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 임금·노동조건 문제를 뭉개선 안 된다




<노동자 연대> 159호 | online 입력 2015-10-21



정부와 우파,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며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삭감)를 요구한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KLI)은 “[임금소득] 상위 10퍼센트 임직원 임금 인상이 동결되는 경우 9만 1천5백45명의 정규직 신규채용”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이 계산은 기업이 지출하는 임금 총액은 그대로 둔 채 (소수의 임원을 포함한) 노동자 실질임금 삭감분을 월평균 2백26만 원으로 나눈 것뿐이다. 전형적인 노동자’끼리’ 고통분담론, 즉 고통전가다.


정부의 “노동개혁” 공세를 돕고자 내놓은 악의적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KLI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장관으로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기초를 닦았던 방하남이다. 이 자가 정권의 “노동개혁”을 도우려고 곡학아세를 지휘하고 있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비용 절감 방식이다. 임금소득 최상위자(상위 10퍼센트)의 임금이 동결되면, 차상위자의 임금도 억제된다는 것이다. (동결된) 최상위자 수준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법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억제가 노동계급 전체에게 하향 평준화 압력이 된다는 점을 정부와 기업주들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소득 상위 10퍼센트의 기준 소득(세전)은 연 6천7백만 원이다.(새정치연합 윤호중) 여기에 소득 상위 10~20퍼센트 구간 노동자들의 소득(세전 소득 연 4천8백50만 원 이상)까지 억제되면 사실상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 대부분이 실질임금을 삭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연쇄 효과를 낳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이 보고서에 대해 “실제로는 상위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삭감되면, 단계적으로 하위 노동자의 임금 동결/삭감이라는 연쇄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 정규직을 공격함으로써 종국에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옳게 비판했다.


이처럼 노동자 양보론은 오히려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뿐이다. 생각해 보자. 박근혜, 정몽구, 이건희 같은 자들이 정규직 책임론을 들먹일 때, 그들이 비정규직의 삶과 처지에 눈꼽만큼이라도 연민을 갖고 그러겠는가. 그것이 자본에게 유리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 간 사회적 타협 모델을 전제로 한 노동자 양보론은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우파의 이간질을 받아들여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치기 쉽다.


노동시간 단축의 조건


한편, 같은 발표에서 KLI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악 방침(주 최대 노동시간 한도를 60시간으로 상향)과 달리 현행대로 주52시간을 한도로 해서 노동시간을 줄이면, 최대 19만 3천여 명까지 추가 고용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9월 4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KLI는 노동시간 단축시 노동자 개인의 기존 임금 총액이 줄어드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KLI의 분석은 노동자 개인의 임금 총액을 깎아서 즉, 기업주들이 지불하는 임금 총액은 그대로 둔 채 노동자들끼리 임금을 나누는 효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KLI 발표를 비판한 민주노총의 논평은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누락만은 아닌 것 같다.


10월 8일에 서울시와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서울 일자리 대장정 노동조건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가 주요한 대안으로 토론됐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서도 노동시간 단축 논의의 가장 중요한 쟁점(‘조건’)인 기존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라는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평가 요구에도 ‘중앙정부가 하는 일에 입장 표명은 곤란하다’며 답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쟁점은 가능한 피해 가려고 하는 박 시장의 스타일이겠지만, 이 쟁점에서 그런 태도는 적어도 정직한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현행 임금체계상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자동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곳도 많고, 임금을 보전한다면 그 비용이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당일 토론회의 의의를 지지하고 향후 결과를 기대한다고만 하고서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분명히 하지 않은 논평을 발표했다.


장시간 노동


사실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노동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들은 1년에 OECD 평균보다 4백 시간 더 많은 2천71시간을 일한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50일, 주5일제로 계산하면 1년에 두 달하고도 일주일가량을 더 일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나 은행 노동자는 한국 평균보다도 4백 시간 더 많은 2천5백 시간을 일한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2012년)


따라서 이런 과중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하면 일자리 1백만 개를 만들 수 있고, 현행 근로기준법의 주당 52시간 제한만 제대로 지키고 특례 업종만 없애도 일자리 62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민주노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그런데 노동시간이 줄면서 임금이 함께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사실 대부분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이 낮은 기본급을 만회하는 수단이다. 무엇보다 기업주들이 시간당 임금이 낮은 점을 이용해 신규 채용보다 기존 노동자들을 더 부려먹는 방법을 선호해 왔다. 당연히 기업주들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를 쉽게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주들과의 타협으로 임금을 양보해 노동시간을 줄인다면, 첫째,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질은 기존 노동조건보다 더 낮은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 상당수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더 열악해질 것이다. 낮아진 임금 때문에 생산성 향상 명목으로 노동강도 강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물론 경기가 더 나빠지면 임금이 깎이더라도 노동시간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그런 사례들이 있었다.


그러나 양보론으로는, 세계적 경제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지금, 계속해서 후퇴해야 하는 처지를 피하기 힘들다. 일자리의 질만 나빠지고, 해고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에서도 노동조합이 1993년에 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합의를 한 이후 거듭해서 임금과 노동조건 개악 등에 합의했다. 그랬는데도 2006년, 2008년의 대량해고를 막지 못했다.


대중 투쟁


이런 일은 임금과 이윤을 둘러싼 계급 간 이해관계가 화해불가능한 적대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임금을 양보해서 고용을 지키자는 논리는 노동계급의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수세적 양보보다는 노동자들의 투지를 높여 기존의 노동조건을 지키려고 투쟁을 건설하면서 단결을 확대해 가는 대안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직 노동계급이 계급투쟁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응해 이윤을 보호하려고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만큼, 노동계급은 파업으로 이윤 창출을 타격해야 양보를 강제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전국적 규모에서 법제화한 1917년 러시아, 주 40시간 노동제와 긴 하계 휴가(바캉스)를 얻어 낸 1936년 프랑스와 주35시간제를 쟁취한 1998년 프랑스 등이 모두 위기 속에서도 노동계급이 강력한 투쟁으로 성과를 일궈낸 경우다. 한국도 1987년 대투쟁 다음 해에 주 44시간 노동제를 획득했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특유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 속에서 양보론과 사회적 타협론으로 기우는 것은 투쟁으로 요구를 쟁취하기 어렵다는 비관론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월초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때처럼 대중파업 건설은커녕 노골적으로 김 빼는 구실을 하곤 한다. 앞서 든 사례들에서 민주노총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환영한 것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선진 노동자들은, 국제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배워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단호하고 일관되게 옹호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변혁적 정치와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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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평균 노동시간은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2천1백 시간이 넘어 OECD 평균보다 4백 시간 많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준 것이고, 주당 40시간 일한다고 계산하면,OECD 평균보다 일 년에 석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전일제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각종 수당과 사내 복지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이런 조건에서 시간제(파트타임) 일자리가 충분한 임금과 복지를 받는 정규직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4시간 일자리가 법정 하루 노동시간(8시간)의 절반을 일한다고 해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줄 사장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사장이 그러겠는가. 


게다가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로 고용비용 한도를 정해놓은 정부가 공무원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면,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겠다는 말밖에는 더 되겠는가.


정부와 사장들은 직무급을 도입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할 수 있고, 임금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쌩 거짓이다. 경력 단절을 걱정하거나, 육아 등의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는 술책이라는 말이다.


우선, 시간제 일자리에 정규직 직무를 부여할 리 없다. 이미 직무급을 부분 도입한 기업들에서 사장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무를 분리해서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직무급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불가피한 쓴 약이 아니다. 그냥 정규직의 기존 임금을 낮추려는 개수작이다. 직무급 도입은 그 자체로  임금 안정성을 흔든다. 직무에 따라 임금이 임금을 들쭉날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직무 배정 권한이 ‘인사권’이란 이름으로 사측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작업장 자율성은 크게 후퇴하고, 사측에 대한 종속성이 더 커진다. 이는 임금 유연화(불안정성 증대)와 더불어 노동의 권리를 위축시킬 무기가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정규직의 근속년수를 인정해 정규직 호봉 체계에 포함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이렇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임금 차별을 해소한 바 있다.


상시업무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이런 식의 해결이 가능하다. 사장들이 이런 방식의 해결책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만, 일부 정규직 노조들이 부문주의적 시각으로 이런 해결책을 꺼리는데, 이를 약점 삼아 직무급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해법으로 사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조가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규직 호봉제 임금 체계 편입을 추구한다면, 직무급에 관한 헛소리들을 날려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일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시간제 일자리는 정규직의 절반은커녕 잘해야 3분의 1, 4분의 1을 받는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이 하루 열 시간, 열두 시간을 일하는 마당에 4시간 짜리에게 임금 절반을 줄까? 6시간 짜리에게 4분의 3을 줄까? 직무도 임금도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불안정 파트타임 노동인데, 임금도 여전히 쥐꼬리라면, 그 모든 환상적 [헛]소리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직무도, 대가도 허접하다면, 총액 뿐아니라 시간당 임금 자체가 낮을 가망이 높다. 


그렇다고 박근혜와 경총 방식으로 임금을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면, 정규직 여부를 떠나 전일제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하락하게 된다. 이런 식의 하향 평준화해서 이루는 임금 격차 해소는 사장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의 ‘로드맵’은 근로시간 감소가 2000년대 이후 다른 요인보다 “최근 고용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정부와 사장들은 임금 유연화와 연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외형적 고용률 수치를 크게 올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기존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자들이 일감을 놓고 다투게 만든다. 전일제 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들도 더한 장시간 노동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기존 전일제 비정규직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들도 투잡으로 몰릴 수 있다. 


결국 박근혜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정규직 임금 하락과 비정규직 일자리 확산을 통해 전반적인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노동 현장에서 세력관계를 자본에게 기울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려면, 기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이 일하는 시간만 줄이는 것이 돼야 한다.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도 없애야 한다. 박근혜의 고용률 헛소리 로드맵을 전면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까지 크게 단축해야 하고, 일정 시간 이상의 노동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임금 체계도 지금처럼 고정급이 낮은 구조에서 고정급이 높아서 추가 노동이 필요없는 구조라 바꿔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육아휴직에 대한 임금 보장 기간을 늘리는 등 더 많은 복지가 함께 결합돼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만 시간제 일자리가 노동자들 서로를 할퀴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되면, 시간제 일자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를 나누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 민주노총도 최근 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면, 1백14만 개 일자리가 나온다는 분석을 인용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의 ‘로드맵’조차 근로시간 감소가 취업을 늘리는 데 효과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 이상, 이런 요구들은 매우 정당하다.


[이런 요구를 현실에서 쟁취하려면 투쟁이 필요하다.이에 대해선 <레프트21>의 내 기사이 블로그 앞 글에서 간결하게 설명해 놓았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재벌과 부패 우파가 슈퍼 갑으로 행세하게 내버려 두고서 좋은 일자리와 희망있는 삶이 자동으로 보장되진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의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한 것이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투쟁은 그 일부인 것이다.

다만, 당장의 삶의 조건을 지키려는 투쟁조차도 그 투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희망과 용기, 확신을 줄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106호 관련 기사에 대한 내 개인의 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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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의 금융노조 ‘총파업’ 준비

금융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요구를 지지하자


금융노조 노동자들이 7월 30일 예정된 파업 찬반투표를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투표율이 87퍼센트인데, 파업 찬성률은 91.3퍼센트나 된다. 실질임금 삭감과 장시간 노동으로 쌓인 분노와 투지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금융노조는 7월 2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총파업 진군대회를 열고 30일에는 1차 총파업을 할 계획이다. 12년 만의 금융 산별 총파업으로 금융노조는 노동조건의 개선과 구조조정을 막으려 한다. 

금융노조는 우리은행을 KB국민은행에게 팔려는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반대한다. 농협을 상업은행으로 만들어 투기 영업과 노동조건 악화를 시키는 것에도 반대한다. 또 금융노조는 은행이 대학생 20만 명을 대상으로 학자금 무이자 대출 지원에 나설 것과 야만적인 장시간 노동을 줄여 청년 일자리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2.5.15. 금융노조 집회.(서울광장)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은 “경제가 어려운데 고소득 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며 비난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노조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조사를 보면, 은행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노동시간은 2천5백72시간에 이른다. 

※ 사실 한국 노동계급 전체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0년 기준으로 2천1백93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4백44시간이나 많다. 그런데, 은행 노동자들은 이처럼 긴 한국 평균보다도 3백79시간이나 더 일하는 것이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 계산하면, 은행 노동자들은 1년에 한국 평균보다 47일을, OECD 평균보다 102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여기에 주5일제를 적용하면, 한국 평균보다도 두 달, OECD 평균보다도 약 다섯 달을 더 일한다. 12개월 임금을 받고 말이다.) 

1997년 이후 은행 인수합병 과정에서 5만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쫓겨난 뒤, 그 만큼의 일을 남은 노동자들이 감당해 온 결과다. 이처럼 은행 노동자들은 법정 노동시간보다 무려 3분의 1을 더 일하는데, 이는 법정 노동시간만 지켜도 지금 인력의 3분의 1 즉, 2~3만 명의 정규직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도 늘리고 기존 노동자들은 주말과 평일 저녁 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2008년 경제 위기와 고임금을 빌미로 은행들에선 지난 4년간 사실상 임금이 동결돼 왔다. 전세 대란과 식류품 가격 폭등 등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이 크게 삭감돼 온 것이다. 게다가 신입 직원의 초임은 삭감된 채 원상 회복될 기미도 없다. 

결국 은행 산업의 성공은 무엇보다 은행 노동자를 덜 주고 더 일 시키며, 젖은 수건이 마른 걸레가 되도록 쥐어짠 데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은행 경영진들을 노동자 파업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진정으로 귀족스럽게 고소득을 올려온 것은 은행 경영진들과 대주주, 정부였다.
 
은행들은 2009년부터 예금 금리는 낮추고 대출 금리를 올려 왔다. 주로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가계대출을 늘려 왔다. 전세 대란에도 은행들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피땀과 99퍼센트 대중의 한숨을 쥐어짠 대가로 은행들은 매년 10조 원가량 순익을 올려왔다. 이 수조 원의 돈이 아무 한 일도 없는 대주주의 배당과 경영진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들어 갔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도 2천억 원이 넘는 돈을 배당으로 가져갔다. 

※ 한국 은행의 배당성향(40.5%)은 다른 상장사들(16.2%)에 비해 두 배를 훨씬 넘으며, 주요 신흥국과 비교할 때도 가장 높다(한국은행, 2012. 4. <금융안정보고서>).

따라서 학자금 무이자 대출 같은 공익적인 일에 은행이 쓸 돈은 차고도 넘친다. 주주 배당보다 천만 배 정의로운 요구를 하는 것은 바로 금융 노동자들인 것이다. 

한편,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CD(양도성 예금증서) 금리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은행 아홉 곳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대출금리를 CD 금리에 연동한 가계대출은 2백78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금리 1퍼센트만 따져도 3조 원 가까운 돈을 폭리로 취한 셈이다.  

대량 해고 

이번 금융 총파업이 현실화된다면 실질적인 동력은 국민•우리 지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7월말 1차 입찰 마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메가뱅크 설립이란 망상을 버리지 못한 이명박 정부는 KB국민은행이 우리은행을 인수하도록 하려 한다. 

국내에서 영업점이 가장 많은 두 은행을 합치면, 전국 영업점의 무려 70퍼센트가 500미터 이내로 중복 대상이다. 두 은행의 합병으로 1만여 명이 잘릴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 위협이다. 그러나 합병이 평범한 99퍼센트 대중에게 이득이 될지는 전혀 검증된 바 없다.

그런데도 금융위원장 김석동은 최근 “우선협상자로 선정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 전폭적으로 지원 … 절대 손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민영화 의지를 드러냈다. CD 금리 담합 문제는 감독도 못한 자가 구조조정에는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는 우리금융 민영화 등 ‘민감한’ 사안은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게 좋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재정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다. 

※ KB금융지주 이사회가 우리은행 민영화 1차 입찰 마감일인 27일 오전에 열리기로 했다가 이틀 먼저 이사진 간담회를 연다는데, 내부 격론의 증거라 하겠다. 
정부(특히, 모피아)와 금융산업 대주주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낙하산인 어윤대가 대주주들을 설득하는데 애로가 있는 듯하다. 국민은행 내부적으론 검토를 이미 마치고 정치적 판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논의 결과가 26일 집회나 30일 총파업에 영향을 미칠 텐데, 최근 KTX 민영화 관련해서 연기 발언을 번복하는 이명박 정부 행태를 볼 때, 이들의 결정에 연연하지 말고 계획된 투쟁 일정을 강행하는 것이 옳다. 물론 KB 이사회가 민영화를 접는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이 일차전에서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탕발림을 믿기보다 이명박의 레임덕 위기를 이용해 이번 기회에 아예 쐐기를 박는다는 생각으로 투쟁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이명박은 온갖 권력형 부패가 드러나면서 피투성이가 되고 있다. 이것이 집권당 후보인 박근혜마저 군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노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새누리당파들이 민주당 지지마저 문제 삼으며 내분을 일으킨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투쟁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세력들이다. 

금융노조는 이들을 단호하게 비판하며 투쟁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당에 의존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과 정책협약식을 가졌는데, 협력할 건 협력하되, 독립적 태세를 취하는 게 옳다.   

다행히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앞으로 사용자 측과의 협상에 진척이 있더라도 7월 30일 총파업은 반드시 성사 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부는 버스 대절 등 실무 준비가 한창이다. 이처럼 ‘투쟁 먼저, 그리고 투쟁의 힘으로 협상을 한다’는 기조를 세우고 유지해야 한다. 

7월 30일 파업은 월말이라 파업 효과를 더 크게 낼 수 있다. 관건은 26일 총진군대회의 성공에 달려 있다. 단결된 노동자들의 힘으로 ‘메가뱅크 MB’를 ‘멘붕 MB’로 만들어 버리자.  


※ 이 글은 이영일 동지와 함께 쓴 글이다. 그러나 최종 교열을 내가 봤기 때문에 내용 상 오류나 오타/맞춤법 오기 등은 모두 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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