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들의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생각 자체는 일리가 있다. 사실 한국의 전일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엄청나다. OECD 평균보다 일 년에 석 달을 더 일한다.


장시간 노동이 줄지 않는 이유에는 고정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탓이 크다. 기본급 비중이 낮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연간 25백 시간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7천여 명이나 된다. 노동의 양으로 낮은 고정급을 만회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 “임금 감소와 노동조건 후퇴 없이”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일정 노동시간 이상의 노동을 규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얼마 전 주 48시간으로만 노동시간을 규제해도 114만 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인용한 바 있다. 정부의 ‘로드맵’조차 2000년대 이후 취업자 증가에는 근로시간 감소가 “최근 고용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상시 업무를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고정급 비중을 늘리도록 임금 구조도 바꿔야 한다. 출산·육아 휴직 때 유급 기간을 늘리는 등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져야, 원하지 않는데도 “나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말을 써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처지가 더 나빠지거나, 현재의 어려움을 고착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둘째, 복지를 큰 폭으로 확대하면 복지 혜택도 늘리면서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일자리도 크게 늘릴 수 있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것이 아니라 공립 병원과 보건소를 곳곳에 더 늘려서 더 많은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등을 고용하자. 


영유아 교육도 의무교육으로 지정해 국공립 시설과 교직원을 늘리자. 교사와 직원 모두 더 큰 책임으로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교직원과 학부모, 아이들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있다. 


99퍼센트 대중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이 좋은 일을 정부와 사장들은 한사코 거부한다. 올해에만 사회복지 공무원 4명이 과로를 못 견뎌 자살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셋째, 재생 에너지 생산에 국가 지출을 늘리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주요 조선업체들은 이미 풍력발전 설비를 수출하고 있다. 핵심 기술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파산 위기에 내몰린 조선업 공장들을 대거 풍력발전 생산기지로 전환하면, 핵발전을 줄이면서도 전력 대란에 대비할 수도 있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리면서 밀양 송전탑 사태 같은 비극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이런 대안은 고용조건과 산업간 차이를 넘어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요구가 될 수 있다.


노동자의 단결이 중요한 이유는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리는 재원이 바로 기업주들에게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인데도 사내 유보금이 수백조 원이나 된다.(20123분기 현재 상장회사 1644곳의 내부유보금은 832조 원) 최근 조세도피처를 통해 빼돌려진 한국 자금이 8백조 원이 넘는다는 것도 드러났다


통상임금을 수십조 원 체불한 건 애교로 보일 정도다. 그뿐인가. 아끼고 아껴서 복지를 이루겠다는 박근혜 예산 가계부엔 버젓이 군비 확대 예산이 수십조 원이나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을 쥐어짜 만든 돈이니 당연히 이 돈은 노동자의 일자리와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한다. 내부 양보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 모두를 위해 자본가계급의 특권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내놔야 계급적 단결이 가능하다. 


이런 목표를 이루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조와 정치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크게 늘려야 한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가장 높고, 노동계급 내부의 소득 격차가 가장 적었던 때는 바로 노동운동이 강력했던 1987년부터 1996년 시기였다.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도, 사장들의 공격에 맞서 그나마 있는 권리를 지키는 데도 노동조합을 통한 조직적 단결과 투쟁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 물론 노동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계급 정당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정치와 경제를 결합하며 전국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을 단결시킬 변혁적 단체와 매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조직 노동운동을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정부와 사장들의 분열 책략에 넘어갈 것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 그리고 청년과 학생들이 단결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이 부문주의를 뛰어넘어 이런 단결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이런 힘으로만 정부와 사장들에게서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노동계급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노조 조직률 1백 퍼센트 로드맵’이고, ‘승리율 1백 퍼센트’를 향한 노동자 연대의 건설이다. 올바른 요구와 단호한 단결 투쟁은 저질의 일자리를 강요하며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박근혜와 사장들에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될 것이다. 


<레프트21> 바로 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