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여야 밀실 합의 이후

박근혜의 ‘노동개혁’ 강공을 막아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3호 | 발행 2015-12-09 | 입력 2015-12-09



12월 7일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과 원내대표 원유철을 청와대로 불러 개악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재촉했다.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 법안들 ... 손도 못 대고 계속 걱정만 한다. 한숨만 쉬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느냐”, “내년에 ...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늦어지면 [경제가] 다 죽[는다] ... 죽기 전에 치료도 하고 빨리빨리 살려 놔야지.”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법 등 즉시 통과시키려는 법안들이 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기업 살리기’를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특히 고통전가를 위한 노동 개악 입법화에 기업주와 정부, 여당이 얼마나 목매고 있는지 보여 준다. 한국 경제 상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기업살리기’ 법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테러방지법도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테러방지법조차 없는 게 전 세계에 알려지면 얼마나 테러를 감행하기 만만한 나라가 되겠는가.” “혼이 비정상”인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이지만, 집회에 참가해 마스크를 썼다고 시위대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강조하는 것은 이 법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단속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박근혜는 경제 위기가 본격적으로 깊어지는 국면에서 이에 대한 저항을 막으려고 친기업·반노동 악법을 제정하고 억압 조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중총궐기 살인 진압과 이후 민주노총에 대한 집중 탄압의 배경이다.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를 포함한 8개 노조 사무실 동시 압수수색, 위원장 등 조합원에 대한 구속과 체포영장 남발, 독재정권 때나 쓰던 형법상 소요죄를 끄집어내 민주노총을 폭동단체로 몰아 가기 등. 


강공


이런 강경 탄압은 살인 진압 면피용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전에 기선을 제압해 ‘노동개혁’에 맞선 민주노총 파업을 약화시키하려는 술책들이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조직 보존주의를 자극해 그 일부가 투쟁을 회피하도록 만들고, 이를 이용해 전열을 흐트러뜨릴 속셈일 테다.


박근혜 정권은 흔히 그랬듯이 12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 금지, 참가자 전원 검거, 복면 착용시 가중 구형 등 혹독한 탄압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런 강경수가 뜻대로 관철된 것은 아니다.


행정법원은 집회를 허용했고, 총궐기 당일에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청소년들까지 5만 명(주최측 추산)이 참가해 도심을 행진했다. 이들은 노동 개악 중단,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살인 진압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 등을 요구했다. 정부가 강경하게 탄압했음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저항한 것이다.


사실 여당의 계산으로는,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표단을 불러 압박한 법안 상당수가 12월 2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어야 했다. 애초에 지역 예산과 연계해 이끌어낸 그 밀실 합의의 목적이 박근혜 귀국 전에 개악 법안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합의 목록 중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만이 통과됐고 나머지는 미처리 상태로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게 됐다.


최고 통치자의 통치스타일이 유신 스타일이라고 해서 유신 체제가 그리 쉽게 돌아오는 건 아니다. 지난 1년만 해도 비록 노동운동이 많은 투쟁에서 차질을 빚었지만,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도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물론 심각한 경제 상황 때문에 박근혜가 12월 ‘노동개혁’ 공세를 매우 강도 높게 밀어붙이겠지만, 결과가 예정돼 있지는 않다. 민주노총이 ‘노동개혁’ 법안심사가 재개될 시 즉시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총파업에 돌입해 파업을 지속한다면 박근혜의 강경수에 차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와 새정치연합의 부당 거래


새누리당은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려고,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에서 총선용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는 새정치연합의 요구를 들어 줬다. 이미 예산 “증액 심사는 … 밀실 흥정으로 전락 ...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 거대 양당과 정부의 ‘잇속 챙기기’ 부당 거래로 변질되고 있[었]다.”(국회 예결위원이기도 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의 11월 27일 브리핑)


그래서 새누리당이 개악 법안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예산 수정 논의를 모두 폐기하겠다고 협박했을 때, 새정치연합이 12월 2일 원내대표 간 밀실 합의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뀐 국회법은 정부 예산안이 의결 시한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결국 총 3조 5천억 원이 ‘선거용’ 예산으로 자리바꿈했다. 그 대가로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통과됐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노동 개혁” 법안 등도 통과될 위험이 커졌다.



새정치연합의 뻔뻔함은 그 당의 계급적 본질에서 비롯


여야 간 기막힌 밀실 합의로, 박근혜가 취임 후 여러 정치 위기 속에서도 거듭 위기를 넘겨 온 비결 하나가 다시 드러났다. 바로 새정치연합의 구실이다. 


12월 1일 민주노총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당대표 문재인은 노동 개악 5법 반대가 당론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원내대표가 이를 뒤집어 버렸다.


문재인은 12월 6일 국회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관련 개악은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했다. 노동 개악 ‘5법 반대’에서 말이 또 바뀐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감청과 금융정보 뒤지기를 손쉽게 하는 문제만 막으면 통과에 협조하겠다고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부패가 정쟁 차원에서 들춰질 것만 두려운 것이다.


이 당이 근본에서 (비주류일지라도) 기업주들에 기반을 둔 당이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개혁’에 찬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당은 “노동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청년들과 나라의 미래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는 박근혜의 기만성 협박을 이겨 낼 수 없다.


물론 새누리당보다는 지배계급 내 지위와 기반이 부차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 약점을 만회하려고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가끔 노동자·민중 운동의 힘도 조금은 빌려야 한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이 특정 쟁점에서 일시적으로 (선거적 반사이익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충돌할 수는 있지만,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편들 수는 없다.


그나마도 경제·안보 위기, 총선·대선 주도권 다툼, 지배계급과 포퓰리즘적 기반 사이의 모순된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내분에 휩싸여 있다.



새정치연합이 ‘노동개혁’을 막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11월 하순에 새정치연합을 믿고 12월초 ‘노동개혁’ 저지 총파업 투쟁을 철회한 것은 실수다. 다른 악법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태도가 박근혜에게 강경수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계기 중 하나인 듯하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새정치연합이 개악을 막아 주리라고 바라는 것은 요행수를 앞세우는 것이거나 투쟁 회피주의일 뿐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는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대안과 확신 대신 불확실함과 의구심, 모호함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더는 새정치연합에 기대를 걸지 말고, 파업 투쟁 건설에 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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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백 일과 여야 특별법 제정

세월호 참사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다


<노동자 연대> 137호 | 발행 2014-11-10 | 입력 2014-11-08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기업주들의 이윤몰이보다 하찮게 여기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에서 비롯했다. 노동계급과 민중의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무시하는 체제의 수혜자들이 만들어 낸 미필적 고의의 살인인 것이다.


선주와 고위관료들의 눈에는 볼품없는 노동계급 자녀들의 사고에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이 낭비로 보였을 것이다. 골든타임에 구조의 능력도 의지도 발휘하지 않았던 이유다. 


어쩌면 골든타임을 놓친 뒤에는 불가항력의 사고로 위장해 참사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떠넘기려고 구조를 회피하고 방해했을런지도 모른다.


정부와 국회는 비용 절감과 이윤 확보를 위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해 기업들을 도왔다. 박근혜 정부에게는 사회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손톱 밑 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 생지옥이 펼쳐졌지만, 지옥문은 애초 뭍에서 열려 바다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어이없는 대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당연한 진상 규명 요구가 지배자들의 그토록 야비한 반감과 방해에 부딪힌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다. 이는 노동계급에게 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다. 


노동계급 자녀들이 대거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자 혹사와 천대 등은 부패한 지배자들이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다.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한 작업공정, 이윤 경쟁을 위한 실적 압박, 비용 절감을 위한 저임금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밤샘 노동, 심지어 지하시설 환풍구가 깔린 도보를 지나는 출퇴근 길 등 노동자 삶의 현장이 ‘세월호’다.


세월호 참사가 노동계급의 조직된 투쟁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투쟁은 체제의 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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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는 동전의 앞뒷면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기업들과 국가 기관(국정원 포함)들의 부패와 무책임도 드러날 것이다. 민영화, 규제 완화 등과 연관된 유착과 무책임성도 드러날 것이다. 구조 지휘 책임을 내팽개친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7월 30일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의 국면 전환에 올인해 왔다. 마치 유가족이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호도했다. 8월 26일 경제부총리 최경환, 29일 국무총리 정홍원 등이 나서서 경제 살리기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영산대 한성안 교수가 구체적 수치를 들어 반박했듯이, 세월호 참사와 경기 위축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민생’은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를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기업 이윤 등 부자들의 수익을 가리키는 기업주들과 그 정치인들의 코드명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안달하는 ‘민생’ 대책은 카지노와 영리 병원 허용, 크루즈산업 육성 등 기업주 돈벌이에 관한 것들뿐이다.


박근혜는 심지어 이번 일을 “재난재해 보험상품 개발 촉진 … 안전 산업 육성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안전’ 부문 민영화 등 재난을 본격적으로 상품화ㆍ시장화하자는 것이다. 8월 12일 내놓은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 민영화 등 이윤과 시장 지향적 정책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일부 원인들이었다. 참사를 낳은 지옥문을 더 크게 열어젖히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 상품만 많아지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도대체 보험 가입을 안 해서 애꿎은 목숨이 가라앉았다는 말인가.


이처럼 노동계급 자녀들 구조에는 관심도 없던 정부가 기업주들 구조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런 방향 전환을 위해 박근혜는 경찰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도 더 억압하려 한다. 박근혜는 지난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습격한 강신용을 새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그는 8월 25일 취임식에서 “도로 점거 [같은] …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우선순위


결국 세월호 참사 넉 달 반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은 전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다고 선언하며 지금의 야비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재ㆍ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겠다는 의도이다. 체제의 위기를 강조해 정치적 위기를 단속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제 살리기’ 기치는, 특히 박근혜가 “의회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부디 경제활성화와 국민안전, 민생안정을 위한 핵심 법안들을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한다]”고 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 내 자유주의ㆍ개혁주의 정치세력들 ―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의사와 의지가 없는 정치세력들 ― 을 겨냥한, 특히 ‘장외투쟁’을 겨냥한 압박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당연한 요구다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ㆍ기소권을 달라는 요구는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법안 자체는 사회 주류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이 함께 만든 것이다. 법학자 수백 명도 법리상으로든 사법제도상으로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회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 같은 경우가 오히려 흔치 않는 경우다. 검찰이 법무부장관 직속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소권 요구가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반대 논리는 정권의 보위가 걱정된다는 말의 가증스런 앞가림일 뿐이다.


권력과 자본의 외압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구성된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수사해서 문제라는 비난도 옳지 않다. 


새누리당은 ‘자력 구제 금지 원칙’을 운운하는데, 피해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에 따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고, 수사권과 기소권은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므로 유가족들의 요구는 자력 구제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자력 구제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학살당하던 민중이 국가권력을 봉기 등으로 심판하는 혁명적 자력 구제는 정당하다.)


오히려 (사고 원인의 일부인) 규제 완화와 구조 방기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하고, 조사 대상이 돼야 할 박근혜의 충복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수사 대상인) 피의자가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문명적인 야만이다.


결국 저들이 거부할수록 진실과 책임 규명의 알맹이가 통치자들의 부패와 무책임을 밝히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가 꼭 필요하고, 이 기구가 설립된 뒤에도 엄청난 방해 공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정권과의 (정치적인) 정면 대결을 감수할 태세를 갖춘,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조직 노동운동이 중추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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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에 이어 진상규명 책임도 방기하는 냉혹한 통치자들




사고 예방 안전 조처를 방기하고 구조도 방기해 애꿎은 목숨 수백여 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제 국가는 진상규명 책임마저 방기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많은 사람들은 지난 두 달여 동안 세월호 참사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쳐야 했다. 이윤 경쟁을 위한 비용 절감 노력이 어떻게 부패와 특권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지, 이 고리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해 위험으로 내모는지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 경쟁 체제와 그 체제의 수혜자들이 저지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었다. 물론 체제가 만들어 낸 필연적 사고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1년에 2천여 명이 죽는 산업재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될 수 있었고, 또 1년에 청소년 수백 명을 자살로 몰아가는 입시교육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이름도 된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 체제의 수호자들이 통치의 정당성을 해칠 진상 규명에 진심으로 협조할 리 없다. 부패에 물든 주류 정치인들은 체제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기업주나 국가관료들(‘관피아’) 못지 않게 두려워한다.


치부


유가족들의 국회 농성 끝에 6월 2일 출범한 국정조사특위가 한 달 가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런 점들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전국에 임시 반상회를 열고 생중계 체포 쇼까지 벌이며 세월호 참사 책임을 어떻게든 유병언 일가의 탐욕 문제로 한정하려 한다. 특히 새누리당은 정권 책임론으로 번질까 봐 어떻게든 실체적 진실 파헤치기를 방해하고 있다.


게다가 이 정부는 세월호 참사 책임만 피해가려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낳을 수 있는 의료 민영화, 철도 민영화 등을 강행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 예산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 소방 노동자들의 정당한 항의에 징계 협박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그 수혜자ㆍ수호자들이 우리를 계속 지배하는 한 노동계급에게 세월호 참사는 계속해서 진행형이다.



※ <노동자 연대> 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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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참사의 주요 책임자다

박근혜 퇴진 요구 정당하다




박근혜는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면서도 진짜 자기 책임은 모두 떠넘겼다.


박근혜는 “해경의 구조업무가 실패”라며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구조ㆍ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 …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경 조직 ‘해체’는 부분적으로 박근혜가 이미 한 일이었다. 올해 초 정부의 예산 삭감 지시로 ‘인명 구조, 수난구호명령, 선박 좌초ㆍ전복 대처’를 담당하던 지방 해양경찰청들 수색구조계가 없어졌다.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이고 있는 것도 박근혜 정부다. 올해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절반에서 방화두건 등 소방관 개인안전장비 예산을 줄였다. 중앙정부는 국비 지원을 회피했다.


박근혜는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박의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하게 해 감독 기능을 없앤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다. 선장의 선박 안전관리 보고 의무도 없앴다.


박근혜는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 …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업의 사익 추구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들을 “쳐부술 원수”라며 ‘전쟁을 벌이자’고 선동한 것이 바로 박근혜다. 바로 이 때문에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시행령이 유보된 사이에 전남 장성 요양병원의 참사가 일어났다.


박근혜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보상을 회피한 삼성을 감싸며,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공약을 저버렸다. 독재 장물이자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수장학회, 영남대재단 등에서 돈벌이를 위해 노조 탄압을 일삼아 온 것도 바로 박근혜다.


항의운동과 작업장 투쟁의 연결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최고위 통치자로서, 친기업 규제 완화의 주범으로서 박근혜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대상자다. 박근혜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박근혜는 대국민담화에서조차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고) ‘수색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국회에 찾아온 유가족들을 피해 숨기까지 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을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라는 요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러니 민간기구가 수사권을 가지고 성역 없이 조사하도록 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이런 점에서 주요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정권 퇴진 요구에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운동의 전진에 장애가 돼 왔다. 


그렇다고 ‘거국 내각 구성’이나 ‘대한민국 안전사고 노동자 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식으로 첨예한 쟁점을 피해 가는 것도 무기력해 보인다. 


박근혜가 유병언 일가를 속죄양 삼아 책임론을 피해 빠져나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실소유주 처벌’을 강조하는 것도 실속 없긴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박근혜에게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노동운동이 세월호 참사 항의 투쟁을 자극제 삼아 자신들 고유의 투쟁들(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반대, 작업장 안전 확보 등)을 연결시킨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KBS 노동자들처럼 말이다.



박근혜의 “국가 개조”는 신자유주의적 개조다



박근혜의 “국가 개조”는 오히려 반노동ㆍ친기업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들과 제도들, 인물들이야말로 참사를 재앙으로 만든 원흉인데도 말이다.


박근혜의 정책 기조는 이렇다.


첫째, 국가기관 불신 정서를 역이용해 공무원ㆍ공공부문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과 공공부문 ‘정상화’가 국가 개조 방향이라고 못 박았다.


이 계획들에 담긴 온갖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의 친기업 정책들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 낸 주요 요인들이다. 의료 민영화와 철도 민영화도 굳건히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공공 노동자들에 대한 칼날이기도 하다. 정부는 대국민담화 다음날 공무원연금을 20퍼센트나 깎는 개악안을 내놓고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둘째, 박근혜는 관료직 자체에 더 많은 전문경영인과 친기업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것이 박근혜가 ‘민관유착’(정경유착) 근절 대안으로 공직 개방을 하겠다는 것의 본뜻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대체로 기업)에서 공직으로 영입됐다가 본래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것(회전문 인사)을 누가 막겠는가. 이 ‘신형 관피아’야말로 정경유착의 합법화다. 이런 제도는 국가 운영에 친기업 원리를 더 많이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 아래서 삼성전자 사장 출신 진대제가 장관으로 임명돼 삼성 특혜 시비가 있었는데, 이런 인사를 국장, 과장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갈수록 분명해지는 ‘구조 방기 의혹’



국가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가 갈수록 또렷해진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이 사실상 잠수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다.


해경과 유착해 구조 작업을 독점한 언딘의 기술이사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구조가 아니라 배 인양을 위해 갔으며, 해경이 지시한 첫 잠수는 침몰 다음날(4월 17일) 오전이었다’고 밝혔다.


해체 방침으로 자기 방어가 힘든 해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언딘의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해경의 구조 방기는 다른 여러 증거들과 일치한다.


침몰 당시 45명을 구하고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한 진도 인근 어민 김현호 씨도 ‘해경이 구조 작업에 열의가 없었고 오히려 세월호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정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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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를 역이용해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조건 후퇴 추진하려 한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는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따른 계급 차별 문제가 있다.

이윤지상주의가 노동계급 사람들의 생명을 내팽개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의 최상위 통치자로서 박근혜는 책임전가로 일관해 왔다. 오히려 ‘이번 사고로 소비심리가 위축돼선 안 된다’며 기업주들 돈벌이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박근혜가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마음에도 없는 눈물을 짜냈다. ‘국민 검사’로 불리던 안대희를 새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국정원장 남재준 등을 교체하기로 했다.

계급적 분노가 정권 책임론으로 번져 대중적 저항으로 발전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뒤로는 경찰 탄압도 늘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을 연행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시신을 탈취하고 지도부를 구속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교사선언에 징계의 칼을 들이대고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다가 들켰다. 해경은 해체한다더니 육지경찰은 더 바빠만졌다.

박근혜가 밝힌 “국가 개조”도 기만이다. 국가 불신 정서를 역이용해 연금 삭감 등 애먼 하위직 공무원을 때려잡으려 한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 노동조건 후퇴 등을 알맹이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공공부문 ‘정상화’도 가속화하겠다고 한다. 이런 친기업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데도 말이다.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재취업을 규제한다는 것도 조삼모사다. 박근혜는 대신 관료직 자체에 더 많은 ‘민간’(사실상 기업 경영자들이나 친기업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겠다고 했다. 정경유착을 합법으로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가 개조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개조(구조조정)다. 이것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이윤지상주의를 국가 전반에서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자를 그대로 두고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운운할 수 있겠는가!) 

새 총리 내정자 안대희는 2003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수사 때 유독 박근혜만 무죄로 풀어 준 전력이 있다. 관피아 척결한다는 내각 개편에 법피아 전관예우로 특혜 받아 온 인물을 앞세운 것이야말로 국민 우롱이다.

대국민 담화 이후 국면을 전환하고 위기에서 빠져나가려는 박근혜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이미 박근혜 퇴진 투쟁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지금이야말로 박근혜 정부를 더 깊은 정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힘을 동원해야 할 때다.

 



속죄양 만들고 국면 전환?

그러나 박근혜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

 

박근혜는 말로는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면서도 진짜 책임은 철저히 외면했다.

박근혜는 “해경의 구조업무가 실패”라며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경의 구조 업무는 박근혜가 ‘해체’했다. 올해 초 정부의 예산 삭감 지시로 각 지방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가 없어졌다. 이 부서는 ‘인명 구조, 수난구호명령, 선박 좌초·전복 대처’ 등을 맡고 있었다. 현 정부야말로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여 왔다.

박근혜는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박의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하게 해 감독 기능을 없앤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다. 선장의 선박 안전관리 보고 의무도 없앴다.

박근혜는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 …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업의 사익 추구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들을 “쳐부술 원수”라며 ‘전쟁을 벌이자’고 선동한 것은 바로 박근혜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을 회피한 삼성을 감싸며,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공약을 저버린 것도 박근혜다. 독재 통치의 유산으로 차지한 정수장학회, 영남대재단 등에서 사익을 위해 노조 탄압을 일삼아 온 것도 바로 박근혜다.

 

기업 이윤도 분노의 대상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이윤지상주의 시스템이 정당하냐라는 사회적 물음이 제기됐다.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이윤을 우선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던진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 문제는 그동안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을 외쳐 온 노동자투쟁의 정당성과 보편성을 보여 줬다.

노동운동이 주력해 온 철도와 의료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작업장 안전 등은 모두 이윤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문제들이며, 보통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과 떨어져 있지 않다.

노동자들은 이런 투쟁에서 승리했을 때 진정으로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예컨대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의료민영화를 막아내고 일자리를 지켰을 때 공공서비스를 방어할 수 있고, 화물 노동자들은 적정 운송료를 보장받을 때 과적, 과속의 위험으로부터 공공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러려면, 거리 시위에 참가해 항의할 뿐 아니라 작업장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고 이윤 우선 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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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첫날부터 구조본부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족 감시와 의전에 배치된 것은 현재의 국가가 무엇에 관심이 많고, 무엇에 관심이 적은지 보여 준다.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주들의 착취와 이윤 축적을 보장해 주며 계급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연간 예산이 1조 원이 넘고, 국가간 경쟁과 연관된 대형 경비함에는 2천억~3천억 원을 쓰는 해경이 안전장비 구입에는 20여억 원밖에 배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장비가 없는 해양경찰서가 40퍼센트나 된다. 전용 헬기가 없어서 해경의 정예 특수구조대원들이 공항 두 곳을 거쳐 가느라 배가 다 가라앉은 뒤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일은 희극적 비극이었다.


장비와 예산이 없으니 해경 대원들은 반복된 훈련으로 안전 관리나 구조에 숙달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주와 진도의 관제센터에서 그리고 구조 현장에서 허둥지둥한 것은 사실상 ‘준비된 무능’이었다.


중앙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도 한 구실을 했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예산 절감을 요구해, 각 지방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가 폐지됐다. ‘인명 구조, 선박 인양, 수난구호명령, 충돌ㆍ좌초ㆍ전복ㆍ선박 화재 대처’를 맡은 부서가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이다.


사고 직후 한시가 급한데도 비용 문제를 들어 크레인 요청을 청해진해운에게 떠넘긴 일은 정부의 긴축 재정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잘 보여 준다.


그런데도 1백40억 원이 들어간 해경 고위층 전용 골프장은 지어졌다. 이곳은 해경 고위층이 중앙 정부 관료, 국회의원, 선박회사 소유주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커넥션이 수반한 양상들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정부와 국회가 선박회사들을 위해 안전 규제를 풀어 주고, 민영화로 이 부패 고리를 보강해 왔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선박연령 규제 완화만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도 직접적 책임이 있다. 선박의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대체하게 했고, 선장의 선박 안전관리 보고와 내부 심사 의무 등을 없앴다.


또한 안전관리ㆍ구조까지 법정 민간단체가 하도록 해 놓고, 퇴임한 관료들과 선박회사 소유주들이 이 단체에서 함께했다. 해운조합, 한국선급, 해양구조협회 모두 이런 단체다. 이런 네트워크 속에서 청해진해운 같은 선박회사들은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며 이윤을 벌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 8년간 20년 이상 된 선박 수는 7배(6척→42척)로 늘었다. 그 결과,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7백~9백 건에서 1천7백~1천9백여 건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경제 위기 때문에 노후 선박이 늘어나고 더 많은 과적을 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사고 증가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정부는 안전 예산과 인력을 줄여 왔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가의 부패와 무책임은 현 국가의 정당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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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이 잠재적으로 지닌 사회적 유대와 협력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자본가들은 시간과 돈의 낭비로 여긴다. 자신들의 이윤 동기가 잘만 실현된다면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 수익을 늘리려 한다. 당장의 저비용으로 이윤을 얻으려던 동기 때문에 광우병이나 기후변화 같은 재앙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들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맞지만 말이다. 


1년에 한 번 대형 사고가 날 확률이 있다고 했을 때, 자본가들은 그 하루를 대비해 나머지 364일 동안 안전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정기 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쓸모없는 짓으로 여긴다. 


이런 돈을 줄이면서 정부와 기업은 그것을 ‘비용 절감’과 ‘합리화’라고 부른다.


이제 기업들은 안전 업무를 별도로 떼어 내어 국가에 맡기거나, 별도의 업체를 만들어서 안전 업무를 외주화한다. 그럼으로써 기존 기업들은 ‘사고 없는 364일’에 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이제 각 기업마다 365분의 1일에 해당하는 기회비용이 새로운 시장이 된다. 과거 정유회사들이 연합해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한 방제 회사를 세운 것이 그런 사례다.


정부도 민영화(와 외주화)를 촉진한다. 이번에 드러난 선박 안전 관리와 구조작업의 민영화가 딱 그 사례다. 민영화는 재정 적자를 만회하려는 수단이기도 하고, 특혜를 받는 일부 대기업과 국가가 유착하는 부패 문제이기도 하다.


부패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드러나지 않는 효과도 있다. 국가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이번 참사에서도 언딘이 구조 책임에 대한 비난을 나눠 가졌듯이 말이다. 


지금 정당성 위기를 겪는 박근혜 정부의 처지를 보면, 국가 책임의 ‘분산’이 통치자들에게는 꽤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자본가들은 원활한 이윤 획득을 보장해 줄 경비성 지출(진정한 낭비)은 낭비로 보지 않는다.


거대 비자금을 형성해서 고위 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기업주들이 나누는 것은 그들에게 낭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붙박이장 같은 ‘부패한 정경유착’은, 국가자본주의 시대에도, 신자유주의 민영화 시대에도 형태만 바꿔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 원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회가 대중의 민주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극도로 비민주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노조를 허용하고 교섭해서 임금을 올려주는 데 써도 충분한 돈을 삼성이 노조 설립을 막는 데 쓰는 것도 낭비가 아니다. 


(그들에겐) 돈 없다고 8천여 명을 일시에 쫓아낸 KT가 소모적인 광고·마케팅 비용으로 수조 원씩 쓰는 것도 낭비가 아니다. 


기업 간 경쟁의 규모와 범위가 해외로 확장돼 국가 간 경쟁으로 발전하고 온갖 살상무기, 핵발전 같은 야만적인 지출을 해도 지배자들에겐 결코 낭비가 아니다.


생지옥이 바다에서 펼쳐졌지만, 지옥문은 육지에서 열려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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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철도노조 파업에 대처하면서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것은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깨뜨린 것을 연상시키려는 노림수였다. 이것이야말로 우익 지배자들이 박근혜에게 바라던 모습일 테니 말이다. 


박근혜 본인도 ‘원칙의 리더십은 물론 이공계 출신인 것까지 닮았다’고 흰소리를 하며 대처 리더십을 자신의 롤모델로 언급해 왔다. 


실제로 두 정부는 닮은 게 많다. 둘 다 신자유주의 강성 우파 정권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에게 “방패보다는 칼” 구실을 바라는 우익 지배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둘 다 기업 규제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려 한다. 이를 위해 ‘법과 질서’와 냉전주의를 앞세워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노동운동에 적대적이고 “법과 질서”로 위협하는 것도 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성공한 대처 신화’를 한국에서 재연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 위기, 지정학적 환경, 계급세력균형 등을 비교 검토해서 확률적 예측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대처보다 훨씬 더 불리한 처지에 있고 운신의 폭도 좁다. 


경제 위기 효과


경제 위기는 노동운동의 분출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높아지는 실업률은 사기 저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당시 영국의 노동운동이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와 우파 집권기를 맞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1970년 집권한 영국 보수당 히스 정부와 우파 지배자들은 집권 첫 해에 ‘복지국가 유지를 통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전후 대호황이 불황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실 기업 퇴출, 민영화, 노동조합 약화, 임금 통제 등 시장주의 공세가 주요 내용이었다(‘셀스던 합의’).


그러나 부실 기업 부도를 방치했다가 오히려 연관 기업들이 동반 추락하고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1971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법 개악을 했다가 노동계급의 전반적 반격에 직면했다. 한껏 고양된 산업투쟁의 전투성에 직면해 히스 정부는 레임덕에 빠졌고, 시장주의 공세를 포기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마거릿 대처는 ‘셀스던 합의’ 포기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일한 장관이었다. 


노동자 투쟁 고양의 결과로 1974년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 정부를 기다린 것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경제 위기였다. 윌슨ㆍ캘러헌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그들은 보수당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구조조정과 임금 억제 정책을 이어받았다. 심지어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했다.


영국 노총(TUC) 지도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정부를 위해 투쟁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노동당 정부는 현장조합원 운동의 리더들을 상근간부층으로 끌어들이는 법 개정을 했다. 기층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제도 개혁으로 노총 지도부를 도운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 노조로 조직된 부문이 주도한 “불만의 겨울”(197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임금 가이드라인에 저항한 노조들의 투쟁) 투쟁으로 임금 가이드라인을 분쇄하고 임금 상승을 얻어냈다. 하지만, 노동당과 오랫동안 연계돼 왔던 전통적인 노동운동 주축 부문의 사기와 확신은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노동당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보수당의 대안(노동당)은 있었지만, ‘배신한 노동당’의 대안은 없었다. 환멸과 대안 부재가 부른 정치적 혼란 때문에 상황이 반전되기가 힘들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대처 정부는 이처럼 노동당 정부의 배신과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전반적 사기가 꺾인 후에 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 등장했다. 


광원 파업


그런데도 대처는 초기에 매우 신중해야 했다. 대처는 1980년 탄광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다 노조가 반발하자 철회했다. 아직 노조와 대결할 준비가 안 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대처는 히스 정부가 노동운동 제압에 실패한 까닭이 노동조합의 ‘특권’을 한 번에 모두 뺏는 ‘노사관계법’을 섣불리 제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처는 노동법 개악을 하면서 매우 순차적으로 접근했다. 그 초점은 피켓팅(대체인력 투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투쟁)을 금지하고 파업과 관련한 노조 간부들의 면책특권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처는 1983년 두 번째 총선에서 승리하고서야 탄광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파업에 대비해 석탄을 비축해 놓고 탄광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대처가 연대 파업과 투쟁을 어렵게 만들고 노조관료 간 부문주의를 조장하고 난 뒤 비로소 영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던 광원노조를 공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대처가 막 집권했을 때 경제 상황은 지금의 박근혜처럼 암울했다. 영국 경제는 1980~81년 세계 공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1980~83년 사이에 제조업체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 실업자는 2백만 명까지 늘어났다. 


공교롭게도 1982년부터는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실질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물론 노동자들을 쥐어짠 결과였지만, 대처는 경기 회복을 민영화와 부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노조 약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써먹을 수 있었다. 광원 파업은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노력에 해를 끼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광원노조의 파업에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처는 한때 양보를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바로 그 때 영국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버티다 못해 광원노조가 무릎을 꿇은 뒤에야, 실은 파업에 대비한 석탄 재고량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음이 알려졌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전투성 저하, 지도부의 우경화 등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대처 집권기 노동운동은 부문주의와 투쟁 회피주의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1984년 광원 파업이 1972년 파업 때와 달랐던 것은 바로 노동자 연대의 부족이었다. 자기 작업장에서 투쟁할 자신감이 없는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에 나서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점


박근혜는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대했던 방식을 흉내 내면서 노동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그에게는 대처가 가졌던 이점들이 별로 없다. 


우선, 세계경제 위기의 정도가 그때보다 심하고 따라서 한국 경제의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점차 회복되는 경제 상황을 억압적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근거로 써먹었던 대처보다 불리한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양보의 여지도 적다. 그래서 박근혜는 복지 공약을 대부분 백지화했고, 이것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것은 현실에서 '동의'에 기반한 통치전략(일부에 대한 경제적(부분적) 양보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한 지배전략)이 약화된다는 뜻이고 이는 저항이 거셀 경우 1970년대 초반 영국 보수당 정부처럼 지배계급이 내분을 겪을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박근혜의 유신스타일 통치가 지배계급 내부 단속까지도 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런 통치전략이 강화할수록 실패의 위험성(판돈)도 커진다는 뜻이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제국주의 간 경쟁과 지정학적 불안정성도 박근혜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경제 위기는 국가 간 경쟁도 날카롭게 만든다. 특히 경제 위기가 불균등하게 전개되면서 국제 제국주의 질서의 세력균형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최근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경쟁이 급속도로 날카로워진 배경이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해에 집권한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함께 신냉전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대처는 박근혜와 달리 강대국의 통치자였다. 국내 정치의 필요에 맞게 냉전주의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였고, 1985년 이후 신냉전이 해빙기로 전환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혔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내 정치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과 정치ㆍ군사적 차원의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 압력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군사대국화하는 일본과의 동맹 강화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긴장 유발 요인이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대북 포퓰리즘을 활용할 여지도 크지 않다.(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정학적 쟁점들은 지배자들 내에서 분열 요인이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이 문제들에서 자신감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경제 상황과 지정학적 환경이 박근혜에게 유리하지 못한 것은 취임 전후의 계급세력 균형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대처는 노동운동의 사기저하를 이용해 구조조정, 민영화, 노조 제압, 시장 경쟁과 법질서 확립을 슬로건 삼아 선거운동을 했다. 국가복지를 삭감하며 도리어 개인의 책임성을 요구했다.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처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고조되는 불만을 의식해 어울리지도 않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지키지 못할 (그리고 못한) 약속은 정권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또, 철도 파업 내내 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전투에서 박근혜는 불리한 처지다.


박근혜 정부의 맞은편에서는 1980년대 영국보다 더 전투적이고 투지가 살아나고 있는 조직 노동운동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봄의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 투쟁부터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까지,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주된 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박근혜는 유신 스타일의 공안통치 방식을 쓰려 하지만 그것이 노동운동에 크게 먹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파업 동안 연대는 점차 확산됐다. 


조직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상황에서는 경제 공황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대처 때와 같은 사기 저하보다는 오히려 격렬한 계급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는 경제 위기 등의 다급함 때문에 노동운동을 동시에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도박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개혁주의


그러므로 대처 당시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산업 현장의 전투성이 가라앉은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일면적으로, 배신적 개혁주의 지도자만 문제고, 그들만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불리한 세력관계를 자초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자기 패배적 정책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직시하자는 것이다. 


대처는 1979년부터 치러진 세 번의 총선에서 내리 이겼는데, 매번 노동당의 득표 감소 덕을 봤다. 대처는 노동당에 져서 정권을 빼앗겼던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얻은 것보다도 더 적은 득표율로 연이어 집권했다. “승리의 문턱에서 오히려 패배를 자초하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놀라운 기술” 덕분이었다.


대처와 보수당이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1983년 총선을 위한 보수적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연결시켰을 때,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이 전쟁을 지지하고 대처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그것은 우익을 강화시켰고,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주는 행위였다.


1984년 당시 노동당 대표 닐 키녹은 광원 파업 때문에 노조를 비난했다. 영국 노총 지도부는 광원 파업 연대 건설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보수당의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다. 영국 노총이 1986년에 내놓은 문서 《일하는 사람들: 새로운 권리, 새로운 책임》은 이제 노동운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지식인들도 이런 우경적 후퇴에 가담했는데, 공산당 소속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는 더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전략이 불가능하니 화이트칼라 중간계급과 동맹을 맺고 온건한 의회주의 전략에 충실해야 한다는 “현대화”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현대화”론은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전략의 1980년대 판이었다.


닐 키녹과 홉스봄 등은 노동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를 [노동당이 상징한다고들 여긴] ‘계급정치’의 후퇴로 봤다. 그리고 그 후퇴의 책임이 자신들의 배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보수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반적 사기저하 탓에 이런 책임전가식 담론이 용인됐고, ‘정치’가 대중투쟁의 대용품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때의 ‘정치’는 산업현장의 투쟁과 유기적으로 결부된 정치가 아니라 제도권의 의회ㆍ개혁주의 ‘정치’였을 뿐이다.


지금 세력관계상 한국의 노동운동 안에서 개혁주의자들이 1980년대 영국처럼 노골적으로 준동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의원단은 ‘불법’ 파업을 옹호했고, 비록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 계획을 내놓았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좌파의 과제


따라서 한국의 좌파들은 대처 당시 영국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의 우익적 공세를 과장하는 견해를 단념해야 한다. 흔히 그런 견해는 계급투쟁을 약화시킬 계급 타협(인민전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결코 불리하지 않은 세력관계를 이용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는 일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전투성과 세력관계야말로 급진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고, 우파 정부를 패퇴시킬 진정한 힘이다. 물론 개혁주의자들도 기층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초좌파적으로 그들을 대하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 공동전선적 방식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고무해 세력관계를 노동계급 편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보다 법안 제출이나 당내 지도권 다툼 방식의 ‘정치’투쟁만으로도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봤던 노동당 좌파들의 경험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 중 토니 벤이 이끄는 ‘벤 좌파’는 1979년 총선에서 정권을 잃은 후 그 반작용으로 당내 선거에서 약진했다. 그러나 도취감에서 깨기도 전에 이들은 순식간에 세력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아서 좌파의 의제를 추진할 실제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983년에는 노동당 내 극좌파였던 ‘밀리턴트’ 경향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당에서 쫓겨났다. 이들이 주도하던 지구당은 폐쇄됐다. 런던시의회의 다수파를 장악한 “붉은 켄” 켄 리빙스턴 파도 계급투쟁과 유리된 정치투쟁의 한계를 보여 줬다. 광원 파업 패배로 세력관계가 기운 뒤인 1986년 대처는 광역시 정부 자체를 없애버렸다.(사라진 런던시의회는 2000년에야 부활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매우 우익적인 정부로서 공안통치 스타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조직 노동운동을 표적 삼는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그리 강력하지는 않다. 이에 맞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지금 분위기는 1980년대 영국 노동운동보다 더 강하고 전투적이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일러 준다. 아울러 당분간 팽팽한 세력관계 때문에 이번 철도 파업처럼 투쟁들의 결과가 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요구의 외형적 성취 여부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반의 의식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혁명적 좌파는 노동계급이 사기와 전투성을 회복하고 있는 이때를 노동운동에 뿌리 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의 경험에서 배우면서, 투쟁을 고무하고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와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에 맞설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 중심성’을 후퇴시키자는 주장은 대안 부재 상황에 스스로 자리잡는 것일 뿐이다.



※ 이 글은 <레프트21> 119호에 약간 축약해 실렸다. ☞ <레프트21>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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