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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실질 연체율이 올해 상반기에 꾸준히 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인 선대인 씨가 이 기사를 보고 낮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미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 고점 대비 20~30%씩 집값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고 빚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가계들부터 무너지면서 은행 연체율도 급등하게 됩니다.” [중소기업] 부동산 대출은 이미 2008년 말부터 부실단계에 들어가 있지만,금융기관들이 추가 대출을 일으켜 연체를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출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의 블로그 <불량사회>, http://unsoundsociety.tistory.com/entry/bubble100705)

한마디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가격 하락으로 빚내서 부동산에 돈을 쓴 사람들과 은행들이 함께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덧붙여, 지금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놈은 사기꾼이라는 말도.


부실 연체가 문제가 되는 건 사실인 듯합니다. 오늘자 <한국일보>에서 가져 온 위 표가 비록 부실자산 정리 전이라서 연체율 증가폭이 그리 높지 않은 듯 보일 수 있으나 1분기와 2분기에 은행들이 정리한 부실자산 규모가 2조 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입니다. 그러고도 몇 은행은 정부 권고 연체율 수치를 못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시중은행들의 고정이하 여신이 준 대신, 요주의 여신이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각주:1]. 부실여신으로 분류하는 고정 단계의 바로 전 단계로, 잠재 부실이 커진다는 것이죠.

부동산 거래량이 크게 줄고, 가격도 떨어져 신규 미분양도 많습니다. 대출 받고 산 아파트가 가격도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는다면, 그 대출은 매우 위험한 잠재부실이 됩니다. 신규 미분양은건설사들에게 엄청난 자금난을 안겨 줍니다.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이 그렇습니다.

지난해 말 우리은행의 요주의 분류 여신은 전년 대비 35.3퍼센트 증가했습니다. 고정이하 여신도 29.8퍼센트 늘었습니다. 국민은행은 고정이하가 14퍼센트 줄었지만, 요주의 여신이 36.3퍼센트 늘었습니다. 신한과 외환은행도 고정이하가 2.1퍼센트, 14.2퍼센트 주는 동안 요주의 여신이 27.8퍼센트, 30.9퍼센트 늘었습니다,

지난해 우리은행이 2조 원이 넘게, 국민은행이 거의 2조 원 수준의 대손충당금[각주:2]을 적립했는데도 잠재 부실이 늘어난 사실이 중요합니다. 신한은행도 1조 3천억 원이나 대손충당금으로 쌓았습니다. 이정도면 예년과 비교해도 매우 큰 편에 속합니다.

물론, 요주의 여신이 부실화가 안 될 수도 있죠. 그러나 맨처음 인용한 올해 상반기 기록에서 보듯 실질연체율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나 지표상으로나 부동산 가격 하락은 명백해 보이구요, 호가를 안 내리고 버티면 지표상 가격 하락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실거래 가격이 하락하는 현실을 막을 순 없습니다.

은행 수익구조를 봐도, 올해 수익 향상이란 건 큰 규모의 예대금리차(2.76퍼센트) 때문인데, 현재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규모가 7백조 원이 넘어 이젠 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에 예대마진 그 자체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진 것으로 봅니다.

지금 연체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높일 수도 없고, 예금금리는 더 낮출 게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각주:3]. 한마디로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가 아닙니다.

지난 3년간 한국 경제는 중국 정부의 엄청난 부양 정책 덕을 좀 봤습니다. 수출경제인 한국에게 전반적인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 수출시장이 열리는 행운으로 침체 속도를 늦추고 심지어 지표상으론 생산과 고용 등에서 소폭 반등을 낳았습니다.

문제는 이 쥐꼬리만한 회복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낳고, 이는 다시 출구전략을 써 경기 과열을 막아야 한다는 압력을 낳습니다. 그러나 경제회복이 아직도 ‘지표상 회복’ 수준인데, 출구전략 잘못 쓰면 더 크게 경제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망(시원하게 망한다)'하는 거죠.

특히, 금리 인상은 부실해지는 개인(중소기업) 대출을 부실 핵폭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거래량과 가격하락, 미분양이 크게 늘고 있어 금리인상을 함부로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한국은행장을 경질해 가며 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겁니다. [각주:4]

게다가 한국경제의 숨통을 틔어준 중국경제도 막대한 부양 자금 문제로 과열이 일어나 비슷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시원찮으니 정부가 기업들에게 지급한 부양자금이 생산 투자로 가질 못하고, 다시 원자재 사재기(=투기)로 흘러들어가 국제적 원자재 인플레이션을 다시 불러온다는 게 지난해 말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질질 끌다 대출 부실화가 금융 위기(금융회사 부실)로 이어질까 봐 각 정부들이 지급보증 등의 형식으로 이 손실을 막아줍니다. 결국 신자유주의 거품 호황을 지탱해 준 개인(기업)대출의 부실이 금융사 위기를 거쳐 정부 재정의 부실로 이어지는 겁니다. 이게 최근 유럽 재정 위기의 패턴입니다.

지난달 한국 정부도 저축은행들의 PF[각주:5] 손실을 막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부실해진 채권을 사 주겠다는 건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 벌써 2조 원을 넘습니다. 그래서 최근 위험신호가 켜졌다는 재정적자 문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이 상황에서도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는 정신나간 정부들 탓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경제를 내버려 두면 이 불안정과 불확실성을 정상 상태로 보고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다른 거품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기업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선 경기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장 한국도 중국 정부의 부양책 덕을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럴때 진취성 경쟁력 어쩌고 하면서 경제분석하는 놈들은 십중팔구 사기꾼입니다.

결국 출구전략이든 부양책이든 시장에 맡겨서 해결하는 방식으론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오바마식 ‘부자 사회주의’나 EU 방식의 어정쩡한 국가개입과 후퇴는 재정적자만 키워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게 됩니다.

단지 시장의 원활한 작동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안정되는 게 진정한 경제 회복의 목표라고 본다면, 강력한 자본 통제와 투자의 사회화, 소득과 자산(주택)의 재분배로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안정시키고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진보적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결국, 그리스처럼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오직 시장주의가 아닌 다른 해결책, 특단의 위기에 걸맞는 특단의 대안을 내놓고 대중을 조직하는 진보세력에게만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1. 은행 여신(대출)의 우량·불량 상태는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의 단계로 구분한다. 이중 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의 불량 단계를 "고정이하 여신"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2. 은행이 보유한 채권(대출=여신) 가운데 회수가 불분명한 채권을 순이익에서 빼 별도로 적립하는 것을 말함. [본문으로]
  3. 사실은 요즘 예금 금리는 물가인상률과 이자소득세를 감안하면 이자소득이란 게 무의미한 지경입니다. 그래서 자산가들이 자산투자에 더 목맸던 것이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4. 그래서 한국은행이 혹시나 금리를 올리더라도 0.25퍼센트 수준의 소폭 인상을 넘을 순 없을 겁니다. [본문으로]
  5.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약자. 담보 없이 금융회사가 사업계획만 보고 수익성을 판단해 대출함. 요즘 광고에서 정주영이 울산 앞바다 모래밭 사진만 들고 영국에서대출받은 일 자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게 PF임. 문제는 부동산 거품 때 건설사들의 PF가 부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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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끝납니다. 후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인 김중수가 내정됐죠. 정권 초기 청와대 팀이었다가 촛불 후 개각에서 외곽으로 나갔던 인사입니다.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할 인사라는 거죠.

이젠 전임 총재인 이성태와 정부가 최근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은행 즉,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논쟁꺼리가 됐습니다.

오늘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이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에 제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한국에선 이른바 관치금융의 기억이 있어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지금 잡음이 인 신임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면서 청와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염두에 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독립은 금리 정책 등 화폐공급에 관해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중앙은행의 정책이 '정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 같은 때, 이 주장은 매우 솔깃하게 들립니다. 정부가 매우 인기 없는 친재벌 우파 정부기 때문이죠. 별로 실력도 없어 보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운 화폐의 공급과 수요를 다루는 재정정책과  환율정책, 아니면 출구전략 따위는 전문성도 없고 지지층 동향에 휩쓸리는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다 전문 관리들이 국가적 장기적 전문적 안목에서 처리하는 게 나을 듯도 합니다.

그래서 진보 언론들도 이명박 정부의 여러 차례 간섭을 두고 중앙은행 독립을 해친다고 비판했고,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은 정부의 한국은행 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신임 총재 김중수가 청와대와 친하고, 통화정책 전문가로서 검증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그것을 옳게 본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은행 독립성은 원리상 진보진영이 반대해야 하는 정책입니다.

지난 역대 정부들의 관치금융이 여러 관료적 부작용과 노조 탄압 문제를 낳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국가가 주도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주력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서 나타는 필연적 현상이었습니다. 국가가 은행을 통해 총저축을 통제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에서 은행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이젠 덩치가(덩치와 함께 자신감과 욕구도 함께) 커진 개별 대자본들의 욕구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에서 빌린 돈은 꼬리표가 붙어 자유로운(?) 투자에 제약이 따르니까요.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들에 화폐를 독점 공급하는 은행입니다. 통화 정책에 매우 핵심인 기구입니다. 이런 중앙은행을 선출권자인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영향력에 떼내온다는 건 실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통화주의') 핵심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하나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자본이 중앙은행과 금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크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은행의 독립성,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그것이 [잘된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출된 정부가 [대중에 책임을 지려고] 정책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를 빼앗으려는 겁니다. 결과적으론 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걸 막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에 필요한 정부 지출은 주로 복지 지출이잖아요.

1998년 독일 사민당이 슈뢰더를 앞세워 기민당을 물리치고 십수 년만에 집권했을 때, 사민당 정부는 독일연방은행을 통제할 연방정부의 재무부장관에 오스카 라퐁텐을 임명했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 좌파였고, 당시 당 대표였습니다. 라퐁텐은 정부 지출을 늘려 신자유주의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펴려했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해치려 한다는 비난을 시작으로 독일과 유럽 보수 언론들의 맹공격을 받다가 결국 취임 석 달 만에 사임합니다.(사임 압력에 굴복한 총리 슈뢰더와 사민당도 잘못을 했죠.)

한국도 IMF 위기 후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금융통화위원회를 만들어 형식상 독립기구를 통해 금리 등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한계기업들의 도산, 서민들의 불만이 어우러져 정권이 압력을 크게 받은 덕분에 IMF가 강요한 초고금리 정책을 1999년부터는 저금리로 역전되었던 겁니다.


문제는 이 저금리 정책이 카드-부동산-주식(펀드) 거품 정책으로 귀결됐다는 데 있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저금리 정책도 똑같습니다. 거품 유지에 목매다는 저금리 정책입니다.

지금 금리 정책 자체는 자본 간에도 이해관계가 틀립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현금 자산을 많이 보유한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을 바라겠죠. 반면에 부동산 자산을 많이 가진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에 반대할 겁니다. 아직까진 출구전략 논쟁은 저들의 논쟁입니다.

다만, 소득이 줄어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서민들 처지를 봐서 저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거죠.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를 두고 대학생들이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정부도 [기업주들의 영향으로] 대중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 하질 않는데, 시스템 상으로 어떤 책임도 기층에 지지 않는(선출직 임기와도 관련 없는) 전문관료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어찌 될까요.

이들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받을까요.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온양과 기흥의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 중에 같은 병으로 벌써 9명이 죽었고, 현재 투병중인 이까지 더하면 스무 명이 넘습니다. 박지연 씨는 고3 때부터 조기 취업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빛나던 청춘이 시들고 결국 스물셋에 한많은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나 언론들은 보도도 제대로 하질 않죠. 이쯤되면, 누구나 언론계의 삼성장학생들을 떠올릴겁니다. 삼성장학생은 언론계에만 있나요. 장학생은 삼성만 관리하나요? 경제관료들은 모든 대기업들의 핵심 관리 대상입니다.

이들은 공직을 떠나면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정권이 들어서면 고위적 관료로 다시 들어옵니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입니다. 핵심 금융관료였던 이헌재, 윤증현 등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거야말로 진짜 관료주의 아닐가요. 이런 자들에게 중요한 정책 결정을 민주적 통제 수단 없이 넘겨야 할까요.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 무상급식도 반대하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깎으면서 은행들이 돈놀이하다 위기를 겪자 3백억 달러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해 주면서 지원해 줬습니다. 나쁜 정부입니다.

그렇다고 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한국은행의 시스템상 독립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목욕물 버리다 애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은행가들은 정부 지원 덕분에 [돈놀이 하다 맞은] 경영 위기를 넘겨 놓고는 한숨 돌린 지금은, 다시 막대한 보너스 놀이를 하며 각국 정부들에게 흑자 재정을 유지하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돈놀이 경영을 막고 공공을 위한 서민 금융에 힘쓰도록 요구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중앙은행 독립이 아니라, 은행 국유화와 공공성(금융의 민주화) 강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합니다. 국유화는 시장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해 민주적·민중적 통제를 하라는 요구입니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권력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함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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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들의 삶은 더 곤궁한가

거품과 함께 커지는 서민들의 고통


관련 기사: <레프트21>14호
"경기 회복? 친서민? ─ 거품과 함께 서민 고통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보도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뿌린 수백조 원의 돈이 ‘수요를 늘려 인플레이션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말도 들려 온다.

정부가 그렇게 많은 돈을 풀었다면, 우리 같은 갑남을녀의 주머니도 좀 풍족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 경제, 바닥을 쳤는가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이들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고, 가장 빨리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데 고무돼 있다. 올 2/4분기엔 자동차, 철강 등에서 최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는 이제 올해 안에 출구 전략을 써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경기가 회복되는데, 유동성 공급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신중한 부류도 있다.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는 “회복 국면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 지적한다. 실업률이 오르고 수출이 줄어드는 추세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한 기업주들의 인식을 조사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5백 개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자사가 저점을 찍기 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의 경기 회복은 정부 재정 지출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완성차 판매 회복은 5월부터 시행된 정부 지원책(차량 교체시 세금 감면) 덕택이다. 5~7월 총판매량은 지난해 동기보다 23퍼센트 증가했다. 그럼에도 월별 판매량은 7월부터 다시 하락하고 있다. 세금 감면 혜택이 없었다면 상황은 더 나빴을 것이다.

주요한 경기 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7월 기계 수주액이나 건설 수주액 역시 공공부문의 발주가 늘어 다시 증가할 수 있었다. 민간부문의 발주는 큰 폭으로 줄었다.

그 결과, 지금 정부는 올해 쓸 수 있는 예산의 3분의 2에 달하는 1백85조 원을 7월까지 다 소진했다. 현재 남은 예산 여력은 87조 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렇게 풀린 돈이 자산 거품 조성으로 쏠리는 형국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다시 늘린 것도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2천년 대 이후 장기 침체 속에서 기업들은 차입을 줄여 왔다. 세계적 위기인 요즘, 이 패턴이 더욱 고착화됐다.

현재 가계저축률은 4퍼센트 대인 반면, 기업 저축률은 16퍼센트 대에 달한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이 1백조 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설사 돈을 빌려도 이를 다시 재무적 투자, 즉 금융과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고 있다.

 

출구 전략 딜레마

 

무역수지 흑자 역시 올 상반기까지 지속된 고환율, 저유가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환율이 1천2백 원대로 내려오고 유가가 다시 상승하면서 이 효과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푼 4조 위안 넘는 돈이 사실상 원자재 투기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수출 시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이 돈을 원료 사재기에 쏟아 붓고 있다. 이 탓에 무역 회복 없이 원자재 값만 폭등하고 있다.

기업 지원과 법인세 인하로 투자 유인을 늘리자는 정부 대책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그 래서 국내외에서 지배자들은 출구 전략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 지출은 거품만 키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져간다. 그렇다고 출구 전략을 개시해 거품이 터지면 지난해처럼 추락할 위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도 딜레마다. 정부 지출은 늘었는데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들은 지배자들 사이에 출구 전략(금리 인상 등)의 시기와 강도 등 경제 위기 해법을 둘러싼 정치적 내분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인플레이션(물기 인상)은 임금 인상에 대한 압력을 낳을 수 있다. 소득 저하는 소비를 줄여 경기 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대체로 신중한 태세인 노동운동이 거품 호황의 고통을 더 참지 않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저항에 나선다면 지배자들의 내분도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이런 내분을 봉합해 기득권을 유지하며 자신들 앞에 놓인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길은 저항을 억누르고 평범한 다수에게 위기의 대가를 전가하는 길 뿐이다. 그리고 소심한 이명박 정부는 내년 초까지 출구 전략 사용을 피할 것이다.

 

거품이 커지는 만큼 그늘도 커지고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올리고 세율을 낮췄다. 버블세븐 해제,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DTI) 제한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동산 규제 해제는 곧바로 부동산 거품이 다시 커지는 걸로 나타났다. 1년 전 부동산 몰락의 공포가 역전돼 “돈 버는 투자는 결국 부동산”이라는 신화가 재연됐다.

위기가 심각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꾸준히 올라 6월말 현재 2백66조 원에 달한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아파트 1백21만 가구의 시가 총액은 사상 최초로 7백조 원을 돌파했다.

이것이 전월세 대란의 주범이다. 집값이 뛰니 전월세 임대료도 뛰었다. 이젠 아파트는 물론이고 서민 밀집 지구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들조차 전세가가 1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뉴타운 동시 재개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역은 대학가 자취방도 전세값이 천만 원 단위로, 월세 보증금과 사글세가 갑절 가까이 뛰었다.

대규모 뉴타운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대거 늘어나 전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이제 1층에서 반지하로, 3층에서 옥탑방으로 옮겨야 한다. 그도 아니면 아예 직장과 학교에서 더 먼 도심 외곽으로 떠나야 한다.

거품 호황에서 배제된 이들의 밥상은 더 초라해졌다. 설탕, 밀가루 등은 물론이고 계란, 두부, 닭고기, 유제품, 어묵 등 서민 식품의 가격이 날개를 달았다. 갈치는 그 빛깔 답게 귀족 생선이 됐다. 요샌 반찬거리 두세 개 사면 만 원에서 동전 몇 푼 겨우 남는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줄고, 빚은 늘고 

 

동네 골목까지 파고드는 대형 마트(SSM)들도 물가 인상을 막지 못한 셈이다.

올해 식료품의 소비자가격 상승률이 평균 9.5퍼센트로, 지난해의 갑절이다.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의 열 한 곱이다.

생필품과 전월세가 올라도 소득이 함께 오르면 버텨 볼 용기라도 낼 텐데. 문제는 소득마저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올 상반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5백2조여 원인 반면, 가계대출 총규모는 6백97조 원이 넘는다. 소득 증가율은 사상 최저이고 부채 증가율은 사상 최고다.

그래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 역시 1.39곱절로 사상 최고치다. 돈이 없다고 안 먹고 안 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게 올려(2.7퍼센트) 실질적으론 삭감해 버렸다.

만 2년 된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앞장서고, 최우선 정책기조로 고용유연화를 내세우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 지면 소득이 늘어나길 기대하는 건 더 힘들어진다.

반면, 강부자 정권답게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와 상속세, 특별소비세를 모두 인하했다. 막대한 재정 투입 정책에도 부자 감세를 고집하더니 내년 민생 예산은 10조 원이나 삭감됐다.

결국, 소득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상위 10퍼센트 소득은 하위 10퍼센트의 4.7곱절로 OECD 평균인 4.2곱절보다 더 높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요구들”

 

요컨대 경기 회복은 멀었고 그나마 정부의 재정 투자도 부자와 대기업에 몰리고 있다. 경제 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친부자 정책은 서민의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벌이는 친서민 유화책도 사태의 본질을 역전시킬 정도는 못 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이런 유화책조차 우익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따라서 이를 역전시키려면 경제 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안과 행동이 절실하다.  (<레프트21>이 제시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의 빈곤 대책이 단순히 현금지급식이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금 지급식 복지는 오히려 더 늘어야 한다.

조건 없는 전 국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기준을 대폭 인상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 규제를 강화해 물가를 통제해야 한다.

강력한 부동산 보유 규제로 주거권을 보장하고 저렴하고 질 좋은 영구 임대 주택을 충분히 보급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시장이 조만간 스스로 회복할 전망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물가 인상과 실질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노동운동 없이, 거품 회복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 없이, 그래서 저항에 직면한 지배자들이 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분열해 약화되는 일 없이, 지금의 정부 아래서 이런 개혁들이 실행될 것 같지 않다.

자본주의의 위기 시대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대중적인 저항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찬성해야 하는 이유다.

 


출구전략(Exit Strategy)

경제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비상 대책’으로 쏟아 부은 유동성 자금을 회수하는 것. 주로 정부 지출을 줄이고, 낮췄던 금리를 다시 인상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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