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기업천국 도시 확산할 세종시 수정안  / 세종시 관련 MB의 말바꾸기와 이박투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종시 수정안이 연초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연말 날치기 무효화 투쟁마저 묻히는 듯합니다. 이 상황에서 진보는 어떤 자세로 뭘 해야 할까요.

사실 세종시는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두 계획 모두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 차원의 '행정부처 이전'입니다.

그런데, 전 행정부처 이전으로 균형 발전하는 데 신도시 건설이 핵심일까요. 효율성으로 따지면 그냥 기존에 이미 개발된 도시로 이전하면 됩니다. 서울의 행정부를 분산하는 게 목표라면, 대전엔 이미 제2청사가 있는데, 그 근처에 신도시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신도시를 만들면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갈까요? 그리되면, 인구 이전이지 균형 발전은 아닐겁니다. 균형 발전하려면 현지 자영업을 활성화하고 현지 청년들을 채용해야 하는데, 이럴 때 어느 측면에서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까요? 공무원 몇 천 명 간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 리 없잖아요~

세종시가 원안대로 세워져도 수도권 인구가 그리 내려가기 보단 인근 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일겁니다. 새 구심 도시가 생기면 연기군과 인근 지역 인구가 집중되면서 새 소외 지역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세종시 원안 역시 균형 발전 목표보다 신도시 '개발' 즉, 토목공사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건설로 경기 부양하고 기업과 부자들의 투기 지역 넓혀 주기 말입니다.

특히, 지역 토호들은 이런 방식의 균형 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토균형발전이 국토균형땅값올리기(그리고 전 국토의 투기대상화)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균형 발전 논리가 아파트 건설 광풍이 불어 지금 지방 도시들엔 미분양 아파트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이 어느 하나라도 좋게 봐줄 구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건 기업 특혜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입니다. 분명히 수정안은 반대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뒤섞여 애초 주류 엘리트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다투는 문제였던 세종시 문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세종시 수정안 반대 쪽으로 반mb 진영을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습게도 이명박-민주당 구도로 가던 구도가 이제는 이명박-박근혜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건 애초에 이 세종시 의제 자체가 저들의 의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진보 쪽의 의견이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종시 블랙홀은 기업이 아니라 진보의 의제와 원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습니다.

진보 쪽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mb 진영의 묻지마 연대 정서가 이런 본말전도를 가속화하고, 그 결과로 묻지마 연대가 더 강화되는 악순환입니다.

이쯤에서 주요 진보 단체들의 세종시 관련 주장을 살펴봅시다.

민주노동당

이명박 대통령은 원형지 공급을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는 국민 세금을 재벌에게 퍼주는 특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전국의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재벌행복도시 재벌특혜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13 대변인 논평)

강기갑

세종시 수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상최대규모의 대기업 인센티브를 통해 ‘재벌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재벌특혜는 형평성을 요구하는 다른 지역에 대한 특혜로 도미노처럼 번져 결국 나라 전체를 ‘재벌행복국가’로 망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나라 빚은 또 어찌할 것인가. 결국 서민들의 부담으로 가중되는 것이다. (1.11 의원단총회 모두발언)

고송자 전남도의원

세종시수정안이 확정 발표된다면 이미 전남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기업들 중에서도 투자유치 파기가 잇따를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 기업 및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한 나주혁신도시와 해남.영암 관광레저도시(J프로젝트), 무안 기업도시 등은 세종시 때문에 사업추진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남도는 내다보고 있다. (1.11, <민중의소리> 기고)


진보신당 노회찬

세종시 문제는 원안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수정해버린 정부여당도 문제지만, 지금 국가적으로 세종시 문제가 핵심논란이 돼야하는가를 봐야 한다. (1.14 신년 기자회견)

심상정

지금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면서 불러들이고 있지만 아마 차기 정권에 의해서 또 다시 뒤집힐 운명이라는 것을 기업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뭐 결국 말만 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1.15,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조승수

세종시가 기업경제중심도시로 가면서 마치 블랙홀처럼 돼버렸습니다. 지금 땅값뿐만 하더라도 세종시 같은 경우는 36만원에서 40만원, 울산은 지금 299만원 대입니다. ... 이런 조건에서 울산에 투자하기로 한 삼성이나 한화 같은 기업들이 투자 여력의 한계를 느껴 울산이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1.13 울산 KBS <아침정보 울산> 라디오 인터뷰)


한국진보연대

정부의 세종시 수정은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전국의 모든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죽일 것이다.(...) 중앙부처 이전 백지화는 10개의 혁신도시, 8개의 기업도시 추진 동력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진시킬 것이며, 정부가 ‘파격적’으로 제시한 각종 특혜 때문에 그나마 지지부진 ‘추진’되던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경제적 추진력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1.11 성명서)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YMCA 등]

수정안은 행정도시 백지화선언, 국가균형발전 포기 선언이며 지역균형발전 자체를 부정하고 수도권을 더욱 팽창시키고자 하는 의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계획. 문제점: 1)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 목적 자체의 폐기  2)혁신도시 정상 추진 불가능 3)세종시 빨대효과와 지방 특화도시 고사  4)정부 재정부담을 통한 기업 밀어주기 (1.11 기자회견)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국진보연대의 성명입니다. 도시의 신자유주의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발 과정부터 신자유주의화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의 온건 버전)인데, 세종시 수정안이 기업도시의 추진력을 망쳐서 문제라고 합니다. 한미FTA 등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며 헌신해 온 이 단체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성명서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 단체가 신자유주의 논리로 신자유주의 정부를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참 미스테리합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나 민주노동당의 전남도의원은 지역 토호들의 지역 개발 논리를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업 유치가 우리 삶의 조건 개선에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도대체 기업권력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의 원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울산이나 나주의 혁신도시가 성공해도 정부 예산이 기업 유치를 위한 특혜 제공에 몽땅 쓰이고, 근로기준법이 개악돼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되고 해고가 쉬워지면, 중앙 정부의 복지예산이 줄고 공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건강보험을 무력화할 영리병원이 확산한다면, 그 혁신이 진보가 바라는 대중의 삶 개선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조치 확산의 지리적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그나마 민주노동당과 강기갑 대표는 수정안 비판에선 나름 핵심을 짚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늘 말이 아니라 실천이겠지요. 묻지마 반MB연대로 돌진하는. 물론, 더 자세히 보면, 기업도시와 기업특혜도시를 구분하는 도식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기업도시 자체가 기업특혜도시입니다. 한편, 다른 논평에선 원안을 적극 옹호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얼추 균형잡힌 지적을 했고, 심 전 의원은 날카로운 지적이긴 한데, 핵심을 회피한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진보신당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조승수 의원의 의견에 대한 두 진보신당 핵심 리더(노·심)의 생각입니다. 

주요 엔지오들이 결집한 수도권과밀호반대전국연대는 약간 공상적인 구상에 바탕해 수정안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기업도시'의 아류 버전인 '혁신도시' 추진에 적극 찬성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이들의 공통 전제는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주요한 국가적 의제라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건 공상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근본 속성입니다. 자본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이 집중은 지리적 집중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노동력이 도시로 집중하고 현대 산업 생산의 거점인 도시가 전근대 산업인 농업 지역인 농촌을 수탈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입니다. 그 결과로 도시 과밀화/농촌 공동화, 교통 혼잡, 환경 파괴, 대규모 슬럼, 주거 공간의 계급 분리, 농촌 수탈 등이 발생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서울 인구 과밀화를 해결한다고 경기도에서 수도권 개발을 해왔지만, 결과는 서울과 경기 모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이었습니다. 호남의 저발전과 수도권과 영남 중심의 발전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들은 자본주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도 개혁적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새 도시 건설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건 근본 문제의 형태 변경일 뿐입니다.

정리하면, 세종시 정국에서 진보진영의 주요 단체나 지도자들 상당수가 친기업적 개발 논리나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습니다. 독자 의제로 정국을 주도할 수 없는 진보진영의 왜소함, 반MB 연대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기업 중심 성장 논리를 일부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사고방식이 이런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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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국민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공중파 방송 3개 채널에서 동시 상영으로. 잠깐 보다 채널을 돌려 버렸습니다. 다음날 인내심 많은 분들의 기사와 글들을 챙겨보는 걸로 때웠습니다.

사실 정식 명칭은 '대통령과의 대화'였습니다. 명칭부터 권위적입니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소통'하라고 한 것은 '국민과 대화'해 의견을 들으라는 거지, '대통령과 대화'하며 훈계를 듣고 싶어했던 게 아닙니다.

동화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세상 사람들 다 벌거벗은 걸 아는데 임금과 그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옷이 화려하게 비춰지길 '고대'하고 '소망'합니다. 오죽하면 "4대강이 완성되고 나면 아 이렇게 하자고 정부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허풍을 치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은 벌거벗은 임금이 당한 것처럼 또다시 큰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요. BBK 때처럼 이명박은 피해자입니다. '만사형통'이어야 하는데 아마 이번 옷 구매는 형을 통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이름 붙은 이 투명 옷을 판 자는 이 옷이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그래서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에게는 매우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감언이설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님을 위해 미국에서 '이제 오'신 그 분께서 앞장서 보필하시는데 동화책에 이미 나온 수법의 낡은 사기 행각에 속았을 리 없습니다. 사실 옷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투명 옷을 화려한 옷으로 봐 줄 '국격 있는 국민'들만 있다면요.

문제는 이 옷을 아름답게 바라봐 줄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국민'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이제 오'신 분의 직무유기입니다. 그가 맡은 게 국민권익위원회 아닙니까.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별로 안 남아있는 건 이분이 품격 있는 국민들의 권익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껏 값이 오른 대한민국 땅이 하나님께 봉헌될까 봐 품격 있는 국민들이 숨었다는 소문이 있긴 합니다) 

나머지는 국격에 어울리지 않아 정부와 국회, 검찰·경찰, 법원에게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한 아랫것들입니다. 이들은 명박 씨를 두고 "4대강 사업이 법을 어겼는데도 떼법을 써 강행하려 하고, 서민 감세를 이해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요구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고 서툰 비난들을 해댑니다.

이 무리 안에는 "아마 지금은 사람들이 무리라고 하겠지만 'MB OUT'이 되면 나중에는 다 '아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없어서 아름답고 찬란한 '벌거벗은 옷'을 자랑하지 못한 명박 씨는 외로워서 이날 깊은 속마음을 털어 놨다고 합니다. 

세종시에 반대하는 이유가 "대통령 혼자 서울에 있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것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 청와대엔 '2명 밖'에 안 남을지도 모릅니다. 철밥통 공무원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고 다 옮겨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게 불안해서, 가지 말라고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남아서 벌거벗은 내 옷 좀 봐 달라고, 세종이 뭐 별거냐고, 청와대 가까운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새로 만들었나 봅니다. 죽은지 5백년이 넘었는데도 할 일이 참 많은 세종대왕입니다.


기타 어록 

피해망상
"내가 20조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에 43조, 87조 들여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과대망상
"경부고속도로도 반대가 많았고 청계천도 그랬다. 완공하고 난 다음에는 다 찬성하고 있다"

동문서답
"토목공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배우는 것이냐"

횡설수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

천기누설
"대운하를 하려면 다음 정권이 하는 것이고…"

자가진단
"대기업 욕하는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하려고 하고 미국 욕하면서 미국 가겠다고 한다"

뭥미?
"내복 입는 것이 녹색성장"



※ 그럼 이날 사기극의 범인은 누굴까요?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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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이것이 "MB 양극화 예산"이다


16일(월)부터 국회 예산 심의 기간입니다. 그래야 올해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켜 내년도 예산을 차질 없이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권 여당에게는 밀어붙이기와 야당 달래기를 잘 섞어야 할 때입니다. 야당들이 이 때를 여당에게 양보를 얻어낼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죠. 지역구 의원들에겐 자기 지역구 관련 예산을 늘리느라 바쁠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부의 총액 예산 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예산을 늘리려 하니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예산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산  다툼이 단지 협잡인 것만은 아닙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누구를 위한 예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레프트21>이 줄기차게 이명박 정부의 2010년도 예산안을 비판하고 폭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 야당들은 4대강과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 정부의 예산안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특히 4대강 예산과 세종시 문제에 열의가 높습니다.

이명박이 말을 뒤집은 탓에 세종시 문제가 한나라당 내분을 낳고 있고 4대강 반대 여론도 많지만 이들의 문제제기는 정략적인 면이 큽니다. 본질을 말하자면, 4대강이나 세종시 모두 대규모 토목 공사입니다. 세 당들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한 토목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넣기 위해 싸우는 것일 뿐입니다.

세종시 원안대로 행정부처가 옮겨가봐야 현지민들에겐 집값 좀 오르고 서비스업이 조금 활성화되는 것 말고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기업도시로 바꾸면 현지민들이 취업할 일자리가 특별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FTA 실험 도시가 될 확률이 크죠.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공장은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주 공장인 화성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장은 전원 비정규직 공장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서산에는 동희오토에 일 안 해 본 젊은이가 드물 정도지만  거꾸로 거기서 일하다 안 잘려본 젊은이도 드물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불황기에 이렇게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늘릴 만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도시형 수정안도 별 볼 일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송도형 기업도시라면 오히려 평범한 현지민들에겐 재앙입니다.

그래서 진짜 예산 싸움은 세종시냐 4대강이냐, 아니면 세종시 원안이냐 수정안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폭 추경예산을 늘렸던 지난해와 올해 예산과 달리 '작은 정부' 지향을 분명히 하며 예산 축소와 지출 통제를 표방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됐죠) 진보 진영의 예산 싸움은 단순히 주어진 총액 안에서 우선순위를 다투는 문제로만 다룰 수 없습니다.


지출을 늘리라고 말해야 하고 지출을 줄이는 근본 배경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정부의 세금 수입이 줄었습니다. 수입이 줄었는데 균형 예산을 하려면 지출을 줄여야죠. 정부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재벌과 부자에게 대규모 감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 그들에게 돈을 많이 쥐어줘야 투자가 활성화돼 경기가 살아나고 그러면 상품 판매와 고용이 늘어나 오히려 세금이 늘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실패한 레이거노믹스 플랜은 현실에서 복병을 만납니다. 정부 전망대로 하더라도 지난해 말과 올초 최악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대가로 내년 늘어날 세금 수입은 정부의 감세 규모에 못 미칩니다.

그래서 부자 증세와 공공·복지 지출 증대가 우리의 구호가 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요 진보적 엔지오들이 '재정건전성' 악화를 MB예산안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빚더미 예산"이라 표현했고 정창수 함께하는시민행동 연구원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는 빚"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늘어나는 국가채무의 부담을 서민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고 4대강은 낭비 예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엔 나름 합리성도 있지만 균형 재정 기조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적 발상입니다. 바탕에 수익성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이런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산을 늘려서 4대강과 세종시 사업을 모두 진행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그런 논리로 늘 복지예산 축소를 정당화했습니다.

마침 투기자본감시센터 활동으로 친분이 있는 송종운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연구원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발표한 적이 있어 이런저런 자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송 연구원은 복지예산 확충 같은 예산 각론과 더불어 정부 재정 정책의 기조로서 "수익성 vs 공공성"이라는 거대담론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도 "재정건전성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 지출이 아니라 과소 세입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저는 지금 채무 수준에선 재정건전성이 화두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봅니다. 오 실장님과 약간 생각이 다른거죠.

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해도  '필요'가 먼저고 여기에 수입을 맞춰야 합니다. 여전히 한국은 OECD 평균보다 GDP 대비 국가재정 비율이 10퍼센트 넘게 낮습니다. 건전성이 문제가 아닌 거죠.

당연히 부자 증세가 '필요'를 맞춰야 합니다.(자칫 통화량 증가로 지출 확대를 실행하려단 인플레이션으로 '시망'할 겁니다) 우리는 부자 감세를 철회해 삭감된 복지 예산을 원상복구하고 오히려 부자 증세로 공공·복지 지출을 더 늘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 살리기에만 특단의 대책을 추구할 게 아니라 평범한 다수를 살리는 데도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민주노동당이 이정희 의원의 대표 발의로 소득세-고용안정세-자본이득세 등 부자증세안을 발표한 것을 환영합니다.

숫자만 나오면 당황하는 제가 몇 번의 기사로 부끄럽게도 마치 예산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괴로운 일이지만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묻고 또 묻는 길밖엔 없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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