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연대> 125호 온라인 ☞바로가기



4월 2일 롯데리아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근무표를 조작했다는 한 점장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롯데리아 본사가 이를 알고도 묵인을 지시한 사실도 폭로됐다.


지난해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실태” 국회 세미나에서는 “2012년에 법을 위반한 [아르바이트 고용] 사업장이 91.8퍼센트”라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 밖에 신고건수로 보면 임금체불이 압도적으로 많다.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권문석ㆍ박정훈, 박종철출판사, 2014, 1만 4백20원)

이런 현실에 놓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라는 운동에 주력해 온 알바연대와 알바노조가 자신들의 요구와 논리, 활동을 정리해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을 내놓았다.


알바노조 조직화를 위한 교본처럼 보이는 이 책은 생생하게 현실을 폭로하고 최대한 읽기 쉽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강점이다. 청소년, 청년들이 자기 권리를 깨닫고 행동과 자기 조직화에 나선 몇몇 경험담은 매우 고무적이고 흥미롭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편의점에서도 장년과 노년 노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정책으로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낮추려 한다. 이 책은 당사자들의 경험에 바탕해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는 잘 활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축소하고 없애야 할 한국 경제의 나쁜 결과물”이라고 잘 지적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 현대자동차 정규직처럼 기본급이 낮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면서 부문을 뛰어 넘어 연대하자고 주장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그에 바탕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보편적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것도 공감의 폭을 넓힌다.


그러나 이 책의 이론적 알맹이들은 흥미롭지 않다. 케인스주의적 금융화론의 통속화된 설명과 프레카리아트론을 합쳐 놓은 분석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 혼란을 자아내기 십상이다. 이 책이 비록 최저임금이 “적절한 임금” 수준이 돼야 한다는 논거로 마르크스주의 임금론을 인용하지만, 전체적인 분석과 전략은 케인스주의에 가깝다.


저자들은 완전고용과 복지국가의 시대를 신자유주의와 금융산업 발전으로 성립된 금융자본주의가 대체했고, 이 시스템이 수익 창출을 위해 개인들을 부채 위기로 몰아넣고 노동유연화를 추구해 불안정노동을 양산했다고 말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좋은 자본주의와 나쁜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개혁주의 사고 방식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나쁜’ “금융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막지 못했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 재정지출을 늘려도 실업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중앙정부는 물가도 잡지 못합니다. 케인스의 구상이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하고 답한다.


금융자본주의가 국가를 무력화했다는 설명은 혼란을 자아낼 만한데, 왜냐면 이들의 핵심 실천은 모두 국가에 요구하고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의 주휴수당 받아내기는 그렇다 쳐도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 등은 매우 강력한 국가가 필요한 요구들이다.


노동계급이 정치적 해결을 위해 국가에 요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궁금한 것은 금융자본주의의 등장을 막지 못한 국가가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거나 해체하는 데서는 유능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알바연대 활동가들은 국가를 강제하는 대중행동이 관건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답도 만족스럽진 않은데, 그렇다면 왜 1970~80년대에는 그렇게 못 했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금융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대응이 왜 실패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사실 국가 개입으로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는 “케인스의 구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이들이 프레카리아트와 기본소득을 강조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고용(보장)을 위한 투쟁, 임금 인상 투쟁보다 고용 여부와 관계 없이 소득을 지급하라는 요구와 투쟁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동시장 자체에서 배제된 장애인, 실업자, 빈민, 취업준비생 등과 노동시장에서 차별 받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노동자, 그리고 정리해고의 위협 속에서 떨고 있는 정규직노동자들을 포괄”하는 “프레카리아트”들이 새롭게 ‘불안정성’을 매개로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노동자와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점 때문에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를 강조하는 이진경 교수 등의 프레카리아트론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불안정성”을 기준으로 사회집단을 분류하는 한 프레카리아트론 고유의 약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프레카리아트론은 칼 마르크스의 노동계급 이론을 계승ㆍ혁신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이론의 정수를 부정하고 폐기하는 개념이다. 그 핵심은 노동계급의 잠재적 권능을 외면하는 것이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KT 사례에서 보듯 정규직이라고 고용불안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조직노동자들의 조직력, 투쟁력, 투쟁의 전통을 그런 힘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도 현명한 전략도 되지 못한다. 


이들의 ‘상대적 특권’과 정규직노조의 부문주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 안정성을 가능하게 한 힘에 기초한 정치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의 내부에서, 그리고 국가의 바깥에서 그들을 압박할 수 있는 힘 말이다.


사실 자본들 간의 끝없는 시장 경쟁이 정치적 갈등과 국가 간 전쟁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가 항구적인 불안정의 체제다. 주기적인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이 상시적 불안정을 낳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도 자본주의 안에서 항구적 안정성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불안정성을 금융자본주의에 와서 보편화한 새로운 특징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한편에서 이들은 노동의 불안정성은 과장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몇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에 맞서 상대적 안정성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 노동자 개인들이 자본의 고용에 의존하듯, 이윤을 창출하려면 자본도 노동계급의 존재에 의존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잉여노동만이 (이윤으로 바뀔)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이 노동에 의존한다는 점 때문에 노동계급에게는 자본을 마비시켜 그들의 경제권력을 해체하고 사회를 재조직할 수 있는 구조적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자본에게는 안정적 축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숙련과 충성도 면에서) 안정적인 노동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요인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은 상대적 안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일상 투쟁은 항구적 불안정성에 맞서 상대적 안정성을 유지 확보하려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고용안정과 임금에서 전반적인 전진을 이룬 때는 박정희, 전두환의 국가자본주의 시대가 아니라 1987년 대투쟁 이후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체 고용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 자체는 축소되고 정규직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가 된 것도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안정 속에서도 지속적인 투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노동계급의 특징이다. 


그러나 불안정성에 기초한 프레카리아트의 연대는 이런 힘에 대한 개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약자들의 연대다. 자본과의 객관적 관계 속에서 생기는 단결의 조건과 힘에 기초한 연대가 아니라 의식과 각 주체들의 선의(도덕적 정의감)에 기초한 연대다.


그래서 개인들의 의식과 각성, 이데올로기 효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한 장을 알바생과 알바노동자의 호칭이 가져올 이데올로기 효과를 다루는 데 쓴다. 노동자성 강조는 좋지만, 용어 사용이 세력관계와 대중의 의식을 뒤바꾸진 않는다.


이들의 전략에 국가를 외부에서 압박할 힘을 가진 주체가 없으니 국가가 무력해졌다는 분석을 하면서도 실천은 국가에 의존하거나 활용하는 전략에 기울 수밖에 없다. 또한 자영업자들과의 연대(계급연합)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선거주의적 포퓰리즘(계급연합) 정치로 귀결될 수 있다.


이 책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대기업 갑과 자영업자 을 다음의 병이라고 주장한다. 갑에 맞선 을과 병의 연대가 이들의 주요 전략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공동 이해관계를 강조한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요구가 (‘병’으로) 덜 중요한 문제처럼 취급된다.


“영세 자영업자와 관련하여 당장 중요한 문제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해지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일이라 보입니다. 알바연대 역시 불공정거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116쪽)


“임금이 높아지면 소속감과 책임감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직이 줄어들어 사장님 입장에서도 이익입니다. 임금이 높으면 동기가 부여되어 생산력이 높아집니다.”(136쪽)


이것은 공동의 이익을 강조해 자본가들을 설득하겠다는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태도다. 이것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월간 좌파》12호(2014.4)에서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널리 알리려고 올해 지방선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핵심 공약 중 하나는 악덕 사업주와 모범 사업주 명단을 공개하고 모범 사업주 지원하기다.


그러나 자영업자와의 단결로 최저임금 인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상호간에 경쟁하는 자영업자들끼리의 단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위협할 힘이 없다. 설사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갑의 횡포를 줄인다고 해도 을과 병 사이의 고용주-노동자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인 아르바이트 노동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이 최저임금제, 기본소득제 등 정치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엄청난 재원을 감안하면, 단지 개개인들의 의식 각성을 통한 동참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실현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실이 알바연대와 알바노조의 주요 활동이 사실은 노동상담지원센터 같은 구실에 머무르는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의 힘을 동원해야 하고 계급투쟁의 방식으로 정치적 운동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이 힘으로 체제와 국가를 압박하고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사회를 재조직할 힘을 보여 줘서 다른 계급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주도성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전투성뿐 아니라 노동계급을 변혁정치로 단결시킬 정치와 조직의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계급 중심 전략 아래서는 전투적 청년들의 자기조직화가 꼭 지금 알바노조의 형식과 수준에 머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바노조 자체가 민주노총에 가입해 더 광범위한 노동자들과 전투적인 노동조합 행동을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또한 청년들은 더 넓은 차원의 노학연대나 사회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고,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현실을 바꾸려고 분투하는 변혁적 노동자정치단체의 일원이 돼서 노동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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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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