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저보다 더 나이 어린 사람들과 하는 토론은 늘 흥미롭습니다. 세파에 찌들기 전이라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의심을 많이 합니다. 질문도 기발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 주제는 마르크스주의로 본 경제위기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상황이 경기회복인지 거품인지까지 다루는 꽤 방대한 주제였습니다.

어려운 주제라 그런지 토론이 활발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가한 학생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대강 요약하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에 가장 부합하는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가장 오래된 주장이기도 하고 가장 흔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욕구 실현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힌 상황을 바꾸려는 이론이자 전략입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흔히 나오는 것은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체제들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 나라들을 인용해 마르크스주의의 신용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소련의 가짜 사회주의가 인민에게 절제와 일방적인 이타심을 강요한 것은 체제가 인민들에게 충분히 풍족하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 가짜 사회주의보다 서방 자본주의 경제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정부 재정이 악화돼 복지 지출을 줄이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늘어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욕심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은 왜 자본주의에서 특정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기적 탐욕은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어떤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마저 무시당하고 심한 경우, 강제로 억압당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 수익성이 줄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기업과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그 세금이 깎인 것 때문에 25만 명의 결식 아동이 방학 중에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의 파생상품 투자가 왜 한때는 경제의 구원자였다가 지금은 저주 받을 행위가 됐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과 부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이를 독차지하는 반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재산 가치가 폭락하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처럼 자본주의는 경제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욕심은 구조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고 억압합니다. 어느 계급 소속이냐에 따라 어떤 이들의 욕심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칩니다.

인간의 욕심 이론은 이처럼 아무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가들이 자기 탐욕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변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론자들에게 왜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본래 이기적이니까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한 해에도 수만 명의 신입생들을 받는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기본 동력이라는 이 엉터리 공리에 바탕한 학문을 가르칩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인간의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늘 변함 없었는데, 왜 인류 역사의 3분의 2가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사회였을까요. 

그게 당시 인류의 잠재적 생산능력의 수준에 부합했기 때문이죠. 생산성이 너무 낮아 협력해 수렵과 채집을 해야 했고, 공동으로 식량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자본주의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생산 능력을 혁신했지만, 자기 모순 때문에 그 생산 능력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주기적인 경제 공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생산과 분배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료도, 기계도, 공장도, 일할 사람도 그대로 있습니다. 부족한 건 기업의 이윤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라는 기름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자본주의란 체제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특정한 생산력 수준 하에서 이뤄졌던 일시적 체제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본적 욕구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것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됐습니다.

지구를 서른 번이나 없앨 수 있는 핵폭탄을 품에 안고서 평화를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광기어린 체제입니다.

한때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었던 석유 관련 기업들은 무작위한 CO2 배출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쳐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데도 당장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CO2 배출을 억제하지 않습니다.

적게 투자해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식품기업의 탐욕은 광우병이라는 재앙적인 질병을 만들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경제이론은 이런 광란의 경제 체제의 탄생과 변화, 실상을 어느 이론보다 훨씬 더 일관되게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게 그 질문을 던진 학생이 제 답변을 듣고 어떤 고민을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 자신은 상위 20퍼센트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반반으로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바꾸는 실천이 성공할 확률도 반반입니다.

확률이 같다면,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쪽에 서는 게 낳지 않을까요.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건 로또보다는 훨씬 확률 높은 베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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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깁니다. 한국 다음 순위 국가들보다도 두 달 (8시간×23일[주5일제 기준]×2) 정도 더 일합니다. 

그러니 아침 출퇴근 전쟁 시간대 버스와 지하철은 조는 사람, 멍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쉴 시간, 놀 시간이 없으니 여가생활이라곤 대체로 친구들과 술먹기 뿐입니다. (글로 배워서~)

이런데도, 기업주 모임인 경총이나 정부는 한국에 휴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해 왔습니다. 제헌절, 식목일 등 매년 국가지정 공휴일이 줄어왔습니다. 심지어 반쪽짜리 주5일제 도입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유급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기성 언론에선 추석을 앞두고 '민족의 명절'이다 뭐다 하고 떠듭니다만, 정작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억울한 마음은 다루질 않습니다.

올핸 추석이 주말과 겹쳐 명절이라기보단 금요일 하루 더 쉬는 것 밖에 안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ㅠ.ㅠ 올해는 추석 이틀에 개천절 하루, 총 3일이 사라졌네요...

장시간 노동, 휴일 노동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아직도 피할 수 없는 굴레입니다. 저도 예전 직장에서 새벽 퇴근, 새벽 출근을 자주 해봤지만, 아주 사람 얼을 빼놓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앉아서 휴일을 도둑맞다니... 


달력의 빨간 날, 즉 법정공휴일은 어느 회사에서나 유급 휴일이기 때문에 공휴일의 축소는 정해진 월급에 일 더 시켜먹겠다는 것 밖엔 되지 않습니다. 법정공휴일을 축소하면 애써 머리띠 매고 투쟁하고 임금 교섭해서 올려 놓는 임금이 뒤로 몰래 깎이는 겁니다.

한마디로 '부지런한 한국인'이란 이미지는 '사람 부려 먹는데 부지런한 사장'과 '권리 찾아 먹는데 게으른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원래 두 몸인데, 이걸 한 몸으로 합쳐 놓으니 사람 헷갈리게 하는 그림이 된 거죠. 

최근 몇 년간 웰빙이니 삶의 질이니 언론 보도가 많았습니다만, 먹는 것, 여가 이용법, 여행지 정보는 넘치는데, 막상 이걸 위해서 월급을 올려야 한다거나 휴일을 늘려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을 하는 언론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주식, 부동산 등등. 하지만, 한 실험에서 월가의 투자 전문가와 원숭이의 랜덤 투자 수익률이 같았다고 하죠. 몇몇 구조적 주가 조작을 하는 기관 투자가들 빼곤 개미들이 벌 수 있는 돈이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펀드 폭락 사태는 평범한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의 현실을 잘 보여줬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좋게 집 하나 샀다 해도 내 집만 오르는 게 아니므로 내 집값 올라봐야 새 집 구할 땐 제자리입니다.

이 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뿐인 듯합니다. 새 아파트 분양을 받거나 강남 아파트를 사는 건데, 2천년 대 내내 분양가가 집값과 똑같이 올랐습니다. 결국 남는 길은 강남 아파트 사기. ㅋ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일자리를 얻고 지키기. 조금이라도 더 월급 받기. 이게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웰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에게 여유있는 삶, 즐길 수 있는 삶은 난관이 참 많네요.

정말 최소한 설과 추석은 일주일을 모두 쉬어야 합니다. 토요일도 정식으로 법정공휴일로 하고, 주말과 겹치는 법정공휴일은 다음 월요일에 쉬어야 합니다. 주류 엘리트들은 교육과 언론에서 가족과 민족의 가치, 양보와 여유의 가치를 자랑만 하지 말고, 여염집 갑남을녀가 그런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휴일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휴일을 줄이며 일해야 하는 건 우리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금고 채우기만 바쁜 사장들 말고 정부가 좀 나서서 우리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가(정부와 국회)가 유급휴일인 법정공휴일을 줄이는 데 열심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선출되지 않은 기업주들을 위해 자신을 선출한 주권자들을 쥐어짜고 사실상 임금 삭감을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노동자 집회 같은 데 가 보면 "시키는대로 일만 한 죄밖엔 없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돌이켜 보면 그건 진짜 죄인 겁니다. 충분한 휴식을 요구하는 건 충분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어떻게 꾸려 나갈까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충분히 쉬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살펴보는 실천적·문화적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평범한 이들에겐 충분한 임금과 여가 시간을 요구할 이유가 많습니다.

······

사실 무엇보다 휴일이 줄어드는 게 당장 걱정되는 이유는 이명박과 그 똘마니 국회가 일하는 날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죠. 정말 최소한 이들에겐 휴일을 많이 보장하면 안 될까요.
무급으로~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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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레프트21>15호 "법 질서 확립? 너나 잘하세요~"


엊그제 113명의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 표결로 정운찬이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가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반대파에 대해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겠다는 겁니다. 청문회를 글로 배운 정운찬이나 서양식 아파트를 너무 사랑한 한식 전문가 백희영이나 자기를 처벌해야 하는 이귀남, 이런 자들을 그냥 그 자리에 앉히고 가겠다는 겁니다. (이런 내각이 친서민 내각? 그건 니 생각이고~)

정운찬의 총리 임명 반대는 단순히 정파적 반대 목소리가 아닙니다. 여론의 과반이 총리 임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정운찬과 나머지 인물들의 비리와 혐의들이 주류 특권층의 부패한 실상을 여지 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정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죠. 상대적으로 특권층 기반이 적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투기, 탈세 의혹으로 총리 후보가 낙마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 정권은 좀더 노골적입니다. 이들이 특권층의 3~4세대 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왔으니까요. 마치 "우리집은 가난해요. 아빠도, 엄마도, 집사 아저씨도, 정원사도, 식모도, 유모도......"하는 오래된 우스개소리처럼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후보 중엔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환경부 내정자도 있었고, 유방암 진단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에게 받은 선물이 강남 30평 오피스텔인 청와대 비서관 내정자도 있었죠.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11평 집에서 어떻게 발 뻗고 자냐?"고 말했습니다. 도심에 30평대 '서민형' 오피스텔을 만들겠다면서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일들을 이들은 당연하게 저지르고 내뱉습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유리 지갑의 월급쟁이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탈세와 위법을 저지르고도 처벌은커녕 무사히 장관직에 안착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 사회의 정치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환멸은 커집니다. "그놈이 그놈"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내각 인사가 있을 때마다, 또는 고위층 비리 사건이 날 때마다 듣는 표현들입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당장은 승리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더 깊은 곳에서 '통치'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근시안적 '실용주의'는 주류 특권층이 독점하는 정치체제의 위기를 더 크게 만들 것입니다. (딱히 밀어붙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정부죠, 사실)

이 문제가 조용히 넘가는 듯 보이는 건 한나라당의 생각처럼 사람들이 망각하거나 그 몹쓸 추진력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바꿀 가능성에 아직 확신이 부족하고, 또 바꿔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게 되는 지위와 권한이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배웁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에 맡게 교육되고 길러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다루는 일, 공장을 짓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 외국에 나가 협상하는 일 등.

그래서  '민중'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보다 선덕여왕 같은 좋은 정치인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주류가 가르치는 기성 교육은 4년에 한 번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국가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민주주의고,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민주적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죄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도대체 누구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기름때 묻은 '공돌이공순이',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장관을 하고 기업을 경영할까요? 이러니 "대안이 없잖아"하는 푸념에 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가 망가지고, 4대강 예산은 복지 예산을 갉아먹으며, 갈수록 살기 더 힘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쟤네들이 썩 그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조기 영재 교육 받아서 영어 백날 잘해 봐야 소고기 협상처럼 하고 온다면 특권층의 지위와 능력을 존중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법적 의무조차 안 지키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해 배를 불려 온 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구호로 의회 체제와 타협하고 왕제를 유지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빌어 고위 공직자 시비에서 드러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구호를 요약하면, "통치하고 군림하되, 책임지지 않는다"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제대로 '잉여' 존재인 겁니다.

그렇다면, 공장을 실제로 돌리는 노동자가 공장을 경영하고,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경제와 사회, 정치에 대해 뜻을 모아 결정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최소한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는 결정들을 할테니까요.

또 어차피 사회가 돌아가는 건 노동계급 대중이 하는 일들 덕분입니다. 집과 도로를 만들고 제작과 운송을 기획하고 사회서비스를 관리하는 수많은 갑남을녀가 없다면 소수에 불과한 특권층이 뭘 할 수 있을까요.

냉소는 분노의 다른 표현입니다. 환멸과 냉소가 분노와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알리고 선전하며 대안을 주장하는 일, 즉 장작을 쌓는 일이 지금 중요한 이유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그대여 분노하라! 분노를 숨기지 마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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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레프트21>15호 "이명박의 친서민 위장전입"  (축약)
관련 글: '친서민' 위장전입? 이명박의 ‘친서민’ 정책을 살펴보다  (수정·보완)


1. 비즈니스프렌들리의 한 길로 내달려온 이명박 정부라서 '친서민' 정책 표방은 역주행이라 부를만 합니다. 정권의 기조와 성격, 대중적 인식과도 다를 뿐 아니라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놀라운 것은 '중도·실용'적으로 진보정당 정책을 베껴 쓴 이명박의 국정 지지도는 올라가고 원 저작자 지지율은 답보 상태라는 점입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한 활동가는 "등록금 후불제는 민주노동당이 요구해 된 것"이라는 말 밖에 할 것이 없다며 낭패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친서민' 표방이 이명박의 선제 공격이 아니라 저항과 비판 여론의 예봉을 피하려는 방어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단지 기만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反MB 진영이 성과를 거두고 더 다그칠 조건이 됐는데도 오히려 난처해 지는 건 첫째, 민주당이 집권시 그 정도 정책도 거부해 왔던 당이기 때문이고, 둘째, 진보 정당들은 그동안 '당장 실현가능해야 한다' '손에 잡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단기 실용주의에 빠져있어서 그렇습니다. 단기 실용책에 집착하다 그걸 정부가 덜컥수용하니 방향감을 상실하는 겁니다.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급진적 목소리를 내야 이명박의 베껴쓰기와 지지율 단기 반등에 상관 없이 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단기 해결책만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상한제와 인하가 쌍을 맞춰 제시될 공약입니다.

정당에게 가장 좋은 정책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정책입니다. 왜 나인지, 왜 나를 지지해야 하는지 보여줘야죠. 한국 상황에선 무상(공공)의료, 무상교육, 부자증세, 기본소득, 공공주택, 대학 평준화 등이 그런 요구 아닐까요.

그 점에서 진보 정당의 노회한 정치인들보다 오히려 전남대 학생들이 붙였다는 대자보가 더 날카롭게 보입니다. "(등록금) 깎아 달랬더니 꿔준다고?"

기대감은 만족을 낳지만 더 큰 기대감을 낳기도 합니다. 이명박이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기대감을 계속 충족시켜야 난처한 처지입니다. 이명박의 '친서민' '역주행'이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2. 한편, 이명박 지지율 반등에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놓여 있다고 봅니다. 주식시장이 경우도 지난해엔 반토막까지 갔던 펀드들이 원금 이상을 회복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 경기 회복은 놀라운데, 예를 들어, 잠실 리센츠(옛 주공2단지)는 전세가만 3~4억 원씩 뛰었습니다. 현재 5억 원이 넘는 32평의 올봄 전세가가 2억 아래였습니다. 이런 곳은 웃돈을 얹어주며 이전 전세 계약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한다죠. 

그런 점에서 보면 임기내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 60만 호 중 28만 호가 임대주택이고 이중 20퍼센트가 생애 첫 주택이 될 거라는 정부의 홍보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듭니다. 제 기사에선 서초구 평당 1천1백50만 원이 비싸다고 했는데, 시세와 비교하면 사실 싼 거죠. 다만, 분양가가 평당 1천만 원을 넘는 것 자체가 거품이라고 보는지라.

보금자리 주택의 가격은 시프트와 마찬가지로 시세와 연동돼 있습니다. 분양이든 임대든 '주변 시세의 몇 퍼센트' 이런 식이죠. 이미 서초구 우면지구 등 보금자리 주택 예정지구 주변 땅값이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이리 되면 분양주택은커녕  임대주택 입주도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형성됩니다. 파주 신도시처럼 말입니다.

2006년 부동산 거품 정점 언저리에서 대출 받아 집을 산 분들 중에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거품 유지 정책에 안도의 한숨과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문제는 이 거품을 언제까지 안고 갈 수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 경제 위기를 정부가 막고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민 세금으로 적자 기업을 억지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것 정도가 될 것입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거품이 이 과정에서 지표상 경기 회복의 착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부자 감세, 기업 감세는 조만간 지금의 재정 정책과 충돌할 것입니다. 출구 전략을 놓고 정부와 주류 엘리트층 안에서 의견 차가 커질 겁니다. 대한통운 사장 체포영장 발부한 것을 보면 하반기에 부실 기업 정리(구조조정)를 시작할 모양인데, 저금리 거품(건설기업 부양) 정책과 충돌합니다.

결국, 유리지갑인 월급쟁이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는 정책은 꾸준히 유지되거나 더 강화될 것입니다. '천서민' 위장 전입이 오래가지 못하고 들통날 거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3. 문제는 10.28 재선거 등 선거 국면에서 떠오를 反MB 연합 결성 논란에서 한 축이 될 민주당의 경제·복지 정책이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애써 이 점을 외면하고 민주당에게 손 내밀기를 계속할 경우, 오히려 이명박 지지율의 몰락은 늦춰질 것입니다. 

민주당과 별개의 새로운 진보 동맹이 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낡은 것은 가고 있는데, 새 것의 등장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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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77일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이 공장을 차지하기 위한 노-사-정의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하나의 시험대에 올랐다.

파업이 보여준 격렬한 갈등과 분열은 우리의 양식에 질문을 던졌다.

왜 문제를 일으킨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가. 정의는 왜 공장 문 앞에서 멈추는가. 왜 법은 약자를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지 않는가. 이 갈등을 끝낼 대안은 없는가. 

사실관계 논란을 재탕하는 건 이제 시간낭비다. 진실은 명백하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됐다는 정부가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노동자 ‘국민’에게 테러리스트 진압 특수 부대를 보냈다. 쌍용차를 망친 대주주 상하이차 경영진은 누구도 징벌을 받지 않았다.

지금껏 이 문제를 다뤄 온 이들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물음을 던져 보는 게 낫겠다.

맹목적 경쟁

쌍용차 사건은 수천 명의 직원과 수백 개 유관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이 파산 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경영을 맡은 대주주들의 부실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위기의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과잉 생산은 3천만 대에 달한다.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연간 생산량 3백80만 대(2008년 기준)의 약 8곱절이다.

지난해 6월 파산 보호에 들어간 세계 최대 기업 GM은 생산 설비의 거의 절반을 폐기해야 한다. 일본 도요타도 4백만 대를 생산할 설비와 인력을 축소해야 할 처지다.

기업들의 맹목적인 시장점유율 경쟁이 과잉 설비를 낳았다. 조율되지 않은 투자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동 균형을 이룰 거라는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은 파산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했다. 시장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는 한국의 1년 국내총생산액보다 많은 돈을 부실 기업들에게 쏟아 부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비슷한 용도로 올해 예산의 3분의 2를 이미 7월경에 다 써버렸다.

온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기업들을 살리는 동안, 수익성 회복을 위해 부실 기업의 노동자들은 해고됐다. 고삐 풀린 시장을 비판하던 또다른 주류 경제학도 이 문제는 외면했다. 

요컨대, 쌍용차 파업은 “기업 수익성이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시장 경제의 공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변이었다. 게다가, 자유시장의 징벌은 늘 노동자들에게만 가해진다. 대주주와 대기업 임원들은 여전히 특권층의 지위를 유지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가 책임지고 공장을 친환경 대중교통 생산 기지로 전환하면 환경과 일자리를 모두 지키며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사기업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과 사기업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무엇이 우선일까.

미래를 의심하기

“아빠, 우리 이제 자가용 못 타요?” “응.” “왜요?” “회사가 어려워서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거든.” “회사가 왜 어려워졌는데요?” “음, 자동차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렇단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잘려야 하는 사회. 한 쪽에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 쪽에선 첨단 생산 시설이 고철덩이가 되는 사회. 식량이 너무 많이 생산돼 농민이 망하고 식량이 버려지는데,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는 사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제 나라 국민들의 생존권을 앞장서 짓밟는 사회.

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사회가 우리 모두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이윤을 위한 경제, 판매를 위한 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법칙은 이미 역사적·도덕적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0.1퍼센트 부자의 길은 열려 있지만, 모두 함께 사는 길은 닫혀 있다.

쌍용차 파업은 우리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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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들의 삶은 더 곤궁한가

거품과 함께 커지는 서민들의 고통


관련 기사: <레프트21>14호
"경기 회복? 친서민? ─ 거품과 함께 서민 고통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보도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뿌린 수백조 원의 돈이 ‘수요를 늘려 인플레이션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말도 들려 온다.

정부가 그렇게 많은 돈을 풀었다면, 우리 같은 갑남을녀의 주머니도 좀 풍족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 경제, 바닥을 쳤는가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이들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고, 가장 빨리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데 고무돼 있다. 올 2/4분기엔 자동차, 철강 등에서 최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는 이제 올해 안에 출구 전략을 써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경기가 회복되는데, 유동성 공급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신중한 부류도 있다.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는 “회복 국면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 지적한다. 실업률이 오르고 수출이 줄어드는 추세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한 기업주들의 인식을 조사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5백 개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자사가 저점을 찍기 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의 경기 회복은 정부 재정 지출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완성차 판매 회복은 5월부터 시행된 정부 지원책(차량 교체시 세금 감면) 덕택이다. 5~7월 총판매량은 지난해 동기보다 23퍼센트 증가했다. 그럼에도 월별 판매량은 7월부터 다시 하락하고 있다. 세금 감면 혜택이 없었다면 상황은 더 나빴을 것이다.

주요한 경기 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7월 기계 수주액이나 건설 수주액 역시 공공부문의 발주가 늘어 다시 증가할 수 있었다. 민간부문의 발주는 큰 폭으로 줄었다.

그 결과, 지금 정부는 올해 쓸 수 있는 예산의 3분의 2에 달하는 1백85조 원을 7월까지 다 소진했다. 현재 남은 예산 여력은 87조 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렇게 풀린 돈이 자산 거품 조성으로 쏠리는 형국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다시 늘린 것도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2천년 대 이후 장기 침체 속에서 기업들은 차입을 줄여 왔다. 세계적 위기인 요즘, 이 패턴이 더욱 고착화됐다.

현재 가계저축률은 4퍼센트 대인 반면, 기업 저축률은 16퍼센트 대에 달한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이 1백조 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설사 돈을 빌려도 이를 다시 재무적 투자, 즉 금융과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고 있다.

 

출구 전략 딜레마

 

무역수지 흑자 역시 올 상반기까지 지속된 고환율, 저유가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환율이 1천2백 원대로 내려오고 유가가 다시 상승하면서 이 효과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푼 4조 위안 넘는 돈이 사실상 원자재 투기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수출 시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이 돈을 원료 사재기에 쏟아 붓고 있다. 이 탓에 무역 회복 없이 원자재 값만 폭등하고 있다.

기업 지원과 법인세 인하로 투자 유인을 늘리자는 정부 대책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그 래서 국내외에서 지배자들은 출구 전략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 지출은 거품만 키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져간다. 그렇다고 출구 전략을 개시해 거품이 터지면 지난해처럼 추락할 위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도 딜레마다. 정부 지출은 늘었는데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들은 지배자들 사이에 출구 전략(금리 인상 등)의 시기와 강도 등 경제 위기 해법을 둘러싼 정치적 내분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인플레이션(물기 인상)은 임금 인상에 대한 압력을 낳을 수 있다. 소득 저하는 소비를 줄여 경기 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대체로 신중한 태세인 노동운동이 거품 호황의 고통을 더 참지 않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저항에 나선다면 지배자들의 내분도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이런 내분을 봉합해 기득권을 유지하며 자신들 앞에 놓인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길은 저항을 억누르고 평범한 다수에게 위기의 대가를 전가하는 길 뿐이다. 그리고 소심한 이명박 정부는 내년 초까지 출구 전략 사용을 피할 것이다.

 

거품이 커지는 만큼 그늘도 커지고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올리고 세율을 낮췄다. 버블세븐 해제,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DTI) 제한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동산 규제 해제는 곧바로 부동산 거품이 다시 커지는 걸로 나타났다. 1년 전 부동산 몰락의 공포가 역전돼 “돈 버는 투자는 결국 부동산”이라는 신화가 재연됐다.

위기가 심각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꾸준히 올라 6월말 현재 2백66조 원에 달한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아파트 1백21만 가구의 시가 총액은 사상 최초로 7백조 원을 돌파했다.

이것이 전월세 대란의 주범이다. 집값이 뛰니 전월세 임대료도 뛰었다. 이젠 아파트는 물론이고 서민 밀집 지구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들조차 전세가가 1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뉴타운 동시 재개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역은 대학가 자취방도 전세값이 천만 원 단위로, 월세 보증금과 사글세가 갑절 가까이 뛰었다.

대규모 뉴타운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대거 늘어나 전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이제 1층에서 반지하로, 3층에서 옥탑방으로 옮겨야 한다. 그도 아니면 아예 직장과 학교에서 더 먼 도심 외곽으로 떠나야 한다.

거품 호황에서 배제된 이들의 밥상은 더 초라해졌다. 설탕, 밀가루 등은 물론이고 계란, 두부, 닭고기, 유제품, 어묵 등 서민 식품의 가격이 날개를 달았다. 갈치는 그 빛깔 답게 귀족 생선이 됐다. 요샌 반찬거리 두세 개 사면 만 원에서 동전 몇 푼 겨우 남는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줄고, 빚은 늘고 

 

동네 골목까지 파고드는 대형 마트(SSM)들도 물가 인상을 막지 못한 셈이다.

올해 식료품의 소비자가격 상승률이 평균 9.5퍼센트로, 지난해의 갑절이다.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의 열 한 곱이다.

생필품과 전월세가 올라도 소득이 함께 오르면 버텨 볼 용기라도 낼 텐데. 문제는 소득마저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올 상반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5백2조여 원인 반면, 가계대출 총규모는 6백97조 원이 넘는다. 소득 증가율은 사상 최저이고 부채 증가율은 사상 최고다.

그래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 역시 1.39곱절로 사상 최고치다. 돈이 없다고 안 먹고 안 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게 올려(2.7퍼센트) 실질적으론 삭감해 버렸다.

만 2년 된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앞장서고, 최우선 정책기조로 고용유연화를 내세우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 지면 소득이 늘어나길 기대하는 건 더 힘들어진다.

반면, 강부자 정권답게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와 상속세, 특별소비세를 모두 인하했다. 막대한 재정 투입 정책에도 부자 감세를 고집하더니 내년 민생 예산은 10조 원이나 삭감됐다.

결국, 소득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상위 10퍼센트 소득은 하위 10퍼센트의 4.7곱절로 OECD 평균인 4.2곱절보다 더 높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요구들”

 

요컨대 경기 회복은 멀었고 그나마 정부의 재정 투자도 부자와 대기업에 몰리고 있다. 경제 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친부자 정책은 서민의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벌이는 친서민 유화책도 사태의 본질을 역전시킬 정도는 못 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이런 유화책조차 우익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따라서 이를 역전시키려면 경제 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안과 행동이 절실하다.  (<레프트21>이 제시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의 빈곤 대책이 단순히 현금지급식이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금 지급식 복지는 오히려 더 늘어야 한다.

조건 없는 전 국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기준을 대폭 인상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 규제를 강화해 물가를 통제해야 한다.

강력한 부동산 보유 규제로 주거권을 보장하고 저렴하고 질 좋은 영구 임대 주택을 충분히 보급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시장이 조만간 스스로 회복할 전망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물가 인상과 실질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노동운동 없이, 거품 회복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 없이, 그래서 저항에 직면한 지배자들이 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분열해 약화되는 일 없이, 지금의 정부 아래서 이런 개혁들이 실행될 것 같지 않다.

자본주의의 위기 시대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대중적인 저항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찬성해야 하는 이유다.

 


출구전략(Exit Strategy)

경제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비상 대책’으로 쏟아 부은 유동성 자금을 회수하는 것. 주로 정부 지출을 줄이고, 낮췄던 금리를 다시 인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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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친(親) 부자/기업 정부인 이명박 정부조차 친(親) 서민을 말합니다.이런 거짓말에 눈 뜨고 속을 이는 별로 없겠지만, 이 정부의 새 옷이 아니라 몸통의 지울 수 없는 악취와 속마음을 말하는 사람이 더 적어졌습니다.

오히려 지금 반대파에게 충고하는 듯하면서 이 정부가 하는 거짓말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보적 반대파가 대안 없는 정권 퇴진을 외쳤기 때문에 이명박이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진실은,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그들의 방해로] 더 밀어붙이지 못하고 정권 퇴진을 못 시켰기 때문에 이명박은 살아난 것입니다.
 
요즘 반(反)MB 맹주를 자처하는 민주당 역시 집권당 시절,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하고, 부동산 거품 조장을 허용하는 등 친(親) 부자/기업 정책을 펴왔습니다.

실로 이명박 정부로 오는 길은 전임 정부가 닦아 놓은 길입니다. 이 점을 각성해야 한다던 사람들중 적지 않은 수가 지금 침묵합니다. 전임 대통령 둘의 사망 이후, 이 문제에 관한 온갖 에두르고 감추는 말들이 넘칩니다. 

이처럼 말과 글이 겉도는 것은 진실을 가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진실을 냉혹하게 직시하길 두려워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사실과 소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맞서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말과 글조차 사물의 본래 성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단지 겉꾸밈의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정권을 잡고 실패한 사람들이 (변한 것도 없는데) 뭘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사人>이란 주간지의 최신호를 보면 정부 비판에 앞장서던 한겨레/경향/오마이/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들이 광고 수익 때문에 정권과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돈의 힘을 빌어 돈이 지배하는 세계를 비판한다는 것은 공상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제약되는데, 말과 글이 제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세계적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명백한데도,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를 직시하길 두려워합니다. 어는 순간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주장,  “계급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진보진영 안에서도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사회주의”나 “혁명”, “레닌” 같은 단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계급사회이고, 우리는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낭비적 경쟁을 강요하고 인간의 필요를 짓밟습니다. 경제 위기와 빈곤, 전쟁은 물론이고, 기후와 자원 문제로 지속불가능한 체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는 게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생산 협업은 직접 생산자인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권력과 실천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협력적 생산과 분배의 체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애와 협력, 지식과 자원 공유가 훨씬 더 효율적인 생활 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이 사물과 현상의 핵심을 치르지 않고 겉도는 것은 앞선 예에서 보듯 말과 글의 원천인 생각과 행동이 진실을 향해 곧바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덕여왕> 미실의 대사처럼,
"세상을 가로로 나누면 딱 두 부류,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둘 밖에 없습니다"
미실은 덧붙입니다.
"(지배하는 자가 말하는) ‘백성들의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환상"이라고 말입니다.
미실은 지배하는 자의 편에서 세상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덕만이 아니라 미실이 리얼리스트입니다. 실재가 아니라 캐릭터로서 미실이 덕만보다 더 우월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온갖 환상, 사실과 소망을 뒤섞어 놓은 잡다한 말과 글들이 이 엄연한 진실을 가립니다.

단도직입으로 본질을 향해 찌르고 들어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담하고 거리낌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라는 자기 주문 [呪文]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담하게! 단도직입으로! 는 <레프트21> 기자로서 제 기사 쓰기의 구호입니다.

이 블로그는 이런 정신으로 <레프트21>에 실릴 기사들을 보충하고 지면 바깥에서 마찬가지로 단도직입의 방법으로 제 생각을 보태는 블로그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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