적 호황 때도 신자유주의 전략은 지속되니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기도 하다. 자조적으로 보면, 이런 것이 상상력과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계급이란 단어가 그렇다. 매우 쉽지 않고 낯선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것처럼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 사회의 문제를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개념)은 없다. 지난해와 올해 유럽과 미국 시위에서 계급투쟁이라는 단어가 보편화하는 걸 보면 계급 같은 단어를 쓰는 게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주 써서 금기를 깨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 점에서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의원단 활동에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전략적 시각을 지닌다면, 계급 정치를 그 단어대로 선명하게 강조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계급 분단선이 더 커지고 계급투쟁도 고양되고 있으므로 더 쉬운 일이 됐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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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대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2012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 교체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진보 양당의 통합만으로는 이런 목표 달성이 힘드니까 참여당과도 통합해 덩치를 키워 민주당과 대등하게 연립정부를 추구하자는 것이 개혁주의 지도자들 상당수의 생각인 듯하다.

자주파 경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참여당 8문 8답’이란 문건은 “2012년 … 진보개혁진영의 다수파 국회를 형성하여 … 각종 노동개혁입법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 [그것이] 노동운동의 어려움을 뚫고 나갈 전략적 돌파구”라고 주장한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도 “대선을 통해 진보정당이 연합 정치를 할 때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과 같은 곳의 인사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실제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참여당 대표 유시민도 최근 <레디앙> 인터뷰에서 “[진보 양당 통합으로] 무슨 현실을 바꾸는 일을 도모하겠는가”라며 “권력의 일부로 노동ㆍ사회 정책을 바꾸는 것이 싫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의회나 정부에 진출해서 권력을 공유해야지 실질적인 진보ㆍ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물론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이루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의회나 국가기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관료 집단
 
이 때문에 그것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여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하기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의회와 정부에 진출한다 해서 그것만으로 사회를 뜻대로 바꿀 권력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노무현이나 오바마는 정권을 잡고 의회를 장악하고 나서는 약속했던 개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했을까.

이에 관해 노무현 정부 내내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의 증언은 시사적이다. 

“관료집단 커뮤니티는 … 관료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고객 집단까지를 포함[한] … 일종의 네트워크이고 … 커뮤니티의 정서가 때로는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철학이나 정책보다 우선합니다. … [예컨대] 정확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데 … 기획재정부의 세제실이나 국세청이 쥐고 … 청와대에서 가져오라 해도 안 가져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나 대통령도 대기업과 관료, 보수 언론 등이 맺은 이 항구적 “네트워크”의 전방위적 압력과 노하우를 극복하기 힘들다. 국가기구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겨레21>이 인터뷰한 대기업의 고위 임원도, 지금은 한나라당마저 ‘좌클릭’하며 재벌을 욕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다시 우리를 찾아와 앞으로 잘해 보자고 손을 내밀 것”이라며 “누가 집권하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병준은 “집권해도 세상 그렇게 못 바꾼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유시민도 올해 1월 한 토론회에서 “막무가내로 대통령이 의지를 발휘한다고 해서 실제 그것이 현실로 가는 게 아닙니다” 하고 집권 시절 경험을 털어놓은 바 있다.

노무현이 4대 개혁 입법 실패 후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했다가 퇴임 후에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은 이런 무력감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주류 지배자들은 선출된 정치인들이 의회나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개혁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길 땐 그동안 구축한 “네트워크”를 동원해 가차 없이 선출된 권력을 무력화하려 한다. 

우파들이 타협적이던 노무현조차 ‘탄핵’하려 했던 것이나, 별 볼 일 없는 수준이던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조차 사법부가 위헌 판결을 내려 무력화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자기 제한
 
더 극단적인 역사적 사례들도 있다. 

1970년 칠레판 민주대연합으로 집권한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령은 비밀리에 주류 엘리트들에게 기존 헌법 준수 서약까지 했는데도 집권 내내 관료 조직의 사보타주와 기업주들의 파업, 언론의 마녀사냥, 군부의 쿠데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아옌데는 자신이 임명한 참모총장 피노체트가 일으킨 유혈 쿠데타를 통해 제거됐다.[각주:1] 

이런 사례들은 단지 의회ㆍ정부에 진출한다고 개혁이 가능해지는 게 아니라, 주류 지배자들의 비공식적 네트워크에 맞선 아래로부터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위로부터의 개혁 노선은 “투표로 심판하자”며 노동운동이 선거 때까지, 또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투쟁 방법뿐 아니라 투쟁 목표도 자기제한적으로 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요구가 야 5당이 주도한 희망시국대회에서는 국정조사 요구 등으로 낮춰진 것이 한 사례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97년 대중파업으로 노동자들은 당시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지배계급은 굴욕적으로 후퇴했고, 1년 뒤 일당국가가 해체됐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본격화됐다. ⓒ사진 제공 금속노조

그러나 주류 지배자들은,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 오직 대중투쟁이 자신들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해 적당한 양보로 대중과 온건파 저항 지도자들을 달래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느낄 때 양보에 나선다.

 따라서 법 개정을 통해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는 생각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대중투쟁의 힘이 강력해야 악법을 막거나 개혁 입법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민주노총이 민주적 노동법 개정을 위한 총파업 준비를 마치고도 국회 논의와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를 바라보며 파업 실행을 미루자, 김영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 정권은 도리어 그해 말 정리해고를 도입하는 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버렸다. 

뒤늦게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은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지는 대중파업으로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정리해고법’ㆍ‘안기부법’ 등 악법들을 철회시켰다. 진보 국회의원 한 명 없이도 투쟁의 힘으로 대통령 사과를 받고 악법을 막아 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그 노동악법들을 다시 통과시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민주당 정권에게는 강력한 반대 행동을 하길 두려워했다.(결국 불신임됐다) 

따라서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보다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원단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개혁의 진정한 동력이다.

“아래로부터 쟁취한 개혁은 계급 조직을 강화하고, 그리하여 미래의 진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위에서 선사한 개혁은 수동성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포섭시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영국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의 경고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 64호에 실렸습니다. (☞ <레프트21> 보러 가기

  1. 아옌데는 노동자들이 주류 지배자들의 쿠데타와 사보타주에 대응하는 자주적 기관을 공장과 지역에서 발전시켰으나 아옌데는 이 운동을 오히려 탄압했다. 헌정질서를 벗어나면 안 된다면서 투쟁을 억제시키고 자신의 개혁을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우익 쿠데타에 맞서는 정치적 무장을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민중운동 수만여 명이 쿠데타로 학살됐다. 빅토르하라도 이때 살해당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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