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취임 전부터 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경우, 이미 예측·경고했던 바다.(☞ 바로가기그러나 그것이 자동으로 진보진영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촛불항쟁으로 취임 첫해부터 약해졌지만, 결국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바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세력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칙을 훼손하고] 분열하면서 기회를 못 살렸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세력은 노회찬 대표를 시작으로 김선동, 김미희 등 줄줄이 진보정당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려 하고 있다. 이런 솎아내기에 단결과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치 세력들의 분열과 반목이 전열 재정비 문제에서 걸림돌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진보정치를 재건할 진로 논쟁, 즉 노선(정체성)과 세력의 재편에 관한 토론이 중요하다. 최근 이런 토론들이 재개되고 있다.


진보신당에선 1월 당대표 선거에서 진보정치의 연대와 노동중심성 문제가 논쟁됐다. 반갑게도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의 연대와 노동중심성을 강조한 이용길 후보가 대표로 당선했다.


진보정의당에서는 최근 주요 간부 설문조사에서 절반 넘는 사람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수립’을 꼽았다.


이 조사에서 ‘현존하는 나라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나라 모델’로 91.6퍼센트가 스웨덴을 꼽았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지향점으로 꼽은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도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적 발전 수준에서 부르주아 정당과 구분되는 좌파 사민주의 정당의 존재는 여전히 의미있다.


그러나 진보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은 이런 좌파 사민주의보다 더 오른쪽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정치가 주변화된 상황의 돌파구를 주류 제도정치에 더 적응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도 나타난다.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이 “광화문이나 대한문 앞에서 집회나 농성을 하는데, 국민들 입장에서 …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각주:1]에서다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는 “똑같은 임금을 준다면 비정규직, 파트타임(노동자)을 써도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에 매달리는 건 “근본주의”라는 말도 한다.[각주:2]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란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복지를 가져오는 주체로서 사회적 투쟁보다는 박근혜의 복지 공약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또 그러다 보니 “박근혜 정부와 전략적 동맹을 맺을 준비가 돼 있다”며 중재기구를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즉, [대중운동의 대변자이자 조직자로서가 아니라] 국가기구의 최상층부와 협력해야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발상에서 박근혜와 동맹 같은 제안이 나오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후퇴인 까닭은 과거 민주노동당은 초기에 ‘거대한 소수 전략’(“대중운동이 중심이고, 의원은 그 스피커 구실을 해야 한다”)을 내세웠었기 때문이다. 비록 실천에서 이 방향이 일관되게 구현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진보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은 ‘사민주의에 대한 낡은 금기’를 벗어나야 한다며 이런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에 “사회민주주의 한계 극복”이 들어간 맥락을 봐야 한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유럽 주류 사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투항하면서 실패한 전철을 밟지 말자는 생각에서 나왔던 것이다[각주:3].


20세기 후반의 복지국가는 2차대전 후 상대적으로 장기간 지속한 서구 자본주의의 호황을 배경으로 한다. 여력이 생긴 자본가들은 노동 대중의 개혁 열망과 투쟁이 더 급진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양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낡은 금기?


그래서 1951년 영국에서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이전 노동당 정부 6년 동안 기틀이 잡힌 보편적 복지제도와 일부 기간 산업 국유화 노선이 후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세계적 경기 후퇴 속에서 자본가들이 태도를 바꾸자, 주류 사민주의 정당들은 연이어 신자유주의에 굴복했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대서 개혁을 제공하는 전략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이런 실패 때문에 근래에는 주류 사민주의를 비판하며 좌파 사민주의 정치세력들이 성장했다[각주:4]. 그리스 시리자,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등이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진보정당이 주목해야 할 것은 주류 사민주의(사회 자유주의)가 간 실패한 길이 아니라 이러한 급진좌파 세력의 성장이다. (물론 이들도 좌파 사민주의이므로 근본에선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민족일보 웹사이트. 프랑스 좌파전선의 대선 후보였던 장 뤽 멜랑숑의 지난해 선거 유세 장면.



진보정당들이 민주통합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 기반 때문이다. 조직 노동운동 기반이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투쟁들을 보자. 새누리당이 이를 골칫거리로 보고 민주당이 여야 협상의 거래가능한 쟁점으로 이를 다루는 것과 달리, 진보정당은 그 투쟁의 일부여야 한다.


이런 압력 때문에 진보신당 대표 선거에서도 조직 노동운동과 연대를 강조한 쪽이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보정의당 일각에선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기반’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보정당이 더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과 정의상, 진보정당의 길보다는 민주당 왼쪽방으로 가자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나머지 노동계급과 완전히 분리된 운동이 아니다. 설사 지금 당장 정치의식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해도 1천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삶은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요구, 투쟁과 연관돼 있다. 


그러므로 [단편적 상식과는 달리] 목표(지향)와 실천, 기반에서 ‘계급성’, 즉 노동중심성을 확고히 유지해야 진보정치세력으로서 부활할 길이 열린다. 


사실 지금 진보정당의 존재감 약화와 주변화에는 조직 노동운동의 자신감과 투쟁 수준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배경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운동의 약화에 노동계 진보정당의 잘못된 방향 추구와 분열이 한몫했다.


따라서 ‘조직 노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주변화를 극복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는 진보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보정의당 일각의 ‘현대화된 생활정당’으로의 우클릭 시도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마저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고 좌클릭해야 했다. 이럴 때 진보정당이 제도정치권에서 받아들일 만한 온건한 정책과 노선을 추수해봐야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더 약화시킬 뿐이다.


진보정의당 지도자들의 이런 시도는 우리가 2011년부터 지적한 바, 유시민계와 연합해서는 진정한 진보의 원칙과 단결을 유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드러낸다.[각주:5]


그 점에서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이 <레디앙> 대담에서 유시민계와 민주노동당계ㆍ진보신당계는 “혈연관계”가 됐다고 말한 것은 시사적이다.


같은 대담에서 진보신당 김종철 전 부대표가 “민주당과 정책으로 구분되고, 장기적으로 독자적 대중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세력이 되려면 자본주의 극복의 원칙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한 말이 옳다.


물론 진보신당이 이에 바탕해 연대와 단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갈수록 박근혜의 모순과 정치 위기는 커져 갈 것이다. 진보진영은 원칙을 유지하며 투쟁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위기를 이용해 단결된 반격을 해야 한다


[진정한 좌파야말로 이 과정에서 원칙과 단결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력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하려면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게, 즉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축약해서 <레프트21> 98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자족적인 투쟁 구호를 외치고 노래(투쟁가요)를 부르는 것” [본문으로]
  2. 물론 근본적 요구만 되뇌이며 부분적 요구 쟁취 투쟁에 기권하면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주의라기보다 종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근본적 목표에 비춰 부분적 요구와 투쟁의 위상을 설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본문으로]
  3. 그래서 이른바 국가사회주의와 현대사민주의 모두 지양하자는 표현이 들어갔던 것이다. [본문으로]
  4. 물론 이 좌파 사민주의, 또는 급진좌파들의 ‘반자본주의’에는 모호함이 있다. 지금 운동의 발전 수준에선 급진성과 모호함이 성장의 한 요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5. (원칙을 훼손하는 단결은 오히려 분열과 반목을 낳는다. 지금은 어려워도 원칙 있게 단결하고 싸워야 진정한 단결을 이룰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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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 기고] 풀잎의 소리 


4·11 총선을 돌아보며 

박근혜의 어부지리, 사람들은 더 본질적인 심판을 바랐다 






꼭 4년 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포함한 우파들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얻고 개선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세력 관계가 선거 결과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촛불항쟁이 터져 나왔다. 최고조일 때는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 취임 석 달 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 운동은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이명박 4년 동안의 세력 균형의 기초를 놓았다. 야당이 1백 석도 안 되는데도 집권당은 거듭 힘겨운 날치기에 의존해야 했고, 그럴수록 사회적 분위기는 우파의 득세 대신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대세’가 됐다.


그럼에도 촛불운동 그 자체와 쌍용차 등 주요한 투쟁에서 승리를 못 거두고, 노동자 운동의 전진이 더디면서 급진적 분노는 투쟁의 폭발보다 선거 심판론으로 수렴돼 왔다. 그 결과,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9년 재보선에도 졌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이 과정에 희망버스 운동이 승리했고, 한미FTA 반대 운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정권의 통제력이 느슨해져,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문제로 다투다가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이 폭로되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까지 드러나며 집권당은 진정 해체 위기에 몰렸다. 


이명박의 불법 사찰 건마저 터진 선거에서 사람들은 4년 만에 우파가 지배한 의회를 끝내고, 집권당의 참패를 속 시원하게 축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당’의 국회 과반 확보였다. 


우파들은 총선 이후 4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주도면밀하게 우파 우위의 의회 세력 관계를 사회적 세력 관계에 반영하려고‘우파적 정치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파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도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 의제가 우위를 점했던 상황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어울리지도 않게 붉은 옷을 입고,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하는 녹음기 유세를 펼치고, 이명박이 ‘친서민’, ‘공정경제’,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같은 단어를 국정 목표로 제시해야 했던 굴욕적 수모를 이제는 뒤집어 보겠다는 것이다.


조중동 등은 민주통합당이 ‘좌클릭’하다가 중도층을 박근혜에게 빼앗겨 선거에 진 것이라고 우긴다. ‘김용민 막말’,‘김지윤 해적 기지 발언’ 등이 패인이란 주장도 강조한다. 문제된 두 사람은 4년 동안 반MB·반우파 투쟁 속에서 떠오른 인물이고, 문제 발언의 핵심 취지는 반제국주의 정서의 표현이었다. 


우파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둘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눈엣가시를 확실히 묻어 버리고 ‘안보’ 등의 우파적 의제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 점에서 통합진보당을 ‘종북’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미FTA 반대 투쟁,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이 ‘종북’의 지표라고 말한다. 비열하고 역겨운 마녀사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김진표 등은 이런 평가와 중도층 강화론에 동조한다. 총선 후 민주통합당은 호전적 대북 결의안에 새누리당과 합의했고, 제주 해군기지, 영리병원 확대 문제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불법 사찰 문제에서도 별 대응이 없다.


민주통합당의 이런 행보에는 <한겨레> 류의 개혁 언론들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한겨레> 등은 “박근혜의 훌륭함은 중도층을 끌어들인 것”이라며 이런 우경화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겨레21> 기사가 인정하듯이 “김용민 막말 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30퍼센트 미만이고, 정권 심판론, 민간인 불법 사찰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그 두 배”였다. “부동층의 4분의 3 가량이 야권 성향인데 이런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서강대 서복경 교수)은 민주통합당의 약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보적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새누리당과 뭐가 다른지 신뢰를 주지 못한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론에서 진정성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국 정당 득표는 642만여 표였다.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의 득표를 더하면, 우파 3당의 정당 득표는 985만 표에 의석수 185석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 득표가 912만 표, 자유선진당을 더하면 981만 표, 157석이다. 충청권 지역구 약진도 절반은 자유선진당의 의석을 뺏어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비관도 아니고, 정체도 불분명한 중도층 운운하며 ‘우클릭’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을 추수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중도화 전략은 우파적 의제를 강화해 우파의 주도권 회복에 이용될 뿐이다.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대 성적을 거뒀다. 수도권에 교두보를 만들고, 호남 두 곳에선 민주당과 겨뤄 당선했다. 낙선한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북구에서는 투표자가 2만 5천여 명 늘었는데 김창현 후보는 이중 80퍼센트인 2만 표를, 동구에서는 1만 5천여 명 늘어난 투표수를 고스란히 이은주 후보의 득표로 흡수했다. 창원에서도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를 더하면, 당선이 가능했다. 


즉, 영남 진보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의 패배는 늘어난 득표수를 볼 때,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분열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가 석패한 거제에서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공동 유세를 하지 않았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집권 우파들은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박근혜는 ‘좌클릭’ 변장극과 색깔론, 지역주의 선동을 총동원하고서도 소선거구제의 도움을 받고서야 절반의 의석을 차지했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와 이명박의 잠재적 충돌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는 여전히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더 강하고 진보적 의제가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총선 이후 재개된 집권당 내부의 암투와 분열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광우병 분노가 다시 일고 있다. 한일병원 노동자는 승리했고, 아직 언론 파업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이런 정서를 담을 그릇이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가 아니었다면 민주통합당은 더 나쁜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엔지오 지도자들과 한국노총을 끌어들였어도 자본가당의 본성을 바꿀 순 없다. 


참여당과 통합하면서 노동 중심성과 진보 정체성이 후퇴했지만, 우경적인 한국 정치 지형과 색깔론 공격을 고려하면,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진보정치'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 


우파는 이를 역전시킬 공세를 계속하고 싶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2008년처럼 선거 결과와 밑바닥 정서가 다르므로 이는 대중의 반우파 분노를 다시 자극할 것이다.


진보 진영은 선거 심판론에 지나치게 기댄 것이 약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분간 우파들의 공세가 먹히느냐는, 특히 민주노총이 더 진보적이고 계급 투쟁적 방식으로 반우파 투쟁을 능동적으로 건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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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합을 넘어 미국 민주당식의 연합정당 모델을 …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이 내놓은 주장이다. 야 5당이 민주당으로 뭉치자는 이른바 ‘빅 텐트’론이다. 

김 위원장은 “연합정당론이 오히려 진보정치를 유지ㆍ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빅 텐트’론은 민주당 수혈론에 불과할 뿐 결코 진보정치 유지ㆍ강화의 전략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다름아닌 미국 민주당에 개입한 좌파의 경험과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미국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이 원래 미약했던 건 아니다. 1912년 유진 뎁스가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서 6퍼센트를 얻을 즈음, 이 당은 연방 하원의원 두 명과 시장 70명, 지방의원 1천여 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때 민주당은 노예소유주들의 당에서 시작한 자본가 당이었다. 

그러나 사회당 좌파는 미국노동총동맹(AFL) 소속 백인 숙련 노동자 사이에 퍼진 인종차별 의식과 정치적 실리주의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회당 우파가 민주당 대통령 윌슨과 동맹 정책을 추구해 당이 분열할 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으로 분리해 간) 일부 사회당 좌파를 포함해 좌파들이 민주당에 흡수되지는 않았기에 1930년대에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세계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 노동자 투쟁이 부활한 것이다. 1932년에 ‘뉴딜’을 내세워 집권한 루스벨트가 복지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노조 결성권과 임금 인상을 허용한 것은 이런 투쟁에 밀려서였다. 

그러자, ‘신’이민ㆍ흑인ㆍ여성 노동자들도 자신감을 얻고 투쟁에 동참했다.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폭넓은 단결이 이뤄졌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주들은 1936년 재선에 나선 루스벨트를 ‘친노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공산당은 루스벨트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공산당이 조직과 전략마저 민주당에 종속시킨 것이었다. AFL과 산업별조직회의(CIO)도 민주당 투표부대로 전락했다. 

그때 공산당은 스탈린의 인민전선 지침으로  루스벨트의 충실한 동맹자가 됐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인 듯 분칠한 것도 모자라 충성을 증명하려고 1938년에는 기관지를 폐간했고 1944년엔 아예 공산당을 해산했다. 

공산당이 이렇게 정치ㆍ조직상으로 무장해제되자 루스벨트는 손쉽게 탄압으로 돌아서 본래 기반인 기업주들을 달랬고 제2차세계대전을 핑계로 그동안의 양보를 일부 거둬들였다.


신좌파 운동

그 뒤 민주당 정부는 한국전쟁을 벌이며 냉전 매카시즘을 일으켰고 곧이어 베트남전쟁을 시작해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미국 좌파와 노동운동은 대안적 진보정당을 만들지 않고 흑인 민권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폭발한 1960~1970년대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이 시기에 신좌파운동이 정치에서 한 일은 1972년 ‘반전’ 후보 맥거번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든 것뿐이다. 이에 민주당 주류는 사실상 공화당 닉슨을 지지했고 맥거번은 참패했다.

△“부시 복귀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 미국 반전운동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낙선을 위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못 이겨 이라크 전쟁 지지자인 존 케리를 지지했다.

이로부터 신좌파운동은 오히려 민주당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냈다. 이들은 1984년 대선에서 AFL-CIO 지도부와 함께 민주당에서도 보수파인 먼데일을 지지했다. 레이건의 보수혁명에 맞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흑인운동 등은 무지개연합을 꾸리고 제시 잭슨 목사를 먼데일의 당내 경쟁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잭슨이 레이건 낙선을 위해 민주당의 ‘단결’에 이바지한 결과, 무지개연합의 좌파 개혁주의와 반제국주의 강령은 후퇴했다.[각주:1] 

결국 잭슨은 당내 경선에서도 패하고는 먼데일의 당선을 돕는 보수적 선거 캠페인에 동원됐다. 

2004년에도 무브온 등 풀뿌리 단체들은 반전후보 하워드 딘을 지지했다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에 실패하자 이라크 전쟁 지지자인 존 케리 선거운동을 해야 했다.

요즘도 미국 노동조합의 정치기부금은 90퍼센트 넘게 민주당에게 가지만, 이는 민주당이 받은 기부금에서 10퍼센트를 조금 넘는다. 민주당은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대기업주들에게 받는다. 민주당은 ‘연합정당’이 아니라 대기업주들의 당이었던 것이다. 

좌파가 미국 민주당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파산했다. 좌파는 민주당 안에서 질식당했다. 독립적 진보정당 없이 대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두 개의 신자유주의ㆍ제국주의 정당만이 존재하는 미국의 암울한 정치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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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진보진영이 참조할 모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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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당 주류는 당선가능성을 위해 민주당이 좌파라는 공격을 받으면 안 되니 잭슨의 선거강령을 온건화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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