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하 대화록) 공개가 정권 연장과 정권 안보를 위한 총체적 정치 공작의 일부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26일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대화록을] 까겠다’고 한 권영세의 지난해 1210일 발언이 폭로됐다. 권영세는 당시 박근혜의 대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당시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무성이 비공개 당내 회의에서 “원문을 보고 내부에서 회의도 해봤[] … 공개하려고 했[]”고 말한 사실이 유출됐다.


실제로 지난해 1214일 부산 유세에서 김무성은 “노무현 김정일 간 대화록을 최초로 공개하겠다”며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 있는 내용을 주욱 언급하고는 ‘친북 좌파세력이 정권 잡는 것을 목숨 걸고 막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대화록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관리하는 국가기밀이다. 기밀문서를 새누리당 민간 정치인들이 알고 폭로를 검토했다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국정원 커넥션의 방증이다.


이 때 국정원장은 이명박에게 꾸준히 단독 보고를 했던 원세훈이었다. 권영세, 김무성 등 측근들의 계획이나 남재준의 대화록 공개를 박근혜가 몰랐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김무성이 예전에 발설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하극상, 색출, 근절’이라는데 말이다.


이번 대회록 공개를 다룬 <동아일보> 26일치 보도를 봐도,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도 회의록을 국민께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정원과] 같았다 …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다면 공개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연이은 폭로로 첫째,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선거 개입의 몸통이 박근혜(와 이명박)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둘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이에 대한 정부와 검·경의 비호, 대화록 공개와 NLL 색깔론이 처음부터 한 몸통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셋째, 저들은 이런 총체적 사찰과 공작에 바탕한 종북 몰이 공안 탄압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새누리당과 주류 지배자들은 우파 정권을 연장하고 장기 집권하려고, 국정원 같은 보안 사찰 기구를 틀어쥐고, 국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을 사찰하며 정치 공작을 주도해 왔던 것이다.


원세훈 시절 국정원의 진보진영 사찰과 정치 공작은 이미 폭로된 바 있다. 그 일부가 대선 전 청와대의 사찰 의혹으로 드러났고, 또 다른 일부가 올해 국정원의 무상급식 등 공작 문건 폭로로 드러난 바 있다.


현 국정원장 남재준도 이런 공작정치를 ‘대북 심리전’이라고 정당화했다. 국민의 절반을 종북으로 몰면서 전쟁을 벌여 온 자들이 이 더러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국정원의 진보 운동 사찰과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YTN의 기사 검열과 보도국 회의 사찰 사실이 최근 폭로됐고, 인하대에서는 시국선언을 사찰한 것도 새로 폭로됐다.


이제 ‘국정원게이트’는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전현 대통령을 포함해 새누리당―국정원―검·경―조중동 등 주류 우파가 총단결해 벌인 초법적 정치 공작에 관한 의혹이 됐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색깔론, 우파 결집, 진보 분열이 이들의 노림수였던 것이다.


비상 계획


한편, 폭로된 대화에서 권영세는 “[대화록 공개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컨틴전시플랜(재난 따위의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장기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비상계획은 박근혜가 어려울 때마다 가동돼, 동요하는 우파를 결집하고 색깔론으로 반대파를 분열·약화시키는 구실을 해냈다.


첫째, 지난해 108일 정문헌이 NLL 대화록 문제를 처음 꺼냈을 때는, 박근혜가 곤경에 처해 있던 시점이었다.


박근혜는 9월 초 ‘인혁당 사법 살인이 옳았다’는 식의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결국 고심 끝에 사과 아닌 사과를 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박근혜 필패론’이 부상하면서 곤경에 몰렸고 결국 107일 측근 실세 최경환이 후보 비서실장에서 사퇴해야 했다.


결국 대화록 공개 협박과 색깔론 공세로 우파 내부 동요를 단속하고 민주당과 안철수는 애국과 반공 프레임에 가둬 놓을 수 있었다.


둘째, 김무성이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내용을 공개한 1214일은, 인터넷 여론 조작에 동원된 국정원의 실체가 폭로된 직후였다. TV 3자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맹공을 당한 후 젊은층이 움직이면서 박근혜가 위기를 겪던 시점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미 이때부터 대화록은 국정원 선거 개입 물타기용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박근혜는 이런 과정들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비상계획이 작동될 때마다 박근혜는 직접 나서 그 효과를 극대화해 왔다.


10월 정문헌의 발언 이후 “도대체 2007년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다는 것인가” 하며 대화록 공개 여론에 불을 지폈다. 12월에는 종북 좌파에 정권을 맡길 수 없다는 색깔론 공세에 NLL 발언을 이용했다.


이번 대화록 공개 직후에도 박근혜는 “NLL은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 … 피로 지킨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국정원을 비호했다.


기껏해야 원세훈과 이명박의 커넥션 정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박근혜 몸통론이 등장한 것도 바로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법무장관 황교안이 원세훈을 비호하며 검찰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 원세훈이 불구속 처리되고 [심지어 제보자는 기소됐는데] 동원된 국정원 직원들이 전원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정원을 국정조사해 몸통을 밝히라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한 것이다.


620일부터는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대학가에선 학생의 시국선언이 번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확대되고 있다표창원 씨가 주도한 국정조사 청원 인터넷 서명에는 며칠 만에 1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런 위기에서 세 번째로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가동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다그러므로 국정원 게이트의 본질이 민주당의 매관매직 의혹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어처구니 없는 적반하장이다.


애국?


NLL 발언으로 종북 마녀사냥과 애국주의 구도로 가려는 것은 저들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위기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면서 스스로 통치의 정당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배계급 주류의 성마른 위기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한데, ‘금도’를 넘어버린 투쟁은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한층 더 불안정한 상태로 내몰고 있다.


따라서 대선과는 달리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실정의 책임을이명박이나 노무현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의 최고 책임자는 박근혜다.


그때와 달리, 경제 위기 조짐도 커져 왔고, 정치 양극화도 더 깊어져 왔다. 이 때문에 초유의 임기 초 위기를 겪었고, 이 속에서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신감이 조금씩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을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도 슈퍼 갑들의 대변자인 박근혜를 곤혹스럽게 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임기 초에 민영화 등 개악 의제를 밀어붙여야 할 박근혜에게 조직 노동자들의 사기 회복이나 을의 분노는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대기업 사정을 하는 쇼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를 달래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쇼는 지속될 수 없다. 여기에 국정원의 불법 정치 개입 몸통 의혹이 커지면서 박근혜는 또 다시 우파를 결집하며 종북 몰이 색깔론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화록 공개 협박에 움찔하며, 그럴 리가 없다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올해도 국정원 몸통 의혹에 물타기하려고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하는 것이 명백한데도, 노무현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대화록 공개에 손을 들어줬다.


이런 탓에 새누리당의 의도대로 우파는 결집한 반면, 왼쪽에선 그와 맞먹는 결집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휘둘리고 안철수가 침묵하는 가운데, 존재감이 약해진 진보정당의 목소리도 영향력이 미약한 실정이다.


지금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색깔론 총공세로 우파 결집과 진보 분열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철도 노동자들이 박근혜에 맞서 민영화 반대 파업을 준비하고 있고, 박근혜 규탄 시국선언이 번지면서 촛불집회도 당분간 이어질 기세다따라서 우리 운동은 시기를 집중해 대중 행동으로 왼쪽이 결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운동의 요구는 이번 국정원 정치 개입과 대화록 공개의 몸통인 박근혜를 정확히 겨냥해야 하고, 박근혜와 맞서야 하는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민주당처럼] NLL 영토 논리와 색깔론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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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를 위기 탈출의 계기로 삼으려는 집권 우파가 필사적인 공안 탄압으로 도발하고 있다.


검찰은 주먹과 방패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를 강탈해 갔고,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종북 주사파’라며 국회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급진좌파 단체 ‘노동해방실천연대’ 활동가 네 명을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체포했고, 다음날엔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깨부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계좌도 뒤진다고 한다.


우파들이 이렇게 도발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감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세계경제 위기가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 강화로 추락을 피해 온 한국 자본주의에게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는 커다란 위협이다.


저축은행들의 잇따른 퇴출은 권력 실세들의 복마전 같은 비리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연계된 경기부양책의 실패와 가계대출 부실화 등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가계대출은 줄지 않는데,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고 있고,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이른바 ‘MB ‘물가 품목’ 중 공공요금을 뺀 30개에서 돼지고기와 달걀을 빼곤 모두 가격이 올랐다. 


경제 위기와 생활고는, 기층의 불만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고, 노동자투쟁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대표적인 친기업 우파 신자유주의자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마저 ‘물가를 잡으려면 대기업 독점 이익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 위기 대처 방안을 놓고 지배계급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부패 비리가 계속 밝혀지는 것은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집권 우파들에겐 치명타다. 


정권이 레임덕에 빠져 있고 부패와 실정으로 지독한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집권당을 장악한 박근혜조차 정권과의 차별화와 갈등의 길로 이끌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게다가 당을 박근혜 일인 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선 내부 경선 규칙을 둘러싼 비박 대선 주자들의 반발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결국 경제 위기 대처 문제, 이명박과 차별화하는 문제, 차기 대선 후보 선정 문제 등에서 새누리당과 우파 내부, 심지어  친박계 안에서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처지니 우파들에겐 언론 파업, 쌍용차 해고자 투쟁 등에 사회적 지지가 커지는 것이 정권을 향한 비수처럼 느껴질 테고, 두 배로 의석을 늘린 통합진보당도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금속노조와 화물연대의 투쟁도 예고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위기의 전조가 드리운 상황에서 집권당은 취약해져 있고, 대중의 불만은 고조되며 투쟁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우파가 우리편을 교란하고, 자신들은 단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통합진보당의 선거 부정 사태가 낳은 진보진영의 내분과 위기를 한껏 이용하며 공안 탄압으로 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법하다. 





우파들은 우선, 조중동과 MB 방송을 이용해 통합진보당 사태를 더 추악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데 이용하고 있다. 


최고 실세들인 최시중과 박영준이 구속된 파이시티 사건은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비리와 대선자금 문제로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데, 검찰은 은근슬쩍 개인 비리로 덮어버렸다. “정권 실세들의 닥치고 먹자판”이라는 저축은행 비리도 묻히고 있다. 


무엇보다 불법 사찰 관련해 진경락 문건이 폭로돼 사찰 사건의 몸통이 이명박이라는 게 명명백백히 밝혀졌는데, 이 사건도 가려지고 있다. 


둘째, “종북 좌파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내세워 분열 위기에 놓인 우파의 결집을 유지하려 한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 찍어 진보 대중에게 환멸을 심어주고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려 한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내부 혼란에 대한 “국민적 공분” 때문이라지만,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수사에 ‘민주노동당에서 13년 동안 입당·탈당한 약 20만 명의 명부’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공안당국의 당원명부 입수는 진보 대중을 위축시키고, 좌파나 공무원노조·전교조 등을 향한 또다른 공안 탄압을 위한 ‘강도 행각’일 뿐이다. 군대 내부 숙청에 이 명부를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보라. 


이 과정에서 우파들은 대한민국 체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은 국가기구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선거에서 받은 지지도 무시하고 국회에서 제명을 하겠다고 한다 . 


셋째, 이런 분열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에게 통합진보당과 대선 연대로 ‘종북 좌파’가 정부 안에 들어오게 할 것이냐며 압박을 하고 있다. 조중동은 ‘종북좌파’ 이석기를 노무현과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사면복권시켰다며 공격하고 있다. 


선거로 당선한 이들은 사상 검증해서 의원직을 박탈하겠다는 우파적 히스테리는 위기에 직면한 자본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교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드러내는 도발일 뿐아니라, 우파적 지배자들이 친북좌파의 국가기구 진입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도 보여 준다.


검찰이 압수한 당원명부로 이석기 당선자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국회 제명이 실패할 경우 국회에서 제명할 명분을 찾으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결국 우파의 전략은 경제 위기를 앞두고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운동을 약화시키고 민주당을 길들여 사회 세력관계를 역전시키고, 우파의 우위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참에 지난 2~3년 동안 진보의 복지 확대 요구에 끌려다녔던 수모도 만회하고 싶을 것이다[각주:1]


‘우리 편의 약점은 감추고 뭉치게 하면서, 적들은 분열시키자’는 노림수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권 우파들은 정권 재창출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도박에 가깝다. 자칫 하다간 거듭 확인된 청년세대의 반우파 정서와 노동자 투쟁이 만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의 공격도 그토록 신경질적이고 필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의 총선 이후 행보는 이런 집권당의 전략을 오히려 돕는 구실을 하고 있다.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의 지시로 만든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는 “야권연대는 민주당이 주도권을 상실하고 유권자를 야권연대의 ‘정치적 볼모’로 삼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좌편향으로 중도층 유권자를 우파에게 뺏긴 것이 총선 패인’이라는 뜻이다. 한미FTA 폐기나 제주 해군기지 중단 같은 정책이 안보 불안감을 줬다는 평가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평가를 정당화하려고 이 보고서는 “4·11 총선에서 일관된 진보, 일관된 보수로 … 정의할 수 없는 ‘이념적 혼재층’이 51.7퍼센트로 대폭 증가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민주당 왼쪽표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좌우 양쪽을 모두 흡수하려면 통합진보당을 위축시키거나, 민주당에 확실히 종속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판단에서 진보정당을 국회에서 배제·고립시키는 국회선진화법을 새누리당과 합의해 기성 양당 구조를 공고히 하려한 것이다. 또 반이명박 투쟁을 삼가고 안철수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등 이박연대가 추진된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 대표 경선 결과가 지역별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까지 나타나는 것은 주요 후보들이 이런 비전을 공유하면서 서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의 대응이 매우 중요해 졌다. 더는 민주당에게 의존하는 자세를 보여선 곤란하다. 그들은 종북좌파 마녀사냥에서 새누리당의 2중대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진영은 우파들의 공안 탄압에 맞서 광범위하게 단결하는 범진보적 대응기구를 구성해 투쟁을 건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동춘 교수의 말처럼 “조봉암 사형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동조하고 박수쳤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 박정희에게 죽었다. 진보정치 복원에 수십년 걸렸는데 … 이 일을 우선 막을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운동의 쇄신 과제를 뒤로 미뤄만 놓을 수는 없다. 쇄신은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애국가를 부르자’는 등 ‘국가기구를 존중하자’는 식의 우경적 타협으로 가선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지형을 우경화시키려는 우파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뒤에 숨어서 가리려는 이명박과 우파들의 치부를 들춰서 열정적으로 폭로하고, 박근혜의 우파적 본질과 모순을 공격해야 한다. 


그러면서 언론 파업, 쌍용차 투쟁 등과 정권의 부패와 공안 탄압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들을 연결하고, 연대를 건설하면 얼마든지 우파의 더러운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82호에 축약해서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그러므로, 이념이 아니라 실사구시적 복지 논쟁으로 전환해 정치의 구실을 복원하자는 논리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 공상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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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 기고] 풀잎의 소리 


4·11 총선을 돌아보며 

박근혜의 어부지리, 사람들은 더 본질적인 심판을 바랐다 






꼭 4년 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포함한 우파들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얻고 개선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세력 관계가 선거 결과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촛불항쟁이 터져 나왔다. 최고조일 때는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 취임 석 달 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 운동은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이명박 4년 동안의 세력 균형의 기초를 놓았다. 야당이 1백 석도 안 되는데도 집권당은 거듭 힘겨운 날치기에 의존해야 했고, 그럴수록 사회적 분위기는 우파의 득세 대신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대세’가 됐다.


그럼에도 촛불운동 그 자체와 쌍용차 등 주요한 투쟁에서 승리를 못 거두고, 노동자 운동의 전진이 더디면서 급진적 분노는 투쟁의 폭발보다 선거 심판론으로 수렴돼 왔다. 그 결과,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9년 재보선에도 졌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이 과정에 희망버스 운동이 승리했고, 한미FTA 반대 운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정권의 통제력이 느슨해져,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문제로 다투다가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이 폭로되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까지 드러나며 집권당은 진정 해체 위기에 몰렸다. 


이명박의 불법 사찰 건마저 터진 선거에서 사람들은 4년 만에 우파가 지배한 의회를 끝내고, 집권당의 참패를 속 시원하게 축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당’의 국회 과반 확보였다. 


우파들은 총선 이후 4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주도면밀하게 우파 우위의 의회 세력 관계를 사회적 세력 관계에 반영하려고‘우파적 정치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파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도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 의제가 우위를 점했던 상황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어울리지도 않게 붉은 옷을 입고,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하는 녹음기 유세를 펼치고, 이명박이 ‘친서민’, ‘공정경제’,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같은 단어를 국정 목표로 제시해야 했던 굴욕적 수모를 이제는 뒤집어 보겠다는 것이다.


조중동 등은 민주통합당이 ‘좌클릭’하다가 중도층을 박근혜에게 빼앗겨 선거에 진 것이라고 우긴다. ‘김용민 막말’,‘김지윤 해적 기지 발언’ 등이 패인이란 주장도 강조한다. 문제된 두 사람은 4년 동안 반MB·반우파 투쟁 속에서 떠오른 인물이고, 문제 발언의 핵심 취지는 반제국주의 정서의 표현이었다. 


우파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둘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눈엣가시를 확실히 묻어 버리고 ‘안보’ 등의 우파적 의제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 점에서 통합진보당을 ‘종북’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미FTA 반대 투쟁,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이 ‘종북’의 지표라고 말한다. 비열하고 역겨운 마녀사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김진표 등은 이런 평가와 중도층 강화론에 동조한다. 총선 후 민주통합당은 호전적 대북 결의안에 새누리당과 합의했고, 제주 해군기지, 영리병원 확대 문제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불법 사찰 문제에서도 별 대응이 없다.


민주통합당의 이런 행보에는 <한겨레> 류의 개혁 언론들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한겨레> 등은 “박근혜의 훌륭함은 중도층을 끌어들인 것”이라며 이런 우경화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겨레21> 기사가 인정하듯이 “김용민 막말 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30퍼센트 미만이고, 정권 심판론, 민간인 불법 사찰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그 두 배”였다. “부동층의 4분의 3 가량이 야권 성향인데 이런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서강대 서복경 교수)은 민주통합당의 약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보적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새누리당과 뭐가 다른지 신뢰를 주지 못한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론에서 진정성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국 정당 득표는 642만여 표였다.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의 득표를 더하면, 우파 3당의 정당 득표는 985만 표에 의석수 185석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 득표가 912만 표, 자유선진당을 더하면 981만 표, 157석이다. 충청권 지역구 약진도 절반은 자유선진당의 의석을 뺏어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비관도 아니고, 정체도 불분명한 중도층 운운하며 ‘우클릭’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을 추수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중도화 전략은 우파적 의제를 강화해 우파의 주도권 회복에 이용될 뿐이다.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대 성적을 거뒀다. 수도권에 교두보를 만들고, 호남 두 곳에선 민주당과 겨뤄 당선했다. 낙선한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북구에서는 투표자가 2만 5천여 명 늘었는데 김창현 후보는 이중 80퍼센트인 2만 표를, 동구에서는 1만 5천여 명 늘어난 투표수를 고스란히 이은주 후보의 득표로 흡수했다. 창원에서도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를 더하면, 당선이 가능했다. 


즉, 영남 진보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의 패배는 늘어난 득표수를 볼 때,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분열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가 석패한 거제에서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공동 유세를 하지 않았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집권 우파들은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박근혜는 ‘좌클릭’ 변장극과 색깔론, 지역주의 선동을 총동원하고서도 소선거구제의 도움을 받고서야 절반의 의석을 차지했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와 이명박의 잠재적 충돌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는 여전히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더 강하고 진보적 의제가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총선 이후 재개된 집권당 내부의 암투와 분열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광우병 분노가 다시 일고 있다. 한일병원 노동자는 승리했고, 아직 언론 파업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이런 정서를 담을 그릇이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가 아니었다면 민주통합당은 더 나쁜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엔지오 지도자들과 한국노총을 끌어들였어도 자본가당의 본성을 바꿀 순 없다. 


참여당과 통합하면서 노동 중심성과 진보 정체성이 후퇴했지만, 우경적인 한국 정치 지형과 색깔론 공격을 고려하면,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진보정치'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 


우파는 이를 역전시킬 공세를 계속하고 싶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2008년처럼 선거 결과와 밑바닥 정서가 다르므로 이는 대중의 반우파 분노를 다시 자극할 것이다.


진보 진영은 선거 심판론에 지나치게 기댄 것이 약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분간 우파들의 공세가 먹히느냐는, 특히 민주노총이 더 진보적이고 계급 투쟁적 방식으로 반우파 투쟁을 능동적으로 건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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