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진보평론》의 청탁을 받아 지난 2월에 작성해 3월에 발표된 글입니다. 블로그 업데이트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한진텐진호 피랍 소식을 듣고서 올립니다. 함대로는 해적을 없앨 수 없다는 제 주장이 옳았다는 또 한 사례가 생긴 것입니다. 무사히 구출된 것에 안도합니다.


소말리아 해적 사태, 좌파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
《진보평론》 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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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성공하자, 기성 언론은 찬양 일색의 기사로 며칠간 도배됐다. <한겨레>조차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상황에서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 이명박과 우파들은 이 작전의 성공을 자신들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작전이 성공하자마자 이명박은 대국민 담화를 자청해 자신이 직접 지시한 작전이라며 “완벽한 작전 수행”을 자화자찬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추천 인물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침울해 있던 상황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이 작전 성공을 레임덕 탈출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

한술 더 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전력증강 계획을 앞당겨 해군 함정을 확충해 군함을 추가 파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각주:1]고 주장했다. 심지어 본거지 소탕론도 나온다. 이참에 국제적 군비 경쟁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뛰어 들자는 것이다. 해군은 이에 구축함이 부족해 그럴 수 없다고 볼멘소리로 화답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한국 해군에게 총격을 당한 것이 밝혀지면서 “아덴만 마케팅”은 뜸해졌다. 하지만, 애국주의를 앞세운 한국 지배자들의 군사적 세계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파들의 논리에 맞서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러려면 도대체 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보 해적들 때문에 주요 열강들이 모두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안에 막강한 함대들을 파견했는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소말리아에서 왜 해적이 나타났는지, 왜 유엔은 하고많은 해적 사건 발생 지역 가운데 유독 소말리아에만 다국적 함대의 파견을 결의했는지, 한국은 왜 청해부대를 보냈는지 등을 설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세계, 즉 20세기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 체제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제국주의 질서
 
제국주의는 개별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이 세계시장으로 번지면서 이 경쟁이 국가 간 군사적 경쟁으로 발전한 세계자본주의의 한 단계를 가리킨다. 레닌은 이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경쟁이 낳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 경향은 일국 안에서 독점자본의 등장과 국가와 자본의 융합 경향으로 드러나고, 국제 차원에서는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들을 등에 업은 초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지배하는 서열 체계로 발전한다. 자본 간 협력과 경쟁이 일국의 틀을 넘어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 발전하면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전략적(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중요해지고, 군사적 경쟁이 주요한 경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러시아 혁명가 부하린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사이의 투쟁이 무엇보다도 군사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는 군사력이야말로 서로 투쟁하는 ‘국민적’ 자본가 집단들의 최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최후 수단이 모든 수단인 것은 아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강대국들 사이의 군사·경제적 경쟁이 양대 초강대국 간 경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냉전 질서가 해체되면서 오히려 세계는 다극화된 강대국들의 경쟁이라는 현실로 변했다.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 최강대국이지만, 더는 냉전 질서를 주도하던 그런 경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냉전이 시작될 때 미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냉전이 끝날 때는 세계경제의 4분의 1로 하락해 있었고, 지금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제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세계를 향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제력은 한층 약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여전히 유일 강대국이지만, 상대적인 경제 비중의 하락 때문에 경쟁자들이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바로 아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점차 자신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해 간다는 뜻이기도 하며, 한국 같은 하위 파트너들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의 제국 유지 전략의 기본은 이제 월등한 군사력을 이용해 제국주의 질서를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다만, 상시적 적대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의 상시적 군사 드라이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들이 필요했다. 클린턴 정부는 이를 위해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해 냈고, 이 바탕 위에서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했다.

공교롭게도 소말리아는 미국이 냉전 이후 ‘인도주의적 개입’을 제국주의 침략의 명분으로 내세운 첫째 사례였다. 그러나 이 개입은 실패했고, 미국은 10년 동안 50만 명을 죽게 만든 이라크 경제 봉쇄와 1999년의 나토를 동원한 세르비아 공격으로 위신을 되찾았다.

뒤이어 등장한 부시 정부와 네오콘은 더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세계 석유 생산의 중심지인 중동의 ‘불량국가’들을 군사적 패권 과시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2001년 9·11 사태는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이었고 당시 부시 행정부는 거침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군사적 침략의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결과는 지금 보듯이 악몽이다. 이라크를 점령해 신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고, 고립시키려던 이란의 영향력을 오히려 확대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제 베트남 때보다 더 긴 전쟁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는 이처럼 중동에서 실패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의 일부에 포함된 곳이고, 미국의 독점적 중동 지배가 실패한 틈을 타 기타 강대국들이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곳이기도 하다.

 
 강대국들의 군사력 경연장

 
소말리아 앞바다인 아덴만은 수에즈운하를 통해 지중해(유럽)와 인도양을 잇는 길목이다. 세계 석유의 4분의 1이 이곳을 통과하며, 한국의 수출입 물량 29퍼센트도 이곳을 지난다. 소말리아는 좁은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미국이 ‘실패한 국가’로 그리고 알카에다 본거지로 지목한 예멘과 마주 보고 있다.

소말리아 동쪽 해안은 인도양에 접해 있다. 인도양은 수에즈운하와 아덴만을 통과하는 동아시아 무역 선박들의 핵심 항로다. 또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빠져 나오는 천연가스 송유관의 끝지점이다.

인도를 부추겨 중국 포위 라인을 만들어 온 미국은 인도양에서도 패권 전략을 추구해야 할 처지다. 미국은 지부티에 있는 제5함대 사령부 산하에 연합함대(CTF-150)를 꾸려 2002년부터 아덴만과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대테러 작전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중요성은 미국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막대한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이나 일본에게도 아덴만과 인도양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바다가 됐다. 중국은 아덴만에 함대를 파견해 패권 경쟁에 합류했고,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 인도양에 함대를 파견해 오래도록 머물고 있다.

20세기 전반부까지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남부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나 소말리아 북부를 나눠먹기 했던 영국과 프랑스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고 함대를 파견했다. 지금은 지역 강대국으로 위상이 약화됐지만 여전히 그루지아 등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러시아도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다. 지역 강국인 인도에게 인도양은 미국과 동맹이라는 이해관계와 더불어 대륙을 통해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할 자신들의 앞바다다.

이처럼 이들 국가의 지배자들은 단순히 다국적 기업과 석유 자원의 해상 교역로 보호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소말리아 앞바다는 지금 미국과 그 파트너 강대국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벌이는 군사력 과시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서해에서 북한과 군사적 긴장을 일으키며 해군 전력의 강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가 군사적 무리를 해 가면서 이 지역에 함대를 파견한 목표를 이해할 수 있다. 무역 대국이자 석유 수입국인 한국에게도 소말리아 앞바다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며, 이곳을 통제하려는 군사적 협력과 경쟁에 자신들도 한발 걸쳐야 국제 질서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청해부대는 이번 작전 이전에 이미 열네 차례나 해외 선박을 구출하는 군사 작전을 펼쳤다.

 
유엔의 위선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유엔의 위선도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협력과 경쟁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해적 행위가 소말리아 해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해적 행위의 거의 절반이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해역에서 벌어졌다. 말라카 해협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핵심 교역로다. 한국은 아덴만보다 더 많은 무역 선박 40퍼센트가 이 해협을 지난다.

이 때문에 한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이 ‘아시아해적퇴치협정’을 맺고 관련 조처들을 취해 왔다. 그러나 친서방 국가들이 통제하는 이 해역에 유엔이 함대 파견을 결의했다는 말도, 중무장한 강대국들의 함대가 출동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유엔은 2008년 6월에 아덴만 함대 파견을 결의했는데, 그해 상반기에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선 해적 행위가 겨우 24건이 보고됐을 뿐이다.[각주:2] 이는 아프리카의 서쪽 바다인 나이지리아 해안이나 말라카 해협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였다.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행위가 급증한 것은 오히려 강대국들이 함대를 파견하고 미군 제5함대가 2009년 1월 대해적 작전을 명분으로 새로 구성한 연합함대(CTF-151)가 본격 활동을 시작한 2009년 상반기였다.

2009년을 통틀어 보면 이 지역에서 해적 행위는 두 배로 증가했고, 이제는 전 세계 해적행위의 절반이 이곳에서 벌어진다. 납치 건수는 지난해까지도 꾸준히 늘어왔다. “국제해사국(IMB) 등에 따르면……연도별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전체 선박은 2008년 42척, 2009년 47척, 2010년 62척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각주:3] 강대국 함대의 감시로 해적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도 인도양 5백마일 지점까지 늘어났다.

강대국 함대 파견 후에 오히려 해적 행위가 늘었다는 것은 두 가지를 말해 주는데, 하나는 소말리아처럼 제국주의의 개입이 불러온 사회·경제적 붕괴 때문에 생겨난 해적을 군사적 통제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강대국 함대들이 이곳 바다에 온 진정한 목표가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이다.

청해부대 실적을 봐도 ‘자국 선박 안전’이라는 말이 무색한데, 실제로 청해부대는 파병 후 한국 선박보다 갑절이나 많은 해외 선박을 호송했다. 한국 선박 가운데 직접 호송한 비율은 13퍼센트에 그친다. 한국 정부는 올 1월말에 인도 해군과 한국 선박 보호를 협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구축함의 교대 기간이 거의 두 달이나 돼 호송 공백기가 크다는 이유에서인데, 청해부대의 호송 작전이 큰 실효성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엔과 강대국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목표하지도 않은 것, 따라서 가능하지도 않은 것을 정치적 수사로 앞세워 자신들의 군사적 협력과 경쟁을 정당화하며 대중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망쳐 놓은 소말리아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한 국가들의 목표가 추악하고, 미국이 소말리아를 망쳤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범죄인 해적 행위는 눈감아 줄 수 없는 것 아닌가, 무고한 기업과 선원의 피해를 두고만 볼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답하려면 우선 소말리아 안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소말리아는 18세기까지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나라다. 소말리아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의 침략 때부터다. 이들은 소말리아를 삼등분하고, 서로 점령지를 확대하는 전투를 벌였다. 비교적 단일 민족 중심 국가에 속하고 단일 언어를 쓰는 소말리아 내전의 뿌리는 이때부터 싹텄다고 볼 수 있다.

2차대전 후 독립 때까지 유엔의 개입이라고는 영국이 뺏은 이탈리아의 점령지를 이탈리아에게 돌려주는 결정뿐이었다. 독립을 위한 투쟁은 온전히 소말리아 민중의 몫이었다. 1960년 마침내 소말리아는 해방됐다.

그러나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바레 정부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에티오피아를 침략하자 미국은 바레 정부를 지원했다. 미국은 군사적 원조를 제공했고 바레 정부는 미군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했다. 바레 정부는 또다시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무모한 전쟁의 결과, 경제가 엉망이 됐고, 국가는 분열했다. 빈곤과 내전이 1980년대에 시작됐고 1991년 바레 정부는 붕괴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서방 국가들은 소말리아 영해까지 들어와 참치와 새우 등을 싹쓸이하며 불법 어획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버렸다. 지금 소말리아 해역에서 치안을 유지하겠다고 함대를 보낸 어느 나라도 이런 행태를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인도적 재난에 대응하려는 국제구호단체들이 무수히 소말리아로 들어갔지만, 이들의 활동은 도움이 되질 못했다. 이들이 유럽의 잉여 농산물을 가져와 소말리아에 풀어 놓자 소말리아의 소농들이 몰락했다. 온갖 구호 단체 활동가들이 사무실과 주택을 구하는 통에 수도 모가디슈 등 주요 도시에선 집값이 뛰었다. 농업 자생력의 붕괴와 도시 물가 상승이 국제 원조의 대가였다.

도시와 바다에서 모두 생계 수단을 빼앗긴 어민과 빈민층 청년이 자구책으로 불법 폐기물선이나 불법 어획선을 잡아 일종의 ‘조업세’를 받은 것이 이른바 소말리아 ‘해적’의 시작이다.

아버지 부시의 1992년 소말리아 침략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소말리아 민중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국제구호단체를 보호하겠다고 1992년말 미국이 소말리아에 총을 들고 들어왔을 때 당연히 환영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파병 명분은 구호 식량의 안전하고 적절한 배분이었다. 내전 등으로 벌어진 인도적 재난을 해결할 구호 식량 배급이 이 식량을 탈취하려는 각 군벌들 때문에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 군사 개입은 옥스팜 등 국제 구호 단체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호 식량을 빼앗으려는 내전 분파들과 싸우겠다는 것은 결국 식량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전투부대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현지 말도 모르고 현지 문화도 존중할 줄 모르는 외국군대였다. “희망 회복”이란 이름으로 들어간 미군이 소말리아 민간인들과 충돌해 수천 명이나 학살하며 절망을 되살린 것은 필연이었다.

결국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 최정예 공격형 헬기인 블랙호크가 두 대나 추락하고 미군 18명이 죽었다. 분노한 소말리아인들이 미군의 시체를 짚차에 매달아 시내를 행진하는 장면이 CNN에 생중계됐다. 결국 충격과 모욕 속에서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철수했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지던 2006년 소말리아에서 이슬람 정부가 등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군도 실패한 내전 종식이 민중 다수의 지지를 받은 이슬람법정연맹의 집권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이슬람법정연맹은 1991년 내전 발생 후 나타난 이슬람주의 단체인데, 원래 중앙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질서를 유지할 지역 법정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북부를 기반으로 교육과 복지를 제공하고 무장력을 갖춘 사실상의 국가 기구로 발전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아라비아 반도와 대면한 소말리아에서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슬람 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미국의 전략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다급해진 미국은 에티오피아 군사 정권에게 무기를 지원하며 소말리아를 침략하도록 사주했다. 이슬람법정연맹이 테러 단체라는 상투적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결국 이슬람법정연맹은 집권 여섯 달 만에 수도 모가디슈에서 철수했고, 에티오피아 군대는 과도 정부를 세웠다. 이 기간에 무수한 학살이 벌어졌다. 내전과 침략의 결과, 수백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에티오피아 군대가 정규군 간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모가디슈 점령 후 재개된 게릴라전까지 제압할 순 없었다. 미군은 주기적 폭격 등으로 에티오피아를 응원했지만, 미군이 이라크에서 당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10만여 명 규모의 에티오피아의 침략군으로는 소말리아를 평정하고 제압할 수 없었다.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유수프 과도 정부도 통제력을 확보할 수 없었고 에티오피아는 결국 2008년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을 결정한다.

공교롭게도 에티오피아가 철군 협상을 하는 시점에 유엔은 소말리아 해적을 핑계로 유엔 각국이 소말리아 해역에 함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2008년 유엔은 아홉 차례나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한 함대 파견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해 12월에는 영해는 물론 해적 본거지 소탕을 위한 내륙 침입까지 허용했다. 에티오피아가 2009년 1월에 완전 철군을 하던 때, 소말리아 해역 관리를 맡아 대 해적 작전을 수행한다는 미 해군 산하 연합함대 CTF-151이 창설된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일정은 다국적 함대의 파견 이유로 삼은 ‘해적 소탕’은 진짜 파병 목표에서 매우 적은 비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소말리아의 파탄 자체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테러와의 전쟁' 등 무력으로 세계 석유 자원의 통제권을 쥐고 세계 질서를 좌우하려는―즉 제국 유지 전략에서 나온 것이며, 소말리아 파병은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청해부대를 보낸 이유

 
청해부대는 2009년 3월 한국을 떠났다. 집권 초부터 “성숙한 세계국가”, “글로벌 코리아”, “중견국가의 국격”을 외쳐 온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유엔의 소말리아 해역 함대 파견 결의안을 핑계 삼아 청해부대 파병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국민의 안전”이라는 명분도 중요하게 내세웠다. 그때 이미 동원호부터 시작해 한국 선박이 여러 척 납치되었던 탓에 국내에서 반대는 크지 않았다.

미군은 2009년 1월 같은 해역에서 미군 제5함대의 연합해군사령부 지휘 아래 ‘대 해적 작전’을 전담할 CTF-151을 창설했고, 청해부대는 여기에 배속됐다. 청해부대는 한국에 여섯 척밖에 없는 4천5백 톤급 구축함 가운데 한 대를 상주시키며 열과 성을 다해 연합 함대 CTF-151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사실 아덴만과 아라비아반도의 인도양 면에서 대 테러 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CTF-150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CTF-150은 2002년 창설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내세운 “항구적 자유 작전”을 소말리아 해역에서 수행하는 연합 함대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참가하고 있다.

<시사인>은 2008년 11월에 해군 역사학자 킷 보너를 인용해 “CTF-150은 세계에서 가장중요하고도 가장 강력한 해군 조직”이며 한국 정부와 해군은 이 함대에 포함되고 싶어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각주:4]  정확하게 “항구적 자유 작전-아프리카의 뿔”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전은 해상에서 테러 의심 선박의 수색과 추적 등의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샘물교회 신도들 납치 사건 등 역풍을 맞으며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08년에 철수한 바 있다. 청해부대 파병으로, 2007년 말 아프가니스탄의 “항구적 자유 작전”에서 철수한 한국이 대신 또 다른 “항구적 자유 작전”에 참가한 격이 된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지역재건팀(PRT)과 오쉬노부대를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파병했다. 이들은 2008년 말 이라크에 파병한 자이툰부대의 철수에 대한 보상 성격이 있는 듯하다.

이런 사례를 볼 때, 한국 정부와 군이 청해부대를 보내는 목표 자체가 애초부터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계속해서 동참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같은 사령부와 같은 해역에서 별도 함대를 구성한 것은 교역로 안전 확보 임무를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뿐 아니라 파병 국가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CTF-151에는 미국의 중동 침략 전쟁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도 국내 사정 탓에 직접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두 나라, 터키와 한국이 배속됐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의 군사적 세계화


한국 지배자들이 이처럼 해외 파병에 열성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달라진 경제적 위상을 군사적으로 과시해 세계자본주의 질서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과 서열을 높이고 독자적인 전략적 이해관계를 확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강화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통해 미국의 우산 아래서 안정적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군사동맹을 보장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획득한 영향력을 이용해 중간 강자 구실을 하며 고유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미국과 껄끄러운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해 리튬 개발권을 확보하려  한 것도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 지배계급 일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론을 펴기 시작했고 그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잠시 부각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다국적기업이고, 한국의 경제 규모는 10위권까지 도달했다. 지난해에는 수출이 세계 7위로 올라섰다.

노무현 정부는 “선진통상국가”를 내세우며 해외 파병과 FTA 정책을 임기 내내 추진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군 전력을 강화하는 ‘국방개혁 2020’을 채택한 정부도 노무현 정부다.

군부는 2000년대부터 “연안해군”을 벗어나 “대양 해군”으로 나가자고 외쳐왔다.

청해부대에 파견 갔던 4천5백톤 급 구축함 6척, 그리고 해군의 핵심 전력인 7천 톤급 이지스함 두 척이 모두 ‘국방개혁2020’의 산물이다.[각주:5] 이지스함 한 척에 1조 원, 구축함 한 척에 4천억 원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한국 지배자들의 세계화 전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전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갈 정도로 증오했던 이 정부는 파병과 FTA 정책을 성실히 계승했다. 비록 “어륀지”라는 유행어를 낳은 ‘영어몰입교육’ 같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명박이 내세운 “성숙한 세계국가”는 한편에서는 공적 개발 원조(ODA) 액수를 늘리고 G20 같은 국제회의를 개최하며 개발도상국의 리더를 자임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편에서는 군사적 해외 진출을 늘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은 지난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개최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나라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매우 커졌습니다.”[각주:6]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금 이라크에서는 철군했지만,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소말리아, 아이티, UAE 등 미국의 패권적 군사 개입, 즉 ‘테러와의 전쟁’에 파병으로 늘 군사적 지원을 해 왔다. 또 지난해 10월 이명박 정부는 방위산업을 수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해 2020년까지 세계 7대 무기 수출국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이명박은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라고 이 계획을 독려했다.

전임 국방장관 김태영은 2010년 초에 2009년도 성과를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해부대의 파병,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정식 참여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보일 수가 있었습니다.”[각주:7] 당시 국방부가 내세운 슬로건 가운데는 “성숙한 세계국가를 구현하는 다기능고효율의 정예강군 육성”이 들어가 있었다. 비록 천안함 사건으로 오히려 체면을 구겼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계경제 위기는 한국 지배자들의 이런 군사적 세계화 전략에 차질을 주고 있다. 이미 ‘국방개혁 2020’ 자체가 예산 부족으로 애초 군부가 요구한 것을 모두 담지 못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하반기 이후 국방예산을 군부의 요구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 늘어나는 적자 때문에 균형예산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예산에서 청해부대 예산을 지난해보다 깎은 당사자가 바로 이명박 정부였다.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부의 ‘아덴만 마케팅’에 핀잔을 주며 해군력 증강과 파병규모 확대를 주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국방비 절대 규모는 늘렸다. 또 지난해에는 철군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전투병력(오쉬노부대)을 보냈고, 아이티에는 PKO(유엔평화유지활동) 형식으로 파병했으며, 미국의 이란 압박에서 전초기지 구실을 하는 UAE에는 군사협력 명목으로 특전사(아크부대)를 보냈다. 이명박 정부의 청해부대 예산 삭감이 결코 해외 파병 정책의 축소나 ‘국방보다 삽질’이 더 중요해서가 아닌 것이다.


이번 아덴만 작전 성공 뒤 <조선일보>가 추가 파병을 주장하는 것은 작전 성공이 가져다 준 환호를 이용해 군비 확장에 다시 나서자고 의도하는 것이다. 복지 확대 압박에 맞서면서 지배계급의 전략을 추진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실 한국 정부에게 “국민의 안전”은 ‘사람’의 안전이 아니라 ‘선박’의 안전 즉 ‘기업 이익’의 안전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선주이고 무역 선박인 삼호주얼리호와 이들과 비교하면 영세한 어선 격인 금미305호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도 이런 시각은 잘 드러난다. 결국, 한국 지배자들의 ‘국격’은 한국 자본가계급의 격과 위상, 이익을 뜻한 셈이다.

따라서 좌파가 ‘아덴만 마케팅’에 맞서서 해야 할 말은 분명했다.

청해부대 파병의 친제국주의적 본질을 폭로하고 소말리아 해적은 그 본질을 감추려는 핑계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이명박과 우파들의 진정한 목표에 맞서야 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많은 진보세력이 제 때에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무리한 작전이 위험했다는 것과 엠바고를 깼다고 정부 출입기자단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마이너 언론들의 문제만 제기했을 뿐이다. 이는 이 당이 2009년에 취한 입장보다 후퇴한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소말리아 아덴만으로 청해부대[1진]가 출발하자 예멘에서 한국인 4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며 여러 친제국주의 파병에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최악은 진보신당이었는데, 심재옥 대변인은 “해군 선박의 추가 배치 등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논평을 낸 우파들의 애국주의 공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 파병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해 왔던 두 진보정당의 이런 온건하고 체제 타협적인 모습은 최근의 민주대연합 논의 속에서 이 당들이 어느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조차 지난해 11월 2011년 정부 예산안을 다룬 리포트에서 청해부대 예산 삭감과 철군을 주장한 바 있다.

“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파병은 사실상 해적 예방이라기보다는 소말리아와 아덴만에서 대테러전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동참하는 것임. 또한 삼호 드림호, 금미호 피랍사태는 소말리아의 빈곤과 내전을 해결하기 전에는 군대를 파병한다고 해서 해적들을 근절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음. 청해부대는 철수하고 관련예산도 삭감되어야 함.”[각주:8]
 

반(反)제국주의 관점의 중요성


이명박은 설날 대통령 좌담회에서 “일년에 [국방비] 30조원을 쓰는데 10조만 줄여도 교육비, 복지비로 쓸 수 있다”고 실토했는데, 최근 복지국가 논쟁과 관련해서도 ‘아덴만 마케팅’과 이를 등에 업은 군비 확대 주장은 좌파가 분명히 비판했어야 하는 대목인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좌파들은 제국주의를 경제적 세계화로만 이해해 지정학적 갈등에서 파생하는 문제들, 한반도 긴장과 파병 등의 쟁점에 소홀한 모습을 보여 왔다. FTA 반대에 쏟는 열의와 비교해보면 이런 쟁점들에 대해 얼마나 소홀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일국적 시야의 협소함도 아쉽다. 주요 진보매체와 진보단체들이 ‘아덴만 마케팅’의 국내 정치적 효과만 바라보다가 애국주의 선동에 오히려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한 것이 증거다.

그러나 “아멘만의 여명” 작전은 이명박의 레임덕 탈출 시도만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다. 무모한 작전이서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정권 차원의 의도와 더불어 한국 지배자들 전반의 소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강경한 군사작전의 근원적 배경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으로 망가진 군사적 위신을 회복하려는 군부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아덴만 마케팅’은 작전명과 달리 동이 채 트기 전에 파탄 나는 듯하다. 이명박이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던 석해균 선장이 사실은 한국 해군의 총에 맞았고, 금미305호는 몸값 지불 의혹을 받고 있으며 금미호 기관장은 의문의 추락사를 했다.

이제 좌파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

여전히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철군해야 한다는 주장은 중요하다.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자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더 키우는 것이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의 해적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이곳에서도 ‘만악의 근원’은 제국주의의 지배 전략과 군사 개입이다.

지금 소말리아를 망친 것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고,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동맹국 가운데 하나다. 자국의 불법 어선은 눈감아 왔던 서방 국가들이 자국 어선을 보호하겠다며 중무장한 함대를 파견하는 것을 보면 과연 소말리아 해역에서 누가 진짜 ‘해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번 “아덴만의 여명” 작전의 전과를 자랑하는 것조차 우습다. 최신 무기로 중무장한 구축함 함대가 보유한 인적?물적 전력을 거의 풀가동해 겨우 뒷골목 갱단 수준의 해적들을 제압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군사력 과시겠는가.

소말리아에 대한 제국주의 개입을 중단하고 이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이 망쳐 놓은 나라에서 번지는 빈곤과 절망 때문에 생겨난 해적을 강대국의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점차 기업화·조직화해가는 해적 조직들은 소말리아 내부의 무장 저항 세력들과 연계하거나 그 자체로 군사조직화할 수도 있다. 어차피 마피아도 출발은 동네 깡패로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선박 납치와 몸값 요구가 아니라 함대를 파견한 나라의 군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살상 공격과 인질 살해가 생겨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인 제국주의 체제가 세계를 불안정하고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은 소말리아의 해안에서도 진실이다.

소말리아 민중은 1950년대 독립 투쟁에서 훌륭한 역량을 보여 준 바 있다. 2006년에도 소말리아 민중은 다수의 지지로 사실상 내전을 끝냈다. 사실 이때까지도 소말리아 인근 해역의 해적 행위는 다른 해역과 비교해 전혀 두드러지지 않았다.

“소말리아를 소말리아 민중에게”가 좌파의 구호가 돼야 한다.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며 침략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혁명을 일으킨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피어나고 있다.

좌파가 시야를 세계자본주의로 넓혀 국제주의 시각을 갖추고 세계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 체제의 경제적·군사적 경쟁 체제의 본질과 약점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번 소말리아 사건에서 드러난 무기력한 태도를 벗어날 수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앞으로도 군비 확대 시도나 추가 파병 등 ‘군사적 세계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경제의 심장부에서 터진 위기가 여전히 체제를 위협하는 가운데, 고통 전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이뤄질 수도 있다.

한국 지배자들이 소제국주의로 점차 나아가는 지금, 한국 좌파들이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한국 지배자들의 애국주의 선동과 군비 강화 시도에 맞서 싸우려면 앞으로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 체제의 구체적 동학을 이해하고, 급진적 국제주의 관점에서 개입할 계기를 명민하게 포착해야 한다.


(작성: 2011.2.18, 발행: 2011.3.9 《진보평론》47호[2011년 봄호])




  1. 조선일보 1월 25일자 사설. [본문으로]
  2. 이하 국제상공회의소의 국제해사국이 낸 통계를 인용한 국토해양의 해사안전정책관실의 자료들 참조. [본문으로]
  3. 동아일보 2011년 1월 17일, “납치 느는데 청해부대 예산은 되레 축소” [본문으로]
  4. 시사인 60호, ‘해적과의 전쟁이냐, 테러와의 전쟁이냐’" [본문으로]
  5. 구축함과 이지스함 건조는 KDX 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현재 세 번째 이지스함이 건조돼 진수식을 기다리고 있다. [본문으로]
  6. 제51차 대통령 라디오연설.(2010년 11월 1일) [본문으로]
  7. 한국국방연구원이 2010년 2월 9일 주최한 국방발전 심포지엄 "국방저책: 이명박 정부 2년의 성과와 향후 방향"에서. [본문으로]
  8. 전문은 http://blog.peoplepower21.org/Peace/31156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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