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 관해 <노동자 연대>123호에 기사를 세 꼭지 썼다. ①노동부매뉴얼 전반의 정치적 맥락을 다룬 글, ②연공급제 중심으로 임금체계 논쟁을 다룬 글, ③마르크스주의의 임금 이론을 약술한 글 등이다. 각각을 한 글의 세 꼭지처럼 썼기 때문에 하나만 읽으면 불완전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번 글의 쟁점은 노조에서 일하던 시절의 경험, 특히 직무급 도입 반대 투쟁 경험 등이 도움이 됐다. 본문 중 자주색으로 된 구절들은 지면 분량상 줄인 내용 중 내가 임의로 덧붙인 것들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추가로 코멘트를 단 것이다.

☞ 이 글의 원문 주소: http://wspaper.org/article/14291



임금체계는 나라별로 각자의 맥락에서 형성돼 왔다. 일본의 전후 재건 과정에서 시작된 연공급제는 1960년대에 한국에 도입됐다. 이 제도는 호황기에 평생고용을 전제로 성립된 임금체계다.


핵심 특징은 초임을 저임금으로 시작하지만 근속년수에 따라서 임금이 계속해서 오른다는 것이다.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를 입사시켜 회사가 직접 훈련시키켜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점차 임금을 높여 주는 것이다.


경제가 지속 성장을 하던 시기에, 자본가들평생고용을 전제로 노동력을 확보할 유인책이 필요했다. 당장의 신규자에게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하면서도 숙련 노동력을 붙잡을 수 있는 (신규자와 숙련자 둘 다에게 당근처럼 보일) 임금체계가 필요했다. 미숙련 노동자를 저임금에 입사시켜 근속년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을 점차 높여 주는 것이었다.


(※ 근속년수와 숙련도를 같은 개념으로 보는 오해들이 있다. 근속년수가 길어질수록 숙련도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연공급제 안에서 암묵적 가정이지, 핵심 취지가 아니다. 연공급의 핵심은 근속년수다. 직능급이 숙련도에 직접 대응하는 임금체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직무에 필요한 숙련도를 사측이 측정해야 하는 직무급은 노동자 개인들의 숙련도에 간접적으로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재직 중에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 나이가 들수록 교육비와 주거비 등이 더 많이 필요해지는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패턴에도 부합했다.

나이가 들수록 임금이 오르는 이 제도는 재직 중에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면서 교육비와 주거비 등이 갈수록 더 많이 필요해지는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패턴에도 부합했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 눌러앉는 것이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남성 가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근속년수에 따라 상승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정년 보장과 중년 이후 임금 상승을 보상으로 삼고 미숙련 시절의 저임금을 장시간 노동을 버텨 온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본에서건 한국에서건 노동조합들도 연공급제를 선호하며 이 제도를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그 노력의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경제 위기로 연공급제의 전제조건들이 무너지고 있다. 기업주들은 고용과 임금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총 임금비용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착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불황 때문에 노동자 삶의 패턴도 불가피하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런데 한국 자본가들은 1990년대 후반 IMF 위기를 겪으면서 무작정 대규모 해고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자동차 등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격렬했던 것이다. 가능한 조건에서는 대규모 해고보다 돈을 더 쥐어주고 내보내는 희망퇴직과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채용 등 간접적이고 단계적인 비용 삭감 방식에 주로 의존하게 된 배경이다. 그중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이 성과주의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노동부 매뉴얼의 정신이다. 총 임금비용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착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직무급ㆍ직능급ㆍ성과급 등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가장 큰 장점은 개별적인 능력과 실적 격차를 보상한다는 명목으로 전반적인 생산성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실적을 빌미로 노동자들끼리 경쟁을 시키는 차등 성과급제는 장기적으로 평균임금을 하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경쟁 기준이 계속 올라갈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끼리 제로섬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직무ㆍ숙련도 등을 따지는 직무급ㆍ직능급도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배치한다. 직무ㆍ숙련도ㆍ실적 등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므로 직무 배치(인사이동)나 인사평가, 업무 지시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 권한을 강화시킨다. 또 직무 변동이나 실적에 따라 임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임금 안정성을 약화시켜 노동자들이 생활을 계획적으로 꾸리기 어려워진다.


노동부는 병원 간호사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협력적으로 환자들을 살펴야 하는 간호사에게 성과급 비중을 강화하라니,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한 대 맞을 주사 두 대 맞으라고 ‘영업’이라도 하란 말인가.(실제로 간호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곳들이 있다.) 이런 계획은 의료민영화 추진 계획과도 관련이 있을 테고,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성을 늘리려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 실적을 미끼로 노동자들끼리 경쟁을 시키는 성과급제는 물론이고 직무•숙련도 등을 따지는 직무급과 직능급도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배치하는 것이므로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교섭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십상이다. 따라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연공급제를 공격하는 맥락은 임금안정성을 파괴해 임금 수준을 전반적으로 하락시키려는 것이고, 현장에서의 세력관계를 기업주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시도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체계 개편 시도에 저항해 왔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직무급을 도입했지만, 직무급을 호봉제처럼 운용하는 등 변형된 형태가 아직은 많은 이유다. 그 점을 고려해 노동부 매뉴얼의 예시안도 40대까지는 연공급과 유사하게 임금이 상승하게 돼 있다.


한편, 직무별로 급여를 달리하려면 직무마다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야 하고, 직능급도 직무가치와 노동자 숙련도를 모두 측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직무가치 평가는 산별 차원에서 해야 (사장들의 직무급 도입이) 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동종 업계의 같은 직무가 회사마다 다른 평가를 받는다면, 더 낮은 임금 수준의 직무급은 수용성을 잃을 것이다.(이것은 지금의 대기업 임금 수준이 그런 것처럼 사장들이 애초에 피하고자 한 바, 높은 기업의 직무급이 상향평준화 압력의 목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산별협약


이런 맥락에서 노동운동 일각에선 직무급제가 보편적인 독일ㆍ스웨덴처럼 직무가치나 숙련도 평가를 산별 노사공동으로 수행하면 산별 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과거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는 기층 노동자들의 반발로 사실상 실패했고, 최근의 공공부문 산별협약에선 호봉제를 폐지하는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2000년대 초반 독일 금속 산별의 신임금체계 협약이 노동계급 내부의 임금 격차를 줄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전 제도에 견줘 이 협약으로 임금비용이 순수하게 오른 기업은 4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다. 또한 직무가치 평가를 노사공동으로 해도, 직무 배치가 사측의 권한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큰 약점이다.


이들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산별 협약에 따른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을 ‘물신화’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직무급제에서도 노조의 투쟁으로 임금을 상승시킬 수 있다. 노동운동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부분적으로 호봉급을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1987년 이전까지 한국 기업 대부분이 연공급제였지만, 임금 ㆍ고용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게다가 지금 고용불안이 만연한 조건에서 연공급제의 형식만을 방어하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고용보장을 받지 못하는 청장년 노동자들에게는 연공급제가 무용하거나 (초기 저임금 때문에) 해롭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공급제에 포함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여겨질 것이다. 


물론 고용보장에 대한 믿음이 없는 청장년 노동자들에게는 연공급제가 무용하거나 해롭게 느껴질 수 있다. 비정규직에게는 남의 일로 여겨질 것이다. 예를 들어 연공급제에서 생애임금의 평균이 월 2백만 원이라고 한다면, 고용불안을 느끼는 젊은 노동자들은 월 1백만 원에서 시작해 차근히 올라가는 것보다 처음부터 월 2백만 원을 받는 임금체계를 선호할 수도 있다.


(※ 그런 점에서 제도나 형식을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보편적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사고는 공상적이다. 일종의 제도 물신주의인데, 탁상공론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고 방식이다.)


러나 현실에서 한국의 자본가들과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임금체계 개악의 방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자본가들이 직무급제를 핵심으로 들고나온 맥락을 봐야 한다. 정규직 임금을 유연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자본가들은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직무급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바꿔치기해 왔다.


일부 기업은 정규직과 직무를 분리해 비정규직을 값싼 직무에 가둬 버리고 임금과 승진의 기회를 제한하는 데 직무급을 이용했다.(은행 분리직군제) 그래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호봉제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이간질과 역공이 통한 것은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건 방어와 향상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적 타협주의가 문제지, 제도(임금체계)의 문제가 본질이 아니다.


임금체계는 노동계급 대중의 실질임금 수준, 노동자 단결이란 기준에서 살펴야 한다. 사장들이 어떤 경제 조건에서 어떤 목적으로 제도 변화를 추진하는지 그 맥락을 짚어야 한다. 그 점에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는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시도에 단호하고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의 필요를 반영하는 호봉제 요소를 방어하면서, (임금체계 그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고용 보장과 충분한 고정급 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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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 관해 <노동자 연대>123호에 기사를 세 꼭지 썼다. ①노동부매뉴얼 전반의 정치적 맥락을 다룬 글, ②연공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제도와 논쟁을 다룬 글, ③마르크스주의의 임금 이론을 약술한 글이다. 각각을 한 글의 세 꼭지처럼 썼기 때문에 하나만 읽으면 불완전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아래 글 중 색이 다른 부분은 지면 분량상 줄인 내용들 중 내가 임의로 선별해 덧붙인 구절들이다.

☞ 이 글의 원문 주소: http://wspaper.org/article/14290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또 하나의 무기를 내놓았다. 노동부가 3월 19일 발표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그것이다.


노동부 매뉴얼은 대놓고 50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말한다. 근속년수가 오래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제 때문에 이들이 직무와 성과에 비해 너무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60세 정년제와 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는]” 연공급제에 따른 고임금 탓이라고 주장한다. 부담을 느낀 기업주들이 중장년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 형태로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청년들에게는 “신규채용을 주저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노동 현실에 조금만 눈 밝은 사람이라면, 노동부의 논리가 실은 경제 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기업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수작이란 걸 바로 눈치챌 것이다.


노동부는 생산직 신규자 대비 30년 경력자의 임금이 3.3배로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높은 게 문제라고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더 불평등한) OECD 국가에서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 노동자 전체의 평균 근속년수가 6년 남짓인 상황에서 30년 경력자와 신규자를 비교한 것 자체가 상당히 허구적이다.


노동부가 밝혔듯이 기업주들이 “조기퇴직을 실시”해 왔다는 것이야말로 기업주들 스스로 이미 연공급제를 그 취지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무급제가 더 보편적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정규직 고용이 줄어든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비용을 아끼고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선택의 결과이지 연공급제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저들의 논리는 결국 정해진 인건비 안에서 노동자들끼리 다투라는 논리다. 


청년층의 정규직 신규 고용이 줄어든 이유를 연공급제에 따른 인건비 증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전가해 노동자 분열을 노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분열 책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업주들은 1997년 IMF 위기 때 대규모 정리해고를 실행하면서도 정규직 고용안정이 청년층 신규 고용을 막는다는 논리를 폈었다. 그러나 그 뒤 경영상태가 호전된 대기업들은 이전의 정규직 고용 수준을 결코 회복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직무급ㆍ직능급ㆍ성과급제 도입ㆍ확대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불거진 임금체계 개편 논란에 대한 자본가들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노동부 매뉴얼도 1월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이미 실렸던 내용이다.


통상임금 논쟁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에서 고정 기본급 비중이 적은 것이 문제임이 밝히 드러났다(제조업 평균 40퍼센트). 나머지를 각종 수당과 상여금들이 채우다 보니 근로기준법의 ‘통상임금’에 어떤 수당들이 포함되고 안 되는지 하는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사장들은 기본급 비중이 적은 임금체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다. 강성노조 작업장이라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조차 1년에 2천5백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만7천여 명이나 됐다.(2012년)


그러므로 이 임금체계 논란에서 대안의 핵심은 연공급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해 고정급 비중을 높이고 이를 충분히 인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기본급을 성과주의로 바꿔 고정급을 올리기 힘들고 불안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상여금을 성과 기준으로 지급하라는 것도 (그나마 불완전한) 통상임금 판결마저 무력화하려는 술책이다.


성과주의 임금제는 임금 책정을 개별화하고 내부 경쟁을 강화하며 직무 배치나 성과 측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의 조사를 보면, 고졸ㆍ대졸 초임은 직무급 체계에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임금 개악 매뉴얼의 목적은, 첫째 노동계급 전반의 임금을 하락시키려는 시도이며, 둘째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 정책 논평이 고령 노동자의 상대적 고임금이 문제라는 듯한 뉘앙스를 비친 것은 잘못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60세 정년제, 임금피크제 등을 추진해 왔다. 이는 큰 틀에서 “나쁜 일자리”로 고용률 70퍼센트를 확보한다는 ‘신자유주의식’ 사회안전망 계획의 일부들이다. 이런 일자리들로 노후복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불만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다.


그 점에서 전반적 임금비용을 낮추려는 임금 개악 매뉴얼의 셋째 목적은 기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나쁜 일자리”를 늘리려는 술책이 될 수 있다. 노동부 매뉴얼도 직무급 도입과 임금피크제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고용불안 등의 책임을 고령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열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연공급제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이나 공기업 노동자들일 테므로 정부의 연공급제 공격은 ‘노동귀족론’의 새 버전인 셈이다.


둘째는 평생고용을 전제로 한 연공급제를 공격함으로써 청장년 노동자들에게 평생고용을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려는 것이다. 기업주들은 연공급제가 약화되면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감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 매뉴얼의] 임금체계 개편을 중장기적인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겠다]”고 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노동운동은 경제 위기의 책임이 이 체제와 기업주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반대하고 고정급의 대폭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불필요한 타협을 추구하는 개혁주의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힘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고용과 임금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격도 심해질 것이다. 상대적 격차를 빌미로 한 이간질도 더 극성일 것이다. 임금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단결과 저항을 구축하려면 변혁적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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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평균 노동시간은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2천1백 시간이 넘어 OECD 평균보다 4백 시간 많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준 것이고, 주당 40시간 일한다고 계산하면,OECD 평균보다 일 년에 석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전일제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각종 수당과 사내 복지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이런 조건에서 시간제(파트타임) 일자리가 충분한 임금과 복지를 받는 정규직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4시간 일자리가 법정 하루 노동시간(8시간)의 절반을 일한다고 해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줄 사장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사장이 그러겠는가. 


게다가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로 고용비용 한도를 정해놓은 정부가 공무원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면,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겠다는 말밖에는 더 되겠는가.


정부와 사장들은 직무급을 도입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할 수 있고, 임금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쌩 거짓이다. 경력 단절을 걱정하거나, 육아 등의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는 술책이라는 말이다.


우선, 시간제 일자리에 정규직 직무를 부여할 리 없다. 이미 직무급을 부분 도입한 기업들에서 사장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무를 분리해서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직무급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불가피한 쓴 약이 아니다. 그냥 정규직의 기존 임금을 낮추려는 개수작이다. 직무급 도입은 그 자체로  임금 안정성을 흔든다. 직무에 따라 임금이 임금을 들쭉날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직무 배정 권한이 ‘인사권’이란 이름으로 사측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작업장 자율성은 크게 후퇴하고, 사측에 대한 종속성이 더 커진다. 이는 임금 유연화(불안정성 증대)와 더불어 노동의 권리를 위축시킬 무기가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정규직의 근속년수를 인정해 정규직 호봉 체계에 포함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이렇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임금 차별을 해소한 바 있다.


상시업무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이런 식의 해결이 가능하다. 사장들이 이런 방식의 해결책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만, 일부 정규직 노조들이 부문주의적 시각으로 이런 해결책을 꺼리는데, 이를 약점 삼아 직무급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해법으로 사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조가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규직 호봉제 임금 체계 편입을 추구한다면, 직무급에 관한 헛소리들을 날려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일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시간제 일자리는 정규직의 절반은커녕 잘해야 3분의 1, 4분의 1을 받는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이 하루 열 시간, 열두 시간을 일하는 마당에 4시간 짜리에게 임금 절반을 줄까? 6시간 짜리에게 4분의 3을 줄까? 직무도 임금도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불안정 파트타임 노동인데, 임금도 여전히 쥐꼬리라면, 그 모든 환상적 [헛]소리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직무도, 대가도 허접하다면, 총액 뿐아니라 시간당 임금 자체가 낮을 가망이 높다. 


그렇다고 박근혜와 경총 방식으로 임금을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면, 정규직 여부를 떠나 전일제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하락하게 된다. 이런 식의 하향 평준화해서 이루는 임금 격차 해소는 사장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의 ‘로드맵’은 근로시간 감소가 2000년대 이후 다른 요인보다 “최근 고용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정부와 사장들은 임금 유연화와 연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외형적 고용률 수치를 크게 올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기존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자들이 일감을 놓고 다투게 만든다. 전일제 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들도 더한 장시간 노동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기존 전일제 비정규직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들도 투잡으로 몰릴 수 있다. 


결국 박근혜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정규직 임금 하락과 비정규직 일자리 확산을 통해 전반적인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노동 현장에서 세력관계를 자본에게 기울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려면, 기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이 일하는 시간만 줄이는 것이 돼야 한다.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도 없애야 한다. 박근혜의 고용률 헛소리 로드맵을 전면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까지 크게 단축해야 하고, 일정 시간 이상의 노동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임금 체계도 지금처럼 고정급이 낮은 구조에서 고정급이 높아서 추가 노동이 필요없는 구조라 바꿔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육아휴직에 대한 임금 보장 기간을 늘리는 등 더 많은 복지가 함께 결합돼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만 시간제 일자리가 노동자들 서로를 할퀴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되면, 시간제 일자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를 나누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 민주노총도 최근 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면, 1백14만 개 일자리가 나온다는 분석을 인용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의 ‘로드맵’조차 근로시간 감소가 취업을 늘리는 데 효과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 이상, 이런 요구들은 매우 정당하다.


[이런 요구를 현실에서 쟁취하려면 투쟁이 필요하다.이에 대해선 <레프트21>의 내 기사이 블로그 앞 글에서 간결하게 설명해 놓았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재벌과 부패 우파가 슈퍼 갑으로 행세하게 내버려 두고서 좋은 일자리와 희망있는 삶이 자동으로 보장되진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의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한 것이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투쟁은 그 일부인 것이다.

다만, 당장의 삶의 조건을 지키려는 투쟁조차도 그 투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희망과 용기, 확신을 줄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106호 관련 기사에 대한 내 개인의 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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