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의 약사와 본질



대한민국은 일반 형법보다도 국가보안법이 먼저 만들어진 나라다.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해서 행위가 아니라 사상을 처벌하는 악법이다. 


이 희대의 악법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4·3 항쟁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여순항쟁 직후에 만들어졌다.(1948년 12월 1일) 


냉전반공주의를 뼈대로 한 우익독재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려 한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시작할 때부터 그 본체에 아로새겨진 악법이다. 


[그 뒤, 이승만의 국가보안법과 박정희의 반공법을 전두환이 합쳐 놓은 게 지금의 국가보안법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류 지배자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국가의 기간법”(법무장관 황교안)인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체제에 뿌리를 둔 정치 세력과 재벌들이 한사코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해 온 이유다. 


반면, 좌파와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그나마 한국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체제에 적대적인 사상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체제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떠받치는 핵심 세력 중 하나인 국가정보원이 이번에는 형법의 내란죄 혐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얻기 어려웠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상의 자유 탄압이라는 본질을 숨기고, “충격과 공포” 속에서 더 효과적으로 진보진영을 고립·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 적용은 역설이게도 도리어 형법의 내란죄 조항이 얼마나 굉장한 ‘악법’인지를 보여 줄 뿐이다.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는 1953년에서야 형법을 만들면서 특별법인 국가보안법을 대체하려고[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그 기능을 그대로 알박기 해 놓으려고] 만든 조항이다. 


특히, 내란 선동·선전의 죄는 형법이 [법리상] 표방한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처럼 사상을 처벌하는 독소 조항이다.(당시 국회에서 이런 이유로 이 조항에 반대하는 의견이 제시됐다.) 


[물론 이승만과 반공주의 야당은 형법 안에 이같은 국가보안법 대체용 조항을 만들어 놓고도 정작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여하튼, 제정 과정을 보면 국가보안법과 형법 내란죄는 반공 국가주의의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법무장관 황교안도 4일 국회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에서 “[내란 음모죄는] 실행계획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의할 필요는 없다 … [선동죄는]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고 말했다.고무줄 잣대라는 걸 자인한 것이다.


즉, 내란죄의 예비·음모·선전·선동의 죄로도 얼마든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노동계급 정치조직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의 내란죄도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냉전적 반공주의를 본질로 하는 반민주·반인권·반노동 악법인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승만이 만든 국가보안법을 계승·발전시키면서도 거듭 내란음모죄를 공안탄압에 이용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써 그동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형법을 보완하면 된다고 했던 친민주당 자유주의자들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또 한 번 드러났다. 


게다가 한국 지배자들은 1991년에 이미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면서 친북과 관계 없는 좌파까지 탄압할 수 있도록 “국가 변란” 개념을 추가한 바 있다. 


그런데 형법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공안검사 출신 법무장관 황교안조차,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국가 탄압이 성공을 거둔다면,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보완할 반공 국가주의의 새 ‘탄압 무기’를 33년 만에 다시 확보하는 셈이다. 


이들은 내란죄 조항을 되살려 정치로나 조직으로나 북한과 전혀 관련 없는 [또한 북한을 시장자본주의와 본질에서 차이가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보고 비판하는] 좌파들, 그리고 2008년 촛불항쟁 같은 운동까지 법으로 찍어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민주적 체제 단속의 폭이 더 넓고 쉬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의 위협,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빌미로 삼는 반공 국가주의의 형식논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든 형법 내란죄든 종북, 이적, 간첩 등은 빌미일 뿐 본질은 체제 내부 단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내란죄 조항을 되살려 공안 천국의 물꼬를 트려는 저들의 추악한 의도를 똑바로 봐야 한다. 


경제·안보 위기를 배경으로 남한 국가의 진정한 주인들이 노골적으로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지금, 내란죄 적용 시도가 되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파 권위주의 정권의 마녀사냥에 맞서 우리가 사상과 정견의 차이를 넘어 단결해 싸워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