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 ‘해적기지’ 또는 해적들의 만행이란 표현은 이미 지난해부터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에 맞서 싸우시던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이 써 오던 표현이다.(관련 언론 보도만 검토해 봐도 알 수 있다.) 

그 말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던 해군에게 토지를 강제 수용 당하고, 범죄자·폭도·부랑아 취급 당하면서 범죄없는 마을로 칭송되던 마을이 타의에 의한 범법자 천지가 되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요, 분노가 섞인 표현이다. 

강정 토지 절반(주민들의 논밭과 집)을 강제 수용하고, 10미터 수심에 사람을 쳐박고 낄낄. 이것이 해적질이 아니고 뭔가. 

오히려 이런 절규와 한탄이 김지윤의 인증샷 이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런 외침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는 없다. 지금 방송사 파업을 부른 바로 그 이유, 오로지 진실이 언론을 통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경선에 나선 김지윤 후보가 제주 해적 기지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심정과 분노와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돼야 할 진보 정치인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지윤 후보가 꼭 청년비례 후보로 국회에 입성하길 바란다.)

진보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이고, 덕분에 해적 기지란 표현은 사람들에게 제주 강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제대로 의제화를 시킨 것이다. 이제 해적기지란 표현 논란은 제주 해군 기지에 대한 일종의 상징 싸움처럼 돼버렸다.

문정현 신부님의 말대로 “저들이 두려운 것은 전 국민이 해군더러 ‘해적’이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군기지 찬반 프레임이 안보 이슈에 가깝다면, 해적기지 찬반 프레임은 안보보다 민주주의 문제를 건드려 반MB(정권 심판) 프레임에 걸쳐 있다. 또 기지의 제국주의 성격에 접근하는 데도 해적기지 규정은 유리하다. 제주기지 반대가 
구럼비바위 보전 문제로 협소화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북한과 긴장 관계를 유도하는 호전적 발언을 해 온 [
국방부장관을 위시한] 군 당국이 김지윤 고소로 무리한 강경 대응을 한 것은 해적기지 단어 하나가 기지 건설 강행의 정당성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더 작게는 <조선일보>의 경우에 김지윤 낙선 공작의 의도도 없지 않다. 

만약 강정에서 한 짓거리를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한다면, 저들이 지금 적처럼 취급하는 강정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이 해적이란 말인가. 해군참모총장의 고소 행위야말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하겠다는, 바로 군이 민간에 개입한 해적질이다.

천안함이 정말 북의 소행이라면, 작전에도 실패하고 사병 안전도 못 지킨 무능에 책임지고 일벌백계를 당했어야 마땅한 작자들이 도리어 국민의 삶과 평화를 파괴하더니, 이제는 사병과 유족을 팔고 일부는 눈물이나 짜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 군은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니다. 욕 먹을 일을 했으면 욕을 먹는 게 마땅하다. 선출된 대통령도 욕먹는 세상에 군을 욕하면 안 된다, 그런 게 어딨나. 나도 군필자고, 수많은 선후배와 친구들을 군대에 보내봤지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 같은 것도 없다. 법으로 징병제를 해 놨으니 다들 어쩔 수 없이 울고짜고 하면서도 입대하는 것이다.

지금 군의 명예훼손 고소는 작게는 강정 싸움에 대한 반동일 뿐아니라 군이 민간에 개입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만행이다. 진정 군대가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존재라면, 오히려 ‘그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순리 아닐까. 그러기는커녕 국가폭력을 계속 자행하겠다는 해군 당국은 해적 맞다!!!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주민들이 만든 포스터.




2. 물론 더 근본적으로 진보인 우리가 제주 해군 기지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들은 더 있다.

무엇보다 해군 기지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은 바로 기지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생각해 보라. 평화 박물관을 짓겠다고 군대가 나서서 사람들을 패고 쫓아내고 생명 위협을 하겠는가. 

이 군항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이용될 기지다. 제주는 ‘남중국해-동중국해-센카쿠열도-대만해협-서해’로 이어지는 미국의 중국 해양 포위선,즉 미국과 중국의 해양 갈등선의 일부다. 미국은 세계경제 규모 2위로 떠오른, 그러나 여전히 서방 강대국들에게 경제·군사적으로는 열세인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아 왔다.

최근 태평양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국방부 차관 애슈턴 카터는 최근 “태평양에 배치돼있는 미 해군 함정의 수를 현재 52% 수준에서 몇 년 안에 60% 수준까지 증강”하고 “항공모함도 1척을 추가 배치해 총 6척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짓는 기지는 이렇게 증강되고 있는 미군의 전략기동함대가 이용하면서 중국을 선제적으로 군사 압박하려는 기지다. 불가피한 방어용 기지가 아니란 말이다. 국방부 부인과 달리 제주 해군 기지에 배치될 한국 이지스함은 언제든지 미국 주도의 해상 MD 체제로 전환 가능하다.

제주 해군 기지는 미중 간의 군사 대결, 군비 경쟁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군사적 긴장과 군비 증강 경쟁을 고조시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괴물인 것이다.

중국과 일본 등이 주도하고 한국이 뒤따른 말라카 해협 등 주요 해상로 경비 경쟁에 미국이 직접 진출해 이 해상로를 중국 해양 봉쇄선으로 삼으려는 것이고, 그 선의 한 기점에 있는 제주 기지는 그런 구실을 할 목적으로 짓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 주둔하는 주한미군도 노무현 정부 때 이미 그 성격을 대북억지력에서 전략적 유연성이란 명목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한 신속기동군 성격으로 바꿨다.

용산미군기지가 평택미군기지로 가는 것도 그런 목적이었다. 평택이란 지리적 위치는 육지에 주둔한 주한미군이 공격의 주요 대상으로 염두에 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걸 보여 준다. 
 

미국의 호전적 패권전략 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호전성도 문제다. 지난 정부가 시작한 ‘대양해군론’은, 한미FTA와 군사 협력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 미국의 중국 해양 포위 전략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더 큰 틀에서 한국 지배 엘리트 다수의 합의인듯하다[각주:1]
(이와 관련해서는 진보평론에 기고한 내 글을 참고하시오. ☞ 바로 가기

천안함 사건을 두고 북한 위협설을 그렇게 떠들던 이명박 정권이 왜 북한과 정반대 방향인 제주 해군 기지에 목을 매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왜 한국 해군이 자국 해안 방어에 빈틈을 만들면서까지 머나먼 아덴만 앞바다에 애써 만든 주력 구축함(DDH급)을 보내고 있을까.[각주:2]

어떤 이들은 중국과의 이어도 다툼을 말하는데, 물론 중국을 편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름이 섬이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전설 속의 섬을 가지고 말 수준의 다툼을 벌였다고 전쟁 준비를 한다는 건 엄청난 오버일 뿐이다. 그리고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은 몇 년 된 주장으로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 해군 항공모함의 서해 진출 시도가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에 자극을 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즉, 
가장 위험한 것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이다. 경쟁적 방어 논리로 군비 경쟁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가장 야만적인 어리석음이다. 한국이 중국과 군사 경쟁해서 압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경쟁으로 평화가 오는 일은 없다. 

사실 그런 논리면, 독도를 이유로 울릉도에 함대 기지를 짓자는 것과 같은데, 왜 미국은 울릉도가 아니라 제주도 해군 기지에만 찬성할까. 이용 목적과 상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핵심은 해군 기지의 지리적 위채와 결부된 호전성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군부의 목표는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적극적 구실을 해 국제 지위를 높여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주들은 이런 전략을 환영할 것이다. 그것은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이 추구하는 한미 동맹 강화는 이처럼 경제와 군사 두 측면 모두다. 

한국 정부도 제주 기지를 군사적 해외 진출을 위한 전진 기지로 보고 있지, 방어형 기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에 건설하려는 해군 기지는 한국 영토 방어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전략의 일부이고, 한국 지배자들의 군사적 세계화를 위한 전진 기지다. 

미국의 제국주의 강도질에 협력하려고 만드는 기지니, 그 성격 자체로도 ‘해적기지’라 할 만하다. 사실 그 피해 면에서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고 사회를 파괴한 미국 군대의 제국주의 강도질을 해적에 비교하는 건 해적에게 미안한 정도로 과소 표현한 것이다. 





3. 사정이 이러니 해군 당국이 나서서 김지윤을 고소하겠다고 설레발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이것은 ‘명박스러움’을 넘어서는 행위다. 해적이란 비난을 인정 않겠다는 것은 지난 5년 간의 만행을 인정 않겠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해적질’로 ‘해적기지’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한미FTA와 제주 해군 기지, KTX 민영화 등은 대기업주와 군부를 포함해 친미 노선을 추구해 온 한국 주류 엘리트 집단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온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조차 이 의제를 적극 추진한 것이 그 간접 증거다. 야당으로서 반대할 순 있지만 정부 운영권을 넘겨 받은 여당으로선 반대하기 힘든 것, 즉 지배적 주류 다수의 ‘컨센서스’라는 것이다. 코드네임은 두 개다. ‘미국’과 ‘재벌’.

이런 목적에서 이명박 정부와 우파들은 학교폭력과의 전쟁, 탈북자 북송 이슈 등으로 외곽을 치고 나서, 한미FTA 발효 강행과 제주 구럼비 폭파 강행, 한미군사훈련, KTX 민영화, 핵안보정상회의의 우파적 선전 등을 본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해 계급 세력 균형을 뒤집어 보려 한 것이다. 이 경우 새누리당에게 유리할 텐데, 어쨌든 새누리당은 그들의 A당 아닌가.  

그런데, 이 쟁점들이 한국 지배적 주류의 전반적 합의라는 점은 민주통합당 지도부에겐 이 문제들이 아킬레스 건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한미FTA와 제주 강정에서 흉물스런 이명박 정부와 해적 집단을 보지 못한다. 그 쟁점들은 자신의 정치적 거울이다. 과거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것들, 미래에 자신들이 집행해야 할 것들. 

민주당이 일관되게 행동할 수 없는 까닭이다. 차라리 이명박의 손에 피를 묻히고 자신들의 그 대가로 집권하는 것을 바란다. 그럼에도 민주당 처지에선 통합진보당을 보완
물로 해 당장 한미FTA 폐기 등 진보·개혁적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지 않으면,  재집권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지키지 못 할 약속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류 지배자들 입장에선 혹시라도 총선 결과에 따라 [집권당의 참패로] 분위기가 더 악화돼 [즉, 반대 여론과 운동이 더 탄력을 받아] 그들의 핵심 이슈 추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은 총선 전에 이 문제들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으려 하는 이다.

만약에 그 결과로 새누리당이 침몰하면 어차피 플랜B 정당인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면 되니 말이다. 어차피 중요한 이슈들이 돌이키기 힘들게 추진된 상황이니 민주당의 집권
이 덜 불안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번 집권 때 나름 임무를 잘 수행한 정당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구럼비 폭파 자체가 안보 문제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작전의 일부인 것이다. 

저들의 흔한 수법이다. 1996년 총선에선 북에 돈 주고 판문점에서 총질한 총풍을 갖다 썼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천안함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 올해도 총선을 앞두고 북풍을 이용하려고 북한을 일부러 자극한다는 지적이 있다. 

두 새누리당 지도자들, 이명박과 박근혜의 선거적 노림수도 이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보수층은 결집하면서 민주당의 약점인 쟁점을 부각해 경쟁자들의 결집, 즉 야권연대는 부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들에게
피하고 싶은 상황은 야권연대 무기력화가 단순히 야권 무력화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세 위축의 반대급부로 통합진보당이 부상하는 경우다.
본으로 야권연대 지지 정서의 한켠에는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정서가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경우의 수다.

우익의 김지윤 때려잡기, <조선일보>의 문경식 후보 공약(“이명박 
구속”) 문제 삼기, 탈북자 북송 이슈화, 한미군사훈련 강행 등은 모두 이를 겨냥한 것이다. 종북좌파 색깔론인 것이다. 

야권연대 협상에서 민주당이 우위를 잡아야 과거 전력을 놓고 도찐개찐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그래야 그나마 새누리당이 민심 이반과 분열 위기를 만회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바위처럼 님의 패러디물.




4. 이렇게 봤을 때,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진보적 정책을 희생시키고, 김진표 같은 X맨들을 위해 후보를 사퇴하면서 진보진영 사이에 분란만 일으킨 이번 야권연대 합의는 단견적 시야의 발로다. 김지윤 후보를 당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발뺌하고, 이명박 구속 공약을 비난한 <조선일보>에 침묵한 것도 실책이다.

사실 인증샷 논란의 본질은 공인의 경솔한 [순간적] 언행 문제가 아니다. 인증샷 나흘 전 논평에서 이미 김지윤 후보는 ‘해적기지’라는 표현을 썼다. 저들은 강정 싸움을 색깔론으로 가져가려고 평소에 미운털 박힌 김지윤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문제는 매우 단순해서 강정싸움의 어느 편에 설 것이냐 하는 선택 문제였는
데,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선거를 앞두고 공중파와 조중동이 총공세를 펴니 그만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군의 정치 개입, 표현의 자유 위협[footnote][/footnote]에 대해서조차 말을 못하는 건 뭔가. 공인의 언행? 그런 개념이라면, 현직 판사가 가카빅엿이란 말을 쓰는 건 공직자로서 신중한 언행이었나. 그 분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로 영입돼 있다.(물론 나는 서기호 판사의 당시 발언을 내용과 형식 모두 옹호하는 사람이다.)
 
이런 실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지도부와 다수 정파들을 감싸고 있는 총선 심판론에 있다. 저들은 총선 전에 밀어붙이고 있는데, 총선에서 심판하자고 하니 오히려 분노를 느끼는 대중의 섟을 죽이게 되는 꼴이다. 게다가 선거 표를 의식한 정치를 우선하다보니, 조중동의 우파적 포퓰리즘 공세에 무기력해져 있다. 

애초 제주 강정 기지 건설에 찬성했던 유시민 대표의 부적절 발언은 여전히 그가 확실한 진보정당의 지도자로서는 아직 자격 미달이라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정희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청년비례 선출 위원회가 당과 무관하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나, 노회찬·우위영·천호선이 공동 대변인으로 있는 대변인실이 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배
포한 것에서 통합진보당 지도부 전반의 무기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문제점은 배신성보다는 모순에 있다. 이정희 대표는 구럼비바위 폭파 발표가 나자마자 제주로 내려가 몸을 던지며 싸웠다. 통합진보당의 사법개혁 요구에는 명예훼손죄 폐지가 담겨 있다.(군의 김지윤 고소죄목이 명예훼손죄다.) 

이번 야권연대 합의에서도 진보의 몫을 늘리려고 했지만, 내용에선 후퇴하는 이런 식인 것이다. 한미FTA 폐기, 강정기지 반대가 모두 재검토 수준으로 후퇴했고, 경북 울진에는 민주당의 찬핵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합의해 녹색당의 항의를 받았으며, 김진표 등을 야권단일후보로 인정해 통합진보당 후보를 사퇴시켰다. 

무엇보다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민누리통합당과의 선거연대를 위해 희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대중이 바란 야권연대일까. 의심스럽다. MB스런 세상이 싫다고 야권연대하는데, MB스런 정책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할 정책을 내는 것, 
MB스런 집단을 야권단일후보로 미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런 바보스런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지금 진보가 할 일은 모순을 정리하고 일관된 진보의 자세, 진보의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다. MB의 방송 장악에 정면으로 도전한 방송사 파업과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제주 강정 싸움을 두 축으로 한미FTA 폐기 투쟁 등을 결합해 전면적 반MB 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 강정을 비롯한 곳곳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정서를 거리에서 불붙여야 한다. 

그 투쟁 속에서 진보 대중의 사기와 투지를 높이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고 해야 한다. 그런 진정성이 있어야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거도 승산이 생길 것이다. 




  1. 평택 기지 이전 합의 ― 한미FTA 협상 ― 제주 강정 기지 시작이란 세 사건의 연쇄적 진행도 그 연결고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본문으로]
  2. 여섯 척 구축함 중 세 척이 아덴만 교대와 정비로 묶여 한반도 해역 방어엔 상시적으로 세 척밖에 기동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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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일 북미 합의가 발표됐다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영양 지원(영양강화제와 옥수수) 24만 톤을 지원하는 것이 합의의 핵심이다.

이번 합의 불과 며칠 전까지 한미연합군이 키 리졸브 훈련 강행 의사를 밝히고, 북한이 이를 ‘전쟁 위협’이라고 반발하며 긴장이 형성됐던 것에 대면 북미합의와 공동 발표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키 리졸브 훈련에 참가했던 미 해군 원자력항공모함 칼빈슨 호. 출처: 국방부 블로그.


이란 압박에 치중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혹시라도 북한을 계속 무시·압박하다가 김정은 체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우려한 듯하다. 북한으로서도 내부 안정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각주:1].(물론 북미 관계에서 상황 규정력은 압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미국이 외면하면 긴장이고, 미국이 받아주면 대화 국면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안정적일지는 알 수 없다. 합의에 대한 북미의 해석과 강조점이 다소 다르다. 북한은 식량 지원 약속을, 미국은 핵실험 중단을 성과로 강조했다[각주:2].

결국 이번 북미합의는 합의가 6자 회담 재개로 순탄하게 이어질 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이것은 한반도 주변의 상황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포위 전략에 바탕한 한미 연합군의 키 리졸브 훈련도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이고, 중장기적으로는 한··일 군사동맹 구축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

당장 이명박 정부는 229일 “안보에는 타협이 없다”며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강행 의사를 밝혔다. 설계도 부실 의혹이 드러났고, 올해 기지 건설 예산이 전액 삭감됐는데도 정부는 1조 원 넘는 돈을 써서라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탄압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은 ‘관광 미항 개발’ 운운하며 물타기를 하지만, 실제로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대중 압박과 포위 전략의 일부가 될 것이 뻔하다.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미국의 저명 인사들마저도 제주 강정 기지 건설에 적극 반대하는 이유다.

정부가 제시한 조감도. 아름답던 해변이 모두 사라진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로버트 레드포드는 23일 “이지스 탄도미사일 시스템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과 항공모함이나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따위가 드나들 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한국 정부의 야욕”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타이완을 두고 중미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건설중인] 제주 해군기지를 그 전쟁에 동원할 것이라며, 그러면 중국은 한국을 다시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지경”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명박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 발표는 한미동맹 강화로 평화를 파괴하면서 우파적 지배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 ‘너네가 먼저 시작했던 옳은 사업 아니냐’며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약점을 노리고도 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한 것도 이런 우파적 반동의 일부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반동에 맞선 행동을 거리에서 불붙여야 한다


2009년 여행 중에 강정마을에 갔을 때 사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동네 담벼락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들을 남겼다. 집집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붙어 있었다.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 찍어 다른 정경은 사진이 엉망이다.ㅠㅠ


 

  1. 물론 대외 갈등을 크게 만들어 내부 단속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대외 갈등의 쌓인 피로감이 너무 큰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본문으로]
  2. 쌀 등 제대로 된 식량 지원이 아니라 영양 지원이란 이름으로 지원 품목을 옥수수 등으로 낮춘 것은 문제다. 식량은 기본적 인도주의 아닌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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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쇠퇴하는 경제적 영향력을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으로 만회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세르비아[각주:1],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인 야만적인 침략 전쟁은 이런 전략의 결과였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북한의 군사 위협을 과장해 ‘평화’의 유일 관리자를 자임해 왔는데 그 실상은 군사적 대북 압박이었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의 핵무장)을 묶어 두고,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했다. 군사대국들이 밀집한 동북아의 맞춤형 전략인 것이다[각주:2].


양국간 대화든 6자회담이든 매번 약속을 어기고 사태를 악화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북핵 위기 시작 이후 제네바 합의(1994)를 이행하지 않았고, 북미공동선언(2000)을 무시했으며, 9ㆍ19 공동선언(2005)은 바로 뒤집었다.
해외 계좌 동결, 북한 선박 임의 검색 등 경제 제재도 강화돼 왔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에 정전협정을 깨고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 온 적이 있다. 핵을 포함한 대규모 선제공격 훈련을 실시해 온 것도 미국와 남한 정부였다[각주:3]. 1994년에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런 군사ㆍ경제적 압박이 북한 정권을 핵과 미사일 개발, 벼랑끝 외교[각주:4]로 내몬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반제국주의 저항으로 볼 수는 없다.


반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북한의 군사적 대응

사회주의는 총과 미사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대중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핵심 수단은 말과 설득, 그리고 자신의 힘을 민주적적 사회 운영에 발휘하려는 집단적 행동이다. 폭력은 지배자들의 반동적 폭력에 맞서는 방어적 수단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소성의 기준을 벗어나는 대량살상무기는 사회주의의 방어수단이 될 수 없다.


첫째, 핵은 인류와 환경을 오염하고 파괴하며 폭격 지역의 인간을 절멸시키는 ‘대량살상무기’일 뿐이다.


따라서 방어적 억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변호도 명분이 없다. 약소국의 핵무장은 제국주의 핵 강국들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핵무기를 반대한다.

둘째, 군비 증강으로 강대국에 맞서려면 다른 분야를 희생해 가용 자원을 군사 분야로 최대한 집중시켜야 한다. 이 과정이 3대 세습 같은 권력의 초집중, 비민주적 억압의 강화, 노동계급 삶의 희생을 낳았다.

올해 김정일은 “[인민에게] 흰 쌀밥에 고깃국을 주겠다”고 한 아버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만성 식량부족국가가 돼 버렸다.

그 뒤 국제협상에서 북한의 요구 중 빠지지 않는 게 식량 지원이었는데, 정작 북한 정권의 우선 순위는 군비 증강에 가 있다.

결국 민중의 희생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은 북한 체제의 억압적ㆍ착취적 성격을 드러낼 뿐이다.

셋째,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북한은 진정으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나라 안팎에서 모두 대중적 지지를 동원할 수 없다. 사실 북한 정권은 이에 관심도 없다.

대규모 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연평도처럼 군사 보복식으로 대응하면, 표적이 되는 상대 국가(남한)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민중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각주:5]. 남한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매번 부딪히는 어려움이다[각주:6].

역설이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시도는 미국 제국주의의 동북아 개입을 정당화하고 일본이 재무장하는 명분을 쌓는 데 이용됐다. 남한 정부와 우익 언론도 이를 국내에서 억압적 조처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

반대로 체제와 정권이 진정한 개혁을 제공하면서 ‘세계적 반동의 보루’인 미국 제국주의와 맞서는 경우, 나라 안팎에서 진정한 반제국주의 대중 동원을 이룰 수 있다[각주:7].

이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제국주의 연합군을 물리친 배경이다[각주:8].


비슷한 예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반(反)차베스 우익 쿠데타를 세 번이나 후원했는데, 이들은 번번이 민중 저항에 직면해 실패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반제국주의ㆍ반자본주의 운동에 지지를 호소[각주:9]하다가도 한편에서 관료와 군부에 의존하고, 중국 같은 비서방 강대국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최근에는 핵개발을 선언했다.

이런 사례는 반제국주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체제의 우선순위


제국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기업 경쟁이 국제적 규모로 확산한 결과다[각주:10]. 호전적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바꾸는 일은 자본주의를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목표는 제국주의 미국에게서 “체제 보장”을 받고 그 질서에 편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대응이 반제국주의가 아닌) 넷째 이유다.

김일성은 1994년 전쟁 위기 때 방북한 카터에게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고 말했고,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같은 언급을 김대중에게 전했다.

“철천지 원쑤”의 군대를 통일 후에도 수용한다는 것은 현재의 주둔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억압 체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할 수 있다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려는 바는 북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는 한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의 군사 압박을 막는데 도움이 될 정치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립은 더 깊어질 뿐이다.
그러나 국가간 경쟁과 축적을 인민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체제와 정권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신화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7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48


  1. 1999년 나토군을 앞세운 폭격 전쟁. [본문으로]
  2. 북핵 위기 주범설은 완전한 위선인데, 미국은 훨씬 더 파괴력이 큰 핵무기를 1만 6백 기나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 이스라엘 같은 호전적 우익 국가에게는 NPT에 가입하지 않고 핵무기 1백여 기를 보유하는데도 절대 제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지지했다. [본문으로]
  3. 연인원 20만 명이 참가하며 한미 육해공이 모두 [본문으로]
  4. 이른바 벼랑끝 외교가 남한 지배자들의 제국주의 추종 외교보다 자주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북한 정권이 미국에게 벼량으로 내몰린 상황에 있다. 북한이 능동적으로 벼량으로 간다는 것은 친제국주의 세력과 언론이 한반도 위기 주범을 북한으로 몰고가려는 술책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의 자주파는 북한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 때문에 이 술책에 무비판적이다. [본문으로]
  5. 베트남 전쟁 등 여러 사례를 봐도 약소국 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이나 제국주의의 간섭에 부딪힌 제3세계의 진보 정권들에게는 제국주의 본국 민중운동의 지지가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
  6. 미국의 대북 압박이 원흉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면, 흔히 남한 민중 전체를 겨누는 북한의 핵무기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악의적 반론에 부딪히곤 한다. [본문으로]
  7. 북한이 민중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제공하는 정권이라고 상상해 보자. 미국의 군사적 대북 압박에 저항하는 여론을 이끌어 내고, 저항 운동을 건설하는 일은 매우 쉬워질 것이다. [본문으로]
  8.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뒤이어 독일에서 제정이 타도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들은 14개국 연합군을 꾸려 러시아의 반혁명 백군을 지원하며 혁명 러시아를 침공했다. 만 3년의 내전은 러시아혁명의 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열악한 무력에도 혁명 러시아의 군대는 말과 설득을 앞세워 승리했다. 전투 전에는 적국 병사들에게 선동 연설과 유인물이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곳곳에서 전투를 거부하는 연합군 병사들이 생겨났다. [본문으로]
  9. 차베스가 2005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한 것이 한 예다. 당시 연설장소인 체육관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모인(유럽과 우리 같은 아시아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급진적 청년 수만여 명은 차베스의 연설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본문으로]
  10. 기업주들은 경제적 경쟁자든 아래로부터 저항이든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과 이윤에 대한 도전자들에 대처하는 데 국가의 힘을 빌린다. 이들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약소국에게는 국가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교역 조건을 강요하고, 선진국끼리 무역분쟁 때도 국가간 경쟁이 촉발된다. 제국주의는 세계자본주의의 오늘날 이름이다. 그래서 진정한 反제국주의는 反자본주의여야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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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의 주요 지도자와 원로 들이 11월 30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각주:1] 선언문은 “주변국들의 대화”를 촉구하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협의”와 “6자회담 재개”를 평화적 긴장 해소 방안으로 주장했다. 

시국회의 참여자들이 반공적 냉전주의를 부추기는 주류 지배자들과 언론을 거슬러 ‘평화적’ 대응을 촉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떻든 평범한 민중에게나 저항하는 민중에게나 국가간 평화 상태가 긴장과 전쟁 상태보다 낫다. 

평화를 바란다면 지금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하듯 무력 대응을 강화해 군사 긴장을 높이는 방식의 대응에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 대결보다 ‘대화’를 촉구한 것에 1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럼에도 “6자회담”과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실제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해소되진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 제안들은 안타깝게도 남북한 국가와 주변 강대국들에게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참가국들은 세계 최상위 그룹의 군사강대국들이다.

그중에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온갖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평화를 파괴해 왔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유일한 핵무기 실전 사용국인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게 핵 공격 위협을 멈추지 않아 왔다. 미국은 냉전 후 약해진 경제력 대신 경쟁국과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해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조지워싱턴 호.

이런 미국에게 이 지역 패권은 세계 패권 전략의 일부다. 워낙 군사 강대국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 전략의 충실한 동맹자들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해 자신의 주도 하에 ‘북한 위험’을 관리해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한·일의 미국 의존성을 유지하며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북한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며 자기 영향력 아래 넣는 것에 더 열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고 침략과 간섭을 불사하는 호전적 국가다. 

이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력과 이권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이 6자회담의 본질이다. 이 나라들에 한반도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맡기자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박선원이 폭로한 내용, 즉 한반도 통일 후 중국에 북한 영토를 줄 수도 있다는 미국 관료의 발언은 조선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해방 후 미소 합의로 말미암은 강제 38선 분단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번 위기 자체가 6자회담이나 합의문으로 군사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다. 

평화 수단

2003년 시작한 6자회담이 지난 7년 동안 거둔 주요한 성과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각주:2]과 2007년 2ㆍ13 합의[각주:3] /10ㆍ3 합의였[각주:4]. 이 합의들 모두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발목 잡힌 상황에서 북핵 폐기와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보여 주는 바는 이 합의들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것이다. 합의들을 먼저 어긴 건 언제나 미국 행정부였다. 우리가 결코 핵무장을 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볼 순 없지만, 북한의 핵개발 시도 자체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의 군사위협, 그리고 그 뒤 제네바 합의 위반[각주:5]의 산물이다.

9ㆍ19 공동성명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부 진보진영에게 고(故) 리영희 교수는 “합의문의 문구 자체는 우리가 바라던 바다. …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제적인 조약이나 합의를 지킨 사례가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로 미국은 휴전협정을 어기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맨 처음 그리고 몰래) 들여 온 당사자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도 마찬가지다. 경제 협력이 군사 경쟁을 막진 못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서유럽 국가들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가이며 교역량도 매우 큰 나라인데도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최대 수출/수입국인 중국이 됐는데도 연평도 훈련 문제 등으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남북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협력해 운영해 왔지만 군사 갈등을 막지 못했다.

6·15정상회담 2년 뒤 벌어진 서해 교전도 한 사례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을 하며 서해에선 1차(1998)보다 더 격렬하게 해상 전투를 벌인 것이다.

긴장의 주범인 강대국들이나 그 위계체제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해 움직이길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2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은 수렁에 빠졌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군사적으로 아주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는 200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강력했던 국제 반전운동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강대국과 한국 정부(또는 북한 정부)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는 http://www.left21.com/article/8994

  1.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YMCA, 한국진보연대, 민변, 민주노총 등이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3가지 요구 사항으로 △남과 북, 주변국이 즉각 대화에 나서고 △한반도의 긴장 해소 방안으로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이행할 협의에 나서야 하며 △6자회담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를 제시했다. [본문으로]
  2. 9ㆍ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 회담의 종료 발언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경수로 건설을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동성명 채택 후에도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을 빌미로 대북 금융제재를 계속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고,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지만 역시 이행하지 않았다.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6202 [본문으로]
  3. 상세 해설은 http://www.left21.com/article/3873 를 보라. [본문으로]
  4.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실행조치 합의 같은 것인데, 2단계로서 2007년 같은 해 10·3 합의가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가 그다지 진전 있는 합의라고 보기엔 과거 합의의 재탕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북한이 소련 붕괴 후 위협 속에서 핵개발에 기대려 했다가 미국의 침략전쟁 직전까지 갔던 게 1994년 위기다. 김일성 사망 후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지만 미국은 북한의 원자로 폐기를 대가로 주기로 한 중유를 약속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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