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결국 ‘민심’의 회초리 앞에서 한 발 슬쩍 물러섰다노동자 증세안 발표 나흘 만에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경제부총리 현오석이 13일 ‘증세 기준을 연간소득 3450만 원에서 55백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부자 감세 유지, 노동자 증세” 기조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소나기만 피해가려고 증세 대상 노동자 수만 434만 명에서 210만 명 수준으로 줄인 것이다.


노동자 유리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려다 들키니 쥐었던 돈 일부만 도로 집어넣으며 사과하는 격이다반면, 재벌과 1퍼센트 부자들의 강철 금고는 여전히 건드리지 않고 있다. 결국 박근혜의 원점 자체가 ‘노동자 우롱하며 유리지갑 털어 재벌·부자 퍼주기’였던 것이다.


이런 징세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 이번 세제 개편안의 정신”이라는 청와대 경제수석 조원동의 말에서 이미 드러났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3 세법개정안’ 해설 문서도 “소득·소비 과세 비중을 높이고, 법인·재산 과세는 성장 친화적으로 조정”하며 “과세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심지어 “상속증여세는 … 높은 누진세율 체계 등으로 인해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큼”이라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다.


과세 기반 확대’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말이고, ‘성장 친화적 조세’란 결국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말이다.


결국 ‘증세 없이 복지 늘린다’는 박근혜의 허풍은 ‘노동자 증세로 부자 감세를 유지한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박근혜 세제 개편안을 두고 대기업 과세로 보완하라는 식의 입장으로는 결코 복지를 위한 재원 마련이나 조세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는 일단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나면, 부가가치세 확대, 소득공제 비율 축소 등으로 조금씩 노동자 증세를 다시 늘려나갈 것이다. 경제 위기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증세는 필요해지지만, 조세 불평등의 뿌리인 부자 감세 철회와 증세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실 2000년대 이후 전체 국민소득에서 기업소득 비중은 늘어왔고, 근로소득은 줄어 왔다그런데도 정부는 노동자 소득은 유리지갑으로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맘대로 꺼내 써 왔다. 반면, 지난 10여 년 동안 법인세 등 부자 감세는 계속돼 왔다.


2000년 대비해 2011년 법인가처분소득은 533퍼센트 늘었는데, 법인세 부담은 겨우 151퍼센트만 늘렸다. 반면 같은 시기 개인가처분소득은 86퍼센트 늘었는데, 소득세는 142퍼센트로 소득 비해 대폭 늘렸다.”(선대인경제연구소)


이렇게 걷은 돈은 정작 1퍼센트 특권 세력을 위해 펑펑 써 왔다. 올 상반기에만 세금 10조 원이 덜 걷혔다면서, 정부는 7월에 총 6조 원이 넘는 기업 지원책을 내놨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첨단 살상무기 구입에 수십조 원을 쓰겠다고 한다.


국정원의 일베충 댓글 알바에 수천만 원을 쓴 게 드러났는데, 이런 범죄 행위에 총 몇 억, 몇십 억 원이 들어갔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다이건희의 상속세 탈세만 제대로 잡아냈어도 2조 원 넘는 돈을 걷을 수 있었다. 그 아들의 상속세는 또 어떤가. 범죄자 전두환의 불법 정치자금은 징수는커녕 더 천문학적인 부를 늘리는 종자돈으로 사용돼 왔다.


소득불평등에 더해 조세불평등까지 심각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조세 저항’ 여론은 완전히 정당하다. 연봉 5천만 원 노동자보다 주식차익 5천만 원 불로소득이 세금을 더 적게 내는 사회에서 노동자 증세가 어떤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껏해야 수천만 원 연봉의 노동자들을 소득 기준으로 줄 세워 놓고 너 정도면 더 내도 되니 마니 하는 보편증세론은 틀렸다. 적나라한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침묵한다는 점에서 비겁하고 관념적이다[각주:1]


조세도피처에 숨겨진 한국 돈이 9백조 원이 넘는다. 국세청이 뇌물 받고 깎아준 재벌 세금도 어마어마하다. 대기업 현금보유액만 1백조 원을 넘는다. 노동자들이 뭉쳐서 이런 돈으로 복지를 늘리라고 싸워야 한다.



□ 복지는 어떻게 늘릴 수 있는가


노동자가 세금을 더 내면 박근혜가 복지국가를 만들어 주리라 믿는 노동자들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는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고 시늉이나마 복지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도 하기 전에 기초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의료보험 보장 등 쥐꼬리만한 복지 공약마저 모두 후퇴했다. 표만 얻고 튄 대표적 먹튀 공약이 된 것이다. 


자본가들은 경제 위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은 복지를 늘리는데 자신들의 돈이 들어갈까 봐 핏대를 세우고 복지 확대에 반대한다.


박근혜는 바로 이런 1퍼센트 특권 세력의 반동적 대변자인 것이다. 박근혜를 따라 집권당들과 고위 관료들은 이런 자본가들의 지지를 유지하려고 부자 감세에 열을 올리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일렬종대로 헤쳐 모이는 것이다.(그래서 민주당도 집권하면 그렇게 변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도 세금을 먼저 내는 것 그 자체로 무엇이 이뤄진다고 기대할 순 없다. 거대한 대중투쟁만이 경제 위기 시대에 복지 확대를 쟁취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스웨덴 등 잘 정비된 복지국가는 거대한 노동자투쟁이 자본가들이 겁에 질리도록  압박했을 때 세워졌다. “개혁을 주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혁명으로 답할 것”이란 말이야말로 냉혈한 같은 자본가들이 양보에 나설 때 심정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탐욕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와 노동자 증세 반대, 경제 위기 고통전가 반대 같은 요구를 내걸어야 이런 단결을 이룰 수 있다. 보편증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 이런 단결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계급적 단결과 투쟁에 자본을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조직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또한 이런 투쟁은 국정원 정치 공작 규탄 같은 민주주의 투쟁과도 만나야 한다. 박근혜의 복지 후퇴와 고통전가, 노동자 증세 반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런 단호한 투쟁의 자세가 돼야 한다. 


  1. 세금부터 올렸다가 박근혜가 복지 축소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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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투자하는 분은 업어드려야 한다”고 나서자, 경제부총리 현오석은 새만금에 가서 진짜로 사장 한 명을 업어주는 ‘어부바’ 쇼를 벌였다. 


그리고는 일주일 만에 ‘부자 감세 노동자 증세’ 세금 개악안을 들고 나왔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3 세법개정안’은 “소득·소비과세 비중을 높이고, 법인․재산과세는 성장친화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늘려 과세기반을 확대하겠다고도 한다.(간접세는 역진적이라 간접세를 늘리는 것은 조세불평등이 커지는 것이다.) 심지어 “상속증여세는 … 높은 누진세율 체계 등으로 인해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큼”이라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전체 세금 수입중 소득세 비중이 낮고 법인세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소득이 높거나 세금을 적게 내서가 아니다.


재벌들이 체불한 통상임금만 최소 20조 원이 넘고, 마땅히 정규직 임금을 받아야 할 현대차 비정규직 수천 명이 방치되는 현실 때문이다. 이건희가 안 낸 상속세만 2조 원인데, 이는 이번 개악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걷겠다는 1년치 돈보다 크다.


2000년대 이후 전체 국민소득에서 기업소득 비중은 늘어왔고, 노동소득분배율은 낮아져 왔다. 그런데도 지난해와 올해 소득세로 걷은 돈은 계속 늘어왔다. 법인세를 그동안 얼마나 깎아줬기 때문일까.



노동자는 등쳐먹고, 기업주만 업어주는 재벌 어부바 쇼.



사실 소득세만 놓고 보면, 누진성이 부족한 게 진짜 문제다. 소득에 매기는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많이 매겨야 돈이 나오는 법이다. 아니면, 노동자들 월급을 대폭 올리든지! 지금도 5백여만 명이 소득이 적어 세금을 안내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편안은 노동자들에게 십시일반해서 재벌과 부자들에게 퍼주겠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상반기에만 10조 원이나 세금이 덜 걷혔다면서도, 정부는 7월에 총 6조 원이 넘는 기업 지원책을 내놓은 바 있다. 국방부도 5년간 70조 원의 최신 무기를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낸 바 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설명을 보면, 이번 세제 개악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걷어가려는 돈은 총 1조 3천억 원가량 된다. 이걸 5년 간 누적으로 하면, 10조 원이 넘는다. 연봉이 3천4백50만 원을 넘는 노동자 4백34만 명(전체 노동자의 28퍼센트, 세금 내는 노동자의 43.7퍼센트)가 1년에 16만 원에서 1백만 원가량 더 내야 한다.[각주:1]


청와대 경제수석 조원동은 “이 정도는 …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 그동안 봉급 생활자는 특혜를 받아 왔다”며 염장을 질렀다.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나성린은 ‘연소득 1억5천 이상 사회주도층에게 증세는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자백했다. 이쯤 되면 사회주도층이 아니라 사회강도층이라 부를 만하다. 


이번 안은 전형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며, 유리지갑 노동자들에게 벌이는 강도짓이다. 결국 ‘증세 없이 복지한다’던 박근혜의 허황된 약속은 결국 ‘복지 먹튀, 노동자 증세, 재벌 퍼주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계급 불평등 성격을 감추려고 소득공제를 폐지해 세액공제를 늘리는 것이 대략 연봉 3천만 원 이하 노동자들에게는 유리하다고 말한다. (또, 연봉 3천만 원 이상 노동자층을 굳이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다.) 그러나 이런 말은 연봉 3천만 원 이하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영원히 오르지 말라고 주문을 거는 것밖엔 안 된다. 


무엇보다 소득공제 축소의 목표는 ‘과세 기반 확대’지 ’복지 확대’가 아니다[각주:2]‘과세 기반 확대’란, 세금 안 내던 노동자들도 세금 내라는 말이다. 부자감세로 줄어든 재정을 노동자 증세로 채우겠다는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단어인 것이다[각주:3]. 상위 노동자의 세금으로 하위 노동자의 복지를 늘린다는 말이 감언이설에 불과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일부 보편증세론자들의 주장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그들은 대기업 과세가 빠진 게 아쉬운 거지, 노동자 증세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한다. 


구체적 노동자 삶의 현실에서 복지 확대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자신들의 관념에서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니, 이런 전도된 분석이 나온다. 복지를 위한 증세는 필요하지만, 보편 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가 돼야 조세·복지·소득의 거대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 


노동자 유리지갑에 빨대 꽂기와 대기업 봐주기는 한 몸통이다. 저들의 의도는 대기업 과세를 피하면서 재정을 늘리려고 노동자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첨단 무기 구입이나 국정원 댓글 알바 고용 따위에 쓰겠다는 것이다. 


1퍼센트 기득권 세력이라는 저들의 기반과 본성을 똑바로 파악한다면, 감언이설에 속을 이유가 없다. 조세 불평등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옳고, 이를 조세저항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쪽이 틀렸다. 왜 유리지갑 구실을 하면서도 변변한 복지 혜택을 못 받아왔던 노동자들이 저들의 책임을 대신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이번 세제개편안은 첫째, 부자증세(=누진세 강화)가 아니라 ‘과세 기반 확대’(=노동자 증세)를 하려는 것이다. 둘째, ‘복지 확대’가 아니라 ‘정부 재정 벌충’을 위한 것이다. 셋째, 이렇게 해서 채워진 재정은 저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박근혜 세제개편안을 통째로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조세도피처에 숨겨진 한국 돈이 9백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뉴스타파>의 폭로로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국세청이 뇌물 받고 깎아준 재벌 세금도 어마어마하다. 대기업 현금보유액만 1백조 원을 넘는다. 노동자들이 뭉쳐서 이런 돈으로 복지를 늘리라고 싸워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109호에 실린 기사에 살을 붙인 것이다.  


  1. 일부에서 이 노동자층을 굳이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다. 연봉 3천5백이면 주요 대기업 대졸 초봉도 안 된다. [본문으로]
  2. 세금 걷는 입장에서 사안을 보는 정책 기술자들에게는 중요한 대안인지 모르겠으나, 세금 내는 노동자들 처지에선 본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본문으로]
  3. 이런 용어법은 많다. 역대 정부와 재벌들은 사기업화를 민영화로, 민영화를 선진화로 포장했다. 정리해고와 노동자 쥐어짜기를 구조조정과 선진시스템 배우기로 포장해 왔다. 성적 차별 교육을 공정한 경쟁을 통한 우수 인재 선발로 포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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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날치기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이 물타기를 하고 있다. 

당 대표 홍준표는 11월 27일 이명박을 만나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로 부자 증세, 민생 예산 3조 원 증액을 요구했다. 심지어 부자 증세를 반대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의 경질도 요구했다. 

28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9만 7천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청소 용역 노동자들은 4대보험을 보장하는 등 노동 복지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복지가 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안정되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친기업ㆍ반노동 정책을 펴 온 1퍼센트 대변 정당의 말 바꾸기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99퍼센트’를 짓밟는 한미FTA라는 핵폭탄을 날치기한 후 나타난 말 바꾸기를 말이다.

물타기
우선 박근혜가 ‘부자 증세는 곤란하다’며 선을 그었다. 증세 대상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가까스로 의견을 모아도 이명박과 재경부 등과 원만히 합의될 리 만무하다. 

지난 4년 동안 부자들 세금을 수십 조 원이나 깎아 주고는 이제 와 그 돈의 5퍼센트도 안 되는 세금을 걷으며 부자 증세라고 할 수는 없다.

이 탐욕스런 자들이 쉽게 자기 금고를 열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비정규직 무기계약직화도 그렇다. 현행법상 당연한 의무며, 이미 4년 전에 나온 약속을 우려먹은 것이다. 

게다가 무기계약직화는 정규직화를 회피하고 차별을 고착화하는 수단이다. 

그동안 이명박은 해마다 복지 예산을 역대 최대로 늘렸다고 떠벌려 왔지만, 자연증가분을 빼면 도리어 실질 복지 예산은 삭감돼 왔다. 한나라당은 그런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온 장본인이다. 

제대로 복지를 늘리려면 감세해 준 돈을 다시 환수하고, 소득세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 자산에 대한 세금, 기업 법인세도 늘려야 한다. 이런 복지 확대는 대중이 직접 거리에서 투쟁을 해야만 쟁취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약 주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 것은 거리에서 불붙은 한미FTA 반대 투쟁 때문이다. 

이처럼 꼼수로 가득 찬 한나라당의 ‘복지 사기극’을 믿느니 한미FTA 날치기 비준안에 서명한 이명박의 손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라는 한 목사님의 저주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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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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