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보대중의 단결투쟁 염원에 복무해야(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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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새벽,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 (사회당을 뺀) 참가 단체들이 최종 합의문에 합의했다.

진보 대중 다수가 진보세력의 단결을 바랐던 만큼 연석회의의 통합 협상 타결을 환영한다.

최종합의문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세계 변혁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 노동자·민중이 …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진보적 대중정당”이라고 밝혔다. 

새 진보정당이 진보세력의 단결에 기초해 이런 지향대로 행동한다면 노동자와 진보적 학생들의 투쟁의지를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합파인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 등이 최종합의문에 반발하는 것은 진보대통합이 단일정당론으로 포장된 민주당으로의 흡수통합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만 봐도 진보대통합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보루를 지키는 데 더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이랜드노조 수석부위원장 출신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전국적으로 이뤄진 이랜드투쟁을 지원한 핵심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노동자, 여성, 인권, 시민사회단체들이었는데 분당 후 지원대책위 체계가 무너졌다”며 진보대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부속합의문으로 채택한 ‘20대 주요 정책과제’도 진보세력이 쟁취할 실천 과제로 손색이 없다. 비정규직 해소,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기자본 규제, 핵발전 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해외 파병 반대, FTA 반대 등.

연석회의는 또 앞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세력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더 많은 진보 대중과 단체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이 실질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제발 손에 손잡고 민주대연합으로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단결 염원

 
한편, 일부에선 결렬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쟁점들이 모호한 문구로 절충됐다.

최대 쟁점이었던 2012년 대선은 “완주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 선거연대는 … 신자유주의 극복과 관련된 주요정책들에 대한 가치를 확고한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앞뒤가 서로 안 맞는 절충을 시도했다. 연립정부 문제는 아예 합의문에서 빠졌다.

북한 핵 개발과 3대 세습에 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 등을 적극 추진”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사실상 ‘새 진보정당의 주류’는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 운영 문제는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극복”으로 “당 조직을 공동 운영”하자고 절충했다.

사실 연석회의는 그동안 자신들이 정한 합의 시한을 계속 어겨왔다. 3차 합의문은 4월을 넘겼고, 최종합의문 시한인 5월 26일도 넘겼다. 쟁점간 이견이 워낙 첨예했던 탓이다.

일각에서는 난항을 겪은 책임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주류인 ‘경기동부’파에 있냐, 진보신당의 독자파와 사회당에 있냐에 분석의 초점을 두기도 한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2012년 대선 선거연대에 찬성하는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진보대통합시민회의 등 연석회의 주도 세력들이 “독자 완주”를 주장한 진보신당을 압박하고 사회당은 배제하는 모양새였던 듯하다. 결과도 그렇게 됐다.

사실 연석회의 난항의 근본적 배경은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진보대통합을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여기면서 연석회의 논의 구도 자체가 우경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분당 전 민주노동당에게 대선 독자 완주는 당연한 ‘전제’였다. 2007년 대선에서 기대보다 낮은 득표 때문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책임 공방이 일고 분열로 이어졌지만, 논쟁 당사자 누구도 ‘독자 완주’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연석회의 주도세력은 ‘독자 완주를 기본으로 한다’는 문구를 “양보”라고 부른다. 일부는 민주당과 공동정부도 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경화


연석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 논의를 미루고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추구했다. 이런 태도들이 연석회의 안팎에서 좌파적 반발을 낳았다.

현대차 비정규직과 KEC에서 ‘민주대연합’ 의원단이 투쟁을 망친 것에 대한 비판도 늘었다.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손학규 낙선운동을 경고했다.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출마해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합했다.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패권적으로 나온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였다. 좌파들과 현장 투사들의 반발을 피하려고 최종 협상은 밀실 협상으로 진행됐고, 이런 우경화와 패권주의를 비판한 ‘다함께’는 ‘반자본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연석회의에 포함되지 못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제외한 세력들이 사실상 담합해 두 당을 압박했다.

밀실협상은 불신을 더 증폭시켰다. 민주노총의  민주노총 임성규 전 위원장조차 “이탈자를 가속화하고 고립화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매우 불쾌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최종합의문이 연석회의 주도세력 입맛대로만 되지 않고 절충 형태를 띤 것은 바깥의 비판과 압력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극복” 문구가 4차 대표자회의에서 빠졌다가 최종합의문에서 “자본주의 한계와 폐해 극복”으로 다소 완화돼 되살아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의 참여가 봉쇄됐기 때문에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좌파를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진보신당 지도부는 일관성이 없었다. 오히려 애초의 원칙적 견해를 쉽게 포기해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지분을 보장받는데 더 관심있는 것 아니냐는 당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진보신당 독자파와 사회당은 그동안 야권 선거연대에는 거의 반대한 적이 없고, 주요 점거 파업을 방해한 야권 중재단에 진보신당 지도부가 참여한 것은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신당의 독자파 부대표들이 야권단일정당론자인 박용진 부대표와 함께 진보대통합 합의문에 반대 성명을 낸 것도 독자파의 일관성 부족을 보여 준다.[각주:1] 이래서 안타깝게도 독자파와 사회당의 민주대연합 반대 주장은 자주파에 대한 종파적 태도와 구별하기 힘들 때가 많다.


반북주의?


한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등은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3대 세습을 비판하자는 견해를 ‘반북주의’라며 우파적 동기에서만 비롯한 것처럼 주장해 왔다.

진보신당 독자파 일부와 대통합파(복지파) 등이 북한 쟁점에서 우파 논리에 기대는 것은 사실이다. 최종합의문 발표 후 독자파 리더 중 한 명인 이근선은 우파 매체 <브레이크뉴스>의 칼럼 “진보신당은 종북정당에 연연하지 말라”를 당원 게시판에 올렸다. 대통합파인 최병천은 이를 지지했다.

김준수, 심재옥 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원회’ 위원 넷도 합의문 비판 성명을 내고 “미국과 남한의 가중되는 압박”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문제삼았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합의문에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를 포함하자고 한 것은 이런 압력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의 주범인 미국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주로 비판·반대하는 것은 균형 잡힌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 지배자와 남한 민중 운동의 일부인 자주파는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핵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는 진보의 원칙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친북으로 비치는 걸 피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대안사회의 모습에 관한 것이다.

북한은 노동계급이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주의와 관계가 없다. 3대 세습은 바로 그런 비민주성과 억압성의 한 표현이다. 새 진보정당은 남북 양 체제 모두 반자본주의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은 새 진보정당의 지향을 다루는 것이므로 2008년 “종북 소동”과도 다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등은 6·15 선언을 근거로 북한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6·15 선언은 남북 통치자들 간의 합의다. 각자 나라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자들이 서로의 통치 질서를 인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거꾸로 말해 북한 정권이 남한 체제를 인정했으니 우리도 남한 자본주의를 대안사회로 인정해야 할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진보정당은 달라야 한다. 이번 합의문은 진보신당은 물론이고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하겠다고 한 민주노동당의 기존 강령에서도 후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일부(경기동부)와 이정희 대표가 북한 비판 자체를 모두 싸잡아 반북주의·반공주의 취급하는 것은 왜곡이다.

 

공동전선
 
결국 최종합의문은 핵심 쟁점에서 좌파와 현장 투사들에겐 불만족스럽게 절충됐다. 그래서 연립정부 반대와 북한 정권 비판을 요구했던 진보신당은 내분에 빠지는 듯하다.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진보 대중의 단결 염원을 받아 안으면서도 첨예한 쟁점이 오히려 분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각 단체의 독자성을 보전하며 합의가능한 행동강령 중심으로 뭉치는 공동전선 형태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단일정당 형태를 취하더라도 운영 원리를 이를 반영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새 진보정당을 우경화로 이끌어 가려는 상황에서 급진좌파가 개입하는 것에 더 유리한 것은 공동전선적 당 운영일 것이다.

연석회의가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는데, 연석회의는 그다양한 진보세력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급진좌파도 이 기회를 이용해 진보대통합이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개입해야 한다.

성공회대 서영표 연구교수의 지적처럼 “진보대통합이 정치적 과정이라면 이미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정치적 주체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 성격과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석회의 주도세력도 민주대연합 따위를 일방적으로 추구하거나 추진위 개방을 국민참여당을 위한 장치로 만들려 하면 애써 마련한 진보대통합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다.

진보 대중이라면 누구나 한나라당 정권을 교체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정권교체 자체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혁의 진정한 동력은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힘이었다.

정권 교체는 대중투쟁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만 의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기업주와 관료, 사법부와 군부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양보하도록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개혁주의의 고전적 사고방식이다.

또 민주당은 반MB 야권연대하자면서 한EU FTA 통과에 합의하는 등 이중성을 보여 온 것은 민주당이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의회주의 정당이지만, 근본적으로 자본가계급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과 연립정부로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몽상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과제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목표로 단결된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대연합 등 선거주의 압력을 이겨내고 진정한 사회 변화에 헌신하며 진보정치의 독자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6.1)
  1. 이들은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정당을 만들려고 민주노동당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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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올해 메이데이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선언할 예정이다.

△1997년 1월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법과 반민주 악법들을 철회시킨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한동안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이 때 얻은 정치적 자신감과 교훈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발행한 “2011년 정세와 투쟁” 교안은 이 과제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동조합이 단위사업장의 근로조건 개선 등 경제투쟁을 뛰어넘는 …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해 나가는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자신만의 고용에만 안주하고, 통장에 남은 잔고만 바라보는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당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에 의존해서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깨달음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성공한 첫째 시도가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한때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며 약진하기도 했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분열했다.

다수의 현장 조합원들은 진보정당이 단결해 세력을 키워서 노동자 투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민주노총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진보대통합’을 뜻하게 된 이유다.

이 점에서 일부 급진좌파들처럼 진보대연합을 지지하지 않거나 냉소적인 것은 잘못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왜 난관에 부딪쳤는가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총선 때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의 열기 속에서 의원 열 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했다.

2004년은 파병반대 운동, 비정규직 투쟁,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 대중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투쟁들을 확대ㆍ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의회 안에서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에 더 매달렸다. 자주파와 평등파 지도자들 모두 이러한 방침을 추구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아예 우경화해 2005년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고 2006년에 한미FTA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양극화는 심화했고, 비정규직은 늘어만 갔다.

문제는 이에 맞서 투쟁과 대안을 건설해야 할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회피하려고 비정규직 투쟁 등 단결된 투쟁을 외면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비리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대체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이런 노조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투쟁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했다. 게다가 “정규직 이기주의론”에 굴복하는 사회연대전략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각주:1]

그것은 오히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을 모두 겨냥한 우파의 공세에 힘을 실어줄 뿐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과 우경화에 실망해 왼쪽으로 이탈한 대중을 민주노동당은 흡수하지 못했고 민주노총의 선진 조합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줬다.

진보정치의 위기에는 주요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집권당을 대체할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의 환멸을 기회 삼아 이명박 같은 우파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심상정 전 의원 등은 ‘민주노총당’, ‘데모당’이 문제라며 민주노동당을 더 온건화시켜 이 상황에 대처하려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당원을 제명시키려고도 했다. 원인과 해법이 어긋났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대가를 치렀다.

다함께 등의 좌파가 이 잘못된 시도에 맞섰지만, 끝내 민주노동당은 분열했다. 분열의 결과로 진보 양당이 모두 약화됐고 어느 정도 더 온건해졌다.

그래서 현장 조합원 다수가 진보진영의 단결을 바라지만, 한편에선 불신도 있다. 현대자동차 정동석 조합원은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 구청장을 노동자들이 계속 밀어줬는데,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은 있지만 열정적이진 않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따라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대중적 정치투쟁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해야 노동자들의 사기와 신
뢰를 높여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반MB 범야권 연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 정부 아래서 벌어진 부자 감세, 기업 특혜,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 물가와 전월세 폭등, 노동운동 탄압 등 때문에 수많은 노동 대중이 고통받고 분노하며 싸우고 싶어 한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이들의 ‘반MB’는 기본으로 ‘반정부’를 뜻한다.[각주:2]

문제는 이것이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반MB’ 민주연합(범야권연대)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등은 진보대연합 이후에 민주당과 선거연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심상정 전 대표는 나아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까지 얘기한다.[각주:3]

그런데 현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꼭 민주대연합이어야 할까? 그것은 ‘반자본주의’를 위해 ‘반MB(반정부)’를 기각하자는 급진좌파 일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논리 비약이이다. 둘은 같지 않지만, 대립된 목표가 아니며 결합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반MB 정서는 모순적이다. 그것이 대체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대연합 지지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그 이면에는 민주당을 향한 불신이 배어 있기도 하다.
민주당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들과 연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그 정서는 왼쪽으로 향하는 점도 있다. 그 점에서 정치인들의 민주대연합 노선과 대중의 정서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처럼 ‘반MB’를 단순히 ‘민주당 지지 정서’로 낮춰 보면 올바른 전략·전술을 내놓기 어렵다. 일부 급진좌파처럼 외부에서 기존 진보정당들을 비난하기만 하면, 아직 좌파를 지지하진 않지만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울 의지가 있으며 왼쪽으로 향하는 대중을 오히려 민주대연합 노선에 내맡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래서 진보의 단결이 필요하고, 특히 단결된 대중투쟁이 중요하다. 19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철회 파업 때처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청소 노동자 투쟁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쌍용차·한진중공업 등 정규직 파업 등은 전투적 투쟁 자체가 옛날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줬다. 열쇠는 지도부가 민주노총 차원에서 전(全) 계급적인 연대 투쟁과 파업을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다. .


문제는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을 하려 하면 할수록 이명박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해 진보 개혁을 이룬다는 노선은 자본가들과 타협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반영인데,
지금처럼 경제 위기 상황에선 자본가들도 이윤과 지배력을 보존하려고 매우 거칠고 무자비하게 나온다.

그래서 단호한 투쟁과 반자본주의 대안이 필요할 때,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요구와 강령을 낮추고 투쟁을 자제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각주:4] 그것이 비록 단기적으로는 선거에서 성과를 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즉 계급정치의 잠재력을 갉아 먹게 된다.[각주:5] 


예컨대, 전북 버스 노동자 투쟁에서는 민주당이 지역 자본가들 편을 들고 있는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날세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KEC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민주당과 진보정당 의원들이 함께한 의원 중재단이 투쟁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했다.[각주:6]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연석회의에 참가하겠다고 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촛불을 통해서 정치사회에 새롭게 뛰어든 시민들”(이학영)인 국민참여당 당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국민참여당이 실시한 1월 초 온라인 조사에서 당원 67퍼센트가 자신을 ‘대체로 진보’라고 했고, 75퍼센트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복지 이념으로 골랐다.

그럼에도 그 당의 강령과 핵심 지도자들의 정치가 친자본주의적 자유주의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대체로 ‘제3의 길’ 정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이 당을 진보대통합에 포함시키기보다는 실천 속에서 이 당의 한계와 불철저함을 진보적 대중 앞에서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진보대연합을 건설해 국민참여당에 호감을 갖는 진보적 대중을 끌어당겨야 한다.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패권주의 문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도 진보대통합의 주요 쟁점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종북주의’ 비판은 색깔론과 유사하며, 단결을 하려면 공통점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종북주의’ 용어는 마녀사냥 느낌을 주는 잘못된 용어다.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의 주범인 미국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주되게 비판ㆍ반대하는 것도 균형 잡힌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 지배자와 남한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일부인 자주파 동지들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핵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는 진보의 원칙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체제에 반대한다고 남한 체제를 지지해서는 안 되지만, 남한과 똑같이 억압적 착취체제인 북한을 대안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이처럼 북한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와 연립정부에 대한 찬반 등을 어물쩍 덮으며 민주노총 지도부가 세몰이 식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패권적 태도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지도자들은 패권주의를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묻지마 야권연대’ 추진 과정에서 당내 절차와 비판 의견은 패권적으로 묵살해 왔다. 그 점에서 오히려 진보대통합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견해 차이와 문제점들을 이유로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연합하는 것 자체를 사실상 반대하는 진보신당 독자파 등의 태도도 적절하지는 않다. 급진좌파 일부처럼 진보대연합이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라고 선험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도 지도부의 노선만 보고는 대중의 염원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래서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진보대통합이란 이름으로 단일 정당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공동전선 방식의 진보대연합을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각 정파가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강령 십수 개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중투쟁과 선거 대안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ㆍ문화적 차이와 오랜 갈등의 뿌리를 볼 때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단결 방식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대연합이 선거공학으로 기울어 민주대연합의 부속물이 되지 않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그것이 대중의 염원에 부응하면서도 진보운동의 좌파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55호(발행 4.23/온라인 입력 4.21)에 실렸습니다. 바로 가기


  1. 이 전략은 상대적으로 평등파 지도자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때부터 진보정치는 대중투쟁 대신 기업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다수당 그리고 국가기구와 벌이는 정치협상을 주요 목표이자 수단으로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햇다. [본문으로]
  2. 이 반정부 정서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에 바탕한 반노동계급적 성격 때문에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본문으로]
  3.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한 진보대통합 시민회의나 최근 모임을 만든 ‘진보의 합창’도 통합진보정당이 범야권연대나 연립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본문으로]
  4. 그 점에서 복지국가 강령으로 민주당과도 연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복지국가단일정당론’은 (진지하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공상에 가까운 목표다. [본문으로]
  5. 만일 민주당의 양보로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얻게 된다면, 그 성과를 유지하려는 관성과 이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이 스스로 옳았다는 판단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활동 폭은 더욱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즉,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더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변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6. 민주당은 최근에도 부자 감세의 하나인 취득세 인하에 합의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직업안정법개악에 한나라당과 합의했는데, 민주대연합에 적극적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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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경향신문> 사실상의 절독 선언을 했다[각주:1]. 진보정당과 개혁 언론의 충돌은 흔한 일이 아니다.

발단은 <경향신문> 10월 1일자 사설이다. 이 사설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이를 비판하지 않는 민주노동당도 함께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그 직전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3대 세습을 비판할 수 없다고 논평한 바 있다.

북한은 자본주의 계급사회

북한 지배계급은 수십 년 만에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를 열어[각주:2] 김정일의 3남으로 알려진 김정은을 초고속 승진시켰다. 김정은은 북한군의 대장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 경력도 없고 서른도 안 된 인물이 사실상 최고 권력자의 지위 승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 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주의는 원리상 단지 몇 년에 한 번 대통령을 뽑는 자본주의의 민주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민주적이다. 정치는 경제적 결정을 다루는 과정이 될 것이고,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할지는 자유로운 대중들이 협력적으로 수요를 조사하고 토론하며 투표를 거쳐 결정할 것이다.

이런 권리들이 설사 외부적 요인으로 일시적으로 제약되더라도, 말그대로 그 제약이 일시적이어야 하며, 그것을 보장할 최소한의 기초적 권력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부와 권력이 애초에 불평등하게 배분돼 고착화된 사회다. 최고 지도자 지위의 세습은 두드러진 한 사례일 뿐이다.

명백한 계급사회인 것이다. 어떤 계급사회일까? 북한 경제는 국경 밖 자본이나 군사력과 벌이는 경쟁이 경제의 우선순위와 형태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원리상 자본주의다. 폐쇄적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체제는 핵과 인공위성, 중공업 같은 경쟁과 자본 축적의 필요가 인민의 배고픔보다 우선시된다.

이들 국가자본주의 경제는 한때 유행하고 성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북한은 1970년대 후반까지 남한보다 더 빨리 성장했고, 198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보다 더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체제도 서방의 시장자본주의 경제와 마찬가지로[각주:3] 자본주의에 생래적인 주기적 경제위기를 겪어 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취약해진 북한 경제의 경쟁력은 옛 소련의 붕괴 후 역내 시장마저 잃어버리면서 더욱 약화됐다. 대홍수로 식량 기근까지 겹친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볼 때, 김정은 권력 승계는 북한 지배계급의 호언장담과 달리 북한 체제가  지속적인 위기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한 지배계급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권위, 일당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그나마 경제와 생활수준이 성장하던 시기에 최고지도자였던 김일성 ‘주석’의 후광 뿐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이 김정일이 주석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유훈 통치’를 한 배경인데, 그 방식을 유지하려니 검증된 지도력이 아니라 그 혈통과 군부의 지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선군(先軍)정치는 이번에도 강조됐다. 물리적 억압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번 당 대표자회는 이 때문에 조선노동당 규약도 손 봐야 했는데, 공산주의 등 명목상
용어 대신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혁명전통'을 공식화하고, 그에 대한 '계승성'을 강조”했고 “선군(先軍)혁명이 추가됐다.[각주:4]

주체 혁명은 이제 권력세습과 군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뜻하는 것이 됐다.



북한 비난하는 남한 지배자들의 위선

이것을 한국의 우파들은 김씨 왕조의 권력 세습이라고 비판했는데, 이것은 매우 위선적인 상징 조작이다. 

북한을 봉건왕조로 묘사하는 것은 남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 ‘사회주의’(진실은 가짜 사회주의)보다 근본에서 더 우월한 체제라는 것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인 왕조 체제인 것도 아니다. 북한은 관료적 자본가들의 집단 지배체제다[각주:5]

북한 모델이 진보적 대안 사회가 결코 될 수 없지만, 우파의 북한 비판과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다. 이 점을 혼동한 많은 좌파들이 냉전시대에 반공주의로 전향했다[각주:6]

그러나 권력과 부의 세습이란 점에서 남북이 다르지 않다. 대표 사례인 <조선일보>와 삼성재벌의 세습은 그것이 일개 기업이나 돈 더미 정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 주류 중의 주류로서 보유한 권력까지 세습된다[각주:7]는 점에서 북한과 다르지 않다.

몇 년에 한 번 투표권이 있으며, 그나마 뽑힌 뒤 별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는데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임기 채우기만 기다려야 하는 자유민주주의도 허술하고 비민주적이긴 마찬가지다.

남한도 진정한 권력은 세습되고 있다. 진정한 통일과 남북 닮아가기는 남북 고위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두 사회가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라는 공통점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쪽 지배자들이 서로 상대 존재를 핑계로 내부 불만을 잠재워온 적대적 공생관계의 역사는 바로 지배계급이라는 공통적 속성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 주류의 비판은 반박꺼리일 뿐 진지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각주:8]그렇다면, 진보진영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접근법 문제인데, 이 점에선 일단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논평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진보의 대안 될 수 없어

진보와 좌파의 보편적 기준에 북한의 권력 승계(외교적으로 좋게 표현하면)는 당연한 비판 대상이다. 무엇보다 그런 행위를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한다면 지나칠 수 없다. 좌파의 신용이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다수 대중의 진정한 이익과 의견 참여가 반영되는 체제가 진보진영에서 대강 합의 가능한 대안적 민주주의의 모습이라면, 북한의 권력 체제가 이를 봉쇄하고 억압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논평에서 좀더 세련되게 내재적 접근론과 남복관계 고려론을 펴는데, 여기에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우선 오직 북한 정권의 문제에 대해서만 내재적 접근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북한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논평은 사실상 북한 체제의 비진보성에 눈 감겠다는 선언이다. 권력과 부의
세습이나 비민주성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안에서 체제 비판을 할 때 일관성의 문제가 생긴다. 삼성과 <조선일보>의 세습이 좋은 사례다. 한편, 국제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할 때도 일관성 문제가 제기된다. 그들에게도 내재적 접근법을 써야 하나.

이정희 대표[각주:9]는 북한 최고 지도자를 비판했을 때 늘 대북 관계가 악화됐다며 이 논평을 정당화한다[각주:10]. 이 대표가 이 나라나 미국의 관료와 우익들이 평소에는 적대시하다가 북한 정권과 우호 관계가 필요할 때는 찬사를 늘어놓는 이율배반을 지적하는 것은 옳다[각주:11].

하지만 한반도에서 각 국의 관계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 요인은 미국의 패권전략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한반도 주변국들의 관계지, 남한 정당들의 태도가 아니다. 1994년 정상회담 추진에서 급작스런 전쟁위기로, 1998년 햇볕 정책 아래서 서해교전을, 2000년 냉각 국면에서 정상회담으로 등 이런 변화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주요 변수였고 남한 정권은 종속변수였다. 

또한 미국의 전쟁 협박 같은 게 아니라 진보적 비판을 이유로 북한 정권이 거칠게 나온다면 그것은 북한 정권이 나쁜 거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이명박이나 삼성 이건희 일가를 깐다고 그들이 권력을 동원해 억압하면, 그게 그들이 나쁘기 때문이지 우리 탓인가.

미국 제국주의나 한국의 냉전 우익의 색깔 공세와 진보진영의 북한 비판을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매카시즘으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진보도 북한 체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쟁점이 된 <경향신문> 사설도 논점을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사설에서 4분의 3 정도는 북한 비판과 북한 체제를 비판 못하는 민주노동당 논평의 약점을 비판하는 데 할애돼 있다. 여기까진 사실 문제 없다.  

그러나 사설은 글 말미에서 민주노동당이 “북한 체제를 비호하고, 나아가 상부로 간주한다는 비판에 부딪혀 분당이라는 아픔까지 겪은 바 있다”며 ‘종북’ 쟁점을 꺼낸 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북한 비판을 거부하는 것은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고 말한다. 

냉전적 사고를 보통 남(南) 아니면 북(北)의 편에 서서 상대편을 죽이려는 사고 방식이라고 본다면, 경향의 사설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냉전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들이 북한을 ‘상부로 간주하며’ 남의 체제와 대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상 ‘민노당 종북론’인 것이다[각주:12]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입장을 바꿔달라는 경향의 호소는 마치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스스로 종북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것처럼 돼 버렸다[각주:13]. 이정희 대표는 분명하게 이 점을 이유로 내세워 자신은 말하지 않을 권리를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반응은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경향 사설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모든 비판을 싸잡아 반공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과도한 면(역편향)이 있다고 본다. 국가 탄압으로 촉발된 논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아마 예상 못한 3대 세습이 자주파 내부에서도 혼란을 일으킨 게 과도한 대응의 주관적 배경이 아닌가 싶다.

유감스런 경향의 종북 공격

사실, 유럽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옛 소련의 정치적 국경수비대 구실을 한 역사가 있다. 남한의 자주파도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의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옛 공산당들이 각국 진보운동의 자체 구조와 문화,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한의 자주파도 남한 진보적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정치적으로 생존 가능하므로 친북 성향이라 할지라도 보통은 남한 정치의 맥락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남한의 자주파가 한미fta에 반대하고,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대중행동 건설에 참여했을 때, 그것은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
(종북주의)이었나. 그렇다면, 비친북 좌파나 엔지오들은 북한의 지령에 따른 행동에 부화뇌동한 것인가.

이런 논리적 귀결 때문에 자주파를 일방적으로 종북주의로 내모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하는 것이다[각주:14]. 종북이란 용어가 뉴라이트에게서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문제라면 누구나 한마디 거들 수 있고, 비판하기 뭣 하면 입을 다물면 된다[각주:15]. 진보진영 안에서 외교적 고려가 우선이냐, 가치가 우선이냐 등을 가지고 논쟁할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 북한 사회가 사회주의인지, 정말 대안 사회의 자격이 있는지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종북론을 들먹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진보적 관점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자주파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다. <레프트21>은 종북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북한 3대 세습과 자주파의 무비판적 태도를 비판했다.(☞ 관련기사 ①이것이 사회주의인가 / ②당대표자회의 정치적 배경 / 다음 호에도 추가 기사가 실릴 예정이다[각주:16])

사실, 민주노동당 안의 자주파 지도부가 3대 세습을 찬양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지, 비판하는지 개개인들의 정확한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민주노동당 당원 전체는커녕 범엔엘 경향의 내부 의견 분포도 정확히는 모른다.[각주:17]

그런데 <경향신문>처럼 당 전체를 싸잡아 “종북이냐, 아니냐” 묻고 증명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방식은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할 수도 있어 위험할 수 있다.[각주:18] 

내가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북한 체제와 그 옹호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북한 체제 비판을 무조건 매카시즘으로 몰아가는 자주파 일부의 대응 방식을 싫어하면서도, 경향발 종북 소동이 찜찜한 이유다.

남한에서 북한 비판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어떤 비판이냐다. 진짜 쟁점은 북한이 사회주의냐, 아니라면 무엇이냐, 진보의 대안 사회는 무엇이냐가 돼야 한다.




 

  1.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은 경향신문에 항의문을 보내고 보도를 시정하지 않으면 절독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논조를 바꿀리 없으니 울산시당은 이미 절독을 선언함 셈이다. 결과는 우려스럽다. [본문으로]
  2. 이번 3차 당대표자회는 1966녀 제2차 회의 이후 44년 만에 처음 열리는 회의다. [본문으로]
  3. 2차대전 시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는 서방까지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국가자본주의 형태가 큰 흐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이 자유시장이나 미약한 국가개입에 맡겨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게 드러났고, 세계대전으로 주요 국가들이 국가통제 전시경제로 가면서 실업과 과잉생산이 해서된 것 때문에 유행하게 됐다. 이 체제의 선구자는 1930년대 옛 소련과, 나찌 독일, 일본이었다. [본문으로]
  4. 통일뉴스 9월 29일치 기사 인용. ☞ 개정된 北노동당 규약 서문, '공산주의' 문구 빠져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61 [본문으로]
  5. 이 말은 김정일이 그랬듯이, 김정은도 북한 지배계급 핵심 집단에게서 최고지도자로서 검증과 인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6. 심지어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마저 그랬다. 이들 일부는 네오콘이 되기도 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교훈이다. [본문으로]
  7. 김정은은 아마 세습 선배인 <조선일보> 사주 일가를 보면 “방가방가” 하고 인사할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사주 방씨 일가는 가계도 상으론 무려 4대째 세습이다. 2대 방우영/일영 형제는 사실 방응모의 양손자다. 김1성 가문이 3대 세습에 성공하려면 ‘남조선’의 ‘3성’ 가문을 보고 배워야 한다. [본문으로]
  8. 그들이 친미 독재 국가인 이집트나 싱가포르의 정권 세습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후세인 시절 이라크, 중국 등을 이런 문제로 비난하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심지어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대권을 강탈하는 걸 전 세계인이 지켜봤는데, 뭐라 한마디 했던가. 한국 주류 우익들의 북한 비난은 남한에서 좌파의 신용을 떨어뜨리려는 매우 의도적인 위선이다. [본문으로]
  9. 이정희 대표가 다음 블로그에 쓴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 마디만 해 보라고?- 경향신문 9월31일자 사설에 대해” 라는 글이 논쟁이 되는데, 찬반을 떠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9월은 31일이 없다. 해당 사설은 10월 1일치다. (☞ http://blog.daum.net/jhleeco/7701325) [본문으로]
  10. 물론 이런 외교적 이유로 미국이나 한국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는 가치 판단을 담은 논평을 내지 않았다. 그 점에서 이정희 대표의 견해는 자주파적이라기보다는 햇볕정책의 자장 안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본문으로]
  11. 예를 들어,동아일보는 주석궁에 김일성의 보천보전투를 보도한 기사를 황금본으로 만들어 가져갔다. [본문으로]
  12. 암튼, 친북과 종북 두 용어는 쓰는 쪽에서나 받아들이는 쪽에서나 그 맥락이 다르다. [본문으로]
  13. 민주노동당의 자주파 지도부도 이 점을 민감하게 느껴 강하게 반발하는 듯하다. 경향신문의 후속 기사 제목도 자극적이다. [본문으로]
  14. 이 자기얼굴 침뱉기를 피하려면 자주파를 진보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면 된다. 종북론이나 반공주의를 수용하는 진보진영 일부가 자주파를 적대시하는 종파주의에 빠지는 것은 이런 논리의 귀결이라고 본다. [본문으로]
  15. 대한민국에서 북한 욕하기는 쉽다. 내가 진중권을 다룬 글에서 지적했듯 지배적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북한 체제를 명백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좌파까지 처벌하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체제를 어떻게 비판하는가다. 북한을 비판할 때도 남한보다 못한 체제로 비판하는 것과 남한처럼 권력과 부가 독점 세습되는 똑같은 자본주의 계급사회라고 비판하는 것은 다르다. [본문으로]
  16. 박노자 교수도 10월 1일자 레디앙 칼럼을 통해 북한‘만’ 악마화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후보도 맨처음 북한만 비판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세습 문제에서 남북 모두 비정상국가라는 논리로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물론, 그럼 정상국가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말이다. [본문으로]
  17. 내부에 있을지도 모를 혼란과 외부적 부담을 모두 고려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낸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18. 아니나다를까 후속 보도에서 경향은 북한 세습 비판을 이유로 민노당이 반발한다고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종북 낙인찍기에 반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절독 선언 같은 건 완전 에러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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