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기업천국 도시 확산할 세종시 수정안  / 세종시 관련 MB의 말바꾸기와 이박투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종시 수정안이 연초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연말 날치기 무효화 투쟁마저 묻히는 듯합니다. 이 상황에서 진보는 어떤 자세로 뭘 해야 할까요.

사실 세종시는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두 계획 모두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 차원의 '행정부처 이전'입니다.

그런데, 전 행정부처 이전으로 균형 발전하는 데 신도시 건설이 핵심일까요. 효율성으로 따지면 그냥 기존에 이미 개발된 도시로 이전하면 됩니다. 서울의 행정부를 분산하는 게 목표라면, 대전엔 이미 제2청사가 있는데, 그 근처에 신도시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신도시를 만들면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갈까요? 그리되면, 인구 이전이지 균형 발전은 아닐겁니다. 균형 발전하려면 현지 자영업을 활성화하고 현지 청년들을 채용해야 하는데, 이럴 때 어느 측면에서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까요? 공무원 몇 천 명 간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 리 없잖아요~

세종시가 원안대로 세워져도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가기 보단 인근 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일겁니다. 새 구심 도시가 생기면 연기군과 인근 지역 인구가 집중되면서 새 소외 지역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세종시 원안 역시 균형 발전 목표보다 신도시 '개발' 즉, 토목공사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건설로 경기 부양하고 기업과 부자들의 투기 지역 넓혀 주기 말입니다.

특히, 지역 토호들은 이런 방식의 균형 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토균형발전이 국토균형땅값올리기(그리고 전 국토의 투기대상화)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균형 발전 논리가 아파트 건설 광풍이 불어 지금 지방 도시들엔 미분양 아파트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이 어느 하나라도 좋게 봐줄 구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건 기업 특혜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입니다. 분명히 수정안은 반대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뒤섞여 애초 주류 엘리트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다투는 문제였던 세종시 문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세종시 수정안 반대 쪽으로 반mb 진영을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습게도 이명박-민주당 구도로 가던 구도가 이제는 이명박-박근혜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건 애초에 이 세종시 의제 자체가 저들의 의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진보 쪽의 의견이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종시 블랙홀은 기업이 아니라 진보의 의제와 원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습니다.

진보 쪽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mb 진영의 묻지마 연대 정서가 이런 본말전도를 가속화하고, 그 결과로 묻지마 연대가 더 강화되는 악순환입니다.

이쯤에서 주요 진보 단체들의 세종시 관련 주장을 살펴봅시다.

민주노동당

이명박 대통령은 원형지 공급을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는 국민 세금을 재벌에게 퍼주는 특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전국의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재벌행복도시 재벌특혜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13 대변인 논평)

강기갑

세종시 수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상최대규모의 대기업 인센티브를 통해 ‘재벌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재벌특혜는 형평성을 요구하는 다른 지역에 대한 특혜로 도미노처럼 번져 결국 나라 전체를 ‘재벌행복국가’로 망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나라 빚은 또 어찌할 것인가. 결국 서민들의 부담으로 가중되는 것이다. (1.11 의원단총회 모두발언)

고송자 전남도의원

세종시수정안이 확정 발표된다면 이미 전남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기업들 중에서도 투자유치 파기가 잇따를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 기업 및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한 나주혁신도시와 해남.영암 관광레저도시(J프로젝트), 무안 기업도시 등은 세종시 때문에 사업추진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남도는 내다보고 있다. (1.11, <민중의소리> 기고)


진보신당 노회찬

세종시 문제는 원안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수정해버린 정부여당도 문제지만, 지금 국가적으로 세종시 문제가 핵심논란이 돼야하는가를 봐야 한다. (1.14 신년 기자회견)

심상정

지금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면서 불러들이고 있지만 아마 차기 정권에 의해서 또 다시 뒤집힐 운명이라는 것을 기업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뭐 결국 말만 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1.15,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조승수

세종시가 기업경제중심도시로 가면서 마치 블랙홀처럼 돼버렸습니다. 지금 땅값뿐만 하더라도 세종시 같은 경우는 36만원에서 40만원, 울산은 지금 299만원 대입니다. ... 이런 조건에서 울산에 투자하기로 한 삼성이나 한화 같은 기업들이 투자 여력의 한계를 느껴 울산이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1.13 울산 KBS <아침정보 울산> 라디오 인터뷰)


한국진보연대

정부의 세종시 수정은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전국의 모든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죽일 것이다.(...) 중앙부처 이전 백지화는 10개의 혁신도시, 8개의 기업도시 추진 동력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진시킬 것이며, 정부가 ‘파격적’으로 제시한 각종 특혜 때문에 그나마 지지부진 ‘추진’되던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경제적 추진력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1.11 성명서)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YMCA 등]

수정안은 행정도시 백지화선언, 국가균형발전 포기 선언이며 지역균형발전 자체를 부정하고 수도권을 더욱 팽창시키고자 하는 의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계획. 문제점: 1)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 목적 자체의 폐기  2)혁신도시 정상 추진 불가능 3)세종시 빨대효과와 지방 특화도시 고사  4)정부 재정부담을 통한 기업 밀어주기 (1.11 기자회견)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국진보연대의 성명입니다. 도시의 신자유주의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발 과정부터 신자유주의화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의 온건 버전)인데, 세종시 수정안이 기업도시의 추진력을 망쳐서 문제라고 합니다. 한미FTA 등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며 헌신해 온 이 단체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성명서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 단체가 신자유주의 논리로 신자유주의 정부를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참 미스테리합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나 민주노동당의 전남도의원은 지역 토호들의 지역 개발 논리를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업 유치가 우리 삶의 조건 개선에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도대체 기업권력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의 원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울산이나 나주의 혁신도시가 성공해도 정부 예산이 기업 유치를 위한 특혜 제공에 몽땅 쓰이고, 근로기준법이 개악돼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되고 해고가 쉬워지면, 중앙 정부의 복지예산이 줄고 공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건강보험을 무력화할 영리병원이 확산한다면, 그 혁신이 진보가 바라는 대중의 삶 개선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조치 확산의 지리적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그나마 민주노동당과 강기갑 대표는 수정안 비판에선 나름 핵심을 짚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늘 말이 아니라 실천이겠지요. 묻지마 반MB연대로 돌진하는. 물론, 더 자세히 보면, 기업도시와 기업특혜도시를 구분하는 도식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기업도시 자체가 기업특혜도시입니다. 한편, 다른 논평에선 원안을 적극 옹호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얼추 균형잡힌 지적을 했고, 심 전 의원은 날카로운 지적이긴 한데, 핵심을 회피한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진보신당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조승수 의원의 의견에 대한 두 진보신당 핵심 리더(노·심)의 생각입니다. 

주요 엔지오들이 결집한 수도권과밀호반대전국연대는 약간 공상적인 구상에 바탕해 수정안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기업도시'의 아류 버전인 '혁신도시' 추진에 적극 찬성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이들의 공통 전제는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주요한 국가적 의제라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건 공상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근본 속성입니다. 자본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이 집중은 지리적 집중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노동력이 도시로 집중하고 현대 산업 생산의 거점인 도시가 전근대 산업인 농업 지역인 농촌을 수탈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입니다. 그 결과로 도시 과밀화/농촌 공동화, 교통 혼잡, 환경 파괴, 대규모 슬럼, 주거 공간의 계급 분리, 농촌 수탈 등이 발생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서울 인구 과밀화를 해결한다고 경기도에서 수도권 개발을 해왔지만, 결과는 서울과 경기 모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이었습니다. 호남의 저발전과 수도권과 영남 중심의 발전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들은 자본주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도 개혁적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새 도시 건설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건 근본 문제의 형태 변경일 뿐입니다.

정리하면, 세종시 정국에서 진보진영의 주요 단체나 지도자들 상당수가 친기업적 개발 논리나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습니다. 독자 의제로 정국을 주도할 수 없는 진보진영의 왜소함, 반MB 연대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기업 중심 성장 논리를 일부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사고방식이 이런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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