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악을 지지하거나 

모순된 태도를 취한 진보 정당들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공무원연금 개악은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을 역재분배하는, 전형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 시도였다. 따라서 노동계급을 대변하겠다는 진보정당이라면,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진보 정당들의 태도는 매우 부적절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악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지급률) 상향을 맞바꾸려 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야합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이해당사자들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부정확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최종 통과 때까지도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공식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독단으로 합의에 참여한 공무원노조 위원장·사무처장은 공식 기구에서 동의를 받지 못했고 결국 노조를 탈퇴했다.)


게다가 최종 통과된 ‘여야 합의안’에는 공무원연금 삭감의 반대 급부로 여당이 ‘약속’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도 빠졌다. 연금 개악 사기극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의당 지도부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런 일은 정의당 지도부가,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한다는 관점에서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가령,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조승수 의장 명의로 낸 논평을 보면,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생길] 재정 절감분은 향후 70년간 총 3백33조 원에 달할 전망으로 기금 불안정성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그 의의를 인정한다.


그런데 국회 표결에서 정의당 지도부는 기권(심상정, 박원석, 김제남, 정진후 등은 기권, 서기호는 찬성)을 선택했다. 공무원노조 활동가들과 전교조, 민주노총이 개악안에 반대하며 국회 앞 2박 3일 농성에 들어간 것에 압력을 받은 듯하지만, 공무원연금 개악 필요성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편, 노동당은 5월 23일 전국위원회에서 특별결의문(“기초연금 두 배로, 공무원연금 통합, 국민연금 하나로 평등한 노후 보장과 공적연금 강화 실현하자!”, 이하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20퍼센트(현재 물가로 40만 원 수준)로 상향하고 공무원연금 등을 국민연금과 통합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결의문’은 “공무원노조에서 연금수령액의 하향을 막기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공무원노조가 “2천1백만 명 국민연금 가입자와 ‘용돈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하다”고 비판한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삭감을 내 주고 국민연금 개선을 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은 일단 사실도 아니다.


노동당이 공무원연금 개악안 통과를 규탄하는 논평조차 내지 않은 것에 비춰 보면, ‘결의문’이 지향하는 공적연금 상향 계획은 공무원연금 삭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과 달리 공무원노조의 투쟁에 지지를 보냈으나, 실천적 결론은 마찬가지로 개악 용인인 것이다.


한편, 이날 전국위원회는 노동당 내에서 정의당 등과 통합을 모색하는 진보결집파와 그 반대파 사이의 불신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란 것을 보여 줬다. 진보결집파는 거의 모든 표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 ‘결의문’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지지 받았다(63명 중 50명 찬성). 진보결집파는 물론이고 당내 좌파를 자임한 신좌파당원회의 상당수도 찬성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과 연관 단체인 좌파노동자회는 “공적연금 강화는 공무원 노동자의 희생이 아닌 ‘세대 내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공무원연금 개악에 반대했다.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들의 압력을 의식해 개악 반대 입장을 취한 반면, 정당에서는 국민적 여론을 의식해 개악을 사실상 용인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인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보인 것이다.



좌파는 사회연대전략의 발상에 반대해야 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복지 재원 부담 책임을 한사코 회피하는데다가 당장의 투쟁 수준에서는 이를 강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 함께 더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도덕적 가치’를 우선해 노동계급도 재원 부담에 동참하자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러나 나눔 같은 도덕적 가치를 앞세우는 것은 많은 경우 그렇듯이, 사회 모든 구성원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 경우엔 ‘계급 간 조화(협력)’일 것이다.


또한 지배자들의 재정균형 논리를 노골적으로 받아들여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보편 증세를 내놓는 더 온건한 경우도 있다.


정의당과 노동당 지도부 중 상당수가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해 왔다. 


계급 간 복지 확대 대타협을 위해 노동계급 내 일부(상대적 고임금층)의 (국가와 기업주에 대한) 소득 양보(임금 인상 자제와 증세)를 요구하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의 핵심 얼개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 연대> 149호 “정규직 양보론과 ‘사회연대전략’, 무엇이 문제인가?”를 참조하시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복지제도가 유용한 이유 하나는 그것이 계급 간 소득재분배 구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편 증세’론은 계급 간 불평등과 재분배 문제를 모호하게 한다.


또한 보편증세론으로는 노동계급 내부도 단결시키기 힘들다. 노동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실에서 세금 인상에 동의할 노동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도 증세에 동참하라는 압력은 노동계급 내 상대적 고임금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회연대전략이 실제로는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양보를 강조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발상은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계급의 투쟁 능력에 대한 비관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계급 간 협력을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잘 조직된 부분을 고립시켜 복지 확대를 쟁취할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


※ 사회연대전략의 모델로 알려진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 국가경쟁력(노동생산성) 협조를 매개로 수익성 높은 부문의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해 두 마리 토끼(계급 간 연대=계급 타협, 계급 내 연대=동일임금)를 잡으려 한 것이다.


이 제도는 임금 억제 기능 때문에 기업주 다수의 지지를 받았으나(고수익 자본 일부는 임금 통제가 숙련 노동력의 유인[노동력의 수요 쪽 경쟁력]을 제약한다고 보고 부정적이었다), 경제 침체기에 노동과 기업주 양쪽 모두의 압력 속에서 파탄 났다. 




☞ <노동자 연대> 150호에 실린 기사(http://wspaper.org/article/15912)에 지면 제약상 생략한 부분 일부를 다시 덧붙여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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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노동당 전국위가 통과시킨 연금 관련 결의문은 모순투성이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은 정당하다면서도 정작 내놓은 방안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전제로 해서 기초연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노동당 전국위 결의문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아 이를 지렛대로 국민연금 개선을 주장하자는 논리에 반대하면, 논리적으로 국민연금 개선도 어렵게 만든다’는 예측이 옳았다는 산 증거다. 


다만 기초연금의 액수를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20% 수준인 40만 원으로 올리고 보편적 지급을 하자는 것은 맥락과 관계 없이 지지할 만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를 위해 또 다시 보편증세와 보험료 확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편증세를 통한 보편복지 확대는 공동구매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장하준 식 복지 개념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계급간 재분배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에 약점이 있다. 보편증세로는 노동계급 내부도, 노동자들과 서민 대중을 단결시키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무원연금 개악은 자본에서 노동으로 소득을 역분배하는 전략이다. 이를 막는 것에 일차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문제를 흐리면서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를 지금 의제화하자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정신승리’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새누리-새정치가 합의한 안이 얼마나 공무원연금을 개악한 것인지는 http://wspaper.org/article/15868를 보시오. 한마디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사회적 연대인가???)


그럼에도 노동당 전국위 결의문이 노골적으로 여야 합의(개악)안을 지지했던 정의당이나 국민모임의 입장과 같은 것은 아니다. 기초연금의 대폭 상향과 지급의 보편화나 연금 기금에 대한 기업·정부의 책임을 추가로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아래 링크한 글의 필자인 노동당원이 노동당이 새정치, 정의당 등과 유사한 입장이 됐다고 한 것은 조금 과한 듯하다.(맥락상 이런 비판이 이해는 가지만) 


같지 않다고 해서, 실천적으로 더 우수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결과적으로 노동당 전국위 연금 관련 결의문은 개악 저지에 바탕한 공적연금 강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천적으로는 개악을 막으려고 (저들의 국회 일정상)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려는 공무원·전교조 조합원들 발목 잡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노동당 식의 기초연금 상향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동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자충수다. 자기 임금(노동자들의 연금은 지급이 미뤄진 임금이다!)도 못 지킨 사람들을 어떻게 기초연금/국민연금 투쟁에 동원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 임금 삭감에 동조한 사람들이 그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그러니 큰 틀에서는 정의당처럼 현재의 투쟁전선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아래 링크한 노동당원의 글이 노동당 전국위의 결의문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고 (공무원연금을 지렛대로 국민연금을 상향시키자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그 논거도 옳다.


노동당 전국위는 한마디로 모순된 태도를 내놓은 것이다. 경제 위기의 시대에 노골적으로 체제의 수호자 구실을 하는 우파 개혁주의와 달리, 좌우 양쪽의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수줍은 개혁주의, 즉 좌파 개혁주의의 모순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런 모순과 동요가 노동당의 내분 사태에 깔린 정치적 배경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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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결의문에 대한 노동당 당원의 비판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58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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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전국위원회 공적연금 강화 특별결의문]


기초연금 두배로, 공무원연금 통합, 국민연금 하나로

평등한 노후보장과  공적연금 강화 실현하자!



공무원연금 개편논의가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이 와중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강화하여 모든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고자 하는 길도 방향을 잃고 말았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은 2007년 국민연금 삭감, 2014년 기초연금 개악, 2015년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이어지는 ‘공적연금 하향평준화’의 완결판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적연금에 대한 철학도 없고, 당사자와 합의도 없으며, 자기가 한 약속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다.


초고령사회에서 연금이 노후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노조에서 연금수령액의 하향을 막기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150만 공무원(사학연금, 군인연금 포함)보다 형편없는 수준의 연금을 받고 있는 2100만명 국민연금 가입자와 ‘용돈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일 여야가 서명한 합의문에는 “국가 책임 하에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노후대비를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급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당 전국위원회는 연금개혁이 표류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며,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여야, 정부와 정치권에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국민적 논의를 모아 나갈 것을 촉구한다.



[공적연금 개혁의 목표] 모든 공적연금의 목표는 재정절감과 자본성장이 아니라 국민들의 전 생애에 걸친 소득보장에 있다. 노후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소득보장체계를 △선별연금에서 보편연금으로, △용돈연금에서 생활연금으로, △사적연금에서 공적연금으로 전환하고, 이를 전제로 보편적 복지증세와 목적세 신설, 사회보험료 확충이 필요하다.


1. 기초연금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기초생활보장 수급 여부에 상관없이,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A값)의 20% 수준(월 40만원)로 지급해야 한다.


2.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에 대한 보험료 지원 △출산, 돌봄, 군복무 등 공익적 활동과 실업, 휴직 등의 경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3. 노후소득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향상과 이에 따른 적정 보험료 기준에 대한 합의를 촉구한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 산정방식 변경 △보험료 소득상한액 인상 또는 폐지 △연금 지급액의 상한 설정 △고용보험 방식의 보험료 기업책임 확대 △연금세 및 공적연금소득세 신설 등이 필요하다.


4. 보편적 연금 실현 및 재분배 강화를 위해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자. 아울러 이 기회에 △공무원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참여권리를 보장하고 △고용보험/산재보험을 함께 가입하고, △국민연금보다 초과하여 납부하는 보험료(현행 소득이 5%)에 대해 기존 직역연금공단 등에서 운용하여 부가적 연금으로 지급하자.


5. 연금 통합과 함께 기존 특수직역연금에 명시된 국가의 지급의무규정을 국민연금이 승계하여야 한다.


6. 노동자의 퇴직적립금을 사보험 퇴직연금 상품이 아닌 국민연금공단에 추가납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여 해당 퇴직적립금에 대한 추가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려면 지금부터 고용안정과 복지증세가 필요하다. 보험료를 크게 올리지 않아도 전반적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임금이 오르며 및 가입자 증대가 가능하다. 여기에 ‘버는 만큼 내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면 연금보험료 수입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더불어 보육, 교육, 주거, 의료 등 복지 확대를 통한 부양률 개선과 노후복지 강화 역시 공적연금 강화에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미래세대 부담을 늘리는 건 정부의 저임금-저복지-저연금 정책이다. 당장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철회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누리과정 무상보육 대란에서 보듯이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로 드러났다. 기업과 고득소자부터 사회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세 등 목적세 도입, 법인세·소득세 강화 등 보편적 복지증세가 절실하다.


공무원연금 폐지, 기초연금 두배로, 국민연금 하나로, 공적연금 강화하고 노년이 기다려지는 세상을 노동당이 앞장서 실현하자!



2015년 5월 23일

노동당 전국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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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노동ㆍ정치ㆍ연대’가 출범했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노동정치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만든 중앙추진체다.


연석회의에는 공공운수현장조직(준),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다함께,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포럼, 전국현장노동자회, 혁신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가입해 활동해 왔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전국에서 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가입을 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노동기본권과 고용안정 보장, 민영화 중단, 보편복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경제협정 폐기, 노동악법ㆍ반민주악법 폐기 등 노동계급의 당면 문제 해결을 기본 과제로 내놓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 진보정치의 분열로 ‘각개 기어가기’가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그것은 또,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왜소화시켰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의 전ㆍ현직 지도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모여서 노동계 정당을 재건해 노동자 정치운동의 사분오열 상황을 극복하자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날 출범식에 권영길ㆍ단병호ㆍ이수호ㆍ임성규ㆍ신승철 등 민주노총 전ㆍ현직 위원장들과 정의당ㆍ노동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것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단결 염원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진보정치 운동의 분열이 남긴 정치적 상처가 아직도 심하기 때문이다. (※ 물론 아직은 역량상 당장 당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활동을 할 수는 없다. 단체와 취지를 알리는 것과 함께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연계한 공동 선거대응 협의틀을 만드는 게 당분간은 주된 활동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노동ㆍ정치ㆍ연대의 출범은 노동운동 내 주요 지도자들이 진보정치의 분열과 그로 말미암은 주변화를 극복하려고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배신의 역사?



한편, 이런 재편과 단결을 위해서는 옛 민주노동당 등 정치세력화 운동의 최근 과거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평가하는 일도 중요할 테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민주노동당과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지도자들의 온통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로만 평가한다.(이런 평가에 따르면 노동·정치·연대의 출범도 과거의 재탕일 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또, NL계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대중과 배신적 지도부’라는 구도로만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으론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7년 무렵까진 선진 노동자들 속에서 이 당이 성장했고, 또 선거적 성공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배신적 지도자’론은 개혁주의를 지지했던 대중을 결국 수동적 허수아비로 보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로 빠질 뿐이다. 올바른 강령으로 무장한 좌파가 우파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지도권만 잡으면 노동운동의 정치적 약점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종파주의와 선전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배신과 음모로만 설명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체제 안에서 겪는 노동자들의 소외, 즉 자신들이 사회를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과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개혁주의를 벗어나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종파적ㆍ선전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개혁을 위한 투쟁 속에서 대중 자신이 자신감과 조직을 구축해 가는 과정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좌파가 대중과 교류하며 실천 경험 속에서 올바름을 입증해 가는 끈기 있는 노력과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회피했기 때문에, 2000년대 내내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그저 선전주의적 비판에 주력했던 일부 좌파들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후에 생긴 정치적 공백을 노렸던 일부 좌파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험뿐 아니라 그 바깥 좌파의 경험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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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박근혜, 노동운동이 막아야 한다 ①

박근혜의 반격에 어떻게 맞설까 



박근혜는 10월 내내 불편한 한 달을 보냈다.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동원된 정치공작과 선거개입의 실체가 며칠에 한 건씩 드러났고,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정권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정권 탄생의 절차적 정통성도 의심받는 판국에, 당선을 위해 급조해 내놨던 각종 복지 공약을 대놓고 파기하다 보니 60퍼센트가 넘던 지지율도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 대한 박근혜의 답은 부패한 자들로 친정체제를 더 강하게 구축하는 것이었다.


검찰총장에 김기춘 라인의 김진태, 감사원장에 김기춘과 동향인 판사 황찬현, 새 복지부 장관에는 국민연금 개악과 의료 민영화에 찬성하는 문형표를 내정했다.


인사청문회 시작도 전에 김진태는 부동산 투기, 로펌 고액 수수 의혹이 나왔고, 나머지 둘도 세금 체납과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됐다. 가히 박근혜의 부름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들이다.


박근혜는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장도 공안통으로 교체했다. 껄끄러운 수사 라인을 다 쳐내고는 이제 와서 의혹과 문책을 “수사 결과에 맡기고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을 못 믿게 만들어 놓고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모순이 사람들에게 쉽게 먹힐 리 없다. 그러니 실제로는 더욱 강성우파적 대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침 10ㆍ30 재보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여세를 이용해 공세를 강화하려고 한다. 재보선에 참패해 기가 죽은 민주당도 ‘이석기법’*에 합의하며 박근혜에게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애초 승패가 뻔한 곳에서 이긴 선거가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순 없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힘이 실렸을 때 공세의 고삐를 쥐려는 것이다. 공무원노조 탄압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급하게 서둘렀다고 보는 이유다.


박근혜가 공무원노조를 문제 삼자 검찰은 곧바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총체적 우파 공작으로 집권한 정부답게 ‘물귀신’ 작전도 조직적으로 펼친 것이다.


곧이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박근혜가 이런 사법 탄압으로 노리는 목표는 명백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내핍 강요 본격화를 앞두고 저항의 섟을 죽여 반동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안전을 위해 강성우파식 법질서 통치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헌법재판소 구성이 아무리 우파적이라도 노동ㆍ민중 운동에 강력한 기반이 있고 자력으로 국회의원도 만들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행정 절차와 판결만으로 해산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진보단체들이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탄압을 지속해도 박근혜가 반동의 본편을 시작하려 할 때가 오히려 가장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절차적 정통성에 불신을 받는 정권이 대중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 즉 고통전가와 내핍 정책을 본격화하는 것이 축적되는 불만에 저항의 불씨를 당기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 연금 삭감, 고용 ‘유연화’ 등 내핍과 고통전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조직 노동자들의 운동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런 위험을 모를 리 없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민주당에게 국가 정체성과 헌법에 대한 충성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각종 내핍과 반동 조처들을 변변치 않으나마 ‘국민적 합의’로 포장할 수단, 즉 국회에서의 처리라는 모양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편, 국가정보원이 유일한 깃털인 줄 알았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갈수록 다채로운 깃털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에 이어 행정안전부와 노동부의 대선 개입도 드러났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인터넷 공작은 이미 2008년부터 시작됐고, 국정원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새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이 총체적 부패 행위들의 꼭대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보통 사람들이 볼 만도 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원 개입 여부에도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이후 마녀사냥으로 선관위노조를 민주노총에서 탈퇴시키고 사실상 와해시켰다.


이런 의구심들이 이제는 합리적 의심이 되고 있다. 박근혜가 갈등 끝에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찍어낸 것도 더욱 의문을 증폭시킨다. 진실 규명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미약하나마 진실의 일부를 캐냈던 검찰 수사라인이 정권의 쳐내기로 붕괴한 마당에 특검 요구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박근혜가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언급한 것도 이런 특검론을 경계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특검에 대한 바람이 커진 것은 박근혜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검찰을 못 믿게 만들어 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고위 공직자 비리를 수사할 ‘상설특별검사제’를 공약했던 박근혜가 특검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없다.


특검 요구에 동의하지 않던 정의당은 특검 요구로 선회하며 야당들이 공동으로 특검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안철수와 민주당이 연이어 특검 요구 대열에 합류했다.


정의당과 안철수 쪽은 국정원 개혁 법안도 공동으로 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새누리당 김태흠이 안철수의 특검 요구 기자회견을 두고 ‘3권 분립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전형적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발언이다.


새누리당이야말로 최근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무죄 판결 등을 두고 ‘종북 판사’ 운운했던 자들이다. 또한 특검은 법을 만들어 하는 것이므로 이를 요구하는 것이 3권 분립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특검이 진실을 밝히기는 힘들다. 검찰도 쳐내는 마당에 제대로 된 특별검사를 박근혜가 임명해 줄 리도 없다.


이런 약점들 때문에 그동안에도 특검이 정치ㆍ경제 권력의 핵심을 제대로 파헤친 사례가 없다.


국가권력이 동원된 음모와 공작은 국가기구가 분열해 내부 제보자가 생길 때 가장 효과적으로 폭로되곤 한다. 국가기관의 내분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것은 주로 대중운동의 힘이다.


국회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벌이는 운동, 특히 조직 노동운동이 중심이 돼 박근혜 정부와 우파 단결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때만 저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며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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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정치공작 실체와 우파 균열 

총체적 反박 전선이란 이름에 감춰진 문제점 



□ 반박근혜 계급연합이 필요한가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범국민야권연대”를 제안했다.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NGO들이 연합하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제안을 한 바 있는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이를 환영했다.


물론 강성 우파 정부 아래서 제한된 조건부 전술 연대가 불가피하게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전략적 연대라면 다르다. 그것은 바로 민주당이 친자본주의 정당으로서 이들과 맺는 계급연합은 오히려 우리 편(노동계급과 진보운동)의 요구를 삭감하게 하고 투쟁을 자제하게 만들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은 이미 이명박 정부 아래서 연립정부까지 염두에 둔 민주당 중심의 선거연대를 추구하다가 독자적 투쟁과 요구마저 종속되는 실패를 겪었다. 


당시 진보운동 지도자 다수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위해 노동운동의 요구 삭감하고 계급투쟁 방식을 회피했다. 결국에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위해 진보를 분열시키기까지 했다.


정치 양극화 상황에서 진정으로 왼쪽의 목소리를 대변할 세력이 약해지면서 박근혜의 우파 결집을 뒤흔들 수도, 복지·경제민주화라는 거짓 사탕발림도 폭로할 수 없었다. 투쟁마저 종속시킨 계급연합 ‘전략’은 선거에서마저 실패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게다가 ‘MB만 아니면 된다’는 논리로 김종인, 이상돈 등 MB 비판적 보수주의자들을 띄워주다가, 이들이 박근혜 캠프로 가면서 박근혜만 포장해주는 미련한 짓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대선개입 촛불이 기회를 놓친 것도 민주당에 의존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작 민주당은 장외투쟁 시늉만 하다가 얻은 것도 없이 국회로 들어가버렸고, 지금은 문재인의 박근혜 비판 성명까지 만류할 정도로 못난이 행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열과 온건화로 약화된 진보정치 세력은 박근혜의 약점과 민주당의 무능을 전혀 성장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야권연대에서 배제된 통합진보당도 나름의 “총체적 반박근혜 전선”론을 내놨다. <민중의 소리>는 사설에서 “민중의 대오가 결합하고, 야당과 종교계가 힘을 합치게 된다면 1987년의 국본을 능가하는 한층 위력적인 민주수호 범국민연대가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민중운동의 구실을 더 강조하기는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민주당과의 계급연합 결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듯이 계급연합, 즉 계급 화해 방식으로는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1퍼센트 부패우파의 계급 이익을 지키려고 등장한 박근혜 정부의 공세를 막을 수 없다. 


<민중의 소리>가 예로 든 1987년 당시에도 보수 야당들은 거리 항쟁의 급진성과 애써 거리를 두려 했었다. 개헌 등을 다룬 정치협상에서 당시 민중항쟁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 노동운동은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런 투쟁이 박근혜를 압박하는 것으로도 민주주의 유린, 경제 위기 고통 전가의 몸통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광범한 민중의 불만을 대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총체적 정치 공작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동력도 만들 수 있다. 


이런 균형있는 관점에 서야 민주주의 투쟁, 복지 확대 등의 염원과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투쟁, 고용안정 등 노동자 투쟁이 결합될 수 있다. 그래야 박근혜를 내세운 1퍼센트 통치자들을 진정으로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10.25)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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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현 지도부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서 개혁주의의 우파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줬다. 8월 28일(수) 당일만 해도 이정미 명의의 논평은 신중론이긴 했으나, 기계적 양비론은 아니었다. 비판의 무게중심은 국정원 비판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상무위원회에서 기조가 바뀌었다. 아마 하루종일 이석기 의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도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도] 녹취록의 존재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단순 국가보안법 사건이 아니라 ‘내란음모’ 건이니 최근 부쩍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해 온 정의당 리더들은 진보당을 애매하게 방어하는 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듯하다. 


자칭 ‘신중한 태도’를 공식 방침으로 하더니 급기야 ‘헌법 밖 진보는 보호할 수 없다’(심상정)는 발언을 거쳐 결국 체포동의안 찬성까지 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보당과의 경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진보당을 밀어내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제1파트너가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부차적 요소로 본다.)


천호선, 이정미, 박원석 등 현 지도부들은 수사를 받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며, 자신들을 진보당에게 그걸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국정원에게 현역 의원이 끌려가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책임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심지어 이는 수사기관에 범죄의 입증 책임이 있다는 부르주아 근대 법 논리에조차 못 미치는 발상이다.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렇다. 4·19 혁명광주민중항쟁 등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정해 놓은 나라에서 진보정당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황당하다


물론 소수의 무장 음모와 다수 민중의 봉기는 다르다그러나 이런 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기존의 헌정질서가 정당하냐 아니냐는 헌법에 대한 물신숭배가 아니라 정치적, 즉 민중의 의지를 실천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결국, 정의당 지도자들이 [아마 좌우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확고히 기존 국가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강요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상만 허용하고기존 체제 바깥을 상상하고 전복하려는 사상에 자유가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국가가 허용하는 사상에게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심 원내대표의 말대로라면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서도 무능할 수밖에 없다. 헌정질서를 지키려 대북심리전을 했다는 국정원의 국내수사권을 결국 인정하게 되므로 국정원 개혁을 일관되게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술 더 떠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 날 “아직도 골방에 앉아 1980년대 사회변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이런 후퇴를 정당화했다


국가가 보기에 ‘정의롭지 않은 논리는 골방에 모여 자신들끼리 한 토론마저 여론재판을 받고 비밀경찰과 사법기구의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정의당 지도자들의 엘리트적 국가 사랑은 사회민주주의 최신 버전의 ‘국가 공동체’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적 공동체’를 위협한 세력에게까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표상은 87년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근거해 이들은 진보당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공동체를 뒷전으로 놓는 ‘진영 논리’라고 하고 있다. 즉 진영 논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사민주의의 ‘국가·국민주의’(국민vs계급)의 새 버전이다. 공동체를 위해 모두 책임져야 하니, 노동자도 증세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무조건 노동운동 편을 들 순 없으며,(안 그러면 진영 논리니까.) 헌법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게임의 룰을 지켜가며 점진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틀린 이유는 이 사회가 근본에서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따위는 없다. 이 사회를 뿌리부터 분열시키는 그 분단선이 바로 계급인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 논리야말로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배척하는 친자본주의 ‘진영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새누리당의 제명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국회로 불러들여놓고 마녀사냥 반대라니 우습지만, 그거라도 반대를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결국, 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의 모순된 논리는 지배계급이 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현 기득권 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자세니 박근혜와 동맹을 할 수 있다느니, 노동자증세를 포함한 보편증세에 함께하겠다느니 하는 번짓수 없는 주장도 하게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정원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은 우파 지배자들은 목적을 위해서 현행 법과 선거정치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 독재가 끔찍한 유신 독재로까지 연장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본격화하려는 반동의 진격을 막고 복지와 민주주의의 확대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위해서는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필요하다


저들이 법과 제도를 어길 각오를 하고 반동으로 가는데, 헌법 내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는 데 강박을 가진 진보로는 이런 것을 쟁취할 수가 없다. 신호등만 믿고 길을 건널 순 없다. 차들이 신호등에 맞춰 멈춰서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진정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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