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이들이 현대차 노조에서 친사측 우파였던 전임 이경훈 지도부를 비판하며 등장한 문용문 집행부의 일방적인 노사 합의를 보고 실망했을 것이다.


올해 정부와 사장들이 전국적 규모에서 만도, 에스제이엠 등에서 노조 와해 공작을 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시켜 왔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 지도부는 부문적 시야에 갇혀 연대를 강력하게 건설하지 않았고, 민주노총 파업 기간에 단독으로 타결을 선언해 버렸다. 


왜 노동조합 지도부만 되면, 기대에 못 미치는 타협을 하려 할까. 단지 개인들의 개성 문제일까. 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노동조합 관료주의’라는 분석 틀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기업주와 정부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조건 등을 지키려고 만든 무기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지키려는 기구라서, 착취 그 자체가 아니라 착취의 조건을 놓고 투쟁하고 협상을 하게 된다. 


이런 노동조합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전투적인 노조 투사라도 노조 상근 간부가 되면 노조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협상이 주요 임무가 되고, 투쟁은 보조적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다. 중재와 화해를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에 물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측과의 교섭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면, 조합원에 대한 통제가 주요한 관건이 된다. 흔한 경우, 투쟁은 협상을 위태롭게 만들고 조직을 파괴할 수도 있는 골치아픈 일로 여기게 된다. 



△올해 5월 현대차지부와 사측의 교섭 상견레 ⓒ출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조 상근 간부들의 소심함은 투쟁의 판돈이 커지면 커질수록, 계급 간 충돌이 첨예해지면 첨예해질수록 더 두드러진다. 중재자로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조 지도자들의 보수적 습성은 개인의 자질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런 습성은 그가 수행하는 구실과 사회적 위치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정치는 바로 이런 사회적 기반과 현상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


이처럼 협상을 우선하는 태도가 현대차 노조 지도부로 하여금 불필요한 타협을 반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과 주간연속2교대제 두 쟁점 모두에서 현대차 사측이 매우 완강한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노조 지도부는 사측에 실질적 타격을 주는 투쟁을 조직해 첨예한 충돌을 감수하든지, 어떻게든 타협해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압력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이번 협상에서 드러낸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한 정규직의 태도 같은 게 아니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주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현장 노동자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게 된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규직지부의 조합원이 아닌 구조를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더 외면할 수는 있었다.

일부에선 주간2교대제를 정규직 쟁점, 사내하청 정규직화 문제를 비정규직 쟁점으로 구분하는 조야한 시각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간2교대제 쟁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 공장 전체 노동자의 문제다. 심야에 정규직이 퇴근하고 불꺼진 공장에서 비정규직만 일할리는 없지 않은가. 그뿐인가. 사내하청 문제도 비정규직 고용을 보편화해서 결국 정규직의 고용까지 불안하게 하고 협박하는 소재가 되는 노동자 전체의 문제다.

무엇보다 집행부는 사내하청 문제 뿐만 아니라 주간2교대제 쟁점에서도 불가피하지 않은 여러 후퇴를 했다. 상층의 관료주의와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 구분이 그래서 우선인 것이다. 


노동조합의 한계에서 비롯하는 이런 노동조합 관료주의 특성은 상층 지도자들의 시야를 자신이 속한 작업장의 경제적 문제들로 가두게 하는 데도 일조한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은 기층의 투쟁 압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선출되는 자신의 위치 때문이다. 그러나 중재자라는 본연의 위치를 위협받지 않을 수준까지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 


이런 식의 중재자 정치가 정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 자본과 노동의 이해를 의회에서 정치 협상의 방식으로 화해시키려는 사회민주주의 정치다. 사민주의 정당의 정치인들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관료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립적 좌파들이 노동운동의 양대 관료와 맺는 관계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더 전투적인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만으로 이런 반복되는 낭패감을 만회하려고 애쓰는 것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는 새로운 노조를 만들려는 것도 이런 한계를 반복하기 십상이다.


올해 문용문 집행부가 바로 우파적인 이경훈 집행부를 대체한 민주파 아니었던가. 이경훈 집행부도 전투적 현장파인 윤해모 집행부가 투쟁을 회피하고 불필요한 타협을 하다가 사퇴한 결과로 선출됐던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 진정한 구분은 현장조합원과 노조 지도부 사이에 존재한다. 


따라서 노조 지도부가 기층을 올바르게 대변할 때 지지하며 함께 싸우고,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으면 현장 조합원의 자주적 행동을 건설하는 것이 작업장 안에서 독립적 좌파들의 올바른 지침이다.  


이렇게 되도록 하려면 기층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과 전투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 위기 시대에 올바른 계급 정치의 관점으로 현장조합원들 사이에서 각종 지배 이데올로기와 부문주의에 맞서 싸우며 조직하고 선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노력과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다.


※ 이 글은 일부 축약해 <레프트21> 88호에 실렸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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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항쟁은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가 결집해 표현된 계기였다. 그때 광장에서 민주당과 달리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환영을 받았다. 강기갑 의원 등은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9월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서울시장 출마에 뜻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야권에선 “적수가 없다”(<국민일보>)고 할 만한 지지를 받고 있고 차기 대선주자 중 박근혜의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하며 앞서기도 하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런 안철수 현상을 두고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대부분 “정치 불신”, “정당 실패”, “정당정치의 위기”라고 분석한다.

지금 정치에서 일차적인 불신의 대상은 누구보다 실패했고 불신받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하고서 소수 부자를 위한 정책만 펴고 있기 때문이다. 

1퍼센트 정치가 99퍼센트 평범한 다수의 일자리와 복지, 즉 미래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갈수록 늘어나는 배경이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의 출발점은 반한나라당(MB·반보수·반재벌·반신자유주의) 정서다.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 집권 세력 … 나는 …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KSOI 여론조사에서도 “안 원장 지지층의 정당 지지도(복수응답)를 보면, 민주노동당(72.5%), 민주당(62.7%), 무당파(46.6%) … 이념 성향도 진보(57%), 중도(45.7%), 보수(23.2%) 순이었다.”[각주:1]

 
그래서 “‘안철수 현상’으로 표상되는 … 가치의 방향은 공익, 경제정의, 공정으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는 한귀영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 전문위원의 지적은 옳다.

그러므로 박근혜처럼 단순히 “한국 정치 전체의 위기”라고 뭉뚱그려 규정하는 것은 일면적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우파의 실패를 물타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MB 정서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박원순 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이 집권한 경험과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보여 준 모습 때문이다.

노무현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이명박 ‘비지니스 프렌들리’의 예고편이었고, MB 4년 동안 민주당은 “싸울 듯 하다가도 결국엔 무릎을 꿇[] … 갈짓자 행보”(시사평론가 김종배)를 보였다. 당장 한미FTA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노무현 추모 정서와 별개로 그 시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73퍼센트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자신의 가치와 이해를 대변해 줄 정치적 대안을 못찾는 것이다

한귀영 씨는 노무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중의 정치•경제적 인식은 이미 ‘좌클릭’하고 있는 데 반해, 정치권은 여전히 보수 편향에 머물러 있다”[각주:2]고 지적한다.

결국 거대 여당과 제1야당의 ‘통치’가 소수 특권층을 위해 다수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경험 때문에, 부패 소굴이 된 기성 정치 질서 바깥에서 “사회 공헌의 성공 신화”(<한겨레21>)를 써 온 안철수 원장, 박원순 후보 같은 이들이 지지를 받는 것이다.

김어준의 표현을 빌면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부자들의 집단과 사회 공헌에 앞장서 온 양식있는 인물들은 대칭의 존재로 보이게 마련이다. 

사실 이 MB 정서와 민주당 불신(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밑바탕에는 계급 문제가 놓여 있다.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를 희생시키는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 불신과 정당정치의 위기는 투표율 저하로 나타났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대선 투표율은 89.2퍼센트나 됐지만,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퍼센트였다. 2008년 총선 투표율은 과반도 안 되는 46.1퍼센트였다. 청년층의 투표율은 평균의 절반이었다.


계급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이를 두고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가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 ‘안철수·박원순 현상’을 초래했다. … 지금 갈등의 축은 세대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동과 고용의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의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최 교수는 진보정당이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수립한 뒤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기존 정당과 타협[했다면] … 상당한 힘을 갖는 주요 정당”이 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정당 노선에서 더 멀어져 “기존 정당과 타협”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야권연대’나 강령 후퇴,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야말로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존재감만 후퇴시켰다.

서울시장 야권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존재감이 미약했던 것은 이런 방향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각주:3]. 최근 야권연대로 쏠쏠한 선거 실적을 거든 민주노동당은 역설이게도 2008년보다 정당지지율이 낮다. 운동권 정당의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며 민주노동당에서 분열해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추구하려던 진보신당의 추락도 눈여겨 봐야 한다[각주:4].

대중의 정치 불신이 계급 문제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의 단견과 달리] 진보정당이 “노동자가 중심에 선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3세력으로 출발해 10년 이상 … 뿌리 내려온 정당이 있는가? … 진보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잠재적 세력이 우리 사회에 굳건히 존재한다.”(노회찬) “2004년 민노당의 역사적인 의회 진출 때도 국민들이 진보정당 사람들에게 열광했다.”(김영훈) 따라서 “민주노총 중심의 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권영길)

그러므로 문제는 애초의 좌표가 아니라 실제로 진보 개혁을 실현할 힘을 모으고 발휘하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각주:5].

그 점에서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후퇴하는 걸 막으려면최 교수의 제안[각주:6]보다는 “‘도로 민노당’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권영길 의원의 말이나 “진보의 개념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원래 설정된 좌표[] …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진보대통합 차별화된 정책과 담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권과 재벌을 무력화시킬 유일한 사회세력으로서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 건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진보정치의 신뢰 문제는 계급의식 문제일 뿐아니라 개혁 쟁취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며, 각국의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저항과 불만이 자라나고 있다.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월가 점령 시위 지지가 54퍼센트로 우익단체인 티파티나 오바마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이 ‘반한나라·비민주당의 진보적 제3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급진적 대안을 분명히 하되, 대중과 유연하게 대화[각주:7]하며, 진보 대중의 단결을 추구하며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버스’는 그처럼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한국에서도 보여 줬다. 좌파가 지금 후퇴하는 계급정치를 다시 전진시키려면 이런 과정에 개입해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 이글은 축약해 <레프트21> 67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1. 9월 19일 한겨레 보도. [본문으로]
  2. 최근 한귀영 씨가 박사 논문을 다듬어 출판한 ‘진보대통령 vs 보수대통령’은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국민참여경선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17,891명 참여자 중 467명만 지지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이 참가자를 조직했는데도 그 수치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최규엽을 찍지 않았다는 것인데, 어차피 사퇴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굳어지니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골수 지지자라도 어차피 사퇴할 후보를 적극 지지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본문으로]
  4. 어떤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에서 노회찬이 완주해 한명숙을 떨어뜨린 게 진보신당 추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때 노회찬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줏대 없는 사람이고, 한명숙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자기 능력을 과대망상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특정세력이나 인물의 지지율을 올릴 순 있지만 내릴 순 없다. 그리고 한명숙의 패배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결과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참패한 것은 이후 추락의 원인이 아니라 이전의 추락 과정을 확인시킨 계기에 불과했다. 의회적 사민주의로 가려던 목적의식적 기획인 진보신당 창당은 사실 2008년 총선에서 대표주자들이 낙선하면서 시작부터 일그러졌다. 조승수 전 대표의 당선조차 민주노동당의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자력으로 선거에서 주요 포스트를 확보할 수 없는 당의 능력을 최종 확인한 것이 2010년 6·2 선거인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바로 독자파를 위축시키고, 진보신당의 위기를 촉발한 것이다. [본문으로]
  5. 진보대통합의 실패, 민주노총의 무기력, 참여당 논란 등이 최근의 신뢰 추락과 존재감 상실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6. 최장집 교수는 정치란 의회정치이고, 따라고 정치의 핵심은 정당이라고 본다. 그래서 최 교수는 2008년 촛불항쟁이 정당정치를 위협한다며 정권퇴진으로 가지 말고 의회정치로 복귀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3년 후 당시 논쟁을 결산하면, 틀린 것은 최장집 교수인 것이 명백해 보인다. [본문으로]
  7. 이것은 사용하는 언어의 문제기도 하다. 예전부터 운동권 사투리에 대한 자각과 냉소는 있어 왔다. 문제는 진보의 논리적 개념들을 쉽게 표현하는 게 그 의미와 가치를 속류화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자유주의를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라고도 많이 사용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이 장기적 경제 위기 대응책이긴 하나, 단기적 호황 때도 신자유주의 전략은 지속되니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기도 하다. 자조적으로 보면, 이런 것이 상상력과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계급이란 단어가 그렇다. 매우 쉽지 않고 낯선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것처럼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 사회의 문제를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개념)은 없다. 지난해와 올해 유럽과 미국 시위에서 계급투쟁이라는 단어가 보편화하는 걸 보면 계급 같은 단어를 쓰는 게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주 써서 금기를 깨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 점에서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의원단 활동에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전략적 시각을 지닌다면, 계급 정치를 그 단어대로 선명하게 강조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계급 분단선이 더 커지고 계급투쟁도 고양되고 있으므로 더 쉬운 일이 됐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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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단결 해치는 금융노조 지도부의 비정규직 외면

 

6월 하순경 우연히 금융노조 규약을 살펴 보던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차윤석 위원장은 깜짝 놀랐다.

올해 1월 20일 금융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지부의 조합원 자격을 위협하는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그동안 산별노조답게 포괄적으로 조합원 가입 자격을 유지해 왔다.

“금융업, 금융관련 서비스업 및 이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자”는 물론이고,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및 금융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자”면 가입이 가능하도록 해왔다.

이 덕분에 계약해지와 재취업이 빈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시적인 해직 상태에서도 비정규직지부에 가입해 금융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각종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뀐 규약은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및 금융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자” 등 포괄적인 가입자격 조건을 모두 삭제해서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조합활동 관련하여 해고된 자”와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 된 자”의 조합원 자격은 살아 있다.

그러나 기간제 노동자들이 해고될 때는 대체로 기간 만료에 따른 개인별 계약 해지 형식을 띠므로 조합 활동이나 경영상 이유로 해고됐다는 점을 증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계약해지와 재취업이 반복되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경우 조합원 자격이 있었다 없었다 하게 돼 노동조합의 보호를 일관되게 받기 어렵게 됐다. 특히, 파견제가 조금씩 도입되는 현실에서 이런 규약 개정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바뀐 금융노조 규약 아래서 기간제 노동자들이 계약해지 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려면 해고무효소송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소송에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평균 2년이 넘게 걸리는 재판 기간과 블랙리스트에 찍혀 재취업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도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차윤석 위원장은 금융노조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하고 내용 증명 질의서를 보냈다.

3주 가까이 답변을 미루던 금융노조는 7월 27일 답변을 보내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으로 조합원이던 사람은 바뀐 규약에서 “필연적으로 조합원 자격이 박탈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비정규직 조합원 자격 박탈한 금융노조의 공문. 질의 2 관련 답변을 보시오.

결국, 차윤석 지부장 등 서른 명이 넘는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바뀐 규약에 따라 사전 협의나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금융노조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됐다.

금융노조 집행부는 2007년부터 내부적으로 비정규직지부 해산을 추진해 오다 여의치 않자 올해 비정규직지부를 사실상 없애는 수준의 규약 개정을 한 것이다.

이는 산별노조 취지에도 거스르는 것인데 예를 들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규약에서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구직중인 실업자”와 “기타 제조업에 근무하는 자”에게 조합원 가입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비정규직지부 차윤석 위원장은 “금융노조 규약 개악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므로 조합원들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지부는 8월 9일 규약의 원상 회복과 비정규직의 유니온샵[각주:1] 적용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투쟁은 노노 갈등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 조작된 분열의 씨를 뿌리고 있는 집행부를 향한 조합원들의 민주적 항의다. 

 

한편, 금융노조의 하나은행지부(정규직) 지도부도 황당한 짓을 저질렀다.


그동안 하나은행 시급제 노동자들은 사측을 대상으로 미지급임금반환소송(☞관련기사: 쥐꼬리만한 시급마저 훔쳐간 은행들)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 소송에서 하나은행지부 지도부가 재판부에게, 단체협약(보충협약)이 규정한 “전 종업원”의 범위에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노조가 앞장서 ‘비정규직은 우리와 같은 하나은행 종업원이 아니다’ 하고 매정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금융노조와 하나은행지부 집행부의 이런 태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크게 해치는 잘못된 행동이다. 금융노조 안에서 2만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국민은행지부와 몇몇 지방은행지부를 제외하면 이들을 정규직지부로 가입시키는 일도 감감무소식이다[각주:2]. 금융노조 지도부가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비정규직 악법을 더 개악하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업주들은 어떻게든 비정규직 차별로 노동자들을 이간질시켜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특히, 금융산업은 이명박 정부의 메가뱅크 재추진 입장과 우리은행 민영화 발표 후 또다시 인력 구조조정의 공포에 젖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는 행위에 금융노조 지도자들이 앞장서는 것은 노동자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용서받기 힘들다[각주:3].

금융노조 지도부는 규약을 재개정해 과오를 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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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21.com

  1. 입사와 동시에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이 되는 제도. 금융산업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현재 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지부 가입에 유니온샵을 적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내부적이지만 자신들이 방침으로 정하고 내가 비정규직지부장 직무대행일 때, 통보했던 내용이다. 자기가 한 약속도 지키지 않더니... 이들은 노동운동의 큰 오점이다. [본문으로]
  3. 금융노조 양병민 위원장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는 등 노동운동의 큰 길에서 벗어나는 행보를 계속 보여왔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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