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가 새롭게 밝혀낸 것이 많지 않다.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이 1215일에 청와대 앞에서 누구와 다섯 시간이나 식사를 했느냐가 새로운 의혹으로 제기된 정도다.


물론 이렇게 된 책임의 90퍼센트는 새누리당의 방해와 원세훈과 김용판 등 진실을 은폐한 범죄자들에게 있다. 이 모든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주류 언론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특별검사제를 통해서라도 진상을 더 밝히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특검 자체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정치 검찰’에 못 맡기겠다는 불신에서 탄생한 제도다. 게다가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정작 국정원을 수사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국회도, 검찰도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특검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과 특검이 촛불운동의 핵심 요구가 돼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어차피 특검은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므로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또다시 물타기와 시간끌기를 하며 이런 요구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동이 오히려 새누리당의 시간끌기 공작에 말릴 수 있다.


민주당 박범계는 “특검이야말로 민주당의 장외투쟁 출구전략”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검 요구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게 두 길 보기를 하는 민주당의 장외투쟁 포기에 이용될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특검제 도입 이래 열 차례 시행된 특검이 속시원하게 권력 비리를 밝혀낸 바가 거의 없다. 1999년 대검 공안부장의 입에서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실이 폭로되서 시작한 최초의 특검은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이명박 BBK 특검, 디도스 특검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심지어 일부 시국회의 지도자들이 좋은 사례로 언급하는 내곡동 특검조차 청와대 압수수색과 수사기간 연장 거부 등 방해 공작으로 이명박을 심판대에 세우지 못한 미완의 수사가 되고 말았다.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다, 인원과 시간의 한계 때문에 권력을 쥔 자들이 진실을 은폐하는 데 조직적으로 협조하면 그것을 파헤치기 어렵다. 그래서 특검제는 미국과 한국 말고는 채택한 나라도 없다. 그나마 미국도 상설특검은 1999년에 폐지한 상태다.

물론 아직 촛불의 확대를 위해 진상을 더 많이 밝혀내고 알리는 일은 필요하다. 일부에선 워터게이트로 중도 퇴진한 미국 대통령 닉슨의 사례를 들어 특검의 유용성을 뒷받침한다. 2년간 이어진 특검 때문에 닉슨이 사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닉슨을 궁지로 몬 도청 사건 은폐 공작의 실체는 수차례 교체된 특별검사가 밝혀낸 것이 아니다. FBI 간부가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것과 닉슨의 은폐 공작을 실행했던 백악관 참모들 일부가 변심해 진실을 밝혔다.


이런 내분이 벌어진 것은 당시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 등 대중투쟁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 지배자들이 분열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베트남전쟁 개시 명분이 조작됐다는 ‘펜타곤 페이퍼’가 폭로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워터게이트와 닉슨의 사례는 오히려 진실 규명에도 특검 같은 제도가 열쇠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준다. 꽁꽁 감춰둔 지배자들의 비밀의 장막이 열리는 것은 지배자들이 분열할 정도로 대중적 압력이 클 때다. 이 압력을 극대화하는 건 바로 대중투쟁의 성장이다.


언론노조 KBS지부 위원장은 17일 촛불집회에서 “들불처럼 촛불이 번져나가기 시작하자, 저희 KBS 아주 미약하나마 조금씩 … 눈치보고 있[]”고 전했다. “촛불 시민들의 힘이 [내부에서 보도 통제와 싸우도록] 언론인들을 또 다시 각성시키고 있[]” 때문일 것이다.


<KBS>뉴스는 최근 국정원 도곡동 본원에서 댓글 작업이 이뤄졌고, 글 수백만 건을 조직적으로 퍼뜨린 사실을 연이어 폭로했다. 이는 국정조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작지만 이런 사례야말로 진정한 진상 규명이 어떤 동력으로 가능한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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