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사건과 계급 지배의 본질
범죄 정부 퇴진과 처벌, 사찰기구 해체를 위해 싸우자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불법 사찰’의 추악한 진실이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검찰, 여당 의원 등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총체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4월 3일 비상시국회의 참가자 선언)이 바로 그 진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항쟁이 안겨준 수모를 되갚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 노동 탄압, 4대강 사업, 방송사 장악 등을 강행하려고 ‘정권 차원의 사찰과 탄압 기획팀’을 운영한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ㆍ노태우 군사독재를 잇는 우파 정권답게 이명박 정부는 과거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등 권위주의적 억압 기구가 했던 것과 똑같이 보안 경찰과 행정 부처를 총동원해 도청ㆍ미행 등을 하며 정권 비판 세력을 감시ㆍ통제ㆍ탄압한 것이다.
청와대 행정관인 이창화의 수첩에는 민주노총과 다함께 등 진보 단체들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이창화는 ‘국가정보원’에서 청와대로 파견한 인물이다. 원충연의 수첩에는 아예 “BH[청와대를 가리킴], 공직기강, 국정원, 기무사도 같이 함”, “전파: 외부―청와대, 총리실, 경찰청”, “HP 도청 열람”, “장비(노트북, 망원경, 카메라)” 등의 문구가 나온다.
이처럼 억압적 국가기구를 총동원해 정부 비판적인 개인들부터 진보적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단체와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탄압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재벌 총수, 친야권 고위 인사 사찰은 곁가지인 것이다.
우선 사찰 담당부서인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설치 시점이 2008년 촛불항쟁이 한창인 7월초라는 것이 운동 탄압과 정부 내부 단속을 주요 업무로 삼은 증거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도 핵심 업무를 담당하며 이영호의 직접 통제를 받았다는 점검 1팀의 구성이 노동부와 경찰청 보안수사 담당들로 이뤄진 것도 마찬가지다.
“쌍용차 작전 조사 결과 보고”, “국민연금관리공단 노조 파업 동향”, “전국공무원노조 권정환 부위원장 불법행위 조치 계획”, “09년 좌익세력의 동향 및 대응 방안에 대한 보고”, “좌파 환경단체 보조금 중단 관련 공문” 등이 모두 이 팀의 소행이었다.
노동조합 동향을 주로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원충연과 최영호가 고용노동부 출신이고, 김충곤과 김기현, 이기영은 대공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청 보안 경찰 출신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동운동 사찰은 단지 감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점검1팀 김기현의 USB에서 나온 파일 중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를 보면, “촛불집회 검거 수범 사례 보고”, “불법시위 근절 대책 건의” 등이 완료된 것으로 나온다.
아마 이 보고와 대책 건의 사항 중에 광범한 채증을 통한 촛불시위 참가자 검거와 백골단을 연상시킨 경찰기동대 창설 계획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정권 안보
더 직접적인 연관도 찾을 수 있다. “2009년 기타 첩보 보고서(자체)”를 보면, “권정환 전공노 부위원장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징계 및 형사처벌 조치 계획”을 10월 6일 보고한 것으로 나온다.
공교롭게도 권 부위원장이 일하던 마포구청장은 10월 7일에 서울시에 권 부위원장을 파면ㆍ해임해 달라는 “공무원징계의결요구서”를 제출했다. 이 요구서는 징계 사유로 권 부위원장의 다양한 노조 활동과 진보 활동을 망라하고 있다. 사찰의 결과일 것이다.
심지어, 사찰 증거 은폐 과정에서는 검찰이 협조했고, 장진수가 폭로한 통화 녹취록에서는 범죄 은폐 과정에서 법원의 판사도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장진수에게 준 돈에 관봉이 남아있었다면, 시중은행 내부 협조자도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명박의 사찰과 ‘후속 처리’는 이처럼 여당 의원들과 행정부처, 사법부가 전방위적으로 총동원된 것이다.
군사독재의 권위적 통치 방식을 계승한 정권답게 방송 장악을 위해 방송사 노조를 조종하거나 정권에 쓴소리를 했다고 김제동, 김미화 같은 연예인까지 뒷조사하고 방송에서 퇴출시키는 등 온갖 공작도 벌였다.
ⓒ사진합성 시사IN 양한모
이런 자들이 ‘모든 정권이 다 하는 짓’이라며 응당 져야 할 정치적ㆍ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정부의 진보세력 감시ㆍ탄압으로 함께 득을 봤던 박근혜가 ‘나도 사찰 피해자’라며 위선을 떠는 것은 정말 못 봐줄 지경이다.
이는 서울시장 선거 선관위 디도스 테러 사건 때처럼 시간을 끌며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만 바라는 의도이고, 또 노무현 정권을 물고 늘어져 총선 국면을 이전투구처럼 만들어 [정치 참여에 환멸을 자아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우파가 범죄 피의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물타기하는 것은 용서 못 할 일이고, 당면 투쟁도 이명박 정부를 향해야 한다.
계급 지배
그러나 이명박의 물타기 속에서 노무현 정부가 현대차 전주공장 노조와 화물연대의 투쟁 동향을 사찰한 기록도 드러났다.
문재인 등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운동 사찰은 경찰이 합법적으로 사찰한 것이므로 이명박과는 다르다는 방식으로 변명했다. 진보진영의 일부도 대체로 이런 해명을 받아들이면서 노무현 정부의 사찰 건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두 정권 모두에서 탄압과 감시의 대상이었던 노동운동은 투쟁 표적을 이명박으로 두되, 이명박만이 아니라 민주통합당도 비판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두 정권 사이에서 권위주의적 잔재의 차이는 있지만, 1퍼센트 세력의 계급 지배 기구인 국가의 군대ㆍ경찰ㆍ법원ㆍ관료기구 등을 동원해 99퍼센트 피억압 계급과 저항 세력을 감시하고 통제ㆍ억압했다는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존 몰리뉴는 “대부분의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의 강제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배후에서 집행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억압적 국가기구의 피억압 계급 사찰이 바로 이런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도 정권을 잡으면 99퍼센트 대중의 운동이 체제와 국가의 통치력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상으로 감시ㆍ통제ㆍ탄압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경찰청 ‘사직동팀’을 명목상 해체시켰어도, 노동운동 사찰은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이어진 까닭이다.
따라서 ‘노무현과 이명박은 다르다’는 식의 논리는 일면적이고 부차적 진실만을 담고 있다. 진보진영의 요구와 투쟁이 “새누리당의 물타기식 특검 vs 민주통합당의 특수본” 논란에만 한정되지도 말아야 한다.
전두환의 안기부와 기무사, 김영삼 시절의 경찰청 ‘사직동팀’을 연상시키는 이번 사찰 과정의 전방위적 규모와 행태로 보아 정권 차원의 범죄라는 것이 분명한데, 새누리당의 특검으로 시간끌기와 민주통합당처럼 검찰 내 특수본 설치와 진상 규명만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사건 폭로 직후 즉각적으로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고 민주통합당에 특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협상을 요구한 것은 총선 투표를 앞두고 물타기할 시간을 벌면서 정권심판론을 피해 보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집권 시절 자행한 노동운동 사찰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사과는커녕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민주통합당 지도부에게 사찰의 ‘진상’을 밝혀낼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명박 정부는 ‘탄핵감’이고, 관련자들은 전원 구속감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독자적으로 사건 총책임자인 이명박 퇴진, 관련자 전원 구속ㆍ처벌, 사찰기구 해체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
이명박은 이 사찰 사건의 총책임자다. 이명박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경찰과 국정원, 기무사, 사법부, 한나라당 등이 총동원된 감시ㆍ통제 행위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이번 사건이 1퍼센트의 99퍼센트 저항 운동의 감시와 통제라면, 억압적 국가기구를 마땅히 해체하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 투쟁 요구를 재정비하자: 정권 퇴진·처벌 / 사찰기구 해체
진보진영의 요구와 투쟁이 “새누리당의 물타기식 특검 vs 민주통합당의 특수본” 논란에만 한정되지도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특검제 도입을 요구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물타기할 시간을 벌면서 정권심판론을 피해 보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1999년에 도입된 이후 10여 차례 이뤄진 특검이 사건의 몸통을 밝혀낸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게 돼 있는데다가 기존 국가 기구에 완전히 둘러싸인 채 수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 은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권재진이 검찰의 총지휘자인 법무부장관인 상황에서 검찰에 특수본을 설치해서 수사를 진행하자는 민주통합당의 요구도 대안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집권 시절 자행한 노동운동 사찰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사과는커녕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민주통합당 지도부에게 사찰의 ‘진상’을 밝혀낼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명박 정부는 ‘탄핵감’이고, 관련자들은 전원 구속감이다. 전두환의 안기부와 기무사, 김영삼 시절의 경찰청 ‘사직동팀’을 연상시키는 이번 사찰 과정의 전방위적 규모와 행태에서 정권 차원의 범죄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진보진영은 독자적으로 사건 총책임자인 이명박 퇴진, 관련자 전원 구속ㆍ처벌, 사찰기구 해체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
이명박은 이 사찰 사건의 총책임자다. 이명박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경찰과 국정원, 기무사, 사법부, 한나라당 등이 총동원된 감시ㆍ통제 행위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퇴진 요구를 피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명박은 이 사찰 사건의 총책임자다. 만일 이영호가 ‘몸통’이라면, 이명박은 ‘머리통’이다. 이명박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경찰과 국정원, 기무사, 사법부, 한나라당 등이 총동원된 감시ㆍ통제 행위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더구나 레임덕과 엄청난 반대 여론 속에서도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KTX 민영화를 밀어붙이려는 것에서 보듯 이명박은 자신의 임기가 남아있는 한 1퍼센트만을 위한 정책을 한가지라도 더 추진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범죄 정부의 임기를 하루라도 줄이자는 요구는 정당하고 필요하다.
물론 ‘이러다가 박근혜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 아니냐’거나 ‘이명박이 물러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다르겠냐’ 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이명박을 퇴진시키려면 거대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이런 투쟁은 우파 전체를 난처하게 만들 것이고 정치 지형을 99퍼센트 대중에게 더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대중 투쟁으로 이명박을 물러나게 한다면, 그 뒤 집권할 정부는 지금처럼 함부로 99퍼센트를 짓밟는 정책을 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공직윤리지원관실 등 청와대와 총리실 산하의 각종 소속기구들과 국정원, 기무사, 검찰과 경찰의 공안부서 등 사찰기구들을 즉각 완전히 해체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진흙탕 싸움에서 드러나듯이 이런 사찰기구들의 목적은 진보적 사회운동 등 평범한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과 조직을 탄압하는 것이다. 이런 기구들이 유지된다면 지금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사찰의 주요 표적이었던 노동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이 앞장서서 정권을 규탄하고 물러나게 하는 투쟁을 적극 건설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진보진영을 규합해 이명박 퇴진과 사찰기구 해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진보진영 단체들이 모인 ‘민간인 불법사찰 은폐의혹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비상행동(약칭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은 이런 투쟁 건설에 적극 헌신해야 한다.
※ 이 글은 장호종 기자와 공동으로 써 <레프트21> 온라인판에 실린 기사(☞ 바로가기)를 약간 재구성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