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강대국들이 리비아에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고 리비아 민중을 구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혁명을 돕고자 하고, 독재자 탓에 죽어가는 희생을 막으려는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킬 순 없다.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보다 더한 살인마들이라는 점, 카다피와 서방 강대국들 정부 서로 진지하게 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 잘못된 외부 개입이 혁명을 왜곡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군사개입 찬성론은 목적과 반대되는 수단에 찬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인 최병천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위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가 왜 서방 강대국의 군대여야 하는 것이냐인데,그는 우선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또 그는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라고 말하는데, 리비아 민중의 자기해방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방 군대의 개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결국 최 위원의 주장은 민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룰 가망이 없으니 강대국 군대가 강제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 혁명의 수도 구실을 하는 벵가지의 한 건물에서 서방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혁명 투사들.


그런데 과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존재인가.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은 패권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여 왔다. 이른바 ‘인도주의 개입’론은 소말리아, 코소보와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해 줬다.

그러나 현실과 명분은 달랐다. 제국주의 군대는 ‘인도주의 개입’ 때마다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한 바로 그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도적 재앙에 빠뜨렸다.

소말리아에서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고, 세르비아에선 민간인 지구가 폭격 대상이 됐고, 폭격은 민족간 증오를 더 부추겨 세르비아에선 알바니아계가 쫓겨났고, 코소보에선 세르비아계가 수십만 명 쫓겨났다.

세르비아 정부와 의심스런 코소보 해방군을 제외하면 그 두 민족의 평범한 대중은 그 전까지 이웃으로 살아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듯이, 제국주의 점령군은 이곳들에서 카다피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제거하겠다고 했던 후세인, 탈레반, 알카에다 등은 모두 미국이 키운 악당들이었다.

지금 카다피가 사용하는 무기들도 죄다 서방이 판매한 것이다.

최 위원의 주장처럼 리비아에서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카다피는 후세인의 몰락을 보며 미국에 항복했고, 그 뒤에는 서방 정부들과 유착해 왔다.

이런 상호 유착 때문에 혁명 초기 서방 국가들은 카다피 비판을 애써 피했다. 지금 그들이 군사 개입을 망설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개입할 지상군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개입이 또 실패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서방이 군사 개입을 한다면 그 목표는 강대국들의 패권과 석유 자원 확보이지 리비아의 민주화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비아 혁명 세력의 ‘전국위원회’는 일단 서방의 지상군 개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문제에서는 혼란스런 입장을 내면서도, ‘외국 군대’의 주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강대국들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방이 군사 개입을 시작하면 ‘저항세력은 서방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는 카다피의 악선동에 오히려 힘이 실릴 것이고, 혁명 세력은 분열할 것이다. 심지어 리비아 혁명에 우호적인 국제 좌파 진영도 분열할 것이다. 

일단 발을 들여 놓은 서방 군대는 ‘안정’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리비아의 모든 국내 세력과 석유 자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친미독재 국가들을 위협하는 민중 반란 물결을 분쇄하려 할 것이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사실상 카다피의 대공능력을 무력화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선제 폭격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은 리비아의 혁명 열기를 식히고, 확산하던 중동 혁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격과 서방 군대 개입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끔찍한 재앙과 비극을 낳을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는 결코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혁명은 제국주의 폭탄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자기 해방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리비아 민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혁명을 지지하는 서방 대중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카다피는 고립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그의 반혁명적 저항은 위력을 잃을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치어리더가 돼선 안 된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보기 ☞ 민주와 인권을 위한 서방 개입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보론은 여기로  ☞ 보편적 인권 vs 국가 주권 구도는 허구다 를 읽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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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건강보험 하나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90퍼센트로 높이되, 그 재원을 기업주와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법안을 지지한다.

그런데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의 이상이 교수는 이 법안을 “낡은 진보[각주:1]”라고 공격했다[각주:2].

이상이 교수와 시민회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려면 부자든 노동자든 건강보험 가입자가 모두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노동자들이 먼저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금의 계급 역관계와 정치현실”에서는 정부와 기업주에게 재원 부담을 강제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각주:3].

그래서 “누진적, 연대적 방식으로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는 ‘깨어 있는 시민[각주:4]’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도 “누구나 정당한 권리로서 일정한 소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는 말한다. 세금을 내려면 소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보편적 증세에 기울어져 있다. 복지국가를 투쟁으로 쟁취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선 보편적 복지로 혜택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더 일반적이라고 한탄한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사람들을 설득해 “깨어 있는 시민”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낡은 진보”가 정부와 기업주를 상대로 싸우자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가로막는다.” 이것이 그가 “줄기차게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의 진보대통합 구상은 기존 진보정당들이 급진좌파를 배제하고 민주당 안의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와 연합하자는 것이다.


우선순위


이상이 교수는 보편적 투쟁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는 노동자들이 내는 돈이 적어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5.3퍼센트에 그쳐 유럽 복지국가들의 14퍼센트나 이웃 일본과 대만의 8.5퍼센트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이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수준 때문에 우리네 가계의 80퍼센트가 민간의료보험을 하나 이상 구입하고 있[].”

이 교수를 비롯해 시민회의는 공급자 통제, 곧 병원과 제약회사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것이나 기업주와 정부의 보험료 부담이 너무 낮은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OECD 평균 기업의 사회복지 지출 기여 비율은 5.4퍼센트이고 노동자는 3.1퍼센트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기업이 2.5퍼센트 노동자가 3.3퍼센트다.[각주:5]”(우석균, <프레시안>)

1인당 보험료는 200433천 원에서 20085만 원으로 [52퍼센트] 늘었다. … 반면 국고지원은 … 16퍼센트 증가했을 뿐이다.”(최윤정, 《사회운동》 7~8월호)

그는 건강보험 국고 지원 확대 요구를 두고 “국가재정 지출의 우선순위에서 다급한 여러 복지 분야보다 앞서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교수와 그 동료들은 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캠페인을 ‘최우선’ 사업으로 올려놓았을까?

이 교수는 재정을 늘리는 게 중요하지 재정 안에서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돌려막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재정 안에서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다면 재정을 늘린다고 자동으로 복지가 는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그가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 군비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각주:6]. 재원 마련과 재정 배분을 관통하는 핵심은 국가와 사회의 운영에서 무엇이 ‘우선순위’냐 하는 문제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한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국가 재정과 기업 이윤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금 내고 있는 세금보다 약 37퍼센트를 더 내야 OECD 평균수준의 조세부담률에 도달한다”는 이 교수의 주장도 탁상공론이다. 현실은 전체 소득세 대상자 가운데 소득이 적어 세금이 면제되는 대상이 43.5퍼센트에 이른다는 것이다. 

면세점 이하의 사람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재원은 부자 증세여야 한다기업주와 부자들에게 유리한 조세 구조를 개혁해야 하고,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 소득세만이 아니라 법인세도 다시 올려야 한다.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은 약 11퍼센트밖에 안 된다[각주:7].

문제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이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 복지를 최우선 순위로 놓으려면 대중 투쟁은 필수적이다. 필요한 것은 이 투쟁을 강화할 정책이다[각주:8].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와는 다른 무상의료 캠페인이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장소에서 진행됐다. 복지국가는 일종의 계급 세력 관계에서 혁명 vs 개혁·현상유지 사이의 타협 체제다. 복지국가는 쟁취도 유지도 조직된 노동계급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1. 이상이 교수 등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정책 참모 구실로 정권과 연계됐던 지식인들이 꽤 있다. 이들이 더 좌파적인 진보 정책을 ‘낡은 진보’라고 공격하는 것을 보면 당시 정권 지지파들이 진보좌파들에게 ‘수구좌파’라는 모욕적 언어로 공격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본문으로]
  2. 이와 관련해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와 관련 있는 민주노동당 두 국회의원 국회 사무실에 문의 전화를 했다. 권영길 의원실은 당론과 다른 시민회의의 견해에 의원실 차원에서 지지를 보낸다는 입장을, 곽정숙 의원실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의원 개인 자격으로 시민회의에 참가는 하지만, 정책 내용은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곽 의원실은 본인이 대표 발의한 법안―보험료 선제 인상을 배제하는 이 법안―이 당론이며, 의원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본문으로]
  3.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등 선제적 양보론자들의 주장은 기묘한 논리적 조합을 이루고 있다. 투쟁으로 복지를 쟁취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제와 ‘우리가 먼저 양보만 하면’ 자본이 기꺼이(평화롭게) 양보할 수 있다는 초낙관적 결론의 조합. 이 조합은 핵심적으로 계급투쟁 이론과 전략을 기각한 데서 비롯한다. [본문으로]
  4. 복지국가 논의에 깨어있는 시민 용어를 끌어들인 것도 우습지만, 명백하게 정치인 노무현의 유지처럼 돼 있는 ‘깨어있는 시민’은 정치적 시민권을 자주적으로 행사하려고 행동하는 시민을 상징한다. 이 단어의 탄생과 유통에 담긴 맥락은 보험료나 세금을 더 내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본문으로]
  5.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에서 이상이 교수 본인이 정세은 교수와 함께 쓴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 및 조세 제도 개혁의 모색’에도 비슷한 통계가 인용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총 조세 수입 대비 조세 수입 항목 구성 표(2004 기준)를 보면, OECD 평균 사회보험 분담금이 23.4퍼센트(노:8.5/사:14.9)인데, 한국은 20.7퍼센트(노:12.1/사:8.6)로 한국은 역진적이다. [본문으로]
  6. 결국, 이들이 기존 예산을 건들지 않고, 보편적 증세로 보편적 복지를 하자는 것은 복지 수혜자와 복지 비용 부담자를 일치시키자는 논리인데, 이는 자칫하면 신자유주의의 수익자 부담 논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설득력보다는 보편적 복지론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뿐이다. 보편 복지를 받으려면 보편 납세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소득이 적어 납세나 증세에 동참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복지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논리에 이용될 수 있다. [본문으로]
  7. 깎인 법인세가 23퍼센트니 절반도 다 안 내는 셈이다. 이는 평균 19퍼센트 정도로 추정되는 중소기업 실효세율보다도 낮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익 10조 원을 벌었다고 했는데, 이 경우 1조 원의 세금을 덜 낸 것이다. [본문으로]
  8. 계급 분단선을 분명히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와 이상이 교수가 민주노동당의 과거 구호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구호가 잔여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실 부자에게 보편 복지는 거추장스러운 복지 혜택보다 증세 압박이 더 중요한 문제다. 그 점에서 ‘부자 증세 서민 복지’가 반드시 잔여주의인 것은 아니다. 이상이 교수의 부당한 비판은 보편 증세론을 정당화하려는 부당한 왜곡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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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세금

기사들 2010. 5. 17. 17:53


최근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약과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 복지국가 유지 비용을 감당하려면, 누진세도 늘려야 하고, 세금 내는 사람의 숫자도 더 늘어나야 한다는 논리다.

<한겨레>가 14일 보도한 것(아래 표 참조)처럼, 70퍼센트가 넘는 많은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글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보편 복지국가를 유지하려 내는 세금 비용보다 돌아오는 복지 혜택이 더 많다면 해 볼 만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

즉, [개인들이 받는 복지 수혜 비용을 사회임금이라 부른다면] 세금(노동자들이 시장임금에서 내는) 순(純) 사회임금이 더 늘어나느냐 마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바탕해서 보편 복지를 위해 보편 증세가 필요하다는 논자들의 주장을 검토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 사회임금 문제와 관련한 더 초벌적인 내 분석은 (http://enlucha.tistory.com/40)을 참조하세요.]

대표적인 사회임금 중시론자인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정책보다 운동 … 노동조합 나서야”(<레디앙>, 423)라는 글에서 노동자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실장은 이 주장을 위해 근거 두 가지를 댄다
.

첫째
, 이명박의 감세 정책이 부자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 실장은 노동운동이 감세 운동을 했던 과거를 비판하며 감세가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인게 드러났으므로 이제 노동자를 포함한 증세를 요구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둘째
, “보편 복지처럼 증세 주체도 가능한 많은 사람일수록 좋다 … 중간계층이 공공재원 마련에 참여하며, 이들이 부자들의 재정 책임 이행을 압박하는 주체로 성장”할 것이다. 의무를 이행한 만큼 권리의식도 높아질 거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최근 내놓은 사회복지세 도입 요구안도 비판한다
.

상위 5% 계층만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 방안에 대해선 재검토가 필요하다. … ‘내라’보다는 ‘내자’가 훨씬 강력하다.” 

진보신당이 내놓은 사회복지세 요구는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고액 납부자에게 납부세액에 기초한 추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은 주로 5퍼센트 고액 납부 개인과 기업에 집중된다.

오 실장은
사회복지세의 납세 대상이 너무 좁게 설정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세의 수입 목표액은 이명박의 부자 감세액 규모다. 이명박이 부자들에게 깎아 준 만큼 부자들에게 도로 내놓으라는 것인데,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부자 감세를 원상 회복해야 한다는 오 실장 자신의 말과도 모순된다.

물론 세금을 더 내서라도 복지 혜택을 받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열악한 한국의 복지 현실이 진짜 문제다
.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먼저 증세하겠다는 의지를 제안하자는 오 실장의 “내자 운동” 계획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오 실장의 계획은 기껏해야 “병[증세] 주고 약[복지] 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첫째
, 순사회임금의 획기적 증대 없는 노동자 증세는 빈부 격차를 더 심하게 한다.

부자감세는 정확히 말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법인세와 소득세, 특별소비세 등을 감면하면서부터다. 그뒤 지금껏 소득세와 법인세는 다시 오른 적이 없다.(↘, 사실 법인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감면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2006
년부터 소득이 낮아 근로소득세가 면제되는 노동자 비율이 줄고 있다.(50→43퍼센트) 각종 세액공제 등 절세 혜택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소득세 총수입액에서 상위 10퍼센트의 비중은 5년째 늘어 2008년엔 64.3퍼센트가 됐다.

정부가 부자 세금을 깎아주고, 노동자에겐 절세 혜택을 줄여 근로소득세를 내는 노동자 수를 늘렸는데도 총 세금 수입에서 기업주를 포함한 상위 집단의 비중이 커진 것은 노동자들의 소득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뜻이다
. 불평등이 확대된 것이다.

임금 소득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일방적인 “보편 증세”는 빈부격차를 더 크게 할 것이다
. 오 실장이 이 점을 간과하는 건 시장임금과 대비한 사회임금만 강조하지, 진짜 중요한 순 사회임금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세금이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에서 나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보편 증세로 세금이 늘어 시장임금이 줄어든다면, 사회임금이 늘어나는 것이 조삼모사일 수도 있는 것이란 얘기다. 또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이 시장임금을 올리려고 벌이는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방식은 당연히 노동자의 지지를 모으기도 힘들어 보편 복지를 쟁취할 동력도 만들지 못할 것이 뻔하다

둘째, 먼저 세금을 올린다고 정부와 기업주들이 양보할 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 2002~2006년 사이에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는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이 기간 동안 정부 미납금액 규모가 37천억 원가량이다. 예상 보험료 수입액의 20퍼센트를 정부가 내기로 한 바뀐 법에서도 지난해까지 정부는 액수를 채우지 않았다.

전면 무상급식은 이미 예산이 있는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반대한다
. 무상급식이 다른 보편 복기 욕구를 자극해 부자 증세 압력으로 다가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기금 고갈론 사기극을 벌인 끝에 지급율을 낮췄다. 정부가 연기금에 기여해 수혜 대상을 늘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노동자들이 먼저 선 증세를 결의한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복지를 받으려면 결국 정부와 기업주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각주:1]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내자” 운동이 압력을 넣는 효과를 낼 거라는 생각을 순진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여전히 거친 투쟁의 과정이 남는다면, 자진 증세의 뜻을 모으고 선언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오히려, 권리(복지)에는 의무(증세)가 따른다는 저들의 복지 회피 논리에 도움만 주는 자충수가 되진 않을까.[각주:2] 오  실장 등이 진지하게 답해야 할 문제다.

오 실장은 “국가와 자본을 향한 요구투쟁 … 방식에만 의존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문제는 “요구 투쟁” 방식이 아니라 “요구 투쟁”이 더 강력하지 못했던 것에 있다.

“복지는 권리”라고 단도직입으로 말해야 복지병이나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저들의 담론 틀에 휘둘리지 않고 더 유리하게 싸울 수 있다. 뭉뚱그려진 사회임금 인상이 아니라 순 사회임금을 올리는 복지국가를 제안해야 한다. 그럴려면, 시장임금 인상을 가볍게 취급해선 안 된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감당 못 할 지경이 될 때에야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개혁을 거부하면 혁명이 올 것 같을 때
, 보편 복지를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불평등한 현실을 생생하게 알리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정부와 기업주에게 “보편 복지(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도록 고무해야 하는 게 좌파의 할 일이다. 노동자에겐 무엇이든 요구할 권리가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31호에 실린 내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기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1. 투쟁 없인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마련한 버스준공영제 같은 게 나올 수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환승할인 서비스로 편한 면도 있지만, 세금이 서민 교통료 절감이 아니라 버스 회사들 이익 보전을 위해 쓰인다. 완전공영제가 우리의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이것이 바로 1997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블레어 내각이 내세운 논리다. 이들의 ‘제3의 길’은 결국 사회적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포장된 버전(좌파 신자유주의)에 불과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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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오늘(1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보편적 복지와 6·2 지방선거”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각주:1]

제가 볼 때 이 토론회를 특징짓는 주요 쟁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지금 '개발'에서 '복지'로 사회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습니다.
셋째는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잔여주의 복지와 관계 문제였습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10년 넘게 급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한국사회에서는 위기를 계기로 진보와 복지 쪽으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니다. 

고양에서 온 엔지오 활동가는 지방선거 공약 공모를 했는데, 예년과 달리 개발 공약은 없고 삶의 질과 관련된 공약이 다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자인 이상이 교수는 고양은 중산층 도시이므로 고양의 변화는 중산층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이창곤 기자는 최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 정당과 관계 없이 보편 복지를 바라는 여론이 다수였다고 밝혔습니다.(곧 기사로 나온답니다)

올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선거 이슈가 되고, 전면 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점과 그래서 민주당까지 나서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10년 가까이 위기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는 방증이라 봅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어쨌든 반갑고 힘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둘째, 재원 문제는 누구나 중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이번 선거 공약과 관련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민주당 발표자(추경민)는 아동수당을 예로 들며, 만1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짰다고 밝혔습니다. 재원 때문이죠. 아울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무상급식·무상보육을 하려면 중앙정부가 떠안아야 할 몫이 있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지방정부로선 난처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신당 발표자(장석준)는 역시 재원 문제 때문에 아동수당을 만 3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도 보장성을 올리되, 재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보험료를 함께 올리는 계획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노동당 발표자(고영국)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12세까지로 하겠다고 했지만, 대신 액수는 적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습니다. 기존 예산에서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제도 도입에 상징적 의미를 더 두자는 차원에서 연령만 과감하게 올렸다는 겁니다.

저는 민주당 쪽의 설명을 들으며, "결국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보다 당선도 되기 전에 한나라당 때문에 하기 힘들다는 알리바이부터 대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뒤이어 발제한 진보정당 정책 담당자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아쉬운 것은 민주당의 책임회피식 자세를 비판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조원희 교수 등이 복지를 주장할 진보정치세력이 그동안 제로베이스에 있었다는 듯이 주장했는데도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진보정당은 모두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누진적인 증세를 해야 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4대강 같은 토건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동수당이란 것도 애초에 없던 것이므로 뭐 두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려한 건 복지제도 요구에 접근하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복지 요구에 재원 계획을 함께 내놓는 건 당연히 중요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복지에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제시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의 재원 계획에는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논거와 요구가 포함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재분배일테니까요. 그래서 저들이 돈을 댈 여력이 있다는 것, 그 여분의 돈이 엉뚱한 데 쓰이거나 부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혀야[각주:2]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주류 집단(관료/언론/기업주 등)에게 책임(수권능력) 정당으로 인정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이리 되면, 요구를 실현할 수단으로 재원 마련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있는 재원 안에서 요구를 조정하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석준 씨가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강화를 연결하는 설명이 딱 이랬습니다[각주:3].

지금 같은 기업주와 부자들이 금고를 꽁꽁 숨겨놓으려 하고 정부도 재정적자에 민감해지는 경제 위기의 시대에 재원 먼저 걱정하게 되면 제대로 요구를 내걸 수 있을지, 요구를 내걸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앞서 살폈듯이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온 것인 만큼 진보진영은 여기서 상황을 더 급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한데[각주:4], 진보 정치세력은 더 온건해지는 쪽으로 상황에 적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인용했듯이, 한명숙, 유시민 모두 집권 시절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양반들입니다. 민주당의 정책 실행 의지를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들기 때문에 무상급식 하나만 봐도 진보정당의 독자적 구실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진보 양당은 오히려 반mb 단일화란 명분으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문제에 다들 걸려 넘어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 길로 미친듯이 달려가면서 진보의 단결을 내팽개치고, 진보신당은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두 당의 따로 놀기와 민주대연합 문제로 진보의 동력이 약화된 거죠.

이런 문제들이 복지가 화두인 선거에서 보편 복지 정책의 선두주자인 진보 양당이 거의 두각을 못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2000년 이후 이번처럼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없는 선거는 처음입니다.

한편, 발제자 중 한 분인 인하대 윤홍식 교수는 보편주의/선별주의/잔여주의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보편주의 제도지만, '65'라는 선별 조건을 부과하므로 선별적 보편주의 제도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윤 교수는 보편/선별주의는 조합이 가능하며, 보편주의의 대립물은 선별주의가 아니라 자산조사에 기초해 특정 계층에만 복지를 지급하는 잔여주의 복지라는 겁니다.

잔여주의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굶어죽지는 마라 하고 주는 시혜성 복지 (철학이자 제도)로 오히려 복지의존성(우익들이 말하는 복지병)을 더 강화합니다. 경제적 자활 능력이 생기면 복지 혜택이 사라지니까요.

여기에 '잔여주의'란 용어가 어려워 대중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이상이 교수 등의 반론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윤 교수는 선별주의 대응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대응을 잘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반인에겐 그닥 필요 없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제가 있습니다.(윤 교수가 말하려고 한 바는 신사회 위험으로 보이는데,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아 그냥 제가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들어봤습니다)

고무와 걱정과 유익한 정보를 함께 준 토론회였습니다.

※ 그밖에도 토론해 볼 만한 다양한 쟁점들이 있었는데, 이 한 편의 글에서 다 다루기는 힘들 듯합니다. 늘 그랬듯이 또 한번 미뤄야죠. 출구전략과 보편 복지를 연관짓는 시각도 흥미로웠구요, 복지국가를 사회정책+경제정책으로도 보는 시각도 사회투자론과 연결해 토론해 볼 만한 주제라고 봅니다.

  1. 주최 단체는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본문으로]
  2.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는 이런 정신을 반영한 구호였습니다. 이상이 교수가 이 구호를 진보적 잔여주의 구호라 비판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요구한 것은 부유세를 만들어, 보편주의 복지제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이 계획은 국민들이 선 보험료 인상을 결의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보험료를 올리는데 다수가 동의해도,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 인상 결의'를 무기로 결국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투쟁'을 '보험료 인상'으로 대체하려는 게 이 계획의 핵심으로 보이는데, 결국 투쟁이 필요하다면, 이 계획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4. 대중적 지지를 받는 무상급식을 민주노총 등의 투쟁 의제로 삼아 대중 캠페인을 건설할지, 아니면 무상급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급진적 요구를 제출할지 하는 논점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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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들 중에 복지국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복지국가를 내세우는 정당들이나 사회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진 못합니다.

이유는 대체로 둘 가운데 하나일텐데, 하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지지해 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 때문일테고,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를 위한 비용 부담에 참여하기 싫어서일 겁니다.

그래서 복지국가, 달리 말해,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와 누가 그 비용을 댈 것인가에 답을 내놔야 합니다.

요즘 "역동적 복지국가"를 내세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세금을 더 늘려 복지를 하자고 합니다. 한국은 경제에서 정부 지출이 매우 낮은 나라인데, 이게 낮은 조세부담률에서 비롯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아직은 정부 적자 수준이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아서, 재정 적자를 단기간에 늘리며 보편적 복지제도를 도입해 혜택을 맛보게 한 뒤, 세금을 늘려도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최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내놓은 사회복지세 도입 제안에 적극 찬성했습니다. 이 사회복지세는 복지 부문에만 쓸 수 있는 목적세로 하고, 대략 5퍼센트 정도 고소득자에게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방안입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부유세 정책과 비교하면, 세금을 매기는 대상이 자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고, 기업에도 납세 의무를 부과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정책실장이 <레디앙> 기고 글에서 이 사회복지세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납세 대상을 너무 적게 설정했다는 겁니다. 이젠 노동자들도 복지 재정 마련에 참여하는 운동을 펼쳐야 가진 자들에게도 더 많이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건호 실장은 "내라"에서 "내자"로 바뀌어야 사회적 설득력을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오 실장은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노동시장에 참여해(고용되서) 일한 대가로 받는 노동소득'시장임금', 국가가 복지 등을 통해 제공하는 현금과 사회서비스 '사회임금'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사회임금이 OECD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8퍼센트에도 못 미친다는 거죠. 오 실장은 한국에선 사회임금이 시장임금의 매우 부차적인 보조 소득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고용에 목 맬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기업과 부자들이 복지 재원을 부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각주:1]


그래서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의 재원을 둘러싸고 계급 이해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회임금을 둘러싸고도 계급투쟁이 벌어지니까요.

그러나 오 실장은 이와 모순된 결론도 내립니다. 조직 노동운동이 시장임금에만 집착해 사회임금 인상을 외면해 문제라고 말합니다. 마치 시장임금 투쟁이 이기적이므로 이제는 사회임금을 올리는 데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시장임금이야말로 계급 이해가 선명히 드러나는 계급투쟁인데 말이죠.

결국 모순된 두 얘기를 종합하면, 사회임금 재원 형성에 노동계급이 먼저 참여하고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첫째는 그게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 먼저 양보해야 부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시장임금/사회임금 개념이 유용한지 잘 모르겠지만, 오 실장의 개념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오 실장의 논리 전개에 중요한 다른 개념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사회임금은 국가가 현금과 현물서비스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합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세 등의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를 냅니다. 실업자나 면세점 이하 저소득 서민들도 세금을 냅니다. 상품 가격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담배에 포함된 교육세도!) 등 소비세 성격의 세금을 냅니다. 아, 주민세도 내야죠.

즉, 사회임금은 시장임금과 완전히 구분되는 별도 소득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일부가 직접세, 사회보험료, 간접세 부담 형태로 이전하는 부분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임금 개념으로 말하자면) 중요한 건 순(純) 사회임금입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 사회임금의 재원에 노동자들이 부담한 액수를 빼고 순수하게 플러스로 지급받는 사회임금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2차대전 후 호황기에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을 계산하면, 거의 '0'=제로에 가깝습니다. 낸 만큼 받은 것에 불과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복지국가의 역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경기가 좋아 실업률도 낮고 소득도 높으면 (건강도 좋겠죠) 실제 복지 비용을 지출할 일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반면, 조세에 바탕한 보편 복지를 명분으로 스웨덴 노동계급은 꽤 높은 수준의 조세 부담을 했기 때문에 막상 순 사회임금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진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경제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낮아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복지국가'들은 경기 침체기에 늘어나는 비용 지출을 감당 못하고 복지 제도를 약화시킵니다.

예를 들면, 높은 보장 수준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국민)연금을 위해 호황기에 높은 비용을 부담했던 노동자들은 막상 자신이 늙었을 때, 더 열악해진 연금제도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스웨덴에서 복지 지출이 실제로 증가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이때 정부는 우파 정부였죠. 그뒤, 스웨덴은 좌우파 정부 모두 정부 수입에서 누진세를 약화시키고 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을 늘립니다.[각주:2]

덴마크의 실업수당은 원래 기간 무제한이며, 거의 실업 전 소득의 1백 퍼센트를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실업률이 올라가 실업수당 지출이 늘어나니까 무제한→9년→4년으로 후퇴했고, 이것도 다시 2년으로 줄이려 합니다. 실업수당 지급 요건도 강화됐습니다.

아래 표는 오 실장이 계산한 2005년도 사회임금인데, 스웨덴의 사회임금이 48.5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 개인 소득에서 납세로 가는 비율(개인 세금부담률)이 평균 42~43퍼센트라고 합니다. 얼추 비슷한 수준이면서, 순 사회임금이 소폭의 플러스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후 호황기보다 나은 건지 정확히 계산하진 못했지만 '복지국가도 후퇴한다'는 우파의 선전이 과장된 그림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사회보장이 충실한 나라에서 일어난 이런 역설 때문에 사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를 위한 복지 '천국'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해체한 것처럼 (그래서 더는 보편적 복지 확대가 유토피아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이런저런 약점이 있고 '이상'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동계급이 호황의 조건에서 투쟁으로 쟁취해 불황기에 싸우며 지켜 가는 하나의 역사적(=한계를 가진) 성과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위기에 내몰렸을 때조차 복지 후퇴에 대항한 대중 저항, 그리고 안정적으로 건강한 노동력을 수급 받아야 하는 자본의 필요가 더해져 교육이나 의료 부문 등은 크게 약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복지 지출 수준 자체를 줄이는 것은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 복지 축소와 복지 유지를 위한 재원 확보 문제는 계급투쟁의 중요한 전선 중 하나입니다. 

그 나라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보편적 사회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그 모델의 내용과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 지금 실천에 적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겠죠.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 재원 형성,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에 노동계급도 동의하고 참여하자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관련 <레프트21> 기사)[각주:3]

첫째, 지금껏 소득재분배 방식의 복지 비용 마련이 힘들던 이유는 기업주와 부자들은 가뜩이나 경제 위기인 시대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용을 지출하길 꺼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주머니에서도 돈이 나간다는 것 자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오 실장의 바람대로 그들에게 선양보론이 설득력을 얻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오 실장은 건강보험료를 먼저 올려서 정부에게 보장성 확대를 압박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모두 법으로 정해진 건강보험 재정 지원분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법정 기여금도 내지 않는 정부를 어찌 믿고 내 돈부터 먼저 낸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파들이 복지를 세금폭탄 식으로 설명하며 반대를 조장하는 논리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임금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사회임금 증대가 필요하다 해도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소득에서 시장임금 비중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임금을 보전하면서 사회임금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순 사회임금을 늘리도록 싸우는 겁니다. 그러려면, 시장임금 투쟁에서 잘 싸워야 합니다. 거기서 얻은 자신감과 조직력이 정치의식을 높이고 사회임금 투쟁에서 힘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셋째, 보편 증세론은 결과적으로 노동계급 안에서 소득 재분배를 하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라"에서 "내자"로 운동의 요구와 실천을 바꾸자는 오 실장의 전략은 고소득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더 많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대로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평균 노동소득이 낮아질수록, 면세점 이하 저소득층이 늘어날수록 대기업 정규직=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사회임금 부담은 늘어나야 합니다. 오 실장의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소득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 올 위험마저 있습니다.

현실은 '정의'롭지도 않을 뿐더러 '평등'하지도 않않습니다.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2008년 이후 부자들의 재산은 늘었습니다. 한국은 서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하면, 조세 수입에서 소득세 비중도 작고, 누진율도 낮으며, 자산 과세나 기업 법인세도 비중과 세율이 모두 낮습니다. 간접세 비중은 훨씬 높습니다.

복지국가 요구는 이런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자는 겁니다.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이 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대비 사회임금을 늘리자가 아니라, 부자들의 시장소득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해야 합니다. 책임은 저들이 져야 합니다.

저들이
노동계급의 노동력에 의존해 부유해졌기 때문에 이는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당한 요구입니다. 반대로, 우리끼리 소득 재분배하자는 건 '연대'가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편,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는 일부 논자들 가운데, 사회임금을 높여 안전망을 만들면 해고를 둘러싼 갈등이 줄지 않겠냐(쉽게 해고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임금이 보장되면 시장임금의 중요성이 덜해질 거라는 논리는, 복지국가가 겪어온 역사 과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스웨덴 모델의 근간이던 노사정 중앙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제와 임금인상 자제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거부한 정책입니다.

지금, 결과적으로 복지 지출 총액이 줄지 않았는데도, 자본은 줄기차게 복지국가를 공격합니다. 복지국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성된 모델 같은 게 아니라,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을 둘러싼 자본의 공세와 노동계급의 저항 속에서 끊임 없이 요동치는 '역동적'인 세력 관계의 산물입니다.

의회에서 주류 정치인들이 수용할 만한 정책을 설계하는 데 치중해서는 복지국가를 실제로 쟁취할 대중적 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부자 증세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더 나은 면이 많습니다.[각주:4] 


중요한 것은 요구 자체보다 요구를 실제로 쟁취할 수 있는 대중의 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선제 양보론은 이 운동을 만들어 내는 데 무력합니다. 노동자가 양보하면 기업주들도 양보할 거라는 발상이야말로 비현실적 관찰이고, 주관적 소망이며, 가망 없는 공상입니다[각주:5]

'공상에서 현실로'. 그게 제 결론입니다. 



  1. 인용한 사진은 2007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이명박의 건강보험료 납부 자료입니다. 이명박 소유 빌딩 관리인은 월급이 1백20만 원인데도, 이명박보다 더 건강보험료를 많이 냅니다. 복지 재원 마련을 하려면 이런 불평등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2. 소비세 등 간접세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므로, 소득 격차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진세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백만 원짜리 가재도구를 사는데, 10만 원 부가세가 붙는다면, 월 소득 1천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퍼센트를 부담하는 것이지만, 월 소득 1백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0퍼센트를 부담하는 겁니다. [본문으로]
  3. 실제로 오건호 실장이 정책위원으로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진보신당 등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1만1천 원씩 올려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법으로 정해진 국가보조금도 3조 원씩이나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장성 확대가 법으로 선행되지 않고 보험료부터 올려서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자는 것은 위험한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4. 어떤 분은 기본소득 등의 지속적인 복지를 위해 성장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되려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경제 위기도 저들의 탓이고, 저들의 부도 우리의 노동 때문이므로 복지 재원을 못 대겠다면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진하는 길밖에는 우리 삶을 지킬 길은 없습니다. 기본소득 관련 글은 링크된 포스트를 확인하세요. [본문으로]
  5. 이들은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포기하기 때문에 가장 비관적인 전제에서 가장 황당한 낙관주의로 치닫는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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