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제2차 민중총궐기

정부 탄압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가하다


<노동자 연대> 162호 | online 입력 2015-12-06


12월 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 등 5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참가했다.


이들은 노동 개악 중단, 교과서 국정화 철회, 공안탄압 중단, 백남기 농민 진압 책임자 처벌 및 대통령 사과 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광장에서부터 대학로까지 행진을 했다. 행진은 주말 도심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에게도 호응을 받았다.


무엇보다 노동 개악 입법 시도에 맞서 16일 파업을 결정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날 참가자의 다수였던 점은 시사적이다. 금속노조는 민중총궐기 본대회 전에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은 12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노동개악 관련 법안을 합의처리 하기로 야합한 것에 분노했다.


이밖에도 대학생, 청소년들도 꽤 규모있게 참가해 인상적인 행진을 벌였다.


바로 이틀 전까지 박근혜 정권과 경찰은 강도 높게 엄포를 가했었다. 이날 집회를 원천 불허할 것이고, 참가자 전원에게 색소 물대포를 뿌려 모두 검거하겠다고 협박했다.


복면금지법, 테러방지법 등의 도입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심지어 검찰청장 김수남은 복면금지법이 제정도 안 됐는데, 복면 시위대를 가중해서 구형하겠다는 ‘초법적’ 헛소리를 지껄이기까지 했다.(대통령께서 초월적이시니, 뭐...) 정권이 일부 우익 조계사 신도의 협조를 얻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모욕적인 위협을 가한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1차 총궐기와 파리 테러 참사 직후, 박근혜가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며 강경 탄압을 지시한 뒤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강경 공안탄압 공세를 통해 박근혜 정권은 백남기 농민을 사경에 이르게 한 살인 진압의 책임을 면피하고, 하반기 노동 개악 등 각종 악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노동자·민중 운동을 위축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이런 ‘오버’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사람들은 위기감 속에서도 큰 반감을 느꼈고 어떤 형태로든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특히 노동 개악 입법이 코 앞으로 다가와 노동자들의 분노가 더 컸던 듯하다.


게다가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를 취소해 달라는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엄포를 놓던 경찰이 체면을 구긴 통쾌한 일이 있었다.


결국 이날 집회와 행진은 박근혜 정권의 협박에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피억압 대중이 위축되지 않고 반격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날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서 “2차 민중총궐기 그리고 국민대행진이 더 큰 민중의 항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함께하겠다” 하고 약속해 큰 박수와 호응을 받았다.


이제 더는 새정치연합에 기대지 말고,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12월 16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한 노동개악 저지 파업을 실질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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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야 밀실 합의

새정치연합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뒤통수를 쳤다


<노동자 연대> 162호 | online 입력 2015-12-04


12월 2일 새벽,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의 원내대표 간 밀실 합의로 노동 개악, 테러방지법 등 각종 악법이 순식간에 통과될 상황이 됐다. 벌써 이 합의로 12월 3일에 ‘학교 앞 호텔허용법’이라던 관광진흥법과 의료영리화(민영화)의 물꼬를 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전격 통과됐다.


이 기막힌 밀실 합의로 박근혜가 취임 후 숱한 정치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거듭 넘겨 온 비밀 하나가 다시 드러났다. 바로 새정치연합의 구실이다. 12월 1일 민주노총 상급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당대표 문재인은 노동 개악 5법 반대가 당론이라고 약속했는데, 만 하루가 가기 전에 ‘노동 개악 법안 즉시 논의 시작’을 포함하는 여야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비록 환노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반발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면서 더 불투명해졌다. 이 밖에도 국정원의 반민주적 감시·수사 권력을 강화해 줄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의료와 공공서비스 민영화로 가는 길을 닦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을 도울 북한인권법 등이 여야 합의로 통과될 위험에 처했다.


새누리당은 각종 법안들과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을 연계해 새정치연합을 압박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 지역구 예산을 포함시키려 했던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이 “밀실 합의”를 번복할 수 없었던 이유다.(바뀐 국회법은 정부 예산안이 의결 시한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미 예산 수정은 양당 간 밀실 거래로 진행돼 왔다. 국회 예결위원이기도 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11월 27일에 "예산안조정등소위원회 증액심사는 정부와 거대 양당의 밀실 흥정으로 전락 ...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 거대 양당과 정부의 '잇속 챙기기' 부당거래로 변질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결국 내년 총선에 대비한 지역 개발 예산들을 늘리면서 재해 대비 예산이 2천억 원 깎이는 등 총 3조 5천억 원이 선거용 예산으로 자리바꿈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려고 노동 악법들과 테러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악법들을 “합의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해외에 계신 대통령께서 폴짝 뛰면서 기뻐할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악행에 분노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정치연합이 거기에 제동을 걸어 주길 바라기도 한다. 흡족하진 않아도, 새정치연합이 박근혜에 반대하는 표를 얻으려면 그리 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독재 정권에 항의해 온 자유주의적 야당의 후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새정치연합은 노동운동 내 온건한 일부나 온건 엔지오들과도 연계를 맺고, 심지어 민주노총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띄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당은 기본적으로 기업주들에 기반한 당이다. 물론 새누리당보다는 그 계급 내 지위와 기반이 부차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 약점 때문에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당이 주로 대변하는 계급적 이익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당이 특정 쟁점에서 일시적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과 충돌할 수는 있지만,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편들 수는 없는 이유다. 따라서 그들이 새누리당과 충돌할 때조차도 많은 경우는 지지 여론과 득표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이지 진지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한국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 대한 고통전가 공세는 지배계급의 거의 일치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커져 왔음에도 미국과의 정치·군사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안보 위기도 겪고 있다.


때문에 새정치연합은 그들의 허장성세와 달리 경제·안보 위기를 돌파하려고 박근혜가 내놓는 의제들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고 줄곧 타협해 온 것이다.


이런 요인들 탓에 새정치연합은 노동운동은 물론이고 사실상 자신들의 당원인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진보교육감들을 곤란하게 할 예산 등에도 합의해 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일시적으로 거리를 점거하는 투쟁만으로는 개악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의 이윤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파업이 필요한 이유다.


새정치연합에 기대 박근혜의 개악 공세를 막는다는 전략은 위험하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노동운동(특히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새정치연합을 믿고 노동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을 미뤄온 것은 큰 실수다. 이는 다른 악법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은 (노동운동을 달래려고) 노동 개악 법들을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고 한 것이 성과라고 포장한다. 임시국회의 시점을 명기하지 않았고, “합의 처리”라 했으므로 자신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회 절차 상 환노위 처리가 지연되면 본회의 처리가 당장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동개악 법안들이 임시국회로 밀린 것은 성과가 아니다. 의료민영화, 테러방지법 등 그동안 노동운동이 반대해 온 개악 법안들이 다음 주 안에 통과될 위험이 커졌다. 노동 개악 법안들만 남게 되면 이를 빨리 통과시키라는 기업주들과 우파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새정치연합이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긴박해진 마당에도 그런 생각을 고수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삶을 운에 맡기겠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상층 지도자들의 이런 모호함은 오히려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결심하고 나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대안과 확신 대신 불확실함과 의구심, 모호함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금이라도 계획대로 독자적 파업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좌파는 좌파답게 원칙 있게 지도부의 동요를 비판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현장에서 총파업을 건설하자고만 하는 것은 중요한 운동 내 정치 쟁점을 회피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기만 ― 지배계급의 플랜B 정당의 운명


파리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이 다시 꺼내든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같은 경우, 새정치연합이 여당이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자신들 주도로 입법 발의한 바 있다.(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국정원 기능이 강화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테러방지법을 다시 발의했을 때 서로 바뀌었다.) 지금도 원내대표 이종걸은 대안적 테러방지법을 내놓겠다는 황당한 언사를 하고 있다.


또 1997년 정리해고, 파견제 등을 도입하는 신한국당(당시 여당, 한나라당 전신)의 노동법 날치기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중파업으로 좌절됐다. 당시 제1야당이자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는 날치기는 무효라며 국회 농성 등을 벌였다. 그러나 파업과 경제공황 등의 여파로 그해 말에 극적으로 집권한 김대중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야당 시절에는 구속을 지지했던)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조 상층 지도자들을 구슬려 정리해고 등을 도입했다.


테러방지법은 당시 미국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 전략)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국내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더욱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은 한국 지배계급의 생래적 특성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경제공황 속에서 그 책임과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전가하는 것은 이윤을 보호하려는 기업주들의 당연한 대응이었다. 한국의 기업주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오히려 1987년 이후 성장해 온 노동운동에 타격을 주고 싶어 했다. 결국 노동조합의 파업권에 제약을 가하는 법률이 노무현 정부 아래서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됐다. 노무현 정부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확대를 공식화해 주는 비정규직 악법도 발의했다. 두 법은 한나라당 협조 속에 2006년에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일부는 일관되게 이를 막는 데 힘을 쓰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재등장을 막으려면 ‘민주정부’를 도와야 한다거나, 경제 위기라서 경쟁력 회복에 일조해야 한다는 개혁주의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가 1년 전에 대중파업으로 철회시킨 정리해고, 파견제 도입 등을 1년 만에 스스로 합의한 것이 그 사례다.


당시 새정치연합의 전신은 집권당으로서 자신들이 국내에서의 반발과 저항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다. 지배계급 주류의 환심을 삼으로써 자신들이 국가기구를 더 잘 통제할 수 있고 재집권도 가능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던) 선진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이미 십수 년 전에 깨달았듯이, 새정치연합이 노동계급을 위해 무언가를 일관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새정치연합이 국회 농성 등으로 ‘강력하게’ 새누리당과 우파의 폭주에 반대할 때조차도 정작 그것에 맞서거나 가끔 그것을 좌절시키는 진짜 동력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나왔다.


물론 이들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보다는 지배계급 내에서 부차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의 힘도 조금은 빌려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이들이 야당일 때는 우파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 반사이익을 실제로 얻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약진한 것이 이런 과정이었다.(비록 대중의 신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진보정당들과 꼭 내키지만은 않았던 ‘야권연대’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때조차도 그들은 2012년과 2013년에 중재를 명목으로 MBC, 철도노조 파업 중단을 유도하는 등 모순적인 구실을 했다.


결국 정리하면, 새정치연합은 기업주와 부자들에게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새누리당보다 더 안정적으로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 받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이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편을 드는 척할 때조차도 일관되지 않고 지배계급 내 우파와 기업주들의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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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정당하다

탄압을 중단하라



<노동자 연대> 162호 | 발행 2015-11-25 | 입력 2015-11-25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는 노동자·민중 10만 명이 참가했다. 기업주 살리기에 혈안이 돼 노동자·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내모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것이다.


집회에서는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고용·노동조건 후퇴를 가져올 “노동개혁” 저지, 반민주·반노동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의료 민영화 중단, 민중생존권 보장 등의 정당한 요구가 넘쳐났다.


그러나 하반기 노동개악 공세를 밀어붙이려는 박근혜 정권에게 집회 참가자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오히려 그날 냉혹하게 폭력을 휘두른 주역은 바로 경찰이었다.


경찰은 반나절짜리 집회를 막으려고 집회 며칠 전부터 계엄령 바로 아래 단계라는 갑호비상령을 발동했다. 교통 방해를 이유로 행진을 불허했으며, 전국에서 경찰 병력 2백84개 중대 2만여 명을 동원했다.


그래서 정작 서울 도심 교통을 마비시킨 것은 경찰버스 6백79대가 동원된 거대한 ‘경찰 차벽’이었다. 조준 카메라(모니터)가 달린 신형 물대포가 처음부터 차벽 위에서 시위대가 행진해 오기만 기다렸다. 경찰 차벽은 방어벽이 아니라 공격적 진압 무기였다.


참가자들을 겨눠 고압 직사로 쏘아댄 물이 이날 하루 20만 2천 리터였고, 여기에 섞은 유독물질 파바(PAVA, 물대포용 합성 캡사이신)가 6백51리터였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 경찰이 쓴 총량의 각각 24배, 3배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행진에 참가해 경찰 차벽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화학약품 물 폭탄 수십 년치를 ‘하사’ 받은 것이다. 이도 모자라 경찰은 차벽에 오르는 걸 막는다며 경찰버스마다 식용유와 실리콘을 발라 놨는데, 그 양이 모두 2백 리터가 넘었다.


경찰은 이날 시위대를 무찔러야 할 적으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결국 행진 초기부터 광화문과 종각 일대는 최루액의 흰 거품으로 넘쳐났고 많은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농민 백남기 씨가 직사 물대포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가슴 이상 가격 금지라는 경찰 규정을 경찰이 위반한 것이다.)


이 물대포를 쏜 경찰은 충남도경 소속으로 밝혀졌는데, 누가 봐도 기절해 축 늘어진 백남기 씨의 몸 위로 계속 직사 물대포를 퍼부었다. 이 ‘살인’ 물대포는 그를 구하러 달려간 시민들의 몸통마저 정확히 겨눴다. 그중 백남기 씨를 위해 몸으로 물줄기를 막던 한 명이 결국 쓰러졌다.(새누리당은 이 참가자가 쓰러지면서 가격한 것이 백남기 씨의 중태 원인이라는 사이코패스적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이날 고압 직사 ‘살인’ 물대포 발사자들은 심지어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려고 온 구급차 안에까지 물대포를 쏘고, 이런 모습들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게까지 무차별 조준 사격을 해댔다.


짐승에게도 차마 하기 힘들 끔찍한 짓들을 경찰이 민간인 시민들에게 저지른 것이다. 이 때문에 유신 독재에 저항하며 20대를 시작한 백남기 씨는 인생의 황혼에 원통하게도 유신 독재자의 딸 때문에 사경을 헤매게 됐다.


경찰청장 강신명은 파면돼야 하고, 물대포를 현장에서 운영한 자들은 살인미수(만약 불행히도 사망시에는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이것이 테러다 백남기씨가 ‘살인’ 물대포를 맞은 직후 모습 ⓒ<노동자 연대>



살인 진압 정당화를 위한 사이코패스들의 발뺌




백남기 씨 부상 현장을 영상으로 확인하고도 정권이 폭력시위 근절 운운하는 것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ISIS를 척결하듯이 불법시위를 척결해야 한다’고 했고, 공안검사 출신자들인 국무총리 황교안과 검찰총장 후보자 김수남은 ‘불법필벌’만 외치고 있다. 경찰총장 강신명은 ‘민사상 책임‘까지 운운하고 있다. 행진의 자유를 가로막힌 채 유독성 화학물질을 뒤집어쓰며 고통받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진압 비용을 대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키는 이런 대응은 정권의 살인 진압 책임을 면피하고 우익 여론을 결집시키며, 장차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계산된 발언들일 것이다.


이미 경찰은 46개 단체 대표를 소환했고, 집회 참가자 7명을 구속했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체포 전담반을 대규모로 꾸렸다.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는 아예 원천 금지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이런 권위주의적 방침은 정권 수장인 박근혜 본인이 앞장서 부추겨 온 것이다.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는 “테러단체들이 불법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억지 근거로 불법 시위 엄단과 (국정원의 국내 수사 권한을 대폭 늘리는) 테러방지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강경 대처를 지시했다.


그동안 박근혜는 툭하면 정권과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혼이 비정상”, “병 걸리셨어요?” 등 천박한 언어로 우익의 적대의식을 북돋워 왔다.(우익은 그래야 알아듣는다.)


11월 23일치 <동아일보>가 국정원이 북한과 연계된 지하조직을 적발했고 그 구성원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으며 이들과 민중총궐기의 연계를 조사중이라고 보도한 것도 시사적이다.


이뿐 아니다. 14일 살인 진압의 총책임자인 경찰청장 강신명은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수배중인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핑계로 삼아 민주노총 본부 건물을 최초로 침탈한 당사자였다.


이런 무모한 도발의 대가가 경찰청장으로 ‘영전’한 것이었으니, 강신명이 경찰청장 취임 후 강경 기조로 내달리고, 후임 서울경찰청장 구은수가 최근 민주노총을 별 망설임 없이 침탈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다. 통치술로서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의 생생한 사례다.


11월 21일 서울경찰청은 불법 폭력 행위 증거를 찾겠다며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 등 산하 노조 사무실 여덟 곳을 침탈했다. 압수수색 작업에만 경찰 6백90명이 투입됐고, 이 작업을 ‘보호’할 무장 병력만 23개 부대 1천8백40명이 동원됐다.


경찰은 14일 민중총궐기의 불법 폭력성 주도 혐의를 찾겠다고 했지만, 정작 압수수색 영장에는 지난 4월의 세월호 1주기 시위들, 5월 1일 노동절, 9·23 총파업 집회도 관련 대상으로 포함됐다. 경찰 폭력에 완강히 저항한 집회들만 골라낸 것이다.


결국 경찰은 여섯 시간을 뒤진 끝에 얼음깨기 퍼포먼스에 쓴 해머, 개인물품인 손도끼 따위를 들고가 폭력 시위 용품을 찾아냈다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했다.(물론 경찰 헬멧과 무전기 하나씩이 발견됐는데, 그것만 가지고 폭력시위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찰 폭력에 저항한 증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살인 진압의 책임을 자기들이 명명한 ‘불법 폭력 시위 전문 단체들’에 떠넘기려는 것이다.



민주노총 침탈 책임전가 모략이자 “노동개혁” 견제구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센터인 민주노총 본부와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산하 핵심 노조들을 침탈하고 협박하는 작태는 명백히 노동운동을 능멸·모욕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겨눈 이유는 민중총궐기 참가자 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기도 했거니와, 박근혜 개악 공세의 알맹이가 “노동개혁”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법안들의 국회 처리 절차가 시작된 상황에서 통과를 위해 공안 탄압도 불사하겠다는 정권의 의지를 전하는 견제구인 것이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때문에 박근혜의 탄압은 더 신경질적이 되고 있다. 최근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해체’ 운운하는 것도 한 사례다.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려 정부는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 전가해야 한다. 물론 노골적으로 특권층을 대변해 온 정부가 벌이는 고통전가가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를 받을 리 없다.


결국 ‘당근’ 부족으로 박근혜 정권은 다소 무리수가 따르는 탄압(‘채찍’)과 이데올로기적 마녀사냥(종북, 테러, 집단이기주의 등의 표상으로 대중을 서로 이간질해 희생양 삼기)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대중의 일부를 포섭해 통치의 정당성을 갖출 조건이 취약해지고 개악 공세는 정치적 불안정을 낳을 수밖에 없어서 히스테리가 심해지는 것이다.


박근혜의 노동개악, 테러방지법 시도 등이 1996년 경제 위기 조짐 속에서 악법 날치기를 시도한 김영삼 정부를 부분적으로 연상시키는 이유다. 김영삼은 정리해고 도입, 파견 허용 등 노동법 개악안과 87년 항쟁의 성과로 막힌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의 국내수사권을 되살리는 안기부법 개악안을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 집권당 단독으로 날치기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물론 지금의 국면이 그때처럼 노동운동의 분출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노동운동의 대응이 미지수인 이유는 조직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거듭 기회를 놓치며 실질적 파업 투쟁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의 국회 처리 지연 약속에 기대를 걸며 정작 중요한 파업 투쟁을 회피했다. 일부 좌파는 파업 시기를 총궐기에 즉각 연동시키기보다 국회 상황에 연동시키면서 이 문제에서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사실상 추수했다.


이런 안일한 대응 덕분에 기회를 얻은 박근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속전속결에 이어 “노동개혁” 법안, “민생”으로 포장된 의료 등 민영화 법안, 테러방지법 등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지금은 12월 5일 총궐기에 기대는 것도 늦을 수 있다. 금속노조와 제조공투본이 “강행시 끝장총파업” 식으로 투쟁을 계획한 것은 맥없이 느껴진다. 당장 실질적 파업 소명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좌파들이 좌파답게 노조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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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국회 대응”

국회 밖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1 | 발행 2015-11-14 | 입력 2015-11-14



박근혜는 11월 10일 자신의 각종 개악 정책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혼이 비정상”이라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12일, “[노동개악] 법안을 가로막는 것은 국정을 방해하는 비애국적 행위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적대 행위”라는 막말을 했다.


이는 지지율 하락 속에서도 국회의 “노동개혁” 처리 절차를 앞두고 여권과 우익의 투지를 독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매우 신경질적인 막말로 표현되는 것은 최근 경제 위기가 악화되면서 지배계급 안에서 불안감이 번지는 것과 관계 있는 듯하다.


현재 새누리당이 제출한 “노동개혁” 법안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자동 상정됐다. 이 법안들은 11월 16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거쳐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시작되는 20일 이후 안건 상정돼 다뤄질 예정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시 무기한 파업’이라는 파업 계획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국회 대응계획도 발표했다. 10월 30일에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정치민주연합 환노위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노동개혁” 반대 당론 채택과 환노위 상정 저지를 요구했다. “노동개혁” 저지를 위한 야권공조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정의당도 야권 공조의 대상이다.


박근혜가 필사적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상황에서 국회(야권 공조)를 통한 ‘정치적’ 중재 노력보다는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이 더 효과적인 반격일 것이다.


대중 파업은 “노동개혁”이 지키려고 하는 바로 그 기업주들의 이윤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국회 표결에 대비해 “국회 대응”도 필요하지만, 그런 국회 압박의 동력으로서 국회 바깥에서 효과적인 대중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국회 절차에 대응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첫째, 박근혜 정부는 국회 개악 입법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입법 절차를 우회한 개악도 추진하고 있다. 가령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취업규칙 개악 등은 아예 행정지침으로 처리하려 한다. ‘시행령 통치’ 스타일을 “노동개혁”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노동개혁”의 내용을 관철시키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미 임금피크제 등을 상당히 관철했고, 내친김에 성과차등연봉제의 연내 관철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 사측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직원 투표를 강행했다가 부결되자, 이사회 결의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런 일이 경북대 등 나머지 국립대병원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대응과 야권 공조에 우선순위를 두면 당면한 공격에 맞서는 투쟁의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있다. 이는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노동개혁”을 연내에 관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강박은 경제 위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가하는 압력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에서도 협상(야당의 중재) 자체로써 국회 일정을 지연시키거나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일관되지가 않다. 통상임금, 노동시간 단축시 임금과 노동조건 유지 등에서도 매우 의심스러운 입장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담회를 할 때 새정치연합 소속 환노위 의원들은 ‘당론은 당 지도부와 상의하겠다’, ‘상임위 상정은 못 막으니, 논의 시 민주노총과 충분히 사전 논의하겠다’ 정도로만 답했다. 그 뒤 보름이 지났지만 환노위 일정 공조 이상 더 나아진 문제는 없는 듯하다.


‘민생’


새정치연합도 새누리에 비하면 조력자 구실이지만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인데, 이를 잘 아는 박근혜와 여권은 ‘민생’을 내세워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민생’이란 말은 기업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일을 뜻하는 코드명 구실을 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8일 새정치연합은 교과서 국정화 반대 농성을 정리하며 ‘민생최우선주의’를 내세웠다.)


따라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노동개혁” 법안들을 다루기 전에 노동운동이 외부에서 강력한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과 정권의 밀어붙이기에 새정치연합이 찔끔 저항하다가 멈추고, 찔끔 버티다가 끌려가는 익숙한 모양새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


민주노총이 파업 동력보다 일부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활약에 기대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새정치연합을 매개로 새누리당의 책략에 발목 잡힐 수도 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개악을 저지하려면 민주노총이 실질적인 파업 투쟁 조직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불필요한 후퇴나 양보 없고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단호한 대중투쟁만이 박근혜의 공세에 맞서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럴 때 새정치연합도 무시 못할 압박을 느낄 것이다.


민주노총 중앙과 산별 지도부는 ‘상정시 파업’ 계획을 제출했었다. 그런데 막상 총궐기 다음주에 법안들이 상정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투쟁 지침은 “상정시”에서 “처리시”로 슬쩍 바뀌는 듯하다. 이런 상황은 주저와 망설임을 반영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국면에서 야권 공조 중시냐 대중 투쟁 중시냐는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문제다.


제약


노사정 간 사회적 논의나 새정치연합과의 공조를 우선하면, (기반상 파업을 꺼리는) 공조 상대를 의식해 파업 같은 전투적 전술을 스스로 제약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최근 <한겨레>의 민주노총 20주년 특집 기사나 정의당의 국회 내 논의(‘정치적 해법’) 중시 등이 내포한 정치적 함의가 위험한 이유다.


한편, 야권 공조 같은 원내 협상을 더 중시하는 발상에는 “노동개혁” 문제가 국회에서 법을 다루는 ‘정치’ 문제이므로 노동조합 조직들은 의회 정당들의 ‘전문적인’ 정치 협상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의 분업을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개혁주의 논리는 아래로부터의 자력 행동 방식보다는 위로부터의 협상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조율을 해 나가려는 노동조합 고위 상근간부층의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전술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의식이 발전하기가 힘들다.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설득하고 조직하려는 좌파의 구실이 매우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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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회적 합의?



9월 13일 노사정 야합을 비판하는 입장들이 모두 견결한 파업 투쟁으로 저항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표성을 갖지 못한 합의를 했다며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한다. 정의당이 대표적이다.


심상정 대표는 박근혜의 행정부 독주 스타일을 비판하면서 “노사정위에서 배제돼 온 비정규직과 청년들, 그리고 시민사회계까지 두루 포함한” 국회 내 사회적 합의기구를 제안했다. 이런 식의 국회 내 논의기구에 대한 기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서도 나온다.


파업으로 박근혜 정부의 공세를 막아 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국회 내 논의기구를 구성해 속도전에 제동을 걸어 시간을 벌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게다가 민주노총과 청년, 비정규직들이 사회적 논의기구에 포함된다면 정부와 기업주들의 갈라치기에 대응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이 박근혜식 일방적 속도전 스타일에 흠집을 내는 것일 수는 있어도, “노동개혁”에 대한 효과적 반격이 되기는 어렵다.


이미 여권은 노사정위 야합 이전 7~8월에 민주노총의 ‘국회 내 논의 기구’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그저 “노동개혁”에 노동계도 동참한다는 외피가 필요했을 뿐임을 보여 줬다.(그것이 꽤 유용한 수단이긴 했지만 말이다.)


공상

사실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공격을 대화로 막아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적 기대다.


국회 내 과반 다수당인 여권이 만일 국회 내 논의기구 구성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데 더 그럴듯한 외피가 필요해서지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런 필요를 느낄 때는 지금의 “노동개혁” 공세가 강력한 노동자 저항에 부딪힐 때일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와 여권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다.


문제는 국회 논의 기구에 기대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견결한 투쟁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국회 내 논의기구 제안에 기대를 걸게 되면, 여권 내 동향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소속인 은수미 의원조차 자기당 지도부의 여야 합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 지도자들이 아무리 말로 투쟁에 무게중심을 둔다고 해도, 둘을 병행하려고 하면, 정부와 기업주들이 협상에 임할 진정성을 증명하라고 압박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노조 지도자들이 이런 압력 속에서 좌고우면하며 주춤하는 것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진지하게 파업을 건설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투쟁과 협상 병행론’은 조합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보다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양보론이 돌파구를 열 수 있을까


9월 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겨레> 전종휘 기자는 ‘정규직의 일정한 희생 통한 감동을 줘야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분을 청년고용 지원에 쓰는 식으로 말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나 일부 노조 지도자들도 비슷한 제안을 한 바 있다.


흔히 이런 주장은 투쟁으로는 어차피 막아 낼 수 없다는 생각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양보론이 투쟁의 힘을 극대화하고 민주노총이 하반기 파업을 단호하게 건설하는 데 방해가 된다.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전선을 흐리게 만드는 데 주요한 구실을 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양보론을 노동운동이 수용하면,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동안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덕을 봤다는 우파의 분열 담론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청년 실업이 조직 노동계급의 고임금과 고용안정 탓이라며 노동계급 내 이간질에 열중하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단결하는 게 중요한 데 말이다.


한국은 OECD 내에서 국민총소득 중 기업소득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다. 노동자들이 양보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뿐 아니라 더 큰 위험에 처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해 싸움에 나서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 연대다. 그럴 때, 더 큰 지지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사기도 오를 것이다.



좌파 포퓰리즘의 약점


노동운동 안에서 양보론과 비관론이 유포되는 것에 반대해 좌파들은 투쟁의 힘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노동당은 “국회 내 사회적 기구 구성과 같은 출구전략을 짤 때가 결코 아니다”라고 옳게 강조했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변혁정치> 10호(10.1.)에서 11·14 민중총궐기 투쟁을 특집으로 다뤘다. “투쟁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저항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노동자 파업’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노동당은 피해 대중이 거리에서 연대해서 싸우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추진위도 재벌 이윤 환수 운동을 부각하면서 민중총궐기 투쟁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거리에서 민중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파업 같은 계급투쟁 방식에 토대를 두고 거리 항의가 결합될 때 진정으로 지배자들을 위협할 수 있다. 10~11월 총파업 투쟁이 현실적일 때 11·14 민중총궐기 같은 거리 투쟁도 더 힘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민주노총의 노동 개악 저지 파업 건설에 기여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 좌파들이 대체로 박근혜의 노동 공세를 ‘경제 위기 시대에 이윤 보호를 위한 자본의 총공세’로 분석하는 만큼 이윤에 타격을 주는 파업을 강조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선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층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투쟁 회피 문제에도 정치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오랜만에 들어선 좌파 집행부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비판을 삼가는 듯하다. 그러나 좌파가 침묵하고 기층의 압력이 약할수록 좌파 집행부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열망에 부응하도록 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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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연대의 정치학

노동계급 투쟁이라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55호 | 발행 2015-08-31 | 입력 2015-08-29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항의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였던 ‘희망버스’ 운동 이후 ‘사회적 연대’는 노동운동의 유력한 전략이 된 듯하다.


사회적 연대는 조직 노동계급 밖에서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듯했다. 게다가 이른바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이 (진짜 원인은 그 노조들의 소심한 지도자들 때문이지만) 노동자 연대에 소홀하거나 투쟁의 모범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는 이런 노동자 연대의 약점을 극복하는 신선한 수단처럼 보였다.


그 뒤로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 투쟁, 유성기업, 밀양 송전탑, 쌍용차 노란봉투, 스타케미컬, 부산 생탁 등 여러 곳에서 ‘사회적 연대’ 행동들이 조직돼 왔다. 사실 이런 투쟁들의 최근 원조 격은 2008년 촛불운동 참가자들의 연대를 호소한 기륭 비정규직 투쟁이었을 것이다. 이듬해 쌍용차 투쟁에도 상당히 폭넓은 사회적 연대가 있었다.


이기주의·경쟁·소외가 만연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조차 삶에 대한 환멸과 불신에 시달리고, 종종 이런 도덕적 위기가 특정한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광풍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는 투쟁에 연대하는 ‘사회적 연대’는 고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연대들은 사안에 따라 지지와 연대의 규모가 달랐고, 결과도 각각 달랐다. 당시의 객관적인 정치·경제 상황, 주관적인 조직화 정도, 노동자 연대의 폭과 강도, 전술의 적절성 등 여러 요인들이 투쟁 성패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가 노동자 연대를 대체할 것이라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결집했으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노동운동 일각의 생각에는 부족함이 있다.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올바르고 효과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이론과 경험 모든 면에서 숙고해 봐야 한다. 최근 떠오른 ‘사회적 연대의 정치학’에 깔린 개념들과 전략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으로 살펴보려는 이유다.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연대


<노동자 연대> 지난 호에 실린 사회연대전략 관련 기사도 그중 하나다.(“사회연대전략 비판: 계급 화해라는 공상적 ‘전략’은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 사회연대전략은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연대’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연대’ 개념은 본질적으로 복지국가를 위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재원)을 나눠 부담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의 함부르크 강령(2007)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강자와 약자, 젊은이와 노인, 건강한 사람과 병자, 일하는 사람과 실업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조직화된 연대”(《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한울, 2012).


스웨덴 사민당 당수를 지낸 잉그마 바르손의 설명도 같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복지 …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연대적인 기여금을 내야만 한다.”(《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논형, 2009)


스웨덴 사민당 당수를 지낸 잉그마 바르손의 설명도 같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복지 …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연대적인 기여금을 내야만 한다.”(《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논형, 2009)


사회적 가치로써 사회적 협력과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런 개념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데에 강점이 있다.


노동 연계 복지


그러나 ‘공동체’의 개인에 대한 책임은 또한 ‘공동체’에 대한 개인들의 책임을 수반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의 연대 개념·전략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으로 ‘공동체’를 위한 책임(각종 세금, 사회보험료 등)에 참여해야 한다.


개인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대신 공동체의 책임(개인의 권리)을 기대한다. 따라서 소득에 따라 공동체에 더 기여(세금)를 하는 것은 ‘미덕’이다. 또한 이를 위해 소득을 얻는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것도 모두 ‘미덕’이 된다. ‘제3의 길’을 내세웠던 주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오늘날 복지 후퇴 과정에서 실업수당의 수급 요건을 강화하는 식의 노동 연계 복지를 선호하는 이유다.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이다. (공동체 책임을 더 강조하느냐, 개인의 책임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의 좌우가 갈린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납세자가 모두 동등한 연대적 기여를 한다고 보는 사회민주주의 연대 개념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라는 점을 흐리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의 (모호한) 범위에 지배계급(의 일부)이 포함되는 한편 이민자와 이주노동자 같은 사회집단들은 배제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계급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회 현실이다. 지금 박근혜와 우파는 ‘기업 경쟁력을 위해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자’며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을 공격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본가들에게는 사업의 수익성이 (이것을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삶이든 희망이든 또는 지구 환경이든 희생시킬 수 있는) 최우선 순위라는 것이다. 결국 상호 연대적이며 안정된 삶이라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자본가들의 우선순위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계급 간 분열의 엄연한 현실을 흐린다는 것은 계급투쟁의 중요성도 기각된다는 뜻이다. 사회연대 전략가에게 계급투쟁은 공동체 내부의 상호 신뢰(화해불가능한 계급들 사이의 협력!)에 위배된다. 특히 연대적 기여를 위한 경제 활동에 방해가 된다. 전후 복지국가의 틀이 잡혀서 영국 ‘노동당 개혁주의’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1946~51년 애틀리 정부 아래서 파업 노동자에게 18번이나 군대를 투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노동계급의 계급으로서의 동일성도 흐려진다. 사회연대전략이 계급 협력(특히, 복지국가를 위한 보편적 증세)을 위해 노동계급 일부에게 사실상의 소득 삭감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원리에서 비롯한다.


불안정노동론의 사회적 연대론


한편, 불안정노동(프레카리아트)론에 바탕해 사회연대전략보다는 더 급진적인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려는 좌파도 있다. 예를 들어,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은 “없이 사는 사람, 다 모여!”를 내걸고 지금 치러지는 노동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구교현 후보는 좌파 정치가 “돈도 세력도 정치도 없이 사는 불안정 노동자를 포함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당이 “온갖국민운동본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 정치가 빈곤하고 불안정한 노동자들과 연대를 구축해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려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쟁점은 어떤 방법(전략)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다.


이 점에서 같은 노동당 리더이자, 희망버스의 주도적 조직자였던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외부’를 향해 사다리를 내릴 수 있는 용기는 사회적 연대가 어떻게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여주었다. 사회적 연대는 ‘외부세력’ 스스로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내부’를 ‘외부화’하는 과정이다. … 공장들이 실은 ‘내부’의 것이 아니라 … 언젠가는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기획하고 공유되어야 할 우리 모두의 것임을 주장해야 한다.”(좌파 재구성을 위한 연속토론회, 2013년 10월 28일, “주체의 재구성 - 한국사회에서 좌파정치의 주체는?” 발제문 중)


정진우 전 부대표의 주장에서 전략적 행위주체는 공장 외부의 사회적 연대 세력이다. 그래서 공장이 오히려 ‘외부’가 되고, 조직 노동자는 조연이며, 운동의 성공은 공장들이 ‘외부에 존재하는 자들의 것’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는 대리주의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배제된 노동


정진우 전 부대표는 또한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보다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더 강조한다.


“‘포함된 노동’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의 구분 시점은 현재다. ‘지금은’ 포함되어 있는 노동이며, ‘아직은’ 포함되지 않은 노동이 아닌 상태다. 결국 시차를 두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배제된 노동’이다. 노동을 자본의 일부로 바라본다면, 역사적으로 모든 노동은 ‘배제된 노동’이다.”(《월간 좌파》, 2015년 8월호)


이처럼 ‘배제된 노동’을 자본주의 노동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단정하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 기획자인 정진우 전 부대표에게는 좀 억울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포함된 노동’이 되려고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별로 의욕적이지 않을 위험성도 있게 된다.


‘포함된 노동’이고자 하는 욕구는 과도한 욕구로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고용보다는 임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구교현 후보의 알바노조나 이와 연계된 좌파노동자회는 기본소득제 도입과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라는 임금 요구는 대단히 강조하면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요구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언젠가는 배제된 노동이 된다는 말이 맞겠지만, 체제 전체로 보면 포함된 노동이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 언제나 중추 구실을 한다.


노동계급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고, 그 때문에 판매 후 고용된 상태에서도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긴다. 이런 착취 과정이 고용 노동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것은 노동이 자본에 의존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뒤집어서 보면, 자본은 오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잉여노동을 강제할 수 있을 때만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은 자본에 의존하지만, 자본도 노동에 의존한다.


노동이 착취의 재료이면서 착취 체제를 해체할 힘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이중성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유례없이 집중되고 협력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는 칼 마르크스의 선언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정진우 전 부대표처럼 노동이 자본에 의존하는 측면만 강조하는 것에는 큰 약점이 있다. 물론 이는 불안정노동(프레카리아트)론 자체에 내재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주의


불안정노동론과 이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론의 열쇳말은 ‘피해’, ‘배제’, ‘약자’다. 이들의 사회적 연대는 기본으로 ‘사회적 약자들(피억압 민중, 피해 대중)의 연대’다.


연대가 공통된 처지에 기반해 부분적 차이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이들의 공통점은 ‘약자이기 때문’이다. ‘없이 사는 사람들 다 모여라’는 것은 위기를 겪는 야만적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문제는 약자들이 모이는 것이 어떻게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동계급을 여러 피억압 계급들의 단순한 일부분으로 취급하는 민중주의(좌파적 포퓰리즘) 정치는 이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내놓기 힘들다.


불안정노동론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 전략이 작업장보다는 거리 시위와 광장 같은 공공시설 점거에 더 우위를 두는 것도 이런 특징과 관계 있다. 서로 동등한 ‘연대적 민중(시민)’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좌파노동자회 대표인 허영구 후보가 지난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11월 노동자대회 총파업’을 해야 한다며 내놓은 계획은 여의도 노상 점거 시위 계획이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고통을 해결하려면, 고통과 분노를 넘어서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객관적 잠재력이자 단결의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노동계급 투쟁 중심성


이런 종류의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말의 뜻은 노동계급이 아닌 피억압 대중의 해방도 결정적으로 자본주의 권력에 맞선 아래로부터 솟아나는 노동자 권력의 승리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천대받는 민중도 노동자 권력을 지지하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때 노동계급이 할 일은 다른 계급이 갖지 못한 고유한 경제적 힘(이윤 생산을 멈출 수 있는 힘)을 발휘해 민중의 보호자이자 지도자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계급(노동자 연대, 노동자 권력)이 주도하는 사회적 연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를 노동운동의 ‘전략’으로 삼으려는 정치 경향들은 이런 전략과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회적 연대’는 일부 지배자들(가령 독점자본, 수구우익 등)의 압제에 맞서 사회의 나머지 모든 계급이(사회적) 뭉치는(연대) 것이다. 불안정노동론의 경우, 재벌에 맞선 알바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단결을 추구한다.


이런 포퓰리즘(좌파적일지라도) 전략을 따른다면, 노동계급이 고유한 방식(파업)을 사용해 싸우는 것을 주저하게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같은 중간계급 동맹세력들을 소원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선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계급투쟁적 전략이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이 사회적 연대에 의존하는 것을 무시하고 힘 있는 대공장 중심주의에 머문다는 것은 참말이 아니다. 사실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곳들을 자세히 돌아보면, 그 작업장 내부의 노동자 연대가 봉착한 어려움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는 노동자 연대의 보완물이 돼야지, 그 대체물로 봐서는 곤란하다.


힘 있는 조직 노동계급의 투쟁이 활발해져, 더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도 뭉쳐서 싸우면 우리도 더 좋은 조건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그래서 기업주들이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되겠다고 움츠러드는 것이, 열악한 조건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고무된 노동계급 내에서 연대투쟁과 계급의식도 발전할 것이다.


잠재적으로 조직 노동계급은 투쟁으로 나머지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에게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다. 이 객관적 잠재력을 공통점 삼아 단결을 추구할 수 있는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략을 채택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노동계급 중심성과 계급투쟁 전략이다.


사회적 타협주의의 압박


최근 노동운동의 일각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서 노동‘계급’의 이익 방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말고, ‘재벌 개혁’ 같은 구호로 불리한 쟁점을 슬쩍 비켜 가면서 더 넓은 사회적 연대를 추구해 보자는 생각이 유포되고 있다. 다행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계획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런 발상에는 노동계급이 계급투쟁 방식으로 고유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투쟁에 나서면 사회적으로 고립돼 패배하거나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또, 암묵적으로는 노동 개혁과 재벌 개혁을 맞바꾸는 식의 사회적 타협으로 가고자 하는 전략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진보정당들이 민주노총에 사회적 타협을 압박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더 온건한 한국노총은 우파적 압력에 굴복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해 버렸다.) 8월 21일 정의당 노동시장개혁 똑바로 특별위원장이기도 한 정진후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을 방문해 한상균 위원장에게 “올바른 노동시장개혁을 위해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이 급선무임을 강조하며 민주노총 등 노동계, 재계, 원내 3당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정의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는 국민모임의 김세균 교수도 최근 조선3사 공동 파업에 대해 노동자 양보론에 입각한 사회적 타협론을 주장했다. 회사가 수조 원 적자인데 파업해 봐야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이니, 임금 동결을 수용하고 대신 기업의 주식 출연으로 노동자기금을 형성해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식의 대타협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4개 분야 20개 과제를 혁신 과제로 공개한 진보결집더하기는 이 중 6번째 과제를 “진보진영을 모두 모은 사회연대전략회의 구성”으로 꼽았다. 앞장서서 노동자 소득 양보론에 기초한 사회연대전략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개혁을 위한 투쟁은 그 힘이 밀어붙이거나 또는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언저리에서 타협에 이른다.


그런데 개혁주의 지도자들에게는 애초부터 자본과의 협상 · 타협이 목표이므로 그들은 협상의 의지를 보여 달라는 지배자들의 압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밀어붙이는 힘이 제약받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그 압력은 협상 상대를 궁지에 몰 수도 있는 전투적 대중투쟁(특히, 파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개혁주의 지도부에게 체제 안전의 경계선을 넘지 않겠다는 다짐을 요구한다.


그럴 때마다 기층 노동자들의 투지와 요구는 뒤로 밀린다.그렇게 되면, 다음 투쟁은 더 어려워진다. 이것이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타협기구에서 매번 노동계급 측만 양보하는 결과가 나온 이유다.


사회적 타협주의는 단지 개혁 목표를 이루려는 속도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목적 · 목표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략과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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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전략 비판

계급 화해라는 공상적 ‘전략’은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



<노동자 연대> 154호 | 발행 2015-08-17 | 입력 2015-08-15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규직 임금을 삭감하고 해고를 더 쉽게 하는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려고 사악하게도 노동계급 내부 이간질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지배자들이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략에 승부수를 건 만큼, 노동운동의 전략 기조는 노동계급 공통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추구하는 것이 돼야 한다.


2006년 이후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 정당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사회연대전략에 대해 <노동자 연대>가 비판적인 이유는 바로 계급적 단결이라는 핵심 과제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노동계급 내부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가 커졌다. 정규직 노동운동이 부문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이를 방치하면 계급적 단결이 어려워진다.

②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벗어나려면, 빈곤한 사람들의 이익도 함께 대변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

③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먼저 ‘양보’해서 (즉, 세금, 각종 사회보험료, 임금 인상 자제 등으로 실질적인 임금 소득을 깎아서) 저임금 노동자들과 빈곤한 서민에게 쓰이도록 하자. 이것이 노동운동의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이고 계급 내 연대(“계급 형성”)의 길이다.

④노동자가 먼저 ‘양보’하면 국민적 명분(설득력)이 생겨서 자본을 ‘설득’(압박)하는 데 유리하다.


일단 ①과 ②의 주장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이 강제한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와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이 단결을 위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의 교활한 이간질에도 맞설 수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면, 월급이 2백만 원 미만인 노동자가 9백37만 명에 이른다. 이런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도 더 심할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통상임금 확보, 최저임금 인상 등의 투쟁에 노동운동이 연대해 함께 나서는 것이 계급 내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에게는 잘 조직된 노동운동이 박근혜의 ‘더 낮은 임금, 더 쉬운 해고’ 공격을 싸워 물리치는 것이 보호막이 될 수 있고, 또 스스로 조직화하고 투쟁에 나서는 데에도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 그중에서도 조직 노동계급이 할 일은 정부에 맞선 투쟁에서 전체 피억압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노동계급에 이로운 것이 사회 전체에도 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이다. 노동계급은 체제의 심장인 이윤에 타격을 가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이룩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 노동계급의 구실은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위한 투쟁에서 발휘하는 힘을 작업장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어야지, 자기 투쟁을 자제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상대적 고임금의 노동자가 경제 위기에도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것은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곳이 임금을 삭감·동결하면, 나머지 기업들에선 임금 인상 요구가 더 어려워진다.



비관론과 계급 내 격차의 과장


③과 ④의 주장은 조직 노동계급이 연대 투쟁을 하기보다는 ‘임금 소득’을 양보해 자본과의 타협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의 ‘연대’는 실상은 ‘소득의 나눔’이다. 이는 더 열악한 노동자와 서민뿐아니라 조직 노동계급까지도 수동화시키는 대안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이제는 계급투쟁 방식으로 노동계급 내 격차를 상향 평준화해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비관론이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투쟁에 대한 비관론 때문에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양측의) 상층 지도부가 골치만 아픈 임금 인상, 고용 보장 투쟁 대신 노사정 간 ‘정치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이 협상의 성공을 위해 임금 삭감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할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에게 양보 가능한 첫째 목록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계급 내 격차를 과장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연대전략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웠던 정용건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올 1월 <사민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연대전략을 ‘복지국가 하자는 운동’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이 관점에서는, 세금 인상 등으로 임금이 당장 깎이는 것을 감내하는 것은 전략적 양보,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연대전략은 상대적 고임금 집단의 임금 소득을 어떻게 ‘양보’하자는 것일까? 한 기업 내 격차 해소 문제라면, (바람직한가 하는 판단과 별개로) 정규직이 임금 인상을 포기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등의 ‘직접 이전’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사회적으로는 노동계급 부분 간 임금 소득의 직접 이전은 가능하지가 않다. 따라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양보는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한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료 인상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경제 주체의 세금 부담을 늘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노동계급의 세금 부담도 늘겠지만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 부담도 늘어, 복지를 위한 재원이 늘어난다는 발상이다. 국가(조세정책)를 매개로 자본과 노동이 ‘사회적 연대’를 해 복지국가를 이루자는 것이다.


결국 사회연대전략은 계급간 타협에 기초를 둔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치 전략의 다른 표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노동운동 상층이 계급투쟁을 회피해 협상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프로젝트다.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적 연대’의 약점


사실, 공동체(사회)의 복지 비용을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함께 부담하는 것을 ‘사회적 연대’로 보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연대’ 개념에 속한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의 당수를 지낸 잉그마 바르손은 이렇게 말했다.


“각자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복지 요구다. 만약에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정한 권리가 되려면, 우리는 – 연대 속에서 – 이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연대적인 기여금을 내야만 한다.”(《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논형, 2009)


복지 제공이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주장은 개인의 생계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장 원리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 논리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에게도 재정 부담이 지워져야 한다는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좌파나 현장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기업주들의 “정규직 양보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계급’을 ‘국민’과 조화시키는 방식의 사회민주주의적 ‘연대’ 개념(도덕)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공동체가 내부에서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법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독자적인 생존수단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력을 불평등한 조건에서 판매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동등한 주체 간의 노동력 매매 계약이 현실에서는 ‘갑’과 ‘을’ 사이의 종속적 계약이 되는 이유다. 이 근원적 불평등 때문에 노동력 판매 대가인 임금은 노동자들의 사실상 유일한 소득원이다.


이 덕분에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과정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정해진 노동시간 안에서 약속한 임금 몫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 자본의 이윤은 바로 이 잉여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시점에서 이윤 몫과 임금 몫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노동과 자본은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계급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처지에서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일부에 해당하는 복지 비용은 자본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임금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연대전략의 ‘(사회적)연대’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복지 비용을 사회가 부담한다면,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 안에서 어느 계급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를 더 캐물어야 한다.


바로 이 문제에서 사회연대전략의 “계급 형성론”도 모순에 부딪힌다. 계급형성론자들은 소득 연대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과 나머지 노동자들이 계급(연대)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회연대전략의 계획상) 사회적 소득 연대에 마찬가지로 동참하게 돼 있는 자본가들과는 그런 연대의식을 형성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복지국가에 대한 착각


이런 모순들을 봐도, 사회연대전략의 포퓰리즘(계급 협력)적 ‘소득 연대’ 프로젝트는 계급 형성은커녕 노동계급의 분열과 계급의식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사회연대전략이 계급을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소득 나눔을 통해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공상적 사회주의에 가깝다. 이성과 선한 의지로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해 조화를 이룬다는 발상 말이다. 이런 공상은 자본이 설득 가능하고, 국가가 중립적이고 사회 전체를 통합적으로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다는 착각과도 연결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다. 국가는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주관하는 외관을 띠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배계급의 강제적 통치 수단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설득으로 자본으로 하여금 이윤의 침식을 용인하도록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복지국가라는 사회적 타협 체제는 격렬한 계급투쟁이 상호 휴전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휴전이 휴전 협상가들의 산물이 아니듯이(전쟁에서 드러난 상호 세력관계의 결과물이다), 복지국가도 사회적 합의주의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다.


또한 복지국가라는 역사적 시스템은 노동자들의 투쟁,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호황, 냉전 제국주의 체제의 형성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등의 구체적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즉, 특정 시점에서 당대의 계급세력균형 속에서 성립 가능했던 잠정협정(modus vivendi)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의 요인들이 모두 사라지거나 변화됐다.


이런 점에서도 사회연대전략은 공상적이다. 강력한 계급투쟁 없이, 그것을 성사시킨 역사적 배경과 전혀 다른 조건에서도 당시와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바른 분석의 중요성


설사 사회연대전략가들이 투쟁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계급 간 타협을 위해 계급 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결정적 약점을 덮을 수는 없다. 계급 분열의 논리는 단호한 대중 투쟁 구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연대전략에 호의적인 대다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때 민주노총 안에서 혼란과 분열을 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에 대처하는 좌파의 약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노조 관료층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회피한다. 즉, 노사 간 협상을 전담하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이해관계가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요구와 상충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결국 ‘대공장 노조’ 지도부의 투쟁 회피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와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되고, 사회연대전략의 해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정규직 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대립시키는 듯한 일종의 도덕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도덕주의는 수동적 급진주의 그리고/또는 정치적 무기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급타협주의 세계관의 산물인 사회연대전략보다는 자본과 맞서 싸우는 데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노동자 연대를 강화시키는 전략이 노동조건 방어에도 훨씬 더 효과적이다. 노동자 연대는 다른 피억압 민중과 달리 이윤 생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그리하여 자본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 노동자 5만 명이 모두 사내하청이라 할지라도 전원이 똘똘 뭉쳐 파업한다면, 노동계급 투쟁의 파괴력이라는 점에서는 5만 명이 모두 정규직인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문제는 일부는 정규직, 일부는 사내하청, 또 일부는 촉탁직 이런 식으로 분열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계급 내 다양한 격차와 사회적 빈곤 해소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계급 내 격차를 해소할 돈이 어디서 나와야 하냐는 물음에 올바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저임금의 수혜자는 기업주이지,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이 아니라 계급투쟁 전략이 노동운동의 유일한 전략인 이유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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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밝혀진 부분적 사실들과 정황, 이 사회의 작동 원리들과 결합해 참사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법정 기구로 수사하고 그것들을 확정된 진실로 내놓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실종과 관련해 중대 재난에 대한 정부의 보고 지휘 체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은폐의 장본인이 박근혜 정부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세월호 집회 한 참가자의 팻말이 신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책임 규명은 조금이라도 참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법정 기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진실 파헤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셋째, 수사든 조사든 그 결과에 공신력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광주 학살이 전두환 신군부의 짓인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을 요구했다. 결국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과 유죄 판결로 광주항쟁은 ‘독재 정권의 민중 학살에 맞선 정당한 민중 저항’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 우파들은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실 규명 기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이 설령 애초 요구대로 통과돼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에 나서자는 주장은 일면적이다. 또한 폐기가 아니라 문구 수정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문구 수정 수준에서 타협하자는 운동 내 일각의 태도는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할 뿐이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진실 규명을 향한 장도의 첫 발



박근혜가 대통령령인 특별법 시행령(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확실히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기습이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항의 운동이 매우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4월 4~5일 도보 행진과 마무리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가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도 정부 시행령(안) 반대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지지가 50~70퍼센트를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분은 잠복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한 <노동자 연대>(136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런 전망 속에서 당시 <노동자 연대>는 불필요한 양보를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끈질기게 싸우자고 주장했었다.


지금 4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도 파업 요구안에 정부 시행령안 폐기 등 포함, 집회 적극 참가 등 세월호 참사 항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교조도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저지를 위해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가 투쟁 형태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시작한 “부패비리 발본색원” 작업은 김기춘, 허태열 등 친박 핵심 인사들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와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기 공세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박근혜는 늘 해 왔던대로 정부 시행령(안)을 쉽게 폐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편에 유리한 여론과 집회 참가 등 행동 규모 사이에 여전히 격차가 있다.


따라서 요구안 후퇴가 아니라 유리한 요소를 이용해 운동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문제가 민주노총의 파업과 연계돼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박근혜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세력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지면, 정부 시행령(안) 강행도 어렵겠지만, 설사 이를 통과시켜도 다시 개정하거나 심지어 특별법 자체를 새로 만드는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 유가족은 물론 특별조사위 이석태 위원장 등도 불복종하고 싸우겠다고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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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무상급식 중단 논란

밥 먹는 데 가난을 증명하라는 홍준표



<노동자 연대> 145호 | 발행 2015-03-30 | 입력 2015-03-28


최근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강성 우익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안보 위기 조짐이 다시 커지는 데다, 4·29 재·보선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당 대표 김무성은 한양대 학생 특강에서 “5·16은 혁명”이라며 찬양했고, 원내대표 유승민과 함께 사드 배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당 대표 출신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도내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는 지난해 10월 무상급식 예산 논란을 일으키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그 뒤 지역 내 반발로 올해 도 예산에는 다시 1천1백25억 원이 일단 무상급식 예산으로 반영됐었다.


그러나 3월 19일 새누리당이 다수인 경남도의회가 홍준표와 공조해 ‘경남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이미 편성된 무상급식 예산을 빼돌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빈곤 가정을 빌미 삼아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 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이간질 술책이다. 이른바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업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경쟁적으로 더 가난해 보일 서류를 수십 개 내야 한다.


무엇보다 홍준표의 도발은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고 따라서 복지 지출(특히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을 줄여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고통전가 담론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은 중등교육의 무상교육 확대 약속을 거둬들이려고 한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부당하게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예산 충돌 논쟁은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지출을 한정된 교육 예산 문제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국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압력에 의해 시작된 무상급식을 무력화하는 한편,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파를 결집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홍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민의 뜻이라면 그대로 실시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래 놓고는 말을 간단히 뒤집었다. 다음 대선에서 우파들의 지지를 얻어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무상급식은 당연한 권리다 “가난하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는데, 무상급식아! 고마워.” ⓒ사진 출처 <교육희망>

홍준표는 부자에게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좌파이므로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공짜’ 밥을 주는 무상급식 정책을 좌파가 옹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웃었다.


이는 2010년 무상급식이 처음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우파들이 반대했던 바로 그 논리다. 당시 우파들은 이건희의 손자까지 세금으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 돈을 아껴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가정에 더 많이 복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논리를 앞세워 2011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비록 그 결과는 오세훈 본인이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별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의존성, 즉 굴종이다. 또, 선별 복지는 수혜 대상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끼리 ‘누가 더 가난하냐’를 갖고 경쟁하게 만든다.


보편 복지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측면 하나는 복지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당당하게 복지 축소에 반대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신감을 갖기에 더 유리해진다.


홍준표 등의 궤변과 달리 보편 복지와 소득 재분배는 대립하지 않는다. 삼성 이건희와 이재용이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된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 복지를 늘리면 보편 복지와 소득재분배는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통한 보편 복지 실현을 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무상급식 중단은 간접적인 임금 삭감이다



노동계급은 보편 복지 확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복지 자체가 노동계급에게는 간접적인 임금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게 자녀들의 교육비는 임금 소득에서 지출된다. 따라서 무상급식 실시는 간접적인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보편적 복지는 간접 임금, 즉 사회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무상급식 중단은 임금 소득을 하향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고 교육이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은 충분하고 균형 있는 영양을 공급해 건강한 신체(노동력)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의 일부이므로 체제가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보편적 급식은 이런 복지를 차별 없는 권리로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 위기 시대에 사장들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마당에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는 반(反)노동 정책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싸울까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려고 3월 27일 전교생이 등교를 거부하기로 했다. 경남 곳곳에서 홍준표에게 항의하는 집회와 1인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이런 저항들이 실제로 홍준표의 반동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려면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2011년 오세훈의 무상급식 반대를 막아 낸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11년은 아랍 혁명과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번진 광장 점거 운동 등으로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세력균형이 유리한 때였다. 한국에서도 반값등록금 운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에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했다.이런 배경에서 서울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보정당들이 단결해 반대 투표를 조직했다.


물론 그때보다 경제 안보 위기는 더욱 심화돼 지배자들의 반동도 더욱 거칠고 필사적일 것이다. 홍준표의 반동이 성공하면, 이미 예산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도 무상급식 후퇴가 확산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지 지역 의제로서가 아니라 전국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따라서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국가(중앙 정부)가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부자 증세를 명백히 해야 하고, 우클릭하는 새정치연합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이 성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일련의 파업들이 성공하는 것과 보편 복지의 확대와 방어를 결합시키는 것이 좌파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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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 제약 때문에 줄였던 부분 중 일부를 되살린 버전.


박근혜 2년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와 팽팽해진 정치적 양극화




2012년 12월 박근혜가 당선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노동자와 활동가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파 재집권에 실의와 좌절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만만찮은 민심에 잘 보이려고 대선에서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흰소리를 해댔지만, 선진 노동자들은 대체로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이 중 일부는 박근헤 당선으로 사기저하되기도 했지만 팽팽하던 세력균형이 바뀐 건 아니었다.)


이런 계급적 직관이 더 통찰력 있었다는 것이 취임식 전부터 분명해졌다. 박근혜 표 ‘신뢰의 정치’는 오로지 기업주들과 우파를 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핵심 공약이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폐기됐다.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삭감했다. 당선 직후부터 대선 복지 공약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서 거두어들이라고 ‘조언’했던 조중동은 이런 조처들을 반겼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 철도 · 은행 민영화 등을 공언하고 부자들에게 활로를 터 주려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매달렸다. 그런 부담들은 은근슬쩍 노동자 증세로 때웠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며 호통치던 박근혜 2년 아래서, 부자에겐 ‘증세 없는 복지’가 제공되고 노동자 · 민중에게는 ‘늘어난 것은 세금과 빚뿐’인 현실이 됐다.


이런 고통전가 정책이 성공하려면 노동자 투쟁에도 족쇄를 씌워야 했다. 기업 규제를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한 전쟁’을 선동하던 박근혜는 노동운동에는 온갖 제약과 탄압을 선물했다.


박근혜 정부는 20년 전 민주노총 창립 이래 민주노총 본부를 경찰력으로 침탈한 첫 정부였다. 해직자에게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라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시도했다. 형법 내란 선동 · 음모죄 조항을 부활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불법 채증과 통신망 사찰을 남발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집권 3년차에는 더 본격적인 고통전가를 추진하려 한다.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일반 해고까지 그 요건을 완화하고,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확대 정책으로 임금비용을 대폭 줄이려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는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국민연금 삭감, 전반적 임금 삭감으로 이어가려는 수작이다.



경제 · 안보 위기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근이 버텼던 한국 자본주의도 곧 본격 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 왔다. 또한 경제 위기가 낳은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동북아시아에서도 강대국 간 갈등을 낳고 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한 미 · 중 사이의 줄타기 문제와 남북 갈등 심화를 놓고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 안보의 이중 위기 속에서 우익 지배자들은 단호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해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고 국가적 단속을 할 정부가 필요했다. 단순히 위기를 겪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안정적인 관리자”가 아닌 ‘공격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신 DNA의 박근혜가 딱 적임자였다.


박근혜의 당선 과정부터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선거 개입으로 얼룩진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지지 기반 때문에 집권 과정은 물론이고 정부의 인사 전반이 부패와 반민주적 인물들의 향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신헌법의 기초자 김기춘,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 등 엘리트 공안검사 출신, 군부 출신이 중용됐다. 심지어 미국 CIA에 협력했던 자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올 2월 말에는 지지율 하락을 만회한다며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현직 국정원장이자 공작정치의 대가인 이병기를 임명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 위협론으로 ‘빨갱이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아 왔다(냉전적 반공주의). 이를 통해 자유주의 세력과 의회 내 진보정치 세력들을 위축 · 순치시키고 좌파의 영향력이 확산하는 것을 축소 ·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


그러나 박근혜의 이런 우경화 본색은 자주 벽에 부딪혔다. 복지 공약 파기와 인사 파동으로 박근혜는 취임시 지지율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위선을 꿰뚫어 봤던 조직 노동자들이 정권 초기부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선 투쟁의 최선두에 서 왔고 이후 저항의 주 동력이었다.  박근혜 첫해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가장 높고 지지율 하락 폭이 가장 컸던 때도 2013년 12월 철도 파업 때였다.


(※ 조직 노동자들은 대선 직후 잠시 우울함을 맛보기도 했고 개혁주의 리더들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명확하진 않았지만 세력균형에서 밀렸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저항에 나섰다. 대선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세력균형이 노동계급에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박근혜의 대선 때 언행과 공약이 실체와 달리 포퓰리즘적이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도 박근혜 정부에 타격이 됐다. 사건 자체가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노동자 계급의 생명과 안전이 뒷순위로 밀렸음을 드러냈다. 이에 더해 박근혜가 기업과 관료를 보호하려고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에 전혀 성의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불신과 분노는 더한층 커졌다.





이런 어려움에도 박근혜는 2년 내내 통치권 강화를 위해 국가기관 전반에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도 그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노동운동 공격을 막 본격화하려는 시점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제동이 걸리는 판결이 나와 타격을 입었다.(당시 전교조 조합원들의 강경한 법외노조화 거부 태세가 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2월에는 박근혜 당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구속하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 내부에서 이 사건 수사를 놓고 한때 항명이 일어나 청와대가 검찰총장까지 날릴 정도로 사건 은폐에 애를 썼는데도 그리된 것이다.


3권 분립이 애초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를 통해 선출된 의회와 대통령 등을 견제하려고 교묘하게 고안된 부르주아 지배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3권 분립이 자본주의 우익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통치 스타일은 ‘유신’이지만 유신 체제 회귀는 아니고, 이 정부 아래서 팽팽한 세력균형 때문에라도 지배자들이 쉽게 ‘동의에 의한 지배’의 장점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노동자 연대>의 전망이 옳았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식 반동이 거듭 지연된 것 때문에 이 정부는 우익 기반 안에서도 점차 신뢰를 잃어 왔다. 이 때문에 올해 박근혜는 더더욱 전면적인 반노동 공세를 관철하려고 악착같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애초에 이런 공격을 위해 집권한 정부가 집권 3년차에야 이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상황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보여 준다.



노동자 민주주의


이렇게 봤을 때, 정치적 양극화가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 국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운동이 저항의 선두에 섰지만 손에 쥐는 성과를 얻은 것도 없다는 점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운동의 정치, 특히 노동운동 상층 리더들의 개혁주의 정치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유신 회귀 반민주 세력에 맞서 새정치민주연합, 중간계급 등과의 계급 협력적 방식으로 싸우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성장해 ‘강압’만으로는 이를 다루기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자본가 계급이 부르주아 지배 체제에 노동자 민주주의 요소를 ‘일부’ 허용한 체제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합법적 임금 인상 투쟁, 복지 확대, 정치적 표현과 결사의 자유 등.


이는 민주주의의 동력이 노동자 투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권력을 분배해주는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 노동계급과 자본가들 사이의 화해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로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권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단절하는 과정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때문에 계급을 가로질러 협력하자는 전략은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에서조차 효과적 방식이 못 된다. 자본의 이윤에 타격을 주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투쟁 방식(이자 가장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야권연대에 기대를 걸고 자기 제한적으로 싸운 경우들이 그렇다.


부르주아 야당으로서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권력 접근을 보장할 절차적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보호하는 문제 외에는 진지한 열의가 없다. 철도 파업, 연금, 세월호 참사 등에서 거듭 입증돼 왔다.


이런 분석이 노동운동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위기가 계속될 것이므로 그에 따른 안보 위기, 정치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이에 따른 지배계급의 동요와 신경질적인 탄압도 벌어질 것이다. 이는 박근혜가 가려는 길과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동시에 보여 준다. 지금 박근혜는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국면 전환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둘째, 노동운동은 계급투쟁적 전략으로 저항에 나서야 한다. 노동운동의 투쟁 태세가 확고하고 강력해 보일 때만 지배자들 안에서, 박근혜와 그 지지 기반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 노동자 민주주의이므로 정치적 요구를 내건 투쟁뿐 아니라 부문적 경제투쟁들도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두 가지 형태의 투쟁을 결합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둘 모두 이윤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자들의 투쟁이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해 내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공식정치에 선거로 대응하는 것만이 노동자 정치가 아니다. 이간질에 맞서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기, 북한 위협 등 안보를 이용해 노동자 운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노동계급 운동 안에 더 많이 뿌리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




기사 원문: <노동자 연대> 144호 | online 입력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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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청와대 이전투구

 

 

<노동자 연대> 140호 | 발행 2014-12-22 | 입력 2014-12-20  

 

 

청와대의 이전투구 양상이 가관이다.

 

최근 소동의 시작은,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 등이 박근혜의 전 비서실장 정윤회에 관해 만든 보고서가 폭로된 사건이었다.

 

선출된 적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적도 없는 정윤회 등이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을 교체하니 마니 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모의했다는 내용은 정권의 부패 실상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보고서의 배후로 지목된 박근혜의 친동생 박지만 쪽 인사들이 보고서 작성 후 정권 요직에서 줄줄이 밀려난 것이 확인됐다.

 

이때만 해도 정윤회와 박지만 사이에서 벌이는 측근 간 권력 다툼인 것으로 보였다.

 

박근혜처럼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의 정부에서는 상명하복식 권력 집중 때문에 비밀주의가 만연하고, 따라서 측근들이 월권을 하고 전횡을 휘두르는 부패상이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나서서 ‘보고서 내용은 찌라시고, 보고서가 유출된 게 국기 문란이고 진짜 문제’라고 사실상 정윤회 편을 들었다.

 

박근혜의 발언은 그대로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이 됐고, 검찰은 박근혜가 불러준 대로 수사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비호 덕분인지 정윤회는, 검찰에 불려갈 땐 국가정보원장도 통과한다는 보안검색대도 거치지 않고 위세 있게 검찰청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빨리 덮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박근혜 스스로 측근 간 스캔들 문제를 자신이 직접 연루된 권력 스캔들로 키운 꼴이 돼 버렸다. 정윤회가 ‘진돗개가 되겠다’고 한 지 5일 만에 박근혜가 해명한답시고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또한 청와대 내 통제력에 이완 조짐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박지만 부부에 대한 1백 쪽 분량의 동향 보고서도 봄에 청와대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정윤회 보고서 작성자인 박관천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에 회의감이 든다”며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보고서 유출자로 몰린 최모 경위는 청와대의 압박이 부당하다며 자살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부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무리 떨어져도 40퍼센트라던 지지율이 12월 2~3째 주에는 3곳에서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특히 전통적 여권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눈에 띈다.

 

이뿐 아니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면, 여권에서 박근혜 세력과 이명박 세력 간 분열이 발전할 수도 있다. 지금 이명박계는 혹시라도 박근혜가 위기 모면용으로 자신들을 속죄양 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대응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일단 우익 내 균열을 봉합하려고 종북 몰이로 방향을 틀었다. 헌법 ‘죄판관’들은 당초 예상보다 선고기일을 앞당겨 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경제 위기와 통치자들의 위기감


 

박근혜의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대응은, 정권의 위기감을 보여 준다.

 

최근 세계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에게 본격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를 벌여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이 정부는 11월부터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공무원연금 연내 개악 시도, 의료 민영화,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 개악 등.

 

그런데 역시 청와대의 부패와 분열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하다. 정권 내부의 추한 균열이 드러나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고통전가 드라이브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ㆍ안보 위기에 겹쳐진 정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박근혜는 더욱 더 강성 우익적 본색을 강화할 것이다. 그것이 내부 균열 봉합에도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지배계급 처지에선 고통전가의 필요성이 절박할수록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단속할 필요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본인이 정치권에 들어 온 이래로 줄곧 강성 우파의 대변자였다.

 

따라서 진보당 해산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당 통장을 압류하고 보궐선거 일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하는 따위의 야비함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본색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수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것도 드러났다.

 

 

멈추지 않을 박근혜의 도발,

단호한 투쟁과 정치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 정치 위기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고통전가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런 공세가 우익만 강화시키기보다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동안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부패 인사 문제, 복지 공약 철회, 서민 증세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통치 정당성은 약화돼 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응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최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보듯 반기업 정서도 상당하다.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 돌진하려는 박근혜에게 이런 상황은 상당한 난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조직 노동자 운동이 선두에 서서 (비록 방어적인 과정이었지만)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가 쉽게 전면화하지 못하는 방어막 구실을 해 왔기 때문이다.

 

호각지세를 이룬 세력균형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는 도리어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자극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선진 노동자들의 정서도 이런 방향인 듯하다. 예상을 뒤엎고 한상균 후보가 1위를 한 민주노총 임원선거 1차 투표 결과가 좋은 증거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이 진보당 해산 결정에 위축되지 말고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만큼 단호하게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전면적인 투쟁을 호소하는 한상균 후보에게 투표해 당선토록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노동자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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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백 일과 여야 특별법 제정

정직하지 못한 대책회의 온건파 리더들


<노동자 연대> 137호 | 발행 2014-11-10 | 입력 2014-11-08




그러나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온건파 리더들이 제정된 특별법을 성과라고 과장하는 것은 겸연쩍다. 11월 1일 세월호 참사 2백 일 범국민추모대회에서도 이런 주장이 반감을 샀다.


참사 이후, 부패와 무책임의 실상이 드러날 때마다 분노가 커져 왔다.


5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특별법 서명에 동참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충격이 얼마나 큰지, 운동의 저변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 줬다.


민영화 반대, 작업장 안전사고 등을 ‘제2의 세월호’라고 부르며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세월호 운동에 동감했다.


그러나 온건파 리더들은 특별법 투쟁을 국회에 압력 넣는 입법 청원 수준으로 제한하려 노력했다.


이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에 기대는 것으로 귀결됐다. 새정치연합 박영선이 7월 19일 집회에 나와 기소권은 이미 포기했다고 밝혔는데도 이를 비판하지 않고 묵인했다. 이런 태도가 운동의 김을 뺐다.


기회 유실


그러나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주되게 국회 내 입법 협상의 과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입법을 위한 동력이란 점에서 봐도 무기력한 정치다. 세력관계에서 우리가 밀리면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 것이 지배자들이다.


진상 규명은 노동계급과 그 자녀들을 생죽음으로 몰고 가고, 구조를 외면한 이윤 경쟁 체제의 기득권 집단과 싸우는 문제다. 이들은 치부가 드러날까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그러므로 ‘원내 협상’이 아니라 조직 노동계급의 동원에 초점을 둬야 했다. 박근혜 퇴진 같은 급진적 견해들도 반영해야 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도 기회를 놓쳤다. 아마 하루 파업도 가능했을 6~7월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휴가철을 지나자(김영오 씨의 단식으로 분위기가 올랐던 8월 중순에는 금속노조가 투쟁에 기여할 기회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참가 열기도 점차 식어 버렸다.


결국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가 미흡하지만, 이에 따른 입법화를 막기 힘들다’며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권의 마녀사냥과 박대, 9월 이후 동력 쇠퇴 속에서 지친 탓일 것이다.


특히 대책회의 온건파 리더들의 후퇴도 유가족들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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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더라도 원칙을 지켜 싸우자



<노동자 연대> 135호 | 발행 2014-10-06 | 입력 2014-10-02


9월 이후 운동이 다소 소강 국면을 보였다. 민주노총이 9월 27일 노동자대회를 취소하는 등 동원 노력을 소홀히 한 책임도 작지 않다. 특별법 제정이 쉽지 않은데다 집회 동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전망을 둘러싼 견해들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일부 NGO 지도자들은 특검 수준으로 요구를 후퇴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야 국회 내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등 주요 NGO들과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30일 발표한 ‘제안문’이 그런 것이었다. ‘탈진영론’이 새정치연합의 배신적 타협을 정당화해 주는 맥락에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국회 파행에 가족대책위의 원칙적 태도도 한몫 한다는 식의 논리로 이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 실제로 가족들이 특검 추천권으로 후퇴했지만, 돌아온 건 배신과 모욕뿐이었다. 이른바 화해(중재)파들은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일부는 공식 입장도 아닌 ‘원로’들의 ‘제안문’을 대책회의 사이트에 올리고 온라인에서 홍보했다가 항의를 받고 내렸다.


한편, 일부 급진좌파는 특별법에 갇히지 말고 ‘안전 사회’나 ‘박근혜 퇴진’ 같은 더 폭넓은 의제로 투쟁하자고 말한다.(물론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놓고 전선이 첨예하게 형성돼 있다. 이를 건너뛰어 다른 의제로 가자는 것은, 말은 좌파적이지만 실은 뜨거운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다.


이 모든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가족대책위나 운동 참가자들이 고립감이나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완강히 버티는 국가 권력을 상대로 원칙을 지키며 싸우는 일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며,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당장 어렵다 해도 원칙을 지키며 싸워야 더 많은 대중에게 그 올바름을 입증받아 운동을 성장시킬 수 있다.


특히 하반기 2대 핵심 투쟁 과제로 “세월호 참사 대응”을 꼽고, “현장 투쟁과 세월호 국면 적극 결합 기조를 실현”하겠다고 한 민주노총이 정말로 실질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



박근혜가 강경 대응을 지시한 9월 30일 아침 전남 신안군 홍도 해상에서 유람선 좌초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전원 구조됐다. 이번에도 먼저 도착해 구조를 시작한 것은 인근 어민과 유람선들이었다.

문제는 사고 선박이 27년 된 중고 선박을 수선하고 증축해 올해 5월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뒤에도 폐기 처분해야 할 낡은 배의 취항을 목포 해경이 허가해 준 것이다. 당시 홍도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반대했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세월호 운동이 해 온 경고가 옳았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이윤이라는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투쟁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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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윤 시스템에 도전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국면 전환 시도, 위기를 맞다




6ㆍ4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박근혜의 국면 전환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이 성역 없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농성을 벌인 끝에 5월 29일 밤 집권당의 양보를 받아냈다.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국가정보원 등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고, 조사 대상 기관의 장들이 조사에 나오며, 조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5월 초에도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농성으로 KBS 사장이 사과하고 보도국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믿었던 안대희 카드가 실패한 뒤 군색해진 박근혜의 처지가 드러난 것이다.(집권당의 지방선거 승리 전망도 썩 밝지 않은 듯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 정국에서 탈출하려고 박근혜는 채찍과 당근을 모두 사용해 왔다.


‘해양경찰청 해체’라는 충격 요법을 곁들인 대국민 담화 ‘눈물 쇼’도 보여 줬다. 


언론이 만들어 준 청빈ㆍ강직 이미지의 안대희를 총리 후보에 내정했다. 국정원장 남재준과 청와대 안보실장 김장수도 물러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유병언 일가”라며 속죄양 삼기도 하고 있다.(물론 이들은 죄 없는 속죄양이 아니다.)


박근혜는 예민해진 노동계급 사람들의 분노를 이런 조처들로 피해가려 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저항에 대해서는 칼을 세웠다. 


경찰을 이용한 탄압을 부쩍 강화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을 연행했다. 참사 항의 교사 선언에 징계의 칼을 들이대려 하고 있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다가 들켰다. ‘바다 경찰 해체’라더니 육지 경찰은 더 바빠졌다.


이런 대응은 예상됐던 것이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적폐”가 쌓이고 쌓인 끝에 일어난 사고인 만큼 기업주들의 대변자 박근혜가 무엇을 해결할 수는 없다. 


박근혜는 어떻게 이 기회를 역이용해 의료와 철도 등의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추진할까 하며 기회만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국면에서 반동의 추진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나 부패였다. ‘관피아 척결에 앞장서겠다’던 안대희 본인이 전관예우(‘법피아’)의 ‘국가대표’였던 것이다.


안대희는 대법관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해 1년도 안 되어 수임료를 최대 27억 원이나 챙겼다. 개업 두 달 만에 십수억 원짜리 롯데캐슬을 산 것도 의심스러운데, 이마저도 탈세를 노리고 구입가를 축소 신고했다.


안대희는 2003년 차떼기 수사 때, ‘미래 권력’인 박근혜를 무혐의 처리했었다. 대가성이 명백했는데도 말이다. 박근혜가 안대희를 보은성 중용한 것 자체가 부패다.


결국 안대희는 박근혜 정부의 ‘관피아 척결 1호’가 됐다! 바로 이런 일이 두려워 ‘지방선거 전 내각 총사퇴’ 카드를 쓰지 못하고 총리만 교체했던 박근혜로서는 타격을 받게 됐다.


게다가 탄압을 강화했는데도 저항의 강도는 더 커지고 있다. KBS 두 노조가 어용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공동 파업에 들어갔다. 열기도 세고 지지도 높다. 민주노총은 6월 총궐기 시위를 예고했고, 약 1백30명의 교사들이 ‘박근혜 퇴진’ 선언을 했다.


이런 때야말로 친자본주의적 반동에 맞서 “돈보다 생명과 안전”을 외치며 싸워 왔던 조직노동자들이 제 힘을 발휘할 때다.


KBS 노조들처럼 세월호 참사와 각 작업장의 고유한 쟁점들을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윤에 타격을 주는 투쟁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정부와 기업주들을 진정으로 압박할 수 있다.


※ <노동자연대> 127호에 실림.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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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노동ㆍ정치ㆍ연대’가 출범했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노동정치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만든 중앙추진체다.


연석회의에는 공공운수현장조직(준),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다함께,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포럼, 전국현장노동자회, 혁신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가입해 활동해 왔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전국에서 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가입을 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노동기본권과 고용안정 보장, 민영화 중단, 보편복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경제협정 폐기, 노동악법ㆍ반민주악법 폐기 등 노동계급의 당면 문제 해결을 기본 과제로 내놓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 진보정치의 분열로 ‘각개 기어가기’가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그것은 또,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왜소화시켰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의 전ㆍ현직 지도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모여서 노동계 정당을 재건해 노동자 정치운동의 사분오열 상황을 극복하자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날 출범식에 권영길ㆍ단병호ㆍ이수호ㆍ임성규ㆍ신승철 등 민주노총 전ㆍ현직 위원장들과 정의당ㆍ노동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것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단결 염원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진보정치 운동의 분열이 남긴 정치적 상처가 아직도 심하기 때문이다. (※ 물론 아직은 역량상 당장 당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활동을 할 수는 없다. 단체와 취지를 알리는 것과 함께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연계한 공동 선거대응 협의틀을 만드는 게 당분간은 주된 활동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노동ㆍ정치ㆍ연대의 출범은 노동운동 내 주요 지도자들이 진보정치의 분열과 그로 말미암은 주변화를 극복하려고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배신의 역사?



한편, 이런 재편과 단결을 위해서는 옛 민주노동당 등 정치세력화 운동의 최근 과거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평가하는 일도 중요할 테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민주노동당과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지도자들의 온통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로만 평가한다.(이런 평가에 따르면 노동·정치·연대의 출범도 과거의 재탕일 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또, NL계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대중과 배신적 지도부’라는 구도로만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으론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7년 무렵까진 선진 노동자들 속에서 이 당이 성장했고, 또 선거적 성공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배신적 지도자’론은 개혁주의를 지지했던 대중을 결국 수동적 허수아비로 보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로 빠질 뿐이다. 올바른 강령으로 무장한 좌파가 우파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지도권만 잡으면 노동운동의 정치적 약점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종파주의와 선전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배신과 음모로만 설명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체제 안에서 겪는 노동자들의 소외, 즉 자신들이 사회를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과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개혁주의를 벗어나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종파적ㆍ선전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개혁을 위한 투쟁 속에서 대중 자신이 자신감과 조직을 구축해 가는 과정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좌파가 대중과 교류하며 실천 경험 속에서 올바름을 입증해 가는 끈기 있는 노력과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회피했기 때문에, 2000년대 내내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그저 선전주의적 비판에 주력했던 일부 좌파들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후에 생긴 정치적 공백을 노렸던 일부 좌파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험뿐 아니라 그 바깥 좌파의 경험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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