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에게는 ‘계급’이란 명확한 사회의 분단선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한편을 ‘우리 [계급 or 운동]’로, 상대편을 ’적(지배자들 or 저들)’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1%에 맞선 99%의 싸움’ 같은 표현이 이런 계급분단선을 표현하는 새로운 용어가 되는 듯합니다. 


사실 이 숫자가 21세기 전반부의 계급투쟁을 상징하게 됐지만, 실제 전체 인구 중 계급 구성비에는 안 맞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민주당 수준의 반MB 구호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들도 있던데, 맥락상 그렇진 않은 듯합니다.


그런 염려가 가시지 않는다면, ‘1% vs 99%’ 구호를 배척하기보단 이 계급 분단의 개념에 ‘화해불가능성’을 불어넣고, 99% 안에서 노동계급의 주도성을 강조·확립하려고 하는 게 더 현명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99%의 행동에 참여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겠죠?   


개혁주의란, 우리 편 안에서 저쪽 편의 협박에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저쪽 편에 맞선다는 맥락에서 먼저 지지를 하고 함께 행동할 채비를 갖춰 놓고 비판해야 하는 이유죠.


그런 이유에서, 결코 용납돼서도 안 되는 통합진보당의 당내 선거 부정 문제도 단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고, 우리 편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분석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진보진영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마음을 모아 노력해야 합니다. 


또 같은 이유로 우리 편 내부의 문제라는 점에서, 바리케이드 저쪽 편인 검찰 수사에 해결의 공을 넘기는 주장(그 주장이 우리 편 안에서 나오는 것이든, 저들의 말이든) 것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기껏 당원 명부와 정보나 넘겨주게 될 검찰 수사는 사건의 본질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겁니다. 


우파들은 진작부터 통합진보당의 색깔론 마녀사냥을 해 왔고, 이번 건도 광우병, 최시중 구속 등의 악재를 덮는데 이용하려고 더 날뛰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부패로 특권을 유지해 왔고, 부정과 대국민 사기극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들을 폭로하고, 그들이 통합진보당의 잘못에 비난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란 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각주:1]


’운동권 관행’이라는 개드립에 맞서 진보 운동의 이상과 도덕, 진보의 가치를 방어하고 변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떳떳해야 검찰이나 우파의 야수적 공세를 막을 수 있다는 거죠. 자체 해결 과정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구체적 사태 해결 요구 


2.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관행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제가 보기엔, ‘체제 내화’인데, 선거주의에 물들수록 기존 체제의 관행에 젖어들게 됩니다. 


애초에 진보 운동에서 목표는 ‘진보적 사회 변혁’이고, 그 수단의 하나가 ‘선거적 성공’인데, 어느 순간 진정한 목표는 사라지고, 수단이 목표가 되는 전도 현상이 일어납니다. 


진보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그 가치와 원칙을 지키며 번거롭고 고된 길을 가기보다 기존 체제의 관행에 잘 적응해 기존 정치 구조 안에 편입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전자는 웬지 낡고 세련되지 못한 것 같고, 이왕이면 넉넉하게 돈도 벌고 과시할 만한 사회적 지위도 보장받으면서 유행하는 사조와 노선에 적절히 영합하는 게 세련되고 쿨하게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각주:2] 


어느새 장기적 목표는 잊혀지고, 수단을 확보하려는 단기적 목표만 남은 거죠. 그래서 이런 본말 전도 현상을 정치적 ‘실용주의’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경화(체제 내화)가 초래한 타락이란 점에서 우리는 운동 전체에 강력한 비판과 경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검찰 수사 운운하는 자들도 독버섯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 물만난 고기처럼 생난리치며 조선일보에 가서 고자질하고, 검찰 수사로 가자 운운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의도가 순수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파의 힘을 빌리는 것 자체가 진보의 원칙과 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죠.  


바리케이드 저 편의 작자들이 감히 진보운동에게 민주와 도덕성 운운하며 우리를 유린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됩니다. 채찍도 바리케이드 이쪽 편에서 우리가, 교정도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 목적이 좋으면 수단은 어떻게 되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 스탈린주의적 윤리관과 관행(조직 문화)도 문제가 됩니다. 목적과 수단이 합목적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앞서 지적한 우경적 ‘실용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것이죠.


선거주의적 우경화와 스탈린주의 윤리관이 결합되면서, 연립정부 노선을 위해 또는 연립정부에 자기 파벌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 사건의 실체가 아닌가 합니다. 




3. 그래서 이 문제를 ‘경기동부’로 불리는 특정 엔엘 정파만 제거하면 되는 문제로 보는 건 오류라고 봅니다. 물론 제가 보기엔 그들의 책임이 큽니다. 단순 부정선거 실행을 넘어서 그 원인을 제공한 세력으로서 말이죠. 그럼에도 이번 통합진보당 부정선거를 당권파만 저지른 게 아니고, 선거 관리 부실과 더불어 여러 후보의 지지 세력이 연관돼 있습니다. 


당권파 지도자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문제의 원인이 되는, 즉 이런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만든 정치적 실용주의 문화를 앞장서 조장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명백한 선거관리 책임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전략적 우경화 드라이브가, 이런 문제를 저지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거나 부패에 대한 책임감을 둔화시켜 왔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특히나 묻지마 야권연대 노선을 추구하면서, 전략적 차원에서도 원칙과 목표를 방기해 왔습니다. 청년비례경선 온라인 선거관리에서 비슷한 실수가 있었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고 넘어간 것부터가 문제였고요. 


이들이 얼마나 실용주의에 젖어 있는가 하는 것은 <민중의 소리> 등을 통해서 비당권파도 선거 부정하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발상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권 교체가 본질이 아니라는 말은, 그게 설사 선결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해도, 단순히 당권만 바꾸는 걸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봐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진보 내부의 정체성과 민주주의를 원칙있게 재확립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다른 주도적 정파들도 부차적이지만, 이런 실용적 우경화에 남다르게 저항한 바가 없고, 오히려 일부는 그런 흐름에 적극 동참해 왔죠. 일부 비판자들이 당권 박탈을 이 진보판 정풍운동의 목표로 여기는 것도 사실 당권파의 ‘거울 이미지’에 불과합니다[각주:3]


따라서 이 사건 해결의 본질은 부패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심판에 앞장서는 세력으로서 진보정치세력의 자격 갖추기 문제가 돼야 합니다. 노선과 일상적 실천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에서요. 


간단한 원리 아닐까요. 스스로 떳떳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품고서 어떻게 새누리당이나 재벌들의 부패와 비리에 추상같은 심판자의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패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99%의 도전을 어떻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진보의 원칙과 목표를 바로 세우고, 이에 따라 목표와 수단의 관계를 재확립하는 등의 일이 진정한 해법이 돼야 하는 겁니다. 




4. 묻지마 야권연대 노선을 중단하고, 노동이 중심인 기층 민중의 현장 투쟁에 실천적으로 연대하며, 투쟁 건설에 직접적으로 앞장서는 진보정당의 모습이 돼야 합니다. 더는 진보적 가치가 선거공약집만 장식하는 것으로 머물지 말고, 우리 일상의 지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원이 의석 만들기의 들러리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런 관행적 부정선거를 평소에 막을 자정 능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당권파를 체제부정세력으로 몰며 때려잡기에 나선 우파의 행동은 오히려 진보를 죽이려는 의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패권놀음이나 ‘NL vs PD’ 정파 싸움으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이 한심하고 피상적이란 게 분명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당권파가 억울하다며, 마치 ‘쿠데타’에 맞선다는 식으로 이 사안을 당권 쟁투로 대하는 것이 명백한 오판인 이유고, 그 자체가 사실 그들의 전략이 문제의 일부라는 방증입니다. 참여당계나 한겨레 등 자유주의 세력의 비판이 얼마나 진보적 관점에 바탕한 것인지도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봐야할 것입니다. 


물론 다함께 같은 비당권 급진좌파 그룹에게는 선거 부정에 책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순위 경선 참여 비례후보와 사무총국 총사퇴 같은 요구가 당권파만 책임지자는 것이 아니죠. 모두 다소 억울함이 있더라도, 통합진보당 내부 문제로만 보지 말고, 진보정치 전반의 원칙과 가치를 재확립한다는 차원에서 함께 책임지는 정신으로 해결을 하자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당권파는 권한의 몫만큼 더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물론 더 철저한 진상 규명도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당권파가 사퇴를 통한 책임지기를 거부한다면 총체적 불신 속에서 누구에게 진상 규명을 맡길 것이냐 하는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당권파가 부실한 진상조사 문제로 몰고가는 건 솔직하지 못한 겁니다. 진정으로 이 문제를 진보의 원칙대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중에 더 철저한 조사를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진보 스스로 자정 능력을 발휘하며 원칙이 서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검찰 수사에도 반대할 수 있고, 손상된 진보 대중의 자존감과 사기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 점에서 검찰 수사 운운한 참여당계와 반당권파 연합을 하는 건, 적어도 당내 좌파가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회의 때 일시적으로 같은 의견을 낼 순 있어도요. [본문으로]
  2. 그래서 서로 연관은 있지만, 대중에게 강남좌파가 인기 있는 것과, 진보가 강남좌파를 선망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후자는 장기적으로 패망의 길입니다. [본문으로]
  3. 패권주의와 종파주의는 서로를 강화할 뿐. 다수파라면 이럴수록 더 운동 전체를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옳지 않을까요. 운동 전체의 이익과 배치되는 자기 파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들도 ‘종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경기동부 중심의 당권파와 진보신당의 독자파 일부가 적대적 공조라는 희한한 태도로 진보대통합 무산에 일조하는 걸 보면서 양파 모두 종파다, 종파주의적이다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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