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응답하라 1988’이 유행하더니, 88년 총선 결과(1여 다야인데도 여소야대가 된)처럼 될 수도 있다는 말이 현실이 돼 버렸다. 박근혜의 기를 모은 주문대로 당적만 봐서는 새로운 국회가 됐는데........ 

아성인 부산과 대구에서 탈당파 포함해 의석 3분의 1이 빠졌으니, 수도권 못지 않은 내상이다. 레임덕으로 아니 갈 수 없다. 이는 좌우 양쪽에서 박근혜 심판 투표를 한 결과로 본다. 왼쪽만이 아니라 보수층에서도 균열이 상당했다는 것. 이는 경제 상황의 악화 때문이라고 본다. 좌든 우든 정권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그럼에도/그러므로 ‘노동개혁’은 기업주들 대다수의 요구이므로 방식은 달라져도 멈추진 않을 것이다. 국민의당, 더민주당 의원들 상당수가 새누리당의 요구에 부분 협조할 것이다.
우리 쪽은 좀더 좋아진 여건 속에서 좀더 오른 사기로 16일 세월호 집회를 잘 치르고, 메이데이 전국 집중으로 찍으며 투쟁 건설로 가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진보·좌파 정치 재편도 아마 본격화될 듯하다. 정의당과 울산 쪽이 민주노총과 논의의 주도권을 형성하겠지.


민주노총 전략선거구들 중,
울산 동구 김종훈, 북구 윤종오, 경남 창원성산 노회찬의 당선.
경북 경주에서 당선은 못했지만, 권영국 변호사의 짧은 기간 큰 성과.
이곳들 모두 핵심 기반은 금속노조.(상급단체 없는 현중 포함, 노파심에 말하자면, 경주에서도 금속 경주 없이 15% 상회 득표가 가능했을까?)
경제 위기, 박근혜의 ‘노동개혁’, 일자리와 미래 불안 등이 그 지역들에서 계급투표 결집을 상당히 이뤄낸 듯하다.
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 허공에 떠다니는 담론들에 휘둘리지 말자.
....

아울러, 애초에 연합적 노동계 정당이 없이 진행된 선거에서 그런 당이 있었으면 있었을 그런 일(비례의 대폭 획득)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공상적인 평가도 말자.(울산, 창원 같은 곳에서는 진보·좌파 정당득표에서 손해를 많이 본 셈.)
무엇보다 비례의석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10만 명 투표하는 선거구에서 3천 명 지지를 얻어야 3%인데, 이걸 모든 선거구에서 해 내야 비례 '1명' 생기는 것이다.
이게 활동과 기반의 누적없이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개혁주의 선거정치조차도 조직 노동자 기반 없이는 더욱 힘들다. 그러니 민주노총 우습게 본 집단들은 후회를 좀 해야 한다.

정의당은 정당투표 중간집계 보면 3월 여론조사 때 기세보다 (더민주당과 선긋기 부족, 물리적으론 지역구 후보가 너무 적은 것, 울산에 후보가 없는 것 등 여러 이유로) 뒷심이 부족했는데, 득표수로는 또 적은 게 아니다.(73% 개표에 1백20만 표를 넘어섰으니, 단순 산술 예측하면 최종 1백50만 표 정도) 많다고 할 수 없어도 노동계의 부분적 지지를 받은 정당으로서는 적진 않다.

배타적 지지를 받은 2012년 통합진보당 총선 정당득표가 219만여 표였다. 정의당이 잘 했다는 게 아니라, 그나마 기반과 누적된 활동, 인기있고 이름있는 진보정치인 등 요인으로 그나마 정의당에게 변화 염원 유권자의 정당득표가 나머지 당보다 쏠린 결과라는 말이다. 현재 나머지 세 당(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의 정당득표는 합쳐서 같은 개표율에서 약 30만 표로 2%가 안 된다. 그래도 산술적 추정치로 약 2백만 표 정도가 나올 것이다.
이는 2012년 진보정당(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녹색당) 총득표인 2백50만, 2014년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총 2백23만 표보다는 줄어든 것이지만, 그동안 분열과 진보당 해산 등으로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졌던 얼마 전까지의 현실 등을 감안하면 그렇게 준 것도 아니다.(이번 총선에 줄었다기보다는 이전에 준 걸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번 총선 수준의 득표를 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 정도는 울산과 창원의 쾌거가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다.


(추가) 그 뒤로 정의당 득표율이 좀 올라서 단순 계산 예상보다는 득표가 쪼금 더 늘었다. 애초에 예전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처럼 노동계급 정당득표를 수렴할 공식화된 대표정당 없이 분열 여진이 남은 상태에서 진행된 선거에서 진보/좌파 네 개 합쳐 2백만 표를 넘긴 것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 대부분(4/5)이 정의당 몫이다. 득표율은 막판에 뒷심이 딸렸는데 득표수로만 보면 2년 전(지방선거)보다 갑절로 늘었다. 나머지 3당은 합쳐서 2%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정의당이 너무 온건해서 그동안 박근혜에 대한 저항을 노,녹,민 3당이 대변해 왔다고 하는데, 그말대로면 반박근혜 저항이 2% 미만 지지를 받은 건가? 편견으로는 현실을 옳게(균형, 직시) 읽을 수 없다. 실은 정의당으로 상당히 수렴된 것이다.(각자 좌우 방향은 달라도 말이다.) 녹색당은 2년 전 것을 지켰고, 민중연합당은 긴급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인데, 노동당 결과가 좀 안타깝다. 분당 여진으로 2년 전보다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울산 중구 이향희 후보의 선전은 축하한다.(2위라는 순위도 그렇지만, 2년 전보다 1만 8천 표가 늘었다.) 다음 재편 국면에서는 누가 봐도 민주노총, 정의당, 울산 무소속's가 주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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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개표 막바지인데 총선공투본에 참여한 네 당의 정당 득표를 모두 더하니 2백만 표가 조금 넘는다. 2012 총선, 2014 지방선거의 진보정당 합계와 비교해 조금 모자란 수치다.(여러 조건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그중 정의당이 165만 표를 넘겼다. 통합진보당 분열 후 치른 첫 전국선거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의 광역별 비례득표를 더하면 전국에서 82만 표를 얻었다.(진보당 97만 표) 정당 지지가 두 배로 성장한 것이다. (관찰자의 마음이 무엇이든) 진보/좌파를 지지하는 변화 염원 대중이 정의당에 지지를 몰아 준 모양새가 됐다. 정의당에 대한 각자의 감정을 떠나서 좌파가 정의당 개혁주의에 균형있는 태도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일부 진보/좌파 정당 지지자들이 비례 1석 획득을 우습게 알아서 좀 한심했다. 3%는 10만 명이 투표하는 선거구에서 3천 명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비례 1석 얻으려면 이걸 모든 선거구에서 해야 한다. 정당비례제도가 생긴 이래 지난 총선까지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한 정당에만 그런 비례 의원이라는 영광이 주어진 이유고, 분열한 2014년에 비례 지방의원이 팍 줄어든 이유다. 그러니 역으로 정의당의 선전은 설사 소극적이라도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지지와 노동 기반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니 실사구시, 균형있는 태도가 필요하고, 조직 노동자들의 박근혜 심판이 적지 않게 정의당으로 표현됐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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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심화로 여권의 분열도 심각해지다



<노동자 연대> 152호에 실린 기사. 지면 제약으로 생략한 내용 일부를 괄호로 첨가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겠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유승민이 수용한 것이 계기였다. 행정부의 시행령, 시행규칙이 국회가 만든 상위법에 위반될 때는 국회가 개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 행정입법


행정권으로 법규를 정립하는 것 또는 그 법규를 말한다. 대통령긴급명령,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 등이 있다. 박근혜는 각종 개악 조처들을 주로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밀어붙여 왔다. 


박근혜는 국회법 개정이 시행령으로 국정을 추진해 온 자신의 통치 행위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각종 개악을 행정입법에 의존해 왔다. 거추장스러운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행정부가 바로 개악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애국법 등 반민주적 조처와 신자유주의 조처들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존했던 미국 부시 정권과 비슷한 수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시행령 25개가 상위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사측이 일방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의료민영화를 간접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시행령도 문제다.


시행령 개정만이 아니라, 시행령 악용도 문제다. 특히 노동 관련이 그렇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이 “월권 백화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교조에게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도 바로 이 시행령(9조 2항)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9조 2항은 박근혜가 개정한 것은 아님.) 


시행령을 앞세워 자본가들을 위한 고통전가 개악 드라이브를 추진해 온 박근혜에게 개정 국회법이 매우 성가신 방해물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노동자 투쟁, 세월호, 정윤회 의혹, 메르스 공포 등으로 지지율 하락 추세에 있는데,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 합의해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박근혜는 레임덕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의 히스테리는 오히려 박근혜가 여당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고, 정치 위기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은 좀 더 근원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유승민은 올해 원내대표 당선 직후, 박근혜가 말해 온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청와대와 달리 사드 도입을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지난해에는 “청와대 얼라들”에게 “일관된 국가안보전략”이 없다며 단호한 한미동맹을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권 내 갈등은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한국 지배계급 내의 불안감과 이견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태의 심화·발전으로 지배자들이 2012년 대선 때처럼 박근혜를 일치단결해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그런 점에서 이번 갈등 사건은 국가기구 내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이라는 요소도 배경에 있다. 의회 입법과 행정입법 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여권의 태생적인 권위주의적 속성, 정세의 불확실성, 박근혜 협박의 이중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공천 숙청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유승민과 비박계의 퇴로를 막아 놓은 탓에 갈등이 쉽게 봉합될 수도, 항복을 받아낼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근혜가 ‘선거 심판’을 운운한 탓에 유승민은 물론이고 김무성 등 비박계는 여기서 물러서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숙청을 당할 거라고 걱정한다.(유승민 다음은 김무성?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 순망치한설은 개연성이 꽤 있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인들 일반에게는 양보하기 힘든 이해관계 문제다. 또한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와 달리 차기 총선과 대선을 염려해야 하는 의원들은 여론과 노동운동의 저항 태세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의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 새누리당의 의회 정치인들 입장에선 박근혜와 확 갈라서는 게 차기 선거에서 좋을지 그 반대일지, 분열이 어떤 효과를 낼지 판단하기가 애매한 정세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봉합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도 있다. 이 문제의 변수는 여당 바깥의 저항과 여론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박근혜는 지배계급 내 반대를 무릅쓰고 황교안을 총리로 앉혀 놓은 것이다. 황교안은 노동운동과 사회 운동에는 공안 통치를 시도하고, 여야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정 정국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여권 분열 상황에서도 박근혜는 각종 개악을 밀어붙이는 한편, 집권당 분열이 노동운동에 자신감을 줄까 봐 탄압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 점을 걱정하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 숙청을 연상시키는 박근혜의 여권 내부 협박은 길게는 균열도 키우지만, 당장은 협조를 받아내는 즉 이중(역설) 효과도 발휘한다. 첫째, 박근혜의 협박은 무엇보다 뒤를 캐는 사정 협박이다. 둘째, 분열이 낳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있다.
박근혜 메시지의 논리 구조는 ‘여당이 단결해야 한다/안 그러면 외부 세력에게 당한다/그런데 단결이란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란 뜻’으로 구성돼 있다. 새누리당 누구도 대전제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순환논법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의견 자체가 단결을 해치는 배신이자 분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조직 노동운동을 다루는 데서는 아직은 별다른 충돌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는 노동운동의 저항 수위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제가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박근혜와 충돌하는 것이 차기 총·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표면적으로는 복종과 협력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니, 박근혜에 맞선다고 유승민 등을 띄워주는 게 얼마나 형편없는 짓인가.) 


그러나 박근혜의 탄압이 강력함을 뜻하기보다는 정치 위기의 발로임을 앞서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위기와 여권의 분열을 신자유주의 공세 거부 투쟁을 조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동운동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을 보편화하려는 공격에 더 격렬하고 단호하게 맞서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여권의 내분을 봉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 공격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여권 내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근혜가 여당의 원내대표를 정권의 걸림돌이라고 공개 선언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 얼마나 꾀죄죄한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정한 야당은 투쟁하는 노동운동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지금껏 각종 민영화, 노동조건 개악 시도, 복지 삭감 시도에 진정한 조직된 반대를 제공한 것은 조직 노동운동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를 막아낼 만큼 충분히 잘 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예고한 7월 파업뿐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공공부문 2차 정상화 조처를 막을 저항 구축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여권 내 분열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전진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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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씨는 "제왕적 (우익) 야당 총재"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것이 내 관찰인데. 매사에 권력투쟁 프레임, 만사가 남 탓, (계급본능형) 멸시와 증오의 수사, 선거 승리 우선주의, 자기편과도 협력 부재 등. 그래서 박근혜 씨의 포텐이 폭발한 전성시대는 2004~5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서 정치적으로 죽이겠다는 식으로까지 말할 때는 그 후과가 결코 투정 부리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회법 개정안 통과는, 계속 지적해 왔듯이, 국회를 우회한 시행령(대통령의 행정명령) 통치를 통치스타일로 해 온 박근혜에게는 실질적 위협이었을 것이다. 세월호만이 아니라 의료민영화 등이 시행령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 


(※ 내가 볼 때 이 스타일은 단지 유신스타일만이 아니라, 2001년 9·11 테러 후 조지 부시의 통치 스타일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반테러 열풍을 이용해 부시는 애국법 등으로 민주적 권리들을 제약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를 통하기보다 행정명령을 발하는 방식을 애용했다.)


단지 청와대 주인의 캐릭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역설을 볼 수 있다.


첫째, 새누리당을 대상화해 적대시하는 듯한 언사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 장악의 의지다. 이것이 관철될지 안 될지는 정치·경제 상황과 계급세력관계에 달려 있다.


둘째, 박근혜의 새누리당 장악 의지는 거꾸로 집권당 내 레임덕 공포가 박근혜를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제서야 말이다!


셋째, 역설이게도 위기를 끝내려는 청와대의 시도가 위기를 증언했고 더 증폭시켰다. 이제 레임덕 위기는 박근혜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이슈가 됐다.


박근혜의 노발대발 오리발닭발은 외려 유승민의 사퇴를 어렵게 해놓았다.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물러선다고 당청 갈등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비박계에게 정권재창출을 위한 단합은 공천 숙청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이 제거되면, 김무성은 안전할까? 그렇다고 황교안이 지휘할 사정 위협이 만만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의도치 않게 서로 발목이 묶인 것이다. 어느 한쪽이 치고 나가야만 돌파구가 생길 텐데, 그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커서 서로 확신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가 없는 (현재만 있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는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고, 차기 총선과 대선을 바라봐야 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들이박지도, 완전히 수그리기도 힘들게 된 것이다.


결국 당분간 이도저도 선택을 못 하는 상태로 갈등만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이러다가 황교안이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이? ㅋ) 고로 당청 관계만 놓고 보면, 박근혜는 외통수인 상황이니 변수는 새누리당(그 안에서도 유승민, 이것은 셋째 역설의 한 표현이다)에게 있는 셈이다.


차기 선거와 여론을 신경써야 하는 새누리당에게는 정치·경제 상황과 기층 대중, 특히 노동운동의 저항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지금이 노동운동에게 단결된 투쟁으로 반격을 개시하기에 불리하지 않은 때인 이유다.


물론 박근혜는 바로 이런 위험성을 제기하며 여권의 단합을 촉구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권 단합이 두려워 싸우지 말아야 하는가? 투쟁을 자제하면, 정반대 결론으로 날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이 적어진다는 것은 여권이 분열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역설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 안에서 불확실성이 커져 온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잘 싸우지는 못해도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조직된 반대를 제공할 수가 있다. 이 정부가 이 길로 갈수록 대중과는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임무를 수행할수록 정치 위기는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정치 영역으로 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투쟁 영역에서의 조직된 반대가 이곳에서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만회할 만큼 조직된 반대 투쟁이 거세지는 않다 보니, 부상을 입고도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 위기가 강요하는만큼 노동자투쟁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역설들을 낳고 있다. 따라서 저항이,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박근혜는 공무원연금 개악에 성공했고, 공안정국의 기초를 놓으려 한다.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위해 그 전초전으로서 공공부문 2차 ‘정상화’를 밀어붙이려 한다.


이 시도가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 따라서 박근혜의 길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노동운동이 저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그나저나 대통령이 여당을 국정 방해자로 지목해 몽니 부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회엔 야당이 없나 보다. 아니면 대통령 머릿속에 야당이 없거나. 진짜 야당은 노동운동 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더더욱 분발하자. 


(※ 그리고 박근혜랑 싸운다고 다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그런 게 진짜 나쁜 진영논리적 사고고,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 때 이명박 깐다고 이상돈, 김종인 띄워주다가 뒤통수 맞은 일을 잘 기억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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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판 5분 전

측근들 자중지란이 의미하는 바



<노동자 연대> 139호 | 발행 2014-12-08 | 입력 2014-12-06
※ <노동자 연대>에 실린 기사의 순서와 구조를 약간 바꿔서 올립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에서 난맥상이 불거졌다. 권력 실세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추문이 공개된 것이다. 친동생 박지만과 정치 입문 때부터 측근인 정윤회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시발점이 된 <세계일보> 보도의 출처가 ‘청와대 내부 문건’이었다. ‘유신 스타일’ 박근혜가 “국기 문란”이라고 길길이 날뛸 만한 일인 셈이다.


공교롭게 폭로 시점도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 정리해고 요건 완화, 복지 삭감, 노동자ㆍ서민 증세 등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파상 공세를 벌이는 중이었다. 박근혜가 사태 진화에 초장부터 직접 나선 이유다.


박근혜는 ‘정윤회 실세설은 루머, 문건 유출이 문제’라고 사실상 검찰의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세계일보>를 고소했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25년 만의 언론사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있다.


박근혜는 정권 핵심부에서 벌어진 분란 때문에 자칫 고통전가 공세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봤을 것이다. 레임덕이 예상보다 앞당겨 올 수도 있다는 걱정도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12월 4~5일에 공개된 여론조사들에서 국정수행 지지도가 떨어지고 부정적 평가가 늘었다.(한국 갤럽 조사에선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질렀다. 새누리당이 말을 아끼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추문에 정치 공세를 펼치지만, 그다지 시원치 않다. 기껏해야 세칭 ‘문고리 3인방’이라는 비서진을 ‘기밀 누설’로 고발하고, 전(前) 강원도지사 김진선이 정윤회의 횡포에 당한 피해자라고 부각하는 정도다. 김진선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주도하며 대중의 원성과 분노를 산 인물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부패 인사 문제로 여러 차례 곤경에 처한 바 있다. 또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항의 운동, 철도노조 파업, 세월호 참사 등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광범한 분노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근혜의 119 구실을 한 것은 새정치연합이었다.(노동운동 내 온건 개혁주의 지도부의 구실도 무시할 순 없다.)




박근혜의 아킬레스건 하나가 드러나다



사실로 확인된 것만 모아 보면, 박지만과 정윤회의 권력 다툼은 분명한 듯하다. 정윤회 측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로 보인다.


박지만 편에서 정윤회를 공격하는 보고서를 청와대 상부에 올린 뒤, 보고서 작성팀은 물론이고 박지만의 고교ㆍ육사 동기인 기무사령관과 국가정보원의 박지만 라인 간부들도 밀려났다.


게다가 정윤회의 비리 의혹을 조사한 문화체육부 간부들을 박근혜가 직접 좌천시키도록 지시했다. 정윤회의 전 부인도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박근혜와 유착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처럼 선출직도, 절차를 거친 임명직도 아닌 인물이 정권 내부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형 부패다. 권력을 독점해 비밀스런 소수 측근에 의존하는 (틀림없이 박정희에게서 배운)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이 큰 원인이다.


사실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은 더 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탄생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서 지배자들은 권위주의적 스타일의 강성 우익 정부를 선택한 것이다.


각별히 우익적이고 부패한 인사들이 이 정권에서 많이 등용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따라서 자극적인 보도를 좋아하는 기성 언론이 ‘기춘대원군’이니 ‘십상시’니 하며 실세가 누구인지 다루는 것이 노동운동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현상만 보고 진정한 분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 두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패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등장의 맥락은, 민주화 이전 구체제와 더 밀접하게 연관된 인사들이 중용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최고 통치자인 박근혜에게 충성하는 측근으로서 부패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통치 집단이 워낙 부패에 젖어 있는 자들이니 자신들끼리도 기득권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갈수록 치열하게 경쟁했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지속돼 왔고,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정권의 불안정 요인들은 여전하다. 


따라서 이번 추문을 덮는 데 성공해도 이런 일(부패와 내부 갈등, 폭로)은 반복될 것이다.


계속되는 추문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분출할 틈새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이 거세지면, 측근들끼리의 갈등이 여권 전체의 내분이나 지배계급 전반의 갈등과 경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 투쟁과 부마항쟁을 강경 진압했지만 결국 그런 저항의 분출이 계기가 돼 내분을 겪다가 무너졌다.


적들은 파상 공세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강력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고통전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강성 우익적 성격상 지금 정도의 타격으로 고통전가 공세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그에 따라 한국 경제도 위기에 빠져 들어가는 조짐이 완연하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노동자 계급 공격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지배계급을 뭉치게 하려고 그들 ‘공동의 적’(노동자 계급)을 향한 공세에 더욱 매달릴 것이다.


따라서 정권의 내분 때문에 공무원연금 연내 개악 등이 물 건너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저항 태세를 늦추는 것은 큰 실수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새정치연합의 협조를 얻어 의료ㆍ교육 등의 민영화를 강화할 서비스산업발전법 개악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결국 정권이 약점을 보일 때, 조직 노동운동이 저항의 태세를 굳건히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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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철도노조 파업에 대처하면서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것은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깨뜨린 것을 연상시키려는 노림수였다. 이것이야말로 우익 지배자들이 박근혜에게 바라던 모습일 테니 말이다. 


박근혜 본인도 ‘원칙의 리더십은 물론 이공계 출신인 것까지 닮았다’고 흰소리를 하며 대처 리더십을 자신의 롤모델로 언급해 왔다. 


실제로 두 정부는 닮은 게 많다. 둘 다 신자유주의 강성 우파 정권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에게 “방패보다는 칼” 구실을 바라는 우익 지배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둘 다 기업 규제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려 한다. 이를 위해 ‘법과 질서’와 냉전주의를 앞세워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노동운동에 적대적이고 “법과 질서”로 위협하는 것도 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성공한 대처 신화’를 한국에서 재연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 위기, 지정학적 환경, 계급세력균형 등을 비교 검토해서 확률적 예측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대처보다 훨씬 더 불리한 처지에 있고 운신의 폭도 좁다. 


경제 위기 효과


경제 위기는 노동운동의 분출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높아지는 실업률은 사기 저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당시 영국의 노동운동이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와 우파 집권기를 맞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1970년 집권한 영국 보수당 히스 정부와 우파 지배자들은 집권 첫 해에 ‘복지국가 유지를 통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전후 대호황이 불황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실 기업 퇴출, 민영화, 노동조합 약화, 임금 통제 등 시장주의 공세가 주요 내용이었다(‘셀스던 합의’).


그러나 부실 기업 부도를 방치했다가 오히려 연관 기업들이 동반 추락하고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1971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법 개악을 했다가 노동계급의 전반적 반격에 직면했다. 한껏 고양된 산업투쟁의 전투성에 직면해 히스 정부는 레임덕에 빠졌고, 시장주의 공세를 포기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마거릿 대처는 ‘셀스던 합의’ 포기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일한 장관이었다. 


노동자 투쟁 고양의 결과로 1974년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 정부를 기다린 것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경제 위기였다. 윌슨ㆍ캘러헌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그들은 보수당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구조조정과 임금 억제 정책을 이어받았다. 심지어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했다.


영국 노총(TUC) 지도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정부를 위해 투쟁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노동당 정부는 현장조합원 운동의 리더들을 상근간부층으로 끌어들이는 법 개정을 했다. 기층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제도 개혁으로 노총 지도부를 도운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 노조로 조직된 부문이 주도한 “불만의 겨울”(197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임금 가이드라인에 저항한 노조들의 투쟁) 투쟁으로 임금 가이드라인을 분쇄하고 임금 상승을 얻어냈다. 하지만, 노동당과 오랫동안 연계돼 왔던 전통적인 노동운동 주축 부문의 사기와 확신은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노동당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보수당의 대안(노동당)은 있었지만, ‘배신한 노동당’의 대안은 없었다. 환멸과 대안 부재가 부른 정치적 혼란 때문에 상황이 반전되기가 힘들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대처 정부는 이처럼 노동당 정부의 배신과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전반적 사기가 꺾인 후에 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 등장했다. 


광원 파업


그런데도 대처는 초기에 매우 신중해야 했다. 대처는 1980년 탄광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다 노조가 반발하자 철회했다. 아직 노조와 대결할 준비가 안 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대처는 히스 정부가 노동운동 제압에 실패한 까닭이 노동조합의 ‘특권’을 한 번에 모두 뺏는 ‘노사관계법’을 섣불리 제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처는 노동법 개악을 하면서 매우 순차적으로 접근했다. 그 초점은 피켓팅(대체인력 투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투쟁)을 금지하고 파업과 관련한 노조 간부들의 면책특권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처는 1983년 두 번째 총선에서 승리하고서야 탄광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파업에 대비해 석탄을 비축해 놓고 탄광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대처가 연대 파업과 투쟁을 어렵게 만들고 노조관료 간 부문주의를 조장하고 난 뒤 비로소 영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던 광원노조를 공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대처가 막 집권했을 때 경제 상황은 지금의 박근혜처럼 암울했다. 영국 경제는 1980~81년 세계 공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1980~83년 사이에 제조업체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 실업자는 2백만 명까지 늘어났다. 


공교롭게도 1982년부터는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실질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물론 노동자들을 쥐어짠 결과였지만, 대처는 경기 회복을 민영화와 부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노조 약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써먹을 수 있었다. 광원 파업은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노력에 해를 끼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광원노조의 파업에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처는 한때 양보를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바로 그 때 영국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버티다 못해 광원노조가 무릎을 꿇은 뒤에야, 실은 파업에 대비한 석탄 재고량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음이 알려졌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전투성 저하, 지도부의 우경화 등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대처 집권기 노동운동은 부문주의와 투쟁 회피주의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1984년 광원 파업이 1972년 파업 때와 달랐던 것은 바로 노동자 연대의 부족이었다. 자기 작업장에서 투쟁할 자신감이 없는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에 나서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점


박근혜는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대했던 방식을 흉내 내면서 노동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그에게는 대처가 가졌던 이점들이 별로 없다. 


우선, 세계경제 위기의 정도가 그때보다 심하고 따라서 한국 경제의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점차 회복되는 경제 상황을 억압적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근거로 써먹었던 대처보다 불리한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양보의 여지도 적다. 그래서 박근혜는 복지 공약을 대부분 백지화했고, 이것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것은 현실에서 '동의'에 기반한 통치전략(일부에 대한 경제적(부분적) 양보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한 지배전략)이 약화된다는 뜻이고 이는 저항이 거셀 경우 1970년대 초반 영국 보수당 정부처럼 지배계급이 내분을 겪을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박근혜의 유신스타일 통치가 지배계급 내부 단속까지도 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런 통치전략이 강화할수록 실패의 위험성(판돈)도 커진다는 뜻이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제국주의 간 경쟁과 지정학적 불안정성도 박근혜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경제 위기는 국가 간 경쟁도 날카롭게 만든다. 특히 경제 위기가 불균등하게 전개되면서 국제 제국주의 질서의 세력균형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최근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경쟁이 급속도로 날카로워진 배경이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해에 집권한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함께 신냉전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대처는 박근혜와 달리 강대국의 통치자였다. 국내 정치의 필요에 맞게 냉전주의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였고, 1985년 이후 신냉전이 해빙기로 전환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혔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내 정치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과 정치ㆍ군사적 차원의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 압력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군사대국화하는 일본과의 동맹 강화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긴장 유발 요인이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대북 포퓰리즘을 활용할 여지도 크지 않다.(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정학적 쟁점들은 지배자들 내에서 분열 요인이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이 문제들에서 자신감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경제 상황과 지정학적 환경이 박근혜에게 유리하지 못한 것은 취임 전후의 계급세력 균형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대처는 노동운동의 사기저하를 이용해 구조조정, 민영화, 노조 제압, 시장 경쟁과 법질서 확립을 슬로건 삼아 선거운동을 했다. 국가복지를 삭감하며 도리어 개인의 책임성을 요구했다.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처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고조되는 불만을 의식해 어울리지도 않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지키지 못할 (그리고 못한) 약속은 정권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또, 철도 파업 내내 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전투에서 박근혜는 불리한 처지다.


박근혜 정부의 맞은편에서는 1980년대 영국보다 더 전투적이고 투지가 살아나고 있는 조직 노동운동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봄의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 투쟁부터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까지,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주된 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박근혜는 유신 스타일의 공안통치 방식을 쓰려 하지만 그것이 노동운동에 크게 먹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파업 동안 연대는 점차 확산됐다. 


조직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상황에서는 경제 공황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대처 때와 같은 사기 저하보다는 오히려 격렬한 계급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는 경제 위기 등의 다급함 때문에 노동운동을 동시에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도박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개혁주의


그러므로 대처 당시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산업 현장의 전투성이 가라앉은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일면적으로, 배신적 개혁주의 지도자만 문제고, 그들만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불리한 세력관계를 자초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자기 패배적 정책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직시하자는 것이다. 


대처는 1979년부터 치러진 세 번의 총선에서 내리 이겼는데, 매번 노동당의 득표 감소 덕을 봤다. 대처는 노동당에 져서 정권을 빼앗겼던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얻은 것보다도 더 적은 득표율로 연이어 집권했다. “승리의 문턱에서 오히려 패배를 자초하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놀라운 기술” 덕분이었다.


대처와 보수당이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1983년 총선을 위한 보수적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연결시켰을 때,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이 전쟁을 지지하고 대처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그것은 우익을 강화시켰고,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주는 행위였다.


1984년 당시 노동당 대표 닐 키녹은 광원 파업 때문에 노조를 비난했다. 영국 노총 지도부는 광원 파업 연대 건설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보수당의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다. 영국 노총이 1986년에 내놓은 문서 《일하는 사람들: 새로운 권리, 새로운 책임》은 이제 노동운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지식인들도 이런 우경적 후퇴에 가담했는데, 공산당 소속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는 더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전략이 불가능하니 화이트칼라 중간계급과 동맹을 맺고 온건한 의회주의 전략에 충실해야 한다는 “현대화”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현대화”론은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전략의 1980년대 판이었다.


닐 키녹과 홉스봄 등은 노동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를 [노동당이 상징한다고들 여긴] ‘계급정치’의 후퇴로 봤다. 그리고 그 후퇴의 책임이 자신들의 배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보수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반적 사기저하 탓에 이런 책임전가식 담론이 용인됐고, ‘정치’가 대중투쟁의 대용품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때의 ‘정치’는 산업현장의 투쟁과 유기적으로 결부된 정치가 아니라 제도권의 의회ㆍ개혁주의 ‘정치’였을 뿐이다.


지금 세력관계상 한국의 노동운동 안에서 개혁주의자들이 1980년대 영국처럼 노골적으로 준동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의원단은 ‘불법’ 파업을 옹호했고, 비록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 계획을 내놓았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좌파의 과제


따라서 한국의 좌파들은 대처 당시 영국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의 우익적 공세를 과장하는 견해를 단념해야 한다. 흔히 그런 견해는 계급투쟁을 약화시킬 계급 타협(인민전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결코 불리하지 않은 세력관계를 이용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는 일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전투성과 세력관계야말로 급진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고, 우파 정부를 패퇴시킬 진정한 힘이다. 물론 개혁주의자들도 기층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초좌파적으로 그들을 대하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 공동전선적 방식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고무해 세력관계를 노동계급 편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보다 법안 제출이나 당내 지도권 다툼 방식의 ‘정치’투쟁만으로도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봤던 노동당 좌파들의 경험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 중 토니 벤이 이끄는 ‘벤 좌파’는 1979년 총선에서 정권을 잃은 후 그 반작용으로 당내 선거에서 약진했다. 그러나 도취감에서 깨기도 전에 이들은 순식간에 세력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아서 좌파의 의제를 추진할 실제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983년에는 노동당 내 극좌파였던 ‘밀리턴트’ 경향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당에서 쫓겨났다. 이들이 주도하던 지구당은 폐쇄됐다. 런던시의회의 다수파를 장악한 “붉은 켄” 켄 리빙스턴 파도 계급투쟁과 유리된 정치투쟁의 한계를 보여 줬다. 광원 파업 패배로 세력관계가 기운 뒤인 1986년 대처는 광역시 정부 자체를 없애버렸다.(사라진 런던시의회는 2000년에야 부활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매우 우익적인 정부로서 공안통치 스타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조직 노동운동을 표적 삼는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그리 강력하지는 않다. 이에 맞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지금 분위기는 1980년대 영국 노동운동보다 더 강하고 전투적이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일러 준다. 아울러 당분간 팽팽한 세력관계 때문에 이번 철도 파업처럼 투쟁들의 결과가 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요구의 외형적 성취 여부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반의 의식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혁명적 좌파는 노동계급이 사기와 전투성을 회복하고 있는 이때를 노동운동에 뿌리 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의 경험에서 배우면서, 투쟁을 고무하고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와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에 맞설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 중심성’을 후퇴시키자는 주장은 대안 부재 상황에 스스로 자리잡는 것일 뿐이다.



※ 이 글은 <레프트21> 119호에 약간 축약해 실렸다. ☞ <레프트21>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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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왜 투표시간 연장에 결사반대하는가(11.1)



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대세론에 금이 간 뒤 좌충우돌하던 박근혜가 이제 우파 결집으로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NLL” 문제로 하루에도 서너 개씩 논평을 내며 야권을 “종북”으로 몰아붙였다. 


민주통합당 김광진이 백선엽을 ‘민족 반역자’라고 한 것도 문제 삼았다. 만주에서 항일투쟁부대를 때려 잡는 일본 군인이었던 자를 옹호하며 자신의 뿌리를 드러낸 것이다. 급기야 낡아 빠진 우익인 선진통일당과 합당하면서 ‘1백 퍼센트 국민대통합’은 ‘1백 퍼센트 보수대통합’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발맞추려는 건지 ‘레임덕’ 이명박도 5년을 끌어 온 영리병원 도입 조처를 강행 처리했다. 내곡동 특검으로 드러난 사실만이 아니라 지난 5년간 저지른 온갖 범죄적 행태와 악행 때문에 당장 구속수사 받아도 모자란 자가 죄목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박근혜는 유신 관련 과거사에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서는, 바로 부산에 가서는 말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는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본질 규정에 계속 과거사 문제가 달라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동안 박근혜는 우파 결집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하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그런데 투표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 확장성의 한계”를 절감하는 듯하다. 


<내일신문>의 10월 초 설문조사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후보’ 1위로 박근혜를 지목했다. 지역에서는 수도권, 세대에서는 30~40대, 심지어 중도층에서도 박근혜 거부 응답은 상대 후보들보다 두세 배나 높았다.


그래서 박근혜는 집토끼라도 단단히 단속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한 듯하다. 박근혜 반대층의 투표율이 낮거나 분열하면 견고한 우파 지지층 결집으로도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에서도 이런 책략이 민주당의 무능 속에서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박근혜가 ‘투표 시간 연장’에 그토록 결사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의 후계자로선 국민투표 자체가 “낭비”로 여겨지기도 할 터다. 


진흙탕


NLL에 이어서 우파는 ‘성장’ 프레임도 꺼내들고 있다. ‘무상복지’를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구호로 물타기 해 놓은 것도 성에 차지 않던 우파들이 이제 ‘안보’와 ‘성장’ 프레임으로 이데올로기 지형을 더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인적으로도 김종인이 토사종팽 당하고 재벌 브레인 출신인 이한구와 김광두가 확고한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박근혜는 31일 한 강연회에서 “무상복지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옳지 않으며 경제민주화와 성장,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며 달라진 강조점을 선보였다.


그러나 성장을 강조하면서 새누리당이 막상 내놓은 경기부양 방안에는 복지 예산이 절반이나 된다. 혼돈 그 자체인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평소 ‘우파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선진당과의 통합도 결국 반발과 이탈이 심해 겨우 철새 이인제 하나 건진 것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처럼 박근혜와 집권당은 우파 본색으로 돌진하면서도 혼란돼 있다. 이는 이들의 모순된 처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는 집권당 위기를 벗어나려는 우파 결집에는 적격자였지만, 애초 문제의 뿌리인 우파 정부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는 데는 적격이 아니다.


한편, 올해 3분기 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10월 들어 포스코가 본격 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현대중공업이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도 집권 우파가 ‘안보’(종북)와 ‘성장’(복지 거부) 프레임을 꺼내들고 문재인과 안철수를 단도리하려는 까닭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역시 문제다. 이 둘이 우파 프레임에 타협하고 굴복하면서 박근혜가 모순과 위기 속에서도 살아날 기회를 계속 주고 있다. 


사실 박근혜가 말한 ‘경제민주화와 성장의 투트랙’은 안철수가 먼저 내놓은 ‘두바퀴 경제’와 흡사하다. 문재인은 “NLL에 대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안보능력” 운운하며 우파 공세에 장단을 맞췄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투쟁들을 엮어서 독립적으로 진정한 진보 의제를 부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레프트21>92호(11.5)에 실린 기사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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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이 이미 시작된 이명박에게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여러모로 중요했다.

최근 유로존 위기의 재발과 중국 경제의 정체 상황은 2008년 위기 이후 수출 중심의 성장 우선 정책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해 왔던 한국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치솟는 물가와 9백조 원에 이른 가계부채도 뇌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한 해 대중의 복지 확대 요구는 커져 왔다. 바로 이 때문에 이런 요구를 거스르려던 서울시장 오세훈(과 나경원 등)이 하루아침에 정치무대에서 퇴출된 것이다. 한진중공업에서 거의 관철시켰던 정리해고를 ‘희망버스’ 운동으로 다시 되돌린 것도 기업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의 이중고에 빠진 지배계급에게는 반격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조직 노동자운동을 전면 공격하는 것은 절박성이 아직은 크지 않고, 지배계급의 자신감도 높지 않아 쉽지 않은옵션이었다. 외부(미국 중심의 자유시장 세계화=강대국의 정치적 압력과 다국적기업들의 공세)의 힘을 빌어 신자유주의 재편을 완수하려는 한미FTA 비준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려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래서 전경련은 반대 시위와 여론 때문에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자, 1117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부진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내수위축 등으로 내년도 우리 경제가 3퍼센트 중반의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해 국회가 조속히 비준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이미 레임덕 위기에 빠진 이명박은 무리수를 둬서라도 한미FTA를 관철하면 훼손된 지배계급의 신임을 얻어 정치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임기 내내 야당 행세를 하던 박근혜도 계급 기반상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우파는 결집시키고, 한미FTA 원조 추진세력과 섞여 있는 반MB 야권은 분열시키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다. 감히 말이다. 

그래서 날치기 후 거리에서 FTA 비준 무효 투쟁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겁을 잔뜩 먹었으면서도 “옳은 일은 반대가 있어도 해야 한다”고 헛된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신뢰와 정당성을 잃은 레임덕 정부의 도박이 오히려 패가망신을 불렀다는 걸 깨닫는 데는 보름 남짓이면 충분했다. 거리의 저항은 더 확대됐고, 레임덕 위기는 도리어 심화됐다.

단결을 기대했던 집권당은 오히려 해체 위기로 몰렸고, 권력기관은 제멋대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으며, 민주당은 운동의 구심력 때문에 아직도 등원을 못해 국회마저 마비됐다.

한나라당 홍준표는 “부자 증세”와 “복지 예산 확대” 등의 사탕발림으로 불만을 무마하고 민주당에게 등원 압력을 넣었으나 먹히지 않았고 그나마 박근혜의 어깃장으로 유야무야됐다.

무엇보다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두드러졌다. 보수적인 부장판사들마저 한미FTA가 사법주권을 팔아넘긴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항명에 나선 것이다.


정당성 위기


이런 혼란 속에서 수사권 문제로 정권에 불만을 품은 경찰은 10·26 재보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테러”의 범인이 한나라당 의원 최구식의 공모 비서라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역 먹으라고 주인을 문 것이다. 몇 가지 의혹은 숨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Ddos 사건은 한나라당에 “피니시 블로”가 됐다. 집권당이 국가기관을 “테러”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당은 “통치의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후폭풍으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공중분해됐다. 집권당이 위에서부터 해체되면서 권력기관들끼리 충돌하는 양상이 되고 있다. 



사태가 너무 커져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이제 경찰은 청와대 연루설을 감추며 개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무마하려 하지만, 유승민조차 단독범행설은 “한나라당 의원인 나로서도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설득력이 없다.
 

이제 청와대의 수사 상황 인지 여부와 연루설, 사건을 알고도 침묵한 국정원 등 의혹을 해명할 책임은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검찰이 이제까지처럼 정권을 비호해 줄까.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정권을 말이다.

무엇보다 디도스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은 레임덕의 결정적 징후다. 청와대와 검찰을 견제하려고 디도스와 벤츠 검사 등을 터뜨린 경찰이 거래용으로 남겨 놓은 몇 가지 사실들을 검찰이 역공으로 터뜨리며 정권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밝혀지고 있거나, 밝혀져야 할 핵심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사건 시각 국회의장 박희태의 전 비서와 다섯 차례나 통화했다는 사실
청와대 행정관과 실세 의원 전현직 비서들이 공모씨와 거사 전날 모였다는 점, 그리고 경찰이 이 사실을 숨겼고, 심지어 이들 간에 거액의 돈이 오간 사실도 알면서 감췄다는 점, 동네 건달 출신인 일개 비서가 수백 대의 좀비PC를 동원할 자금을 어디서 마련했느냐 등 이 사건은 의혹투성이다게다가 공모 씨가 고향 진주에서 친구들에게 ‘내가 한 게 아닌데 덮어쓰게 생겼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또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아니라 투표소 검색 기능만 불통됐는데 공교롭게도 선관위는 바로 두 달 전에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투표소를 충분한 예고없이 교체했다. 특히 서대문구금천구 등 한나라당 득표율이 낮은 지역은 강남과 달리 거의 절반 가까이 교체했다이 때문에 선관위 내부 공모 의혹까지 있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의 선거 전략이 젊은 층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더러운 전략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사건 주범이라는 공모씨는 당시 나경원 선본의 홍보를 맡고 있던 의원 최구식의 비서였다.

 
아니나다를까
 이명박의 정적을 겨누던 검찰의 칼끝이 이제 이명박의 측근들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1210일 “상왕” 이상득의 측근 보좌관 박배수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 돈의 ‘돈세탁’에 이상득 보좌관 5명이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이상득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검찰조사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12일에는 이명박 사촌처남인 KT&G 복지재단 이사장 김재홍에게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명박은 이제 검찰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결과도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발작적 경련을 일으키던 말기 환자가 이제 전신마비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애초 박근혜는 홍준표 체제를 총선까지 끌고 가며 자기 손에 피묻히지 않고 홍준표가 대신 쇄신 명목의 공천 물갈이를 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친박계 리더 유승민이 박근혜와 상의도 없이 최고위원을 사퇴하며 결국 지도부가 붕괴해 버렸다. 박근혜의 전면 등장을 촉구한 것이다. 박근혜는 사퇴한 유승민과 통화하며 “어휴, 일단 지켜보죠”라고 했다고 한다. 친박계도 아귀가 안 맞을 만큼 위기가 심각한 것이다.

이왕 조기 등판하게 된 처지이니 박근혜는 총선 때까지 전권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재오나 정두언, 정몽준 등은 박근혜가 비상 국면에서 총알받이 구실을 해 주길 바라고 조기 등판을 촉구한 것이어서 박근혜에게 공천권까지는 줄 생각은 없다. 총선 준비까지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박 윤상현이 “박근혜 전 대표가 일회용 반창고인가” 하고 항변한 것이다.

1212일 의원총회에서 박근혜에게 비대위 전권을 주되, 비대위 운영 시기는 추후 논의하는 식으로 결정한 것은 이런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에 불과하다.


플랜 B


누가 쇄신, 즉 공천 물갈이 대상이냐를 놓고 아귀다툼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재창당(쇄신파 등)이냐, 재창당 수준의 리모델링(박근혜)이냐의 문제로도 번질 것이다. 이런 아귀다툼은 상호 폭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한나라당의 분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패한 우익 독재자인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박근혜가 한나라당 쇄신의 구세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본질을 보여 준다. 아무리 씻고 닦고 분칠을 해도 한나라당의 뿌리와 기반은 1퍼센트의 부패한 친미·우파 특권층인 것이다.

박근혜의 실체는 <부산일보>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부산일보> 사주 정수장학회는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설립한 것이다. 박근혜는 강탈한 공익재단을 개인 소유처럼 운영해 왔을 뿐아니라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재단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평균 2억여 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아왔다. 지금 정수장학회는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 요구를 짓밟으며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바로 이런 본질 때문에 박근혜는 부패한 우익 이미지를 없애려고 그 동안 중도층에 구애를 하며 두 마리 토끼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반MB 정서 확대와 정치 양극화 추세 속에서 산토끼인 중도 성향 대중은 뜻대로 잡히지 않는 대신 집토끼 우파들의 반발은 커져 왔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접수한 박근혜는 말은 중도적으로 하고, 행동은 우파적으로 하는 모순된 행보를 하게될 것이다. 여당 내 야당 행세를 해왔지만, 박근혜는 한미FTA 날치기에 협조했고, 최근 이명박이 다주택 보유자 양도세를 감면하고서울 강남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한 부자 특혜 조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변검’형 쇄신이 분노한 대중을 되돌릴 순 없다. 기존 박근혜의 두 마리 토끼 전략의 한계는 이미 10·26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그때 이미 한나라당의 대주주는 박근혜였고, 박근혜의 나경원 지지도 한나라당의 몰락을 막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기본적으로 계급 기반이 같기 때문에 그 차별화라는 게 이명박의 권력형 비리를 폭로해 쫓아내는 방식의 내부 권력투쟁일 것이다. 이것은 현 집권세력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불신을 더 높여 진보적 대중의 사기를 높여 오히려 박근혜식 포장이 더 먹히지 않는 조건을 만들 것이다. 

MB·반한나라당 정서의 본질은 반보수·반특권층 정서기 때문에 그렇다. 고로, 박근혜의 반MB는 오도가도 못 하빠져 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용태는 “지금 민심은 우리가 어떻게 바뀌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없어지라고 한다”고 탄식했는데, 사태를 정확히 본 탄식이다.

이런 한나라당에게조차 버림받는 이명박은 쓸 사람이 없어 또다시 ‘고소영’ 출신으로 청와대를 채웠다. 대신 임태희, 유인촌 등 기존 청와대 MB맨들이 총선에 나가겠다며 청와대를 나왔다. 이런 “구정물이 흘러들 판”을 ‘물갈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정치적 무기력 상태에서 발작적인 탄압과 포퓰리즘 언사를 조울증 환자처럼 왔다갔다할 것이다.

한편, 이익공유제를 논의하려 했던 1213일 정부 동반성장위원회 회의에 전경련이 불참했는데, 이는 재벌들이 속된 말로 개무시를 한 것인데, 이제 이명박과 더는 파트너십을 유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자당 최고위원들조차 “한나라당 해체 운동을 벌이겠다”며 떠나는 판국에 기업주들이 뭐가 아쉬워 다 죽어가는 집권당에 매달리겠는가. 지배계급은 이제 자신들의 “플랜
B” 정당인 민주당을 통해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며 상황을 단속하려 할 수 있다.

민주당이 한미FTA 반대 운동과 국회 등원 사이에서 양다리 전략을 펼치는 것은 지배계급의 “플랜 B” 정당으로서 대중의 불만을 달래 체제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한나라당의 해체 위기를 민주당 의존이 아니라 독자적인 투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위기에서 민주당이 좀처럼 반사이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아직 진보진영에게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집권당의 분열과 상호 폭로전, 그리고 권력기관 통제력 상실은 사람들에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진보진영은 한미FTA 저지 등 강력한 정치투쟁을 건설하며 진정성을 입증받아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인물과 세력이 지금의 기회를 가로채 수혜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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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재창당 역사를 돌아본다도 읽어보세요.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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