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대란의 책임은 

진보 교육감이 아니라 박근혜에 있다



<노동자 연대> 166호 | 발행 2016-01-27 | 입력 2016-01-27


박근혜는 1월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정부가 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지급을 거부해 일어난 파동에 대해서도 예의 그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박근혜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포함한 2016년도 교육교부금 41조 원을 시·도교육청에 전액 지원했다. 시·도교육청이 받을 돈은 다 받고 써야 할 돈은 안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근혜가 말한 지방교육교부금 41조 원은 교육교부금법이 정한 비율(내국세의 20.27퍼센트)에 따라 자동으로 설정된 액수다. 문제는 이 비율이 박근혜가 무상보육을 공약한 2012년 이전에 정해진 비율이라는 것이다.


만 5세까지 무상보육은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의 ‘공약’이었다. 보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은 출산율을 제고하겠다며 이명박 때 (박근혜의 동의 하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면서 그에 따라 더 지급해야 할 예산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바로 중앙정부, 즉 박근혜 정부다. ‘배신의 정치’로 심판 받아야 할 장본인은 정작 박근혜 자신인 것이다.(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유체이탈 화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최근의 정치적 갈등을 박근혜와 대화로 풀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장담컨대 반년도 못 가 홧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보육 대란과 임금 체불


사실 (지방재정법 시행령까지 고쳐 가며 무상보육 책임을 지방정부와 교육청에게 떠넘기려는) 박근혜의 요구대로 하려면, 각 시·도교육청이 다른 교육·복지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형 급식 뺏어서 동생 보육비 주라는 말이냐’라는 항변이 나온 이유다. 대부분의 진보 교육감들이 중앙정부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며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거부해 온 이유다.


지난해에도 같은 사달이 났지만 당시 각 교육청들이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 예산을 편성했다. 당장 보육 대란을 두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마저 이런 식이면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굳어질 수 있어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지자체(교육청)들이 예산을 배정하지 말고 정부 지원을 받아 낼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애초 교육청 소관인 유치원 무상보육 예산까지 막히고 있다. 지방의회들이 형평성을 이유로 유치원 예산도 승인을 (새누리당이 다수인 곳에서는 보복성으로, 야당이 다수인 곳에서는 압박용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죄 없는 보육교사들의 1월치 임금이 대량 체불될 상황이 됐다. 박근혜의 몽니 탓에 교사와 학부모(대다수는 노동계급인) 모두 고통을 겪는 것이다.(아마 일부 지역들은 편법으로 1, 2월치 예산을 지급할 듯하다.)



교육 개혁


사실 이날 박근혜의 관련 발언은 앞뒤도 맞지 않았다. “[누리과정을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한]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는 3천억 원의 예비비를 우선 배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쓰라고 준 돈을 썼다고 상을 준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물론 ‘인센티브’를 빙자한 박근혜의 협박에는 “교육 개혁”의 의도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교육 개혁”은 수익성 논리와 기업들의 수요에 걸맞도록 교육 재편을 가속하는 것이다.


1월 20일 정부 합동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개혁”을 위해 “재정평가 인센티브 비율 상향 조정” 등으로 “지방교육 재정의 효율성과 책무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익성 논리로 재정평가가 진행되면, 예산을 먼저 더 많이 확보하려는 교육청 간 경쟁은 교육 노동자들의 임금, 학생 정원, 교육 복지 등을 삭감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면서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확대 같은 진보적 의제가 2010~12년 때처럼 선거에서 부각되지 않도록 하려는 책략도 숨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들은 물러서지 말고 정부 예산 편성을 촉구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



복지는 긴축, 기업은 부양


이런 공격은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적 긴축이라는 경제 위기 대응 기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기업주와 부자를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다.


박근혜는 긴축을 이유로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을 파기했다. 필사의 전투를 벌여 공무원연금도 삭감했다. 돈이 없다면서 부자 증세는 한사코 거부해 왔다. 기업 지원도 활발했다. 최악의 전월세 대란 속에서도 공공임대주택 공급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더 열을 올렸다.


최근 자체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데도 ‘퍼주기 포퓰리즘’이라며 성남시의 청년배당 같은 작은 복지마저도 비난·방해하거나, 대상 규모도 액수도 초라한 서울시의 청년 지원을 정부가 소송까지 제기한 일들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이런 신자유주의 긴축을 지방정부에게까지 강요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지난해 무상보육 예산 지급 거부로 정작 지방교육청의 빚은 더 늘었다.)


배신을 그토록 싫어하는 박근혜가 자기가 약속한 무상보육을 자기 손으로 흔드는 것이 단지 개인의 ‘혼이 비정상’이라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무상보육 ‘먹튀’에 항의하는 것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반대하는 일과 연결된다. 노동운동과 좌파는 ‘노동개혁’ 저지 투쟁을 건설하면서 박근혜의 무상보육 예산 책임 외면에도 반대해야 한다.




긴축에 반대하고,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요구하자


 

정부는 경제 위기 때문에 기업과 개인들의 소득이 줄어 정부의 세금 수입도 따라 줄기 때문에 국가 지출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압력은 그리스에서 보듯, 국제적인 자본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에는 국가지출의 필요가 오히려 더 커지므로 여전히 소득과 자산이 많은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 지출을 늘릴 수도 있는데, 박근혜는 일관되게 (부자) 증세를 거부해 왔다.


이는 박근혜가 이윤율이 낮아져서 투자 외 지출(세금, 임금 등)을 줄이려는 기업주들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의 목적도 기업들이 임금비용을 낮출 수 있게 해 주려는 데에 있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역대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법인세를 삭감해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따라서 박근혜가 지향하는 긴축 정책은 단순한 재정 아껴쓰기가 아니라 친기업적 이윤 보전 정책이다. 이 말은 국가의 지원과 지출이 모두 삭감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부는 전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부자를 위한 경기 부양과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에는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도리어 노동자에게는 증세하면서 복지를 삭감해 왔다.


그러나 경제 위기일수록 책임 전가와 소득 하락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은 심해진다. 이야말로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는 ‘안전’의 위기다.


이를 해결하려면 오히려 복지를 확대해야 하고, 그 재원은 당연히 위기를 유발한 책임이 있는 기업주들과 부자들이 져야 한다. 위기의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을 어렵게 하는 보편 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를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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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야 밀실 합의 이후

박근혜의 ‘노동개혁’ 강공을 막아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3호 | 발행 2015-12-09 | 입력 2015-12-09



12월 7일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과 원내대표 원유철을 청와대로 불러 개악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재촉했다.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 법안들 ... 손도 못 대고 계속 걱정만 한다. 한숨만 쉬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느냐”, “내년에 ...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늦어지면 [경제가] 다 죽[는다] ... 죽기 전에 치료도 하고 빨리빨리 살려 놔야지.”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법 등 즉시 통과시키려는 법안들이 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기업 살리기’를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특히 고통전가를 위한 노동 개악 입법화에 기업주와 정부, 여당이 얼마나 목매고 있는지 보여 준다. 한국 경제 상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기업살리기’ 법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테러방지법도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테러방지법조차 없는 게 전 세계에 알려지면 얼마나 테러를 감행하기 만만한 나라가 되겠는가.” “혼이 비정상”인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이지만, 집회에 참가해 마스크를 썼다고 시위대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강조하는 것은 이 법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단속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박근혜는 경제 위기가 본격적으로 깊어지는 국면에서 이에 대한 저항을 막으려고 친기업·반노동 악법을 제정하고 억압 조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중총궐기 살인 진압과 이후 민주노총에 대한 집중 탄압의 배경이다.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를 포함한 8개 노조 사무실 동시 압수수색, 위원장 등 조합원에 대한 구속과 체포영장 남발, 독재정권 때나 쓰던 형법상 소요죄를 끄집어내 민주노총을 폭동단체로 몰아 가기 등. 


강공


이런 강경 탄압은 살인 진압 면피용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전에 기선을 제압해 ‘노동개혁’에 맞선 민주노총 파업을 약화시키하려는 술책들이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조직 보존주의를 자극해 그 일부가 투쟁을 회피하도록 만들고, 이를 이용해 전열을 흐트러뜨릴 속셈일 테다.


박근혜 정권은 흔히 그랬듯이 12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 금지, 참가자 전원 검거, 복면 착용시 가중 구형 등 혹독한 탄압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런 강경수가 뜻대로 관철된 것은 아니다.


행정법원은 집회를 허용했고, 총궐기 당일에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청소년들까지 5만 명(주최측 추산)이 참가해 도심을 행진했다. 이들은 노동 개악 중단,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살인 진압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 등을 요구했다. 정부가 강경하게 탄압했음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저항한 것이다.


사실 여당의 계산으로는,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표단을 불러 압박한 법안 상당수가 12월 2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어야 했다. 애초에 지역 예산과 연계해 이끌어낸 그 밀실 합의의 목적이 박근혜 귀국 전에 개악 법안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합의 목록 중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만이 통과됐고 나머지는 미처리 상태로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게 됐다.


최고 통치자의 통치스타일이 유신 스타일이라고 해서 유신 체제가 그리 쉽게 돌아오는 건 아니다. 지난 1년만 해도 비록 노동운동이 많은 투쟁에서 차질을 빚었지만,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도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물론 심각한 경제 상황 때문에 박근혜가 12월 ‘노동개혁’ 공세를 매우 강도 높게 밀어붙이겠지만, 결과가 예정돼 있지는 않다. 민주노총이 ‘노동개혁’ 법안심사가 재개될 시 즉시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총파업에 돌입해 파업을 지속한다면 박근혜의 강경수에 차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와 새정치연합의 부당 거래


새누리당은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려고,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에서 총선용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는 새정치연합의 요구를 들어 줬다. 이미 예산 “증액 심사는 … 밀실 흥정으로 전락 ...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 거대 양당과 정부의 ‘잇속 챙기기’ 부당 거래로 변질되고 있[었]다.”(국회 예결위원이기도 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의 11월 27일 브리핑)


그래서 새누리당이 개악 법안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예산 수정 논의를 모두 폐기하겠다고 협박했을 때, 새정치연합이 12월 2일 원내대표 간 밀실 합의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뀐 국회법은 정부 예산안이 의결 시한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결국 총 3조 5천억 원이 ‘선거용’ 예산으로 자리바꿈했다. 그 대가로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통과됐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노동 개혁” 법안 등도 통과될 위험이 커졌다.



새정치연합의 뻔뻔함은 그 당의 계급적 본질에서 비롯


여야 간 기막힌 밀실 합의로, 박근혜가 취임 후 여러 정치 위기 속에서도 거듭 위기를 넘겨 온 비결 하나가 다시 드러났다. 바로 새정치연합의 구실이다. 


12월 1일 민주노총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당대표 문재인은 노동 개악 5법 반대가 당론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원내대표가 이를 뒤집어 버렸다.


문재인은 12월 6일 국회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관련 개악은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했다. 노동 개악 ‘5법 반대’에서 말이 또 바뀐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감청과 금융정보 뒤지기를 손쉽게 하는 문제만 막으면 통과에 협조하겠다고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부패가 정쟁 차원에서 들춰질 것만 두려운 것이다.


이 당이 근본에서 (비주류일지라도) 기업주들에 기반을 둔 당이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개혁’에 찬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당은 “노동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청년들과 나라의 미래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는 박근혜의 기만성 협박을 이겨 낼 수 없다.


물론 새누리당보다는 지배계급 내 지위와 기반이 부차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 약점을 만회하려고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가끔 노동자·민중 운동의 힘도 조금은 빌려야 한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이 특정 쟁점에서 일시적으로 (선거적 반사이익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충돌할 수는 있지만,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편들 수는 없다.


그나마도 경제·안보 위기, 총선·대선 주도권 다툼, 지배계급과 포퓰리즘적 기반 사이의 모순된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내분에 휩싸여 있다.



새정치연합이 ‘노동개혁’을 막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11월 하순에 새정치연합을 믿고 12월초 ‘노동개혁’ 저지 총파업 투쟁을 철회한 것은 실수다. 다른 악법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태도가 박근혜에게 강경수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계기 중 하나인 듯하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새정치연합이 개악을 막아 주리라고 바라는 것은 요행수를 앞세우는 것이거나 투쟁 회피주의일 뿐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는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대안과 확신 대신 불확실함과 의구심, 모호함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더는 새정치연합에 기대를 걸지 말고, 파업 투쟁 건설에 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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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야 밀실 합의

새정치연합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뒤통수를 쳤다


<노동자 연대> 162호 | online 입력 2015-12-04


12월 2일 새벽,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의 원내대표 간 밀실 합의로 노동 개악, 테러방지법 등 각종 악법이 순식간에 통과될 상황이 됐다. 벌써 이 합의로 12월 3일에 ‘학교 앞 호텔허용법’이라던 관광진흥법과 의료영리화(민영화)의 물꼬를 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전격 통과됐다.


이 기막힌 밀실 합의로 박근혜가 취임 후 숱한 정치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거듭 넘겨 온 비밀 하나가 다시 드러났다. 바로 새정치연합의 구실이다. 12월 1일 민주노총 상급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당대표 문재인은 노동 개악 5법 반대가 당론이라고 약속했는데, 만 하루가 가기 전에 ‘노동 개악 법안 즉시 논의 시작’을 포함하는 여야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비록 환노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반발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면서 더 불투명해졌다. 이 밖에도 국정원의 반민주적 감시·수사 권력을 강화해 줄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의료와 공공서비스 민영화로 가는 길을 닦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을 도울 북한인권법 등이 여야 합의로 통과될 위험에 처했다.


새누리당은 각종 법안들과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을 연계해 새정치연합을 압박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 지역구 예산을 포함시키려 했던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이 “밀실 합의”를 번복할 수 없었던 이유다.(바뀐 국회법은 정부 예산안이 의결 시한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미 예산 수정은 양당 간 밀실 거래로 진행돼 왔다. 국회 예결위원이기도 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11월 27일에 "예산안조정등소위원회 증액심사는 정부와 거대 양당의 밀실 흥정으로 전락 ...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 거대 양당과 정부의 '잇속 챙기기' 부당거래로 변질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결국 내년 총선에 대비한 지역 개발 예산들을 늘리면서 재해 대비 예산이 2천억 원 깎이는 등 총 3조 5천억 원이 선거용 예산으로 자리바꿈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려고 노동 악법들과 테러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악법들을 “합의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해외에 계신 대통령께서 폴짝 뛰면서 기뻐할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악행에 분노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정치연합이 거기에 제동을 걸어 주길 바라기도 한다. 흡족하진 않아도, 새정치연합이 박근혜에 반대하는 표를 얻으려면 그리 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독재 정권에 항의해 온 자유주의적 야당의 후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새정치연합은 노동운동 내 온건한 일부나 온건 엔지오들과도 연계를 맺고, 심지어 민주노총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띄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당은 기본적으로 기업주들에 기반한 당이다. 물론 새누리당보다는 그 계급 내 지위와 기반이 부차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 약점 때문에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당이 주로 대변하는 계급적 이익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당이 특정 쟁점에서 일시적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과 충돌할 수는 있지만,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편들 수는 없는 이유다. 따라서 그들이 새누리당과 충돌할 때조차도 많은 경우는 지지 여론과 득표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이지 진지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한국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 대한 고통전가 공세는 지배계급의 거의 일치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커져 왔음에도 미국과의 정치·군사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안보 위기도 겪고 있다.


때문에 새정치연합은 그들의 허장성세와 달리 경제·안보 위기를 돌파하려고 박근혜가 내놓는 의제들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고 줄곧 타협해 온 것이다.


이런 요인들 탓에 새정치연합은 노동운동은 물론이고 사실상 자신들의 당원인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진보교육감들을 곤란하게 할 예산 등에도 합의해 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일시적으로 거리를 점거하는 투쟁만으로는 개악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의 이윤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파업이 필요한 이유다.


새정치연합에 기대 박근혜의 개악 공세를 막는다는 전략은 위험하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노동운동(특히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새정치연합을 믿고 노동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을 미뤄온 것은 큰 실수다. 이는 다른 악법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은 (노동운동을 달래려고) 노동 개악 법들을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고 한 것이 성과라고 포장한다. 임시국회의 시점을 명기하지 않았고, “합의 처리”라 했으므로 자신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회 절차 상 환노위 처리가 지연되면 본회의 처리가 당장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동개악 법안들이 임시국회로 밀린 것은 성과가 아니다. 의료민영화, 테러방지법 등 그동안 노동운동이 반대해 온 개악 법안들이 다음 주 안에 통과될 위험이 커졌다. 노동 개악 법안들만 남게 되면 이를 빨리 통과시키라는 기업주들과 우파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새정치연합이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긴박해진 마당에도 그런 생각을 고수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삶을 운에 맡기겠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상층 지도자들의 이런 모호함은 오히려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결심하고 나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대안과 확신 대신 불확실함과 의구심, 모호함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금이라도 계획대로 독자적 파업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좌파는 좌파답게 원칙 있게 지도부의 동요를 비판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현장에서 총파업을 건설하자고만 하는 것은 중요한 운동 내 정치 쟁점을 회피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기만 ― 지배계급의 플랜B 정당의 운명


파리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이 다시 꺼내든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같은 경우, 새정치연합이 여당이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자신들 주도로 입법 발의한 바 있다.(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국정원 기능이 강화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테러방지법을 다시 발의했을 때 서로 바뀌었다.) 지금도 원내대표 이종걸은 대안적 테러방지법을 내놓겠다는 황당한 언사를 하고 있다.


또 1997년 정리해고, 파견제 등을 도입하는 신한국당(당시 여당, 한나라당 전신)의 노동법 날치기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중파업으로 좌절됐다. 당시 제1야당이자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는 날치기는 무효라며 국회 농성 등을 벌였다. 그러나 파업과 경제공황 등의 여파로 그해 말에 극적으로 집권한 김대중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야당 시절에는 구속을 지지했던)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조 상층 지도자들을 구슬려 정리해고 등을 도입했다.


테러방지법은 당시 미국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 전략)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국내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더욱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은 한국 지배계급의 생래적 특성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경제공황 속에서 그 책임과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전가하는 것은 이윤을 보호하려는 기업주들의 당연한 대응이었다. 한국의 기업주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오히려 1987년 이후 성장해 온 노동운동에 타격을 주고 싶어 했다. 결국 노동조합의 파업권에 제약을 가하는 법률이 노무현 정부 아래서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됐다. 노무현 정부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확대를 공식화해 주는 비정규직 악법도 발의했다. 두 법은 한나라당 협조 속에 2006년에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일부는 일관되게 이를 막는 데 힘을 쓰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재등장을 막으려면 ‘민주정부’를 도와야 한다거나, 경제 위기라서 경쟁력 회복에 일조해야 한다는 개혁주의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가 1년 전에 대중파업으로 철회시킨 정리해고, 파견제 도입 등을 1년 만에 스스로 합의한 것이 그 사례다.


당시 새정치연합의 전신은 집권당으로서 자신들이 국내에서의 반발과 저항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다. 지배계급 주류의 환심을 삼으로써 자신들이 국가기구를 더 잘 통제할 수 있고 재집권도 가능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던) 선진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이미 십수 년 전에 깨달았듯이, 새정치연합이 노동계급을 위해 무언가를 일관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새정치연합이 국회 농성 등으로 ‘강력하게’ 새누리당과 우파의 폭주에 반대할 때조차도 정작 그것에 맞서거나 가끔 그것을 좌절시키는 진짜 동력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나왔다.


물론 이들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보다는 지배계급 내에서 부차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의 힘도 조금은 빌려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이들이 야당일 때는 우파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 반사이익을 실제로 얻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약진한 것이 이런 과정이었다.(비록 대중의 신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진보정당들과 꼭 내키지만은 않았던 ‘야권연대’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때조차도 그들은 2012년과 2013년에 중재를 명목으로 MBC, 철도노조 파업 중단을 유도하는 등 모순적인 구실을 했다.


결국 정리하면, 새정치연합은 기업주와 부자들에게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새누리당보다 더 안정적으로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 받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이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편을 드는 척할 때조차도 일관되지 않고 지배계급 내 우파와 기업주들의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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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정당하다

탄압을 중단하라



<노동자 연대> 162호 | 발행 2015-11-25 | 입력 2015-11-25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는 노동자·민중 10만 명이 참가했다. 기업주 살리기에 혈안이 돼 노동자·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내모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것이다.


집회에서는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고용·노동조건 후퇴를 가져올 “노동개혁” 저지, 반민주·반노동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의료 민영화 중단, 민중생존권 보장 등의 정당한 요구가 넘쳐났다.


그러나 하반기 노동개악 공세를 밀어붙이려는 박근혜 정권에게 집회 참가자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오히려 그날 냉혹하게 폭력을 휘두른 주역은 바로 경찰이었다.


경찰은 반나절짜리 집회를 막으려고 집회 며칠 전부터 계엄령 바로 아래 단계라는 갑호비상령을 발동했다. 교통 방해를 이유로 행진을 불허했으며, 전국에서 경찰 병력 2백84개 중대 2만여 명을 동원했다.


그래서 정작 서울 도심 교통을 마비시킨 것은 경찰버스 6백79대가 동원된 거대한 ‘경찰 차벽’이었다. 조준 카메라(모니터)가 달린 신형 물대포가 처음부터 차벽 위에서 시위대가 행진해 오기만 기다렸다. 경찰 차벽은 방어벽이 아니라 공격적 진압 무기였다.


참가자들을 겨눠 고압 직사로 쏘아댄 물이 이날 하루 20만 2천 리터였고, 여기에 섞은 유독물질 파바(PAVA, 물대포용 합성 캡사이신)가 6백51리터였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 경찰이 쓴 총량의 각각 24배, 3배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행진에 참가해 경찰 차벽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화학약품 물 폭탄 수십 년치를 ‘하사’ 받은 것이다. 이도 모자라 경찰은 차벽에 오르는 걸 막는다며 경찰버스마다 식용유와 실리콘을 발라 놨는데, 그 양이 모두 2백 리터가 넘었다.


경찰은 이날 시위대를 무찔러야 할 적으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결국 행진 초기부터 광화문과 종각 일대는 최루액의 흰 거품으로 넘쳐났고 많은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농민 백남기 씨가 직사 물대포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가슴 이상 가격 금지라는 경찰 규정을 경찰이 위반한 것이다.)


이 물대포를 쏜 경찰은 충남도경 소속으로 밝혀졌는데, 누가 봐도 기절해 축 늘어진 백남기 씨의 몸 위로 계속 직사 물대포를 퍼부었다. 이 ‘살인’ 물대포는 그를 구하러 달려간 시민들의 몸통마저 정확히 겨눴다. 그중 백남기 씨를 위해 몸으로 물줄기를 막던 한 명이 결국 쓰러졌다.(새누리당은 이 참가자가 쓰러지면서 가격한 것이 백남기 씨의 중태 원인이라는 사이코패스적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이날 고압 직사 ‘살인’ 물대포 발사자들은 심지어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려고 온 구급차 안에까지 물대포를 쏘고, 이런 모습들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게까지 무차별 조준 사격을 해댔다.


짐승에게도 차마 하기 힘들 끔찍한 짓들을 경찰이 민간인 시민들에게 저지른 것이다. 이 때문에 유신 독재에 저항하며 20대를 시작한 백남기 씨는 인생의 황혼에 원통하게도 유신 독재자의 딸 때문에 사경을 헤매게 됐다.


경찰청장 강신명은 파면돼야 하고, 물대포를 현장에서 운영한 자들은 살인미수(만약 불행히도 사망시에는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이것이 테러다 백남기씨가 ‘살인’ 물대포를 맞은 직후 모습 ⓒ<노동자 연대>



살인 진압 정당화를 위한 사이코패스들의 발뺌




백남기 씨 부상 현장을 영상으로 확인하고도 정권이 폭력시위 근절 운운하는 것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ISIS를 척결하듯이 불법시위를 척결해야 한다’고 했고, 공안검사 출신자들인 국무총리 황교안과 검찰총장 후보자 김수남은 ‘불법필벌’만 외치고 있다. 경찰총장 강신명은 ‘민사상 책임‘까지 운운하고 있다. 행진의 자유를 가로막힌 채 유독성 화학물질을 뒤집어쓰며 고통받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진압 비용을 대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키는 이런 대응은 정권의 살인 진압 책임을 면피하고 우익 여론을 결집시키며, 장차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계산된 발언들일 것이다.


이미 경찰은 46개 단체 대표를 소환했고, 집회 참가자 7명을 구속했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체포 전담반을 대규모로 꾸렸다.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는 아예 원천 금지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이런 권위주의적 방침은 정권 수장인 박근혜 본인이 앞장서 부추겨 온 것이다.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는 “테러단체들이 불법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억지 근거로 불법 시위 엄단과 (국정원의 국내 수사 권한을 대폭 늘리는) 테러방지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강경 대처를 지시했다.


그동안 박근혜는 툭하면 정권과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혼이 비정상”, “병 걸리셨어요?” 등 천박한 언어로 우익의 적대의식을 북돋워 왔다.(우익은 그래야 알아듣는다.)


11월 23일치 <동아일보>가 국정원이 북한과 연계된 지하조직을 적발했고 그 구성원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으며 이들과 민중총궐기의 연계를 조사중이라고 보도한 것도 시사적이다.


이뿐 아니다. 14일 살인 진압의 총책임자인 경찰청장 강신명은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수배중인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핑계로 삼아 민주노총 본부 건물을 최초로 침탈한 당사자였다.


이런 무모한 도발의 대가가 경찰청장으로 ‘영전’한 것이었으니, 강신명이 경찰청장 취임 후 강경 기조로 내달리고, 후임 서울경찰청장 구은수가 최근 민주노총을 별 망설임 없이 침탈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다. 통치술로서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의 생생한 사례다.


11월 21일 서울경찰청은 불법 폭력 행위 증거를 찾겠다며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 등 산하 노조 사무실 여덟 곳을 침탈했다. 압수수색 작업에만 경찰 6백90명이 투입됐고, 이 작업을 ‘보호’할 무장 병력만 23개 부대 1천8백40명이 동원됐다.


경찰은 14일 민중총궐기의 불법 폭력성 주도 혐의를 찾겠다고 했지만, 정작 압수수색 영장에는 지난 4월의 세월호 1주기 시위들, 5월 1일 노동절, 9·23 총파업 집회도 관련 대상으로 포함됐다. 경찰 폭력에 완강히 저항한 집회들만 골라낸 것이다.


결국 경찰은 여섯 시간을 뒤진 끝에 얼음깨기 퍼포먼스에 쓴 해머, 개인물품인 손도끼 따위를 들고가 폭력 시위 용품을 찾아냈다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했다.(물론 경찰 헬멧과 무전기 하나씩이 발견됐는데, 그것만 가지고 폭력시위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찰 폭력에 저항한 증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살인 진압의 책임을 자기들이 명명한 ‘불법 폭력 시위 전문 단체들’에 떠넘기려는 것이다.



민주노총 침탈 책임전가 모략이자 “노동개혁” 견제구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센터인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산하 핵심 노조들을 침탈하고 협박하는 작태는 명백히 노동운동을 능멸·모욕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겨눈 이유는 민중총궐기 참가자 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기도 했거니와, 박근혜 개악 공세의 알맹이가 “노동개혁”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법안들의 국회 처리 절차가 시작된 상황에서 통과를 위해 공안 탄압도 불사하겠다는 정권의 의지를 전하는 견제구인 것이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때문에 박근혜의 탄압은 더 신경질적이 되고 있다. 최근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해체’ 운운하는 것도 한 사례다.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려 정부는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 전가해야 한다. 물론 노골적으로 특권층을 대변해 온 정부가 벌이는 고통전가가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를 받을 리 없다.


결국 ‘당근’ 부족으로 박근혜 정권은 다소 무리수가 따르는 탄압(‘채찍’)과 이데올로기적 마녀사냥(종북, 테러, 집단이기주의 등의 표상으로 대중을 서로 이간질해 희생양 삼기)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대중의 일부를 포섭해 통치의 정당성을 갖출 조건이 취약해지고 개악 공세는 정치적 불안정을 낳을 수밖에 없어서 히스테리가 심해지는 것이다.


박근혜의 노동개악, 테러방지법 시도 등이 1996년 경제 위기 조짐 속에서 악법 날치기를 시도한 김영삼 정부를 부분적으로 연상시키는 이유다. 김영삼은 정리해고 도입, 파견 허용 등 노동법 개악안과 87년 항쟁의 성과로 막힌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의 국내수사권을 되살리는 안기부법 개악안을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 집권당 단독으로 날치기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물론 지금의 국면이 그때처럼 노동운동의 분출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노동운동의 대응이 미지수인 이유는 조직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거듭 기회를 놓치며 실질적 파업 투쟁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의 국회 처리 지연 약속에 기대를 걸며 정작 중요한 파업 투쟁을 회피했다. 일부 좌파는 파업 시기를 총궐기에 즉각 연동시키기보다 국회 상황에 연동시키면서 이 문제에서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사실상 추수했다.


이런 안일한 대응 덕분에 기회를 얻은 박근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속전속결에 이어 “노동개혁” 법안, “민생”으로 포장된 의료 등 민영화 법안, 테러방지법 등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지금은 12월 5일 총궐기에 기대는 것도 늦을 수 있다. 금속노조와 제조공투본이 “강행시 끝장총파업” 식으로 투쟁을 계획한 것은 맥없이 느껴진다. 당장 실질적 파업 소명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좌파들이 좌파답게 노조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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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심화로 여권의 분열도 심각해지다



<노동자 연대> 152호에 실린 기사. 지면 제약으로 생략한 내용 일부를 괄호로 첨가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겠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유승민이 수용한 것이 계기였다. 행정부의 시행령, 시행규칙이 국회가 만든 상위법에 위반될 때는 국회가 개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 행정입법


행정권으로 법규를 정립하는 것 또는 그 법규를 말한다. 대통령긴급명령,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 등이 있다. 박근혜는 각종 개악 조처들을 주로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밀어붙여 왔다. 


박근혜는 국회법 개정이 시행령으로 국정을 추진해 온 자신의 통치 행위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각종 개악을 행정입법에 의존해 왔다. 거추장스러운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행정부가 바로 개악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애국법 등 반민주적 조처와 신자유주의 조처들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존했던 미국 부시 정권과 비슷한 수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시행령 25개가 상위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사측이 일방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의료민영화를 간접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시행령도 문제다.


시행령 개정만이 아니라, 시행령 악용도 문제다. 특히 노동 관련이 그렇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이 “월권 백화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교조에게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도 바로 이 시행령(9조 2항)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9조 2항은 박근혜가 개정한 것은 아님.) 


시행령을 앞세워 자본가들을 위한 고통전가 개악 드라이브를 추진해 온 박근혜에게 개정 국회법이 매우 성가신 방해물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노동자 투쟁, 세월호, 정윤회 의혹, 메르스 공포 등으로 지지율 하락 추세에 있는데,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 합의해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박근혜는 레임덕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의 히스테리는 오히려 박근혜가 여당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고, 정치 위기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은 좀 더 근원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유승민은 올해 원내대표 당선 직후, 박근혜가 말해 온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청와대와 달리 사드 도입을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지난해에는 “청와대 얼라들”에게 “일관된 국가안보전략”이 없다며 단호한 한미동맹을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권 내 갈등은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한국 지배계급 내의 불안감과 이견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태의 심화·발전으로 지배자들이 2012년 대선 때처럼 박근혜를 일치단결해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그런 점에서 이번 갈등 사건은 국가기구 내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이라는 요소도 배경에 있다. 의회 입법과 행정입법 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여권의 태생적인 권위주의적 속성, 정세의 불확실성, 박근혜 협박의 이중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공천 숙청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유승민과 비박계의 퇴로를 막아 놓은 탓에 갈등이 쉽게 봉합될 수도, 항복을 받아낼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근혜가 ‘선거 심판’을 운운한 탓에 유승민은 물론이고 김무성 등 비박계는 여기서 물러서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숙청을 당할 거라고 걱정한다.(유승민 다음은 김무성?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 순망치한설은 개연성이 꽤 있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인들 일반에게는 양보하기 힘든 이해관계 문제다. 또한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와 달리 차기 총선과 대선을 염려해야 하는 의원들은 여론과 노동운동의 저항 태세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의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 새누리당의 의회 정치인들 입장에선 박근혜와 확 갈라서는 게 차기 선거에서 좋을지 그 반대일지, 분열이 어떤 효과를 낼지 판단하기가 애매한 정세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봉합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도 있다. 이 문제의 변수는 여당 바깥의 저항과 여론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박근혜는 지배계급 내 반대를 무릅쓰고 황교안을 총리로 앉혀 놓은 것이다. 황교안은 노동운동과 사회 운동에는 공안 통치를 시도하고, 여야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정 정국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여권 분열 상황에서도 박근혜는 각종 개악을 밀어붙이는 한편, 집권당 분열이 노동운동에 자신감을 줄까 봐 탄압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 점을 걱정하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 숙청을 연상시키는 박근혜의 여권 내부 협박은 길게는 균열도 키우지만, 당장은 협조를 받아내는 즉 이중(역설) 효과도 발휘한다. 첫째, 박근혜의 협박은 무엇보다 뒤를 캐는 사정 협박이다. 둘째, 분열이 낳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있다.
박근혜 메시지의 논리 구조는 ‘여당이 단결해야 한다/안 그러면 외부 세력에게 당한다/그런데 단결이란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란 뜻’으로 구성돼 있다. 새누리당 누구도 대전제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순환논법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의견 자체가 단결을 해치는 배신이자 분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조직 노동운동을 다루는 데서는 아직은 별다른 충돌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는 노동운동의 저항 수위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제가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박근혜와 충돌하는 것이 차기 총·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표면적으로는 복종과 협력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니, 박근혜에 맞선다고 유승민 등을 띄워주는 게 얼마나 형편없는 짓인가.) 


그러나 박근혜의 탄압이 강력함을 뜻하기보다는 정치 위기의 발로임을 앞서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위기와 여권의 분열을 신자유주의 공세 거부 투쟁을 조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동운동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을 보편화하려는 공격에 더 격렬하고 단호하게 맞서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여권의 내분을 봉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 공격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여권 내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근혜가 여당의 원내대표를 정권의 걸림돌이라고 공개 선언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 얼마나 꾀죄죄한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정한 야당은 투쟁하는 노동운동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지금껏 각종 민영화, 노동조건 개악 시도, 복지 삭감 시도에 진정한 조직된 반대를 제공한 것은 조직 노동운동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를 막아낼 만큼 충분히 잘 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예고한 7월 파업뿐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공공부문 2차 정상화 조처를 막을 저항 구축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여권 내 분열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전진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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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씨는 "제왕적 (우익) 야당 총재"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것이 내 관찰인데. 매사에 권력투쟁 프레임, 만사가 남 탓, (계급본능형) 멸시와 증오의 수사, 선거 승리 우선주의, 자기편과도 협력 부재 등. 그래서 박근혜 씨의 포텐이 폭발한 전성시대는 2004~5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서 정치적으로 죽이겠다는 식으로까지 말할 때는 그 후과가 결코 투정 부리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회법 개정안 통과는, 계속 지적해 왔듯이, 국회를 우회한 시행령(대통령의 행정명령) 통치를 통치스타일로 해 온 박근혜에게는 실질적 위협이었을 것이다. 세월호만이 아니라 의료민영화 등이 시행령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 


(※ 내가 볼 때 이 스타일은 단지 유신스타일만이 아니라, 2001년 9·11 테러 후 조지 부시의 통치 스타일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반테러 열풍을 이용해 부시는 애국법 등으로 민주적 권리들을 제약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를 통하기보다 행정명령을 발하는 방식을 애용했다.)


단지 청와대 주인의 캐릭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역설을 볼 수 있다.


첫째, 새누리당을 대상화해 적대시하는 듯한 언사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 장악의 의지다. 이것이 관철될지 안 될지는 정치·경제 상황과 계급세력관계에 달려 있다.


둘째, 박근혜의 새누리당 장악 의지는 거꾸로 집권당 내 레임덕 공포가 박근혜를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제서야 말이다!


셋째, 역설이게도 위기를 끝내려는 청와대의 시도가 위기를 증언했고 더 증폭시켰다. 이제 레임덕 위기는 박근혜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이슈가 됐다.


박근혜의 노발대발 오리발닭발은 외려 유승민의 사퇴를 어렵게 해놓았다.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물러선다고 당청 갈등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비박계에게 정권재창출을 위한 단합은 공천 숙청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이 제거되면, 김무성은 안전할까? 그렇다고 황교안이 지휘할 사정 위협이 만만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의도치 않게 서로 발목이 묶인 것이다. 어느 한쪽이 치고 나가야만 돌파구가 생길 텐데, 그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커서 서로 확신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가 없는 (현재만 있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는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고, 차기 총선과 대선을 바라봐야 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들이박지도, 완전히 수그리기도 힘들게 된 것이다.


결국 당분간 이도저도 선택을 못 하는 상태로 갈등만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이러다가 황교안이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이? ㅋ) 고로 당청 관계만 놓고 보면, 박근혜는 외통수인 상황이니 변수는 새누리당(그 안에서도 유승민, 이것은 셋째 역설의 한 표현이다)에게 있는 셈이다.


차기 선거와 여론을 신경써야 하는 새누리당에게는 정치·경제 상황과 기층 대중, 특히 노동운동의 저항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지금이 노동운동에게 단결된 투쟁으로 반격을 개시하기에 불리하지 않은 때인 이유다.


물론 박근혜는 바로 이런 위험성을 제기하며 여권의 단합을 촉구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권 단합이 두려워 싸우지 말아야 하는가? 투쟁을 자제하면, 정반대 결론으로 날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이 적어진다는 것은 여권이 분열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역설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 안에서 불확실성이 커져 온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잘 싸우지는 못해도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조직된 반대를 제공할 수가 있다. 이 정부가 이 길로 갈수록 대중과는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임무를 수행할수록 정치 위기는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정치 영역으로 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투쟁 영역에서의 조직된 반대가 이곳에서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만회할 만큼 조직된 반대 투쟁이 거세지는 않다 보니, 부상을 입고도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 위기가 강요하는만큼 노동자투쟁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역설들을 낳고 있다. 따라서 저항이,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박근혜는 공무원연금 개악에 성공했고, 공안정국의 기초를 놓으려 한다.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위해 그 전초전으로서 공공부문 2차 ‘정상화’를 밀어붙이려 한다.


이 시도가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 따라서 박근혜의 길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노동운동이 저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그나저나 대통령이 여당을 국정 방해자로 지목해 몽니 부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회엔 야당이 없나 보다. 아니면 대통령 머릿속에 야당이 없거나. 진짜 야당은 노동운동 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더더욱 분발하자. 


(※ 그리고 박근혜랑 싸운다고 다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그런 게 진짜 나쁜 진영논리적 사고고,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 때 이명박 깐다고 이상돈, 김종인 띄워주다가 뒤통수 맞은 일을 잘 기억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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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우선순위 문제 성찰을 촉구하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
  • 세월호를 기록하다 오준호 (미지북스)
  •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사회운동)
  • 팽목항에 부는 바람 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
  •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될 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 있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살았지.”

“TV 자막이 떴어요. ‘전원 구조.’ 그때 부모들은 박수를 치면서 ‘그럼, 그럼,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배 만들어서 수출하는 나란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그 배가 일본에서 가져 온 낡은 배인지도 모르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에 실린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유가족의 피눈물 나는 말들이다.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소속 필자 열두 명은 유가족들을 심층 인터뷰해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활동과 심경을 담았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씻기 힘든 분노가 있다. 기업들의 책임과 부패 유착은 물론이고 정부의 구조 실패, 거짓 언론플레이, 진상 규명 방해가 점차 밝혀지면서 이 내려놓을 수 없는 분노는 수백만 대중에게 확산돼 왔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찬성하는 서명에 6백만여 명이 참여한 것은 단순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권당이 일년 동안 흑색선전을 펼쳤는데도 올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투쟁 때 여전히 여론 다수가 유가족의 요구를 지지했다. 올해는 더 많은 10~20대의 학생, 청년들이 거리 시위에 나와 폴리스라인에 맞섰다.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연대의 한복판에는 예방적인 안전 조처에서는 물론이고 구조에서조차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의 본능적 연대의식이 있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보면 작가들이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닐 텐데도 평범한 노동계급의 애환과 비애가 가득하다.(일반인 희생자들도 단원고 교사, 화물 운전사, 가족 여행객 등 대부분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


맞벌이를 하느라 (희생된) 애들을 평소에 잘 챙겨주지 못한 일, 갖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사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런데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밝게 살았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신발 하나 사달라는 거 사줄 걸. 가방만 하나 사줬더니 ‘엄마, 가방이 너무 비싸네? 신발은 갔다 와서 살게’ 하는 아들한테 ‘그래, 새 신발 신고 돌아다니면 발 아플 거야’ 그러면서 신발도 안 사주고 보낸 이 어리석고 답답한 엄마.”

못 믿을 기성 언론

달리 가진 것이 없어 자식이 유일한 ‘재산’이고 삶의 목적인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현재의 일상만이 아니라 미래의 일상까지 파괴된 사건이었다.

“출근하기가 싫어요. 회사에 왜 가는지를 모르겠어요. 다영이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엄마도 회사를 다녔던 것이고, 나도 애들 위해서 노력했던 건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목표의식이 사라졌어요.”


참사 당일, 언론은 ‘전원구조’ 오보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순전한 엉터리로 대응하는데도 언론은 헬기 수십 대, 함정 수백 대, 잠수인력 수십 명이 동시에 투입돼 있다고 버젓이 보도했다. 언론의 오보에 팽목항 현장에 있던 유가족들이 격분한 것은 당연하다.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


“배에는 앙카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그 방 아이들은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갖고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 선원들 중에는 학생들이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어대고 얼굴을 유리에 대고 숨을 거둬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 살펴보기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물음은 “왜?”로 압축된다. ‘왜 이런 사고가 나게 됐지?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 왜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지?’ 이것들이 응축돼서 ‘이게 나라야?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야?’라고 표현됐다. 이중 소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 즉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 의구심을 확대하고 있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미지북스),《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사회운동) 등은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가’에 대해 답변해 보려는 진지한 시도다. 세 권 모두 읽어볼 만하다.


《민변의 기록》은 민변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를 꾸려 유가족을 지원하면서 파악한 것들을 나름의 틀로 종합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이 참사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와 정부의 무능이다. 안전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 같은 중요한 공공 업무까지 민영화하는 등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공공성을 해체해 온 것이 참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사고 원인이라고 밝힌 ‘급변침’이 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지적은 침몰의 직접적 원인도 진상 규명 대상이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세월호 인양이 실종자 수색뿐 아니라 진상 규명에도 중요한 이유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과정과 기록들을 재구성해 참사 진실에 다가가려 한 수작이다. 작가기록단 소속이기도 한 오준호 작가는 재판 기록으로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행위만 기소하고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가 적법한지 여부만 따지기 때문에 … 지난 이십 년간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으로 …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결론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회 시스템이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 시스템 내 구성원들의 무책임과 비겁함은 “평범한 개인들도 자신의 행동으로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사회진보연대 박상은 활동가가 쓴 《대형사고는 왜 반복되는가》도 기업의 이윤 추구와 그것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조처들이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장점은 제목처럼 풍부한 국내, 해외의 대형사고 사례를 통해 대형 참사가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임을 보여 주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내놓은 대안들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 규제 강화, 민영화 중단과 원상 회복,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기업살인법 등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미 국가가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이런저런 조처들을 실행한 것이 문제가 된 터다. 왜 지금껏 국가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헌신해 왔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안전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세월호 참사가 특정 정권만의 문제일까? 세월호 참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려는 학자들의 논문집인 《팽목항에 부는 바람》(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에서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해경이 사기업인 언딘에게 구조를 위탁한 것은 정부의 기능 축소와 민간 위탁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결과이므로 구조적으로 이 사고는 국가 시스템 전반과 연관되어 있다. 해군의 통영함이 출항하지 못한 것은 해군 비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해경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도 오래된 관료사회의 문제점이 누적된 것이므로 단순히 박근혜 정권 차원을 떠난 국가 차원의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대형 참사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런 통찰력 있는 분석을 “한국 시스템의 한 결과”로 스스로 제한한다. 이는 한국 지배계급의 통치 특성을 “전쟁 정치”로 규정하는 그의 분석이 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한국 국가를 예리하게 구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절반의(또는 반의반의) 인민주권’, ‘안보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연속성’은 최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편(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특수(한국 국가)는 구분되지만 별개의 것이 아니다. 특수는 보편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찰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에는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을 다음처럼 분석하는 구절이 있다.

“시스템을 닫힌 체계로 인식하게 되면 기존의 시스템을 그냥 둔 상태에서 … 시스템을 지탱하는 암묵적 가정은 의문시하지 않고 시스템의 목표나 가치 그리고 전략을 그대로 둔 채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추가하게 된다.”


이 책을 쓴 연구자들은 사회의 우선순위를 공공성에 둬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지적과도 달리) 이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정에 도전하진 않는다. 앞의 책들처럼 이들이 지적하는 요인들, 즉 기업의 이윤 추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본주의의 생래적 특징인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연구자들의 지적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더 물어야 한다. 왜 기업들의 이윤 추구가 이 사회와 국가운영의 우선순위가 됐는지 말이다. 사회의 우선순위는 정치, 민주주의, 계급(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다. 따라서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앞의 책들회피하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특히,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이 필요하다. 세상을 통찰하려면 현미경도 필요하지만 망원경도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는 둘 모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시대에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와 저항 모두에서 구출하려고 등장한 강성 우익 정부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적’처럼 여기는 정부가 이윤 우선주의를 문제 삼는 유가족을 적대시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이성의 발로로 보는 것은 이 체제가 노동계급이 보기에는 비이성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는 합리적 소통과 공감이 사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한 유가족이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자기 아들 시신이 나왔다는 방송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체육관 인파에 섞여서 몰래 감시하던 사복경찰이 방송을 듣고 당신 아들 나왔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참사 당일 진도 현장에 배치된 해경의 5분의 4가 유가족 감시에 배치됐다(《금요일엔 돌아오렴》).


국가의 첫째 임무는 합법으로 폭력을 독점하고서 자본가 계급을 대표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계급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성공해 자본주의 경제가 성공하는 것이 그것에 기초한 국가가 부강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예방하고 체제 내로 포섭하려고 통치의 절차상의 정당성을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수 대중을 분열시키고 현혹시키는 일들을 매일매일 꾸며 낸다. 사람들은 오직 저항할 때나 격변적 경험 속에서 이를 문득 깨닫게 된다. (격변적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재난 때 저들은 유언비어 단속에 더 열중하는 것은, 바로 그 평소의 거짓말들이 탄로날까 봐서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좋은 것이다는 식의.)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국민도 아닌 것 같아요. 대통령이 국회에 연설하러 왔을 때는 거의 경악 수준이었어요. 엄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대통령 눈길 한번 사로잡으려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눈길 한번 안 주더라고. 그러면서 웃으면서 지나가더라고. 그게 사람인지요. … 대통령이 그러니 그 밑에 사람들은 어떨까 싶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유가족을 외면한 박근혜의 눈길과, 국가를 믿고 구조만 기다리던 무고한 목숨들을 가차없이 외면한 이 사회 시스템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뿌리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에서 착취받는 노동으로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주도적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149호 | 발행 2015-05-25 | 입력 2015-05-23
※짙은 회색으로 된 문장들은 지면 제약상 등의 이유로 축약한 것을 내가 덧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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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 내정은 박근혜의 ‘공안’ 통치 선전포고




박근혜가 친정 체제를 강화해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려 한다.


박근혜는 한 달 넘게 공석인 국무총리 자리에 법무부장관 황교안을 내정했다. 이는 사정과 ‘공안’ 통치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억눌러 권력 누수를 막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여권은 비록 4·29 재·보선에서 승리했지만, 성완종게이트로 촉발된 불법 대선자금 의혹, 세월호, 민주노총 파업 등으로 지지율 하락 등 최근 위기를 겪었고, 이런 요인들은 잠시 가라앉았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경제·안보 위기에 내재한 지배계급 내 분열 위험도 여전하다.


그러니 공안통치와 사정 정국으로 통치 기강을 세우는 것 말고는 뾰족한 다른 출구가 마땅치도 않다. 결국 충실한 황교안으로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식이 되고 만 것이다.


공안 검사 출신인 황교안은 법무부장관 2년여 동안 박근혜, 김기춘 등과 코드를 맞추며 강성 우익 정부의 돌격대장 구실을 해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직접 공개변론을 맡아가며 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에 앞장섰다. 그는 진보당 같은 좌파를 “암적 존재”로 부르며 해산 결정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헌법의 적으로부터 우리 헌법을 보호하는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또한 법무부장관 직을 이용해 검찰총장 채동욱을 내쫓으면서까지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의 총체적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좌초시킨 것도 그의 ‘공’이다. 최근 터진 불법 대선 자금(성완종 게이트) 수사에도 정권 핵심부로 불똥 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무엇보다 검찰이 세월호 참사를 수사할 때 해경에 대한 수사를 유병언 수사로 돌려 진상을 축소 은폐하려 한 당사자다. 박근혜와의 교감 속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또, 황교안은 목포해경 123정장에 대한 과실치사죄 적용도 반대했다.


바로 이런 ‘공’ 때문에 박근혜는 황교안을 총리에 내정한 이유를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 조용하면서도 철저하고 단호한 업무스타일”이라고 밝혔다. 황교안은 2년 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안보·사회질서 교란세력 … 에 엄중히 대처해 법은 언제나 지켜진다는 신뢰를 쌓겠다”고 말했다.


이런 자가 총리가 되면, 최근 본격화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대한 탄압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민주노총 파업 투쟁에 강경 탄압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도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황교안의 ‘법치주의’는 박근혜 일당과 재벌에 대해서는 늘 피해갔다.


황교안은 검사 시절, 삼성의 정경유착 비리가 폭로된 삼성 X파일 수사를 맡아 삼성과 검찰의 고위 관련 인사들은 모두 불기소처분하고, 도리어 이 비리를 폭로한 이상호 기자(당시 MBC)와 노회찬 전 의원을 기소했다. 이 일로 노 전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다.


검찰 퇴직 후에는 삼성, SK 최태원 부정 사건 따위를 맡는 대형로펌 태평양에서 월 1억 원씩 보수를 받으며 전관예우 특혜를 누려 왔다. 병역 면제 의혹도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전관예우와 세금포탈로 재산을 불려왔다는 의혹으로 진땀을 빼야 했다.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이 이런 자가 청문회를 통과해 법무부장관이 된 것을 보면, 새누리당의 추악함은 물론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나 별볼일없고 꾀죄죄한 집단인지도 알 수 있다.


노동운동은 황교안 총리 임명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 의사를 투쟁으로도 표출해야 한다.




황교안의 ‘법치주의’가 뜻하는 바



황교안에게 법은 자본주의 특권세력의 기득권 질서 수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과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처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들에 애착이 크다. 그는 이 법들에 대한 해설서를 개정판까지 내며 우파적 해석을 매뉴얼화해 왔다.


《국가보안법》개정판(2011)에서는 “[국가보안법은]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국가의 기간(으뜸이나 본바탕이라는 뜻)법”이라고 했다. 또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이적행위 요건이 성립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쟁의행위의 정당성 판단 기준에 관한 고찰>(2005)이란 논문에서는 노동조합 쟁의행위가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근로자의 근로조건의 개선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된 사항으로서 사용자가 처분가능한 범위 내의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아무리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이라도 노동 관련 입법과 관련한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는 것이다. 직접적 사용자인 기업주가 처분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사유재산 처분권에서 유래하는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다. 황교안의 해석대로라면 노동조합은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될 것이다.


《집회·시위법 해설》개정판(2009) 서문에서는 2009년 용산참사 강제진압의 주원인이 “농성자들의 … 불법·폭력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에선 개정판 출간 당시 위헌 논란 중이던 야간집회 금지 조항을 “합헌”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집시법이 4·19 혁명이 야기한 사회 혼란을 “5·16 혁명”이 바로 잡으려고 만든 법이라고 말하는데, 집회에서 폭력이 벌어지면 참가자 모두 공범이라는 공동정범 이론의 지지자다.


황교안이 수호하려는 “법 질서”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창비, 2009)하는 바로 그 법 질서다.


※ <노동자 연대> 149호 온라인판에 게재(http://wspaper.org/article/15890)된 기사에 약간 살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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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4월 20일 4·16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주최로 경찰 탄압 규탄과 시민 피해 상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4·16연대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이기도 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은 이 기자회견을 지지해 여럿이 참가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직후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이들에게 ‘운동권이 많이 와서 외부 세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유가족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 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우파는 유가족과 광범한 ‘외부 세력’을 분리시키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시위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거나 정치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들,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두고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는 식으로 비난해 왔다. 익숙한 상투어들이다. 

특히 16일, 18일 집회 후에는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우파 언론의 마녀사냥식 공세도 거세졌다. 아마 그 시민단체 활동가도 여기에 위축돼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안전 문제조차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에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고, 사고가 나면 구조를 못 받을 확률도 높다. 계급 간에 불평등하게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형 사고는 대부분 작업장에서 일어난다. 이윤을 만들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장, 건설 현장, 백화점, 철도나 선박 등등. 이런 공간들 대부분이 노동자나 서민 대중이 일하거나 이용하는 공간들이다. 이런 곳들에서 기업주들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려고 노동자를 쥐어짜고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위해 국가는 안전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오래된 건물의 수직 증축을 허용하고,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관리 기준을 완화하는 등 규제 완화라는 돌팔이 ‘항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 산업 육성’을 대안이라고 내놨다. 이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상품화한다는 것이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은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국가가 이를 도우려고 지속적으로 안전 규제를 약화시켜 온 것과도 관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기업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까지도 따져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와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특별법 시행령 건에서도 보듯 박근혜 정부 스스로 진실 규명 방해 주범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사 이후 이윤 획득을 가장 앞세우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의문과 각성이 커져 왔다. 유가족들 스스로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줬다.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려면, 더 많은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고 정치적 운동과 정치적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이런 식의 사태 발전을 막으려는 것이다.

탄압 협박과 외부 세력 개입 운운은 분노한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이간시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좌파들이 세월호 참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운동이 정치적으로 비치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가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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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진실 규명의 투지가 정부의 봉쇄선보다 셌다

김지윤ㆍ김문성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 잇기 대회’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은사람들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의지와 경찰의 진압·봉쇄 의지가 충돌한 날이었다. 경찰은 종로부터 경복궁 앞까지 겹겹이 차단벽을 쌓고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난사하며 수만 명의 사람들과 유가족이 만나는 것을 막았지만, 이날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의 투지가 더 셌다. 진실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곳으로 침몰시켜 버리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겹겹이 둘러친 차단벽을 뚫고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이 만난 이날 집회와 행진은 추모조차 맘 편하게 할 수 없게 만든 박근혜 정부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인 일이었다. 집회 대열은 유가족들과 만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부패한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박근혜와 경찰 당국에게는 불안한 일이겠지만, 참가자들 모두 고무돼 돌아갔다. 다음 주 또 모일 것을 약속하고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전국 집중 대회인 만큼 제주, 전라, 경상,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노란 깃발을 띠운 대열이 모여 들었다. 3만 대열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4월 16일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10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대열이 눈에 띄었다. 총파업 선포대회 직후에 열린 터라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많았다.

사회자는 “이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 규명을 위한 행동을 호소하며 대회를 시작했다.

민주주의 국민행동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가 첫 발언자로 나섰다. 함세웅 신부는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한 다윗과 이를 비판한 나탄에 관한 성경 속 이야기를 소개하며 “잘못된 사람, 부정부패한 사람,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도려내고 조사해야 한다고 얘길 했는데 조사 받아야 하고 부패한 것은 바로 박근혜다. 차떼기당인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해산시키자! 대선 불법 자금 주모자가 박근혜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말처럼 하는 이 여인,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박근혜에게 외쳐야 한다”고 속시원히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맞습니다”를 외치며 호응했다.

뒤이어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김한성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구미현 씨가 무대에 올랐다.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하며 온갖 거짓말과 폭력, 모욕을 경험하고 상처 받았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겐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 정권은 해도해도 너무 한다. 청와대가 사람 살던 곳이냐. 쥐가 살더니 이젠 닭이 살면서 제 멋대로 하고 있다. 박근혜 찍어줬던 밀양 할매들은 이제 ‘박근혜 오기만 해봐라’ 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 정부는 사람보다 돈이다. 우리 자식들이 침몰하는데 가만히 있지 않겠다. 박근혜가 물러설 때까지 싸우겠다.” 구미현 씨의 발언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한성 의장은 “대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하고 있다. 4.19 혁명의 정신을 잊지 않고 끝까지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은 “지금 박근혜 정부는 우리 모두를 연행하고 있다”며 울분을 담아 시를 낭송해 참가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로 단원고 허다윤 학생 아버지 허흥환 씨와 박혜선 학생 어머니 임선미 씨가 무대에 섰다. 임선미 씨가 눈물을 터뜨리며 절규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잡아가나요? 우리가 가해자인가요?” 진실 은폐로도 모자라 유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전 우리 혜선이, 그 예쁜 혜선이 얼굴도 못 보고 보냈어요. 1년이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새털 같은 날들은 어떻게 살죠? 시체팔이라고요? 네, 맞아요. 우리 혜선이 덕에 부자 되어서 이 나라 뜰 거예요. 그리고 박근혜 너도 이 나라 다시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임선미 씨는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는 무대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참가자들도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유가족들 곁으로 갑시다!”


한편,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선포대회와 세월호 1주기 집회가 열리는 그 시각 경복궁 앞 광화문 현판 아래서는 경찰이 또 도발해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경복궁 앞에서만 16명이 연행됐다. 출입 통제는 물론, 경찰 차벽으로 유가족들이 무엇을 위해 시위하는지도 감추려 한 경찰들에 항의해 유가족들이 경찰 차벽에 올라가 대로를 향해 팻말 시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비한 경찰들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유가족들이 기다린 것은 서울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연대하러 와주는 것뿐이었다. ‘유가족은 고립되지 않았다’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일’이라고 외쳐 줄 수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에게는 필요했다. 경복궁을 지키던 유가족 말마따나 정부가 유가족을 폭도로, 종북으로, 자식 팔아 팔자 고치겠다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심연으로 내몰려고 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김혜진 씨가 집회를 중단하고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지금 광화문 앞에서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습니다. 더는 범국민대회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함께 광화문 앞 유가족 곁으로 모여 주십시오!”

유가족들의 연행 소식에 분노한 대열은 광장을 빠져 나와 광화문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로에는 이미 거대한 경찰 차단벽과 경찰 버스로 만든 차벽이 서 있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무려 1만 5천여 병력을 동원했다. 1년 전, 바다에서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은 집회 참가자 공격에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광화문 사거리로 통하는 대로는 이틀 전처럼 거대한 차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저렇게 다 광화문으로 오면 동네는 누가 지키냐”는 한 유가족 어머니의 얘기가 와 닿는 상황이었다. 이날 경찰은 어떻게든 유가족들과 집회 대열을 떼어 놓으려 했다.

경찰은 행진 시작도 전에 불법적으로 차단벽을 쳐 놓고는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집시법 위반이다.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해산조치 하겠다”며 위협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유가족들을 향한 연대를 막아 선 경찰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경찰 차벽이 불법이다!”, “먼저 차벽 세우고 교통 통제한 경찰이야말로 시민들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참가자들은 차벽을 피해 청계 광장을 지나 종로를 통해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다. 그러나 길목마다 경찰이 막아선 통에 참가자들은 종로3가까지 뛰어서야 겨우 종로로 나올 수 있었다.

종로를 차지한 대열은 기세 있게 구호를 외치며 안국역 부근까지 행진했지만 이내 종로경찰서 앞 차벽을 마주해야 했다. 유가족들을 코 앞에 두고서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하철로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광장에 겨우 들어 온 참가자들의 분노가 확인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이미 종로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온 참가자들에게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두 차례의 저지선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 해체의 대상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 시민들이, 심지어 10대 학생들까지 서로 앞장을 서며 어떻게든 더 유가족들 가까이 가려고 뛰고 부딪치고 넘었다. 정부의 명백한 구조 실패 책임을 덮으려고 온갖 추악한 공격을 해 온 박근혜 정부, 수십 조 원이 넘는 이명박의 4대강 비리 등은 수사 시늉만 하고 넘어가면서 경제 위기의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한데 모였다.

결국 세종대왕상과 광화문광장의 북단 저지선까지 뚫었다. 이 소식은 금세 경복궁 앞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이 광화문 차벽을 뚫었답니다!” 얼마 안 지나 함성 소리가 들렸고 경복궁 앞과 광화문 북단의 두 차벽을 넘어서 펄럭이는 깃발들이 보였다. 애타게 연대 행진 대열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 북단의 대열에게 들리도록 구호를 외치고, 차벽에 올라 팻말을 들며 서로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해경은 증거 조작, 육지 경찰은 유가족 탄압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경복궁 앞 대로로 나오는 길마저 참가자들이 뚫고 나오려 하자, 유가족들은 아예 차벽을 넘어 나가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경찰들을 몸소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도 부상을 많이 입었다. 유가족들은 대로로 나오는 대열을 조준하려고 오는 물대포차 앞에 누워버렸다. 덕분에 시간을 번 참가자들은 마지막 저지선까지 뚫고 대로로 나와 유가족들과 만났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가 경복궁 앞 대로를 가득 메웠다. 아마 박근혜가 미리 도망가지 않았다면 청와대에서 이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먼저 나온 참가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대로로 나올 수 있도록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참가자들 일부는 아예 경복궁 앞 차벽까지 넘어 유가족들과 만났다. 이들 수백 명은 유가족들과 함께 경복궁 앞 인도를 통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다급해진 경찰은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무자비하게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이 날 하루만 연행자가 1백 명이 넘는다. 연행된 유가족들만 20명이다. 이 날 박근혜 정부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그 고통에 공감하며 진실 규명을 외치는 참가자들에게 “불법” 운운하며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이것은 명백한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가족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박근혜의 본심은 진실 파묻기일 뿐이라는 것이 똑똑히 드러났다.

몇 시간을 대치한 끝에 밤 10시 반이 넘어서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합류했다.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는 “감사하고 미안하다. 오늘 희망을 봤다. 끝까지 싸우겠다”며 4월 24일과 25일에 또 만나자고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환호 속에 발언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세월호 진실 규명에도 노동자가 앞장서겠다며 4월 24일 총파업 때 만나자고 호소했다.


18일 집회 성공 이후의 상황과 과제


이 날 경찰 차벽이 박근혜 정부의 진실 규명 가로막기의 상징이었다면, 어떻게든 유가족들의 손을 잡으려고 행진한 대열은 진실 규명 투쟁 의지의 표현이었다. 경찰은 19일 오후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까지 했다. 강도 높은 보복성 협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위헌 판결이 난 경찰 차벽을 종로에서 경복궁 앞까지 6겹이나 쌓은 경찰이 불법 시위 운운하고 맨몸의 참가자와 유가족들에게 (규정까지 위반해 가며) 방패와 물대포, 최루액 살포를 아끼지 않은 경찰이 ‘극렬 행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실제로 귀가길이 막힌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진도 앞 바다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가, 진실 규명을 요구한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런 짓인가.

18일 시위의 성공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만과 분노가 크고 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줬다. 경찰의 신속한 사법처리 방침 발표는 바로 이런 점을 걱정해서다. 이 시위의 성공이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을 고무하는 것은 악몽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배계급 안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치 능력에 불신을 가지는 세력이 커져 4.29 재보선은 물론이고 향후 국정 통제력이 급속히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0퍼센트 대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인 고통전가 공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이 경찰의 협박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더욱 확고하게 주장해야 한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를 이윤보다 인간으로 돌리려는 운동의 일부라는 자각도 커져 왔다.

반면, 경찰의 사법처리 협박은 평범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 어려우면 우파 결집에 기대는 것밖에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앞길을 보여 준다. 당분간 위기 속에서, 위기 때문에 더욱 박근혜는 강공책에 매달릴 것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KBS, MBC 등과 조중동 종편 등은 이를 위한 여론몰이에 앞장설 것이다. 다음 주 집회 때는 자존심 상한 경찰이 16일이나 18일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최근의 정치 상황 때문에 더 공격적인 진압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예상은 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해 싸우는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이 조직 노동운동의 힘과도 만나야 할 필요성을 더 강력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자신들의 쟁점과 연결해 이 투쟁에 앞장서야 더 힘이 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 다수의 보편적 이익과 연결되고 대변한다는 점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 좌파의 구실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시행령(안) 발표로 참사의 진실을 확실히 묻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지 3주 동안 운동이 발전해 온 속도와 강도를 볼 때, 진실 규명 운동의 투지, 이에 대한 지지도 쉽사리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와 함께할 4월 24일, 그리고 25일 행동은 이런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경찰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길일 것이다. 그러려면, 다음 주초에라도 징검다리가 될 경찰 폭력 항의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김지윤·전문기

4월 18일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노동자-서민 살리기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가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민주노총은 4월 13일 84.35퍼센트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무대에 올라 “역사를 바꾸는 파업에 나서자”며 선포대회 시작을 알렸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이 투쟁 호소 발언에 나섰다.

“일년에 2천5백명씩 산업현장에서 죽어간다. 수년간 사람 죽어가는 문제 해결해달라 요구했는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고 있다. 24일부터 시작되는 총파업으로 무능 부패 박근혜 정권 갈아치우는데 복무하겠다.”(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다짐했다. 자본의 민낯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의 곳간은 넘치는데 노동자 서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의 삶, 노후 우리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정부는 전교조 연가투쟁을 불법이라 한다. 그러나 쟁의권도 없는 전교조도 노동자의 권리인 연가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헌법을 짓밟는 박근혜야말로 구속돼야 한다. 협박에 굴복하지 말자. 온전한 삶과 노후를 위해 투쟁하겠다.”(전교조 변성호 위원장)

“공무원노조는 파업권이 없다. 설립신고도 안 돼있다. 노동3권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투쟁이 급하기 때문에 그 대열에 섰다. 이길 때까지 싸울 거다. 정부가 탄압을 경고했다. 공무원노조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칼 빼지 않았다. 정부가 탄압한다면 더 큰 칼을 빼서 정부에 맞서 투쟁하겠다.”(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노사정합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4월까지 임금피크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고 5월까지 성과연봉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공부문을 돈벌이로 내몰고 있는 공공부문 2단계 정상화 지침 용납할 수 없다”(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무능, 무책임 넘어 비리 부패 정권, 박근혜는 나라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 금속노조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4.24 총파업을 결의했다. 15만 전 사업장 4시간 이상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지역별 결의대회에 참여해 선봉에 서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파업이고 박근혜와 맞짱 뜨는 투쟁 전개하겠다.”(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끝으로, 한상균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총파업을 선포하고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더 이상 구호에 그치는 총파업 하지 않겠다. 공무원 연금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뺏고, 노조를 공격하는 정부에 맞서 필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고 있다. ...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날 해외로 날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르기 전에 공무원 연금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했다. 부정부패 뿌리 뽑겠다는 가당치 않은 으름장을 놓았다. 진짜 손봐야 할 자들이 누구냐? ... 미친 정부를 끝내려면 미친 듯이 싸워야 한다.”

한편, 본대회에 앞서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노동안전 쟁취대회’가 열렸다.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의 세월호 참사를 막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재해로 고통 받고 있는 건설연맹 플랜트노조 부위원장이 산재와 비정규직 확대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작업 중지권 보장하라”, “기업 살인법을 제정하라”, “규제 완화 중단하라”,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를 함께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성우 아빠’ 최경덕 씨도 연대를 호소했고, 참가자들은 따뜻하고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3백67일 전에 금속노동자였다. 지금은 4.16 가족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유가족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도 똑같다.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이제 부모들에게도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책임자가 없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도와달라.”

세월호 인양 상징 의식이 시작됐다.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노동자들은 4월 24일 파업을 발판으로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고 결의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노동계급의 문제다. 희생된 사람들도 그렇지만, 참사의 배경에도 모두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는 체제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고유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과도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총파업 선포대회가 끝난 후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어진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참가하고 행진에도 앞장서 진실 규명 투쟁에 힘을 보탰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적극적으로 참가해 앞장선 일은 다른 많은 참가자들에게 힘이 됐다.

ⓒ<노동자 연대> 146호 | online 입력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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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밝혀진 부분적 사실들과 정황, 이 사회의 작동 원리들과 결합해 참사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법정 기구로 수사하고 그것들을 확정된 진실로 내놓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실종과 관련해 중대 재난에 대한 정부의 보고 지휘 체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은폐의 장본인이 박근혜 정부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세월호 집회 한 참가자의 팻말이 신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책임 규명은 조금이라도 참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법정 기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진실 파헤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셋째, 수사든 조사든 그 결과에 공신력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광주 학살이 전두환 신군부의 짓인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을 요구했다. 결국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과 유죄 판결로 광주항쟁은 ‘독재 정권의 민중 학살에 맞선 정당한 민중 저항’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 우파들은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실 규명 기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이 설령 애초 요구대로 통과돼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에 나서자는 주장은 일면적이다. 또한 폐기가 아니라 문구 수정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문구 수정 수준에서 타협하자는 운동 내 일각의 태도는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할 뿐이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진실 규명을 향한 장도의 첫 발



박근혜가 대통령령인 특별법 시행령(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확실히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기습이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항의 운동이 매우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4월 4~5일 도보 행진과 마무리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가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도 정부 시행령(안) 반대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지지가 50~70퍼센트를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분은 잠복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한 <노동자 연대>(136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런 전망 속에서 당시 <노동자 연대>는 불필요한 양보를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끈질기게 싸우자고 주장했었다.


지금 4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도 파업 요구안에 정부 시행령안 폐기 등 포함, 집회 적극 참가 등 세월호 참사 항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교조도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저지를 위해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가 투쟁 형태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시작한 “부패비리 발본색원” 작업은 김기춘, 허태열 등 친박 핵심 인사들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와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기 공세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박근혜는 늘 해 왔던대로 정부 시행령(안)을 쉽게 폐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편에 유리한 여론과 집회 참가 등 행동 규모 사이에 여전히 격차가 있다.


따라서 요구안 후퇴가 아니라 유리한 요소를 이용해 운동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문제가 민주노총의 파업과 연계돼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박근혜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세력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지면, 정부 시행령(안) 강행도 어렵겠지만, 설사 이를 통과시켜도 다시 개정하거나 심지어 특별법 자체를 새로 만드는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 유가족은 물론 특별조사위 이석태 위원장 등도 불복종하고 싸우겠다고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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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무상급식 중단 논란

밥 먹는 데 가난을 증명하라는 홍준표



<노동자 연대> 145호 | 발행 2015-03-30 | 입력 2015-03-28


최근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강성 우익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안보 위기 조짐이 다시 커지는 데다, 4·29 재·보선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당 대표 김무성은 한양대 학생 특강에서 “5·16은 혁명”이라며 찬양했고, 원내대표 유승민과 함께 사드 배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당 대표 출신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도내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는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예산 논란을 일으키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그 뒤 지역 내 반발로 올해 도 예산에는 다시 1천1백25억 원이 일단 무상급식 예산으로 반영됐었다.


그러나 3월 19일 새누리당이 다수인 경남도의회가 홍준표와 공조해 ‘경남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이미 편성된 무상급식 예산을 빼돌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빈곤 가정을 빌미 삼아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 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이간질 술책이다. 이른바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업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경쟁적으로 더 가난해 보일 서류를 수십 개 내야 한다.


무엇보다 홍준표의 도발은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고 따라서 복지 지출(특히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을 줄여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고통전가 담론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은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 약속을 거둬들이려고 한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부당하게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예산 충돌 논쟁은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지출을 한정된 교육 예산 문제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국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압력에 의해 시작된 무상급식을 무력화하는 한편,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파를 결집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홍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민의 뜻이라면 그대로 실시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래 놓고는 말을 간단히 뒤집었다. 다음 대선에서 우파들의 지지를 얻어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무상급식은 당연한 권리다 “가난하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는데, 무상급식아! 고마워.” ⓒ사진 출처 <교육희망>

홍준표는 부자에게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좌파이므로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공짜’ 밥을 주는 무상급식 정책을 좌파가 옹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었다.


이는 2010년 무상급식이 처음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우파들이 반대했던 바로 그 논리다. 당시 우파들은 이건희의 손자까지 세금으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 돈을 아껴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가정에 더 많이 복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논리를 앞세워 2011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비록 그 결과는 오세훈 본인이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별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의존성, 즉 굴종이다. 또, 선별 복지는 수혜 대상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끼리 ‘누가 더 가난하냐’를 갖고 경쟁하게 만든다.


보편 복지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측면 하나는 복지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당당하게 복지 축소에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신감을 갖기에 더 유리해진다.


홍준표 등의 궤변과 달리 보편 복지와 소득 재분배는 대립하지 않는다. 삼성 이건희와 이재용이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된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 복지를 늘리면 보편 복지와 소득재분배는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한 보편 복지 실현을 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무상급식 중단은 간접적인 임금 삭감이다



노동계급은 보편 복지 확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복지 자체가 노동계급에게는 간접적인 임금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게 자녀들의 교육비는 임금 소득에서 지출된다. 따라서 무상급식 실시는 간접적인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보편적 복지는 간접 임금, 즉 사회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무상급식 중단은 임금 소득을 하향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고 교육이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은 충분하고 균형 있는 영양을 공급해 건강한 신체(노동력)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의 일부이므로 체제가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보편적 급식은 이런 복지를 차별 없는 권리로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 위기 시대에 사장들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마당에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는 반(反)노동 정책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싸울까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려고 3월 27일 전교생이 등교를 거부하기로 했다. 경남 곳곳에서 홍준표에게 항의하는 집회와 1인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이런 저항들이 실제로 홍준표의 반동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려면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2011년 오세훈의 무상급식 반대를 막아 낸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11년은 아랍 혁명과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번진 광장 점거 운동 등으로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세력균형이 유리한 때였다. 한국에서도 반값등록금 운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에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했다.이런 배경에서 서울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보정당들이 단결해 반대 투표를 조직했다.


물론 그때보다 경제 안보 위기는 더욱 심화돼 지배자들의 반동도 더욱 거칠고 필사적일 것이다. 홍준표의 반동이 성공하면, 이미 예산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도 무상급식 후퇴가 확산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지 지역 의제로서가 아니라 전국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따라서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국가(중앙 정부)가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부자 증세를 명백히 해야 하고, 우클릭하는 새정치연합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이 성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일련의 파업들이 성공하는 것과 보편 복지의 확대와 방어를 결합시키는 것이 좌파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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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청와대 이전투구

 

 

<노동자 연대> 140호 | 발행 2014-12-22 | 입력 2014-12-20  

 

 

청와대의 이전투구 양상이 가관이다.

 

최근 소동의 시작은,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 등이 박근혜의 전 비서실장 정윤회에 관해 만든 보고서가 폭로된 사건이었다.

 

선출된 적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적도 없는 정윤회 등이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을 교체하니 마니 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모의했다는 내용은 정권의 부패 실상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보고서의 배후로 지목된 박근혜의 친동생 박지만 쪽 인사들이 보고서 작성 후 정권 요직에서 줄줄이 밀려난 것이 확인됐다.

 

이때만 해도 정윤회와 박지만 사이에서 벌이는 측근 간 권력 다툼인 것으로 보였다.

 

박근혜처럼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의 정부에서는 상명하복식 권력 집중 때문에 비밀주의가 만연하고, 따라서 측근들이 월권을 하고 전횡을 휘두르는 부패상이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나서서 ‘보고서 내용은 찌라시고, 보고서가 유출된 게 국기 문란이고 진짜 문제’라고 사실상 정윤회 편을 들었다.

 

박근혜의 발언은 그대로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이 됐고, 검찰은 박근혜가 불러준 대로 수사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비호 덕분인지 정윤회는, 검찰에 불려갈 땐 국가정보원장도 통과한다는 보안검색대도 거치지 않고 위세 있게 검찰청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빨리 덮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박근혜 스스로 측근 간 스캔들 문제를 자신이 직접 연루된 권력 스캔들로 키운 꼴이 돼 버렸다. 정윤회가 ‘진돗개가 되겠다’고 한 지 5일 만에 박근혜가 해명한답시고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또한 청와대 내 통제력에 이완 조짐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박지만 부부에 대한 1백 쪽 분량의 동향 보고서도 봄에 청와대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정윤회 보고서 작성자인 박관천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에 회의감이 든다”며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보고서 유출자로 몰린 최모 경위는 청와대의 압박이 부당하다며 자살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부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무리 떨어져도 40퍼센트라던 지지율이 12월 2~3째 주에는 3곳에서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특히 전통적 여권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눈에 띈다.

 

이뿐 아니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면, 여권에서 박근혜 세력과 이명박 세력 간 분열이 발전할 수도 있다. 지금 이명박계는 혹시라도 박근혜가 위기 모면용으로 자신들을 속죄양 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대응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일단 우익 내 균열을 봉합하려고 종북 몰이로 방향을 틀었다. 헌법 ‘죄판관’들은 당초 예상보다 선고기일을 앞당겨 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경제 위기와 통치자들의 위기감


 

박근혜의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대응은, 정권의 위기감을 보여 준다.

 

최근 세계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에게 본격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를 벌여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이 정부는 11월부터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공무원연금 연내 개악 시도, 의료 민영화,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 개악 등.

 

그런데 역시 청와대의 부패와 분열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하다. 정권 내부의 추한 균열이 드러나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고통전가 드라이브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ㆍ안보 위기에 겹쳐진 정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박근혜는 더욱 더 강성 우익적 본색을 강화할 것이다. 그것이 내부 균열 봉합에도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지배계급 처지에선 고통전가의 필요성이 절박할수록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단속할 필요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본인이 정치권에 들어 온 이래로 줄곧 강성 우파의 대변자였다.

 

따라서 진보당 해산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당 통장을 압류하고 보궐선거 일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하는 따위의 야비함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본색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수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것도 드러났다.

 

 

멈추지 않을 박근혜의 도발,

단호한 투쟁과 정치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 정치 위기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고통전가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런 공세가 우익만 강화시키기보다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동안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부패 인사 문제, 복지 공약 철회, 서민 증세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통치 정당성은 약화돼 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응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최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보듯 반기업 정서도 상당하다.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 돌진하려는 박근혜에게 이런 상황은 상당한 난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조직 노동자 운동이 선두에 서서 (비록 방어적인 과정이었지만)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가 쉽게 전면화하지 못하는 방어막 구실을 해 왔기 때문이다.

 

호각지세를 이룬 세력균형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는 도리어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자극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선진 노동자들의 정서도 이런 방향인 듯하다. 예상을 뒤엎고 한상균 후보가 1위를 한 민주노총 임원선거 1차 투표 결과가 좋은 증거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이 진보당 해산 결정에 위축되지 말고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만큼 단호하게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전면적인 투쟁을 호소하는 한상균 후보에게 투표해 당선토록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노동자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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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판 5분 전

측근들 자중지란이 의미하는 바



<노동자 연대> 139호 | 발행 2014-12-08 | 입력 2014-12-06
※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의 순서와 구조를 약간 바꿔서 올립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에서 난맥상이 불거졌다. 권력 실세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추문이 공개된 것이다. 친동생 박지만과 정치 입문 때부터 측근인 정윤회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시발점이 된 <세계일보> 보도의 출처가 ‘청와대 내부 문건’이었다. ‘유신 스타일’ 박근혜가 “국기 문란”이라고 길길이 날뛸 만한 일인 셈이다.


공교롭게 폭로 시점도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 정리해고 요건 완화, 복지 삭감, 노동자ㆍ서민 증세 등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파상 공세를 벌이는 중이었다. 박근혜가 사태 진화에 초장부터 직접 나선 이유다.


박근혜는 ‘정윤회 실세설은 루머, 문건 유출이 문제’라고 사실상 검찰의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세계일보>를 고소했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25년 만의 언론사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있다.


박근혜는 정권 핵심부에서 벌어진 분란 때문에 자칫 고통전가 공세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봤을 것이다. 레임덕이 예상보다 앞당겨 올 수도 있다는 걱정도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12월 4~5일에 공개된 여론조사들에서 국정수행 지지도가 떨어지고 부정적 평가가 늘었다.(한국 갤럽 조사에선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질렀다. 새누리당이 말을 아끼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추문에 정치 공세를 펼치지만, 그다지 시원치 않다. 기껏해야 세칭 ‘문고리 3인방’이라는 비서진을 ‘기밀 누설’로 고발하고, 전(前) 강원도지사 김진선이 정윤회의 횡포에 당한 피해자라고 부각하는 정도다. 김진선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주도하며 대중의 원성과 분노를 산 인물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부패 인사 문제로 여러 차례 곤경에 처한 바 있다. 또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항의 운동, 철도노조 파업, 세월호 참사 등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광범한 분노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근혜의 119 구실을 한 것은 새정치연합이었다.(노동운동 내 온건 개혁주의 지도부의 구실도 무시할 순 없다.)




박근혜의 아킬레스건 하나가 드러나다



사실로 확인된 것만 모아 보면, 박지만과 정윤회의 권력 다툼은 분명한 듯하다. 정윤회 측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로 보인다.


박지만 편에서 정윤회를 공격하는 보고서를 청와대 상부에 올린 뒤, 보고서 작성팀은 물론이고 박지만의 고교ㆍ육사 동기인 기무사령관과 국가정보원의 박지만 라인 간부들도 밀려났다.


게다가 정윤회의 비리 의혹을 조사한 문화체육부 간부들을 박근혜가 직접 좌천시키도록 지시했다. 정윤회의 전 부인도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박근혜와 유착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처럼 선출직도, 절차를 거친 임명직도 아닌 인물이 정권 내부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형 부패다. 권력을 독점해 비밀스런 소수 측근에 의존하는 (틀림없이 박정희에게서 배운)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이 큰 원인이다.


사실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은 더 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탄생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서 지배자들은 권위주의적 스타일의 강성 우익 정부를 선택한 것이다.


각별히 우익적이고 부패한 인사들이 이 정권에서 많이 등용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따라서 자극적인 보도를 좋아하는 기성 언론이 ‘기춘대원군’이니 ‘십상시’니 하며 실세가 누구인지 다루는 것이 노동운동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현상만 보고 진정한 분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 두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패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등장의 맥락은, 민주화 이전 구체제와 더 밀접하게 연관된 인사들이 중용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최고 통치자인 박근혜에게 충성하는 측근으로서 부패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통치 집단이 워낙 부패에 젖어 있는 자들이니 자신들끼리도 기득권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갈수록 치열하게 경쟁했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지속돼 왔고,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정권의 불안정 요인들은 여전하다. 


따라서 이번 추문을 덮는 데 성공해도 이런 일(부패와 내부 갈등, 폭로)은 반복될 것이다.


계속되는 추문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분출할 틈새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이 거세지면, 측근들끼리의 갈등이 여권 전체의 내분이나 지배계급 전반의 갈등과 경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 투쟁과 부마항쟁을 강경 진압했지만 결국 그런 저항의 분출이 계기가 돼 내분을 겪다가 무너졌다.


적들은 파상 공세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강력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고통전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강성 우익적 성격상 지금 정도의 타격으로 고통전가 공세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그에 따라 한국 경제도 위기에 빠져 들어가는 조짐이 완연하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노동자 계급 공격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지배계급을 뭉치게 하려고 그들 ‘공동의 적’(노동자 계급)을 향한 공세에 더욱 매달릴 것이다.


따라서 정권의 내분 때문에 공무원연금 연내 개악 등이 물 건너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저항 태세를 늦추는 것은 큰 실수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새정치연합의 협조를 얻어 의료ㆍ교육 등의 민영화를 강화할 서비스산업발전법 개악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결국 정권이 약점을 보일 때, 조직 노동운동이 저항의 태세를 굳건히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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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반년

수사권·기소권 포함 특별법 요구를 접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연대> 136호 | 발행 2014-10-20 | 입력 2014-10-18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특별법 야합 이후 세월호 항의 운동은 일시적 소강 상태다.


그동안 고비마다 원칙 있게 분투했던 가족대책위가 안타깝게도 애초의 특별법 요구 기조에서 후퇴했다. 유가족을 무시하고 배신하며 저질러진 두 주류 정당의 야합에 지치고 사기가 떨어진 듯하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온건파 리더들이 이를 추수하며 투쟁의 정당성과 목표를 손상시키는 것이 진짜 안타깝다.


박근혜 정부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은 단시간에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또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때 기회를 잡으려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몇 가지 쟁점에서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수사권ㆍ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수사기구를 요구해 온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반드시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인내심을 갖고 원칙 있게 싸우는 것이야말로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고 되살리는 길이다.


둘째,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데서 공범임이 드러난 새정치연합으로부터 독립적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정치연합 전 원내대표 박영선은 기소권을 요구할 수 없다고 7월부터 말했지만, 대책회의는 공식적으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셋째,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노동계급 사람들의 구조를 외면한 계급 차별 문제이기도 하므로 조직 노동계급 운동이 구심점 구실을 해야 한다. 각종 민영화, 규제 완화 반대 등 안전과 생명을 의제로 한 투쟁들과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책임을 손톱 만큼도 지지 않겠다는 박근혜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지겹다는 말은 마세요. 어떻게 자식이 지겨울 수 있습니까?”
―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여야 합의안 재평가? 정직해야 한다



수사권ㆍ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 요구에 5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했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으로 죄를 물어 재발을 막아야 한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못 믿겠다’, ‘국가가 참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광범한 분노를 집약해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책회의의 리더들 다수는 이참에 수사권ㆍ기소권을 포함하는 특별법 요구를 정리하자고 주장한다.


여야 추가 협상 과정에서 ‘특검 추천 시 유가족 참여 보장’ 등을 요구해, 10월 안에 ‘특별법’을 만들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기저하와 조급함을 드러내는 단견이다.


이런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일부 활동가들은 여야가 합의한 자료제출 요구권, 청문회권, 동행명령권 등을 매우 큰 성과라고 부풀린다. 


반면에 운동이 수사권과 기소권 등 ‘협소한’ 법 조항에 매몰된 것이 한계였다고 지적한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여우가 못 먹게 된 포도를 신 포도일 거라며 자기 위안하는 이야기)’처럼 후퇴를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로 들린다.


그러나 실용주의적인 후퇴를 정당화하려는 정직하지 못한 평가는 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


지금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동행명령권’이 발동됐는데도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백 번 양보해 그런 권한들이 어찌어찌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쳐도, 그 권한을 행사할 특별검사 자리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임명된다는 보장도 거의 없다.(새누리당은 그런 방식의 합의를 어떻게든 거부할 것이고, 새정치연합은 이번에도 그런 입장을 추수할 것이다.)


여야는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한다’고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국정감사에서 대한변협마저 ‘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험담했다. 특별법 합의에 대비한 포석인 것이다.



왜 기존의 진상규명 특별법 요구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가



첫째, 여야는 물론 박근혜 정부까지 진상 규명의 적들끼리 합의한 특별법으로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불가능할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운동은 철저한 진상 규명 요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설사 훗날 정권이 바뀐 뒤에라도 밝혀질 수 있다. 끈질긴 싸움 끝에 제주 4.3 항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1980년 광주 학살 등의 진실이 수십 년 뒤에 확인됐듯이 말이다.


둘째, 지금 세월호 참사 국면, 특히 진상규명 국면이 빨리 끝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바로 박근혜다. 최종 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국회에서 기만적 특별법이 통과되면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 지지자들에게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라, 결과를 지켜보며 가만히 있어라’ 하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법이 끝났다는 인식을 주면, (의도치 않더라도) 정권의 국면 전환을 수용하는것처럼 비쳐 동력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애초에 특별법 요구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서였다. 검찰과 국회,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으로는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 야합 과정이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이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해 준 과정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요구를 포기해야 하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일은 안전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참사의 책임자들은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의 수혜자들과 통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 기조를 지켜 원칙 있게 싸우는 것이 의제를 협소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윤지상주의) 체제의 비정한 진실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일각에선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 운동에 나서자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법률적 강제권이 없으면 이 참사에 연루된 사회 상층부 인사들을 강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의도치 않게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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