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 관련 기사: 지방선거, 반MB 민주연합, 좌파

4+4 협상회의가 420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기도지사 경선 방식 이견으로 결렬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와 안동섭 경기도지사 후보는 4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심판 이외에는 그 어떤 선택도 있을 수 없[]”며 반MB 연대 협상의 재개를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대연합이 모든 판단의 우선 순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공공연맹 등이 주도해 구성한 진보서울연석회의에서도 이상규 위원장은 ‘범 야권 단일화’를 포함시키라고 강요했다.

울산에선 민주당 등과 협상으로 단일화를 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에겐 경선으로 단일화하자고 해 사실상 진보 후보 단일화 노력을 회피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진보대연합을 전략적 과제로, 민주대연합을 전술적 과제로 설명하며 둘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다. 결국 민주대연합이 전략적 과제로 될 거라는 <레프트21>의 경고가 옳았다는 게 당사자들의 실천으로 증명됐다.


비판 없는 지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은 한술 더떠 “반MB 연대는 기존 진보진영의 대통합과 함께 새로운 진보대연합으로서 동일한 위상의 전략적 과제”라고 주장한다.(<진보정치> 463, “MB는 옛 ‘비지[비판적 지지]’인가”)

민주대연합이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집권 전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최 소장은 민주당을 미화하면서까지 당권파의 “묻지마 반MB 연대 올인”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최 소장은 “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 연합 노력은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치와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최 소장의 말과 달리 과거의 ‘무비판적 지지’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1987년과 1992, 아직 노동운동이 독립적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냉전 우파 정부의 집권을 막으려고 자유주의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비판적 지지’ 자체가 아니라, 그 지지가 자유주의 야당을 향한 ‘비판 없는 지지’였다는 데 있다당시 정치 무대에서 진보진영은 자유주의 야당의 지원 부대 구실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본가 야당과 전술적 제휴를 하더라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전략적 동맹으로 추켜 세워선 안 된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동맹은 악마 자신, 악마의 할머니 … 와도 체결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우리의 손발을 묶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각주:1]

이 비유를 빌어 표현하면, 최 소장의 주장은 ‘대중에게 악마를 천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손발을 묶을 것이다.’ 미화가 성공할수록, 그래서 연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수록, 악마가 본색을 드러낼 때 대처할 능력은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려 자본가 당들과 연합 정부를 꾸린 서유럽 공산당들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다 노동운동을 정치적으로 마비시켜 결국 파시즘에 권력을 내준 경험을 곱씹어야 한다.


진보의 단결

한편, 진보신당이 “묻지마 반MB 연대”를 비판하면서 5+4 협상회의에서 빠진 뒤, 진보적 “반MB 대안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진보신당의 행보는 전혀 일관되지가 않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민주노총 집회에서 “진보대연합을 적극 추진할 테니 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진보신당 대표단은 ‘진보정당 통합 의지를 밝혀 달라’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거절했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진보선거연합’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주로 유시민과 김진표를 겨냥해 “이기는 단일화”를 하자고 한다.

광주에서 반민주당연합을 외치던 윤난실 광주시장 후보는 민주당 예비 후보들과 금호타이어의  '노사 상생 구조조정'을 위한 중재를 하려다 민주노총 광주본부의 항의를 받았다.


사실 진보신당 지도부는 민주대연합을 위한 5+4 회의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핑계로 대며[각주:2]) 민주노동당의 “진보대통합”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직후였다. 결국, 지금의 군색한 처지는 진보정당들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진보 양당이 모두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참여하자, 진보대연합 논의도 힘을 잃었다. 310일 강기갑 대표와 노회찬 대표가 만나 “진보대통합 원칙”에 합의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진보 선거연합이 부진하다 보니, 대중의 반MB 열망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 심판론으로 많이 기울었다. 진보정당 지지층 안에서도 반MB 범야권 단일화에는 찬성하는 비율이 70~80퍼센트를 넘는다.(새세상연구소 412일 발표, R&R 의뢰)


물론 이명박 정부가 어렵게 쟁취해 온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고 생활 수준을 하락시키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고 싶어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비판적 투표

그러나 반MB 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반대 경우보다 재집권이 힘들겠다는 안도감은 갖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탄압의 중단이나, 대중이 바라는 개혁의 성취를 뜻하지는 않는다.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진짜 열쇠다. 이 점이 독립적 진보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과제가 더 중요하며, 선거에서 두 노동자 진보정당들이 분열하는 게 잘못인 이유다

보수 양당 체제를 벗어나 진보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게 더 중요하다. 비록 진보 선거연합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한 곳에선 진보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양당 후보가 경쟁하면 단일화를 요구하고, 안 되면 둘 중에서 더 나은 후보에게 투표하면 될 것이다.

진보 후보가 없는 곳에선 민주당 등의 개혁적 후보를 향한 ‘비판적 투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정책상 차이는 별로 없지만, 민주당이 이긴다면 적어도 광범한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 승리 후 민주당도 경제 위기 등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정부의 노동자 공격에 동조할 개연성이 있다. 그럴 경우 민주노동당의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1. 트로츠키 본인은 1917년 8월에 코르닐로프라는 우익 장군의 반혁명 군사 쿠데타에 맞서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군사 연합을 맺었다. 그와 볼셰비키는 케렌스키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고, 쿠데타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반동을 막을 힘은 불철저하고 동요하는 임시정부에 기대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노동자들 스스로 혁명을 전진시키는것임을 실천으로 증명했다. 두 달 뒤,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정부가 러시아에서 등장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창당 때 내세운 '진보 재구성'은 당시 이념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존재하던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정치연합이 아니라 당 형태로 그 공백을 메우려니 당 자체가 우경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결국 분당으로 세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이 공백을 메우거나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참당 창당, 엔지오들의 민주당 지지 돌변, 민주당의 진보연 등 악재 때문에 오히려 군색한 처지로 몰렸다. 민주노동당이 좌파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가 혼합된 제3세계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면, 진보신당은 서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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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고 그 충격으로 진보정당이 분열한 2008년, 촛불항쟁과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터졌다. 이 대사건들은 진보진영이 이념과 대안, 가치와 세력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요구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내세우며 창당한 진보신당도 이 과제에 더 몰두했다. 그 중간 평가가 내로라하는 진보 명사들의 대담과 글로 출판됐다.《진보의 재탄생》과《리얼진보》가 그것이다.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는 홍세화·진중권·변영주·김어준·우석훈 등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이하 존칭 생략)와 진보의 미래를 놓고 대담한 기록이다.

노무현의 유고 《진보의 미래》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보신당 상상연구소가 기획한 《리얼진보》는 김대중·노무현의 진보는 가짜라며, ‘진짜 진보’의 모습을 제시하려 한다. 강수돌·김상봉·정태인 등 지식인과 노회찬·장석준 등 진보신당 논객들의 글을 망라했다.

진보의 재구성에 관한 진보신당의 고민

‘진보의 재구성’을 내세운 진보신당은 촛불항쟁에선 수천여 명이 가입했고, 생태를 중요한 의제로 부각하는 등으로 진보의 의제와 외연을 확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정치의식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으면서 민주당에 실망한 층을 목표대로 잘 수습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창당 2년이 지난 지금, ‘진보의 재구성’의 성과를 다시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층의 유입과 진보 좌파적 지향이 제대로 갈마들지 못해 좌충우돌의 진원지가 된다는 평가도 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반MB 단일화 압력이 커지면 (민주당과 급진좌파 사이에서) 모호한 진보신당의 입지는 스스로 찬 족쇄가 될 수 있다.

《진보의 재탄생》 대담자들은 대중과 만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김어준과 변영주는 세련되고 개방적인 진보로 변화할 것을, 홍세화는 “민중의 집” 같은 “일상의 정치”를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진중권은한국경제 자체를 한 단계 도약시킬 대안”을 요구한다.

《리얼진보》의 필자들은 상대적으로 “근본적 성찰과 고민”을 강조한다.
 

“진보와 개혁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김상봉, 《리얼진보》)이기 때문이다.

더 크게는 2008년 위기로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가 파산했으므로, “긴 호흡”으로 과제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장석준은 “이윤 확보의 자유”에 “의문”을 던지자고 하고,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자본주의 극복 의지”를 강조한다. 한재각은 “환경·생태 분야를 다루면서 끊임없이 사회적 평등 같은 주제와 연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자유주의 정치와 선 긋기를 강조한다. “시민의 이익과 충돌하는 기업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도 “노동계를 통제하고 배제하는 것에서도 [노무현과 이명박] 두 정권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회찬은 이런 의견을 대체로 조합해 ‘국가가 개입하는 성장 전략’을 포함한 “서민중심형 복지동맹”(《리얼진보》)을 만들자고 한다. 이것이 “반MB 대안연대”다.

이를 위해선 “한나라당-민주당 체제를 극복”해야 하며, “보수와 진보의 양대 축으로 가려면 민주당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진보의 재탄생》)

진보와 개혁의 근본적 선 긋기를 강조하는 것은 반갑다. 얼핏 보아 급진적인 이런 ‘진보의 재구성’론이 결정적으로 장벽에 부딪히는 곳은 다름 아닌 “(행위) 주체” 문제다.

상상연구소 명의 글은 “노동운동의 힘이 중심에 버티지 않는 한” 전진이 불가능하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상상연구소를 포함한 여러 필자들은 현재 조직 노동자운동을 불신한다.

이런 불신이 생긴 건 “복지를 통한 증세는 정규직 노동자 또한 …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데] … 민주노총은 이를 정면으로 반대”(김정진, 《리얼진보》) 하기 때문이다.

행위 주체

오건호의 말처럼, 조직 노동자들이 더 많은 복지 비용을 부담하는 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의 요구를 집중하는 선도적 실천”(《리얼진보》)이라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운동의 ‘재구성’은 노동계급에게 계급투쟁 대신 ‘계급 양보’를 요구하는 셈이다.

“사회연대전략”은 더 열악한 집단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조직 노동자들의 양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과 친기업 정부에겐 직설적으로 요구하길 회피하는 것이다. 장석준의 “이상주의”도 이런 양보론의 냄새를 풍긴다.

여기서 이들이 노동운동 안에서 새 “주체”를 쉽게 못 찾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조직된 행위주체인 노동운동을 불신하는 탓이다. 

그 뿌리에는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게 문제 아닐까. 사실이라면 진보신당의 명망가·선거 중심 활동은 진보신당 2년 평가에서 중요한 덕목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회찬도 이렇게 털어놓는다.

“지금은 [진보정당 안에서도] 목표가 … 자신이 국회의원 한번 되는 게 거의 전부인 경우도 있고 … 집권하면 세상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느냐, 거기에 대한 확신도 없는 거예요.”(《진보의 재탄생》)

노회찬은 홍세화와 한 대담에서 “진보신당의 좌표, 공식적인 노선은 여전히 사회주의적 경향에 있다고, 또 그래야 한다”(《진보의 재탄생》) 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가치로 자본주의의 폐해와 맞서 싸우려면, “좋은 진보정당”(노회찬) 만으론 부족하다. 노동계급의 힘을 동원해 자본과 벌이는 계급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주의 가치가 정치에 반영될 것 아닌가.

그러려면, 조직 노동자들이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 선도적 실천”을 해야 한다.


두 책이 강조하는 ‘진보의 재구성’에선 바로 이것이 빠져 있다. 실제 사례를 들어 가며 환경 의제와 조직 노동운동의 만남 가능성을 중시한 한재각(
《리얼진보》)을 예외로 하면 말이다. 

시장의 민주적 통제?

그래서 비록 이 책들이 진보신당 2년을 솔직하게 돌아본다는 장점이 있고, 다른 보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내는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지하다 할지라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 아쉬움의 실체는 여전히 진보와 중도개혁 사이에 존재하는 실천적 차이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행위 주체(노동계급)의 문제는 대안(자본주의 극복)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할 때에도 이를 산업조직과 연결시키지 못”했고, 이는 “국가가 개입하는 성장동력을 통해서 일자리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전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진중권, 
《진보의 재탄생》 )은 다소 당황스럽다.

좌파가 자유주의 우파에게
성장전략”이 없다고 비판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밥 먹여 주는 진보'의 재구성일까.

노동계급의 힘을 동원하는 걸 꺼리니 자본주의를 [자체든 그 폐혜든] 극복하려는 전략도 모호해 지는 것이다.

노회찬은 홍기빈과 대담에서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말하면서도 반(反)시장, 반(反)기업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을 최소화하는 과거의 사회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이 다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진보의 재탄생》)

물론 노회찬이 과거의 사회주의라 부른 것들, 옛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가 실패하고 검증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홍기빈이 대담에서 지적하듯이 온건한 시장 규제 정책으론 자본주의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집권 경험으로 이미 검증됐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공개적으로 짓밟는 기업이 한 나라의 최고 기업(기업인)으로 대접받는 사회에서 [진보] 정부가 주류 엘리트들에게서 반(反)기업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진보적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선 진보신당의 강령 전문(前文)이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보는 듯하다.

자본은 암세포가 숙주를 파괴하고 자기도 소멸하듯 총체적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우리는 이 위기를 오직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인류가 이 문제를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개척 또는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과 죽음밖에 없다.”(진보신당 강령 전문 2, 강조는 기자의 것)

 
세계자본주의 핵심부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좌파의 재구성은 자본주의의 우선 순위에 도전할 대안과 전략, 세력을 구성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려면,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려는 '현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려고 그 현실의 조건을 직시하는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진보의 재탄생》과《리얼진보》에서 때론 급진적이기도 한 문제의식이 대안과 행위 주체에서 부딪히는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은 후자의 '현실주의'를 회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이 서평은 <레프트21> 29호에 실린 기사(아래 링크)에 추가로 내용을 덧붙인 글입니다.

[서평:《진보의 재탄생》, 《리얼진보》] 진보의 재구성에 관한 진보신당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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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 단일화에 갈수록 집착하고 있다. 5+4 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4+4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진보신당을 빼고 야권 단일화에 합의했다. 안동섭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4월 1일 유시민과 ‘손 맞잡고’ 민주당에 단일화를 촉구했다. 광주·전남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연대를 회피하며 4+4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 후보 단일화엔 별 열의가 없다. 그 탓에 ‘진보진영 2010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서울 연석회의’(진보서울연석회의)가 서울시의원 후보 둘을 단일후보로 선출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양 손에 쥘 수 있는 떡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민주노동당 지도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 안에서 반발도 만만치 않다.

3월 21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에선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이 단독 등록했는데도 65퍼센트밖에 지지를 얻지 못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이 후보가 반MB 야권단일화를 노골적으로 추구한 데 따른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권영길 의원도 3월 30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그래도 단일화 해야 한다’고 홀로 외치[는] … 이런 구도는 잘못된 구도”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과 한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인 이호성 씨(한국노총 조합원)는 민주노동당의 선거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과 연합해서] 구청장이나 지방의원 몇 석 차지해도 [정체성은] 더는 ‘민주노동당’이 아닙니다. 당선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겁니다.”

잘못된 구도

박금석 전 지부장 직무대행을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 후보로 출마시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고동민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의 선거연합 방침으로는 계급 투표를 조직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평택시장 후보는 과거 시장 시절, 지역의 노조를 탄압한 잡니다. 한나라당에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을 놓고 [시장 후보를 내 주고 시의원 단독 후보를 보장받는] 단일화 논의를 하면 조합원들에게 계급 투표를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3월 31일 현대차 4공장 차체4부 조합원들의 회식 자리를 방문한 민주노동당 김창현 울산시장 후보는 스스로 “반응이 썰렁하네요” 하고 말해야 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조합원 다수가 “진보가 둘이 나와 될 게 뭐 있노. [따로 나오면] 투표 몬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반MB’ 정서를 내세우며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를 향한 반감은 아주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패퇴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을 정당화할 순 없다.

윤태석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반MB는 맞다고 볼 수 있는데, 의료 민영화 등을 추진했던 민주당이 반MB 동맹을 할 만한 정당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고 말했다.

탄압이 심한 철도노조의 청량리역 연합지부 유균 지부장도 “민주당은 철도가 민주노조를 띄울 때부터 투쟁만 하면 탄압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죽어도 찍기 싫다”고 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작에 진보대연합을 적극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두 당은 말과 달리 실천에서 진보대연합은 실종됐다. 진보신당은 5+4도 탈퇴했지만, 진보연합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한 전교조 활동가는 “한나라당 패배에 ‘묻지마’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건 대안세력이 부실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대안이 없으니 기대감도 크지 않고 ‘안티’에만 집착하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지방선거 방침도 다소 모호하게 결정됐다.

민주노총은 3월 2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진보정당 통합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의 후보” 중  지지 서약서를 쓰고 단일화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진보정당들의 단결을 바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도 이 결정을 수용했다.

그러나 “‘반MB연대 단일후보’”도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다면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연합한 후보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한 선거구에서 민주노총은 누굴 지지할 것인가.

쌍용차지부 고동민 조합원은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선거연합은 총선·대선을 보고 하는 건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재미 보면, [계속 이 구도로 갈 텐데] 대선 때까지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 진보정당에게 선거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것 아닌가요. 지금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에요.”

한 공무원노조 활동가는 하루 빨리 진보 양당이 진보의 원칙을 지켜 단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정당들이 선거에 따로 나오는 건 이혼한 부모들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 단결해 싸우는 게 제일로 중요한 때다. 공무원노조도 나눠졌다가 다시 합쳤지 않나.”

진보정당들은, 특히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약화시킬 선거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의 재통합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29호에 실린 기사를 좀더 보충한 글입니다.

현장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의 반MB연대를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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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2007년 7월 2일 이라크 바그다드 거리에서 미 육군 헬기 두 대가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입니다. 그 중 두 명은 로이터통신 기자였다고 합니다. 계속 보면, 이들을 구조하려던 민간인들도 공격 당해 사망합니다.

이 동영상은 Wikileaks라는 미국의 정부와 기업 폭로 웹사이트(http://www.collateralmurder.com/)을 통해 인터넷에 공개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미 국방부 내부의 제보라고 합니다.(천안함 사건도 이런 제보자가 있다면...)

이 영상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일이 평화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학살과 점령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이라크 인들이 무장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진짜 테러리스트는 미국 제국주의 군대이고, 이들을 전쟁에 투입한 미국 지배자들이며, 이 전쟁을 지지하고 후원한 강대국 정부들과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런 전쟁에 참여해 떡고물을 받아 챙기겠다고 설치는 겁니다.

풀 버전은 해당 사이트에 가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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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끝납니다. 후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인 김중수가 내정됐죠. 정권 초기 청와대 팀이었다가 촛불 후 개각에서 외곽으로 나갔던 인사입니다.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할 인사라는 거죠.

이젠 전임 총재인 이성태와 정부가 최근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은행 즉,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논쟁꺼리가 됐습니다.

오늘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이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에 제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한국에선 이른바 관치금융의 기억이 있어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지금 잡음이 인 신임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면서 청와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염두에 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독립은 금리 정책 등 화폐공급에 관해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중앙은행의 정책이 '정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 같은 때, 이 주장은 매우 솔깃하게 들립니다. 정부가 매우 인기 없는 친재벌 우파 정부기 때문이죠. 별로 실력도 없어 보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운 화폐의 공급과 수요를 다루는 재정정책과  환율정책, 아니면 출구전략 따위는 전문성도 없고 지지층 동향에 휩쓸리는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다 전문 관리들이 국가적 장기적 전문적 안목에서 처리하는 게 나을 듯도 합니다.

그래서 진보 언론들도 이명박 정부의 여러 차례 간섭을 두고 중앙은행 독립을 해친다고 비판했고,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은 정부의 한국은행 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신임 총재 김중수가 청와대와 친하고, 통화정책 전문가로서 검증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그것을 옳게 본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은행 독립성은 원리상 진보진영이 반대해야 하는 정책입니다.

지난 역대 정부들의 관치금융이 여러 관료적 부작용과 노조 탄압 문제를 낳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국가가 주도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주력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서 나타는 필연적 현상이었습니다. 국가가 은행을 통해 총저축을 통제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에서 은행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이젠 덩치가(덩치와 함께 자신감과 욕구도 함께) 커진 개별 대자본들의 욕구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에서 빌린 돈은 꼬리표가 붙어 자유로운(?) 투자에 제약이 따르니까요.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들에 화폐를 독점 공급하는 은행입니다. 통화 정책에 매우 핵심인 기구입니다. 이런 중앙은행을 선출권자인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영향력에 떼내온다는 건 실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통화주의') 핵심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하나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자본이 중앙은행과 금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크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은행의 독립성,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그것이 [잘된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출된 정부가 [대중에 책임을 지려고] 정책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를 빼앗으려는 겁니다. 결과적으론 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걸 막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에 필요한 정부 지출은 주로 복지 지출이잖아요.

1998년 독일 사민당이 슈뢰더를 앞세워 기민당을 물리치고 십수 년만에 집권했을 때, 사민당 정부는 독일연방은행을 통제할 연방정부의 재무부장관에 오스카 라퐁텐을 임명했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 좌파였고, 당시 당 대표였습니다. 라퐁텐은 정부 지출을 늘려 신자유주의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펴려했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해치려 한다는 비난을 시작으로 독일과 유럽 보수 언론들의 맹공격을 받다가 결국 취임 석 달 만에 사임합니다.(사임 압력에 굴복한 총리 슈뢰더와 사민당도 잘못을 했죠.)

한국도 IMF 위기 후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금융통화위원회를 만들어 형식상 독립기구를 통해 금리 등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한계기업들의 도산, 서민들의 불만이 어우러져 정권이 압력을 크게 받은 덕분에 IMF가 강요한 초고금리 정책을 1999년부터는 저금리로 역전되었던 겁니다.


문제는 이 저금리 정책이 카드-부동산-주식(펀드) 거품 정책으로 귀결됐다는 데 있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저금리 정책도 똑같습니다. 거품 유지에 목매다는 저금리 정책입니다.

지금 금리 정책 자체는 자본 간에도 이해관계가 틀립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현금 자산을 많이 보유한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을 바라겠죠. 반면에 부동산 자산을 많이 가진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에 반대할 겁니다. 아직까진 출구전략 논쟁은 저들의 논쟁입니다.

다만, 소득이 줄어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서민들 처지를 봐서 저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거죠.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를 두고 대학생들이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정부도 [기업주들의 영향으로] 대중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 하질 않는데, 시스템 상으로 어떤 책임도 기층에 지지 않는(선출직 임기와도 관련 없는) 전문관료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어찌 될까요.

이들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받을까요.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온양과 기흥의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 중에 같은 병으로 벌써 9명이 죽었고, 현재 투병중인 이까지 더하면 스무 명이 넘습니다. 박지연 씨는 고3 때부터 조기 취업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빛나던 청춘이 시들고 결국 스물셋에 한많은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나 언론들은 보도도 제대로 하질 않죠. 이쯤되면, 누구나 언론계의 삼성장학생들을 떠올릴겁니다. 삼성장학생은 언론계에만 있나요. 장학생은 삼성만 관리하나요? 경제관료들은 모든 대기업들의 핵심 관리 대상입니다.

이들은 공직을 떠나면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정권이 들어서면 고위적 관료로 다시 들어옵니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입니다. 핵심 금융관료였던 이헌재, 윤증현 등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거야말로 진짜 관료주의 아닐가요. 이런 자들에게 중요한 정책 결정을 민주적 통제 수단 없이 넘겨야 할까요.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 무상급식도 반대하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깎으면서 은행들이 돈놀이하다 위기를 겪자 3백억 달러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해 주면서 지원해 줬습니다. 나쁜 정부입니다.

그렇다고 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한국은행의 시스템상 독립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목욕물 버리다 애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은행가들은 정부 지원 덕분에 [돈놀이 하다 맞은] 경영 위기를 넘겨 놓고는 한숨 돌린 지금은, 다시 막대한 보너스 놀이를 하며 각국 정부들에게 흑자 재정을 유지하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돈놀이 경영을 막고 공공을 위한 서민 금융에 힘쓰도록 요구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중앙은행 독립이 아니라, 은행 국유화와 공공성(금융의 민주화) 강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합니다. 국유화는 시장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해 민주적·민중적 통제를 하라는 요구입니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권력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함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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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급식회사의 경영자인 순재와 보석, 이들과 결탁(?)한 교감 자옥, 그리고 이들의 가족인 평교사 현경. 이들은 무상급식에 어떤 의견일까요. 갈비를 나눠 먹기 싫어하는 해리가 무상급식을 좋아할까요. 집없는 신애와 세경에게 전교생 무상급식과 선별 무상급식 어떤 게 좋을까요.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입니다. 한나라당과 우익들은 ‘사회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그 반대편에선 사상 최대의 연대 기구라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약칭, 친환경무상급식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상급식 도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처럼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의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찬성이 79퍼센트(78.93)나 되네요. 응답자의 절반은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한다고 답했습니다. 엊그제 출범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에 2천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도 찬성한다죠. 저들의 우려대로 무상급식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요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충돌로 시작한 무상급식 논쟁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겁니다. 진보 공직자가 해야 할 좋은모범을 보인 거죠. 올 지방선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런 복지 의제가 주도할 듯합니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개별 가정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은 사상 최대인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은 부자에게 웬 무상급식이냐고도 합니다. 그렇겠죠. 부자에게 단체급식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식단을 못 준다는 뜻이니까요. 저들은 무상급식을 위해 돈도 내기 싫고, 밥상도 섞기 싫은 겁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 어쩌구,‘생명 존중 낙태 금지’ 저쩌구 하던 자들이 아이들 밥값 부담 좀 덜어주는 일에 핏대 세우며 반대하는 꼴이 우습네요. 저출산이계속되면 급식 예산 같은 건 금방 줄어들텐데, 뭐하러 애 낳으라고 선동하는지, 참.

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낳은 정치적효과를 우려합니다. 누구나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보편적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증세(와 부자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혜택이 보편적이므로 재원 부담도 국가와 사회의의무가 되니까요. 그들은 무상급식 만큼이나 무상급식 도입 후가 두려울 겁니다.

저들이 말하는 선별 급식(잔여주의 복지)은 기본소득 관련글에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시혜 대상이라는 게 떳떳하게 내세울 꺼리가 못 됩니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가난을 유지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설픈 소득 향상이 혜택을 앗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들은 경기도선관위를 앞세워 무상급식 지지 서명이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탄압에 나서는 한편, 한나라당 이름으로 선별 급식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선별 복지(잔여주의 복지)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 정책입니다.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되, 나머지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겁니다. 자본가들은 당연한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하나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거지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각주:1] 

덧붙여, 기업의 구실을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는 무상급식은 당연히 직영급식이 돼야 합니다. 지금 다수 학교가 위탁 급식입니다. 급식 회사와 계약해서 외부 민간 기업이 급식을 공급하는 거죠. 이 급식 기업들이 LG나 CJ 같은 대기업들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대기업의 노다지 시장을 위협하는 주장입니다.

위탁 급식은 기업 수익성을 위한 조치라는 점 말고도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찰 계약제는 저가 입찰을 유도하므로 급식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 급식업체에서 해당 학교에 보낸 직원들은 일단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기업이 돈을 버는 동안, 파견노동의 불안정성, 급식의 질이 모두 사실은 악화됩니다.

이런 식의 신자유주의(복지)야말로 지난 30년간 경제를 망치고 인구의 다수를 고통과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거품 호황이 사실은 개인들의 소비 부채에 의존해서 유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득은 역재분배됐는데, 복지는 비효율적 투자라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과 복지 예산이 조 단위로 삭감됐습니다.   


반면, 무상급식 찬성파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7일에 이정희·조승수 등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의무교육 대상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발의를 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부자 급식’어쩌구 하는 자들에게 급식은 교육 과정의 하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전국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드는 예산 추정치는 1년에1조 7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국회 예산처) 이명박이 4대강이나 국정 홍보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예산은 진짜 별 거아닙니다. 오세훈의 서울시 예산을 보면, 시정 홍보 예산이 급식 예산의 거의 열 배더군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는 지금 서울시 예산이면,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쉬운 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라는 것이겠죠. 고교생 때야말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플 땐데....
보편적 의무 (공)교육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무상급식도 노동계급의 문제기도 합니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 노동자는 좀더 삶의 여유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 의식을 교육받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훨씬 더 사회적 자신감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직영급식을 하게 되면, 급식 관련 직무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똑같은 비용이라도 직영이면, 위탁업체에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줄고 식자재 구입을 더 책임있게 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급식으로 노동계급 자녀들 영양 상태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정치인들도 매우 열심히 여기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무상급식 실현하겠다는데 과거를 들춰서 미안하지만, 집권당 시절에 민주노동당이창당 때부터 요구해왔는데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오히려 친환경 급식을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죠.

그런데, 지금은 김진표마저 “무상급식은 전국적 의제”라며 무상급식 찬성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시절에 무상급식에 반대했죠. 이는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당이 올해 다시 내놓은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사융사유 제한을 두자는둥 진보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5+4협상 국면에서 “가치연대를 추구하자”는 진보신당의 목소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이런 상황도 조금 작용했다고봅니다. “무상급식” 의제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이 먼저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지금 더 큰 세력이 자신의 의제로 삼으니까 역시 묻히네요.[각주:2]

민주당안의 무상급식 찬성파 중 천정배·이종걸 등과 유시민 등은 자신들의 특정한 복지 전략(논리)에 바탕한 듯합니다. [각주:3]

참여정부는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일 때, “사회투자 국가(정책)론”을 국가복지노선으로 채택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이 레임덕으로 들어간데다(한나라당이 조금의 복지 확대도 반대했죠) 주무장관인 유시민이 국민연금 삭감에만 열을 올려서 동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사회투자(국가)론" 영국의 신노동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제시한 복지정책 묶음입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비생산적 지출이 아니라 성장과 연계된 투자라고 말합니다. 복지를 투자로 보는 개념은 “결과의 평등”(고전적 복지국가) 대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출발선을 맞춰줘야 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아동·교육 복지를 매우 강조합니다.[각주:4] 영국의 블레어 정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늘어난 복지 부문이 아동급여 액수와 아동보육 예산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고용 분야에선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예산을 주로 쓰죠.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니까요. 

15일에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서천정배가 발표한 교육 분야 발표문의 제목은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최선’의 투자이다” 였습니다. 17일 학교급식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문은 민주당 쪽에서 작성한 듯 보이는데, "무상급식의 전면실현을 이뤄내는 과정은 건설토건사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대체하는 ‘사람중심의 역동적 성장전략’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장주의의 상식에 나름 부합합니다. 현실에서 제3의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복지의 조화를 이룰 거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말은 틀렸습니다. 도리어 경제 성과와 관계 없이권리로 제공돼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이런 복지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동 복지를 늘린 대신, '투자 효율성' 없는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희생됐습니다.

한편, 교육 투자가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라면, 교육은 경제의 하위 개념이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5]. 복지의 관점에선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겠지만, 이런 인적 자원 '투자'의 관점에선 학생들이 권리와 (수혜의 대가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수월성 교육과 돈 되는 학문의중시, 규율의 강조가 뒤따릅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무상급식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보편적 복지제도는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복지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줘야 할 의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되겠죠.

그래서 이런 전략에선 무상급식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를 디딤돌 삼아 국가부담 증가를 위한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다른 복지제도를 늘리라는 요구로 일관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아동·교육 복지에 특화된 사회투자국가론보다는 '확장성'이 크다고 할까요.

어떤 취지에서 도입되든 저는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무상급식 찬성파의 세력이 커진 것도 환영합니다. 비록 하이킥의 순재 가족들은 좀 힘들어 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개혁 요구라도 사람들이 뭉쳐서 행동하며 쟁취하려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지지자가 많아져야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요구로 뭉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선 요구 실현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대차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주들과 조중동,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무상급식 같은 초보적 개혁조차 극렬 반대하는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려면. 지난해 등록금 인하 논쟁시 이종걸의 협상이 보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각주:6].
저들이 버티는 건 현실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그 권력을 약화시키는 투쟁 없이는 협상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세력관계에 변동이 생겨야 저들이 버틸 힘이 줄어듭니다. 지금 출발은 좋습니다.

개혁 요구를 함께 내놓아도 이를 실현할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는 건 '지향점으로서 대안'(=이념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이 정책 대안 뿐만 아니라 이념적(거대담론) 대안 제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1. '무상급식'이 아니라 '책임급식' 등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적을 거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마케팅 차원인지, 프레임론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을 헷갈린 거라고 봅니다. 단어를 바꿔 홍보했다고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부자들과 이 정부는 단어가 아니라 내용에 반대하는 겁니다. '책임급식' 표현도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복지가 '권리'라는 생각을 더 늘리려면 이런 인기 있는 쟁점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처음부터 너무 온건한 의제를 잡은 게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복지가 완전 꽝이고 기득권 보수파가 꼴통들인 한국의 객관적 현실 탓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3. 정동영은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가 앞으로 자기가 내세울 정책브랜드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종걸·심상정이 유시민을 두고 '무상급식 반대'라고 비판했던데, 요건 좀 실수라고 봅니다. 유시민은 예산 조정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니 단계별로 실시하자고 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국정 운영 경험을 과시하려 단계별 실시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4. 민주당 이종걸이 대학 등록금 문제에 열의를 보인 것도 이와 연관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으로]
  5. 애초에 이런 의도가 사회투자국가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제 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고전적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에게 일부 복지 분야(아동과 교육처럼 어차피 자본에게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투자 유인이 있는 분야)를 자본의 재생산에 도움이 되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분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자본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려 한 '제3의 길'은 진보와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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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각주:1]

관련 글 보기 

삼성그룹 웹사이트에서 경영이념을 찾아보면 “인재․기술, 인류공헌”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을 보고 나면 이 슬로건이 이렇게 보인다. “이건희에게 충성할 ‘인재’를 돈으로 관리하는 ‘기술’에서 ‘일류’로 ‘공헌’한 집단들”.
 

요즘 인기를 끄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도 옛 삼성 광고에서 따온 것이다. 삼성이 1등주의를 표방하며 만든 광고 카피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였다.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 원쯤 …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냉장고와 에어컨을 공짜로 줘서 LG를 망하도록 하라”는 이건희의 “황당한 지시”가 이 1등주의의 사례가 되겠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는 결국 삼성이 일등 기업․일등 권력이 된 것은 ‘일등 비자금 관리 기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삼성의 ‘일등 비자금 관리 기술’이 어떻게 정치 권력․재벌․언론 사이에 단단한 부패 사슬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비자금 관리의 핵심 부서에서 일했던 전직 수사 검사 출신의 내부 고발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때 실세 부서는 그룹 비서실이었다. 이 비서실이 IMF 때는 구조조정본부로, 지금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꿔왔다. 이 부서는 그룹 안에서 “실”로 불린다.

이 “실”에서도 재무팀을 맡은 이학수[각주:2]와 김인주가 실세다. 이들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비자금 관리를 담당해서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판사에게] 한 30억 원 줄까”(이학수) “몇 천만 원 주는 걸 무얼 그리 겁내느냐”(김인주) “[삼성 본관에 압수수색이 들어오면] (칼로) 찌르고 도망가죠” 등 법과 상식을 초월해 “불법적인 행태를 저지른 게 이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삼성의 모든 계열사가 이 “실”의 재무팀 관재파트로 비자금을 만들어 보낸다. 심지어 “부실 규모가 1조 원인 회사”도 “실”의 종용으로 매년 50억 원씩 비자금을 만들어 보낸다. 이 돈을 “관계사”에서 넘겨 받아 삼성 태평로 옛 본관 27층 비밀금고로 실어 나르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관재파트 젊은 과장들이 “미래의 사장감”들이다.

 

삼성 장학생

비자금은 두 용도로 쓰인다. 하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고, 하나는 삼성 장학생 관리다.

김 변호사의 2007년 폭로로 진행된 특검에서 밝혀진 차명계좌 비자금만 4조 5천억 원이었다. 이 돈은 삼성생명 등에 투자돼 이건희 일가의 삼성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쓰여졌다. 장학생 관리는 이 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

삼성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의 재판부를 평소에 “삼성은 무죄다”고 공개 발언해 온 민병훈에게 편법 배당한 서울지법 법원장은 촛불 재판 고의 배당으로 악명을 떨친 신영철이었다. 이 재판에서 삼성의 변호인이 지금 대법원장 이용훈이다. 한편, 삼성이 줄기차게 지지한 한미FTA 협상을 이끈 김현종은 지난해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이 됐다.

이런 전방위 관리로 애초 김 변호사의 내부 고발은 불발될 뻔 했다. 유력 언론과 시민단체가 모두 외면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2007년 10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갔다. 당시 사제단조차 상대가 삼성이라 위험 부담에 내부 논란이 컸다고 한다. 실제로 첫 기자회견 후 신부들에게도 삼성이 접근했다.(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북)

그러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의 용기 있는 고발은 반향을 얻었다. 비판 여론이 들끓고 대선후보인 권영길․정동영․문국현 등이 요구해 삼성 특검이 시작됐다.

그러나 특검 결과는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차명 비자금 4조 5천억 원을 이병철의 상속 유산이라고 판정해 오히려 “도둑에게 장물을 준 특검”이 됐다. 회사 돈으로 마련한 비자금이 합법적인 이건희 개인 재산이 된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김 변호사에게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특별검사 추천을 부탁했다고 한다. 권력자 누구도 물어뜯지 않은 특검은 김 변호사를 물어 뜯었다. 김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첫째 동기다.

 

무노조 경영

김 변호사는 책에서 ‘공공연한 비밀’도 사실로 확인해 준다. 그 첫째가 삼성이 1999년 부도 위기였다는 사실이다. 자체 검사 결과, “자본 잠식 50조 원”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구조본으로 불리던 “실”이 계열사 전체를 분식회계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제 장부상 지출을 맞추려면 어디선가 돈을 줄여야 했다. 삼성 노동자 6만여 명이 쫓겨났다.

2003년 삼성SDI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노동자들의 핸드폰 위치 추적 사실을 2004년 MBC <시사매거진>이 폭로했다. 이 일로 삼성을 고소했던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도리어 명예훼손으로 구속됐다. 그러나 삼성 구조본에서 인사팀장을 지낸 노인식은 김 변호사에게 삼성SDI 노동자 불법 도청 사실을 시인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먹여 살리는 노동자들과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들이 더 대접받는 게 삼성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입사 후 임원 교육에서 본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가전부문 조립라인을 이렇게 회고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  같은 직장에서 본사 직원이나 관리직은 쾌적한 공간에서 대접도 받고 권세도 부리는데, 생산 현장에서는 해마다 생산성 향상 30% 구호 아래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내핍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서 삼성전자 기흥공장이 떠오른다.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바로 그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2007년까지 10년 사이에 확인된 사망자만 7명이다. 온양공장에서도 백혈병 환자가 4명이나 된다.

삼성은 산재를 인정하라는 이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다 끝내 외면했다. 노동부,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관리공단 모두 한통속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벤젠은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과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부른다. 노동․시민단체들과 ‘반올림’이란 단체를 만들어 진실을 알리던 이들도 최근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을 냈다.

 

베스트셀러

 

이 두 권의 책은 1등 기업 삼성, 더 나아가 삼성공화국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둘째 동기를 밝힌다.

어떤 이들은 김 변호사의 걱정대로 절망하고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은 결코 절망의 보고서가 아니다. 이런 책들 자체가 악명 높은 “관리 삼성”에서도 내부자들의 용기있는 고발이 존재한다는 점을 웅변한다.

삼성도 경제 위기에 전전긍긍대는 기업이고, 자신들의 불법을 감추려 노심초사하며 막대한 비자금을 뿌려야 한다. 1997년과 2002년엔 삼성이 민 이회창이 연거푸 낙선했다.

김 변호사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삼성이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밝힌다.

김 변호사는 주류 집단에게 반(反)삼성은 곧 반(反)기업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서 삼성은 특정 기업 이름이기만 한 게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가 메아리를 얻는 게 그래서 더 반갑다. 그의 책은 주요 언론들의 광고 거부에도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판매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병철 찬양 책들을 제치고 말이다.(2010.2.9)

 

 

  1. 2월 9일 날 쓴 서평인데, 좀 늦게 올린다. [본문으로]
  2. 이학수는 이명박이 ‘공정한 사회’를 말하기 시작한 8월, 8·15 특사로 풀려 나왔다. 이학수는 곧바로 삼성으로 복귀했다. (2010.9.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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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이 1라운드 승리를 거뒀는데, 금호타이어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강행할 기세입니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오늘 1천1백99명 정리해고를 신고했다고 합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려면 양보안을 낼 것이 아니라 최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금호타이어 부실에 노동자는 조금도 책임이 없습니다. 쌍용차처럼 점거 파업도 해야 합니다. (☞ 관련기사: 한진중공업 승리, 금호타이어 투쟁, 쌍용차 경험)

지난해 쌍용차 파업 당시 일부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의 노동정책을 배워야 한다는 기사들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겨레>도 관련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고용을 두고 극단적 대립을 하지 않을 상생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 쓰고 보니 마침 덴마크 총리가 오는 10일 방한한다는 군요)

덴마크의 노동시장 정책은 황금 삼각 모델로 불립니다. ①해고의 자유와 ②관대한 복지(실업수당), ③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세 가지 정책이 균형을 이뤄 노사 모두 만족한다는 겁니다.

① 덴마크 기업에서 해고는 한국보다 쉽습니다.
② 실업 노동자에게 정부는  기존 급여의 70~90퍼센트 수준의 실업수당을 4년간 줍니다.
그런데 그냥 주는 게 아닙니다.
③ 1년은 그냥 주고 3년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취업 교육과 직업 알선에 성실히 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의 유연안전성'이란, 안전망이 있으니 쉽게 자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재취업시킨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사회민주주의의 신종인 '사회투자국가(이나 정책)'으로 부르거나, '제3의 길'의 한 변형으로 봅니다. 이념상으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정책을 세우는 게 사회민주주의인데, 이 정책은 기업주와 시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점에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도 이런 덴마크 모델을 도입하려 "사회투자국가(정책)"라는 담론으로 먼저 제시한 적이 있었고, 친기업주 언론들도 긍정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한국은 고용의 유연성 즉, 해고의 자유가 너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편에선, 온건한 진보 학자들 중에도 이 모델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연성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되기도 했거니와,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안정성이라도 확보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1997년 전과 비교하면, 취업 노동자 수는 그리 늘지 않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몇 곱절 늘었습니다. 정규직이 잘린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운 경우가 많은 겁니다. 고용 유연성이 이미 높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실직 후 소득안정성이 OECD 안에서 최악입니다[각주:1].

논리적으로 이미 유연성이 많이 확보된 나라에서 유연안정성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건 안정성 추구론자들이 적극 나서야 하는 문제인데, 이 나라에선 거꾸로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덴마크 모델의 허점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통상적 경기변동 대응력이 우수할 것 같지만 사실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정책의 가장 큰 허점은 경제 위기 때 드러납니다. 지금 같은 장기 침체기엔 더 심하겠지요.

경기 후퇴로 일자리의 절대적 규모가 줄어들 때, 이 모델은 무기력합니다. 해고가 쉽기 때문에 실업자는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이 재취업할 일자리는 적습니다. 2008년 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후폭풍으로 지난해 덴마크는 인구가 5백60만 명인데, 실업자가 7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실업자가 빨리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실업수당을 줄 기금이 부족하게 됩니다. 실업 노동자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이미 덴마크 정부는 실업수당 기한을 2년으로 줄이려합니다. 실업수당 액수 상한선도 생겼습니다.

이 모델에서 기업주에게 해고는 권리지만, 고용은 의무가 아닙니다. 고용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개인들이 합니다[각주:2]. 일자리 창출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안정성의 후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덴마크 정부가 1994년 이 유연안정성 정책(황금삼각모델)을 도입하기 전에는 실업수당을 무기한 지급했습니다. 수급 기한을 4년으로 줄인 뒤에도 처음엔 조건 없는 소득보장이었지, 조건부 지급이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복지국가의 후퇴인 겁니다.(유연성의 보상으로 안정성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안정성만 후퇴한 셈입니다.)

게다가 개인을 해고하는 게 자유롭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약화되고 개인들로 파편화될 개연성도 큽니다.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 모델을 찬양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절묘한 균형 정책이거나 제3의 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에 복지국가의 포장을 씌운 것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복지 비용은 정부 재정에서 나옵니다. 정부 재정 수입 즉, 세금을 누가 많이 내느냐 하는 것도 복지정책의 진보성을 평가하는 간접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2004년 기준으로 총 조세 수입에서 소득 역진적 간접세인 소비세가 32.7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개인소득세가 절반입니다. 법인세는 6.5퍼센트밖에 되질 않습니다. 노사가 분담하는 사회보험료에서 기업 몫이 4퍼센트입니다. 총 조세수입에선 0.1퍼센트입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덴마크의 기업들은 해고는 맘대로 하고, 실업자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비용은 사회에 떠넘기고 있다는 겁니다. 법인세율 자체가 OECD 안에서도 낮은 수준입니다.(한국보단 살짝 높습니다)

정부 재정 수입에서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이 낮고 간접세인 소비세 비중이 높은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가 유사합니다. 차이나는 부분은 덴마크가 개인소득세 비중이 높은 대신, 스웨덴은 연금 등 사회보험에서 기업주가 부담하는 몫이 크다는 겁니다.

북유럽 복지모델도 기업들에겐 상당한 수준에서 규제 완화와 이윤 보장이라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거죠.

결국, 유연안정성 제도 도입론은 노동자들에겐 사기극입니다. 덴마크 모델 찬성파들은 덴마크의 실업률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매우 낮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긴 미국발 거품 경제 때문에 수출 중심 국가들이 모두 외형적으론 성장을 하던 때입니다.

결론은 덴마크 모델은 대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해고 금지법을 제정하고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릴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부도기업은 공기업화해 고용을 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이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시대에 진보진영은 그 이상을 내놓아야 합니다. (☞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경제 위기 시대에 실업에 저항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이 청년 미취업자들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기업주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삶이 충돌할 때, 노동자들은 과감하게 노동자들을 살리는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행동해 삶과 권리를 지키지 못하면 누구도, 친기업주 언론이 칭송하는 어떤 모델도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노동자들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다수에 속하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단호한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1. OECD가 최근 발표한 ‘2009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OECD가입국 중 비교가능한 29개 국가의 ‘순임금대체율(근로시 순소득에 대한 실직시 순소득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은 30.7%로 세번째로 낮았다. 이는 29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 중위값인 52.2%에 비해 21.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국보다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이 낮은 국가는 미국(27.8%)와 영국(28.4%)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실직 5년차까지 순임금대체율 28.4%가 유지돼 실직시 소득 안전성은 높은 국가에 속했다. 반면 한국은 실직 2년차부터 순임금대체율이 0.3%로 급락해 실직후 혜택이 2년차 이후에도 지속된 26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특히 실직 5년차까지의 평균 순임금대체율은 6.3%로 미국(5.6%)에 이어 29개국 중 두번째로 낮았고, 29개국 중위값 28.4%와 비교해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기업의 해고비용을 정부가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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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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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 기사: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용기있게 고발하다 / 삼성 눈치 보며 비판 입 다문 <경향신문> 
관련 글: 삼성을 생각한다》삼성반도체와 백혈병》를 읽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인터넷교보에서 바로드림 서비스로 주문하려는데, 광화문점에서 대기일이 6일이 나오더군요. 1시간 후가 아니라 6일 후라니... 떠도는 말처럼 혹시나 삼성이 싹쓸이를 하는 건가 의심도 했습니다.

예전에도 이씨춘추》나 나는 삼성왕국 무노조 경영철학의 희생자였다》 같은 책들이 충분히 회자되기도 전에 서점 판매대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이씨춘추≫가 우연히 손에 들어와 봤는데, 이건희를 마약 중독으로 묘사한 게 기억나네요. 나머진 비실명이라 흥미 반감이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건희 마약 중독 소문은 과장된 것이라 말합니다. 다만, 이런 소문이 널리 퍼져 사실처럼 여겨진 건 일반인과 구별돼 살고자 하는 주류집단의 ‘귀족주의’, ‘신비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건희 흉 볼 게 하나 줄었다고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책을 보면 넘치거든요. 

김용철 변호사의 이 책은 용기가 넘칩니다. 그래서 삼성 소유주 일가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류집단" 전체를 불편하게 할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 결과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책이 됐습니다. 이건희 일가의 저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 입구에 그들이 미술관을 세운 이유는? 미술관 경비를 핑계로 그 동네 출입 자체를 막고 경비하는 것이랍니다. 전 탈세 목적의 미술품 보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2007년 10월 후 특검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1부가 최근 삼성 에버랜드 재판까지, 2부는 김 변호사의 삼성 입사부터 퇴사까지, 3부는 김 변호사는 대검에서 수사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입니다. 각 파트는 시간대 별이지만, 책 전체로 보면 과거로 거슬러 갑니다. 마지막 결론은 PD수첩 등 다시 현재 얘기로 돌아옵니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의 구성을 연상시키는데요, 김 변호사 자신이 삼성 비자금 관리와 로비 업무에 몸 담았던 만큼 이런 구성도 책읽는 재미를 늘려준 듯합니다. 

애초에 이번 서평은 삼성을 생각한다》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그리고 <레디앙>에 보도된 삼성공화국 관련 미발표 논문을 묶어 보려했는데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서평에서도 지면 사정상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을 더 다루지 못한 건 조금 아쉽네요.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는 활동 백서 성격이라 삼성을 생각한다》 만큼 판매순위가 높진 않지만, 김 변호사 책 판매를 보면 삼성반도체의 유족들과 투병 직원들을 응원해 줄 잠재적 독자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삼성과 노동부·근로복지공단·산업안전관리공단 모두 이들을 외면하지만, 최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벤젠이 사용됐다는 증거가 나오는 등 이곳에도 희망이 비추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에서도 삼성 노동자들의 무노조 삼성 노동자들의 고된 현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보이는 곳만 화려한 북한의 현실과 삼성 공장을 비교한 것은 신선했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은 삼성 창업주이자 이건희 아버지인 이병철 출생(일부 언론은 역겹게도 ‘탄생’이라더군요) 1백 년 맞이 용비어천가 쓰레기들을 판매 순위에서 멀찍이 제친 건 기쁜 일입니다. 이병철이 살아 있던 80년대만 해도 평범한 서민들은 그를 이름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돈병철’이라 불렀죠. 그의 라이벌은 ‘돈주영’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아래서 승승장구하는 문어발 재벌에게 이만큼 적절한 호칭도 없었을 겁니다. 

이 경멸스런 돈벌레 기업주가 한국 대표 재벌로 성장한 때가 공교롭습니다. 1998년과 1999년 삼성이 부도났고 김대중 정부가 다 막아주고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삼성 부도설이 사실이었다고 얘기합니다. 

놀랍게도 이 때가 바로 삼성이 1등 재벌 무리에서 치고 나가 단독 1등 재벌로 우뚝 서기 시작한 때입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혼자 잘나서 오늘날 성공한 것처럼 말하는 건 그래서 다 뻥입니다. 삼성만 해도 삼성자동차 부채를 해결해 준 건 정부였고, 삼성은 지금까지도 이 돈을 다 갚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또 삼성이 6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을 쳐낸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일방 해고된 노동자들 일부를 모아서 일반노조를 만들고 저항을 시작한 이가 바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입니다. 

김성환 위원장이 펴낸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삶이 보이는 창, 2007)에 실린 글들을 보면, 김성환 위원장의 대단한 저항 기록뿐만 아니라, 삼성에서도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바꿔 보려 몸부림친 기록들이 나옵니다. 

거제 삼성중공업의 어용노조 위원장 출신(무노조 경영의 앞잡이)인 최석철 씨가 쓴 나는 삼성왕국 무노조 경영철학의 희생자였다》는 양심고백서 성격이 있습니다. 최석철 씨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나중에 삼성 본관에 자동차로 돌진했으나 언론에는 단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나오게 되죠.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북, 2008)에는 김용철 변호사와 그를 도운 사제단, 김성환 위원장 등을 비롯해 검찰 X파일을 폭로한 MBC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의 고군분투가 각각 간결하게 잘 기록돼 있습니다. (재밌는 건 사제단도 김 변호사를 돕는데 주저하고, 삼성의 로비 대상이 됐다는 자기 고백이 나옵니다. 물론 삼성도 사제단에겐 돈으로 로비하지 않더군요.) 

이밖에도 삼성-선출되지 않은 권력》(다함께, 2008[개정판])에는 '고대녀' 김지윤 씨를 포함한 고려대 출교생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교수 감금 때문에 출교 징계를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1년 전 고대 당국의 이건희 명예박사학위 수여 반대 시위 조직에 대한 보복이 진짜 이유였습니다. 이들의 끈질긴 투쟁은 출교 철회라는 승리를 거뒀습니다. (뒤끝 있는 MB고대 전통에 따라 무기정학 소송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 삼성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 적지 않은 책들을 보면서 오히려 두려움보단 희망을 봅니다. 이 책들 모두 삼성 왕국에 저항한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대부분 삼성의 내부자입니다. 안팎에서 삼성의 가장 큰 특징을 요약하는 단어가 “관리 삼성”이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감시·닦달·조종한다는 건데, 그 “관리 삼성”에서 이토록 내부자들의 저항과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는 거야말로 삼성이 결코 빅브라더가 아니라는 방증이겠죠. 

10조 원에 이를 거라는 비자금도, 삼성 장학생들도 이건희 유죄와 비판을 막지 못했습니다. 5년 전 고대생들의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도 꽤 유명했죠.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주류집단이 반(反)삼성을 반(反)기업으로 여긴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비자금보다 더 강력하게 삼성장학생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거죠. 그래서 삼성공화국(왕국)은 기업공화국인 겁니다. 삼성 권력 비판은 한국의 기업권력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적지 않은 게릴라들이 전문 경영자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넘기는 해법은 진짜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전문 경영자도 기업 공화국(왕국)을 유지하는 데는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돈' 씨 일가에서 빼앗아 공기업화해 이 범죄왕국을 끝장내고 막대한 생산 능력을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

오늘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던 수많은 ‘돈병철’들의 기업에 노조가 버젓이 생겼고 그들이 투쟁도 하고 진보정당 지지도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윗들의 저항 기록들은 보존하고 떠받들 가치가 있습니다. 그 기억들이 전해져 또다른 다윗들을 낳고, 더 많은 다윗들이 한 뜻으로 단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다윗들 없인 저들이 골리앗을 굴러가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가장 강력한 것은 삼성 노동자들이 내부자 저항을 시작하는 겁니다.

(다음엔 재벌 개혁 논의들을 다뤄보려 합니다. 좋은 자료나 책들을 아시는 분들은 추천 좀 해주세요)

 

□ 추천 도서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 2010)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박일환·반올림, 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 2010)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기획취재팀, 프레시안북, 336쪽, 1만2천 원, 2008)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김성환 외, 삶이 보이는 창, 355쪽, 1만3천 원, 2007)
삼성-선출되지 않은 권력》[개정증보판] (한규한 외, 다함께, 120쪽, 3천 원, 2008)
《고르디우스의 매듭》(김병윤, 두레스, 239쪽, 1만2천 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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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민주노동당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진보정당의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10년 됐습니다. 요샌 이래저래 위상이 떨어졌지만 한때 지지율이 20퍼센트에 육박한 적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은 진보 대중들의 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분당 때를 빼면 개인적으로 제일 강렬한 에피소드는 바로 창당 첫해에 있었던 총선이었습니다. 그 때 전 울산 북구 선거운동에 자원해서 내려갔습니다. 울산 북구는 현대자동차공장이 있어 전설의 투사들이 인구의 다수입니다. 그래서 권영길 전 대표가 출마한 창원(을)과 함께 유일하게 당선 가능 지역으로 본 곳입니다.

그러나 현대차 조합원들을 볼 새도 없이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정자동이라는 한적한, 그러나 풍경은 끝내주는 어촌에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원래 한나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인 지역이었죠. 까막눈인 어촌 할머니들 대상으로 기호5번 대신 손가락 다섯개를 꼽아주며 왼쪽에서 다섯번째 칸이라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개표 날, 출구조사 방송은 창원은 낙선, 울산 북구는 민주노동당 당선으로 나왔습니다. 새벽2시까지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 후보를 앞섰습니다. MBC 메인 방송에서 당선 인터뷰를 하고, 한겨레신문은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만세삼창을 하는 '1면용'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제가 선거운동을 했던 마지막 투표소에서 대역전(패)극이 시작됐죠. 5백 표차 낙선!! 충격 두 배, 민망함 두 배, 분함 두 배 였습니다.

그 민주노동당이 10년을 버텼습니다. 원내 정당으론 7년째입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되질 못합니다. 분당은 계기인 것이고, 가치와 세력, 전략에서 대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최근엔 정치 위기에 시달리는 이명박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10년 만의 최대 탄압입니다. ☞관련기사)

그래서 국제 진보정당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며 전략 노선을 재검토할 주제가 창당10년 토론회에 반영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실험.

차베스가 대표하는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비교해 훨씬 더 급진적이고 투쟁적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온건한 의회 정치 전략인 유럽 사회민주주의 지지 대 급진적 대중행동을 함께 추구하는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지지로 분명히 갈렸습니다.

둘 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토론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정성진 교수가 유럽에서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약화를 딛고 급진좌파정당들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어 유럽 좌파에 온건 사회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고, 그 점에서 전체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론 내용은 위의 관련 기사 링크 참조)

한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정치단체 등에선 제3의 길을 많이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현지 진보진영에서 워낙 평판이 안 좋아 국제적으로도 인기가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유팔무 교수는 한국이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열악하므로 제3의 길 수준의 사회민주주의라도 추구하자는 게 결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전 그런 심정은 공감이 갑니다)

노동계급과 기층민중 정체성도 버리고, 의원 입법활동이 중심이 도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자는 겁니다.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 같은 게 도입되면, 투쟁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저는 유 교수 주장을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야말로 '소망'의 정치, '공상'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 교수는 집권이야말로 '선'(善)이라고 했지만, 집권이 개혁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말로만 서민 개혁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조차 우파들에게 탄핵의 수모를 겪고, 결국 집권 3년차에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기에 이릅니다. 완전 항복선언이었던 거죠.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대기업의 소유주와 대주주 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너써클 출신이거나 이 집단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 행정관료, 사법관료, 군부의 장성 들이 폐쇄적 주류 지배계급 집단을 이룹니다. 

그들의 힘의 원천, 즉 자본주의의 절대반지는 대기업들의 이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처럼 기업 이윤(수익성)이 충분하지 않을 때 저들은 노동계급에게 양보하고 개혁과 변화를 제공하기는커녕 그나마 과거의 개혁들을 되돌리려 합니다.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기업 수익성에 해가 된다고 보면 정부도 괴롭힙니다. 그래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때 집권 도미노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모두 왜소한 상태로 밀려나 있습니다. 애초부터 시장권력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차베스 정부는 그 반대였죠.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1999년 차베스를 시작으로 유럽처럼 중도좌파들의 집권 도미노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서도 중도좌파 정부 무력화 시도가 벌어졌죠. 

베네수엘라 지배계급 주류도 차베스 정부를 3번이나 전복하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베스 개혁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이 이를 막아냅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등에서 활발히 벌어진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도 지배계급 주류가 후원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해 각종 반동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정치 위기 속에서 저항의 싹을 자르려 합니다. 심지어 중도우파 정당인 민주당조차 심심치 않게 거리 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유팔무 교수의 제3의 길 찬양이나 온건한 의회정치 전략은 개혁을 성취하기엔 무력합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 전략도 전진이 쉽지 않습니다. 지배계급의 권력 원천에 더 진지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날선 토론이 진행된 만큼이나 앞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입니다. (틈틈이 민주노동당 10년을 쟁점별로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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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24호가 새로 나온 지난 목요일 저녁 몇 분 독자들이 4면의 "노조법 개악의 주범 추미애는 중징계를 당해야 마땅하다"는 기사의 주장이 적절하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제목을 추미애 징계 요구로 뽑아야 했냐는 의견도 있었고, 민주당에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견의 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민주당 지도부나 추미애나 '초록은 동색'이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놈이 그놈'인데, 한쪽에 '징계권'을 주는 건 민주당 지도부가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했던 것처럼 포장해 주는 건 아니냐는 거죠. 그날은 짧게 토론하다 보니 제 생각을 적절히 전달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추미애 징계는 국회 차원의 징계와 민주당 차원의 징계 두 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등은 국회 차원의 징계도 정식으로 요구했죠. 환노위 진행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겁니다. 국회 차원의 징계란 결국 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민주당의 징계 수위에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결국, 민주당의 징계 문제가 핵심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히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하지 않았습니다.[각주:1] 그래서 민주당 안에선 추미애 징계 논란이 차기 지도권을 둘러싼 다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겐 분명히 다른 성격의 쟁점이라고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운동과 좌파의 추미애 징계 요구는 '추미애 노조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애초 추미애 징계 논란의 발단이 '개악 노조법날치기한 행위'입니다. 추미애는 직위를 이용해 복수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막고 노동조합에 전임자를 둘 권리를 사용자의 의사에 맡기는 개악 노조법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추미애 덕분에 한나라당은 매우 쉽게 개악 노조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추미애 중재안 - 지금은 통과돼 현행 법이 된 - 을 지지한 한국노총 지도부는 추미애 징계에 반대하며 민주당 지도부에 항의했습니다. 조선일보도 추미애를 편들었습니다. 마치 추미애가 민주당 무능 지도부의 책임전가 희생양인 것처럼 묘사하더군요.

반면, 개악 노조법에 반대하는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은 추미애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주저하면서도 말로는 '중징계' 운운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이제는 제일 큰 야당으로서 진보단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국회에서 대리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민주당 내부의 추미애 중징계론은 그 동력이 민주당 바깥에 있습니다.

가관이게도 추미애는 자신이 주도한 노조법이 지금 상황에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한 최선의 법안이었다고 '거리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친사용자 일간지인 <한국경제신문>은 전교조가 개악 노조법을 찬성한 듯 왜곡 보도했습니다.[각주:2] 민주당 안에서도 더 보수적인 의원들은 '소신'을 징계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맞불

그래서 추미애 중징계 요구로 개악 노조법이 내용과 형식 모두 잘못 됐고 반드시 개정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추미애 중징계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에 매우 상큼한 출발점이 될 겁니다. 민주노총과 왼쪽의 압력으로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관철되면 경고도 되고 우리 편 사기도 올라갈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불리할 건 없습니다. 민주당이 추미애를 중징계 하면, 개악 노조법의 권위와 신뢰는 상처를 크게 받을 겁니다. 우리 운동에 해를 입힌 정치인이 군색한 처지가 되는 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징계를 어설프게 하면, 민주당의 정치적 신뢰도는 다시 추락할 겁니다. 반mb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본질을 자백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이명박에게 김석기 파면을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추미애 징계 공방의 초기에 제가 썼던 기사(추미애 징계 공방 - 민주당, 참 별 볼 일 없다)를 다시 봤습니다.  그때 추미애 중징계를 요구해야 한다고 봤지만, 나온 기사에는 그 표현들이 빠졌습니다. 양비론에 가깝습니다. 그때는 연말 국회도 일단락한 마당에 진보 쪽의 과도한 반mb연대 집착을 비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틀 후 이 블로그 포스트('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에서도 비슷한 각도에서 다뤘죠. 다만, 추미애의 출당과 국회 징계를 요구하자고 했네요. 전 분명하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개악 노조법을 찬성하며 추미애를 옹호하는 자들에게 맞불을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24호에 새로 기사가 실린 것은 이 점이 충분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래서 예리한 토론들이 자주 있어야 합니다. <레프트21>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피드백해 주는 게 소중한 이유죠.
 
  1. 민주당의 최종 당론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 타임오프제를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글을 참조해 보십시오. [본문으로]
  2. 전교조는 특별법으로 교섭권을 제한하는 정부에게 일반 노조법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얄궂게도 법 개악으로 일반 노조법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전교조의 오랜 이 요구가 오해를 낳고 있습니다. 전체가 단결할 요구를 만들기 위해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재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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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업천국 도시 확산할 세종시 수정안  / 세종시 관련 MB의 말바꾸기와 이박투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종시 수정안이 연초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연말 날치기 무효화 투쟁마저 묻히는 듯합니다. 이 상황에서 진보는 어떤 자세로 뭘 해야 할까요.

사실 세종시는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두 계획 모두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 차원의 '행정부처 이전'입니다.

그런데, 전 행정부처 이전으로 균형 발전하는 데 신도시 건설이 핵심일까요. 효율성으로 따지면 그냥 기존에 이미 개발된 도시로 이전하면 됩니다. 서울의 행정부를 분산하는 게 목표라면, 대전엔 이미 제2청사가 있는데, 그 근처에 신도시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신도시를 만들면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갈까요? 그리되면, 인구 이전이지 균형 발전은 아닐겁니다. 균형 발전하려면 현지 자영업을 활성화하고 현지 청년들을 채용해야 하는데, 이럴 때 어느 측면에서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까요? 공무원 몇 천 명 간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 리 없잖아요~

세종시가 원안대로 세워져도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가기 보단 인근 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일겁니다. 새 구심 도시가 생기면 연기군과 인근 지역 인구가 집중되면서 새 소외 지역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세종시 원안 역시 균형 발전 목표보다 신도시 '개발' 즉, 토목공사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건설로 경기 부양하고 기업과 부자들의 투기 지역 넓혀 주기 말입니다.

특히, 지역 토호들은 이런 방식의 균형 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토균형발전이 국토균형땅값올리기(그리고 전 국토의 투기대상화)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균형 발전 논리가 아파트 건설 광풍이 불어 지금 지방 도시들엔 미분양 아파트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이 어느 하나라도 좋게 봐줄 구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건 기업 특혜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입니다. 분명히 수정안은 반대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뒤섞여 애초 주류 엘리트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다투는 문제였던 세종시 문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세종시 수정안 반대 쪽으로 반mb 진영을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습게도 이명박-민주당 구도로 가던 구도가 이제는 이명박-박근혜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건 애초에 이 세종시 의제 자체가 저들의 의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진보 쪽의 의견이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종시 블랙홀은 기업이 아니라 진보의 의제와 원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습니다.

진보 쪽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mb 진영의 묻지마 연대 정서가 이런 본말전도를 가속화하고, 그 결과로 묻지마 연대가 더 강화되는 악순환입니다.

이쯤에서 주요 진보 단체들의 세종시 관련 주장을 살펴봅시다.

민주노동당

이명박 대통령은 원형지 공급을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는 국민 세금을 재벌에게 퍼주는 특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전국의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재벌행복도시 재벌특혜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13 대변인 논평)

강기갑

세종시 수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상최대규모의 대기업 인센티브를 통해 ‘재벌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재벌특혜는 형평성을 요구하는 다른 지역에 대한 특혜로 도미노처럼 번져 결국 나라 전체를 ‘재벌행복국가’로 망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나라 빚은 또 어찌할 것인가. 결국 서민들의 부담으로 가중되는 것이다. (1.11 의원단총회 모두발언)

고송자 전남도의원

세종시수정안이 확정 발표된다면 이미 전남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기업들 중에서도 투자유치 파기가 잇따를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 기업 및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한 나주혁신도시와 해남.영암 관광레저도시(J프로젝트), 무안 기업도시 등은 세종시 때문에 사업추진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남도는 내다보고 있다. (1.11, <민중의소리> 기고)


진보신당 노회찬

세종시 문제는 원안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수정해버린 정부여당도 문제지만, 지금 국가적으로 세종시 문제가 핵심논란이 돼야하는가를 봐야 한다. (1.14 신년 기자회견)

심상정

지금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면서 불러들이고 있지만 아마 차기 정권에 의해서 또 다시 뒤집힐 운명이라는 것을 기업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뭐 결국 말만 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1.15,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조승수

세종시가 기업경제중심도시로 가면서 마치 블랙홀처럼 돼버렸습니다. 지금 땅값뿐만 하더라도 세종시 같은 경우는 36만원에서 40만원, 울산은 지금 299만원 대입니다. ... 이런 조건에서 울산에 투자하기로 한 삼성이나 한화 같은 기업들이 투자 여력의 한계를 느껴 울산이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1.13 울산 KBS <아침정보 울산> 라디오 인터뷰)


한국진보연대

정부의 세종시 수정은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전국의 모든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죽일 것이다.(...) 중앙부처 이전 백지화는 10개의 혁신도시, 8개의 기업도시 추진 동력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진시킬 것이며, 정부가 ‘파격적’으로 제시한 각종 특혜 때문에 그나마 지지부진 ‘추진’되던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경제적 추진력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1.11 성명서)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YMCA 등]

수정안은 행정도시 백지화선언, 국가균형발전 포기 선언이며 지역균형발전 자체를 부정하고 수도권을 더욱 팽창시키고자 하는 의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계획. 문제점: 1)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 목적 자체의 폐기  2)혁신도시 정상 추진 불가능 3)세종시 빨대효과와 지방 특화도시 고사  4)정부 재정부담을 통한 기업 밀어주기 (1.11 기자회견)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국진보연대의 성명입니다. 도시의 신자유주의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발 과정부터 신자유주의화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의 온건 버전)인데, 세종시 수정안이 기업도시의 추진력을 망쳐서 문제라고 합니다. 한미FTA 등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며 헌신해 온 이 단체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성명서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 단체가 신자유주의 논리로 신자유주의 정부를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참 미스테리합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나 민주노동당의 전남도의원은 지역 토호들의 지역 개발 논리를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업 유치가 우리 삶의 조건 개선에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도대체 기업권력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의 원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울산이나 나주의 혁신도시가 성공해도 정부 예산이 기업 유치를 위한 특혜 제공에 몽땅 쓰이고, 근로기준법이 개악돼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되고 해고가 쉬워지면, 중앙 정부의 복지예산이 줄고 공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건강보험을 무력화할 영리병원이 확산한다면, 그 혁신이 진보가 바라는 대중의 삶 개선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조치 확산의 지리적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그나마 민주노동당과 강기갑 대표는 수정안 비판에선 나름 핵심을 짚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늘 말이 아니라 실천이겠지요. 묻지마 반MB연대로 돌진하는. 물론, 더 자세히 보면, 기업도시와 기업특혜도시를 구분하는 도식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기업도시 자체가 기업특혜도시입니다. 한편, 다른 논평에선 원안을 적극 옹호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얼추 균형잡힌 지적을 했고, 심 전 의원은 날카로운 지적이긴 한데, 핵심을 회피한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진보신당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조승수 의원의 의견에 대한 두 진보신당 핵심 리더(노·심)의 생각입니다. 

주요 엔지오들이 결집한 수도권과밀호반대전국연대는 약간 공상적인 구상에 바탕해 수정안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기업도시'의 아류 버전인 '혁신도시' 추진에 적극 찬성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이들의 공통 전제는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주요한 국가적 의제라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건 공상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근본 속성입니다. 자본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이 집중은 지리적 집중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노동력이 도시로 집중하고 현대 산업 생산의 거점인 도시가 전근대 산업인 농업 지역인 농촌을 수탈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입니다. 그 결과로 도시 과밀화/농촌 공동화, 교통 혼잡, 환경 파괴, 대규모 슬럼, 주거 공간의 계급 분리, 농촌 수탈 등이 발생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서울 인구 과밀화를 해결한다고 경기도에서 수도권 개발을 해왔지만, 결과는 서울과 경기 모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이었습니다. 호남의 저발전과 수도권과 영남 중심의 발전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들은 자본주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도 개혁적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새 도시 건설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건 근본 문제의 형태 변경일 뿐입니다.

정리하면, 세종시 정국에서 진보진영의 주요 단체나 지도자들 상당수가 친기업적 개발 논리나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습니다. 독자 의제로 정국을 주도할 수 없는 진보진영의 왜소함, 반MB 연대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기업 중심 성장 논리를 일부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사고방식이 이런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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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에 올린 포스트(철도파업 중단 소동과 <레프트21> 평가 기사 유감)와 <레프트21> 인터넷판 독자편지(전면 파업을 하지 않아 문제였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12.10)에서 <레프트21>의 철도 파업 평가 기사(노조 지도부가 기회를 붙잡지 못하다)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저에 대한 재반론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로 패배를 자초했다는 평가는 옳다")

그때 제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도 조합원들이 전면 파업을 할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명박은 철도 파업을 온 힘을 다해 탄압했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탄압에 정치투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철도노조 지도부의 파업 중단은 잘못이다.
그래도 파업 중단과 전면 파업 회피(합법주의)는 패배를 자초한 배신이라 볼 순 없다.
철도 파업은 패배하지 않았고, 지도부가 재파업을 약속했으므로 재파업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이 12월 중순부터 총력투쟁에 들어갈 것이므로 연대투쟁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돌아보면, 시간은 제가 틀렸다고 판정했습니다.

철도노조 탄압은 계속되고 있는데, 철도노조 지도부는 재파업의 'ㅈ'자도 'ㅍ'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찰에 자진 출두하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도 흐지부지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투쟁을 회피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순진하게 믿은 게 돼 버렸습니다. 그들의 소심하고 비겁한 행태를 옹호한 것입니다.

제 주장대로 하면, 조합원들이 전면 파업의 자신감도 없고 파업 철회를 나서서 비판하지 못했는데 재파업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제 논리에 따라 보더라도 재파업 여부는 결국 철도노조 지도자들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노조 지도부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전망한 것입니다. 거대 노조 지도부들의 생리를 많이 경험한 제가 이렇게 큰 판단 실수를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철도 파업이 사실상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철도 파업은 간만에 노동 쪽 전선이 반MB 전선의 선두에 선 투쟁이었습니다. 비록 전면 파업은 아니었지만 꽤 파장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에 비춰 투쟁의 강점과 약점을 골고루 살피며 평가와 전망을 하질 못하고 심정적 기대감에 치우치다 보니. 갑작스런 후퇴에 당황해 냉혹한 현실을 회피하는 식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실망스런 결과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스꽝스럽게도 싸우다 도망가는 철도노조 지도부의 "다음에 보자"는 말을 '믿으려' 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를 들어, 더 깊숙이 취재하고 기대를 걸었던 쌍용차 투쟁은 결과가 실망스러웠지만 그렇게 엉터리로 평가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의 전개를 더 파고 들어가면서 전 사실 철도 파업과 이를 둘러싼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전 처음부터 전면 파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탄압을 했습니다. 

총력을 다하는 투쟁이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총력을 다할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이 파업은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쪽이 10의 힘으로 덤비는데 이쪽의 3이나 4 이상의 힘밖에 쓸 수 없고 그게 당연하다면 누굴 탓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는거죠. 애초에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제 글이 국가 탄압의 효과는 과장했고, 우리 편에게 유리한 조건들은 무시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사실 기층의 투쟁과 대중의 잠재력에 확신이 없고 국가권력과 대결하길 두려워하는 노조관료주의와 개혁주의의 사고방식이 이와 똑같습니다.

그리곤 저는 거기에서 전 한번 더 도약(안 좋은 쪽으로!) 했습니다. 이길 수는 없는데 패배를 인정하긴 싫으니 현실 직시를 거부합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우리 쪽에 어렵다고 보는데 철도 파업마저 패배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비관주의가 늘 좌절감만 드러내는 건 아닙니다. 종종 현실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돌고돌아도 진취적 과제로 결론내길 회피한다는 점에서 결국 현실에 순응한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조합원들의 사기가 충분하지 않았더라도(당장은 전면 파업을 현실화 못 하더라도) 현실에선 투쟁과 연대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며 정면 대결하느냐, 아니냐  둘 밖에 선택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파업 후엔 지도부의 후퇴에 저항하느냐, 마느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전술 모형'을 그려 놓고 제3의 선택이 가능했던(또는 가능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우파 지도자들의 약점을 비판하지만 실천은 비슷하게 하는 노조관료주의 좌파 버전 같은 결론을 내린 거죠. 
도망가는 지도부의 재파업 약속을 믿었다기보다 '믿고 싶어 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우습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에선 초등학생도 "다음에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없다"는 걸 아는데, 말입니다. (물론 와신상담의 고사가 있긴 한데, 이 고사에서도 오왕 부차나 월왕 구천이 닥친 현실을 회피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렸던 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와 맞서는 운동들이 겉으로 지지부진한 것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쌍용차 투쟁의 여진이 제게도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고 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에 맞게 과제를 내놓으면 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제3차 철도 파업의 가능성은 아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3차 파업에 가더라도 똑같은 문제에 다시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는 길은 단지 후퇴하는 지도자들의 뒤를 따라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내 안의 비관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고 순응했습니다. 이미 12월 하순에 제 철도 파업 평가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즉시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돌아 보면, 단순히 전술 판단이 다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그리고 그건 부차적인 차이입니다)  짧게나마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잃었던 것이라 스스로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자존심 강한 저로선 <레프트21> 기자 명함을 달고 이랬으니 스스로 화가 나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짜 와신상담[臥薪嘗膽] 해야 겠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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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세계적 곡물 풍년 속에 10억 명이 아사 위기

             식량 위기를 둘러싼 신화 벗기기


어제 21세기의 빈곤을 두고 토론하는 포럼에 다녀 왔습니다.

한 대학생이 "이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선이나 구호 활동은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듯 한데 구조적으로 가난을 해결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참석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자선단체 봉사활동을 해 봤습니다만, 봉사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은 준종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기부라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인 자선 활동은 아쉽게도 결과도 소박한 게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굶고, 집이 없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그런 가난의 문제를 '없애지' 못한다는 겁니다. 가난의 원인을 찾아 없애야 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란 끝이 없는 일이어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라고 뜻풀이가 돼있습니다.

요즘은 이 속담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 투자를 소홀히 하는 정부를 변호하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즉, "가난(한 개인)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거죠. 원인이 개인에 있든, 해결책을 개인이 찾아야 하든, 가난은 개인의 문제라는 겁니다. mb스런 발상입니다.

저는 이런 해석이 자본주의적 해석이라고 봅니다. 진짜 뜻은 옛 시대엔 정말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아)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흉년과 홍수 등으로 기근 상태에 내몰린 농민, 소작농들이 왕이나 양반 지주에게 그나마 남은 식량을 다 빼앗기고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광경은 정약용의 책 등 여러 기록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던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는 사회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생산력이 높지 않았습니다. 왕의 탐욕은 개인이 소비하고 누릴 수준, 더 많은 신민을 거느릴 군대 양성 목표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게 자본주의에 와서 바뀝니다. 자본주의는 기업주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무한정 뽑아내려는 시장 경쟁의 압력이 생산을 추동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미 1984년에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당시 농업 생산력이 인구 1백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인구로 쳐도 갑절이나 되는 양입니다. 오늘날에는 고기와 야채 등을 빼고도 곡물로만 전 인류에게 하루 3천5백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성인들에게 권장되는 하루 영양분은 2천5백 칼로리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배고픔은 더는 세상에 먹을 게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식량을 쌓아놓고도 이 지구상에선 오늘도 열 살도 안 된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고 10억 2천만 명이 아사 위기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선 지금 5천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6백만 명이 법정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갑니다. 배고픔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선 인구 절반이 남의 집에서 살고 극빈층은 판자집이나 심지어 동굴에서 사는 사람도 있답니다. 부동산 1등이 집을 1천83채나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소수의 막대한 풍요 속에서 다수를 빈곤의 바다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금융자본들은 어려운 후진국에 돈을 꿔주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란 제시해 나라 전체를 외채 갚기에 종속시킵니다. 공기업을 팔고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산업의 초점은 당장 수출해서 갚을 달러를 만들 수 있는 단일 작물 재배나 천연자원 수출로 이어집니다.

이런 곤경에 처한 나라들이 많기에 공급 과잉으로 수출 가격은 하락해 다시 타격을 받습니다. 사탕수수 같은 몇몇 작물들은 물을 고갈시켜 환경 파괴와 사막화를 낳기도 합니다. 천연자원은 헐값에 고갈되고, 노동력과 돈은 수출 농업으로 몰려 산업 기반은 오히려 붕괴합니다. 1980년대에 IMF에서 돈을 빌렸다 국가경제의 3분의 1이 코카 잎 재배와 수출에 의존하게 된 볼리비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반면, 선진국에선 후진국에서 오는 낮은 가격의 수입품을 배경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게 되고, 후진국의 값싼 농산물과 경쟁하도록 자국의 다국적 농기업들에게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쥐어줍니다.이 돈은 가난한 이들에게 쥐어짠 세금에서 나옵니다.

카길이나 몬산토 따위의 다국적 농기업들은 특허낸 종자로, 비료 공급 독점으로 이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후진국 농민들을 다시한번 쥐어 짭니다. 후진국의 정부 관료와 부자들은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현지 법인 경영자 등 선진국들과 다국적 자본들의 앞잡이가 돼 떼돈을 법니다.그래서 선진국에서나 후진국에서나 친기업 정부들에 맞서 싸우는 운동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국제 이자 놀이로 돈을 벌던 다국적 기어들은 제조업 등에서 이윤이 맘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최근에 원료와 식량을 투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최근의 식량값 폭등은 이 때문입니다. 식량은 기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투자 대상이라고 본 겁니다. 최근엔 식량을 연료로 쓰는 이른바 바이오 연료가 식량 가격을 올리고 먹는 용도로 가야할 식량을 축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보낸 지난 30년은 세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주는 과정이 특별히 두드러지는 시기였습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가난의 문제를 더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기에서 한숨 돌린 국제 지배자들은 다시 신자유주의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쌀밥에 고깃국"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건 북한 정부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정부들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막대한 식량과 재화가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은 소수의 독점과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인 식량이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돈이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그 돈을 누가 통제하고 있냐는 겁니다.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경쟁시장이 이런 재앙을 낳고 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시장 경쟁에 탈락자를 위한 배려 따윈 없습니다. 경쟁은 승자 독식 구조를 강화합니다. 경쟁이 독점을 낳고 사람들을 (시장 경쟁력이란 기준으로) 획일화하고 (공공을 위한 의사결정에서) 다수를 배제합니다. 독점기업들끼리 벌이는 피튀기는 경쟁은 국가를 끌어들여 끔찍한 전쟁을 낳기도 합니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은 주기적으로 경제 위기를 낳습니다. 경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 넣습니다.

그래서 시장 안에서 정의를 찾아보려는 공적무역 운동은 좋은 의도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막대한 물건과 식량을 쌓아놓고도 일자리를 빼앗고 사람들을 굶기고 죽도록 내버려둡니다. 재앙적인 가난의 문제는 국내에서나 세계 차원에서나 자본주의 탓입니다. 그리고 이 질서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권력입니다. 이들은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심에서 없애는 걸 더 선호합니다. 용산참사가 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이 가난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모든 정의로운 노력들은 자본주의를 끝장내려는 운동과 만나고 엮여야 합니다. 이 노력을 효과적이고 헌신적으로 추구할 변혁적 정치단체는 필수 요소입니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이런 네트워크는 국경 안에서 이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는 구실을 하는 국가권력과 맞서야 하고, 자본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노동계급' 운동과 만나 이들이 스스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제가 볼 때 21세기 자본주의에겐 두 천적이 남아 있습니다.

자연의 복수, 그리고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민중권력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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