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시즘2018 — 18년째 열리는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7월 19일(목)~22일(일), 주최: 노동자연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찰 수사부터 받게 됐다. 바른미래당이 이재명 당선인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직권남용죄, 제3자 뇌물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선거 때 가한 사생활 공격의 후속 편이다.
그런데 고발된 혐의들이 억지스럽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선거운동에서 신분이나 경력, 재산, 특정 단체의 지지 등의 문제에서 허위사실을 기록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불륜 의혹’과 ‘형의 정신병원 입원에 개입한 의혹’을 부인한 게 선거법 위반이라는 건 너무 억지스럽다. 개인들 간의 ‘사적’ 관계를 단속과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발상 자체가 괴이하다.
물론 본사를 성남시에 둔 네이버가 성남FC를 후원하도록 했다는 것(제3자 뇌물죄)은 사생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 혐의가 죄로 성립되려면 이재명 당선인이 네이버에 준 특혜와 성남FC가 후원을 받음으로써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얻을 이익이 밝혀져야 한다. 성남FC는 프로축구 시민구단으로 박근혜의 미르재단과 달리 사적인 축재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체로 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 의혹 제기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지지할 만한 정책이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근거가 불성실해 무책임하게 보이는 이 고발 목록은 사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전신)이 이미 4년 전 성남시장 선거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를 공격할 때 써먹은 소재들이다. 그러나 별무소용이었고, 이재명 당선인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수년간 반복해서 공개 해명을 했다.
무엇보다 개인 연애사나 가족사는 사생활(프라이버시)의 영역으로, 범죄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급 대중이 정치적 대표자 선출에서 주된 판단 기준으로 삼을 소재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 가령 일자리나 복지나 낙태권 같은 문제(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성인들의 (자유 의사에 따른) 연애를 유권자가 간섭할 이유도, 공직자일지라도 그의 연애 여부를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런 설득력 없는 의혹 제기들이 선거 공방에서 멈추지 않고 경찰(국가권력)의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당선인의 스캔들 의혹을 재점화한 것은 친문 핵심 세력이다.
문재인 최측근 실세의 하나로 꼽히는 전해철이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케케묵은 의혹들을 다시 끄집어냈다. 경선 후에도 문재인 지지 열성 인자들은 공식 선거 시작 전에는 당 후보 교체를 요구하고, 후보 등록 후에는 자유한국당 남경필을 지지했다! 친문 세력은 이재명이 민중당(“경기동부”)과 연계돼 있다며 ‘색깔론’도 끌어들여 비난했다. “싸가지 없는 친노”의 원조격인 유시민도 선거 개표 방송에서 이재명 헐뜯기를 거들었다.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이 지난해 지지자들에게 ‘전해철을 위해 이재명을 견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것이 바둑이[김경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짐]의 뜻’이라고 했다는 것도 언론에 공개됐다.
열성적인 친노친문 인자들은 전통적으로 온라인 활동(“온라인 민주주의”)을 중시하고 좌파·노동운동을 매우 싫어한다. 이들은 ‘좌파·노동운동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약화돼 실패했는데, 정작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는 노동운동이 투쟁하지 않았다’는 가짜 서사를 온라인에서 유포해 왔다.
그런 그들이 사생활을 들춰내 경쟁자를 망신 주고 공직에서 밀어내는 우파의 애용 수법을 사용해 경쟁 인물을 공격한 것이다. 그 결과 친문 세력과 우파 야당이 합작해 이재명 헐뜯기에 나서는 모양이 연출됐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촛불을 경과하며 형성돼 있는 대중의 정치의식 수준을 가늠케 한다.
민주당 내 친문과 우파의 합작 행태는 이재명 당선인이 기성 정치권 안에서 (문재인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인사(때로는 급진적 ‘언사’도 하는 인사)이고 종종 노동친화적 입장을 취해 온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당선인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우파 정부의 반대 속에서 비록 충분치 않을지라도) 청년배당을 실시했다. 또, (국회 통과 후에 밝힌 입장이라 아쉽긴 하지만) 최저임금 삭감법에 반대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경기도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업과 계약시 비정규직 고용 기피 기업 우대 등을 공약했다.(물론 공약의 실 내용과 실천 여부는 이후 지속해서 검증할 문제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전폭 지지했음은 물론이다.(가톨릭의 “고의적 낙태” 찬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 경기도 투표자가 183만 명가량 줄었는데도, 이재명 당선인은 대선 당시 문재인이 얻은 표보다 조금 더 많이 득표했다. 정당투표에서는 정의당을 지지한 약 12퍼센트의 유권자 중 다수도 도지사 투표에선 이재명 당선인을 찍었던 것같다.(경기도에서 정의당의 정당 득표와 도지사 후보 득표 차이는 약 53만 표다.) 이재명 당선인이 민주당 후보로서 당선하고 민주당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어도 친문 세력은 이런 표들이 두려울 것이다.
이런 정황과 맥락 등을 종합해 볼 때, 친문 세력이 앞장선 이재명 헐뜯기에는 (친문 세력에 대한) 민주당 내 경쟁자 견제(나 제거)를 넘어, 이재명 지지로 표현된 진보 염원에 찬물을 끼얹고, 더 나아가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을 공격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재명 비방에 오불관언하지 말고 비판해야 하는 까닭이다.
마치 미국 민주당이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당 안에서 고사시키려 하고, 영국 노동당 우파들이 제러미 코빈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결코 인정한 적이 없지만, 조직 노동운동이 반(反)박근혜·반(反)노동개악을 기치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며 불을 붙인 촛불 운동이 승리한 덕분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문재인은 6월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선거 결과로 오만해지면 안 된다며 오히려 지방권력 감찰 등을 지시했다.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 [매우 기쁘지만] …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 땀 나는 정도의 그런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자신을 구하고자 한 탄핵 반대 촛불을 보며 ‘저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는 노무현의 발언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촛불 염원 눈치 보기를 당분간 지속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물론 광역단체장 당선인들 중 차기 대선 주자들을 관리·견제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고로 열성적 친문 세력도 곳곳에서 (문재인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이재명 당선인은 물론이고 조직 노동운동과 좌파에 대한 공격을 이어 갈 것이다. 최저임금이 개악됐으니, 자신의 노동조건을 두고 싸우는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귀족론 공격도 더 거세질 것이다.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 문재인 정부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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