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최순실과 정유라가 누구시길래 이렇게’

썩어빠진 시궁창 박근혜 정부


<노동자 연대> 183호 | 발행 2016-10-19 | 입력 2016-10-18




미르 재단과 최순실(개명 전 이름, 현재 최서원)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얄궂게도 박근혜의 아군인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와, 박근혜가 측근 부패를 방지한다며 직접 신설해 임명까지 한 청와대 특별감찰관실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격분에 〈조선일보〉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이어 특별감찰관실이 공중분해됐다. 박근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도대체 ‘최순실이 누군데’ 하는 의혹만 키웠다.


그렇게 해서 최순실을 고리로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 정유라와 차은택, 재벌들과의 정경유착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부패 계보 (크게 보기) ⓒ노동자연대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새끼들”(정유라 레포트 중에서) 비밀스런 권력의 부패 복마전은 정경유착의 실상을 보여 준다. ⓒ 이미진


두 재단은 각각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창조 문화·스포츠 산업에 대한 기여를 표방했다. 즉, 박근혜의 임기 말과 퇴임 후의 치적 홍보용 성격이 큰 것이다.


이 재단에 재벌들이 (전경련을 통해) 보름 만에 8백억 원이 훨씬 넘는 돈을 걷어줬다. 친기업 정책 추진에 다걸기 하는 정부에 기업주들이 ‘성의’를 보인 것이다. 전경련 부회장 이승철과 정책기획수석 안종범이 모금의 주체였고, 최순실이 ‘회장님’으로 불리며 재단 설립을 총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26일 설립신고를 한 미르재단의 설립 실무는 차은택 쪽이 맡았다. 그는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천거해 2014년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2014년 8월 차은택이 몸담은 회사의 대표였던 김종덕이 문화체육부장관이 됐고, 12월에 외삼촌인 김상률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됐다. 차은택 본인도 올해 초까지 창조경제추진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을 지냈다.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 자리에는 차은택과 함께 영상홍보회사를 운영했던 인물이 앉았다.


올 1월 설립된 K스포츠재단에는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 사장이 초대 이사장이 됐다.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이 더 많은 것을 챙긴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승마선수이자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는 올해 초부터 독일에서 장기 해외 훈련을 시작했다. 이 훈련단 일행의 숙소와 훈련장 등 체류 관련 실무를 K스포츠재단이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이 재단의 첫 업무였던 셈이다. 이들은 20실 규모의 호텔을 통째로 빌려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를 쓰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은 K스포츠재단이 국내 모 재벌에게 80억 원을 비인기 종목 도쿄올림픽 유망주 지원 명목으로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재단은 독일에서 비덱이라는 회사를 통해 선수를 관리하겠다고 했고, 이 비덱은 독일 현지 법인으로 최서원(최순실)과 정유라가 공동 지분을 가진 회사라는 것이다. 이젠 스포츠 투자를 빙자한 재산 해외 도피 의혹까지 생긴 것이다. (이 기사를 인쇄소로 넘길 시점에 한국과 독일에 더블루K라는 최순실 소유의 또 다른 K스포츠 재단 연계 기업이 폭로됐다. 독일의 더블루K는 비덱과 주소지가 같다고 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결국 정유라는 지금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연결 고리가 돼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정유라는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했다. 정유라의 체육특기생 입학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이었다. 그러나 이화여대 입학처장이 총장에게 박근혜와 최순실, 정윤회, 정유라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하는(“지금 누구의 딸이 우리 대학에 지원했다!”) 특별한 과정을 거친 뒤에 무난히 합격했다.




정유라가 학교를 안 나가서 학점 받기가 어렵자, 학칙을 바꿔 해외 훈련과 대회 출전 계획을 미리 내면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줬다. 그러나 올해 4월에 정유라가 냈다고 이화여대 당국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계획표에는 올해 9월 시합의 ‘결과’까지 표시돼 있었다. 4월에 서류를 낸 것처럼 조작하다가 실수한 듯하다. 오죽하면 입학부터 학점까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이런 대가로 이화여대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싹쓸이했다.


대한승마협회가 마치 정유라의 매니지먼트 회사처럼 정유라를 특별 관리한 것도 드러났다. 그런데 지금 승마협회의 협회장을 비롯한 핵심 집행부는 모두 삼성전자 임원들이다. 이들은 정유라의 독일 훈련 비용을 승마협회 공식 사업비로 지출하려 했고, 국가대표 감독을 보내어 개인교습을 하게 했다. 이런 일들이 승마협회의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 프로젝트로 포장됐다. 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의 명마를 정유라에게 선물한 정황도 드러났다.


결국 청와대와 교육부, 전경련과 삼성, 이화여대, 일부 예술계·스포츠계 인사들이 모두 연루된 표면적 중심에 정유라가 있는 셈이다. 그 정유라와 박근혜를 잇는 고리가 어머니인 최순실이니 결국 박근혜와 최순실의 특별한 관계가 이 엄청난 권력형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실세로 부각된 정윤회(전 남편), 우병우(추천), 차은택(추천) 등 모두 최순실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다. 최순실은 박근혜가 1970년대 청와대 시절 멘토처럼 따랐다는 최태민의 딸이다. 최순실은 그 시절부터 40년간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지내 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통령 취임식 등 중요 행사에 박근혜가 입을 한복과 보석류까지 최순실이 골라 주고, 최순실이 추천한 개인 트레이너를 청와대의 고위직에 임명할 정도로 둘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업주들이 정경유착으로 특혜를 받으려 한 것이든, 딸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시나리오를 위해 권력을 이용한 것이든, 권력자가 둘 다 이용하다 들킨 것이든, 그 본질은 같다. 사익을 위해 국가권력이 동원된 전형적인 권력형 특권층 부패인 것이다.


물론 공식 직책도 없는 측근들의 권력형 부패가 문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재 정권들은 물론이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모두 임기 말에 대통령의 아들 또는 형이 연루된 권력형 부패가 드러나 정권이 약화됐다.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불안정하다는 점이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보여 준 것


최순실 게이트는 첫째, 박근혜 정부의 부패한 정경유착 실상을 확실히 보여 줬다. 박근혜 측근들이 운영할 ‘듣보잡’ 재단을 위해 재벌들이 보름 만에 1천억 원 가까운 돈을 냈다. 삼성이 맡고 있는 대한승마협회는 마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매니지먼트 소속사처럼 움직였다. 기업화된 대학(이화여대)도 이 대열에 끼었다. 이런 ‘자발적’ 지원과 헌납은 정권의 압박 탓도 있겠지만, 주로 노동 개악, 의료와 철도 등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각종 정부 사업에서의 특혜 등을 바라는 대가성이다.


둘째,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과 부패한 인적 기반을 드러냈다. 박근혜의 권력 독점적 통치 스타일 탓에 잘 드러나지도 않은 민간인 ‘비선 실세’가 박근혜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엄청난 특권을 누려 왔다. 사진 몇 장 말고는 언론조차 어디 사는지 목소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비선 실세’, ‘회장님’이라는 별칭으로 전횡을 휘둘러 온 것이다.(〈jtbc〉는 최순실의 대화 녹음 파일을 보도하면서, 본인 목소리를 비교·확증할 근거가 없어서 인용 보도 형식으로 처리했다.) 이런 비밀스런 실세 가족을 위해 정부와 공적 기관들, 재벌이 움직였다.


결국 세월호 참사 당일 근무시간에 사라져 놓고는 ‘사생활이니 묻지 말라’는 적반하장도 이처럼 권력을 사유물처럼 다뤄 온 특권층 DNA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나 파업 노동자들에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셋째, 아군인 <조선일보>가 이런 비리를 캐려 한 것은 여권 내부의 균열을 보여 줬다. <조선일보>가 꼬리 내린 뒤 <한겨레>가 폭로를 이어간 것도 시사적이다. 정보원이 건재한 것은 여권 내 균열이 봉합된 게 아니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새누리당의 ‘꼴통 친박’ 김진태 등을 빼고 기소했다. 선관위가 이에 반발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것도 권력 이완의 한 양상을 보여 준다.


행복 끝, 레임덕 시작


정권의 비밀스런 추문이 터져나오고 부패 폭로가 순식간에 박근혜의 턱밑까지 치달은 것은 실로 심각한 위기의 징후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정치자금을 헌납한 것을 두고 경총 회장이 ‘기업의 발목을 잡아 돈을 뜯어낸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은 시사적이다. 기업주 대표의 이런 냉소적 반응은 십중팔구 (측근 실세까지 챙겨주며) 이 정부와 정경유착을 한 대가가 시원찮아서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려고 대우조선과 롯데 등을 뒤졌으나, 자신의 부패도 함께 폭로됐다. 오죽하면 이명박이 ‘나도 못했는데, 박근혜는 더 못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기까지 했을까.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지도도 최근 폭락했다. 19~40대에서 지지율은 10퍼센트대다.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다. 이런 지지율 폭락에는 경제 실패 등에서 드러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감과 염증이 근본적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을 증폭시킨 것은 9월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11월 12일 대규모 민중총궐기도 예정돼 있다.


상처입은 야수가 사납듯이, 그럴수록 박근혜는 노동자 투쟁에 더 강경하게 나올 것이다. 노동운동은 위축되지 말고 박근혜의 취약성을 이용해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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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전문가들이 정리하는 한미FTA 독소조항들을 잘 읽어 보면 이 조항들은 직접적인 교역조건인 관세 완화 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한미FTA가 없애자는 무역 장벽은 비관세장벽으로, 그것은 한 사회가 공공의 복리를 위해 기업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토지 소유를 규제할 권리(국가의 의무), 건강 증진을 위해 사보험을 규제하며 전국민 의료서비스를 확대할 권리(의무), 주요 공공서비스를 공기업화해 저렴하게 공급할 권리(의무) 등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들은 공공복리를 위한 기업 규제를 ‘비관세 무역장벽’이라 부르는 겁니다. 즉, 돈벌이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본다는 거죠. 

래칫(역진방지) 조항, 투자자-국가 제소권, 공공서비스 사유화, 서비스산업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비위반 제소,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한미FTA의 진정한 몸통입니다.

평범한 다수 대중의 삶을 위한 복지와 일자리, 환경 등의 사회·경제 정의를 위한 사회 개혁을 가로막고 오히려 이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것이 FTA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FTA는 친기업·친부자의 반노동·반복지·반민주 협정입니다. (구체적이고 쉬운 사례 설명은 민주노동당이 작성했다는 아래 박스 글을참조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주들은 이명박 정부가 자동차 관세 등에서 후퇴했는데도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FTA 체결을 로비한 삼성이 노리는 바도 이것입니다. 외부 충격을 빌어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성하려는 것입니다. 공기업 사유화, 각종 기업 규제 완화,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 이것은 한국의 기업들이 사회 지배와 돈벌이를 위해 오래도록 추구해 온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변화가 오는 산업은 서비스산업일 텐데, 삼성 등은 이미 의료(바이오) 산업이나 금융(보험)산업이 차세대 돈벌이 사업이라며 투자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비위반 제소,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등은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후퇴, 병원 영리화, 공공서비스의 사기업화와 비용 인상 등에 이용됩니다.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나쁘다?)를 맺은 캐나다에선 정부의 우체국서비스가 택배기업의 이익을 침해당한다고, 멕시코에선 환경 규제가 미국 기업 공장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1억 달러가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습니다.

이런 국제 소송들에서 미국 기업이 패한 사례가 없습니다. 왜냐면, 미국이 가장 강대국이기도 하거니와 기업 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대 공공서비스의 대결이니 신자유주의국제기구들은 모두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이죠. 
 

볼리비아 사례도 있죠. IMF의 구조조정 요구로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사업을 미국 다국적기업 벡텔이 사유화했는데, 물값이 비싸져 사람들이 빗물을 받아 먹으니까 이를 제소해(투자자―국가제소권
) 정부가 빗물통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이 사례에는 이밖에도 비위반제소나 역진방지 조항 등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코차밤바는 전설적인 민중봉기로 이 수도물 사유화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를 맺은 상태도 아니었는데 민중이 그런 피해를 입었던 겁니다. FTA의 본질과 그 저항 전략을 모두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가장 말 많은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이 체결돼도 이미 다국적 기업인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에 현지 법인 설립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를 통해 복지를 위한 규제, 노동권을 위한 규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라는 압박, 환경을 위한 규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미국 기업과 동등한 기업 활동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겠죠.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결코 국익과 기업 이익의 불균형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기업간 국가간 단순한 산업별 교역 조건의 문제는 전혀 본질이 아닙니다. 그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유화 문제도 그 점에서 한미FTA의 단순한 사전 단계가 아니라 그 본질적 일부인 것입니다. 

주권이 침해받는다는 주장에는 복합적 의미가 배여 있을 텐데, 사법주권 같은 관료의 권한이나 국익이 그 본질이 아닙니다. 국익은 국가를 지배하는 세력의 이익을 포장한 단어일 뿐입니다. 정부를 선출해서, 선출된 정부를 대중적으로 압박해, 공공 복리를 확대할 수 있는 민중의 민주적 권리가 침해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계급전쟁

또다른 배경도 있는데, 한미FTA에는 한미 지배자들의 동맹 강화로 안보(전쟁)동맹도 강화하려는 의도도 배여 있습니다. 한국 자본가들은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서 한국 지배자들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키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결정적 거점 하나를 확보하고요.[각주:2] 

미국의 패권전쟁에 적극 협력했던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과 제주도 강정기지 건설을 결정하던(추진은 이명박이 하는 그 제주 강정기지) 시점에 한미FTA를 추진하고 협상을 시작한 게 단지 우연일까요?

애초 이 협정을 추진한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 동맹에서 한국과 안보동맹 강화가 절실히 필요했고요. 경제영토 확장을 넘어서 군사패권 동맹의 영토 확장인 겁니다. 이번에 오바마가 ‘다원적 전략동맹’이라고 한 것은 이런 다면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죠. 

한미FTA는 전쟁을 해서라도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에 협력해 오히려 동아시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책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제국주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식 사회 체제를 수출해 제국 자본가(그리고 부차적이지만 그들과 협력하는 친제국 자본가들)들에게 ‘평평한[각주:3]’ 세계를 만들어 주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단순히 ‘국익’ 논리로 FTA 재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논리적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입니다. 아래 열두 가지 독소조항은 애초에 한미FTA에 포함돼 있던 것들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나은 교역 조건에 합의한 듯 보이는 것은 저런 결정적 독소조항들을 모두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향력 있던 지위에 있던 분들은 이명박의 FTA 강행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정직한 성찰도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각주:4] 민주당에 비준 저지를 요구하되, 믿지는 말아야 할 까닭이며, 재재협상이 아니라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FTA 몇 조항만 바꾸면 된다는 민주당식 논리는 이명박이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얘기죠.) 

이 점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번 한 번 겨우 막아내더라도 한미FTA는 계속 유령처럼 우리를 배회할 것입니다. 국회 몸싸움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이 중심이 돼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하는 대중적 저항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일각의 국민투표 요구론도 헛다리 짚기(아니면 꼼수?)입니다. 2007년 한미FTA 반대 투쟁 과정에서 국민투표로 막자는 방안이 나왔지만 다수가 반대했습니다. FTA 반대는 다수 여론을 거슬러 체결한다는 형식적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삶이 걸린 실질적 민주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내리면, FTA는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돈 벌 자유를 위해 노동대중의 삶을 해치려는 것이고, 자본이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수단으로 99퍼센트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고장난 자본주의를 더 끌고 나가 우리 삶을 시궁창에 계속 머물게 하겠다는 도전장입니다.  

1퍼센트 정권, 이미 심판받아 정치적 정당을 잃어버린 정권의 FTA 강행에 맞서는 우리도 이를 계급 전쟁으로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한미FTA를 막는 행동은 세계적인 99퍼센트 행동의 일부인 것입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둘러싸고 벌이는 오랜 계급전쟁의 한 전투인 것입니다. 

이건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에서 출발해 현실을 재단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과 대응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이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다수의 삶을 위한다면 FTA 반대와 완전 폐기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보의 길입니다. 

☞ 추천 기사 읽기 ―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선생의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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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한미FTA ‘괴담’론을 반박한다
 



한미FTA를 폐기해야 할 12가지 이유(민주노동당 작성으로 알려진 자료. 일부 설명이 부정확하다는 평이 있으나 대체로 무난함. 굳이 따지면, 예시에서 과장된 설명이 있긴 함. 전반적으로 한미FTA 자체를 비준 후 전혀 되돌릴 수 없다고 한 것은 정확하지 않음. 국내법으로 폐기할 수 있음, 다만 국제법적 효력이 남아 있어서 제소 대상 가능성이 큰 것임. 이 경우, 민중항쟁 방식으로 정치적 무효화의 길이 가장 효력 있음. 예를 들어, FTA를 비준한 정권 자체를 항쟁으로 퇴진시켜서 쫓겨난 정부가 맺은 조약을 무효로 한다고 하면 함부로 못 함. 볼리비아의 경우 FTA는 아니었지만 외국과 맺은 계약을 민중항쟁으로 피해 없이 무효로 함)


1. 래칫조항(톱니바퀴의 역진 방지장치)
낚시에 쓰는 미늘 같은 것인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즉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물릴 수 없게 하는 조항이다. 선진국 및 산업국가 사이의 FTA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소조항 중 하나이다. 
<예>
-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가 되는 상황이 와도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 수입을 막지 못함
- 의료보험이 영리화 되고 병원이 사유화 된 후 아무리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 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교육 및 문화가 사유화된 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2.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더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게 하는 조항이다.
<예>
-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내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됨
-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은행의 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게 됨.
-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감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떼부도를 맞게 됨
- 사채 이자율 제한이 없어지고 사채 천국이 됨

3.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Trips+)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 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예>
- 고가의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카피약 사용 불가능
- 미국의 경우 완벽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성인 1인당 1달에 70만원(700달러)의 약값을 지출함(4인가족 기준 월 200만원 2000달러 지출)

4. 스냅백 조항(snapback)

한국 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관세 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조항
<예>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 되고 한국경제는 막장으로 내몰리게 됨

5.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Negative List)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Positive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은 무조건 모두 개방해야 한다.
<예>
- 온갖 도박장, 섹스산업, 피라미드 판매업 등 미국의 서비스산업이 국내에 마구 들어오게 될 때 군말없이 이것들을 수용해야 함

6.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Future MFN Treatment)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FTA에 소급 적용하는 것이다.
<예>
- 일본과 FTA를 체결할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보리나 콩을 개방했을 경우 원래 한미FTA에는 없던 콩이나 보리도 즉각 미국에게 개방해야 함.

7.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한 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민간 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투자자본이나 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판결나면 한국 정부가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이 경우 당연히 한국보다 힘센 미국의 투기자본 및 초국적 기업이 승리)
한 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다.
<예>
- 이 제도로 인해 미국 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음
-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음.
- 한국과 유럽의 FTA협상에서는 이 독소조항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음
- 대한민국 헌법상의 주권국가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이 무너짐
- 한국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

8. 비위반 제소

FTA를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 민간기구에 상대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예>
- 자본이나 기업 자신의 경영 실수로 기대이익을 못얻었을 경우라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음

9. 정부의 입증 책임(necessity test)

국가의 정책, 규정 등 상대국가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예>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여론 같은 경우 과학적 입증 자체가 터무니 없는 일임.
-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국제적 위상이 취약함

10.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제도이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토지공개념 등 사유를 제한하는 공동체적 법제를 가지고 있음(미국은 한국과 정반대). 그러나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공동체적 법체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
<예>
- 한미FTA가 한국정부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상위법인 양 해석되게 됨
-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11.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상 대국가에서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도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설립되지 않은 회사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비설립권 조항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이들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불법 사실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예>
- 미국은 각 나라와 FTA를 맺으면서 ‘FTA이행법’을 만들었음. 이 법에서 “미국의 법률에 저촉되는 모든 FTA 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미국인에게 무효이다.” 라고 선언했음. (미국에서는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일 뿐임)
- 한국정부는 한미FTA에 저촉되는 한국의 모든 법(30여개)을 고치려고 함(한미FTA가 조약이며 법률이라고 함)

12. 공기업 완전 민영화와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예>
- 의료보험공단, 한전, 석유공사, 농수산물, 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중소기업은행, 도시가스, 수도공사, 우체국, 지하철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등 :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에 넘어가 사유화도 가능성이 농후함
-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 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이 대폭 인상되게 됨으로써 서민경제가 파탄나게 됨


  1. 이 경우 ISD는 한국 자본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겠죠. 또 한국자본이 미국에 문제제기할 수도 있구요. 애국-매국 문제가 결코 아닌 이유입니다. [본문으로]
  2. 미국과 중국은 2000년대 동안 경제적 협력과 군사적 긴장 관계를 형성해 왔죠. 그동안 협력과 견제가 두 나라의 기본 관계였는데, 경제 위기가 해결 안 되는 지금, 경제에서도 경쟁 관계가 더 부각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신자유주의 세계화 찬성론자들은 세계가 평평하다고 주장하죠. [본문으로]
  4. 올해 문재인 씨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자서전에서 한미FTA를 잘한 것으로 자화자찬하고 김현종을 높이 평가했는데, 김현종의 친미 행위가 드러난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죠.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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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동자대회 후기 글에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제 항복 선언은 이런 우려가 현실로 된 것입니다. 최악의 결과가 됐습니다.

쟁점이 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의 경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사용자 쪽에서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 쪽에서 요구했던 사항입니다. 이것이 패키지로 엮이면서 서로 유예에 합의해 왔던 겁니다. 때문 암묵적으로 때론 공개적으로.

그런데 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만 따로 떼서 밀어붙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대기업들이 두 쟁점을 놓고 이해관계를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웁니다.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주동자를 납치하고 잽싸게 두세 명이 가입한 가짜 노조를 설립 신고합니다. 어느 곳은 아예 미리 가짜 어용노조 설립신고를 미리 해놓기도 합니다. 기업별 복수노조가 금지된 상황에서 이런 '무노조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무너집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탄압과 검경의 비호 속에서도 지금도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력[각주:1]이 안팎에서 끊이지 않으니 기업별 복수노조의 허용은 삼성 신화에 균열을 일으킬 겁니다.

반면, 현대차그룹 같은 경우, 이미 강력한 초대형노조가 조직돼 있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노조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차 정도의 조직력이면 복수노조가 생겨도 친사측 노조가 다수파 노조가 되긴 쉽지 않습니다. 사측 탄압으로 무너진 노조들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노조들이 온갖 음모와 분열 술책,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야 간혹 엉터리로 바뀌기도 하지만요.

반면 복수노조 금지에 관심있는 삼성은 기업 내에 강력한 노조가 없기에 전임자 임금 문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가 동시에 허용되면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둘 다 유예가 되면 삼성이 바라는 상황이 됩니다. 그 점 때문에 이 패키지를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복수노조 설립시 창구단일화 방안은 그래서 이런 대기업들 간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밀어붙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면서 전임자 임금은 노조에서 지급한다고 하니 기업주들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할 상황이 되버린 겁입니다. 정부와 기업주에게 반대한다더니 난데없이 정부와 삼성, 현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안을 노동계에서 먼저 내놓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항복 선언으로 얻을 수 있다는 그 어떤 실리도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 항복 선언으로 정부와 경총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대국민선언이 배신이자 굴욕적인 항복문서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장 조합원의 처지에서 그렇습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저버리고 노동자대회와 찬반투표로 모인 조합원들의 분노와 투지를 비민주적으로 짓밟았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을 사실상 반대하며 조합비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해 왔던 노총 지도부 주류파로선 '항복'이 아니라 절묘한 타협책이었을 겁니다.

1천 명 이하 노조는 노사 자율로 한다는 한나라당 중재안이 나왔다는데 중소기업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 지도부로선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국노총 소속 대기업노조를 포함해 나머지 노조와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결사의 자유를 제물로 바쳐 자신들의 안위와 입지를 굳히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쉬이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내부적으로도 큰 반발에 부딪혀 있습니다. 특히 경총과 논의 과정에서 1만 명 이상 대형 노조는 즉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실행하고 나머지는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별로 시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흘러 나오자, 한국노총 소속 대형 노조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각각 수천 명을 동원했던 은행권 대형 노조들[각주:2]에서는 조합원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라고 난리입니다. 이들 노조의 집행부는 이명박의 노동탄압의 본질이 결국 '대기업 노조 죽이기'였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석춘 지도부의 선언은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와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연맹들과 지역에서 임시 대대 소집과 지도부 사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토요일(11.28) 공공부문 양 노총 공동집회도 개최했던 공공연맹 노조들도 반응이 안 좋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총 중앙은 연락도 잘 안되고 지도부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무총국 간부들도 통화하기 힘듭니다. 이번 굴복 선언이 한나라당 점거 농성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조합원들은 "항의하라고 농성 보냈더니 그 안에서 포섭되서 돌아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노총 지도부도 자신들의 존재 근거 뿐 아니라 현장의 불만 때문에 투쟁을 시작했지만 양보 없는 정부와 노동운동 안의 압력에 샌드위치가 되서 갈팡질팡한 듯합니다. 재정을 크게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에게서 독립해 억압적인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예전부터 한국노총이 투쟁 노선을 펼 때 노총의 보수파 지도부에겐 뿌리 깊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투쟁을 해야 할 때 안 하면 불만을 품고 소속 노조가 민주노총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품으려고 투쟁에 나서면 투쟁으로 자신감이 오른 노조들이 또 민주노총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복수노조 반대 논리는 경총의 논리와 같지만 보수파 지도부 자신들의 딜레마(이자 이해관계)기도 합니다.

이번 노동법 투쟁이 중요했던 이유는 수 년 만의 양 노총 공조 투쟁이라는 점, 전반적인 노동탄압 기조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 점, 공기업 부문 공동 투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특히 이명박이 4대강, 세종시, 한상률게이트, 철도 등 노동자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 노총 투쟁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석춘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아쉽고 열받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열중하던 이명박은 또 노무현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 손잡고 민주노총을 배제·고립시키는 정책 말입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굳건히 제 길을 가면서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을 이 투쟁으로 견인해야 노총 내부에서 반발이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한국노총은 안 돼."라는 냉소가 아니라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후퇴하는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 단위노조와 조합원들에게 말입니다.


  1.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씨를 비롯해 울산 삼성 SDI공장이 꽤 오래 버텼고, 거제 삼성중공업은 법외 단체인 노동자협의회가 준 노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은행권엔 조합원 1만 명 이상인 노조가 셋이나 됩니다. 농협, 우리, 국민. 이밖에도 한전, LG전자 등이 한국노총 안에서 조합원 1만 명이 넘는 노조들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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