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친북사상뿐 아니라 북한과 아무 관계 없는 급진적 사상도 공격하는 무기다



국가보안법은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을 진압한 뒤 만든 악법이다.(1948년) 형법보다 먼저 만들어진 악법으로 ‘헌법 위의 법’으로 불려왔다. 내란의 ‘예비ㆍ음모ㆍ선동ㆍ선전’의 죄는 1953년 형법을 만들 때 국가보안법의 기능을 그대로 옮겨놓은 조항이다. 둘 다 ‘행위’뿐 아니라 원천적으로 ‘사상’ 자체를 처벌하는 쌍둥이 악법이다. 


이것들은 냉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남한 지배자들의 정치ㆍ경제 지배질서를 수호하려고 만든 악법들이다. 처음부터 ‘체제 수호법’이었던 것이다. 근래의 심각한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이 법들이 요란하게 전면에 나선 맥락이 여기에 있다. 일각의 ‘반통일 악법’이란 분석이 편협한 이유다.


이 악법들의 체제 수호법적 특성은 1991년 5월 국가보안법 개정 때 더 분명해졌다. 당시 “분신정국”으로 불린 대규모 항의운동 속에서, ‘소련 붕괴 등 냉전질서가 해체되고 있으니 냉전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개정은 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이를 거꾸로 개악에 이용했다. 국가보안법의 단죄 대상에 북한을 가리키는 ‘정부 참칭 단체’ 말고도 ‘국가 변란 선전ㆍ선동 단체’를 추가한 것이다. 북한과 아무 관계 없는 급진적 좌파들까지 쉽게 처벌할 수 있게 한 이 개악법을 민자당은 날치기 통과시켰다.


물론 북한의 핵 ‘위협’을 빌미로 삼는 반공주의 논리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그러나 종북, 이적, 간첩 등은 빌미일 뿐 본질은 “내부의 적” 단속이다. 최근 탄압에서 법무부가 ‘노동자ㆍ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통합진보당 해산과 내란음모죄 기소의 근거로 삼은 것은 결코 레토릭(수사)이 아니다. 


극소수 특권층이 다수 노동 대중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자 권력 사상을 토론하고 그에 따른 정치조직을 만들 자유는 노동계급에게 절대로 필요한 권리다. 


그것을 국가가 ‘이적’이라고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국가의 적이 노동계급이라는 걸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원세훈이 ‘민주노총, 전교조 등’을 일컬어 “내부의 적”이라고 한 것은 지배계급의 계급의식적 일원으로서 가진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과 형법 내란죄 조항을 이용한 사상 탄압은 궁극으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바, 즉 현실의 노동계급 운동과 과학적 사회주의가 만나는 것에 대한 지배자들의 두려움을 반영한다. 


북한의 사이비 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에 반대하며 노동자 권력을 지지해 온 국제사회주의자들이나 사노련 등이 이 법의 제물이 돼 온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전혀 혁명적이지 않지만 노동운동에 상당한 기반이 있는 진보당이 희생양이 된 것도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정치의 만남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우익 정권의 전술인 것이다. 


이런 탄압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또한 본격적인 내핍 정책을 앞두고 좌파를 단속하며 억압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를 내놓고 저항에 나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반격이 될 것이다. 아울러, 급진적 좌파가 노동계급 운동 속에 뿌리내리도록 끈질기게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음험한 탄압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일 것이다.



※ <레프트21> 116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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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은 9월 25일과 26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을 형법상 내란 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와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로 기소했다.[각주:1] 


그러나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발표는 국정원의 구속영장 내용에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한 달에 걸친 구속 수사로도 밝혀낸 게 없는 것이다.


검찰은 이른바 ‘RO’ 조직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비밀 지하혁명 내란 조직이라고 했지만, 정작 ‘RO’를 반국가단체로 기소조차 하지 못 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구속, 기소, 압수수색을 한 모든 기준이 RO 모임 참석·가입 여부였는데 말이다.


새로 추가된 증거는 친북 표현물들인데, 이는 오히려 국가보안법적 사상 탄압의 성격만 확인해 줄 뿐이다.


이런 것들은 ‘내란음모 사건’의 본질이 왜곡·과장된 반공 국가주의 마녀사냥이고, 이 사건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우파 정권의 정치 재판이라는 걸 확인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법리적으로는 무리로 보이는 이 재판의 희생양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내란 조직의 실체도 제대로 못 밝혀내면서도 이런 억지 기소가 가능한 것은 형법의 내란죄 조항들이 국가보안법 못지 않은 악법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26일 오후 2시에 한 것도 치사한 짓이다. 이날 오전 박근혜의 기초연금 공약 먹튀 뉴스의 비중을 줄여 보려는 꼼수다.


사건을 터뜨린 때부터 수사결과 발표 시점까지 죄다 각종 개악 등의 물타기에 써먹고 있는 것이다. 또,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과 수사권 보유가 정당하다고 시위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정견의 차이에도 함께 힘을 모아, 반공주의 마녀사냥에 반대하며, 정치사상과 표현·결사의 자유를 위해 일관되게 싸워야 하는 이유다



  1.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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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의 약사와 본질



대한민국은 일반 형법보다도 국가보안법이 먼저 만들어진 나라다.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해서 행위가 아니라 사상을 처벌하는 악법이다. 


이 희대의 악법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4·3 항쟁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여순항쟁 직후에 만들어졌다.(1948년 12월 1일) 


냉전반공주의를 뼈대로 한 우익독재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려 한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시작할 때부터 그 본체에 아로새겨진 악법이다. 


[그 뒤, 이승만의 국가보안법과 박정희의 반공법을 전두환이 합쳐 놓은 게 지금의 국가보안법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류 지배자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국가의 기간법”(법무장관 황교안)인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체제에 뿌리를 둔 정치 세력과 재벌들이 한사코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해 온 이유다. 


반면, 좌파와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그나마 한국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체제에 적대적인 사상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체제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떠받치는 핵심 세력 중 하나인 국가정보원이 이번에는 형법의 내란죄 혐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얻기 어려웠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상의 자유 탄압이라는 본질을 숨기고, “충격과 공포” 속에서 더 효과적으로 진보진영을 고립·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 적용은 역설이게도 도리어 형법의 내란죄 조항이 얼마나 굉장한 ‘악법’인지를 보여 줄 뿐이다.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는 1953년에서야 형법을 만들면서 특별법인 국가보안법을 대체하려고[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그 기능을 그대로 알박기 해 놓으려고] 만든 조항이다. 


특히, 내란 선동·선전의 죄는 형법이 [법리상] 표방한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처럼 사상을 처벌하는 독소 조항이다.(당시 국회에서 이런 이유로 이 조항에 반대하는 의견이 제시됐다.) 


[물론 이승만과 반공주의 야당은 형법 안에 이같은 국가보안법 대체용 조항을 만들어 놓고도 정작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여하튼, 제정 과정을 보면 국가보안법과 형법 내란죄는 반공 국가주의의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법무장관 황교안도 4일 국회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에서 “[내란 음모죄는] 실행계획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의할 필요는 없다 … [선동죄는]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고 말했다.고무줄 잣대라는 걸 자인한 것이다.


즉, 내란죄의 예비·음모·선전·선동의 죄로도 얼마든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노동계급 정치조직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의 내란죄도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냉전적 반공주의를 본질로 하는 반민주·반인권·반노동 악법인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승만이 만든 국가보안법을 계승·발전시키면서도 거듭 내란음모죄를 공안탄압에 이용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써 그동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형법을 보완하면 된다고 했던 친민주당 자유주의자들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또 한 번 드러났다. 


게다가 한국 지배자들은 1991년에 이미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면서 친북과 관계 없는 좌파까지 탄압할 수 있도록 “국가 변란” 개념을 추가한 바 있다. 


그런데 형법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공안검사 출신 법무장관 황교안조차,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국가 탄압이 성공을 거둔다면,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보완할 반공 국가주의의 새 ‘탄압 무기’를 33년 만에 다시 확보하는 셈이다. 


이들은 내란죄 조항을 되살려 정치로나 조직으로나 북한과 전혀 관련 없는 [또한 북한을 시장자본주의와 본질에서 차이가 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보고 비판하는] 좌파들, 그리고 2008년 촛불항쟁 같은 운동까지 법으로 찍어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민주적 체제 단속의 폭이 더 넓고 쉬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의 위협,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빌미로 삼는 반공 국가주의의 형식논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든 형법 내란죄든 종북, 이적, 간첩 등은 빌미일 뿐 본질은 체제 내부 단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내란죄 조항을 되살려 공안 천국의 물꼬를 트려는 저들의 추악한 의도를 똑바로 봐야 한다. 


경제·안보 위기를 배경으로 남한 국가의 진정한 주인들이 노골적으로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지금, 내란죄 적용 시도가 되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파 권위주의 정권의 마녀사냥에 맞서 우리가 사상과 정견의 차이를 넘어 단결해 싸워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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