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취임 전부터 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경우, 이미 예측·경고했던 바다.(☞ 바로가기그러나 그것이 자동으로 진보진영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촛불항쟁으로 취임 첫해부터 약해졌지만, 결국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바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세력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칙을 훼손하고] 분열하면서 기회를 못 살렸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세력은 노회찬 대표를 시작으로 김선동, 김미희 등 줄줄이 진보정당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려 하고 있다. 이런 솎아내기에 단결과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치 세력들의 분열과 반목이 전열 재정비 문제에서 걸림돌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진보정치를 재건할 진로 논쟁, 즉 노선(정체성)과 세력의 재편에 관한 토론이 중요하다. 최근 이런 토론들이 재개되고 있다.


진보신당에선 1월 당대표 선거에서 진보정치의 연대와 노동중심성 문제가 논쟁됐다. 반갑게도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의 연대와 노동중심성을 강조한 이용길 후보가 대표로 당선했다.


진보정의당에서는 최근 주요 간부 설문조사에서 절반 넘는 사람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수립’을 꼽았다.


이 조사에서 ‘현존하는 나라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나라 모델’로 91.6퍼센트가 스웨덴을 꼽았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지향점으로 꼽은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도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적 발전 수준에서 부르주아 정당과 구분되는 좌파 사민주의 정당의 존재는 여전히 의미있다.


그러나 진보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은 이런 좌파 사민주의보다 더 오른쪽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정치가 주변화된 상황의 돌파구를 주류 제도정치에 더 적응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도 나타난다.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이 “광화문이나 대한문 앞에서 집회나 농성을 하는데, 국민들 입장에서 …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각주:1]에서다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는 “똑같은 임금을 준다면 비정규직, 파트타임(노동자)을 써도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에 매달리는 건 “근본주의”라는 말도 한다.[각주:2]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란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복지를 가져오는 주체로서 사회적 투쟁보다는 박근혜의 복지 공약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또 그러다 보니 “박근혜 정부와 전략적 동맹을 맺을 준비가 돼 있다”며 중재기구를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즉, [대중운동의 대변자이자 조직자로서가 아니라] 국가기구의 최상층부와 협력해야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발상에서 박근혜와 동맹 같은 제안이 나오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후퇴인 까닭은 과거 민주노동당은 초기에 ‘거대한 소수 전략’(“대중운동이 중심이고, 의원은 그 스피커 구실을 해야 한다”)을 내세웠었기 때문이다. 비록 실천에서 이 방향이 일관되게 구현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진보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은 ‘사민주의에 대한 낡은 금기’를 벗어나야 한다며 이런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에 “사회민주주의 한계 극복”이 들어간 맥락을 봐야 한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유럽 주류 사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투항하면서 실패한 전철을 밟지 말자는 생각에서 나왔던 것이다[각주:3].


20세기 후반의 복지국가는 2차대전 후 상대적으로 장기간 지속한 서구 자본주의의 호황을 배경으로 한다. 여력이 생긴 자본가들은 노동 대중의 개혁 열망과 투쟁이 더 급진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양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낡은 금기?


그래서 1951년 영국에서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이전 노동당 정부 6년 동안 기틀이 잡힌 보편적 복지제도와 일부 기간 산업 국유화 노선이 후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세계적 경기 후퇴 속에서 자본가들이 태도를 바꾸자, 주류 사민주의 정당들은 연이어 신자유주의에 굴복했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대서 개혁을 제공하는 전략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이런 실패 때문에 근래에는 주류 사민주의를 비판하며 좌파 사민주의 정치세력들이 성장했다[각주:4]. 그리스 시리자,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등이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진보정당이 주목해야 할 것은 주류 사민주의(사회 자유주의)가 간 실패한 길이 아니라 이러한 급진좌파 세력의 성장이다. (물론 이들도 좌파 사민주의이므로 근본에선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민족일보 웹사이트. 프랑스 좌파전선의 대선 후보였던 장 뤽 멜랑숑의 지난해 선거 유세 장면.



진보정당들이 민주통합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 기반 때문이다. 조직 노동운동 기반이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투쟁들을 보자. 새누리당이 이를 골칫거리로 보고 민주당이 여야 협상의 거래가능한 쟁점으로 이를 다루는 것과 달리, 진보정당은 그 투쟁의 일부여야 한다.


이런 압력 때문에 진보신당 대표 선거에서도 조직 노동운동과 연대를 강조한 쪽이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보정의당 일각에선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기반’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보정당이 더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과 정의상, 진보정당의 길보다는 민주당 왼쪽방으로 가자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나머지 노동계급과 완전히 분리된 운동이 아니다. 설사 지금 당장 정치의식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해도 1천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삶은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요구, 투쟁과 연관돼 있다. 


그러므로 [단편적 상식과는 달리] 목표(지향)와 실천, 기반에서 ‘계급성’, 즉 노동중심성을 확고히 유지해야 진보정치세력으로서 부활할 길이 열린다. 


사실 지금 진보정당의 존재감 약화와 주변화에는 조직 노동운동의 자신감과 투쟁 수준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배경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운동의 약화에 노동계 진보정당의 잘못된 방향 추구와 분열이 한몫했다.


따라서 ‘조직 노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주변화를 극복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는 진보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보정의당 일각의 ‘현대화된 생활정당’으로의 우클릭 시도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마저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고 좌클릭해야 했다. 이럴 때 진보정당이 제도정치권에서 받아들일 만한 온건한 정책과 노선을 추수해봐야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더 약화시킬 뿐이다.


진보정의당 지도자들의 이런 시도는 우리가 2011년부터 지적한 바, 유시민계와 연합해서는 진정한 진보의 원칙과 단결을 유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드러낸다.[각주:5]


그 점에서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이 <레디앙> 대담에서 유시민계와 민주노동당계ㆍ진보신당계는 “혈연관계”가 됐다고 말한 것은 시사적이다.


같은 대담에서 진보신당 김종철 전 부대표가 “민주당과 정책으로 구분되고, 장기적으로 독자적 대중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세력이 되려면 자본주의 극복의 원칙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한 말이 옳다.


물론 진보신당이 이에 바탕해 연대와 단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갈수록 박근혜의 모순과 정치 위기는 커져 갈 것이다. 진보진영은 원칙을 유지하며 투쟁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위기를 이용해 단결된 반격을 해야 한다


[진정한 좌파야말로 이 과정에서 원칙과 단결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력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하려면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게, 즉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축약해서 <레프트21> 98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자족적인 투쟁 구호를 외치고 노래(투쟁가요)를 부르는 것” [본문으로]
  2. 물론 근본적 요구만 되뇌이며 부분적 요구 쟁취 투쟁에 기권하면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주의라기보다 종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근본적 목표에 비춰 부분적 요구와 투쟁의 위상을 설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본문으로]
  3. 그래서 이른바 국가사회주의와 현대사민주의 모두 지양하자는 표현이 들어갔던 것이다. [본문으로]
  4. 물론 이 좌파 사민주의, 또는 급진좌파들의 ‘반자본주의’에는 모호함이 있다. 지금 운동의 발전 수준에선 급진성과 모호함이 성장의 한 요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5. (원칙을 훼손하는 단결은 오히려 분열과 반목을 낳는다. 지금은 어려워도 원칙 있게 단결하고 싸워야 진정한 단결을 이룰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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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대선 결과로 가장 충격받은 건 1987년과 1992년 대선 때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각각 중1과 고3이었다. 


87년이 ‘어떻게 군사정권의 정통 계승자인 노태우를 찍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하는 순진한 충격이었다면, 92년은 ‘투표로는 정권을 바꿀 수 없겠구나!’ 하는 절망적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87년엔 그래도 반군부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받은 표가 노태우와 김종필이 받은 표보다는 많았다. 그러므로 순진하고 식견이 짧은 나로서는 3당 합당을 했으니 만큼 92년 대선에서는 87년에 김영삼을 찍었던 표가 대거 김대중에게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고 내가 3당 합당을 종파적으로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3당 합당 당시에 엄청나게 증오하고 분노했다.) 


게다가, 보수 세력은 김영삼과 정주영으로 분열하지 않았던가. 반대로 민중운동의 대표체라는 전국연합은 김대중과 정책연합으로 지지를 몰아줬다. 그렇다고 백기완이 많은 표를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87년보다 겨우 2백만 표 더 받았을 뿐이었다. 


87년 대선의 지역주의 투표는 각자 지역의 대표 정치인에게 쏠린 것이었으므로, 분개는 했지만 내 깜냥에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92년 대선의 지역주의는 반동적 성격이 누가 봐도 명백했고, 광주에 살던 내게는 충분히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지금 노태우 퇴임 이후 20년 만에 정통 군사독재정권 계승자가 선거로! 권좌에 돌아온 이 상황이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이명박 심판은커녕 더 악독한 우파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크게 절망감과 낭패감을 느끼는 듯하다. 


요즘 기분.


나도 속이 쓰리지만, 돌아보니 87년 대선의 당혹감과 92년 대선의 절망감보다는 견디는 데 덜 힘든 듯하다. 그때보다는 [이번에 그 실력 발휘를 못해 낭패를 겪었지만] 노동 대중의 조직과 계급의식, 정치적 자원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내가 92년 대선의 실망감을 딛고, ‘어리석은 대중’ 식의 환멸감에 빠지지 않은 것은 표피적 선거정치보다 더 깊고 넓은 정치적 전망과 분석을 제공하는 마르크스주의에 유혹당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누구나 실망스런 선거 결과를 보며 하기 쉬운 생각―대중은 미련하다―에 빠지지 않고, 노동 대중의 자기 해방이라는 전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진공 속에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이해관계를 놓고 그러듯이,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을 둘러싸고도 치열한 [계급간] 정치적 전투가 벌어진다. 선거는 그 과정의 한 점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세력관계가 왜곡돼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이 당선한 우파 정부가 펼칠 반동을 우습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선거 결과에 짓눌릴 때, 그 점은 우리의 한계를 설정하는 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새로운 점을 찍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여전히 다양한 그림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 영향을 미칠 영역은 여전히 미래에 남아 있다.


역사적 사례를 살펴 보는 것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제대로 단결해 대처하기만 하면 우파 정부가 쉽게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걸 보여 준다. (늘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는 건 아니다. 박근혜 정권 앞날에 대한 내 대략적인 예상은 ☞ 바로가기)


아마 올해 한국 대선과 비슷한 사례가 2004년말 미국 대선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인기 없고 혐의의 대상이던 부시가 재선하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좌절에 빠졌다.(지구적 규모로 멘붕이 온 것) 그러나 신디 시핸 등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훌륭한 새 투사들이 등장했고, 덕분에 미국의 반전운동은 고삐를 늦추지 않을 수 있었다


재선 임기 첫해인 2005년 9월 워싱턴에서 개최한 반전시위는 거의 1백만 명이 참가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는 더 많은 부문에서 반부시 운동들을 자극했다이런 압력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부시 탄핵 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결국 2006년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은 참패를 하고 럼스펠드 같은 자들이 행정부에서 밀려났다. 


프랑스 사회당은 1981년 국유화와 복지 강화를 내걸고 집권했으나 자본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다. 사회당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와 환멸의 자리를 채운 것은 1995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이긴 우파 공화국연합의 집권이었다


우파 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그해 11월에 공공부문 민영화와 연금 삭감 등을 담은 복지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들은 전면적 공격에 맞서서 단결하고 행동하는 길을 택했다. 12월 12일에 2백만 명이 참가한 행진을 했고공공부문 노동자들은 3주간 파리를 완전히 마비시킨 “뜨거운 겨울” 파업에 나섰다. 유럽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건 분기점 투쟁이었다. 


결국 우파 정부의 복지 삭감 계획은 완전히 철회됐고휘청거리던 우파 정부는 3년 뒤 다시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줬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1964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억누르고, 완전고용보다는 균형재정 유지 정책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반발해 노동자 투표율이 뚝 떨어진 결과, 1970년 정권은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히스 내각이 더 강화하자, 오히려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엄청난 투쟁이 보수당 내각을 강타했다. 노동자들은 승전보를 울렸고 히스 내각은 4년 만에 노동당에게 자리를 내줬다. 


(문제는, 다시 집권한 노동당이 사회적 타협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해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것이다. 이것이 대처 정부를 낳았다. 그럼에도 대처 정권 초기인 1984년 광부 파업 같은 거대한 투쟁이 일어났다. 노동당과 노조 지도자들의 의기소침과 나약함이 투쟁이 승리로 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막아 버렸지만 말이다.


아마 좀 더 복잡한 상황이 2000년대 중반 프랑스일 텐데, 2002년 집권한 우파 시라크 정부의 몇 가지 중요한 신자유주의 개악 조처가 번번인 대중투쟁에 밀려 실패했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이 선거에서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또 우파 사르코지가 당선했다. 이번처럼 인기없는 우파가 재집권을 한 것이다! 좌파가 연합해 단일 후보를 내서 신뢰있는 대안을 승리한 운동의 참가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 운동의 승리는 폭넓은 단결 덕분이었는데 말이다. 


사르코지는 훨씬 더 냉혹하게 연금 축소 같은 개악을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2007년 이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대응했고 2010년에는 3백만 파업과 시위로 발전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투쟁은 개악 조처를 되돌리지 못했다. 대신 사르코지 정권이 올해 선거에서 임기만료 판정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달라진 조건에서 다시 투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7년 민중항쟁의 성과물로 실시된 직선제 선거에서 전두환 독재 정권이 낸 학살자 노태우가 당선했다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당혹감에 빠졌다.


그러나 민중항쟁이 열어놓은 공간 속에서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민주노조운동과 학생운동빈민운동 등이 전투성을 유지하며 전진한 결과노태우는 5공비리와 광주학살 청문회를 생중계해야 했고자기 손으로 ‘베프’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보내야 했다.


민주화 항쟁이 곧바로 자신을 대표할 정권을 세우지는 못했지만전국민 의료보험 도입노동시간 단축 등의 각종 개혁을 쟁취했고노동자들은 노태우 정부 초기 몇 년 간 해마다 20퍼센트를 상회하는 임금 인상을 쟁취해냈다.


소련 붕괴로 말미암은 이념적 혼란, 91년 5월 투쟁의 패배 등 민중운동 진영의 전반적 사기저하 속에서 치러진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어쩌면, 올해 대선과 비슷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대중운동은 김영삼 정권이 초기에 불러일으킨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이용하며 조금씩 성장했다. 


노동자들은 울산 현대그룹 투쟁, 지하철 파업 등에서 패배하면서도 조금씩 기운을 다시 차리기 시작했고, 95년 학생들이 먼저 시작한 전두환 노태우 투쟁은 엄청난 사회적 압력을 낳아 지배자들을 분열시키며 마침내 기소와 1심 사형 판결까지 이끌어낸다. 


그뒤 치열한 공방이 오가면서 김영삼이 반동으로 기울었지만, 기운을 차린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결성하고 1년 만에 노동악법·안기부법 날치기 철회 총파업으로 대승리를 거두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초석도 놓았고 일당국가 해체도 앞당길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종류의 더 많고 풍부한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분들의 기여를 바란다.]


우리는 1분간 하는 투표에서 우파 집권당을 심판하고 연장을 막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더 크고 결정적인 중요성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온 운동과 조직에서 패퇴를 당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백만 명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분노가 새로운 힘으로 축적되고 발현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단결력을 강화하며 참을성 있게 저항을 건설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우파 정부의 연장이 꼭 반동의 미래를 뜻하지 않을 수 있다. 저항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 구축도 중요한 과제로 다뤄야 한다.  


터미네이터2 엔딩신이었던가. 멋진 대사였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덧붙이는 말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관련 기사 바로가기 


박근혜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한 반동적 지배계급의 총단결로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그가 선거에서 표를 더 얻으려고 한 사탕발림은 공수표가 될 것이다. 지지층마저 배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파 정부의 큰 위기 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참을성있게 단결하며 저항을 구축해 가면, 기회를 잡고 이 모욕과 수치를 되갚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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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이하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치세력화 열망을 버리고 … 노동자 탄압에 앞장섰던 자들과 야합해서 만든” “‘야합퇴보당’”이라고 규정한다.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이 “브라질 노동당,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인 “자본가정당”이 됐으므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민주노총의] 현장에서부터 차단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개입하자는 다함께의 주장을 “기회주의”라고 낙인 찍고는, 다함께가 혁명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벗어났다고 비판한다[각주:1].

“‘야합퇴보당’에서 다함께가 과연 일부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다함께의 목표가 “좌파 개량주의 당”을 만드는 것인양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건투의 주장은 차이점을 잘못 그으면서 진정한 논점과 건설적 논쟁을 방해하는 결과만 낳고 있다. 물론 잘못된 차이점 긋기는 잘못된 분석에서 출발한다.

통합진보당은 노건투의 주장처럼 ‘자본가 정당’인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개혁주의 정당이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당은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의 상층 관료층에 기반하고 있다. 이 관료층은 자본의 타도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중재를 본업으로 하는 집단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처럼 노동운동에 기반했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때문에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 등은 집권하면서 기존의 강령이나 약속을 뒤엎고 자본주의 옹호의 편에 서서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해 온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구 사민주의 당들은 지지 기반과 당원 구성에서도 그동안 노동계급 비중이 약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당들마저 단순히 ‘자본가당’이라고 보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게다가 통합진보당은 서구 사민당과 달리 아직 노동자들을 직접 배신하고 탄압하는 집권당 위치에 서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 양당 구조에서 배제되고 가끔은 탄압 받는 소수파 야당 신세다. 아직 대중에게 검증되지 않은 개혁주의 당을 단순하게 서구 사민당과 똑같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한술 더 떠 노건투가 통합진보당을 명백히 대자본가들에 기반한 미국 민주당과 똑같다고 치부하는 것은 ‘원칙’적이라기보다는 ‘억지’이고 ‘비약’이다.


구체적


통합진보당의 계급 기반 문제를 민주당과 한국노총의 관계와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의 성격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와 부차적 요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한국노총과 일부 NGO 지도자들을 영입했지만, 이 당의 주요 재정적·인적 기반은 여전히 기업주와 부자들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비록 계급연합적 요소가 포함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 당의 핵심 구성요소는 노동운동 관료층이다.

따라서 구체성이 전혀 없는 노건투의 분석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개입주의적·종파적 태도를 뒷받침하려는 억지로 보인다. 노건투의 분석대로라면 통합진보당이 없고 한나라당과 민주당만 선거에서 겨루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개혁주의는 일상적 시기 노동자 투쟁의 자기제한성에서 비롯하고, 개혁주의 당은 이런 자기제한성을 직업적으로 표현하는 노동 관료들에 기반하므로 혁명가들은 개혁주의를 단순히 “자본가당과 다를 바 없다!” 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심지어 서구 사민당들조차 노동운동 기반 때문에 야당이 되면 운동을 대변하며 어느 정도는 지지를 회복하곤 했다.

20세기 초 영국 사회민주연맹(SDF)은 ‘개량’이라며 신노조운동이 [비록 의회주의 방식이었지만] 정치적으로 각성한 결과로 시작한 노동당 창당에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러나 좌파의 이런 종파적 기권주의 때문에 창당 후 노동당의 개혁주의는 오히려 강화됐고, SDF는 주변화돼 영향력 없는 종파로 전락해 버렸다.

노건투의 태도는 바로 이런 SDF의 사례를 좇는 듯하다.

그래서 노건투가 다함께가 혁명적 원칙을 버린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다함께는 노건투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수술’이 아니라 자본주의 폐지를 목표로 하고, 혁명가들의 독립적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실천해 왔다. 다함께는 옛 민주노동당에 가맹 단체로 활동했지만 독자적 주장과 조직, 기관지를 포기한 적이 없다.

따라서 진정한 차이는 혁명가들의 당을 어떻게 성장시킬까 하는 전술 문제다.

그런데 원칙만 내세운 노건투의 추상적인 통합진보당 반대 전술은 실제로는 개혁주의의 우경화 압력과 맞서 싸우기보다 그 힘을 과장하며 그 싸움에서 도피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노건투 등의 좌파들은 옛 민주노동당도 전혀 지지하거나 우경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당원들의 캠페인에도 구체적으로 개입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우경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논평적 반대만 한다고 진보정당의 우경화에 실망한 대중이 그들에게 갈 일은 거의 없다.

 

노건투처럼 통합진보당 전체를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규정하면, 통합진보당 당원이거나 선거에서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정치적 접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노동 대중의 계급적 각성과 혁명적 변화는 자신의 집단적 경험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말라고 혁명가들이 선포한다고 대중이 자동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레닌은 “대중이 있는 곳”에서 혁명가들이 작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그것은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 [자신의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그러므로 모순된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그 경험을 공유하고 논쟁하며 개입해야 한다. 최근에도 투쟁 중인 풍산마이크로텍, 건설플랜트, 새롭게 조직화된 학교비정규직 등의 노조에서 조합원들이 통합진보당에 집단 가입했다. 사측의 현장 통제에 항거해 분신한 현대차지부 신승훈 조합원도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 

투쟁하거나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야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런 노동자들을 배척해 버릴 것인가.


개입


그런데 노건투의 방식은 이런 개입 자체를 거부하고 포기한다. 심지어 통합진보당 당명으로 ‘노동’을 선택한 사람이 당내에 “24퍼센트밖에 안 된다”며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이런 노건투 방식으로는, 3자 통합은 찬성했어도 노동중심성 후퇴에는 비판적인, 모순된 노동자들의 의식에 개입하기 힘들다. 이런 태도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에 무방비 상태로 대중을 내주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주요 혁명을 살펴 보며 개혁과 혁명의 문제를 다룬 책《혁명의 현실성》에서 영국 사회주의자 이언 버철은 레닌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지적했다.

개혁주의의 강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약점 또한 운동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 이해한다면 이들을 단순히 비웃어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레닌이 말했듯이 ‘전위의 항상적인 임무를 잊어버리는 것이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고 우리 임무의 무한함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며 이러한 임무를 제한하는 것이다.’”

우경화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종파적 반대로 반사이익을 얻고 성장하겠다는 생각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을 기회로 여기고 가동됐던 사노위 플랜의 실패에서 이미 그 한계가 증명됐다.

사실 노건투는 소그룹 몇 개가 모여 모호하고 절충된 강령을 선포하는 식으로 당을 건설하겠다는 식의 사노위 플랜에 합류하지 않았다. 혁명적 원칙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겠다는 타당한 문제의식이었는데, 지금 보니 종파주의 때문에 대중속에 개입하여 혁명적 원칙을 유연한 전술로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노동자들이 경험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듯이 혁명가들도 실천에서 배워야 한다. 혁명가들은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협력해 공동 행동을 건설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주장하고 조직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고립을 감수하겠다는 식으로 대중에게 최후통첩식 설교를 하고마는 것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1. 타락한 개량적 기회주의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그랬는지, 노건투는 노동자세상 23호에서 다함께 비판 기사를 이경훈 비판 기사의 꼭지로 넣었다. 그런 의도였다면, 솔직히 치사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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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왜 진보대통합을 앞두고 당 강령을 손질하려는 것일까? 어차피 통합 진보정당에서 새로운 강령 제정 작업을 새로 해야 할 텐데 말이다

64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이정희 대표는 개정 강령안이 당 대회를 통과하면, 새 강령이 통합 협상의 강령 개정 논의에서 민주노동당의 초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방침은 정성희 최고위원의 수정안이 통과돼 확정됐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삭제해 앞으로 만들 통합진보정당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좀더 광범위한 세력을 포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한겨레>)인 것이다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강령과 정책을 온건화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 때문에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진보대통합 최종 합의문 협상에서도 초안에 있던 “자본주의 극복” 문구가 빠졌다. 연석회의에 참가신청을 한 다함께가 ‘반자본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돌아봐도 민주노동당 현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이 외연 확대를 가로막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은 민주노동당이 창당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성장한 것,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열 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당의 외연이 축소된 2008년 분당 사태 때도 현 강령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 뒤, 진보신당을 창당한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기층 당원들이 탈당한 것도 양대 정파 지도자들이 강요한 분열에 실망했기 때문이었지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당 지도부인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엔지오 성향의 곽정숙 의원 등이 ‘사회주의 강령’이 있는데도 2008년 민주노동당에 영입 인사로 입당했다

 

노동당 

 

이런 사례를을 볼 때 더 온건한 정치적 견해가 외연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정확한 가정이 아니며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다

현대적 의회주의 정당들은 득표를 위해 ‘국민정당’을 표어로 내세우지만, 정강·정책과 실천은 고유의 계급 기반에 바탕한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래서 대자본가의 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에게 표를 얻지만, 노동계급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민주당이 부자 증세를 꺼리고 FTA에 찬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비록 온전한 사회주의 정당도 아니고, 사회주의적 실천을 한 바도 없지만, 현재 당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은 민주노동당이 ‘계급정당’이고 다소 모호하더라도 ‘반자본주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사회주의나 반자본주의의 구체적 상이 모호한 것은 정파연합 정당이 가지는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통합 진보정당의 강령 초안으로서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빼려는 것은 ‘계급정당’의 성격을 후퇴시키거나 완화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의회주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 더 중요해 보이겠지만, 국민은 계급 분단선으로 나뉘어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와 이건희는 모두 11표의 권리를 받는 ‘국민’이지만, 그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한쪽은 가진 것 없는 임금 노동자이고, 하나는 부와 권력을 소유한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통합하려는 이런 의회주의적 국민주의를 받아들이면 노동계급의 일관된 투쟁을 이끌거나 지지할 수 없게 된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KEC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공장 점거를 해산시키는 구실을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오히려 인구의 다수(한국에서는 60~70퍼센트 사이)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일관된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다수파 전략’이 될 수 있다.

한편, 정당의 이런 계급적 성격 때문에 진보정당의 정치적 주장 ―예를 들어 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급진적 주장 ―이 대중의 지지를 받느냐 하는 것은 당시의 계급 세력관계에 따른 대중의 정서에 달려 있다

20세기 초 창당 직후 자유당과 연합 노선을 펼쳤던 영국 노동당이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국유화(‘사회적 소유’) 강령을 채택하는 등 급진적 자세를 취한 것이 바로 이 사례다.  

당시 영국 노동계급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통에 대한 불만과 러시아혁명이 준 영감 때문에 급진화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영국 노동당은 국유화 강령을 채택하고도 얼마 후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집권 후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말이다.  

 

우경화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잘못된 길을 가려는 것은 이들의 외연 확대가 민주대연합 노선에 바탕한 계급연합, 즉 진보대통합을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만드는 우경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처럼 개혁적이지만 친자본주의적인 당과 연합(합당)하고,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추진하려고 좌파적 강령을 삭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강령 후퇴는 진보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후퇴를 가져올 뿐이다.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정권 교체의 필요 때문에 이런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를 용인하려 한다

그러나 1995년에 국유화 강령을 폐기한 ‘신노동당’ 노선 채택 과정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재앙인지 알 수 있다.  

당시 노동당 지지자들 상당수가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을 싫어했다. 좌파 지도자 아서 스카길은 “당헌 4(국유화 강령)가 없다면 노동당을 자유민주당이나 보수당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니 블레어의 한 전기작가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노동당 활동가들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그들은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최상의 적임자가 블레어라고 생각해서 그를 지지했지만, 사실은 블레어의 정책과 방침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처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지치고 1984년 광부 파업의 패배에서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선거에서라도 보수당 정권을 끝낼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에 결국 블레어 노선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권을 바꾼 결과는 쓰디썼다. 노동운동이 노동당을 압박하기는커녕 그 볼모가 됐다. 노동조합의 권리는 제약당했고, 복지는 후퇴했다. 결국 지금은 보수당이 재집권해 세계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됐다

한국의 좌파들이 블레어 노선을 수용한 영국 노동당 활동가들의 오류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드높고 여러 노동자 투쟁과 학생 투쟁에 대한 지지도 높다.  

민주당이 말로라도 복지와 진보를 말하는 것은 민주대연합의 청신호가 아니라 계급세력관계가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뜻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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