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임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3.30 밥 먹는 데 가난을 증명하라는 홍준표
  2. 2010.05.17 복지국가와 세금 5
  3. 2010.04.28 시장임금과 사회임금, 복지국가 전략 3

경남 무상급식 중단 논란

밥 먹는 데 가난을 증명하라는 홍준표



<노동자 연대> 145호 | 발행 2015-03-30 | 입력 2015-03-28


최근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강성 우익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안보 위기 조짐이 다시 커지는 데다, 4·29 재·보선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당 대표 김무성은 한양대 학생 특강에서 “5·16은 혁명”이라며 찬양했고, 원내대표 유승민과 함께 사드 배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당 대표 출신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도내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는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예산 논란을 일으키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그 뒤 지역 내 반발로 올해 도 예산에는 다시 1천1백25억 원이 일단 무상급식 예산으로 반영됐었다.


그러나 3월 19일 새누리당이 다수인 경남도의회가 홍준표와 공조해 ‘경남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이미 편성된 무상급식 예산을 빼돌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빈곤 가정을 빌미 삼아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 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이간질 술책이다. 이른바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업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경쟁적으로 더 가난해 보일 서류를 수십 개 내야 한다.


무엇보다 홍준표의 도발은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고 따라서 복지 지출(특히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을 줄여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고통전가 담론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은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 약속을 거둬들이려고 한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부당하게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예산 충돌 논쟁은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지출을 한정된 교육 예산 문제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국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압력에 의해 시작된 무상급식을 무력화하는 한편,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파를 결집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홍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민의 뜻이라면 그대로 실시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래 놓고는 말을 간단히 뒤집었다. 다음 대선에서 우파들의 지지를 얻어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무상급식은 당연한 권리다 “가난하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는데, 무상급식아! 고마워.” ⓒ사진 출처 <교육희망>

홍준표는 부자에게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좌파이므로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공짜’ 밥을 주는 무상급식 정책을 좌파가 옹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었다.


이는 2010년 무상급식이 처음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우파들이 반대했던 바로 그 논리다. 당시 우파들은 이건희의 손자까지 세금으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 돈을 아껴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가정에 더 많이 복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논리를 앞세워 2011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비록 그 결과는 오세훈 본인이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별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의존성, 즉 굴종이다. 또, 선별 복지는 수혜 대상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끼리 ‘누가 더 가난하냐’를 갖고 경쟁하게 만든다.


보편 복지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측면 하나는 복지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당당하게 복지 축소에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신감을 갖기에 더 유리해진다.


홍준표 등의 궤변과 달리 보편 복지와 소득 재분배는 대립하지 않는다. 삼성 이건희와 이재용이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된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 복지를 늘리면 보편 복지와 소득재분배는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한 보편 복지 실현을 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무상급식 중단은 간접적인 임금 삭감이다



노동계급은 보편 복지 확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복지 자체가 노동계급에게는 간접적인 임금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게 자녀들의 교육비는 임금 소득에서 지출된다. 따라서 무상급식 실시는 간접적인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보편적 복지는 간접 임금, 즉 사회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무상급식 중단은 임금 소득을 하향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고 교육이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은 충분하고 균형 있는 영양을 공급해 건강한 신체(노동력)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의 일부이므로 체제가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보편적 급식은 이런 복지를 차별 없는 권리로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 위기 시대에 사장들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마당에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는 반(反)노동 정책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싸울까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려고 3월 27일 전교생이 등교를 거부하기로 했다. 경남 곳곳에서 홍준표에게 항의하는 집회와 1인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이런 저항들이 실제로 홍준표의 반동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려면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2011년 오세훈의 무상급식 반대를 막아 낸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11년은 아랍 혁명과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번진 광장 점거 운동 등으로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세력균형이 유리한 때였다. 한국에서도 반값등록금 운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에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했다.이런 배경에서 서울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보정당들이 단결해 반대 투표를 조직했다.


물론 그때보다 경제 안보 위기는 더욱 심화돼 지배자들의 반동도 더욱 거칠고 필사적일 것이다. 홍준표의 반동이 성공하면, 이미 예산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도 무상급식 후퇴가 확산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지 지역 의제로서가 아니라 전국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따라서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국가(중앙 정부)가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부자 증세를 명백히 해야 하고, 우클릭하는 새정치연합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이 성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일련의 파업들이 성공하는 것과 보편 복지의 확대와 방어를 결합시키는 것이 좌파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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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세금

기사들 2010. 5. 17. 17:53


최근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약과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 복지국가 유지 비용을 감당하려면, 누진세도 늘려야 하고, 세금 내는 사람의 숫자도 더 늘어나야 한다는 논리다.

<한겨레>가 14일 보도한 것(아래 표 참조)처럼, 70퍼센트가 넘는 많은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글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보편 복지국가를 유지하려 내는 세금 비용보다 돌아오는 복지 혜택이 더 많다면 해 볼 만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

즉, [개인들이 받는 복지 수혜 비용을 사회임금이라 부른다면] 세금(노동자들이 시장임금에서 내는) 순(純) 사회임금이 더 늘어나느냐 마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바탕해서 보편 복지를 위해 보편 증세가 필요하다는 논자들의 주장을 검토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 사회임금 문제와 관련한 더 초벌적인 내 분석은 (http://enlucha.tistory.com/40)을 참조하세요.]

대표적인 사회임금 중시론자인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정책보다 운동 … 노동조합 나서야”(<레디앙>, 423)라는 글에서 노동자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실장은 이 주장을 위해 근거 두 가지를 댄다
.

첫째
, 이명박의 감세 정책이 부자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 실장은 노동운동이 감세 운동을 했던 과거를 비판하며 감세가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인게 드러났으므로 이제 노동자를 포함한 증세를 요구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둘째
, “보편 복지처럼 증세 주체도 가능한 많은 사람일수록 좋다 … 중간계층이 공공재원 마련에 참여하며, 이들이 부자들의 재정 책임 이행을 압박하는 주체로 성장”할 것이다. 의무를 이행한 만큼 권리의식도 높아질 거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최근 내놓은 사회복지세 도입 요구안도 비판한다
.

상위 5% 계층만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 방안에 대해선 재검토가 필요하다. … ‘내라’보다는 ‘내자’가 훨씬 강력하다.” 

진보신당이 내놓은 사회복지세 요구는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고액 납부자에게 납부세액에 기초한 추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은 주로 5퍼센트 고액 납부 개인과 기업에 집중된다.

오 실장은
사회복지세의 납세 대상이 너무 좁게 설정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세의 수입 목표액은 이명박의 부자 감세액 규모다. 이명박이 부자들에게 깎아 준 만큼 부자들에게 도로 내놓으라는 것인데,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부자 감세를 원상 회복해야 한다는 오 실장 자신의 말과도 모순된다.

물론 세금을 더 내서라도 복지 혜택을 받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열악한 한국의 복지 현실이 진짜 문제다
.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먼저 증세하겠다는 의지를 제안하자는 오 실장의 “내자 운동” 계획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오 실장의 계획은 기껏해야 “병[증세] 주고 약[복지] 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첫째
, 순사회임금의 획기적 증대 없는 노동자 증세는 빈부 격차를 더 심하게 한다.

부자감세는 정확히 말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법인세와 소득세, 특별소비세 등을 감면하면서부터다. 그뒤 지금껏 소득세와 법인세는 다시 오른 적이 없다.(↘, 사실 법인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감면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2006
년부터 소득이 낮아 근로소득세가 면제되는 노동자 비율이 줄고 있다.(50→43퍼센트) 각종 세액공제 등 절세 혜택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소득세 총수입액에서 상위 10퍼센트의 비중은 5년째 늘어 2008년엔 64.3퍼센트가 됐다.

정부가 부자 세금을 깎아주고, 노동자에겐 절세 혜택을 줄여 근로소득세를 내는 노동자 수를 늘렸는데도 총 세금 수입에서 기업주를 포함한 상위 집단의 비중이 커진 것은 노동자들의 소득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뜻이다
. 불평등이 확대된 것이다.

임금 소득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일방적인 “보편 증세”는 빈부격차를 더 크게 할 것이다
. 오 실장이 이 점을 간과하는 건 시장임금과 대비한 사회임금만 강조하지, 진짜 중요한 순 사회임금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세금이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에서 나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보편 증세로 세금이 늘어 시장임금이 줄어든다면, 사회임금이 늘어나는 것이 조삼모사일 수도 있는 것이란 얘기다. 또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이 시장임금을 올리려고 벌이는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방식은 당연히 노동자의 지지를 모으기도 힘들어 보편 복지를 쟁취할 동력도 만들지 못할 것이 뻔하다

둘째, 먼저 세금을 올린다고 정부와 기업주들이 양보할 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 2002~2006년 사이에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는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이 기간 동안 정부 미납금액 규모가 37천억 원가량이다. 예상 보험료 수입액의 20퍼센트를 정부가 내기로 한 바뀐 법에서도 지난해까지 정부는 액수를 채우지 않았다.

전면 무상급식은 이미 예산이 있는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반대한다
. 무상급식이 다른 보편 복기 욕구를 자극해 부자 증세 압력으로 다가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기금 고갈론 사기극을 벌인 끝에 지급율을 낮췄다. 정부가 연기금에 기여해 수혜 대상을 늘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노동자들이 먼저 선 증세를 결의한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복지를 받으려면 결국 정부와 기업주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각주:1]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내자” 운동이 압력을 넣는 효과를 낼 거라는 생각을 순진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여전히 거친 투쟁의 과정이 남는다면, 자진 증세의 뜻을 모으고 선언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오히려, 권리(복지)에는 의무(증세)가 따른다는 저들의 복지 회피 논리에 도움만 주는 자충수가 되진 않을까.[각주:2] 오  실장 등이 진지하게 답해야 할 문제다.

오 실장은 “국가와 자본을 향한 요구투쟁 … 방식에만 의존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문제는 “요구 투쟁” 방식이 아니라 “요구 투쟁”이 더 강력하지 못했던 것에 있다.

“복지는 권리”라고 단도직입으로 말해야 복지병이나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저들의 담론 틀에 휘둘리지 않고 더 유리하게 싸울 수 있다. 뭉뚱그려진 사회임금 인상이 아니라 순 사회임금을 올리는 복지국가를 제안해야 한다. 그럴려면, 시장임금 인상을 가볍게 취급해선 안 된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감당 못 할 지경이 될 때에야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개혁을 거부하면 혁명이 올 것 같을 때
, 보편 복지를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불평등한 현실을 생생하게 알리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정부와 기업주에게 “보편 복지(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도록 고무해야 하는 게 좌파의 할 일이다. 노동자에겐 무엇이든 요구할 권리가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31호에 실린 내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기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1. 투쟁 없인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마련한 버스준공영제 같은 게 나올 수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환승할인 서비스로 편한 면도 있지만, 세금이 서민 교통료 절감이 아니라 버스 회사들 이익 보전을 위해 쓰인다. 완전공영제가 우리의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이것이 바로 1997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블레어 내각이 내세운 논리다. 이들의 ‘제3의 길’은 결국 사회적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포장된 버전(좌파 신자유주의)에 불과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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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들 중에 복지국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복지국가를 내세우는 정당들이나 사회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진 못합니다.

이유는 대체로 둘 가운데 하나일텐데, 하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지지해 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 때문일테고,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를 위한 비용 부담에 참여하기 싫어서일 겁니다.

그래서 복지국가, 달리 말해,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와 누가 그 비용을 댈 것인가에 답을 내놔야 합니다.

요즘 "역동적 복지국가"를 내세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세금을 더 늘려 복지를 하자고 합니다. 한국은 경제에서 정부 지출이 매우 낮은 나라인데, 이게 낮은 조세부담률에서 비롯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아직은 정부 적자 수준이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아서, 재정 적자를 단기간에 늘리며 보편적 복지제도를 도입해 혜택을 맛보게 한 뒤, 세금을 늘려도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최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내놓은 사회복지세 도입 제안에 적극 찬성했습니다. 이 사회복지세는 복지 부문에만 쓸 수 있는 목적세로 하고, 대략 5퍼센트 정도 고소득자에게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방안입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부유세 정책과 비교하면, 세금을 매기는 대상이 자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고, 기업에도 납세 의무를 부과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정책실장이 <레디앙> 기고 글에서 이 사회복지세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납세 대상을 너무 적게 설정했다는 겁니다. 이젠 노동자들도 복지 재정 마련에 참여하는 운동을 펼쳐야 가진 자들에게도 더 많이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건호 실장은 "내라"에서 "내자"로 바뀌어야 사회적 설득력을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오 실장은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노동시장에 참여해(고용되서) 일한 대가로 받는 노동소득'시장임금', 국가가 복지 등을 통해 제공하는 현금과 사회서비스 '사회임금'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사회임금이 OECD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8퍼센트에도 못 미친다는 거죠. 오 실장은 한국에선 사회임금이 시장임금의 매우 부차적인 보조 소득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고용에 목 맬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기업과 부자들이 복지 재원을 부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각주:1]


그래서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의 재원을 둘러싸고 계급 이해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회임금을 둘러싸고도 계급투쟁이 벌어지니까요.

그러나 오 실장은 이와 모순된 결론도 내립니다. 조직 노동운동이 시장임금에만 집착해 사회임금 인상을 외면해 문제라고 말합니다. 마치 시장임금 투쟁이 이기적이므로 이제는 사회임금을 올리는 데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시장임금이야말로 계급 이해가 선명히 드러나는 계급투쟁인데 말이죠.

결국 모순된 두 얘기를 종합하면, 사회임금 재원 형성에 노동계급이 먼저 참여하고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첫째는 그게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 먼저 양보해야 부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시장임금/사회임금 개념이 유용한지 잘 모르겠지만, 오 실장의 개념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오 실장의 논리 전개에 중요한 다른 개념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사회임금은 국가가 현금과 현물서비스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합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세 등의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를 냅니다. 실업자나 면세점 이하 저소득 서민들도 세금을 냅니다. 상품 가격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담배에 포함된 교육세도!) 등 소비세 성격의 세금을 냅니다. 아, 주민세도 내야죠.

즉, 사회임금은 시장임금과 완전히 구분되는 별도 소득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일부가 직접세, 사회보험료, 간접세 부담 형태로 이전하는 부분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임금 개념으로 말하자면) 중요한 건 순(純) 사회임금입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 사회임금의 재원에 노동자들이 부담한 액수를 빼고 순수하게 플러스로 지급받는 사회임금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2차대전 후 호황기에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을 계산하면, 거의 '0'=제로에 가깝습니다. 낸 만큼 받은 것에 불과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복지국가의 역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경기가 좋아 실업률도 낮고 소득도 높으면 (건강도 좋겠죠) 실제 복지 비용을 지출할 일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반면, 조세에 바탕한 보편 복지를 명분으로 스웨덴 노동계급은 꽤 높은 수준의 조세 부담을 했기 때문에 막상 순 사회임금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진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경제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낮아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복지국가'들은 경기 침체기에 늘어나는 비용 지출을 감당 못하고 복지 제도를 약화시킵니다.

예를 들면, 높은 보장 수준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국민)연금을 위해 호황기에 높은 비용을 부담했던 노동자들은 막상 자신이 늙었을 때, 더 열악해진 연금제도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스웨덴에서 복지 지출이 실제로 증가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이때 정부는 우파 정부였죠. 그뒤, 스웨덴은 좌우파 정부 모두 정부 수입에서 누진세를 약화시키고 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을 늘립니다.[각주:2]

덴마크의 실업수당은 원래 기간 무제한이며, 거의 실업 전 소득의 1백 퍼센트를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실업률이 올라가 실업수당 지출이 늘어나니까 무제한→9년→4년으로 후퇴했고, 이것도 다시 2년으로 줄이려 합니다. 실업수당 지급 요건도 강화됐습니다.

아래 표는 오 실장이 계산한 2005년도 사회임금인데, 스웨덴의 사회임금이 48.5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 개인 소득에서 납세로 가는 비율(개인 세금부담률)이 평균 42~43퍼센트라고 합니다. 얼추 비슷한 수준이면서, 순 사회임금이 소폭의 플러스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후 호황기보다 나은 건지 정확히 계산하진 못했지만 '복지국가도 후퇴한다'는 우파의 선전이 과장된 그림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사회보장이 충실한 나라에서 일어난 이런 역설 때문에 사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를 위한 복지 '천국'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해체한 것처럼 (그래서 더는 보편적 복지 확대가 유토피아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이런저런 약점이 있고 '이상'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동계급이 호황의 조건에서 투쟁으로 쟁취해 불황기에 싸우며 지켜 가는 하나의 역사적(=한계를 가진) 성과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위기에 내몰렸을 때조차 복지 후퇴에 대항한 대중 저항, 그리고 안정적으로 건강한 노동력을 수급 받아야 하는 자본의 필요가 더해져 교육이나 의료 부문 등은 크게 약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복지 지출 수준 자체를 줄이는 것은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 복지 축소와 복지 유지를 위한 재원 확보 문제는 계급투쟁의 중요한 전선 중 하나입니다. 

그 나라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보편적 사회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그 모델의 내용과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 지금 실천에 적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겠죠.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 재원 형성,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에 노동계급도 동의하고 참여하자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관련 <레프트21> 기사)[각주:3]

첫째, 지금껏 소득재분배 방식의 복지 비용 마련이 힘들던 이유는 기업주와 부자들은 가뜩이나 경제 위기인 시대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용을 지출하길 꺼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주머니에서도 돈이 나간다는 것 자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오 실장의 바람대로 그들에게 선양보론이 설득력을 얻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오 실장은 건강보험료를 먼저 올려서 정부에게 보장성 확대를 압박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모두 법으로 정해진 건강보험 재정 지원분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법정 기여금도 내지 않는 정부를 어찌 믿고 내 돈부터 먼저 낸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파들이 복지를 세금폭탄 식으로 설명하며 반대를 조장하는 논리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임금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사회임금 증대가 필요하다 해도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소득에서 시장임금 비중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임금을 보전하면서 사회임금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순 사회임금을 늘리도록 싸우는 겁니다. 그러려면, 시장임금 투쟁에서 잘 싸워야 합니다. 거기서 얻은 자신감과 조직력이 정치의식을 높이고 사회임금 투쟁에서 힘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셋째, 보편 증세론은 결과적으로 노동계급 안에서 소득 재분배를 하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라"에서 "내자"로 운동의 요구와 실천을 바꾸자는 오 실장의 전략은 고소득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더 많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대로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평균 노동소득이 낮아질수록, 면세점 이하 저소득층이 늘어날수록 대기업 정규직=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사회임금 부담은 늘어나야 합니다. 오 실장의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소득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 올 위험마저 있습니다.

현실은 '정의'롭지도 않을 뿐더러 '평등'하지도 않않습니다.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2008년 이후 부자들의 재산은 늘었습니다. 한국은 서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하면, 조세 수입에서 소득세 비중도 작고, 누진율도 낮으며, 자산 과세나 기업 법인세도 비중과 세율이 모두 낮습니다. 간접세 비중은 훨씬 높습니다.

복지국가 요구는 이런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자는 겁니다.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이 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대비 사회임금을 늘리자가 아니라, 부자들의 시장소득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해야 합니다. 책임은 저들이 져야 합니다.

저들이
노동계급의 노동력에 의존해 부유해졌기 때문에 이는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당한 요구입니다. 반대로, 우리끼리 소득 재분배하자는 건 '연대'가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편,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는 일부 논자들 가운데, 사회임금을 높여 안전망을 만들면 해고를 둘러싼 갈등이 줄지 않겠냐(쉽게 해고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임금이 보장되면 시장임금의 중요성이 덜해질 거라는 논리는, 복지국가가 겪어온 역사 과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스웨덴 모델의 근간이던 노사정 중앙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제와 임금인상 자제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거부한 정책입니다.

지금, 결과적으로 복지 지출 총액이 줄지 않았는데도, 자본은 줄기차게 복지국가를 공격합니다. 복지국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성된 모델 같은 게 아니라,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을 둘러싼 자본의 공세와 노동계급의 저항 속에서 끊임 없이 요동치는 '역동적'인 세력 관계의 산물입니다.

의회에서 주류 정치인들이 수용할 만한 정책을 설계하는 데 치중해서는 복지국가를 실제로 쟁취할 대중적 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부자 증세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더 나은 면이 많습니다.[각주:4] 


중요한 것은 요구 자체보다 요구를 실제로 쟁취할 수 있는 대중의 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선제 양보론은 이 운동을 만들어 내는 데 무력합니다. 노동자가 양보하면 기업주들도 양보할 거라는 발상이야말로 비현실적 관찰이고, 주관적 소망이며, 가망 없는 공상입니다[각주:5]

'공상에서 현실로'. 그게 제 결론입니다. 



  1. 인용한 사진은 2007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이명박의 건강보험료 납부 자료입니다. 이명박 소유 빌딩 관리인은 월급이 1백20만 원인데도, 이명박보다 더 건강보험료를 많이 냅니다. 복지 재원 마련을 하려면 이런 불평등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2. 소비세 등 간접세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므로, 소득 격차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진세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백만 원짜리 가재도구를 사는데, 10만 원 부가세가 붙는다면, 월 소득 1천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퍼센트를 부담하는 것이지만, 월 소득 1백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0퍼센트를 부담하는 겁니다. [본문으로]
  3. 실제로 오건호 실장이 정책위원으로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진보신당 등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1만1천 원씩 올려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법으로 정해진 국가보조금도 3조 원씩이나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장성 확대가 법으로 선행되지 않고 보험료부터 올려서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자는 것은 위험한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4. 어떤 분은 기본소득 등의 지속적인 복지를 위해 성장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되려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경제 위기도 저들의 탓이고, 저들의 부도 우리의 노동 때문이므로 복지 재원을 못 대겠다면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진하는 길밖에는 우리 삶을 지킬 길은 없습니다. 기본소득 관련 글은 링크된 포스트를 확인하세요. [본문으로]
  5. 이들은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포기하기 때문에 가장 비관적인 전제에서 가장 황당한 낙관주의로 치닫는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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