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노사정 야합] 이명박의 흉물스런 노동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
관련 포스트: 한국노총의 대국민선언, 무엇이 문제인가

■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반대! 노조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 한국노총 본부 정면에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입니다.

■ 복수노조 2년 반 유예와 창구 단일화, 노조 전임자 지급 금지 6개월 유예와 타임오프제 법제화. 한국노총이 노동부, 경총과 4일 합의한 내용입니다.

이 두 문구의 차이가 너무 커 4일 저녁 기자회견 직전 한국노총 조합원 수십 명이 한국노총 본부 건물에 모였습니다. 야합이 뻔한 노사정 합의안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채택되는 걸 막고 장석춘 위원장이 기자회견에 장석춘 위원장이 참여하는 걸 막자는 거였죠.

지도부가 수용한 노사정 합의안이 단지 민주노총만 배신한 게 아니라 노동자들과 노조의 권리를 전반적으로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도 불만이 컸습니다. 

이들에게는 11월 30일 대국민선언문의 작성자가 누군지도 의혹의 대상입니다. 보통 위원장의 기자회견문이나 성명서, 연설문은 홍보 담당 실무자들이 쓰기 마련인데, 해당 실무라인에서는 누구도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선언문에 포함된 논리와 표현이 사용자 쪽의 것이라고도 지적합니다. 한나라당에서 써줬다는 말도 있습니다. 장석춘 위원장은 의혹과 논란을 의식했는지 자기가 썼다고 합니다. 노조 생리상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작성자 문제가 야합의 실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기 때문이죠.

한편,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쟁취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반대라는 요구와 이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자는 것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고 15만 노동자대회와 총파업 찬반투표로 다수의 의사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를 뒤집은 것 역시 노조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거죠. 그래서 항의파들은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논란과 항의 속에서 "재협상하겠다. 배신 이런 말 쓰지 마라"며 어렵사리 빠져나갔습니다. 그  뒤, 중집 회의가 열렸던 한국노총 본부 대회의실에서는 여전히 남아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백헌기 사무총장이 합의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타임오프제를 하되, 현재 우리 전임자 총량은 유지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노조 활동 범위가 공개 합의문에는 교섭과 고충처리 등만 나왔지만 현재 노조 활동을 다 포함하는 걸로 합의가 됐고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추가 협상으로 범위를 더 넓힐 거다."


"전임자 산출 근거를 2백 명당 한 명으로 할 수도 있다. 협상의 여지가 아직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노총은 잃은 게 없다. 우리가 민주노총과 비교하면 전임자가 훨씬 적다. 양쪽을 포함해 실태조사를 한 후 평균을 기준으로 해 적용하면 우리는 더 유리해지는 거다.

"민주노총도 대기업노조 일부는 복수노조에 반대한다. 우리가 야합하고 했다는 건 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복수노조 허용 방안에 대해선 창구단일화가 아니라 열어 놓고 2년 반 동안 협상하는 것이다."

백헌기 총장이 설득력 없는 논리로 변명하고 있는 동안, 노사정 기자회견이 YTN 9시뉴스에서 생중계됐습니다. 협상 여지가 있다던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가 합의됐고 전 사업장에서 노조 전임자가 금지된다는 것도 분명해 졌습니다. 열받은 조합원들이 "더 들어봐야 의미 없다"며 하나둘 자리를 떴습니다.

위 말들에서 굵은 표시를 한 두 문장은 진상 규명이 필요한 문장입니다. 항의하는 임원들과 조합원 대상으로 한 말이므로 약간 '오버'한 면이 있다고 쳐도 '합의'란 표현을 썼으므로 해명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이 역시 한국노총 지도부가 벌인 야합의 실체를 구성하는 문제중 하나입니다.

이면 합의인지 암묵적 합의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시행령에서 합의대로 될 거라는 '순진한' 말에서 썩소가 나왔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는 것도 순진하지만 아니라도 그 얘길 듣는 사람들이 그대로 믿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겁니다. 계급투쟁에서 '순진하면 지는거다.'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민주파든 어용파든 기존 노조 집행부에겐 부담이 생깁니다. 그걸 피하려 기본권에 해당하는 단결권을 법으로 금지하는데 찬성하는 것은 노조관료적 이해관계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통제하는 안정된 조직 기반' 즉 관료적 기득권에 안주해 노동운동의 대의-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저버리는 거니까요.

이런 관료주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운영과 노동자 이익 증진에 큰 걸림돌입니다. 그 증거는 전임자 임금에서도 한국노총 지도부가 후퇴한 데서 잘 드러납니다.

경제 위기에 노심초사하는 기업주들이 완강하게 니오니 이명박 정부도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갔고,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부와 충돌이 진짜 불가피하게 되자 속절없이 후퇴하다가 '관료적 기득권'이라는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이게 정부와 기업주가 노동법 개악을 주도하고, 장석춘 지도부가 조연으로 마름 구실을 한 사태의 본질적 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정부는 조합원 백수십만 명을 대표하는 노조 지도자들보다 한줌의 기업주들 편을 들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공식 절차를 거쳐 결정한 조합원 다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것이 이번 소동에서 드러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며칠 전 노동자대회 후기 글에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제 항복 선언은 이런 우려가 현실로 된 것입니다. 최악의 결과가 됐습니다.

쟁점이 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의 경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사용자 쪽에서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 쪽에서 요구했던 사항입니다. 이것이 패키지로 엮이면서 서로 유예에 합의해 왔던 겁니다. 때문 암묵적으로 때론 공개적으로.

그런데 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만 따로 떼서 밀어붙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대기업들이 두 쟁점을 놓고 이해관계를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웁니다.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주동자를 납치하고 잽싸게 두세 명이 가입한 가짜 노조를 설립 신고합니다. 어느 곳은 아예 미리 가짜 어용노조 설립신고를 미리 해놓기도 합니다. 기업별 복수노조가 금지된 상황에서 이런 '무노조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무너집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탄압과 검경의 비호 속에서도 지금도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력[각주:1]이 안팎에서 끊이지 않으니 기업별 복수노조의 허용은 삼성 신화에 균열을 일으킬 겁니다.

반면, 현대차그룹 같은 경우, 이미 강력한 초대형노조가 조직돼 있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노조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차 정도의 조직력이면 복수노조가 생겨도 친사측 노조가 다수파 노조가 되긴 쉽지 않습니다. 사측 탄압으로 무너진 노조들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노조들이 온갖 음모와 분열 술책,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야 간혹 엉터리로 바뀌기도 하지만요.

반면 복수노조 금지에 관심있는 삼성은 기업 내에 강력한 노조가 없기에 전임자 임금 문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가 동시에 허용되면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둘 다 유예가 되면 삼성이 바라는 상황이 됩니다. 그 점 때문에 이 패키지를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복수노조 설립시 창구단일화 방안은 그래서 이런 대기업들 간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밀어붙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면서 전임자 임금은 노조에서 지급한다고 하니 기업주들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할 상황이 되버린 겁입니다. 정부와 기업주에게 반대한다더니 난데없이 정부와 삼성, 현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안을 노동계에서 먼저 내놓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항복 선언으로 얻을 수 있다는 그 어떤 실리도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 항복 선언으로 정부와 경총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대국민선언이 배신이자 굴욕적인 항복문서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장 조합원의 처지에서 그렇습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저버리고 노동자대회와 찬반투표로 모인 조합원들의 분노와 투지를 비민주적으로 짓밟았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을 사실상 반대하며 조합비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해 왔던 노총 지도부 주류파로선 '항복'이 아니라 절묘한 타협책이었을 겁니다.

1천 명 이하 노조는 노사 자율로 한다는 한나라당 중재안이 나왔다는데 중소기업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 지도부로선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국노총 소속 대기업노조를 포함해 나머지 노조와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결사의 자유를 제물로 바쳐 자신들의 안위와 입지를 굳히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쉬이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내부적으로도 큰 반발에 부딪혀 있습니다. 특히 경총과 논의 과정에서 1만 명 이상 대형 노조는 즉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실행하고 나머지는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별로 시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흘러 나오자, 한국노총 소속 대형 노조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각각 수천 명을 동원했던 은행권 대형 노조들[각주:2]에서는 조합원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라고 난리입니다. 이들 노조의 집행부는 이명박의 노동탄압의 본질이 결국 '대기업 노조 죽이기'였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석춘 지도부의 선언은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와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연맹들과 지역에서 임시 대대 소집과 지도부 사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토요일(11.28) 공공부문 양 노총 공동집회도 개최했던 공공연맹 노조들도 반응이 안 좋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총 중앙은 연락도 잘 안되고 지도부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무총국 간부들도 통화하기 힘듭니다. 이번 굴복 선언이 한나라당 점거 농성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조합원들은 "항의하라고 농성 보냈더니 그 안에서 포섭되서 돌아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노총 지도부도 자신들의 존재 근거 뿐 아니라 현장의 불만 때문에 투쟁을 시작했지만 양보 없는 정부와 노동운동 안의 압력에 샌드위치가 되서 갈팡질팡한 듯합니다. 재정을 크게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에게서 독립해 억압적인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예전부터 한국노총이 투쟁 노선을 펼 때 노총의 보수파 지도부에겐 뿌리 깊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투쟁을 해야 할 때 안 하면 불만을 품고 소속 노조가 민주노총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품으려고 투쟁에 나서면 투쟁으로 자신감이 오른 노조들이 또 민주노총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복수노조 반대 논리는 경총의 논리와 같지만 보수파 지도부 자신들의 딜레마(이자 이해관계)기도 합니다.

이번 노동법 투쟁이 중요했던 이유는 수 년 만의 양 노총 공조 투쟁이라는 점, 전반적인 노동탄압 기조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 점, 공기업 부문 공동 투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특히 이명박이 4대강, 세종시, 한상률게이트, 철도 등 노동자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 노총 투쟁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석춘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아쉽고 열받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열중하던 이명박은 또 노무현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 손잡고 민주노총을 배제·고립시키는 정책 말입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굳건히 제 길을 가면서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을 이 투쟁으로 견인해야 노총 내부에서 반발이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한국노총은 안 돼."라는 냉소가 아니라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후퇴하는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 단위노조와 조합원들에게 말입니다.


  1.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씨를 비롯해 울산 삼성 SDI공장이 꽤 오래 버텼고, 거제 삼성중공업은 법외 단체인 노동자협의회가 준 노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은행권엔 조합원 1만 명 이상인 노조가 셋이나 됩니다. 농협, 우리, 국민. 이밖에도 한전, LG전자 등이 한국노총 안에서 조합원 1만 명이 넘는 노조들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관련 기사: 20만 노동자들이 이명박 정부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다


주말 양 노총 노동자대회를 모두 다녀왔습니다. 이틀 연속 여의도공원을 누비고 다녔더니 주초엔 몸살이 나서 이번 주 개인 연구와 집필(?) 계획이 모두 늦춰졌습니다.ㅋ

한국노총 소속 노조에서 오래 일을 했기 때문에 아는 이들이 좀 있는 편이라 인사하느라 입구 쪽에 서 있었는데, 끝도 없이 밀려드는 조합원들을 보며 '인파(人波)'라는 단어가 처음엔 얼마나 신선하고 적절하며 놀라운 표현이었을지 생각했습니다.

아프간 파병 반대 서명하는 부스의 아는 분, <레프트21> 판매 부스의 동료들이 아는 사람 만나면 서명과 신문을 권하라고 압박을 넣는데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악수 한 번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그러질 못했습니다.


여의도공원이 노동자 집회로 그렇게 꽉꽉 들어차고도 사람이 넘친 건 제가 지금껏 본 중엔 처음입니다. 대단했습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도 꽤 큰 규모였는데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물론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도 열기 있었고 규모가 컸습니다. 특히 언론, 공무원, 전교조 등 이명박 정부와 최전방에서 대치하는 노조들이 적극적인 투지를 밝혀 많은 참가자들을 고무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 대규모 집회를 한 탓에 이날 공공부문 노조들의 참가가 적었던 게 조금 아쉬웠죠. 그 날 1만5천여 명이나 왔었다는 데요. 전야제 주점에선 옆 테이블의 기아차 조합원들 표정이 지난 여름과 달리 환하고 생기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철도노조는 분위기는 고조돼 있는데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부담이 아직 있는 듯합니다. 조합원 개인들에게 손배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한국노총과 인연이 있다보니 저한테 왜 이렇게 한국노총 집회에 사람이 많이 온 것 같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한나라당과 정책연대 노선을 펴면서 정부와 갈등을 될수록 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땐 이날 인파는 이명박의 노동정책에 불만의 저변이 매우 커져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공기업 부문에선 단협 해지와 비정규직 해고, 임금 삭감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기업 부문에서도 해고와 임금 삭감, 노조 탄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2년 만에 가장 많은 동원을 했습니다. 양 노총 모두 '간만에' '많이' 20만 명이나 모였고 사기가 이전보다 높았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여당의 내분이나 양 노총의 공동투쟁 선언도 좋은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그 점에서 공동투쟁을 약속한 양 노총 위원장이 서로 상대 집회에 참가해 연대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좌파 일각의 습관적 '어용' 지칭과 달리 한국노총도 보수적이긴 하지만 노동조합인지라 이처럼 현장에서 불만과 분노가 점점 자라는 데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구요. 이날도 집행부는 행진 거리가 너무 짧아 조합원들이 불만을 제기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노동계는 대체로 한국노총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로 더 큰 피해를 볼 거라고 봅니다. 중소기업 노조들의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조합원 수가 3백 명 언저리로 겨우 상근간부 한두 명 두는 곳에서는 노조 상근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큽니다.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한국노총 소속 작업장들에선 평소에 노조 활동에서 집행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큽니다. 그래서 이날 만난 분들도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노조 말살 정책"이라고 보는 정서가 강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집행부의 동원 의지도 진지했고 조합원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열의있게 참가한 것입니다. 한국노총 대박 동원의 교훈은 민주노총도 진지하게 조직하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한 대형노조는 9년 전 파업 후 최초로 조합원 10분의 1을 동원했습니다. 늘 노조의 주요 쟁점이 '혹사 노동 완화'이고 전국에 조합원이 산개한 조건에서 주말 집회에 조합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국에서 올라오는 차비와 식대, 기념품까지 일체의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날 하루 집회 참가를 위해 1억 원이나 썼다고 합니다.

평소 집회 동원이 잦은 민주노총 노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나 집회 참가 기회가 적기 때문에 집행부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긴 합니다만, 불만의 강도와 쟁점의 성격, 집행부의 의지라는 주요 조건이 잘 맞으면 한국노총의 동원력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김태환 열사가 죽음을 당했던 4년 전엔 평일 4만 명 파업 집회를 연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날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 다른 진보 단체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고 주장을 해야죠. <레프트21>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반전평화연대(준), 다함께 등만 눈에 띄었습니다.

오히려 쌍용차노조 동지들이 여러 명 참가해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고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파업에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양 노총 집회에 모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부스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한편,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서는 또하나의 쟁점인 복수노조 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노총 지도부의 일부는 복수노조 허용도 계속 유예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3년 전 노동법 개악 야합에서는 노골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했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 조합원이나 현장 간부들도 복수노조 허용에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더군요. 이날 대회 주요 연사들은 복수노조 허용시 창구 단일화만 언급하면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지 않은 점에서 다행입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묶여서 얘기되니 헷갈리는 분들도 계시던데 복수노조 허용은 애초 노동계가 요구해 입법한 것입니다. 그래놓곤 일방적으로 유예해서 지금까지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기업 내 복수노조의 창구 단일화를 강제로 시행하겠다는 것으로 복수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헌재 판결의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군요. 복수노조는 허용하지만 복수 교섭은 안 된다니??? 이건 복수노조를 허용한 것도 아니고, 허용 안 한 것도 아니여~ 얼쑤~

노조는 단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각자 자유로운 결사권을 가질 때 그 단결이 공고해 질 수 있는 겁니다. 복수노조를 금지해 단결을 유지하자는 건 관료적 형식적 단결에 불과합니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 금지로 고통 받는 건 주로 비정규직노조들이거나 집행부가 정말 우파적인 곳들입니다. 반면 노조 와해 목적으로 복수노조를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노조 자체를 없애려는 데 복수노조를 활용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죠. 복수노조 설립으로 기존 노조 와해가 가능하다면 탄압을 해 집행부를 장악하는 게 더 빠른 길일 겁니다.

<레프트21>은 주말 노동자대회에 '풀(full)'로 참여했습니다. 노동자대회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레프트21>의 주요 독자층이기 때문입니다.


정기구독 홍보물을 나눠주며 신문 판매도 했는데, 1천1백27부가 이틀 동안 판매됐습니다. 저도 홍보물 나눠주기를 잠깐 했었구요, 간만에 만난 지인들(노동자대회 아니면 만나기 힘든)에게 한 부씩 권해 열 부 가까이 저도 기여했네요.ㅋ

참가자 2백명 당 1부씩 구입한 건데요. 고무적인 결과지만 만족하기엔 부족하네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언론, 더 많은 곳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문, 더 많은 사람들이 기고와 판매까지 참여하는 언론으로 발전하려면 더 빡세게 굴러야 겠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