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은 2월 7일 “알바노조 이가현 전 위원장의 글을 통해 촉발된 최근의 사태”의 진상을 밝힐 진상규명위원장에 홍세화 노동당 고문이자 전 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이갑용 대표 담화문).
이갑용 대표가 언급한 “사태”는 알바노조 이가현 3기 위원장(현재 알바노조 4기 위원장 선거 후보)이 폭로한, “알바노조, 노동당, 청년좌파, 평화캠프의 모든 결정 사항이 이루어지는” 비공식·비공개 “언더 조직”의 존재를 말한다(2월 1일 새벽 페이스북 글).
그동안 “알바노조, 노동당, 청년좌파, 평화캠프”를 주도한 건 노동당의 사회당계였다. 이 계파에 속했던 청년 활동가들이 이반한 것이다. 이들의 정치는 사회당계의 영향을 받아 자율주의와 근본적 페미니즘에 친화적이었다. 이들이 폭로한 사실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사회당계가 자신이 주도하는 운동과 단체들의 활동을 지도·지시·조율하려고 둔 비공식 내부 핵심 조직(언더 조직)이 있다.
- 이 언더 조직의 지도·지시·조율 방식은 매우 권위적이고 음모적이었다. 이 조직은,
- 언급된 단체들의 운동 방향과 의제의 결정권, 해당 단체들 내부 인사권을 행사했다.
- 알바노조 주요 상근 활동가들의 상근비를 제공했다.
- 구성원들에게 “전인적 운동가가 되어야 한다고, 혼전순결 해야 한다고, 낙태하면 안 된다”고 요구하고 연애와 음주 등 사생활도 통제했다.
- 사회당계가 그동안 대외적으로 표방해 온 바와 달리 여성주의 등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 노동당 총선,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등 외부 활동에 알바노조 조합원들을 동원했다.
- 알바노조가 ”민주당, 정의당”과 뭔가 공동 활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 알바노조의 운영 방향 등의 문제들을 두고 전부터 언더 조직 안팎에서 갈등이 있었다.
- 박정훈 알바노조 전 위원장, 노동당 대표를 지낸 구교현 알바노조 초대 위원장 등이 언더 조직의 알바노조 담당자였다.
이 폭로로 알바노조와 노동당 모두 내홍에 휩싸였고, 지금 두 곳 모두에서 진상조사 기구가 꾸려지고 있다. 특히, 사회당계 내부의 ‘음모적’ 또는 ‘위계적’ 정치문화와 위선이 도마에 올랐다. 사회당계의 막후 실세로 거론돼 왔던 특정인의 이름도 공공연히 거론된다.
언더 조직의 노동당 담당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인물들이 노동당 전 대표를 포함해 노동당원들이고, 현 노동당 중앙이 사회당계 주도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언더 조직 문제는 노동당에서도 금세 쟁점이 됐다. 일부 당원들은 노동당도 공식 체계가 아니라 “비선 실세”에 의해 운영된 것이냐? 노동당원이 혼전 순결이나 낙태 금지를 강요한 건 당론 위배 활동 아니냐? 하며 진상조사와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당 대표단도 2월 6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에 조사위원장에 사회당계인 임석영 부대표를 임명해 반발만 샀다. 그 뒤 2월 7일 당 대표 담화문을 발표해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조사위원장을 홍세화 전 대표로 교체), 당 운영에 관해 이렇게 해명했다.
“대표단이 신뢰받지 못하는 현 상황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사안의 성격상 [교체는] 어쩔 수 없는 일 … [당 대표직 수행에서] 당의 공식 체계를 벗어난 어떠한 부당한 영향도 받은 바 없습니다. 오직 당헌과 당규가 부여한 권한과 당의 공식 체계에 따라 당을 운영했습니다.”
수습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인물들은 대체로 언더 조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고, 자신들의 행동과 정치문화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 권위적·위계적 문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혼전 순결 등을 요구한 것도 문제였다.
- 문제가 된 언더 조직은 2017년 7월경 해체했다.(이가현 전 위원장은 해체 후 새로운 언더 조직이 생겨났다고 추가 폭로했다.)
- 권위적 실세 “운동 선배”로 지목된 인물들(구교현, 박정훈, 허영구 등)은 알바노조를 떠나겠다.
이런 해명과 조처들은 제기된 본질적 문제에 관한 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 알바노조의 주도권은 사회당계 이탈파에게 넘어가는 듯하다.
지금 치러지는 알바노조 4기 위원장 선거에서 이가현 씨의 경쟁 후보로 나섰던 알바노조 1기 위원장 구교현 씨(하윤정 씨와 한 팀)는 2월 4일 후보직을 사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알바노조의 변화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알바노조의 미래를 위해 물러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로써 이가현-용윤신 팀이 단독 후보가 됐다.
같은 날 박정훈 알바노조 2기 위원장도 알바노조를 탈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역시 청산의 대상[입니다.] …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조직은 청산되었습니다. … 그 인적관계망은 남아있기에 내용과 태도, 방식 모두 청산되어야 합니다. 낙태 금지와 혼전 순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영구 알바노조 지도위원(평등노동자회 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월 12일 자신은 언더 조직 구성원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알바노조를 떠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도위원 5년 동안 알바노조 공식회의에 참가하거나 별도 보고를 받았거나 사업에 관여한 적은 없다. … 알바노조의 요구인 최저임금 1만원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치러지는 [민주노총] 선거인 만큼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노동 현장을 경험하고 함께하는 것으로만 생각 … [알바노조 위원장 선거와 관련해 이가현 전 위원장에게 규약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바노조 위원장에게 지적 … 규약을 지켜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결국 지도위원으로서 위원장에게 압박을 가한 셈이 됐다.”
노선 차이와 갈등
알바노조의 사회당계 이탈파들은 대체로 지난해 11월 노동당의 김윤영 당시 여성위원장에게 동조해 노동당을 탈당한 청년들이다. 당시 이들은 노동당이 더 페미니즘 친화적인 당이 되지 못하며 당 내에서 “유리벽”을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초, “노동”당명과 중년 남성 노동운동가(이갑용 대표를 가리킴)가 당 대표로 있는 것, 그가 대선 후보로 나가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노동당은 대선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 현 노동당 중앙을 주도하는 사회당계는 1987년 이후 ‘좌파의 대선 독자 출마’를 자신의 변별적 전통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므로 이미 지난해 초 사회당계 안에서 갈등이 거의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이갑용 대표와 사회당계 리더들은 반대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당 당명 폐기를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 안건은 당내 노동부문의 항의로 대의원대회 전에 폐기됐다.
그 대신 대의원대회에서는 친노동당 경향 사회운동단체들이 노동당 기구의 지위를 인정받아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안이 통과됐다. 이는 알바노조 등에 대한 배려였을지 몰라도, 이미 사회당계 핵심부와 갈등을 빚던 알바노조 활동가들에게는 자율적 사회운동에 대한 정당 통제가 강화되는 것으로 느껴졌을 성싶다. 또한 이가현 씨 등은 언더 조직이 여성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에도 불만이었던 듯하다.
날카로워지는 이런 갈등과 차이들이 반대파들로 하여금 노동당을 탈당하고 마침내 알바노조 조직자들과도 결별하는 길을 택한 직접적 원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해 노동당 내분을 다룬 〈노동자 연대〉 기사는 이렇게 관측했다. “여성위원장의 탈당으로 당내 강경 페미니스트 경향과, 당을 주도하는 사회당계가 갈라설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근본적 페미니스트 경향을 지지해 온 사회당계 리더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김문성 기자) 일부 청년 당원들의 연쇄 탈당이 사회당계 리더들에 대한 항의이긴 했지만 그들이 당과 “갈라설 것 같지는 않다”고 본 건 부정확했다.
사회당계의 정치
사회당계의 핵심은 1980년대 제헌의회 파(CA)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헌의회 파는 군사독재 타도 후 임시혁명정부 하에서 제헌의회 소집을 해서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2단계 혁명 전략이 핵심 노선이었다. 그러나 혁명단계론에서는 1단계인 민주주의 혁명만이 시야에 들어오고, 2단계는 먼, 막연한 미래로 미뤄진다. 그래서 1987년과 1992년 대선과 각급 공직선거에서 독자후보를 내세워 참여하는 전술들을 묶어 사실상의 전략으로 삼았다.
옛 동구권 붕괴와 민간 정부 등장 후, 기존의 원칙과 이데올로기를 재고해 1995년부터 자율주의와 근본적 페미니즘을 수용하며 새로운 정치적 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청년진보당(1998년)과 사회당(2001년)을 거치면서 의회 진출을 전략으로 삼는 개혁주의도(좌파적 버전이긴 하다) 발전시켜 왔다.
그러므로 사회당계의 전통은 급진민주주의와 좌파적 개혁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적 정치/문화가 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자율주의는 아나키즘의 일종이다.) 셋의 공통 분모에는 엘리트주의가 있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 형태 하에서조차 친북 좌파가 아닌데도(즉, 불가피하지 않은데도) “언더 조직”을 유지해 온 것이나, 소수파의 독자적 직접행동에 집착하는 것, 프레카리아트론을 전폭 수용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선거를 매우 중시하며 복지국가의 핵심 강령으로 기본소득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알바노조의 정치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시오. ☞ 어떻게 약자들의 연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
쟁점 1. “언더 조직”의 존재와 규율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혁명가들이라면 되도록 대중 속에서 공개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토론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자유로운 조건 속에서 대중 스스로 주장과 실천을 경험하며 능동적으로 정치 단체·지도자들을 검증하고 그 신뢰도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투쟁 경험들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계급 전체의 경험으로 일반화하기도 더 쉽다.
자신을 계급에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입증받으려는 것이 책임 있게 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국가 탄압이 가로막으려는 것이 바로 이런 (정치조직과 계급의) 상호 작용이다.
그래서 과거 국가 탄압이 극심했던 군사독재 시기와 그 후 한동안은 혁명적 좌파가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밀스런 조직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었다. 조직과 운동을 보안경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운동과 계급에 책임지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혁명가들은 “사람은 감추되, 주장은 공개하라”는 격언을 새기며 어떻게든 계급의 소수와 소통하려 애썼다.
그러므로 1987년 이후 노동계급 조직들의 성장 덕분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환해 온 국가 형태 하에서 과거와 같은 음모적 결사 방식의 정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으로 민주주의와 책임 정치에 유해하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친북 조직이 아닌데도(이들의 조직 방법은 이해해 줘야 한다) 좌파 조직이 지지자들을 속이고 민주적 절차를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만들며 음모적 조직 방법을 택하는 걸 지지자들이 양해해 주기는 어렵다.
사회당계가 국가 탄압에 당장 노출돼 있거나 그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도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좌파 개혁주의 노선으로 전환하며 진보신당계를 흡수하는 등 그 나름의 입지를 구축해 왔다.
그러므로 투명한 방식과 절차로 지도력을 입증받으려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알바노조 운동만 봐도, 그 운동에 대한 구교현·박정훈 씨 정도의 검증된 공헌과 신뢰라면 굳이 음모적 조직 방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지도력을 유지하고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당계가 아직까지도 비밀스런 언더 조직을 유지한 것은 아무래도 그들 정치의 한 유산일 것이다. 폭로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그 구성원들 스스로 토론과 실천 경험에서 배우고 자의식을 고양하는 방식으로 규율과 헌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도덕주의적 분위기 조성으로 규율을 강제하려 했던 듯하다.
오래 전부터 혼전 순결, 낙태 금지, 특정 기간 연애·음주 금지 등의 터무니없는 규율도 강제됐던 듯하다. 아마 음모적 결사체의 내부 결속을 위해서였거나(자유 연애가 허용되면 공동체 유지가 어려워진다고 착각하고),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훗날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경력 관리 차원이었을 것이다.
상명하복, 권위주의, 음모적 지시 스타일은 아나키즘의 나쁜 유산이다. 이너서클이 공개 대중정당의 배후에서 음모적 조직을 통해 의사 결정을 조종·조율·통제하려는 막후정치는 아나키즘 운동의 특성이기도 하다.
아나키즘은 일체의 권위를 배격해 심지어 민주적 다수결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 만장일치 합의제를 선호한다. 합의제로 운동의 단결을 이끌어 내려면 운동의 사상적 통일성이 매우 높아야 한다. 이런 개념 하에서는 매우 종파적이거나 지도자가 독재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운동을 지향하기 쉽다. 또한 합의를 위한 막후 정치의 비중이 높아지고 속임수도 불사한다.
가령 아나키즘의 선구자라는 바쿠닌은 음모적 비밀결사를 생애 내내 추구했고, 독재자처럼 굴었다.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100인 정도의 비밀결사가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고 봤다.
사회당계의 아나키즘 경향은 오래 전부터 소수파 직접행동에 집착해 온 데서도 드러난다. 물론 모든 대중운동은 소수에서 시작하므로(따라서 자발성이 두드러지는 운동에서도 먼저 행동을 시작하고 동참을 호소하는 소수의 ‘지도’는 존재하는 것이다), 소수파 직접행동이 언제나 나쁘다거나 전술 수립에서 애당초 배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내심을 갖고 서로 다른 경향들 사이에서 논쟁을 거쳐 공동의 방침을 결정하거나, 대중이 행동에 나설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여 설득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뜻 맞는 소수끼리 하는 선제 행동을 애써 선호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흔히 보안도 필요하므로 더더욱 비밀주의적으로 끼리끼리 알음알음 조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을 것이다. 그래서 핵심 간부들이 비공식 지하 조직을 꾸려 운동과 단체를 사실상 막후에도 운영하는 것에 별 문제의식을 못 느꼈을 수 있다.
쟁점 2. 자율적 사회운동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율적 주체로서의 자의식도 높은 사회당계 청년 노동당원들에게 자율주의(정치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운동을 추구한다는 생각과 실천)와 급진적 여성주의가 특별히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성싶다.
자율주의는 이론적으로 가장 발전한 아나키즘 형태로, 조직 노동계급의 운동, 잠재력, 고유의 집단적 투쟁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이 말하는 ‘자유’는 유아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다. 일체의 권위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 귀결은 절대적 권위자로서의 개인이다. 이는 권위를 아래로부터 통제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다르다.
또한 사회당계 청년 당원들에게는 조직 노동계급이 사회 변화의 주체이므로 이들에게 연대하자는 종류의 노동계급 지향적 좌파와 달리, 프레카리아트가 사회 변화의 주체라고 보는 사상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어떻게 약자들의 연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
자율적 정치문화가 찬양 고무됐지만 실상은 음모적으로 단체 운영 등이 결정됐기 때문에 표방한 바를 믿고 따른 청년들 사이에서도 점차 분화가 된 걸로 보인다. 알바노조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형태를 표방했기 때문에 특정 정치 경향으로의 경도가 점점 불편해졌을 것이다. 폭로된 글들을 보면, 자율적 사회운동을 하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동의 수준이나 활동가로서의 자의식보다 의무와 규율이 강요되는 것에 점차 부담과 저항감이 커졌던 듯하다.
물론 애초에 알바노조 설립 시절부터 사회당계 언더 조직이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핵심 활동가들이 그들을 지지하며 가입했기 때문에 갈등은 잠복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정의당과 공동 행동을 하는 문제, 근본적 페미니즘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문제, 노동당 선거운동,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 경선 참여, 기본소득에 대한 태도 등에서 이견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당계 이탈파 알바노조 활동가들의 언더 조직 폭로 글에는 정당의 개입에 대한 거부감 등 자율주의적 문제의식들이 여럿 섞여 있다.
이런 점들을 구분하며 살펴보면, 사회당계의 자율주의 전통 속에서 새 세대 알바노조 활동가들은 일종의 ‘[노동당-사회당계] 정치로부터 알바노조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 더는 사회당계의 정치적 지도를 받는 알바노조 운동이 아니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적극 지지했음직한 운동들에 참여한 것도 사회당계에 “동원됐다”고 평가하는 것이 사례다.
근본적 페미니즘 성향을 한껏 드러내어 “아재 정치 OUT” 같은 슬로건을 걸고 2016년 총선에 참여한 하윤정 노동당 선본 활동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알바노조가 생길 때부터 요구해 온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공약으로 걸고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허영구 전 알바노조 지도위원의 선거운동을 지원한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간섭과 지시를 싫어하는 성향만큼이나 자율주의 특유의 조직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경시나 반감도 작용했던 듯하다.
그런 점에서 사회당계가 심혈을 기울여 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킨 사회운동기구화 안건도 이들에게는 정당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보였을 것 같다. 더군다나 그 안건이 통과된 시점은 이미 언더 조직 안에서도 사회당계 선배들에게 이 청년 활동가들이 반기를 들고 갈등을 빚고 있었을 때니 말이다.
결국 사회당계 언더 조직 문제는 아나키즘의 유산이자 모순인 셈이다. 이탈파 청년들은 사회당계의 그늘 안에서 배운 자율주의를 일관되게 발전시켜 사회당계 내부 핵심 조직에 되돌려준 셈이다.
그러나 자율주의는 또한 중대한 정치 문제에 개입할 때는 흔히 개혁주의(좌파적 버전이긴 하다)로 기운다. 기존 국가를 대체할 대안 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을 거부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자율주의는 국가적 권력 문제에선 결국 하는 수 없이 개혁주의로 귀결되곤 한 것이다.
유일하게 일국의 노동운동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던 스페인의 아나키즘 운동(신디칼리즘이었던 전국노동조합연맹)이 겪은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 그들은 파시스트 장군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내전 과정에서 기층에서 등장하던 노동자·농민의 사회혁명을 고무하기보다는 ‘우리는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권력 문제를 회피했다. 그랬다가 상황이 급박해지자 자본주의적 지방정부들에 들어가 버렸다. 결국 그 대가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스페인 공화국)조차 지키지 못하고 패배를 자초한 것이었다. 자율주의의 가장 탁월한 대변인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2005년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을 지지해 신뢰를 잃기도 했다.
사회당계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 자신들의 발등을 찍었다는 점에서 자율주의의 유산과 모순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쟁점 3. 젠더 이분법적 페미니즘
사회당계는 1990년대 말부터 자율주의와 함께 젠더 이분법적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보급해 왔다. 이런 류의 페미니즘은 여성주의의 극단적 유형으로, 도덕주의적으로 남성을 적대하는 경향성마저 띤다.
이 문제에서 알바노조의 사회당계 이탈파 활동가들의 입장은 별로 좋지 못하다. 노동당을 탈당한 김윤영 전 여성위원장을 비롯한 이들은 ‘2차가해’ 개념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라고 해서 그 책의 폐기를 선동하는 등 기본적인 토론의 자유조차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사회당계가 주도하는 노동당 지도부는 젠더 이분법적 페미니스트 경향에 대한 비판을 삼가 왔으면서도, 선거 득실을 따질 때는 ‘노동 중심’ 정치를 말하는 등 실용주의적 절충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놀랍게도 언더 조직 안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심지어 적대적인 표현들이 남발됐다고 한다. 사회당계 핵심 인자들은 조직 분열 등을 겪으며 여성주의가 분열을 낳거나 조장했다고 여긴 듯하다. 이는 사회당계가 그동안 청년층에서의 성장을 위해 이런 근본적 페미니즘에 무원칙하고 위선적으로 타협해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난해 노동당의 실용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당에서 유력한 정치는 [노동과 젠더를 연결시키는]이 쟁점들을 잘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 미래에도 상당한 내적 긴장과 쟁투가 벌어질 것 같다”고 한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김문성 기자)의 관측은 들어맞은 셈이다.
여성주의가 여성들의 계급을 가로지른 단결을 추구한다면, 알바노조 사건은 노동당이 좌파적 개혁주의로 좀 더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알바노조의 차기 집행부를 꾸릴 것이 확실시되는 이가현-용윤신 팀은 각자의 폭로 글에서 민주당과의 공동 행동을 꺼리는 유무언의 압력에 대해 불평했다.
최근 민주당 개혁파와 문재인 정부는 위에서 언급한 여성운동의 내재적 논리를 좌파를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포퓰리즘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 근본적 여성주의가 좌파적 개혁주의와 쉽사리 친해지는 것은 그 계급연합적 성격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바노조 청년 활동가들의 정당한 반발과 별개로 그들의 전망에 대한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기존 사회당계가 탈계급적 여성주의와 기회주의적으로 타협해 성장하려 해 온 대가라는 점에서 그런 종류의 여성주의에 비슷한 타협을 해 온 다른 좌파들도 사회당계 청년들의 분열을 타산지석으로 삼게 될 것이다.
노동당 청년 당원 가운데는 활동적이고 능동적이며 급진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당한 불쾌감 때문에 그 동지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유산을 처음부터 발로 걷어찬 게 아닌지 차제에 발본적으로 살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