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총선 참패로 고무된 한국노총 노동자들 

<노동자 연대> 173호 | 입력 2016-05-01 


한국노총은 5월 1일 노동절 맞이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벌이며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 강행 시도와 구조조정 협박에 항의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국노총 노동절 대회(“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였다. 특히 금융위원회를 통한 정부의 성과주의(성과연봉제 등) 도입 압박에 맞서 투쟁의 시동을 거는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2만여 명이 참가한 금융노조는 본대회 전 사전 대회를 열어서 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결의했다.)

△126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여 ‘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노총

지난해 노동절 대회를 처음으로 야외(서울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개최한 한국노총은 올해도 서울시청 광장에 수만 명을 동원해 박근혜의 노동 개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매우 광범위함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이 노동절에 종로 대로를 행진한 것은 올해가 최초다. 

이날 집회는 새누리당이 참패한 총선 결과 덕분인지 매우 활력 있었다. 한국노총은 총선에서 ‘반노동자 정당 심판’을 내걸고 사실상 새누리당에 반대했다. 

몇몇 노조들은 예상치보다 조합원들의 참여가 높다며 고무됐다. 연단에서는 메르스세월호 등에서 보인 정부의 대처를 재차 폭로하는 발언들이 나왔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저성과 해고돼야 한다는 발언은 큰 호응을 얻었다. KT노조의 부패를 비판하며 나온 KT노조 민주동지회 소속 조합원들의 홍보 활동도 주목을 받았다.

집회에 초대된 정의당 노회찬 당선인과 한국노총 임원 출신들인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당선인과 한정애 당선인(현 의원), 김기준 현 의원 등은 조합원들에게 총선 결과를 이어받아 박근혜의 노동 개악에 맞서 앞장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특히 맨 처음 발언한 노회찬 당선인은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반면에 한국노총 중앙 방침을 어기고 새누리당에 비례후보 신청을 해 당선한 임이자 전 한국노총 여성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야유로 자기 이름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 “[집회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 [여권에서] 할 말은 하겠다”고 변명했지만, 쌓인 분노 앞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앞으론 새누리당 의원은 초대도, 무대 연단 제공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126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여 ‘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김문성

대정부 투쟁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4.13 총선결과는 … 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준엄한 심판”이었다며 노동 개악 강행 시도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또한 “구조조정은 대량감원과 임금삭감과 같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윤은 사유화하되 손실은 사회화하는 친재벌정책”이라고 규탄했다.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불이익변경이 산업현장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공공 금융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저지투쟁에 적극 함께하자”고도 했다.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한 마무리 집회에서 공공연맹 이인상 위원장은 “한국노총 지도부가 조합원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공공연맹은 한국노총 내 금속연맹화학노련과 함께 지난해 한국노총 중앙의 노사정위 복귀와 야합에 반대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가 공공기관 성과주의 도입을 직접 챙기겠다며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노총 공공부문(주로 금융노조공공연맹공공노련 등에 속해 있다.)도 연합해 저항을 개시하고 있다. 이런 저항 덕분에 정부는 4월말까지를 성과연봉제 선도 도입 시한으로 했으나, 최근 5월말로 미뤄졌다.

이날 한국노총 노동자대회는 박근혜의 총선 참패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고 있음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집회였다. “5~6월 임·단투에서 정부의 양대지침을 무력화 시키[자]”고 결의했다. 을지로, 종로, 청계천으로 이어진 행진도 힘차게 진행됐다. 다만, 한국노총 지도부가 구체적인 투쟁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언론과 조합원의 눈이 쏠리는 노동절 대회에서 중앙 차원의 대중 투쟁 계획을 발표했다면 고무된 분위기에 초점을 부여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5~6월 임·단투에서 노동 개악 지침을 현장에서 무력화시키는 투쟁도 필요하지만, ‘총선 심판을 무시하고 거스르려는’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고 물러나게 하려면 대정부 투쟁을 집중해서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 그나저나 이렇게 즐거웠던 집회에서, 1년에 한번 노동절에나 만나는 여러 반가운 님들께서 하는 첫마디가 다들 체형이 부르주아가 됐다는 것이라니...









KT전국민주동지회가 KT노조의 부패를 규탄하며 홍보전을 하고 있다.


KT전국민주동지회가 KT노조의 부패를 규탄하며 홍보전을 하고 있다.




서울 노동청을 돌아 종로 대로를 향해 행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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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내 노사정위 야합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 연대> 160호 | online 입력 2015-11-13



8월 18일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하려고 열린 한국노총의 중앙집행위원회는 산하 연맹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점거로 결정을 미뤄야 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것은 한국노총 산하 금속노련, 화학노련, 공공연맹이었다. 이 세 연맹은 8월 이후에도 한국노총 내부에서 지도부의 노사정위 복귀에 반대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하반기 국회에서 노동법을 개악하려고 노사정위 합의의 외피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한국노총 지도부를 압박했다. 그래서인지 김동만 위원장은 세 연맹 위원장들과의 회동 자체도 거부했다고 한다.(이에 관해서는 올 여름 임명된 청와대 정무수석 현기환이 김동만 위원장과 같은 금융노조·한국노총 고위 간부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8월 22일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도 이들 연맹 소속 조합원들은 “노사정위 복귀 반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여 꽤 호응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노총 지도부는 8월 26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격한 반대 속에 복귀를 공식 결정했다.

이들 세 연맹은 노사정위 야합 후에도 노사정위 합의 파기와 탈퇴를 계속 요구해 왔다. 10월 16일에도 공동성명을 내고 “노동개악 지옥에서 당장 빠져 나와” “정권과 맞서 싸우는 한국노총이 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와 사실상의 노사정위 탈퇴)를 촉구하는 단위노조 대표자 선언도 조직하고 있다. 10월 말까지 대표자 5백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세 연맹은 이 선언의 내용과 취지를 10월 28일과 29일 이틀간 <매일노동뉴스>에 광고를 냈고 한국노총 내 다른 연맹으로도 확산하려 한다.

고무적이게도 금속노련과 화학노련은 제조공투본 소속으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투쟁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한국노총 내에서 상대적으로 투쟁적이고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금융노조가 최근 민감한 현안들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이 흐름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금융노조는 지난해에도 유일하게 산별 하루 파업을 실행하고 올해도 2만여 명 규모의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

이런 움직임은 현재 비정규직법 개악에 관한 노사정위 후속 논의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노총 지도부에게도 압박이 되고 있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가 합의 목표 시한으로 한 11월 16일 전체회의까지 비정규직법 관련 노사정 합의안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그동안 한국노총 지도부나 노동계의 노사정위 참여론 지지자들은 노사정위에 ‘개입’하는 것이 그나마 최악의 안은 막을 수 있는 길이고, 잘 하면 정부의 노동 개악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현실의 검증을 이기지 못한다. 이미 한국노총은 9월 중순 노사정위 야합 직후에 발의된 새누리당의 “노동 개혁 5대 입법”을 두고 합의 정신을 저버린 것이라거나 노사정위가 불공정하게 운영된다고 여러 차례 불평했다. 11월 10일에는 노사정위가 사용자측 입장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브리핑하기도 했다.

이미 개악 법안 처리 절차가 국회에서 시작된 상황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8~9월처럼 ‘노사정위 합의가 늦어지면 정권 의지대로 강행하겠다’고 압박하면, 한국노총 지도부는 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만은 막자는 논리와 비정규직 개악마저 합의할 수는 없다는 압력 사이에서 말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여권의 합의정신 위반과 노사정위의 불공정에 대해 불평만 하지 말고 노사정위에서 나와 개악 저지 투쟁에 나서야 한다.


△8월 22일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서 한국노총 지도부의 노사정위 복귀에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들. ⓒ김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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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24호가 새로 나온 지난 목요일 저녁 몇 분 독자들이 4면의 "노조법 개악의 주범 추미애는 중징계를 당해야 마땅하다"는 기사의 주장이 적절하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제목을 추미애 징계 요구로 뽑아야 했냐는 의견도 있었고, 민주당에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견의 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민주당 지도부나 추미애나 '초록은 동색'이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놈이 그놈'인데, 한쪽에 '징계권'을 주는 건 민주당 지도부가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했던 것처럼 포장해 주는 건 아니냐는 거죠. 그날은 짧게 토론하다 보니 제 생각을 적절히 전달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추미애 징계는 국회 차원의 징계와 민주당 차원의 징계 두 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등은 국회 차원의 징계도 정식으로 요구했죠. 환노위 진행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겁니다. 국회 차원의 징계란 결국 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민주당의 징계 수위에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결국, 민주당의 징계 문제가 핵심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히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하지 않았습니다.[각주:1] 그래서 민주당 안에선 추미애 징계 논란이 차기 지도권을 둘러싼 다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겐 분명히 다른 성격의 쟁점이라고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운동과 좌파의 추미애 징계 요구는 '추미애 노조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애초 추미애 징계 논란의 발단이 '개악 노조법날치기한 행위'입니다. 추미애는 직위를 이용해 복수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막고 노동조합에 전임자를 둘 권리를 사용자의 의사에 맡기는 개악 노조법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추미애 덕분에 한나라당은 매우 쉽게 개악 노조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추미애 중재안 - 지금은 통과돼 현행 법이 된 - 을 지지한 한국노총 지도부는 추미애 징계에 반대하며 민주당 지도부에 항의했습니다. 조선일보도 추미애를 편들었습니다. 마치 추미애가 민주당 무능 지도부의 책임전가 희생양인 것처럼 묘사하더군요.

반면, 개악 노조법에 반대하는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은 추미애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주저하면서도 말로는 '중징계' 운운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이제는 제일 큰 야당으로서 진보단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국회에서 대리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민주당 내부의 추미애 중징계론은 그 동력이 민주당 바깥에 있습니다.

가관이게도 추미애는 자신이 주도한 노조법이 지금 상황에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한 최선의 법안이었다고 '거리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친사용자 일간지인 <한국경제신문>은 전교조가 개악 노조법을 찬성한 듯 왜곡 보도했습니다.[각주:2] 민주당 안에서도 더 보수적인 의원들은 '소신'을 징계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맞불

그래서 추미애 중징계 요구로 개악 노조법이 내용과 형식 모두 잘못 됐고 반드시 개정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추미애 중징계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에 매우 상큼한 출발점이 될 겁니다. 민주노총과 왼쪽의 압력으로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관철되면 경고도 되고 우리 편 사기도 올라갈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불리할 건 없습니다. 민주당이 추미애를 중징계 하면, 개악 노조법의 권위와 신뢰는 상처를 크게 받을 겁니다. 우리 운동에 해를 입힌 정치인이 군색한 처지가 되는 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징계를 어설프게 하면, 민주당의 정치적 신뢰도는 다시 추락할 겁니다. 반mb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본질을 자백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이명박에게 김석기 파면을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추미애 징계 공방의 초기에 제가 썼던 기사(추미애 징계 공방 - 민주당, 참 별 볼 일 없다)를 다시 봤습니다.  그때 추미애 중징계를 요구해야 한다고 봤지만, 나온 기사에는 그 표현들이 빠졌습니다. 양비론에 가깝습니다. 그때는 연말 국회도 일단락한 마당에 진보 쪽의 과도한 반mb연대 집착을 비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틀 후 이 블로그 포스트('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에서도 비슷한 각도에서 다뤘죠. 다만, 추미애의 출당과 국회 징계를 요구하자고 했네요. 전 분명하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개악 노조법을 찬성하며 추미애를 옹호하는 자들에게 맞불을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24호에 새로 기사가 실린 것은 이 점이 충분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래서 예리한 토론들이 자주 있어야 합니다. <레프트21>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피드백해 주는 게 소중한 이유죠.
 
  1. 민주당의 최종 당론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 타임오프제를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글을 참조해 보십시오. [본문으로]
  2. 전교조는 특별법으로 교섭권을 제한하는 정부에게 일반 노조법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얄궂게도 법 개악으로 일반 노조법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전교조의 오랜 이 요구가 오해를 낳고 있습니다. 전체가 단결할 요구를 만들기 위해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재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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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노사정 야합] 이명박의 흉물스런 노동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
관련 포스트: 한국노총의 대국민선언, 무엇이 문제인가

■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반대! 노조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 한국노총 본부 정면에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입니다.

■ 복수노조 2년 반 유예와 창구 단일화, 노조 전임자 지급 금지 6개월 유예와 타임오프제 법제화. 한국노총이 노동부, 경총과 4일 합의한 내용입니다.

이 두 문구의 차이가 너무 커 4일 저녁 기자회견 직전 한국노총 조합원 수십 명이 한국노총 본부 건물에 모였습니다. 야합이 뻔한 노사정 합의안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채택되는 걸 막고 장석춘 위원장이 기자회견에 장석춘 위원장이 참여하는 걸 막자는 거였죠.

지도부가 수용한 노사정 합의안이 단지 민주노총만 배신한 게 아니라 노동자들과 노조의 권리를 전반적으로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도 불만이 컸습니다. 

이들에게는 11월 30일 대국민선언문의 작성자가 누군지도 의혹의 대상입니다. 보통 위원장의 기자회견문이나 성명서, 연설문은 홍보 담당 실무자들이 쓰기 마련인데, 해당 실무라인에서는 누구도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선언문에 포함된 논리와 표현이 사용자 쪽의 것이라고도 지적합니다. 한나라당에서 써줬다는 말도 있습니다. 장석춘 위원장은 의혹과 논란을 의식했는지 자기가 썼다고 합니다. 노조 생리상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작성자 문제가 야합의 실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기 때문이죠.

한편,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쟁취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반대라는 요구와 이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자는 것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고 15만 노동자대회와 총파업 찬반투표로 다수의 의사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를 뒤집은 것 역시 노조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거죠. 그래서 항의파들은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논란과 항의 속에서 "재협상하겠다. 배신 이런 말 쓰지 마라"며 어렵사리 빠져나갔습니다. 그  뒤, 중집 회의가 열렸던 한국노총 본부 대회의실에서는 여전히 남아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백헌기 사무총장이 합의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타임오프제를 하되, 현재 우리 전임자 총량은 유지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노조 활동 범위가 공개 합의문에는 교섭과 고충처리 등만 나왔지만 현재 노조 활동을 다 포함하는 걸로 합의가 됐고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추가 협상으로 범위를 더 넓힐 거다."


"전임자 산출 근거를 2백 명당 한 명으로 할 수도 있다. 협상의 여지가 아직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노총은 잃은 게 없다. 우리가 민주노총과 비교하면 전임자가 훨씬 적다. 양쪽을 포함해 실태조사를 한 후 평균을 기준으로 해 적용하면 우리는 더 유리해지는 거다.

"민주노총도 대기업노조 일부는 복수노조에 반대한다. 우리가 야합하고 했다는 건 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복수노조 허용 방안에 대해선 창구단일화가 아니라 열어 놓고 2년 반 동안 협상하는 것이다."

백헌기 총장이 설득력 없는 논리로 변명하고 있는 동안, 노사정 기자회견이 YTN 9시뉴스에서 생중계됐습니다. 협상 여지가 있다던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가 합의됐고 전 사업장에서 노조 전임자가 금지된다는 것도 분명해 졌습니다. 열받은 조합원들이 "더 들어봐야 의미 없다"며 하나둘 자리를 떴습니다.

위 말들에서 굵은 표시를 한 두 문장은 진상 규명이 필요한 문장입니다. 항의하는 임원들과 조합원 대상으로 한 말이므로 약간 '오버'한 면이 있다고 쳐도 '합의'란 표현을 썼으므로 해명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이 역시 한국노총 지도부가 벌인 야합의 실체를 구성하는 문제중 하나입니다.

이면 합의인지 암묵적 합의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시행령에서 합의대로 될 거라는 '순진한' 말에서 썩소가 나왔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는 것도 순진하지만 아니라도 그 얘길 듣는 사람들이 그대로 믿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겁니다. 계급투쟁에서 '순진하면 지는거다.'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민주파든 어용파든 기존 노조 집행부에겐 부담이 생깁니다. 그걸 피하려 기본권에 해당하는 단결권을 법으로 금지하는데 찬성하는 것은 노조관료적 이해관계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통제하는 안정된 조직 기반' 즉 관료적 기득권에 안주해 노동운동의 대의-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저버리는 거니까요.

이런 관료주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운영과 노동자 이익 증진에 큰 걸림돌입니다. 그 증거는 전임자 임금에서도 한국노총 지도부가 후퇴한 데서 잘 드러납니다.

경제 위기에 노심초사하는 기업주들이 완강하게 니오니 이명박 정부도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갔고,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부와 충돌이 진짜 불가피하게 되자 속절없이 후퇴하다가 '관료적 기득권'이라는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이게 정부와 기업주가 노동법 개악을 주도하고, 장석춘 지도부가 조연으로 마름 구실을 한 사태의 본질적 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정부는 조합원 백수십만 명을 대표하는 노조 지도자들보다 한줌의 기업주들 편을 들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공식 절차를 거쳐 결정한 조합원 다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것이 이번 소동에서 드러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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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은 격주 신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 나오는 주는 정신이 없죠.

월요일과 화요일은 기자들이 기사 마감하고, 기자들이 쓴 기사와 각 칼럼 기고문, 독자편지, 외부 기고 글들을 교정·교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수요일엔 마지막 교정·교열과 디자인 제작, 사진 찾기 등을 합니다. 거의 새벽까지 가는 작업이죠. 그러고 나면 목요일 오후에 인쇄된 신문이 나오고 우편 발송과 배포가 시작됩니다.

오늘 나온 <레프트21>20호는 비운의 호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 호 <레프트21>은 애초에 철도 파업 지지 기사를 1면 헤드라인 기사로 정했습니다. 보충 기사가 3면에 실렸구요. (이 녀석은 세상 구경도 못해보고 폐지가 되는...)

관행대로 목요일 오후에 모든 기자들이 우편 발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철도 파업이 중단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충격과 공포' 속에 일손을 멈추고 이리저리 아는 채널들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최종 결정을 위한 회의 중이며 6시쯤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결국 철도 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결정이 전해지고 기자들은 허탈감 속에서 새 판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상률게이트와 두바이 몰락을 1면을 대체할 기사를 정하고 논설 포함 철도노조 파업을 언급한 관련 기사들 모두 내용을 손 봐야 했습니다. 1면과 3면을 대체하는 기사들의 사진을 새로 찾습니다. 인쇄소가 정해준 시한에 겨우 맞춰 일을 끝냈습니다. 배송이 하루 늦었기 때문에 금요일(오늘) 오전까지 신문이 나와야 했으니까요.

결과는 수천 부의 신문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 결과적으로 에너지 낭비, 돈 낭비 한 셈이 됐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난 오늘 오전, '새 20호'의 우편 발송을 모두 마치고 신문에 큰 실수가 생긴 걸 발견합니다.

1면을 대체한 두바이 기사의 3면 나머지 기사에서 무려 여덟 단락이 반복된 것입니다. 한 기사 안에서 기사의 3분의 1가량이 중복된 것이죠.(좋은 글은 반복해 읽어도 좋긴 합니다) '새 20호' 너마저... 또다시 찾아온 충격과 공포. 모든 기자들이 큰 실수에 대해 낭패감과 독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오늘 남은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게 철도노조 파업은 왜 중단해서리... 하는 원망이 계속 든 게 사실입니다. 모든 게 철도 탓이다 하고 싶지만, 저희들의 실수를 누구에게 떠넘길 순 없잖아요. 

신문이 아깝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탄압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에서 8일간 버텨온 철도노조였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얻은 것 없이 후퇴한 건 잘못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 해서 파업한 건데, 저들이 양보 안 하니 파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냥 스스로 죽겠다는 것 아닙니까.


※ 이 글을 쓴 후 한 달 간의 사태 추이와 토론을 거쳐 스스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바뀐 내용은 엮인 글을 따라 가서 읽으시면 됩니다. 아래 내용은 개인 증거 차원에서 수정하진 않습니다. 더는 글쓴이 스스로 보증하지 않는 내용이므로 굳이 읽으실 필요 없기도 합니다. 위 내용만 해도 충분한 이야기 꺼리가 됐다고 봅니다. 참고하십시오.

험난한 운명을 겪은 20호 신문에 새로 실린 철도 파업 평가 기사는 신속한 평가 노력은 좋았으나 내용에선 문제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기사는 철도노조가 처한 상황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로 방어적 차원에서 파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파업 사흘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상 파업 파괴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합법 파업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불법으로 바뀌고 지도부 체포영장,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손배 청구 협박, 무려 8백여 명의 직위 해제, 보수언론의 총공세 등이 숨가쁘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기사는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면서도 철도노조 지도부에게 왜 유리한 정세에서 후퇴를 했냐고 다그칩니다. 객관적인 정치 상황이 노동운동에 유리한 건 사실이었지만, 철도노조 자체로는 지배계급 전체의 총공세를 받고 있었고,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으로 민주노총도 잠시 주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철도노조 자체로나 상급단체 차원에서도 연대 파업 등 철도노조를 엄호할 준비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는데 불법을 감수하며 속전속결 전술을 사용하라는 것은 한 지인의 표현처럼 "철도노조 혼자서 이명박을 뛰어넘으라"는 주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광폭한 탄압에도 처음으로 8일간이나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용기를 고무하고 지도부가 3차 파업을 선언한 마당에 다음 파업을 잘 준비하도록 독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전 이 점을 강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한다면, '(예상치 못했을) 강경한 탄압에 어떻게 맞서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협 해지라는 부문적 요구로 시작한 파업이 의도치 않게 정치 파업으로 '내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도공사 사장 허준영의 탄압이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애초에 정치적 성격이 부분적으로 있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철회, 노조탄압정책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저들의 '정치파업' 협박에 진정한 정치파업으로 맞불을 놓는게 진짜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투쟁의 요구가 진짜 '우리 모두'의 것이 될 때 연대투쟁을 호소하고 건설하기가 더 쉬웠겠죠.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단협해지 철회와 대화 재개에만 머물렀습니다. 이 점이 저는 지도부의 실책이라고 봅니다. 시야가 협소하니 탄압의 효과가 더 커보인 듯합니다. 합법 파업도 불법이라고 난도질 탄압을 하면서 마치 파업을 유도한 걸로 보일 정도로 몰아부치는데 불법 파업 전술을 사용하는 게 관건이라 보지 않습니다.

파업 중단 문제는 아쉽지만, 지방 지역 복귀율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도 있고 하니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론 파업을 더 지속하면서 앞서 말한 전술을 구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차피 상황은 재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조합원들이 대체로 집행부 결정을 수용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국 집결 집회(사실상 총회)에서 진퇴 여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게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번엔 제대로 준비해 연대 파업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연대 건설에서도 양 노총 공공부문이 함께 한 집회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의 공세가 더 다급하게 이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연대파업 일정을 왜 당길 수 없었는지는 더 알아봐야 겠습니다.

좀더 상황과 정서를 파악해 보고 <레프트21>에 기자가 아니라 애독자의 자세로 독자편지를 보내볼 생각입니다. 부족하고 단편적이지만 제 생각에 의견 있으신 분들은 주저없이 댓글 달아 주세요.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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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동자대회 후기 글에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제 항복 선언은 이런 우려가 현실로 된 것입니다. 최악의 결과가 됐습니다.

쟁점이 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의 경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사용자 쪽에서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 쪽에서 요구했던 사항입니다. 이것이 패키지로 엮이면서 서로 유예에 합의해 왔던 겁니다. 때문 암묵적으로 때론 공개적으로.

그런데 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만 따로 떼서 밀어붙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대기업들이 두 쟁점을 놓고 이해관계를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웁니다.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주동자를 납치하고 잽싸게 두세 명이 가입한 가짜 노조를 설립 신고합니다. 어느 곳은 아예 미리 가짜 어용노조 설립신고를 미리 해놓기도 합니다. 기업별 복수노조가 금지된 상황에서 이런 '무노조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무너집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탄압과 검경의 비호 속에서도 지금도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력[각주:1]이 안팎에서 끊이지 않으니 기업별 복수노조의 허용은 삼성 신화에 균열을 일으킬 겁니다.

반면, 현대차그룹 같은 경우, 이미 강력한 초대형노조가 조직돼 있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노조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차 정도의 조직력이면 복수노조가 생겨도 친사측 노조가 다수파 노조가 되긴 쉽지 않습니다. 사측 탄압으로 무너진 노조들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노조들이 온갖 음모와 분열 술책,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야 간혹 엉터리로 바뀌기도 하지만요.

반면 복수노조 금지에 관심있는 삼성은 기업 내에 강력한 노조가 없기에 전임자 임금 문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가 동시에 허용되면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둘 다 유예가 되면 삼성이 바라는 상황이 됩니다. 그 점 때문에 이 패키지를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복수노조 설립시 창구단일화 방안은 그래서 이런 대기업들 간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밀어붙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면서 전임자 임금은 노조에서 지급한다고 하니 기업주들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할 상황이 되버린 겁입니다. 정부와 기업주에게 반대한다더니 난데없이 정부와 삼성, 현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안을 노동계에서 먼저 내놓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항복 선언으로 얻을 수 있다는 그 어떤 실리도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 항복 선언으로 정부와 경총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대국민선언이 배신이자 굴욕적인 항복문서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장 조합원의 처지에서 그렇습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저버리고 노동자대회와 찬반투표로 모인 조합원들의 분노와 투지를 비민주적으로 짓밟았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을 사실상 반대하며 조합비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해 왔던 노총 지도부 주류파로선 '항복'이 아니라 절묘한 타협책이었을 겁니다.

1천 명 이하 노조는 노사 자율로 한다는 한나라당 중재안이 나왔다는데 중소기업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 지도부로선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국노총 소속 대기업노조를 포함해 나머지 노조와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결사의 자유를 제물로 바쳐 자신들의 안위와 입지를 굳히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쉬이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내부적으로도 큰 반발에 부딪혀 있습니다. 특히 경총과 논의 과정에서 1만 명 이상 대형 노조는 즉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실행하고 나머지는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별로 시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흘러 나오자, 한국노총 소속 대형 노조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각각 수천 명을 동원했던 은행권 대형 노조들[각주:2]에서는 조합원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라고 난리입니다. 이들 노조의 집행부는 이명박의 노동탄압의 본질이 결국 '대기업 노조 죽이기'였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석춘 지도부의 선언은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와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연맹들과 지역에서 임시 대대 소집과 지도부 사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토요일(11.28) 공공부문 양 노총 공동집회도 개최했던 공공연맹 노조들도 반응이 안 좋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총 중앙은 연락도 잘 안되고 지도부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무총국 간부들도 통화하기 힘듭니다. 이번 굴복 선언이 한나라당 점거 농성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조합원들은 "항의하라고 농성 보냈더니 그 안에서 포섭되서 돌아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노총 지도부도 자신들의 존재 근거 뿐 아니라 현장의 불만 때문에 투쟁을 시작했지만 양보 없는 정부와 노동운동 안의 압력에 샌드위치가 되서 갈팡질팡한 듯합니다. 재정을 크게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에게서 독립해 억압적인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예전부터 한국노총이 투쟁 노선을 펼 때 노총의 보수파 지도부에겐 뿌리 깊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투쟁을 해야 할 때 안 하면 불만을 품고 소속 노조가 민주노총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품으려고 투쟁에 나서면 투쟁으로 자신감이 오른 노조들이 또 민주노총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복수노조 반대 논리는 경총의 논리와 같지만 보수파 지도부 자신들의 딜레마(이자 이해관계)기도 합니다.

이번 노동법 투쟁이 중요했던 이유는 수 년 만의 양 노총 공조 투쟁이라는 점, 전반적인 노동탄압 기조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 점, 공기업 부문 공동 투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특히 이명박이 4대강, 세종시, 한상률게이트, 철도 등 노동자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 노총 투쟁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석춘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아쉽고 열받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열중하던 이명박은 또 노무현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 손잡고 민주노총을 배제·고립시키는 정책 말입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굳건히 제 길을 가면서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을 이 투쟁으로 견인해야 노총 내부에서 반발이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한국노총은 안 돼."라는 냉소가 아니라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후퇴하는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 단위노조와 조합원들에게 말입니다.


  1.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씨를 비롯해 울산 삼성 SDI공장이 꽤 오래 버텼고, 거제 삼성중공업은 법외 단체인 노동자협의회가 준 노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은행권엔 조합원 1만 명 이상인 노조가 셋이나 됩니다. 농협, 우리, 국민. 이밖에도 한전, LG전자 등이 한국노총 안에서 조합원 1만 명이 넘는 노조들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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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20만 노동자들이 이명박 정부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다


주말 양 노총 노동자대회를 모두 다녀왔습니다. 이틀 연속 여의도공원을 누비고 다녔더니 주초엔 몸살이 나서 이번 주 개인 연구와 집필(?) 계획이 모두 늦춰졌습니다.ㅋ

한국노총 소속 노조에서 오래 일을 했기 때문에 아는 이들이 좀 있는 편이라 인사하느라 입구 쪽에 서 있었는데, 끝도 없이 밀려드는 조합원들을 보며 '인파(人波)'라는 단어가 처음엔 얼마나 신선하고 적절하며 놀라운 표현이었을지 생각했습니다.

아프간 파병 반대 서명하는 부스의 아는 분, <레프트21> 판매 부스의 동료들이 아는 사람 만나면 서명과 신문을 권하라고 압박을 넣는데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악수 한 번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그러질 못했습니다.


여의도공원이 노동자 집회로 그렇게 꽉꽉 들어차고도 사람이 넘친 건 제가 지금껏 본 중엔 처음입니다. 대단했습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도 꽤 큰 규모였는데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물론 민주노총 노동자대회도 열기 있었고 규모가 컸습니다. 특히 언론, 공무원, 전교조 등 이명박 정부와 최전방에서 대치하는 노조들이 적극적인 투지를 밝혀 많은 참가자들을 고무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 대규모 집회를 한 탓에 이날 공공부문 노조들의 참가가 적었던 게 조금 아쉬웠죠. 그 날 1만5천여 명이나 왔었다는 데요. 전야제 주점에선 옆 테이블의 기아차 조합원들 표정이 지난 여름과 달리 환하고 생기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철도노조는 분위기는 고조돼 있는데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부담이 아직 있는 듯합니다. 조합원 개인들에게 손배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한국노총과 인연이 있다보니 저한테 왜 이렇게 한국노총 집회에 사람이 많이 온 것 같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한나라당과 정책연대 노선을 펴면서 정부와 갈등을 될수록 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땐 이날 인파는 이명박의 노동정책에 불만의 저변이 매우 커져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공기업 부문에선 단협 해지와 비정규직 해고, 임금 삭감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기업 부문에서도 해고와 임금 삭감, 노조 탄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2년 만에 가장 많은 동원을 했습니다. 양 노총 모두 '간만에' '많이' 20만 명이나 모였고 사기가 이전보다 높았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여당의 내분이나 양 노총의 공동투쟁 선언도 좋은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그 점에서 공동투쟁을 약속한 양 노총 위원장이 서로 상대 집회에 참가해 연대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좌파 일각의 습관적 '어용' 지칭과 달리 한국노총도 보수적이긴 하지만 노동조합인지라 이처럼 현장에서 불만과 분노가 점점 자라는 데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구요. 이날도 집행부는 행진 거리가 너무 짧아 조합원들이 불만을 제기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노동계는 대체로 한국노총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로 더 큰 피해를 볼 거라고 봅니다. 중소기업 노조들의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조합원 수가 3백 명 언저리로 겨우 상근간부 한두 명 두는 곳에서는 노조 상근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큽니다.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한국노총 소속 작업장들에선 평소에 노조 활동에서 집행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큽니다. 그래서 이날 만난 분들도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노조 말살 정책"이라고 보는 정서가 강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집행부의 동원 의지도 진지했고 조합원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열의있게 참가한 것입니다. 한국노총 대박 동원의 교훈은 민주노총도 진지하게 조직하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한 대형노조는 9년 전 파업 후 최초로 조합원 10분의 1을 동원했습니다. 늘 노조의 주요 쟁점이 '혹사 노동 완화'이고 전국에 조합원이 산개한 조건에서 주말 집회에 조합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국에서 올라오는 차비와 식대, 기념품까지 일체의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날 하루 집회 참가를 위해 1억 원이나 썼다고 합니다.

평소 집회 동원이 잦은 민주노총 노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나 집회 참가 기회가 적기 때문에 집행부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긴 합니다만, 불만의 강도와 쟁점의 성격, 집행부의 의지라는 주요 조건이 잘 맞으면 한국노총의 동원력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김태환 열사가 죽음을 당했던 4년 전엔 평일 4만 명 파업 집회를 연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날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 다른 진보 단체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고 주장을 해야죠. <레프트21>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반전평화연대(준), 다함께 등만 눈에 띄었습니다.

오히려 쌍용차노조 동지들이 여러 명 참가해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고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파업에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양 노총 집회에 모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부스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한편,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서는 또하나의 쟁점인 복수노조 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노총 지도부의 일부는 복수노조 허용도 계속 유예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3년 전 노동법 개악 야합에서는 노골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했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 조합원이나 현장 간부들도 복수노조 허용에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더군요. 이날 대회 주요 연사들은 복수노조 허용시 창구 단일화만 언급하면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지 않은 점에서 다행입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묶여서 얘기되니 헷갈리는 분들도 계시던데 복수노조 허용은 애초 노동계가 요구해 입법한 것입니다. 그래놓곤 일방적으로 유예해서 지금까지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기업 내 복수노조의 창구 단일화를 강제로 시행하겠다는 것으로 복수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헌재 판결의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군요. 복수노조는 허용하지만 복수 교섭은 안 된다니??? 이건 복수노조를 허용한 것도 아니고, 허용 안 한 것도 아니여~ 얼쑤~

노조는 단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각자 자유로운 결사권을 가질 때 그 단결이 공고해 질 수 있는 겁니다. 복수노조를 금지해 단결을 유지하자는 건 관료적 형식적 단결에 불과합니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 금지로 고통 받는 건 주로 비정규직노조들이거나 집행부가 정말 우파적인 곳들입니다. 반면 노조 와해 목적으로 복수노조를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노조 자체를 없애려는 데 복수노조를 활용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죠. 복수노조 설립으로 기존 노조 와해가 가능하다면 탄압을 해 집행부를 장악하는 게 더 빠른 길일 겁니다.

<레프트21>은 주말 노동자대회에 '풀(full)'로 참여했습니다. 노동자대회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레프트21>의 주요 독자층이기 때문입니다.


정기구독 홍보물을 나눠주며 신문 판매도 했는데, 1천1백27부가 이틀 동안 판매됐습니다. 저도 홍보물 나눠주기를 잠깐 했었구요, 간만에 만난 지인들(노동자대회 아니면 만나기 힘든)에게 한 부씩 권해 열 부 가까이 저도 기여했네요.ㅋ

참가자 2백명 당 1부씩 구입한 건데요. 고무적인 결과지만 만족하기엔 부족하네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언론, 더 많은 곳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문, 더 많은 사람들이 기고와 판매까지 참여하는 언론으로 발전하려면 더 빡세게 굴러야 겠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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