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치 방침 논쟁

어떤 노동자 정치가 필요한가



<노동자 연대> 139호 | 발행 2014-12-08 | 입력 2014-12-06



진보·좌파 다원주의는 단결을 위한 고육지책


처음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핵심 의제는 단연 박근혜 정부의 고통전가 파상 공세에 맞설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였다. 민주노총 정치 방침이 중요한 쟁점이긴 해도 부차적인 쟁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후보들의 정치 방침 정책에는 큰 차이가 확인됐다.

특히, 민주노총의 상층 지도부층이 연합한 전재환 후보 조는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 이를 지렛대로 정권 교체기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는 진보대통합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필수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노동계 진보정당들이 사분오열해 노동운동 안에서 분열ㆍ갈등하는 상황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허영구 후보 조 등도 진보대통합 계획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대변했다.

△ 자본가들의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파업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노동자 정치다. ⓒ이미진


민주노총 지도부가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가망도 없고 현명하지도 않다고 보는 이유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무리해서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려 하면 노동조합의 단결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노동조건을 공동으로 방어하려는 조직이니 말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노동자 연대>가 주장한 대로 민주노총이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를 정치 방침으로 채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이유다.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는 부르주아 정당들을 배제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여러 진보정당과 좌파 정치단체 사이에 지지 대상을 열어 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 정치는 의회와 정당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정치 방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과도 연결되므로 진보ㆍ좌파 다원주의 안에서도 어떤 정치를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 개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당 문제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을 획득하거나 사용하는 문제, 국가기관의 통치 행위에 대응하는 문제, 정치적 견해ㆍ사상ㆍ신념 문제, 노동자 계급 전체의 쟁점과 단결 문제 등이 모두 ‘정치’에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 제정, 정리해고 요건 완화 같은 법 개악 저지 등을 위해 파업과 시위를 수단 삼아 대중투쟁을 벌이는 것도 ‘노동 정치’다. 기업주들의 ‘철밥통론’ 같은 이간질에 맞서기,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주장하고 투쟁하기도 정치적 문제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정치 개념은 협소하다. 또한 그들은 정치와 경제 영역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고 의식적으로 분업을 추구한다. 노조는 작업장 문제(‘경제’)를 맡고, 정당은 선거와 의회 협상(‘정치’)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정치 방침 문제가 개혁주의 정당 건설로 곧장 환원되는 것도 이런 분업주의의 발로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상층 지도자들이 흔히 ‘정치(투쟁)로 해결하자’고 말할 때는 사실 사회적 타협(노사정위원회, 정당을 매개로 한 의회 협상 등)이나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정권을 세워서 노동 현안들을 해결하자는 뜻이다.

전재환 후보 조가 내세운 정치방침과 전략 노선이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2015년을 준비기로,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6~17년을 투쟁기로 설정했다.

사실 진보 대통합 → 야권연대 →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이 구상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방침이기도 했다. 결국 정치로 해결하자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해 정권을 바꿔 노동 현안을 해결하자는 말이었다.

이런 전략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투쟁회피주의와 결합돼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지키는 전투적 투쟁을 기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재환 후보 조의 계획도 당면 투쟁 과제를 회피하는 계획이라는 정당한 비판을 받았다.

총ㆍ대선이 있었던 2012년이 최근의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권 교체에 기대를 걸고 전략적 야권연대에 ‘올인’하며 선거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 대중투쟁 건설에 소홀했다. 그러다가 총선 결과가 시원찮자 그나마 공언했던 총력 투쟁 계획마저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 초기에 기세를 올렸던 언론 파업, 금속 작업장 투쟁들이 혹독하게 탄압받았다. 주목 받았던 쌍용차 투쟁에 대한 연대도 더 확산되지 못했다. 그해 총·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연달아 패배한 것은 어느 정도는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초한 세력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탄압과 민주노총 경찰 침탈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대중적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정치권’(심지어 새누리당 김무성까지 나선) 중재에 의존했다. 결국 대중적 공분이 크게 일었으나 조직되지 못해 투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 노동운동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보수적으로 투쟁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상층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정치다.


노동 정치의 진정한 독립성


민주노총 정치 방침은 첫째, 노동자 ‘계급’의 정치라는 출발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는 계급으로 분단돼 있고, 이 계급 분단선이 이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다.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포퓰리즘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피한 경우에 일회적ㆍ부분적 야권연대를 할 수 있다 해도, 연립정부 추진 같은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하려고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유보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둘째, 노동자 계급 고유의 힘, 즉 작업장에서 자본주의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것도 노동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진보 정당은커녕 대변할 의원 한 명도 없었던 1997년 1월, 민주노총은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 개악을 막아 냈다. 민주노총이 정치 파업으로 노동자 계급 전체를 위해 행동한 것이다. 

이 파업 동안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2013년 말 철도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으로 박근혜에 맞선 가장 강력한 야당 구실을 했듯이 말이다. 의회의 정치 협상은 노동자 정치에서 훨씬 덜 중요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작업장 안팎에서 계급적 단결을 추구해야 파업 같은 수단이 실질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부분 파업으로 진행되는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이 진정으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여야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내국인·이주 등의 차이로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와 억압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정규직 양보론을 함축한 사회연대전략이 정치 방침으로 부적절한 이유다. 이 점에서는 허영구 후보 조와 좌파노동자회가 불안정노동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간주하거나 노동당 지식인들이 ‘포섭된 노동, 배제된 노동’ 식의 구분을 하는 것도 약점이다.

이들 모두 작업장 파업과 그것을 위한 단결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이런 입장들은 아무리 좌익적 언사로 포장해도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데서 장애가 될 뿐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힘과 조직력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이 앞장서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하도록 고무하고 촉구해야 한다.

셋째, 진보정당들이 전략적 야권연대를 염두에 두거나, 투쟁을 고무하기보다 협상이나 민주당에 의존하며 불필요한 양보를 하려 할 때, 노동운동이 정치적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조는 총선과 대선 선거 방침 같은 소시기 정치 방침에도 적용돼야 한다.

이것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정치조직’인 정당에게서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대중조직이고, 노동조합도 정당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의 부분을 대표한다.

독립성의 진정한 쟁점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가 다른 계급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 모두에 적용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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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논쟁

“준비된 투쟁”론은 당면 투쟁을 회피하는 핑계일 뿐


<노동자 연대> 138호 | 발행 2014-11-24 | 입력 2014-11-22



민주노총 임원선거 기호4번 전재환ㆍ윤택근ㆍ나순자 팀(이하 전재환 선본)은 핵심 기치로 “준비된 통합 지도부”를 내세운다.


전재환 선본은 십수 년간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 층의 주류를 이뤄왔던 세력들(이른바 중앙파ㆍ자주파ㆍ국민파)이 연합한 후보 조다. 현 집행부 승계 후보 조이기도 하다. 후보들 자신도 각각 금속, 보건, 지역본부에서 위원장 자리를 거쳤다. 민주노총의 핵심 의결ㆍ집행 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의 구성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상층 활동 경험이 많은 것을 강점으로 삼고 있다. 폭넓은 대표성을 갖고 있고 상층 경험이 많으니 민주노총의 “통합과 단결”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쟁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결정적 약점이다. 이들은 민주노총 상층의 보수적 투쟁 회피와 관료적 타성이 낳은 폐해에 공동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전재환 선본의 주장에서 이에 대한 반성적 평가는 거의 없다.


전재환 후보는 2005~06년 비정규직 악법 통과 국면에서 금속연맹 위원장과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을 지냈고 오랫동안 중집의 구성원이었다. 그러니 전재환 후보가 중앙 임원을 하지 않았으니 자신은 책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안일하다. 어쨌든 그는 동료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타성, 개혁주의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전재환 선본은 2016~17년 총ㆍ대선에 맞춰 준비된 투쟁을 하자고 주장한다. 당장 박근혜 정부의 파상공세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계획은 무책임한 투쟁 대기론일 뿐이다.


또, 지역 순회 연설회에서 ‘사업 계획과 예산을 중앙위로 넘기고, 대의원대회는 중앙위 결정을 추인하는 기관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의결 기관의 기능을 약화시켜 관료적 조율과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의원대회의 투쟁 결정을 임의로 유보ㆍ철회시키는 식의 태도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주의가 낳은 문제를 관료주의를 강화해 해결할 수는 없다.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


전재환 선본의 강조점은 “준비된 투쟁”론에 있다. 당선 후 1년 간 준비해 2016~17년 총ㆍ대선 일정에 맞춰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걸고 정치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전재환 후보는 TV 토론에서 ‘긴박하다고 해서 현장이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총파업 동참할 리 없다. 준비된 공세적인 파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걸고 전 조합원이 함께 준비하고 투쟁하자는 것에 투사라도 이의는 없을 것이다. 단위노조 임단협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된 투쟁”론의 문제점은 ‘준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준비’를 이유로 지금 당면한 투쟁들을 회피ㆍ외면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지난해 말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탄압과 민주노총 침탈에 광범하고 즉각적인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대중적 항의를 선언하지 않고 준비가 필요하다며 2월 말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런 소심한 대응은 민주노총 본부 침탈로 무리수를 둔 정권에 도리어 한숨 돌릴 여유를 줬고, 정권의 탄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촉각만 둔감해졌다.


정작 두 달을 준비했다는 파업은 정권과 기업주들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는 말이 들어맞은 상황이었다.



‘준비된 투쟁론’과 정권 교체


민주노총의 전략적 정치적 투쟁의 시기가 총대선 시기로 맞춰진 것을 보면, 이 투쟁의 핵심 목표는 정권 교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교섭의 대상이 될 개혁 정부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로 귀결된다.


이를 위한 핵심 수단 하나가 “진보대통합”과 “반신자유주의 반박근혜 범국민전선”이다. ‘진보정치 통합’이 민주노총이 승리하는 야권연대―정권교체로 가는 지렛대인 것이다.


이는 제9대 김영훈 집행부가 2012년 총ㆍ대선 국면에 추구한 전략이다. 전략적 야권연대를 위해 노동운동의 투쟁성과 독립성을 약화시킨 결과, 정치 지형을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총선 승리 후 총파업’ 계획은 총선 패배 후 흐지부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한편, 전재환 선본의 전략은 진보당 중앙위가 인준한 “당 혁신과 진보정치 단결을 위한 우리의 출발” 문서와 흡사하다. 중앙파와 국민파 지도자들 다수가 노동정치 재편에서 진보당을 배제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선거 연합을 하고는 이제 그들의 전략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진보당은 이 문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새로운 진보대통합은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중심의 진보대통합이어야 한다 … 진보대통합에 기초해서 야권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쌍용차, KEC, 현대차 비정규직, 철도, 전교조, 공무원연금 등 숱한 문제에서 새정치연합은 중재를 자처하며 노동자들이 투쟁을 중단하고 불필요한 양보를 하도록 종용하는 구실을 해 왔다. 이 당이 자본가 계급의 비주류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투쟁성과 독립성을 해치고 일관된 투쟁 건설 노력을 해친다.


더구나 이런 전략에 따라 ‘진보대통합’을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구한다면, 그것은 배타적 지지 방침 결정 시도로 이어져 필연적으로 노동운동을 분열시켜 약화시킬 것이다.



진보ㆍ좌파 다원주의와 정치 방침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의 방어를 위해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조직이다. 정치적 견해는 불가피하게 다양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2008~12년에 사분오열해 재규합이 난망한 지금, 진보정당과 좌파들 안에서 자유롭게 지지를 선택하는 진보ㆍ좌파 다원주의가 투쟁으로 조합원들을 단결시키는 데에 현실적이고 현명하다.


한편, 전략적 야권연대는 분명히 반대해야 하지만, 모든 야권연대가 문제라는 좌파 일각의 고집은 지나치다. 국회에서 특정 개혁 입법 발의를 쟁취하거나 특정 악법을 저지하려고 부르주아 야당과 불가피하게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선거에서 특별히 수구적인 후보에 맞서, 그리고 그에 비해 민주당 후보가 노동자들에게 진보적으로 비쳐지는 인물일 때 특정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 추진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최근 노동조합 투쟁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야권연대 노선 탓만은 아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와 개혁주의가 가장 큰 약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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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2월말 조합원 여론조사를 근거로 4·11 총선 정당투표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집중 투표하자고 결정했다. 
 
정당 비례 투표는 지지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지도가 더 높은 정당에게 집중 투표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비춰질 법도 하다. 특히 진보신당은 3퍼센트 득표 여부가 불확실해서 사표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유력한 정당을 지지해 키우지 않으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대한 배타성(지지 배제)마저 무너져 정치적 실용주의가 만연할까 하는 일부의 두려움도 이해는 한다. 이석행, 이상범 같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적 고려를 이해한다 해도, 진보정당이 둘로 나뉘고 재통합에 실패한 상황을 반영해 배타적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이 집중 투표 정당으로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무리하고 위험한 결정이다.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이 지지하는 야권연대 ‘단일’ 후보를 민주노총이 지지하기로 한 마당에 정당투표마저 진보신당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통합진보당을 배타적 지지 정당으로 결정한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물론 20만 명이 넘는 조합원에게 여론조사를 해서 결정하려한 것은 나름 이런 정황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선거적 실용주의보다는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 그 속에서 노동자 진보정치를 구현하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정신이다.(아래 박스 참조) 
 
상대적으로 지지가 적지만 진보신당도 민주노조운동에 기반한 진보정당이고 조합원 여론조사에서도 20퍼센트(약 4만 명)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진보신당의 비례후보 1번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신당 당원이거나 호의를 가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다른 정당에 투표하라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이다.
 
이런 이유로 진보신당을 민주노총 지지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불신과 반목을 불러올 뿐이다. 이미 반대파에서 “ARS조사에서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표본을 취합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반목은 언론 파업 등에서 단결해 연대 투쟁을 건설하는 데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 우파와 신자유주의 지지 정당을 지지 대상에서 배제하는 ‘배타성’은 유지하면서, 진보정당들(통합진보당·진보신당·녹색당) 가운데서 단위노조나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지지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도록 맡기는, ‘진보 다원주의’ 방침을 정당 집중 투표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중집의 통합진보당 집중 투표 방침보다는 ’배타적 진보 다원주의’로 단결을 유지해 당면한 투쟁, 예고된 하반기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 단결한 정치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에 부차적인 선거 지지로 분열을 재생산하지는 말자. 


잠시 이 시대에 필요한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관해 살펴 본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치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적 선거정당은 그런 정치투쟁의 논리적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진보운동의 문제가, 이상이 넘쳐서인지, 이상을 더는 추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난맥상이나 민주노총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글을 보시오. ☞ 바로 가기)

일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혼란상을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주의 문제로 덮어버리려는 듯하다.

그러나 
 패권주의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패권주의가 무엇을 밀어붙이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묻지마 야권연대’로 드러나는 인민전선 전략을 밀어붙이면서 진보정치의 정책과 가치, 원칙, 투쟁을 우경화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이정희 대표가 잘못했고, 후보 사퇴를 해야 한다고 보지만, 득표에 해가 되기 때문인 것은 부차적인 이유라고 본다.

야권연대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다. 민주당의 과거를 뒤지지 않더라도 지금의 공천과 정책, 단일화 경선 불복 사태를 보면, 이런 당과의 ‘묻지마 단일화’ 자체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진보정당 죽이기라는 우파의 공격(민주당 길들이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궁극으로 의회주의(선거와 의회 입법 협상을 정치의 전부로 보는 경향) 경향, 의회주의를 강화한 야권연대 우선 노선이 결합하면서 강화된 당선제일주의가 진보의 가치(와 기준)를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 선본의 잘못은 잘못된 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꼼수를 쓰려 한 것, 그것을 피장파장론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무뎌진 진보의 도덕성에 대한 감수성에 있었던 것이다. 후보 사퇴는 이를 바로 잡는 수순의 출발점일 뿐이다. 

그런 원칙에 찬 결기가 있어야, 진정으로 우파의 진보정치 죽이기에 계속해서 강단있게 맞설 수 있고, 설사 당장 뒤로 밀리더라도 버티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명분이냐, 실리냐 하면서 잘못된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가진 걸 지키려고 하는 보수정치는 그런 구분이 있을 수 있어도, 맨손으로 출발하는 진보정치에게는 명분이 곧 실리다, 즉 명분을 잃으면 실리도 없다.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잃고 지키는 실리의 실체가 뭐겠는가. 그것은 굴복이고 배교다.

경제 위기가 지속하고 제국주의간 갈등이 표출되는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국제적·전국적 시야에서 포괄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상과 목표로 추구하는 계급투쟁의 정치학이 아닐까. 

원인의 결과적 현상인 빈곤과 실업에 관해 대증적 요법인 복지 확대에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 계급사회라는 근본 원인을 정직하게 알리고,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 정책을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내놓는 그런 정치 말이다. 

국가의 군사화(제주 해군기지)에 맞서 단지 군인과 경찰 폭력으로 뒤덮인 ‘절차’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할 줄 아는 그런 정치 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투쟁하는 진보정치, 즉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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