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 인터넷게시판 악플 놀이 뒤에 숨어 다시금 참여당 통합 문제를 거론하려 기회를 엿보는 듯하다. 진보정치세력의 통합 문제는 제껴두고 9.25 당대회의 충격이 가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내가 그렇게 보는 근거  중 하나가 일주일 넘게 미뤄서 열린 10월 4일 최고위원회 결과다. 그 정도 하찮은 내용이라면 당대회 당일날 회의를 열어서 공표해도 됐다. 그런데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나서서 게시판에 해명 글을 쓰게 할 정도로 개판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 나서 열린 최고위의 결과가 고작 진보대통합 계속 추진하겠다는 한마디 뿐이란 말인가. 

사실 그 결정에 숨겨진 비수는 진보대통합을 최고위원회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수임기관은 이제 용도폐기됐다는 것인데, 지난 서너 달 동안 참여당 문제로 벌어진 지난한 당 안팎의 논쟁의 구도를 살펴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동안 당내 공식기구 안에서 참여당 통합 반대의 주요 목소리는 수임기관에 속한 전직 대표 둘을 중심으로 한 의원단과 일부 광역당부 위원장들에게서 나왔다. 수임기관 용도 폐기는 내용적으로 참여당 통합 당론 결정 시도를 부결시킨 9.25 당대회를 현 당 지도부가 거부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 지도부 내에서 벌이는 행태들, 그리고 조직 동원해 퍼붓는 유치한 게시판 여론몰이가 집요함에 따른 소신과 다수파의 힘을 보여주기보다는 당대회에서 패배한 지도부의 몽니 부리기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현 지도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한참 독이 올라있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봐도 별로 무섭지가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정규직 확대와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던 이들의 참여당 통합 반대가 분파적 야욕인가.


첫째, 당대회가 끝나자마자 김선동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대회 원안을 부결시킨 반대파에게 “분파적 야욕, 정파적 아집”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6월 정책당대회 때 신상발언을 통해 “최고위 안에서 논쟁할 땐 하더라도 최고위의 의견으로 중앙위에 안건이 올라오면 최고위는 의견 통일해 행동해야 하고, 중앙위 안에서 논쟁할 때 하더라도 중앙위 안건으로 대의원대회에 올렸으면 중앙위원들은 자기 의견을 접고 원안을 지지해야 하는 게 당적 태도”라고 일갈한 바 있다. 즉, 당기구가 결정하면 무조건 군말없이 따르는 게 당원의 자세라는 것이다. 

불과 석 달 전,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완전히 뒤집고 민주노총 현직 위원장과 민주노동당의 창당 대표는 물론이고 기륭의 김소연 분회장 같은 현장의 헌신적 투사들마저 분퍄적 야욕 분자로 몰아버린 그 협량으로 아무리 통큰 대통합으로 새시대를 열어보자 한들 말발이나 서겠는가. 그런 자세로 강기갑 전 대표 등을 비난한다고 설득력이 있겠는가. 

둘째, 현 지도부를 지지하는 일부 논자들은 당대회 원안 부결로 진보대통합 관련한 모든 안건이 부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원점에서 참여당 문제를 다시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만약의 경우 [참여당이 급진적이라고 거북스러워 한] 5·31 합의문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주장은 우선, 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사무총장이 한 답변을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보위하겠다는 지도부를 일약 당대회에서 거짓말을 한 꼼수쟁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기 논리에 취해 자신들이 휘두른 도끼가 자기 발등을 찍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더구나, 현 지도부가 임기 1년 내내 가장 중요하게 다룬 사업이 바로 진보대통합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제 당대회에서 모든 진보대통합 추진 사업이 부결됐다면, 이것이야말로 현 지도부가 엄중하게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 할 사건 아닌가. 대통합을 추진해야 할 지도부가 협량으로 진보신당을 설득하지 못했고, 끝내는 자기당 당원들도 설득하지 못했으니 이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가.

나는 당대회 직후 당게에 올린 글에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당 지도부 사퇴 촉구가 슬기롭진 않다고 밝힌 바 있는데, 당 지도부를 엄호하려는 당원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으니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다. 사퇴를 거부한 당 지도부가 스스로 퇴진이 마땅하다는 명분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당론이 정해졌는데도 맘에 안 든다고 지도부가 사보타지를 계속하는 것은 집요함이 아니라 무능으로 비춰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당대회에서 다수를 얻었든 그렇지 않든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참여당 통합 안건은 부결이 된 것이다. 당헌으로 정한 규칙에 따라 당론이 되기엔 자격이 미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적 다수를 얻었다고 재추진하자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다수파의 권위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고, 당을 깨자는 것이다. 

왜냐면, 원치 않은 당론으로 정치적 처신이 구속될 불편을 더 자주 감수해야 하는 것은 (6월의 창당 강령 폐기 때처럼) 당연히 소수파 그룹일텐데, 다수파가 당론 불복종을 이렇게 관례화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소수파에게는 향후 처신에서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다. 

자칭 다수파가 9.25 당대회 결정을 뒤엎더라도 반대파에게는 부당하게 뒤집힌 당론을 따를 하등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자칭 다수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무기를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65퍼센트가 35퍼센트에게 끌려가야 하냐고 반론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왜 진보신당의 다수파인 통합파에게는 당을 깨고 합치자고 말하지 못하는가. 그들도 당대회에서 패배했지만 다수파인데 말이다. 진보신당 통합파는 54퍼센트지만,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65퍼센트라고 우긴다면... 그러면 3분의 2 규정은 왜 있는 거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당헌으로 정해 놓은 상황이 무시된다면, 소수파가 당대회 결정을 안 따를 때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넷째, 그들이 유시민과 살림 합치는 걸 방해했다고 원래 한집 식구이던 권영길, 강기갑, 김영훈을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있는가.

8.28 당대회 직전 <민중의소리> 인터뷰에서 야권통합정당론자인 조국 교수는 이정희 대표에게 진보 통합도 못하면서 참여당 통합을 기웃거린다면서 자기 동네부터 챙기라고 핀잔을 준 바 있다. 

자기 편을 설득도 못하지, 포용도 못하지 도대체 지도력을 발휘 못 하는 리더들의 값어치가 올라갈 수 있을까. 서울시장 선거에서 최규엽 소장이 부진한 것, 서울시장 선본 구성이나 강원도 인제군수 선거에서 푸대접 받은 것이 과연 우연일까. 

국민들은 참여당도 진보로 보니 진보대통합 대상이라고 우기는데,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참여당도 진보로 보는 그 대중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그냥 형제로 본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운동 때 노회찬 전 의원은 아직도 자신을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사람들이 부른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형제 통합도 못하는 지도력으로 참여당과 통합해 민주당과 맞먹는 통합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인정해 줄까. 참여당 지지자들의 인터넷 여론에 홀리는 건 자유지만, 그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 

다섯째, 현재의 위기 국면과 우경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경제 대공황의 공포, 심상치않은 한국경제 상황,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사장들의 필사적인 고통전가 노력은 정치 위기, 이데올로기 위기를 낳고 있다. 지배의 정당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직 노동운동 바깥에서 희망버스 운동 같은 행동으로도 표출돼 왔다. 이럴때 진보정당이 기성 정치 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적응하면 기회를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 

당 지도부가 참여당에 한 눈 팔다 진보대통합에 실패하면서 지금 국면의 주도권은 일단 ‘혁신과 통합’ 같은 야권통합론자들에게 부분적으로 넘어가 있다. 이들은 민주당을 배제하는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민주당에게는 여전히 대주주 구실을 되찾을 기회가 남아 있다. 그것은 대중의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를 봤을 때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당 지도부들은 민주당의 야권연대 내 패권주의를 막으려고 참여당과의 비민주 통합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한다지만, 참여당과의 통합 결정은 필연적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낳을 것이므로 그 뜻은 이뤄질 수 없다. 이미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만으로 진보신당과의 통합도 불발시켜버렸지 않은가. 
 
끝난지 만 4년도 안 된 노무현 정권에서 맞아 죽고, 해고돼 죽고, 배고파 죽은 사람들이 그 정권을 계승하는 당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참여당을 민중을 대신해 용서해줄 권리도 없다. 

친노 개인들이야 노무현을 존경하면서도 진보적일 수 있고,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도 손색 없을 수 있지만, 친노를 정치 지향으로 채택한 정당은 진보가 아니다. 그래서 참여당 포함한 통합은 불안정한 동맹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일단 대중의 비민주당(과 그 아류인 참여당) 정서와 맞지 않고, 그것이 우리 편을 분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여당과의 통합 부결이야말로 분열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현재 어려워진 국면의 책임은 명백히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에게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고언하건대, 참여당과 유시민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신용을 담보 잡히는 행태를 더는 지속하지 마라. 친자본 정치세력의 비주류 정당을 끌어들여 덩치 키우기를 하는 건 고도의 전략이나 책략이 아니라 친자본 일색의 정치 구조를 유지하는 일에 협조하는 것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품어 온 인민전선 전략의 실현이 눈 앞에 와 있다고 여기겠지만, 수십만 당원과 수백만 노조원을 지지자로 거느리던 1930년대 공산당들도 인민전선 집권으로 모두 더 작은 친자본 중간계급 당들에게 견인당하다가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들도 기여한 순전한 폐허 위에서 지난한 반나찌 게릴라 투쟁으로 겨우 신용을 회복했지만, 결국은 그 노선을 바꾸지 않은 채 전후 정치 구조에 적응했다가 지금은 사회당의 아류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페인 공산당은 패배의 크기가 너무 커 그후 반세기 넘게 반전의 기회조차 가져보질 못했다. 

물론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는 조건에서는 참여당과 통합해도 우경화는 할테지만 당의 근본 성격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런 기반이 유지되는 조건에서는 현 지도부가 기층의 압력 때문에 우경화에서 방향을 반대로 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의 노선이 ‘지금 여기’에서 분열과 우경화, 진보적 계급정치의 존재감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여론에 따른다고 다 구체적이고, 관념성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조를 만드는데 갤럽에 의뢰하고 시작할 것인가. 전투적 노동운동 싫다고 하면 민주노총과 관계를 끊을 생각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흩어진 진보정치세력을 다시 규합해 노동운동과 진보적 대중의 힘과 투쟁을 강화하는데 복무할 생각을 해야 한다. 주체를 분열시키는 외연 확대는 외연 확대가 아니라 그냥 자중지란적 분열일 뿐이다. 이미 2008년에 충분히 고통스럽게 겪은 일 아닌가. 

지금 민주노동당의 2008년 분당이 이전의 여러 우경화 불씨에 불붙인 이후 지금 대중운동이 얼마나 우경화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든 아니든 진짜 좌파라면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걸려고 싸워야 하고, 현재로선 그렇게 해야만 노동자 대중운동의 후퇴를 막고 급진 부위를 정치적으로 강화해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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