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과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닙니까. … 한이 맺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숨을 빼앗아 간다니 이 서러움이 한이 맺힙니다.”


520일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막으려고 저항하다 실신한 이금자 할머니가 지난해 법원에 낸 탄원서의 일부다.


이날 아침, 한국전력공사(한전)와 경찰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공사 강행을 시도했다. 이금자 할머니를 포함해 평밭마을 주민들은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이들을 막아섰다.


마을 입구 나무에 목을 맬 밧줄을 걸어 놓고는 웃통을 벗고 오물을 뿌리며 저항했다. 대형 전기톱 앞에서 나무를 감싸며 싸웠다. ‘내가 죽으면 시신을 청와대로 옮겨 달라’면서 말이다.


수십 년 살아 온 삶터를 폭력에 내주고 싶지는 않아서, 수년 동안 한전과 경찰에게 당한 모욕에서 자존을 지키려고, 그렇게 70~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몸을 던졌고 병원에 실려 갔다.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이런 할머니들을 밀어 쓰러뜨리고 밟고 때렸다. “횃불을 밝히며 야간 공사를 해서라도” 송전탑을 조기에 건설하겠다는 한전 사장의 협박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사실 한전이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 한 지난 몇 년 동안 폭력과 모욕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월엔 故 이치우 할아버지가 폭력에 항거하다가 분신해 사망했다쓰러진 할머니에게 ‘불 질러 버리겠다’고 조롱하고, 맞아서 입원한 여스님에게 “네 년을 반드시 찾아서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경남 밀양에서 벌어지는 이 야만적 폭력의 배후에는 핵발전소를 늘리려는 한국 지배자들의 야욕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시커먼 속을 감추려고 정부와 한전은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2009년에 지식경제부와 한전은 이 송전선로가 신고리핵발전소 1~6호기의 전력을 영남 지역에 공급하려고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을 두고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 쪽이 ‘과잉 공급’이라고 비판하자, 이제는 이 송전선로가 중부권에도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하며 송전탑 건설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경남 고리에 새로 짓는 핵발전소들을 정당화하려는 수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한진현은 “UAE 원전수주하면서 같은 모델인 신고리 3호기 운영 모습을 UAE측에 보여주기로 한 상황”이라며 송전탑 공사를 서두르는 속내를 드러냈다.


핵무장’을 꿈꾸는 한국 지배자들에겐 플루토늄을 [잠재적으로] 만들 수 있는 핵발전소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가 겨울철 전력대란을 공사 강행 명분으로 대는 건 역겨운 위선이고, 책임을 주민들에게 전가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지금 당장 송전탑 공사가 시작돼도 내년 1월말에나 완료된다. 올 겨울 전력과는 상관 없는 것이다. 신고리 3호 핵발전소가 전체 전력에서 차지할 비율도 1.7퍼센트 뿐이다.


한편,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 주민의 건강 안전도 심각한 문제다. 이 송전탑은 765천 볼트나 되는 초고압 선로로 엄청난 전자기파를 내뿜는다.


초고압 전선에서 나오는 전자기파가 어린이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알츠하이머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엄청난 고압 탓에 전선이 지나는 곳에선 24시간 기계음이 나온다. 한마디로 초고압 송전탑이 지나는 곳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기 힘든 곳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송전탑 건설의 법적 근거가 되는 전원개발촉진법은 박정희가 만든 악법이다. 한전이 지도 위에 송전선로 선을 긋고 송전탑을 짓기로 하면, 반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복합적 요인들 때문에 주민들은 공사 예정지 지정 후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 논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 해도, 초고압 송전탑 근처라고 땅값이 떨어져 대출도 안 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와 한전이 밀양 주민들에게 ‘님비’(지역이기주의를 일컫는 말)라고 비난하는 것은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밀양 송전탑 강행과 반대 투쟁이야말로 결정적 진실을 보여 준다. 핵발전이 인류에게 재앙적인 존재기 때문에 그 건설 과정도 거짓과 폭력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고리 핵발전소 증설을 포기하는 것이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해결책이다. 더 나아가 이런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증설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지역마다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한다면 전력 부족도 막을 수 있고 초고압 송전탑 따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해결책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새누리당 안에서 공사 일시 중단 목소리가 나오는 건 저항이 워낙 강렬해서다. 정부도 ‘지원법’을 만들어 보상을 충분히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송전탑은 끝내 짓겠다는 뜻이다. 보상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려는 꼼수다.


이런 탄압과 꼼수에도 주민들은 여전히 송전탑 건설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고 하고 있다. 녹색당, 나눔문화 등 여러 단체들도 탈핵희망버스 등을 조직하며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노조가 사측의 만행에 침묵하는 것은 유감이다. 전력 관련 노조 활동가들은 정부의 핵발전 증설 야욕과 폭력에 반대하며 주민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천대받는 피억압 대중의 보호자가 돼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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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5·18 광주항쟁 30주년 - 전두환 독재에 맞선 위대한 민중 무장 항쟁
관련 글:
광주민중항쟁 30년 ①: 역사를 제대로 이어가기
광주민중항쟁 30년 ②: 학살이냐, 항쟁이냐
광주민중항쟁 30년 ③: 유신 적자 전두환과 미국
광주민중항쟁 30년 ④: MBC와 투사회보, 그리고 저항 언론
광주민중항쟁 30년 ⑤: MB 시대와 민주주의, 저항의 길


국가보훈처가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서 빼기로 했다는군요. 지난해엔 별도의 기념가를 공모하려다 취소하더니.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진정한 광주항쟁 투사들의 정신을 올곧게 실현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러 온 노래입니다. 민중의례라는 형식보다 정신이 중요하다 해도, 이명박 정부 따위가 기념식에서 배척할 노래는 아닙니다.

사실 불가피하게 저항에 밀려 5월 광주민중항쟁의 진실 규명과 복권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1988년부터 한국의 지배자들은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그 진정한 정신과 의미를 축소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처음 관련법을 제정할 당시 국가의 보상이냐 배상이냐가 논쟁됐습니다. 배상이란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피해 비용을 지급한다는 것이고, 보상이란 자신의 잘못이 없는 상태나 쌍방이 실수한 상황의 권리 다툼에서 비용을 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5월 항쟁의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것은 진압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것이고, 보상이라면 정당한 진압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나왔으니 일부 피해 비용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 차이는 계엄군의 진압 행위가 정당했냐는 논쟁으로 소급됩니다. 1988년 청문회 때도 논쟁된 사안인데, 이때 전 중학생이었습니다.

광주 문제였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수업 중단하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교실마다 있는 TV로 청문회 생중계를 봤는데, 당시 공수부대 여단장인 자들이 나와서 거짓말 해대는데 다들 욕을 하면서 봤습니다. 그때 노무현, 이해찬 등이 송곳 질문으로 인기를 끌었었죠. (정치인으로서 그들에 걸었던 기대감은 20대에 와서 실망감으로 바뀝니다)

보상을 말하는 이들은 합법적 진압 행위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고, 배상을 말하는 이들은 신군부 자체가 불법 권력 찬탈 집단이므로 계엄 확대 자체가 불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훗날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이 처벌될 때, 법적 쟁점은 광주 진압이 아니라 12·12를 내란죄로 판결하는 문제였습니다[각주:1].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12·12에서 5·17계엄확대/5·18항쟁은 연속선 상에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내란죄 해석에 따라, 광주 항쟁은 비록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나마 국가기념일, 국가유공자가 되고 신묘역은 국립묘지가 됐습니다.

저는 내란죄 해석을 지지하면서도 무장 저항 자체는 어느 경우에도 옳았다고 봐야 한다고 봅니다. 계엄 해제와 민주화 일정 이행은 민중의 광범한 요구였습니다. 따라서 이 저항을 짓밟으려 한 계엄 확대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게 합법 권력이든 아니든) 용납될 수 없는 도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칭 문제도 중요합니다. 국가의 공식 명칭이 광주사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지만, 다수의 5·18 관련 단체들과 민중운동 진영은 민중항쟁이란 명칭을 고수합니다.

국가의 군대에 맞서 무장 저항을 했는데, '민주화운동'이란 용어는 뭔가 좀 밋밋하잖아요. 민중항쟁이나 민주화운동이냐는 이 무장 저항의 정당성을 둘러싼 호칭 싸움입니다.

민주화운동이란 명칭에는 무장항쟁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우발적인 ‘비극’으로 치부하는 해석이 깔려 있습니다.


국가권력이 민주주의를 힘으로 뒤엎으려 할 때, 민중의 자위적 무장이 정당하다고 보는 게 광주항쟁을 올바로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신묘역 조성 과정에서도 논쟁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김영삼 정부가 1993년 특별 조치를 발표할 때, 당시 계엄군이 주둔했던 상무대(당시 전투교육사령부 부지터, 지금은 이전함)를 비워 그 부지에 기념공원을 만들려 했습니다. 망월동 묘지 확장도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망월동 묘지는 이미 광주항쟁 전사자들 뿐아니라 이한열, 강경대 등 민주화 열사들까지 묻힌 민주화의 성지처럼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묘역은 상무대가 아닌 구묘역 옆에 조성됐는데, 대신 5월 항쟁 관계자만 이장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열사들과 광주항쟁을 분리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죠.

결국 5월 항쟁 사망자들이 이장됐지만, 대신 구묘역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돌아가신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 2003년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분신하신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열사 등이 여기에 묻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망월동 구 묘역은 광주항쟁과 오늘의 운동을 연결해 주는 창 같은 구실을 해 왔습니다.
구 묘역에서 광주항쟁은 오늘의 역사인 반면, 신 묘역에서 광주항쟁은 어제의 역사이기 쉽습니다.

지난해엔 옛 전남도청 건물을 허는 문제가 쟁점이 됐습니다. 옛 전남도청 건물은 광주항쟁의 핵심 유적지이자 시민군의 정신이 담긴 곳입니다.

△도청으로, 도청으로 향하는 시민들.


△지난해, 광주 메이데이 집회, 검은 천이 내걸린 곳이 옛 전남도청 별관. 노동자들이 든 팻말들을 살펴보면, ‘구 도청 사수’란 팻말이 보인다.(사진 왼쪽)


도청 앞 광장은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확대가 일어나면 모여 저항하기로 결의한 장소이면서, (그래서 시위대는 학살 진압을 뚫고서 "도청으로, 도청으로" 향했던 겁니다)  “해방 광주”의 거점이자 심장부였습니다. 시민군과 저항 조직은 모두 이 곳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최후 항전 장소도 바로 이 전남도청이었습니다.

지금은 도청 기능 자체는 전남 무안으로 옮겨갔지만, 이런 역사성을 볼 때, 도청 건물을 부순다는 것은 광주항쟁 정신과 역사의 보전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일단 지난해 철거 계획은 유보됐지만, 최종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는 사적지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이 과정에서 광주지역 단체들이 분열했는데, 진보 양당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지금 사적지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최초 시위 장소인 전남대 정문, 사상자가 많았던 시외버스 터미널(롯데백화점이 들어섰습니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상무대는 김영삼의 정부의 5·13 발표[각주:2](1993)로 광주시에 무상 제공돼 지금 신도심(새 시청과 번화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사에 작은 실수가 있는데, 5월 18일이 법으로 국가기념일이 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인 1997년입니다. 죄송)

시외버스 터미널 앞의 잔혹한 진압 소식은 이날 이 터미널에서 전남 각지로 가는 사람들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상무대는 당시 전투교육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전남 지역 계엄군 지휘부가 있던 곳입니다. 공수부대에 잡힌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당하고, 구속되고, 살해당하고, 재판받았습니다.

투사회보를 만들던 금남로 전일빌딩 뒤편의 YWCA 건물도 철거됐습니다. 저는 이런 민주항쟁의 역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 후세에 그 현장의 치열함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월동 신묘역이 국립묘지가 된 것은 당연히 광주항쟁 투사들의 승리고 정당한 귀결입니다. 한편, 어떤 면에서는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박제화될 위험도 새로 생긴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 딜레마는 이런 데서 나타납니다. 5·18 국가기념일 기념식에 이명박이 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면 안 되는 놈인데, 안 오면 안 오는대로 또 괘씸한 일입니다.


이 딜레마는 5월 광주민중항쟁을 국가기념 행사로 단지 가둬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광주 민중 무장 항쟁의 정신은 법적 성과에만 머물러선 안 되고, 그 기초 위에서 더 많은 현재의 투쟁들과 연결돼야 합니다. 진정한 해방광주의 정신은 박제화된 기념이나 관제 국민통합 메시지가 아니라[각주:3] 저항과 연대의 투쟁 전통 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계속)


  1. 이때 검찰이 그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발표를 하죠. 나중에 대중투쟁의 압력에 밀려 검찰은 다시 기소를 하고, 1심에서 사형을 구형합니다. [본문으로]
  2. 김영삼은 집권 후 3월 망월동 묘지 참배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때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시위로 이를 막았습니다. 김영삼은 유화 조처로 5월 13일 특별 담화를 발표해 △망월동 묘지 확장 △상무대 무상 제공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 등의 조치를 발표합니다. 그 대가로 추가 진상규명과 관련차 처벌은 넘어가자는 거죠. 저는 그때 학생들이 잘했다고 봅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후 처리 없이는 학살자들과 손잡은 대통령이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순 없는 겁니다. [본문으로]
  3. 학살자는 여전히 반성하지도 않고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았으며 그 자들을 존경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아 개판을 치며, 그때 왜곡보도에 앞장섰던 찌라시들이 아직도 왜곡보도를 일삼는 등 투사들이 바랐던 민주주의가 오지도 않았는데 웬 화합과 통합이랍니까?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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