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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이 토론에 대한 촌평은 좀 시간될 때 따로 하겠음.


김문성님이 게시물을 공유했습니다.

한겨레 페북 관리자는 좀 자중하시라. ㄱ씨의 행동이 잘못인 건 맞지만, 그의 범행 동기가 왜 여성혐오냐고 물으면, 여성혐오 때문이라는 동어반복 말고 나올 답이 뭔가? 일종의 답정너 같은 것으로 현실에서도 논리로도 타당치가 않는 논법이다.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체에 강요한 인간 타락의 문제를 여성혐오로 치환시켜서 도대체 보통 여성들이 얻을 게 뭔지도 생각해 보시고. 남성을 무찔러 여성 취업문을 넓히면, 그건 무한경쟁에서 탈출인가? 서로 남혐, 여혐 하고 싸우자는 얘기밖에 더 되나? 그런 상황을 누가 좋아할까?
글 쓰다가 올라가 버려서 다시 덧붙이면, 기사 말미의 신지예 후보측의 답변이 공식 답변이라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대졸 무직자가 포스터를 찢은 게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의 공고한 단면이라니?!?! ㄱ씨는 그 공고한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람이다. 나경원, 이언주, 이은재가 웃고 갈 노릇.

신지예 후보의 벽보를 훼손한 ㄱ씨는 “여성들이 잘 나가면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아 벽보를 훼손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_여성혐오가_맞다

HANI.CO.KR
대학 졸업 뒤 1년 간 중소기업에 다녔던 ㄱ씨는 현재 무직이다
댓글
장동엽 글쎄요. '타당치가 않는 논법'으로 만들기 위해 오히려 김문성 님께서 논법을 비틀어 버리시는군요. 기사대로라면, ㄱ씨가 밝힌 범행 동기 자체를 그저 '여성혐오' 라고 하는 거지요. '왜 여성혐오냐'는 질문 자체가 필요 없는 거지요. 물론 '여성혐오' 현상의 배경과 관해선 말씀하신 신자유주의 등 분석과 담론이 깔리겠습니다만, '여성이 잘 나가면 취업이 어려울 것' 이라는 피의자 ㄱ씨의 왜곡된 인식을 마치 여성들이 '남성을 무찔러 여성 취업문을 넓히자'고 주장하는 듯 말씀하시는 것이야말로 그릇된 논법이지요. 물론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서도 드러나듯 페미니즘 한 쪽에서 혐오를 들고 나오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그같은 주장이 다수이거나 신지예 후보가 들고 나온 적은 없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정서와 일맥상통하고 남성중심의 기득권 정치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준다”는 신 후보의 멘트에서 '여성혐오 정서' 부분만 빼고 다루시는 것 또한 왜곡으로 가는 길이지요. ㄱ씨가 '남성 기득권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람'이라는 말씀이 어떤 뜻으로 남긴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존의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페미니스트 후보의 포스터를 훼손한 ㄱ씨는 적어도 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스스로 배제됐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고 봐야겠지요. ㄱ씨가 가진 '여성혐오 정서'는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고, 그같은 기득권 정치는 ㄱ씨 자신도 속한 약자에 대한 배제나 혐오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보여주지 않고 않습니다. ㄱ씨는 그 책임을 기득권 정치에 묻기보다 여성혐오로 답을 찾을 뿐이지요. 적어도 신지예 후보나 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혐오'로 맞서진 않습니다. 여성 등 약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남성들에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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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님의 댓글 자체가 이른바 여성혐오 현상을 여성혐오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무엇을 반박하시려 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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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기사에 인용된 사진을 보세요. 신지예 씨 왼편의 6번, 7번 후보도 여성 후보입니다. 왜 그 후보들의 포스터는 찢기지 않았을까요? 꼴통 우익인 7번 후보는 그렇다쳐도 심지어 6번 후보는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앞세웠는데요? 민중당도 기득권 남성정치의 카르텔입니까? 그렇지가 않잖아요.
현실에서 출발해야지, 담론에 빠져서 담론을 설명하려면, 누군들 자기 정당화를 못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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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김문성 님의 이 말씀 자체가 이해가 안 가네요. 저는 ㄱ씨의 범행 동기와 배경 인식 자체를 '여성혐오' 라 정의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만... ㄱ씨 같은 행동과 인식이 모이고 모이면 '여성혐오 현상'이 되는 것이겠고요. 이를 테면... 소아성애를 가진 남성들의 범죄를 '소아성애 범죄'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굳이 뭘 문제 삼는지 핵심을 이해할 수 없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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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정의가 결국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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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김문성 기사 인용 사진을 언급하시는 것이야말로 님의 논법이 그릇됐음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합니다. 사실관계도 틀렸고요. 김진숙 후보도 여성이니 여성 관련 정책 공약들을 내걸긴 했습니다만, 적어도 포스터에 담긴 핵심 슬로건은 "비정규직 서울시장" "유일한 노동자 진보서울시장"이었습니다. 다른 여성 후보들은 선거 기간 내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건 신지예 후보와 달리 페미니즘 논쟁의 이니셔티브를 쥐려 하지도 않았고요. 뭐 굳이 ㄱ씨늬 범행동기를 '여성혐오'가 아닌 '페미니즘 혐오' 또는 '페미니스트 혐오'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니다만, 굳이 다른 여성 후보 포스터를 훼손하지 않고 신지예 후보 포스터만 곡 찍어 훼손했다고 해서 '여성혐오' 범행이 아니라 정의해야 할 까닭은 없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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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비문이 있어서 조금 손봤습니다.)
네, 조금 논의가 진전되는 것 같네요.제가 바로 옆 후보들의 포스터를 언급한 것도 생물학적 여성 문제만으로 ㄱ씨의 행위조차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하려고 한 겁니다.
모든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님이 인정했듯이) 페미니스트 혐오라고 하는 게 일관성은 있어 보입니다.(물론 저는 그것도 과도하다고 봅니다만. 지금 페미니즘은 일종이 유행 흐름을 타고 있고, 정서나 담론이 확산되고 있으니까요. 기존에 눈에 띄지 않던 것이 흥할 때는 항상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죠. 그걸 여혐, 백래시라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여성이므로 무조건 싫다고 한 게 아닌 것을 여성 혐오라고 규정하는 게 옳을까요? 신 후보 측이나 장동엽 님이 말하는 남성 기득권 정치 구조와 관련해 이 남성을 일종의 공모자 또는 그 구조의 일부처럼 보는 건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뜻인데, 기사만 봐도 신지예 후보의 훼손된 포스터 27개 중 적어도 20개가 이 ㄱ씨 한 명이 훼손한 겁니다. 만연한 여성혐오라고 할 수도 없고요.
따라서 이 문제를 남성기득권정치의 발현으로 얘기하는 것도 설득력은 없습니다. 장동엽 님 말씀처럼 민중당 김진숙 후보가 여성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아서 포스터 훼손을 피했다면, 님 논리대로면 김진숙 후보도 남성기득권정치로 비춰졌기 때문에 포스터 훼손을 피한 거라고 규정할 수가 있게 됩니다. 물론 장동엽 님이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런 취지에서, 제가 신지예 후보측의 남성 기득권 정치 언급을 인용할 때 여성 혐오라는 앞부분을 굳이 인용하지 않은 겁니다. 저는 같은 현상을 지칭하는 걸로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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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쉽게 말하면,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게 현재까지 님의 결론인데, 장동엽 님의 주장을 인정해도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인데, 이를 한겨레 페북 관리자처럼 “여성혐오가 맞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저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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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김문성 님께서 듣고픈 대로 해석하시려는 듯하군요. 제 글에서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으로 해석하실 여지를 드리진 않았다고 봅니다. 제가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혐오'를 굳이 나눠서 말하려 한 게 아니라는 것도 더 잘 아실 듯합니다. 굳이 나눠서 봐야 할 까닭도 없고요. ㄱ씨의 범행 동기를 굳이 따로 해석할 까닭조차 없이 '여성혐오'로 봐야 한다는 게 일관된 주장입니다. '여성혐오' 개념을 행위로 보느냐, 인식으로 보느냐도 의미 없는 논쟁이고요. '여성은 싫어, 여성은 사라져' 라는 인식만이 '여성혐오'가 아니라, '여성이 잘 나가면 취업이 어려울 것' 이라는 인식도 다른 합리적 요인들 대신 자신과 경쟁할 대상에서 여성만을 끄집어내 적대시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인 거죠. 선거철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의 포스터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보복행위(백래시)를 벌인 것고요. ㄱ씨 스스로 '여성'을 대상화했음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논쟁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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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ㅋ 논쟁을 님이 어떻게 규정한다 해서 상대가 있는 논쟁의 성격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ㄱ씨는 어쨌거나 제가 아는 수준에서 자기의 취업을 걱정했지, 남성의 권리를 걱정한 게 아니에요. 님처럼 아무데나 같다 붙이면 오히려 여성혐오가 의미없는 개념이 됩니다.
또한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하라는 집회에 미조직 대중 수만 명이 참가하는 시대에 백래시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한심한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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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김문성 ㄱ씨가 자기 취업 걱정했다는 게 ‘여성혐오’는 아니라는 근거인지 의이하군요. 문제는 자신의 경쟁 대상을 여성으로만 규정했음을 핵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성혐오’를 굳이 저나 님이 해석할 까닭도 없는 사례입니다. 피의자 ㄱ씨 스스로가 규정한 응징 대상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 듯한데요. 
님께서 말씀하시는 집회의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의 주장이 페미니즘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순 없겠습니다만, 집회 참가자 수만 명이 얼굴을 드러내지 못 하는 까닭, 이 순간에도 여성 또는 페미니스트들을 향하는 보복 사례와 유형들을 모르시진 않을 듯한데 이 시대를 그리 규정하시니 오히려 당혹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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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결국은 여성혐오니까 여성혐오라는 순환논법이라는 쟁점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모든 여성에 대한 혐오는 아닐 수 있다고 하시길래 논의가 진전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네요.
신지예 후보측의 답변에서 제가 문제 삼은 건, ㄱ씨의 찌질한 행위를 ‘만연한 여성혐오’(남성 기득권 정치 구조)의 일부라고 본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남성이 어쨌거나 여성이 내 취업에 방해되는 요소라고 생각했으니 여성혐오다? ㄱ씨가 남자들이 내 취업에 방해되는 요소라고 생각했으면 훌륭한 남성 페미니스트인가요? 아니죠? 그래서 저는 흑백 논리를 피하자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님 말씀대로 여성이 미움의 대상에 들어가면 모두 여성 혐오라는 주장을 저는 흑백논리로 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죠.)
불황에 취업 경쟁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저열하거나 모순된 의식을 죄다 혐오분자다라는 식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죠. 6번, 7번 후보의 포스터 얘기도 그래서 든 것이고요.
아마도 ㄱ씨가 발끈한 건 여성에 대한 일종의 어퍼머티브 액션 같은 것에 대한 반감일 가능성이 큰데, 그게 다 여성혐오인가요? 가령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어퍼머티브 액션’에 반감을 품는 것을 우리가 지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주장에 우호적인 모두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를 순 없는 거죠.
사실 지금 미국 진보진영 또는 민주당 안팎에서 이뤄지는 정체성정치 논쟁이라는 게 바로 그런 식으로 딱지 붙이기 한 결과, 열악한 처지의 백인 남성들을 공화당 또는 트럼프 지지로 몰아간 것 아니냐 하는 문제 아닙니까? 장동엽 님이야말로 이런 논쟁들을 모를 리 없을 텐데요.

그리고 집회와 페미니즘의 강세 얘기는 여성 차별과 천대의 현실을 부인한 게 아니라 과장하지 말라는 겁니다.(반작용 얘기는 오히려 제가 먼저 꺼냈죠.)
‘보복’(?)이 걱정 돼서 마스크를 쓴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수만 명이 실외 집회에 나오는 거에요. 그게 대서특필되고 사회적 압력이 되고 있습니다. 백래시를 상수라고 쳐도, 그걸 여성들이 이겨내고 있고 그 목소리가 사회에 영향을 발휘하는 게 현실인 거죠. 무엇이 지금 대세인가요? 그래서 백래시 개념에 대해서도 여혐 개념과 마찬가지로 ‘남용’하지 말자는 것이고요.
저라면,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할 역량과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요구를 지지한다고, 그러니 스스로를 능동적 주체로 긍정하라고, 지각있는 남성들과 또 남녀가 함께하는 노동운동과 연대하라고 말하겠어요.
그것이 워마드나 인종차별적 난민 반대처럼 스스로에게 도움되지 않는 방식을 여성들이 굳이 항의의 수단으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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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김문성 님과 처음부터 댓글 논쟁 시작하는 게 아니었나 싶어지네요. 님의 '순환 논법'이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여성혐오'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달라서인 듯한데, 님의 말씀에서 스스로 답을 갖고 계신데 자꾸 부정하시니... "찌질한 행위"라도 '여성혐오'인 거지요. 무슨 대단한 짓을 벌여야 '여성혐오' 범죄인 건 아닙니다. 여성 후보자 포스터를 죄다 난도질해놔야 '여혐'인 거 아니냐는 인식이라면 당혹스럽고요. 
"찌질한 행위"를 벌인 ㄱ씨가 성별로 나누어 볼 문제가 아님에도 여성만을 적대시해 범행을 벌인 것만으로 설명이 끝날 문제라는 뜻입니다. 님 말씀대로 장기불황과 취업경쟁에서 비롯된 그릇된 인식과 행동이라는 정의와 '여성혐오' 범죄가 굳이 나누어 설명할 까닭도 없지요. 성범죄들도 그 원인을 톺아보면, 사회경제적 요인들과 맞닿아 있듯이 말입니다. 
여성들을 수동적 피해자라거나 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할 역량과 자격도 갖추지 못한 존재라 보니마니, 워마드니 난민 반대니 갖고 오셔서 논점을 흐리고 계시는데, 그 정도 기본 인식은 갖추고 있다는 걸 전제로 논쟁하던 것 아닌가요? ^^ 그리고 저는 워마드나 난민 반대한다는 페미니스트들에 단 1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제 글에서 의도적으로 '페미니즘 한 쪽'이라 일컫고 있는 거지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하라는 집회에 미조직 대중 수만 명이 참가하는 시대에 백래시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한심한 일도 없다"는 님의 말씀이 담고 있는 인지 부조화가 그 뒤의 댓글에 담긴 설명으로도 헤소되진 않아요. 언론들이 좀 더 다루고 있다 해서 대세라고 보는 것도, 백래시가 사라졌거나 약화됐다고 보는 것도 우습고요. 
뭐 지나친 피해의식이라 보시는 듯합니다만,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졌다 해서 '여혐'과 '백래시' 개념을 '남용'하고 있다거나 '여성 차별과 천대의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 말씀하시는 건, 객관적 지표들이 가리키고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님의 '믿음'까지 바꿀 능력도 동기도 제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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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여성 후보자 포스터를 죄다 난도질해놔야 '여혐'인 거 아니냐는 인식이라면 당혹스럽고요. "찌질한 행위"를 벌인 ㄱ씨가 성별로 나누어 볼 문제가 아님에도 여성만을 적대시해 범행을 벌인 것만으로 설명이 끝날 문제라는 뜻입니다.”
문장 전체 인용입니다. 여기서 모순이 전혀 없다고 느끼신다면, 그냥 서로 개념과 인식이 다른 걸로 정리하지요. 님 입장에서 보더라도, 행위와 동기 모두에서 왜 특정 여성상만 반감의 대상이 됐을까를 성찰해 보셨으면 합니다. 신지예 후보가 보인 잠재력이 앞으로 더 잘 발휘되기 위해서도요.
인식의 지반은 달라도 최소한 진전되는 토론이 가능할 거라 보고 논의를 풍성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제가 이해하는 한 이 논쟁의 밑에 깔린 논점들을 포함해 제기한 여러 문제들이 논점을 흐리는 수법이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남성의 여성 대상 범죄니 무조건 여성혐오여야 한다는 확증편향적 입장이라면, 저의 제기가 논점 흐리기가 맞겠죠. 더 대화할 것도 없겠고요. 
그런데 자기들 주장 입증하려고 보통의 노동계급 남녀들끼리 일부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범죄만 강조하고, 일부는 여성이 남성에게 저지른 범죄만 강조하는 그런 우스운 상황이 계속되길 바라시나요? 최소한 진보를 표방하는 활동가들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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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30번째 죽음이란 소식 앞에서 



살인 진압의 절정이던 2009년 8월 4~5일 쌍용차공장 앞 상황이 떠오른다. 소리없는 그림들과 아비규환이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그때 배운 것들. 분노(憤怒)는 이성(理性)을 더 차갑게 만든다. 냉정한 이성의 곁에서 분노는 더 잘 탄다. 무력한 분노야말로 지성(知性)의 작용을 방해한다.

결국 쌍용차 파업은 8월 6일에 패배로 끝이 났다. 영웅적으로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와 사측, 재계는 총단결해 전투를 벌였는데, 노동계급 편에서는 그러질 못했다. 금속노조 연대파업 불발 탓이 컸다.


※ 살인진압 현장에서 쓴 기사들 일부.


7/20 쌍용차 경찰 진압 시도와 노동자 부인의 자살: 더 이상 죽이지 마라 https://wspaper.org/article/6811


8/4 살인 진압으로 대형참극이 시작되고 있다! 즉각 모두 평택으로! https://wspaper.org/article/6855 


8/4~5 쌍용차 살인 진압 시작 : 노동자들을 생지옥에서 구하기 위한 강력한 연대가 절실하다, 모두 다 평택으로! https://wspaper.org/article/6854


8/13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77일간 저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https://wspaper.org/article/6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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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단상



여성혐오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반감이 과장되게 표현되는 건 ‘백래시’ 때문이 아니라 높아진 자의식과 기대치에 사회 변화 속도가 부응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본다.
이 밑바탕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사회(경제활동)에 진출하고 그에 따라 독립성이 고취된 현실이 있다고 본다.(부엌데기×)
다르게 표현하면, 여성 노동계급이 대거 형성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것인데, 그 배경 하에서 고위층 성비도 조금 변화했다. 자본주의는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계급 사다리를 열어놔야 하는데, 그게 직장 안팎의 젠더 문제로도 확장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예전엔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과 소위 여권(여성의 권익)에 대한 태도가 거의 일치하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인식의 개선 때문에 그렇게 동조화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박근혜가 꼴보수 노인층의 지지를 크게 받았던 걸 봐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익적 행태들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거나 묵인하던 종류의 페미니즘이 최근 중동 출신의 난민들에게 쏟아붓는 인종차별적(우익적) 폭언(멸시와 천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 추가: 그럼에도 정치적 진보·좌파와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의 평균보다 더 여성의 권익에 친화적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여성을 중심에 놓은 분리주의(정체성정치)의 급진주의에 동조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비록 그들 언행의 사회학적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공감의 지평은 넓힐 수 있어도 말이다.
평범한 다수 여성(노동계급이 대부분인)에게는 삶의 문제인 취업, 임금, 일자리, 낙태, 육아 등등이 중요하다. 이 문제들에서 진보를 이루려면, 일반으로 말해 성별을 가리지 말고 계급으로 단결해야 유리하다. 계급으로 단결하려면 국경 밖으로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우리랑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들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난민 약자라고 우습게 보고 천대해 봐야, 계급적 편견만 강화돼 국내인들끼리의 관계에서는 여러모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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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우파 참패, 그리고 ...


일단은 기쁘다. 탄성이 나온다. 촛불의 여파가 그때처럼 격하지는 않지만 1년을 넘게 지속하며 조금씩 파도처럼 밀고 가고 있다. 촛불이 우파를 약화시킨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됐던 남북화해 국면이 극적으로 힘을 얻으면서 우파 참패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진정한 평화가 되기엔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여전히 더 크지만)
그래서 많이들 예측했고 우파 야당들 스스로 반응했듯이(선거 내내 집토끼 지키기의 수세로 일관), 격한 반(反) 우파 정서가 일단은 민주당 몰아주기로 표현됐다.(우파 약세가 대선보다 좀 더 전국화됐고, 김문수 표를 보니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가 얻은 표를 대강 지켰다.)
그런 점에서 보면(선거 전 조건에 비춰 봐도) 광역단위에선 대체로 이재정이 교육감 된 것 말고 나올 결과가 나온 듯하다. 진보정당은 애초부터 주로 지역의 기초 단위에서의 전진에 초점을 뒀는데, 그 결과는 밤에 더 살펴 봐야 할 듯하다.(울산 북구는 아쉽지만, 이미 선거 기간에 판세가 결정된 듯 보여서 ...)
오늘 선거 결과와 한반도 평화 국면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좌우의 압력에 대항하는 힘은 당장은 세질 것이다. 
그러나 점점 핑계 거리가 없어질 것이므로 밀어 준 만큼 지금보다 더 개혁 염원이 청와대로 집중될 것이고, 개혁 추진에 대한 조급함도 커질 것이다. 그래서 경제와 안보 문제에서 이변이 없다면, 총선까지 힘을 실어달라며 이 정부의 줄타기는 계속될 것같다. 
그러나 이미 노동 문제에서 문재인은 촛불 염원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부 경제 지표 악화를 이용해 지배계급이 압박하고 있기 때문)
촛불이 표현한 반(反) 우파 염원의 밑바탕에는 계급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우파 야당이 선거에서 찌그러지는 것은 과정에서의 목표이지, 그게 다가 아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아래로부터의 촛불 염원의 편에 서서 보자면, 할 일은 여전히 많고, 그것은 올곧게 개혁 염원을 대변하고 노동 개악 등에 반대해 투쟁을 건설하는 일일 것이다.



12년 전 한나라당 싹쓸이 분위기에 함께 휩쓸려 시무룩해 하던 민노당 시절 동료들이 생각난다. 만만치 않은 선거 경험 속에서 때마다 깨닫는 건 선거는 이전 활동의 결과물인데, 개인이 열심히 한 건 +@ 이고 제일 큰 요인이 선거 구도를 좌우하는 넓은 차원의 사회적 세력균형이라는 것. 이번처럼 분위기가 분명한 선거에서 전국 결과는 누구라도 대강 예측이 가능한 이유.

정당이나 개인의 개별적 노력은 대체로 바로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혁명, 항쟁, 공황, 전쟁 같은 격변적 사건이 이후의 일상(구조)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지, 일상이 단순히 누적된 효과로 구조가(따라서 일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격변적 사건의 발생에 일상적 실천이 기여했다면, 사실 의도한 바와 무관하게 새롭게 형성되는 맥락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큰 변화를 추구하며 혁명 같은 격변으로 가는 길을 닦으려는 실천이다. 1980년대 초중반의 투쟁들과 87년 항쟁, 산발적인 反박근혜 투쟁들과 박근혜 퇴진 촛불 등등의 사례가 있다. 아울러, 촛불 사건에 영향을 미친 일상은 노동운동이 실천한 일상이었지 민주당과 문재인이 우파와 공존하던 일상이 아니었다.

촛불은 혁명이 아니었고 가령 87항쟁(6, 7~8)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큰 사건이었다. 대중 참여 규모가 그래서 중요하다. 여진이 아직도 사회 곳곳으로 시간을 두고 잔잔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선거는 사건이 아니다. 그러니 촛불 여파가 새삼 크게 확인된 지금, 촛불이 선거 이후에도 또 한차례 변형된 맥락 속에서 영향을 미치는 거지 선거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원인인 게 아니다.(정의당이 광역비례에서 전국적으로 선전해 대선 때보다 더 많이 득표한 것이나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가 8만 표 넘게 얻은 것도 좋은 일이고 촛불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정한 촛불 계승 정부가 아니므로 문재인은 선거 이후에도 지금처럼 계속 줄타기를 할 것이고, 노동계 진보/좌파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좋은 기회들이 가까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일상적 시기에 어떤 사건들의 결과로 생기는 열매는 그걸 심지도 않은 일상의 권력자들이 가져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투쟁하는 (그래서 일상의 구조를 흔들 만한 큰 투쟁을 만들어내는) 노동 대중(과 좌파)인 것이다. 

일상의 실천에서도 정신과 목적에는 “혁명의 현실성”이란 문제의식이 깔려야 하는 이유다. 사실 그게 지금의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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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 하루 전 단상]


드루킹 여론 조작이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 정치 공작과 본질(지배계급 정당들의 공작적 여론 조작)에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나로서는, 친문 강성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박근혜의 채동욱 죽이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개인 사생활 영역(프라이버시) 문제로 경쟁자 망신 주고 공직에서 끌어내리기.

이재명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문재인 왼쪽에 자리잡으며 이만큼 성장한 것이기 때문에(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친문이 이재명 죽이기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는 우파의 사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문재인의 최저임금 삭감법이 그러듯이.

그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뜬금없는 친미 아부와 대연정 제안으로 한나라당과 우파 기만 되살려 준 노무현의 충실한 진성 후예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파를 약화시키려면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의 위선적인 적폐 청산이나 노동 개악 등에 지금보다 더 사납게 반응해야 하고 다른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문재인이 왼쪽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파에게는 이 중도 자유주의 정부를 약화시키고 소생할 기회가 계속 있다. 이 운명을 좌, 우, 중도 세력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결국에는 좌파의 구실과 성장, 노동운동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정치는 친문의 이재명 죽이기를 폭로하고 비판할 정도로 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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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추가 [6.15 단상 나도 덕담 할 줄 안다]


정식으로 선출된 진보교육감 후보라서 최악의 경우 찍어주고 욕을 해야 설득력 있을 것 같아서 한 조희연 교육감을 빼고는 어쩌다 보니, 다 여성 후보에게 투표를 하게 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어쨌거나 그 중 한 표가 여성 노동자 의원 탄생에 기여했으니 다행이다. 구의원은 진보 단일 후보라 해서 녹색당 후보를 찍었는데, 정의당/민중당/녹색당 단일 후보였다. 서울에선 시비례에 노동당이 출마하지 않았으니,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자로서는 노동당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여러 글들로 노동당을 응원하기도, 안타까워 하기도, 사납게 비판도 해 왔는데, 최근 노동당의 어려움을 보니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러나 노동당 내 누구도 노동과 젠더 문제를 현명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정치를 발전시키려 하지 않은 문제(회피할 수 없는 문제)는 쓰지만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의당의 광역비례 득표가 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선거 막판에서야 들었다. 오비이락 슬로건에 불만이 많았는데(민주당 쓰나미 추수), 그 때문에 약간 냉철함을 잃은 듯하다. 저득표를 감수하고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을 출마시킨 건 광역비례 득표를 위해서였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경기에선 비례만 2명이 되는 쾌거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위상이 높은 만큼 이쪽도 출마 전에 이미 거물이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겠고, 전국적 구도가 훨씬 크게 작용하는 어려움도 있으며, 박원순과 이재명이 진보적으로 비치는 면이 강해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암튼 8년간 명맥이 끊겼던 여성 노동자 서울시의원의 역할을 권수정 의원이 잘 해 주길 바란다. 

민중당은 선거평가 논평에서 광역 비례 총합 100만 표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는데, 진심인지 모르겠다. 정의당이 대표 진보정당으로 총대선에서 상당히 자리잡아버린 상황에서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게다가 신생정당 이미지 때문에 생소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광역단체장 득표는 전남 정도 빼고는 높기 어려웠다. 서울시장에서도 여성 노동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표를 줬는데, 아쉽게도 득표는 생각보다도 낮더라. 1%는 나오길 바랐는데. 지역 조직이 강점인 만큼 그래도 저력을 발휘해 지역구로만 11명을 당선시켰다. 

뼈아픈 곳은 울산일 것이다. 민주당 광풍에 휩쓸렸는데, 몇몇 아쉬운 지역구나 후보가 있다. 민중당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 문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마 울산 단일화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나올 것같다. 의도했든 아니든 북구 후보를 독식한 모양새가 됐는데, 이도 사후 평가 거리가 되지 않을까. 울산/거제/창원 결과를 보면, 단일화나 단결을 잘 하기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정치적 분화를 현실로 인정하는 게 현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월간 〈시대〉 6월호에 실린 신지예 후보(?)의 인터뷰를 읽어 보니, 2016년 총선 비례 때 받았던 좋은 인상의 이유도 좀 알 것 같다. 내가 그의 정치를 약간 편견을 갖고 본 면도 있는 것 같고. 노동 기반 정당은 아니고 동의하기 힘든 면도 없지 않지만, 더 크게 보아 진보정당으로서 녹색당, 청년 진보 정치인으로서 신지예 후보의 호성적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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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 민중총궐기 재판

이영주는 무죄다! 당장 석방하라

최루액 물대포는 위헌인데, 저항한 사람은 구속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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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 적폐 문서 공개

법이 지배계급의 도구임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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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거 풍경

― 녹색당 서울시장 포스터가 아니라 ‘포스터 논란’에 대한 단상]


녹색당 서울시장 선거 포스터는 명백하게 소수를 타겟팅한 것 아니었나? 기성 진보정당 지지층 중 (그 당들이 충분히 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불만이거나 하는) 일부를 뺏어 오겠다는 선거전략으로 봤고, 그건 그 나름으로 채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본다. 어차피 (선전과 초기 지지층(종자돈) 형성이 목표이지) 당선이 목표인 선거가 아니니.
그렇다면, 그 타겟팅 바깥에 있는 인물들이나, 그 타겟팅에 불안이나 반감을 느낀 기존 진보정당 사람들의 불평도 자연스러운 것.

그런데 반응이 좀 의아하다. 이런 반응들은 포스터 뜯는 것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알려진 숫자를 봐서는 무슨 서울시 전역에서 공격이 가해지는 그런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구의원 한 선거구에서만도 그보다 많이 벽보 붙을 텐데.
그런데 워마드 같은 데서 홍대 사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페미니즘의 대표를 참칭하는 시절에 ‘페미니스트’ 호칭에 대한 물정모르는 반감 같은 게 일부에서 서툴게 표출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걸 대중적 백래시 취급하는 건 과하다. 번역서 한 권 나오니 아무거나 백래시 백래시 갖다 붙이는데, 현실을 살펴 보면, 부적절해 보인다.
백래시 론에 깔린 정치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1980년대 백래시 론은 적어도 계급세력균형과 공식정치의 지형이 모두 우경화하는 레이건 시대를 배경으로, ‘68 시대’가 전진시킨 여성해방 담론, 권리 등에 우경적 공격이 가해지고 역진이 일어나는 걸 가리켰다. 적어도 현실 분석에 기초해 있긴 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그런 정치 상황인가??? 우파는 찌그러져 있고, 페미니즘 또는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은 고양되고 있다. 이미 1년 전에 문재인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보조 슬로건을 써서 당선했다.(문제는 그러고 약속을 안 지킨다는 거지만)

아쉬운 건, 노동계급 남녀의 단결된 운동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엔 상호간 책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과 단결이 아니라 과장된 피해자성과 생물학적 환원론을 연결시켜서 자기 진지를 방어하려고 하는 정체성 정치의 방어적 급진성이 오늘의 정세에 정말 효과적인 방향인지 모르겠다.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가장 불만이었던 것도, 현실의 과장 측면보다는 소설 안에서 여성도 남성도 단 한 명도 현실에 저항하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작품은 일부러 다큐처럼 구성했는데 말이다. 공감은 시선의 방향과 첫걸음일 뿐이지, 문제 해결에 관해 무엇도 말해주는 건 없다. 
지금 필요한 게 ‘함성’일지, ‘비명’일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겠지만, 현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비명(미러링도 일종의 비명이라고 본다)’의 방식이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적어도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운동에서 협력을 추구할 줄 알면서도 치열하게 논쟁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82년생 김지영》의 출간년도(2016년)와 1982년생을 맞춰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경력단절 위기에 처한 자녀가 매우 어린 기혼 여성의 분노를 컨셉으로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여성의 삶과 주변 환경들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두루 살펴 보면, 이 소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시기 여성들에게 가족 안팎에서 가해지는 유무형의 (실재하는) 압력이 어떤 개인들에게는 남성 결탁 음모처럼 여겨질 법하다.

물론 그런 판단이 정확한 건 아니다. 핵심에는 노동계급에게 육아 책임이 전가되는 문제가 있음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가지만, 여러 억울함과 차별을 ‘개개인의 피해자화’라는 정서적 방법보다는 좀 더 분석적 계급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더 유용하고 해방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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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사법 적폐

양승태 대법원이 반(反) 노동 판결을 조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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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삼성과 문재인 정부의 갈등이 보여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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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 가석방,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 석방 외면하는 문재인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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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

문재인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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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새 운동 안에 개혁주의 분위기가 세졌네! 하고 생각한 순간, 원칙과 이론, 전략(정치)의 자리를 정체성정치나 감수성 등의 용어로 포장된 도덕주의가 채우기 시작했다. 여러 실수와 이론 취약, 사기 저하 등으로 새 페미니즘에 대응하지 못한 기존 좌파들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며 ‘운동권 사또 놀이’ 하려는 쪽에서 자신들은 도덕적 의무에서 예외인 듯 구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서 분열과 불신을 일으켜 그나마의 긍정성도 까먹으면서도 돌이켜 성찰할 줄을 모른다. 자기중심주의와 분별없는 열정이 문제인데, 나이 문제도 아니다. 민주노총 여성부장의 해괴한 행태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워커스/참세상도 전통있는 좌파매체였는데 어쩌다 보니 참 이런 수준이다. 진정성있게 성찰하고 시정하려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굴수록 워마드 종류나 부추겨 결과적으로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들의 자아만 맹동적 분열적 혐오주의의 깊은 심연으로 삼켜져 버릴 뿐임을 직시했으면 좋겠다.(5.19)


2. 

홍대 건 수사가 이례적으로 빨랐다는 말은 동의하기가 힘들다. 남성 누드모델이 무슨 사회적 힘이 있다고(누드모델 보호에 무슨 실익이 있다고) 경찰이 그러겠는가. 게다가 일반 몰카와 달리 이건 수 명으로 용의자가 특정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용의자는 경찰에서 핸드폰을 버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구속 요건은 된다.

물론 피의자 입건과 구속은 다르긴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구속됐다기에는 전후 정황이 맞질 않고 경찰이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 처리한 걸로 본다. 그러나 이게 진정한 쟁점이 아니므로 이렇게 논쟁이 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적 발화/행동에 의한 프레임 이동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문재인이 한마디 거드니, 경찰청장까지 대(對) 여성 범죄 수사를 철저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은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불만과 위협에 대한 조처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국가/경찰에게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점.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항구적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며 생물학적 남성 전체를 적(단일 집단)으로 돌리는 종류의 페미니즘은 사회에서 해방의 힘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국가와 동맹하고 국가의 통제력 강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라는 게 새삼 입증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중간계급적 개혁주의와 ‘잘’ 결합되면 그 ‘국가의 여성화’(생물학적 여성의 고위직 진출 지지)에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 스스로 표방했던 페미니즘의 희석이다.(5.21)


3.

오늘날 좌파와 진보가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과 대결하기는커녕 아부하기에 바쁘다는 건, 혁명이든 개혁이든 대중 스스로 단결한 행동으로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대(大)전망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개개인들의 관계와 태도, 도덕성을 개선하려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성해방 문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과 개인의 혁신을 어떻게 관계 지으려 하는가? 마르크스는 일찌기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 혹은 자기변혁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만 대중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알맹이를 이루는 노동계급의 자력해방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신의 한 측면이다.

그러므로 집단적 실천, 혁명적 실천, 계급투쟁과 계급투쟁에의 의식적 개입 활동을 개개인들의 의식과 도덕성을 바꾸는 일과 대립시키고 경멸하는 일은 오해 아니면 의도적 기각 행위다. 둘 중 무엇이든 그 자신은 노동계급 대중이 스스로 자기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워마드가 남성 비하적 용도로 쓰는 단어들이 대체로 노동계급 남성을 비하는 것임도 시사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좌파가 이런 종류의 정치에 굴복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개혁주의로의 후퇴이고 따라서 정치의 타락이다.(5.21)


4.

메이드 인 다겐함은 꽤 괜찮은 영화다. 영국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에 물꼬를 튼 걸로 평가되는 다겐함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한다. (실제로는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는 법안을 발의하려 했던) 노동당 윌슨 내각의 노동부장관 바버라 캐슬이 미화된 게 아쉽지만 말이다.

그런데 변혁정치는 이 영화가 자본만이 아니라 남편과의 전쟁도 치르는 걸 보여 준 영화라고 평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바버라 캐슬을 좋게 묘사한 것에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파업 와중에 남편과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식으로 영화를 평하는 것은 생뚱맞다. 도대체 파업 노동자의 현실을 알고나 하는 건지, 영화를 성실하게 본 건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평이다. 영화의 주인공 가정의 갈등에는 (물론 남성적 편견도 전혀 없진 않겠지만)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되는 파업이 길어지고(생활고가 심해지고) 파업의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배경이 있다.

그러니 주인공 부부의 갈등은 남여 역할을 바꿔 놔도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다. 그걸 남성 파업 노동자가 나는 와이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파업을 했다고 묘사해야 하나? 아내의 파업이 승리하는 게 남편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나??? 영화에서는 파업 승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여성 노동자들도 갈등을 겪고 이탈자도 생긴다. 그것을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뿐만 아니다. 영화에는 파업 여성 노동자들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좌파 남성 활동가가 비중있는 배역으로 나온다. 주인공의 남편은 부인의 고군분투를 직접 목격하고 사과하고 전폭적 지지를 표한다. 주인공 여성은 남편과 논쟁하면서도 남편을 투쟁하는 노동자의 관점으로 설득하려 하지, 너는 여혐이야 하는 식으로 내몰지 않는다. 다소 페미니즘 성향이 있더라도 영화 자체는 결코 남성(노동계급)에 적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영화평을 통해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도 미루어 짐작이 된다. 둘 다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런 편협한 관점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영화에 고무되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찬양할 수 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을 표방했는데, 변혁당의 정치가 갈수록 수상해진다.(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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