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건강보험료 인상, 월급만 빼고 다 올리는 이명박 정부


21호 <레프트21>에선 영아 신종플루 접종 때문에 고생한 주부 독자의 편지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경기도 구리에 있는 병원에서 각각 전북 익산, 강원 춘천, 경기 수원에서 온 주부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마치 단편소설의 한 구절을 읽는 듯합니다.

이명박은 제약회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진보적 보건·시민단체들이 요구한 강제실시(유행병 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약회사가 보유한 특정 약품의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복제약을 만드는 일)를 거부했고, 확진을 위한 검사 비용 등의 국가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이 정부가 다시 제약회사와 병원들에 굴복해 건강보험료를 인상합니다. 보험료가 오르면 보장성이 확대되든 보장 대상이 확대되든 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데, 총 보험료 수입의 5분의 1 수준의 보장성 확대가 끝입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수가는 병원들이 우기는대로 올려줬습니다.

이 정부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 건 역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별법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2002~2006년 사이에 정부가 법을 어기며 지급하지 않은 돈만 5년간 3조 7천억 원가량입니다.

특별법이 만료된 이후 바뀐 기준인 '예상 보험료 수입액의 20퍼센트' 기준도 채우지 못해 2007년부터 다시 약 7천6백94억 원을 미지급했고, 약값 거품 제거 약속도 제약회사 눈치 보느라 지키지 않아 2010년까지 2조 원이 넘는 돈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더 지출되도록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영리병원을 만들겠다고 설치고 있습니다. 영리병원제를 도입하면 20퍼센트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해도 전국민 의료비 부담이 1조5천억 원이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영리병원 도입하자고 정부가 용역을 맡긴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 영리병원 도입 여파로 건강보험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더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오겠죠.

정부가 증액했다는 복지예산의 상당액이 거의 건강보험 등 기금 예산인 점을 감안하면, 4대강 따위 예산이 다른 예산을 갉아 먹는 폐해가 어느 정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듣기엔 그럴싸한 신자유주의가 '시장'이라는 '신'만 자유롭게 해주면서 평범한 사람들에겐 안정적 삶을 유지하고 미래를 꿈꿀 자유를 모두 빼앗고 있습니다. '시장' 신을 숭배하는 기업주들과 국가들은 결탁해 제사장 노릇을 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건강, 삶의 질을 '기업이윤'을 위한 제단의 희생양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이 신자유주의 종교를 버릴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얼마전 친구와 대화 중에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돼지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인간 병이 돼지에게 전염되다니. 큰 일이다." 우습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본인도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놀랐다는데, 신종플루의 원래 이름이 '돼지독감'입니다. 돼지가 걸리는 게 정상이고, 사람이 걸리는 게 비정상입니다.

육류를 공장에서 철판 찍어내듯이 하며 돈을 벌려 한 다국적 식품기업들 탓에 이제 이런 신종 유행병들이 생겨나 사람들을 공포와 위험에 몰아넣고, 막상 그 원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자들은 다시 다국적 언론기업과 정부의 도움을 얻어 책임을 모면하고 불과 반 년 만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갑니다. (광우병과 이명박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도 중요한 사례입니다)

'기업 이윤'을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로 떠받드는 이 우상숭배 체제에서 국가는 불가침의 권리를 지키는 임무에서만큼은 스스로 불가침의 권력을 선언합니다. 그것이 부패와 위법에 찌든 이명박이 저항하는 이들에게 "법과 질서"와 "무관용"을 뻔뻔하게 외치는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OECD 평균보다 40대 이후 사망률이 높고 20대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한국의 사회보장이 취약하고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인 현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이제 병 주는 것도 모자라 병을 만들어 내놓는 자들이 병을 치료할 비용도 더 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예를 들어, 금연 캠페인 등으로 중병에 걸리는 게 자제력 없는 '루저'들의 탓인 듯 사람들의 인식을 조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1등만 건강하고 1등만 행복한 (당연하다고 말하는) 더~러운 세상에선 아마 부처님이 와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진보의 대안은 더 근본적이어야 합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내놓은 것에서 수치 정도만 조정하는 수준의 민주당식 개혁으론 희망을 얻기 힘듭니다.

국가의 우선순위, 세상의 우선순위를 놓고 싸워야 합니다. 이 정부는 우리 정부가 아닙니다. 이건희는 수조 원을 챙기고도 10년 만에 겨우 집행유예, 게다가 판결 1백일 만에 사면 얘기가 나오는데, 50만 원 벌금을 못 내서 유치장에 가야 하는 이런 세상에 우리야말로 "무관용"으로 덤벼야 합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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