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대란의 책임은 

진보 교육감이 아니라 박근혜에 있다



<노동자 연대> 166호 | 발행 2016-01-27 | 입력 2016-01-27


박근혜는 1월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정부가 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지급을 거부해 일어난 파동에 대해서도 예의 그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박근혜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포함한 2016년도 교육교부금 41조 원을 시·도교육청에 전액 지원했다. 시·도교육청이 받을 돈은 다 받고 써야 할 돈은 안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근혜가 말한 지방교육교부금 41조 원은 교육교부금법이 정한 비율(내국세의 20.27퍼센트)에 따라 자동으로 설정된 액수다. 문제는 이 비율이 박근혜가 무상보육을 공약한 2012년 이전에 정해진 비율이라는 것이다.


만 5세까지 무상보육은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의 ‘공약’이었다. 보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은 출산율을 제고하겠다며 이명박 때 (박근혜의 동의 하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면서 그에 따라 더 지급해야 할 예산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바로 중앙정부, 즉 박근혜 정부다. ‘배신의 정치’로 심판 받아야 할 장본인은 정작 박근혜 자신인 것이다.(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유체이탈 화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최근의 정치적 갈등을 박근혜와 대화로 풀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장담컨대 반년도 못 가 홧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보육 대란과 임금 체불


사실 (지방재정법 시행령까지 고쳐 가며 무상보육 책임을 지방정부와 교육청에게 떠넘기려는) 박근혜의 요구대로 하려면, 각 시·도교육청이 다른 교육·복지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형 급식 뺏어서 동생 보육비 주라는 말이냐’라는 항변이 나온 이유다. 대부분의 진보 교육감들이 중앙정부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며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거부해 온 이유다.


지난해에도 같은 사달이 났지만 당시 각 교육청들이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 예산을 편성했다. 당장 보육 대란을 두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마저 이런 식이면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굳어질 수 있어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지자체(교육청)들이 예산을 배정하지 말고 정부 지원을 받아 낼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애초 교육청 소관인 유치원 무상보육 예산까지 막히고 있다. 지방의회들이 형평성을 이유로 유치원 예산도 승인을 (새누리당이 다수인 곳에서는 보복성으로, 야당이 다수인 곳에서는 압박용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죄 없는 보육교사들의 1월치 임금이 대량 체불될 상황이 됐다. 박근혜의 몽니 탓에 교사와 학부모(대다수는 노동계급인) 모두 고통을 겪는 것이다.(아마 일부 지역들은 편법으로 1, 2월치 예산을 지급할 듯하다.)



교육 개혁


사실 이날 박근혜의 관련 발언은 앞뒤도 맞지 않았다. “[누리과정을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한]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는 3천억 원의 예비비를 우선 배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쓰라고 준 돈을 썼다고 상을 준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물론 ‘인센티브’를 빙자한 박근혜의 협박에는 “교육 개혁”의 의도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교육 개혁”은 수익성 논리와 기업들의 수요에 걸맞도록 교육 재편을 가속하는 것이다.


1월 20일 정부 합동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개혁”을 위해 “재정평가 인센티브 비율 상향 조정” 등으로 “지방교육 재정의 효율성과 책무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익성 논리로 재정평가가 진행되면, 예산을 먼저 더 많이 확보하려는 교육청 간 경쟁은 교육 노동자들의 임금, 학생 정원, 교육 복지 등을 삭감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면서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확대 같은 진보적 의제가 2010~12년 때처럼 선거에서 부각되지 않도록 하려는 책략도 숨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들은 물러서지 말고 정부 예산 편성을 촉구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



복지는 긴축, 기업은 부양


이런 공격은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적 긴축이라는 경제 위기 대응 기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기업주와 부자를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다.


박근혜는 긴축을 이유로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을 파기했다. 필사의 전투를 벌여 공무원연금도 삭감했다. 돈이 없다면서 부자 증세는 한사코 거부해 왔다. 기업 지원도 활발했다. 최악의 전월세 대란 속에서도 공공임대주택 공급보다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더 열을 올렸다.


최근 자체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데도 ‘퍼주기 포퓰리즘’이라며 성남시의 청년배당 같은 작은 복지마저도 비난·방해하거나, 대상 규모도 액수도 초라한 서울시의 청년 지원을 정부가 소송까지 제기한 일들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이런 신자유주의 긴축을 지방정부에게까지 강요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지난해 무상보육 예산 지급 거부로 정작 지방교육청의 빚은 더 늘었다.)


배신을 그토록 싫어하는 박근혜가 자기가 약속한 무상보육을 자기 손으로 흔드는 것이 단지 개인의 ‘혼이 비정상’이라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무상보육 ‘먹튀’에 항의하는 것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반대하는 일과 연결된다. 노동운동과 좌파는 ‘노동개혁’ 저지 투쟁을 건설하면서 박근혜의 무상보육 예산 책임 외면에도 반대해야 한다.




긴축에 반대하고,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요구하자


 

정부는 경제 위기 때문에 기업과 개인들의 소득이 줄어 정부의 세금 수입도 따라 줄기 때문에 국가 지출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압력은 그리스에서 보듯, 국제적인 자본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에는 국가지출의 필요가 오히려 더 커지므로 여전히 소득과 자산이 많은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 지출을 늘릴 수도 있는데, 박근혜는 일관되게 (부자) 증세를 거부해 왔다.


이는 박근혜가 이윤율이 낮아져서 투자 외 지출(세금, 임금 등)을 줄이려는 기업주들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의 목적도 기업들이 임금비용을 낮출 수 있게 해 주려는 데에 있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역대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법인세를 삭감해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따라서 박근혜가 지향하는 긴축 정책은 단순한 재정 아껴쓰기가 아니라 친기업적 이윤 보전 정책이다. 이 말은 국가의 지원과 지출이 모두 삭감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부는 전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부자를 위한 경기 부양과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에는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도리어 노동자에게는 증세하면서 복지를 삭감해 왔다.


그러나 경제 위기일수록 책임 전가와 소득 하락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은 심해진다. 이야말로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는 ‘안전’의 위기다.


이를 해결하려면 오히려 복지를 확대해야 하고, 그 재원은 당연히 위기를 유발한 책임이 있는 기업주들과 부자들이 져야 한다. 위기의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을 어렵게 하는 보편 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를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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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무상급식 중단 논란

밥 먹는 데 가난을 증명하라는 홍준표



<노동자 연대> 145호 | 발행 2015-03-30 | 입력 2015-03-28


최근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강성 우익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안보 위기 조짐이 다시 커지는 데다, 4·29 재·보선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당 대표 김무성은 한양대 학생 특강에서 “5·16은 혁명”이라며 찬양했고, 원내대표 유승민과 함께 사드 배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당 대표 출신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도내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는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예산 논란을 일으키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그 뒤 지역 내 반발로 올해 도 예산에는 다시 1천1백25억 원이 일단 무상급식 예산으로 반영됐었다.


그러나 3월 19일 새누리당이 다수인 경남도의회가 홍준표와 공조해 ‘경남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이미 편성된 무상급식 예산을 빼돌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빈곤 가정을 빌미 삼아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 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이간질 술책이다. 이른바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업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경쟁적으로 더 가난해 보일 서류를 수십 개 내야 한다.


무엇보다 홍준표의 도발은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고 따라서 복지 지출(특히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을 줄여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고통전가 담론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은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 약속을 거둬들이려고 한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부당하게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예산 충돌 논쟁은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지출을 한정된 교육 예산 문제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국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압력에 의해 시작된 무상급식을 무력화하는 한편,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파를 결집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홍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민의 뜻이라면 그대로 실시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래 놓고는 말을 간단히 뒤집었다. 다음 대선에서 우파들의 지지를 얻어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무상급식은 당연한 권리다 “가난하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는데, 무상급식아! 고마워.” ⓒ사진 출처 <교육희망>

홍준표는 부자에게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좌파이므로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공짜’ 밥을 주는 무상급식 정책을 좌파가 옹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었다.


이는 2010년 무상급식이 처음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우파들이 반대했던 바로 그 논리다. 당시 우파들은 이건희의 손자까지 세금으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 돈을 아껴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가정에 더 많이 복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논리를 앞세워 2011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비록 그 결과는 오세훈 본인이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별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의존성, 즉 굴종이다. 또, 선별 복지는 수혜 대상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끼리 ‘누가 더 가난하냐’를 갖고 경쟁하게 만든다.


보편 복지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측면 하나는 복지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당당하게 복지 축소에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신감을 갖기에 더 유리해진다.


홍준표 등의 궤변과 달리 보편 복지와 소득 재분배는 대립하지 않는다. 삼성 이건희와 이재용이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된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 복지를 늘리면 보편 복지와 소득재분배는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한 보편 복지 실현을 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무상급식 중단은 간접적인 임금 삭감이다



노동계급은 보편 복지 확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복지 자체가 노동계급에게는 간접적인 임금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게 자녀들의 교육비는 임금 소득에서 지출된다. 따라서 무상급식 실시는 간접적인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보편적 복지는 간접 임금, 즉 사회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무상급식 중단은 임금 소득을 하향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고 교육이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은 충분하고 균형 있는 영양을 공급해 건강한 신체(노동력)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의 일부이므로 체제가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보편적 급식은 이런 복지를 차별 없는 권리로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 위기 시대에 사장들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마당에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는 반(反)노동 정책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싸울까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려고 3월 27일 전교생이 등교를 거부하기로 했다. 경남 곳곳에서 홍준표에게 항의하는 집회와 1인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이런 저항들이 실제로 홍준표의 반동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려면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2011년 오세훈의 무상급식 반대를 막아 낸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11년은 아랍 혁명과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번진 광장 점거 운동 등으로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세력균형이 유리한 때였다. 한국에서도 반값등록금 운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에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했다.이런 배경에서 서울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보정당들이 단결해 반대 투표를 조직했다.


물론 그때보다 경제 안보 위기는 더욱 심화돼 지배자들의 반동도 더욱 거칠고 필사적일 것이다. 홍준표의 반동이 성공하면, 이미 예산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도 무상급식 후퇴가 확산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지 지역 의제로서가 아니라 전국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따라서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국가(중앙 정부)가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부자 증세를 명백히 해야 하고, 우클릭하는 새정치연합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이 성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일련의 파업들이 성공하는 것과 보편 복지의 확대와 방어를 결합시키는 것이 좌파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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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오늘(1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보편적 복지와 6·2 지방선거”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각주:1]

제가 볼 때 이 토론회를 특징짓는 주요 쟁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지금 '개발'에서 '복지'로 사회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습니다.
셋째는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잔여주의 복지와 관계 문제였습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10년 넘게 급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한국사회에서는 위기를 계기로 진보와 복지 쪽으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니다. 

고양에서 온 엔지오 활동가는 지방선거 공약 공모를 했는데, 예년과 달리 개발 공약은 없고 삶의 질과 관련된 공약이 다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자인 이상이 교수는 고양은 중산층 도시이므로 고양의 변화는 중산층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이창곤 기자는 최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 정당과 관계 없이 보편 복지를 바라는 여론이 다수였다고 밝혔습니다.(곧 기사로 나온답니다)

올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선거 이슈가 되고, 전면 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점과 그래서 민주당까지 나서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10년 가까이 위기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는 방증이라 봅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어쨌든 반갑고 힘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둘째, 재원 문제는 누구나 중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이번 선거 공약과 관련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민주당 발표자(추경민)는 아동수당을 예로 들며, 만1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짰다고 밝혔습니다. 재원 때문이죠. 아울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무상급식·무상보육을 하려면 중앙정부가 떠안아야 할 몫이 있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지방정부로선 난처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신당 발표자(장석준)는 역시 재원 문제 때문에 아동수당을 만 3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도 보장성을 올리되, 재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보험료를 함께 올리는 계획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노동당 발표자(고영국)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12세까지로 하겠다고 했지만, 대신 액수는 적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습니다. 기존 예산에서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제도 도입에 상징적 의미를 더 두자는 차원에서 연령만 과감하게 올렸다는 겁니다.

저는 민주당 쪽의 설명을 들으며, "결국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보다 당선도 되기 전에 한나라당 때문에 하기 힘들다는 알리바이부터 대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뒤이어 발제한 진보정당 정책 담당자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아쉬운 것은 민주당의 책임회피식 자세를 비판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조원희 교수 등이 복지를 주장할 진보정치세력이 그동안 제로베이스에 있었다는 듯이 주장했는데도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진보정당은 모두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누진적인 증세를 해야 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4대강 같은 토건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동수당이란 것도 애초에 없던 것이므로 뭐 두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려한 건 복지제도 요구에 접근하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복지 요구에 재원 계획을 함께 내놓는 건 당연히 중요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복지에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제시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의 재원 계획에는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논거와 요구가 포함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재분배일테니까요. 그래서 저들이 돈을 댈 여력이 있다는 것, 그 여분의 돈이 엉뚱한 데 쓰이거나 부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혀야[각주:2]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주류 집단(관료/언론/기업주 등)에게 책임(수권능력) 정당으로 인정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이리 되면, 요구를 실현할 수단으로 재원 마련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있는 재원 안에서 요구를 조정하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석준 씨가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강화를 연결하는 설명이 딱 이랬습니다[각주:3].

지금 같은 기업주와 부자들이 금고를 꽁꽁 숨겨놓으려 하고 정부도 재정적자에 민감해지는 경제 위기의 시대에 재원 먼저 걱정하게 되면 제대로 요구를 내걸 수 있을지, 요구를 내걸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앞서 살폈듯이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온 것인 만큼 진보진영은 여기서 상황을 더 급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한데[각주:4], 진보 정치세력은 더 온건해지는 쪽으로 상황에 적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인용했듯이, 한명숙, 유시민 모두 집권 시절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양반들입니다. 민주당의 정책 실행 의지를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들기 때문에 무상급식 하나만 봐도 진보정당의 독자적 구실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진보 양당은 오히려 반mb 단일화란 명분으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문제에 다들 걸려 넘어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 길로 미친듯이 달려가면서 진보의 단결을 내팽개치고, 진보신당은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두 당의 따로 놀기와 민주대연합 문제로 진보의 동력이 약화된 거죠.

이런 문제들이 복지가 화두인 선거에서 보편 복지 정책의 선두주자인 진보 양당이 거의 두각을 못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2000년 이후 이번처럼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없는 선거는 처음입니다.

한편, 발제자 중 한 분인 인하대 윤홍식 교수는 보편주의/선별주의/잔여주의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보편주의 제도지만, '65'라는 선별 조건을 부과하므로 선별적 보편주의 제도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윤 교수는 보편/선별주의는 조합이 가능하며, 보편주의의 대립물은 선별주의가 아니라 자산조사에 기초해 특정 계층에만 복지를 지급하는 잔여주의 복지라는 겁니다.

잔여주의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굶어죽지는 마라 하고 주는 시혜성 복지 (철학이자 제도)로 오히려 복지의존성(우익들이 말하는 복지병)을 더 강화합니다. 경제적 자활 능력이 생기면 복지 혜택이 사라지니까요.

여기에 '잔여주의'란 용어가 어려워 대중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이상이 교수 등의 반론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윤 교수는 선별주의 대응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대응을 잘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반인에겐 그닥 필요 없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제가 있습니다.(윤 교수가 말하려고 한 바는 신사회 위험으로 보이는데,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아 그냥 제가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들어봤습니다)

고무와 걱정과 유익한 정보를 함께 준 토론회였습니다.

※ 그밖에도 토론해 볼 만한 다양한 쟁점들이 있었는데, 이 한 편의 글에서 다 다루기는 힘들 듯합니다. 늘 그랬듯이 또 한번 미뤄야죠. 출구전략과 보편 복지를 연관짓는 시각도 흥미로웠구요, 복지국가를 사회정책+경제정책으로도 보는 시각도 사회투자론과 연결해 토론해 볼 만한 주제라고 봅니다.

  1. 주최 단체는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본문으로]
  2.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는 이런 정신을 반영한 구호였습니다. 이상이 교수가 이 구호를 진보적 잔여주의 구호라 비판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요구한 것은 부유세를 만들어, 보편주의 복지제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이 계획은 국민들이 선 보험료 인상을 결의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보험료를 올리는데 다수가 동의해도,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 인상 결의'를 무기로 결국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투쟁'을 '보험료 인상'으로 대체하려는 게 이 계획의 핵심으로 보이는데, 결국 투쟁이 필요하다면, 이 계획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4. 대중적 지지를 받는 무상급식을 민주노총 등의 투쟁 의제로 삼아 대중 캠페인을 건설할지, 아니면 무상급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급진적 요구를 제출할지 하는 논점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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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급식회사의 경영자인 순재와 보석, 이들과 결탁(?)한 교감 자옥, 그리고 이들의 가족인 평교사 현경. 이들은 무상급식에 어떤 의견일까요. 갈비를 나눠 먹기 싫어하는 해리가 무상급식을 좋아할까요. 집없는 신애와 세경에게 전교생 무상급식과 선별 무상급식 어떤 게 좋을까요.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입니다. 한나라당과 우익들은 ‘사회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그 반대편에선 사상 최대의 연대 기구라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약칭, 친환경무상급식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상급식 도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처럼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의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찬성이 79퍼센트(78.93)나 되네요. 응답자의 절반은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한다고 답했습니다. 엊그제 출범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에 2천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도 찬성한다죠. 저들의 우려대로 무상급식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요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충돌로 시작한 무상급식 논쟁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겁니다. 진보 공직자가 해야 할 좋은모범을 보인 거죠. 올 지방선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런 복지 의제가 주도할 듯합니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개별 가정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은 사상 최대인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은 부자에게 웬 무상급식이냐고도 합니다. 그렇겠죠. 부자에게 단체급식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식단을 못 준다는 뜻이니까요. 저들은 무상급식을 위해 돈도 내기 싫고, 밥상도 섞기 싫은 겁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 어쩌구,‘생명 존중 낙태 금지’ 저쩌구 하던 자들이 아이들 밥값 부담 좀 덜어주는 일에 핏대 세우며 반대하는 꼴이 우습네요. 저출산이계속되면 급식 예산 같은 건 금방 줄어들텐데, 뭐하러 애 낳으라고 선동하는지, 참.

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낳은 정치적효과를 우려합니다. 누구나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보편적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증세(와 부자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혜택이 보편적이므로 재원 부담도 국가와 사회의의무가 되니까요. 그들은 무상급식 만큼이나 무상급식 도입 후가 두려울 겁니다.

저들이 말하는 선별 급식(잔여주의 복지)은 기본소득 관련글에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시혜 대상이라는 게 떳떳하게 내세울 꺼리가 못 됩니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가난을 유지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설픈 소득 향상이 혜택을 앗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들은 경기도선관위를 앞세워 무상급식 지지 서명이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탄압에 나서는 한편, 한나라당 이름으로 선별 급식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선별 복지(잔여주의 복지)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 정책입니다.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되, 나머지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겁니다. 자본가들은 당연한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하나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거지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각주:1] 

덧붙여, 기업의 구실을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는 무상급식은 당연히 직영급식이 돼야 합니다. 지금 다수 학교가 위탁 급식입니다. 급식 회사와 계약해서 외부 민간 기업이 급식을 공급하는 거죠. 이 급식 기업들이 LG나 CJ 같은 대기업들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대기업의 노다지 시장을 위협하는 주장입니다.

위탁 급식은 기업 수익성을 위한 조치라는 점 말고도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찰 계약제는 저가 입찰을 유도하므로 급식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 급식업체에서 해당 학교에 보낸 직원들은 일단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기업이 돈을 버는 동안, 파견노동의 불안정성, 급식의 질이 모두 사실은 악화됩니다.

이런 식의 신자유주의(복지)야말로 지난 30년간 경제를 망치고 인구의 다수를 고통과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거품 호황이 사실은 개인들의 소비 부채에 의존해서 유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득은 역재분배됐는데, 복지는 비효율적 투자라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과 복지 예산이 조 단위로 삭감됐습니다.   


반면, 무상급식 찬성파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7일에 이정희·조승수 등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의무교육 대상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발의를 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부자 급식’어쩌구 하는 자들에게 급식은 교육 과정의 하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전국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드는 예산 추정치는 1년에1조 7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국회 예산처) 이명박이 4대강이나 국정 홍보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예산은 진짜 별 거아닙니다. 오세훈의 서울시 예산을 보면, 시정 홍보 예산이 급식 예산의 거의 열 배더군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는 지금 서울시 예산이면,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쉬운 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라는 것이겠죠. 고교생 때야말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플 땐데....
보편적 의무 (공)교육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무상급식도 노동계급의 문제기도 합니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 노동자는 좀더 삶의 여유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 의식을 교육받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훨씬 더 사회적 자신감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직영급식을 하게 되면, 급식 관련 직무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똑같은 비용이라도 직영이면, 위탁업체에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줄고 식자재 구입을 더 책임있게 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급식으로 노동계급 자녀들 영양 상태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정치인들도 매우 열심히 여기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무상급식 실현하겠다는데 과거를 들춰서 미안하지만, 집권당 시절에 민주노동당이창당 때부터 요구해왔는데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오히려 친환경 급식을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죠.

그런데, 지금은 김진표마저 “무상급식은 전국적 의제”라며 무상급식 찬성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시절에 무상급식에 반대했죠. 이는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당이 올해 다시 내놓은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사융사유 제한을 두자는둥 진보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5+4협상 국면에서 “가치연대를 추구하자”는 진보신당의 목소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이런 상황도 조금 작용했다고봅니다. “무상급식” 의제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이 먼저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지금 더 큰 세력이 자신의 의제로 삼으니까 역시 묻히네요.[각주:2]

민주당안의 무상급식 찬성파 중 천정배·이종걸 등과 유시민 등은 자신들의 특정한 복지 전략(논리)에 바탕한 듯합니다. [각주:3]

참여정부는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일 때, “사회투자 국가(정책)론”을 국가복지노선으로 채택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이 레임덕으로 들어간데다(한나라당이 조금의 복지 확대도 반대했죠) 주무장관인 유시민이 국민연금 삭감에만 열을 올려서 동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사회투자(국가)론" 영국의 신노동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제시한 복지정책 묶음입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비생산적 지출이 아니라 성장과 연계된 투자라고 말합니다. 복지를 투자로 보는 개념은 “결과의 평등”(고전적 복지국가) 대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출발선을 맞춰줘야 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아동·교육 복지를 매우 강조합니다.[각주:4] 영국의 블레어 정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늘어난 복지 부문이 아동급여 액수와 아동보육 예산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고용 분야에선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예산을 주로 쓰죠.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니까요. 

15일에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서천정배가 발표한 교육 분야 발표문의 제목은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최선’의 투자이다” 였습니다. 17일 학교급식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문은 민주당 쪽에서 작성한 듯 보이는데, "무상급식의 전면실현을 이뤄내는 과정은 건설토건사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대체하는 ‘사람중심의 역동적 성장전략’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장주의의 상식에 나름 부합합니다. 현실에서 제3의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복지의 조화를 이룰 거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말은 틀렸습니다. 도리어 경제 성과와 관계 없이권리로 제공돼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이런 복지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동 복지를 늘린 대신, '투자 효율성' 없는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희생됐습니다.

한편, 교육 투자가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라면, 교육은 경제의 하위 개념이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5]. 복지의 관점에선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겠지만, 이런 인적 자원 '투자'의 관점에선 학생들이 권리와 (수혜의 대가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수월성 교육과 돈 되는 학문의중시, 규율의 강조가 뒤따릅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무상급식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보편적 복지제도는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복지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줘야 할 의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되겠죠.

그래서 이런 전략에선 무상급식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를 디딤돌 삼아 국가부담 증가를 위한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다른 복지제도를 늘리라는 요구로 일관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아동·교육 복지에 특화된 사회투자국가론보다는 '확장성'이 크다고 할까요.

어떤 취지에서 도입되든 저는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무상급식 찬성파의 세력이 커진 것도 환영합니다. 비록 하이킥의 순재 가족들은 좀 힘들어 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개혁 요구라도 사람들이 뭉쳐서 행동하며 쟁취하려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지지자가 많아져야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요구로 뭉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선 요구 실현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대차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주들과 조중동,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무상급식 같은 초보적 개혁조차 극렬 반대하는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려면. 지난해 등록금 인하 논쟁시 이종걸의 협상이 보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각주:6].
저들이 버티는 건 현실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그 권력을 약화시키는 투쟁 없이는 협상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세력관계에 변동이 생겨야 저들이 버틸 힘이 줄어듭니다. 지금 출발은 좋습니다.

개혁 요구를 함께 내놓아도 이를 실현할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는 건 '지향점으로서 대안'(=이념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이 정책 대안 뿐만 아니라 이념적(거대담론) 대안 제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1. '무상급식'이 아니라 '책임급식' 등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적을 거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마케팅 차원인지, 프레임론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을 헷갈린 거라고 봅니다. 단어를 바꿔 홍보했다고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부자들과 이 정부는 단어가 아니라 내용에 반대하는 겁니다. '책임급식' 표현도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복지가 '권리'라는 생각을 더 늘리려면 이런 인기 있는 쟁점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처음부터 너무 온건한 의제를 잡은 게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복지가 완전 꽝이고 기득권 보수파가 꼴통들인 한국의 객관적 현실 탓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3. 정동영은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가 앞으로 자기가 내세울 정책브랜드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종걸·심상정이 유시민을 두고 '무상급식 반대'라고 비판했던데, 요건 좀 실수라고 봅니다. 유시민은 예산 조정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니 단계별로 실시하자고 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국정 운영 경험을 과시하려 단계별 실시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4. 민주당 이종걸이 대학 등록금 문제에 열의를 보인 것도 이와 연관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으로]
  5. 애초에 이런 의도가 사회투자국가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제 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고전적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에게 일부 복지 분야(아동과 교육처럼 어차피 자본에게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투자 유인이 있는 분야)를 자본의 재생산에 도움이 되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분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자본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려 한 '제3의 길'은 진보와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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