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 안철수촛불에서 빌려간 돈으로 우익에게 선심 쓰려 한다

후원하기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밴드 공유 기사 제목과 주소 공유  인쇄

세월호 참사 3주기인 4월 16일은 대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 바로 전날이었다. 이날 3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의 압박 없이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애도 물결에 참가했다.


이 때문에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기억식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만 빼고 원내 정당 4곳의 대선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자신이 집권하면 유가족들의 요구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몇 시간 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자 네 후보가 모두 안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섯 달 동안 정권 퇴진 운동에 참여해 매주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 속에서 정치의식을 발전시켜 온 사람들은 주류 대선 후보들의 겉모습이 다가 아님을 잘 안다.


문재인은 17일 첫 방문지로 대구를 찾아 중도보수층에 대한 구애를 지속했다. 투정 끝에 문재인 선대위에 합류한 박영선은 문재인이 이제 통합정부를 강조할 것이고, 적폐 청산 얘기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인천VTS 방문 뒤, 바로 인근 해군부대로 가서 안보를 강조했다. 안철수는 “튼튼한 자강안보”를 1순위 공약으로 내세우고 전략무기 대폭 증강을 내세웠다.


유승민은 인천상륙작전 기념 공원을 찾았다. 보수의 정치적 위기 돌파 시도를 유혈낭자했던 전쟁에 비유한 것이다. 참으로 유치하면서도 끔찍한 발상이다.


유일하게 세월호 추모를 거부한 홍준표가 서민 코스프레 한다고 가락시장에 가서 바닷가재 들고 사진 찍은 건 코미디이면서도 모욕이었다.홍준표는 기업이 잘 돼야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다며 낡은 낙수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지금 기업과 기업주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노동강도를 높여 수익성을 회복하는 걸 경제 불황 완화책으로 삼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 회복 몸부림이야말로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계급 삶이 고통스러워지는 근원이다.

ⓒ출처 문재인 선거 캠프

ⓒ출처 안철수 선거 캠프

체제 수호 행보를 강화하라는 주문

한국 지배계급은 경제 불황이 깊어지고 동아시아에서 안보 위기가 고조된 조건에서 우경화 기조를 펼쳐 왔다. 그래서 세운 것이 박근혜 정권이었다. 이 정권이 대중 투쟁으로 속절없이 날아간 것이 몹시 언짢을 것이다. 그러나 구 여권 후보들을 곧바로 다시 미는 건 가망이 없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주류 야당 후보들에게 체제 수호 행보를 더 분명히 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사실 문재인이나 안철수 누가 당선해도 여소야대 정권이 된다. 기반과 전통에 비춰 볼 때, 누가 돼도 두 당의 연정이 먼저 거론될 것이다. 물론 우익이 대기업 기업주인 안철수에게 더 호감이 있는 건 명백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야당의 대선 후보들로서 문재인과 안철수는 경제·안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협치를 해야 하는 점도 잘 이해한다.

둘의 대결에 촛불의 염원이 반영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리고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서 안철수의 상승세에 반감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안철수의 상승세가 일단 멈춘 것은 전통적 야권 지지층의 경계심이 커진 것과도 관계있을 것이다.

촛불 덕분에 양강 구도로 떠오른 자들이 촛불의 염원은 사실상 개무시하고, 성장과 보수를 강조하며 군부나 보수 언론 같은 우익의 눈에 들려고 하는 게 꼴사납다. 빌려간 돈으로 엉뚱한 사람들에게 생색내는 격인데, 문제는 돈 갚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전개될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대선 지지율도 하루 이틀이 멀다 하며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체제 수호적으로 기울면서 둘 중 누가 돼도 박근혜를 퇴진시킨 사람들에게 흡족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의 조직과 의식이 발전해야 한다. 물론 체제의 핵심 동력인 이윤 생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계급 투쟁이 발전해야 한다.



미국 지배자들에게 

무난한 파트너임을 보여 주려는 문&안


4월 16일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한국에 올 때 동행한 한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나는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드 조기 배치 여부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희망 섞인 관측일 뿐이다. 요즘 유력 대선 후보들, 특히 문재인과 안철수의 안보 행보를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미국이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인정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관측이 더 맞는 것 같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 문 & 안 둘 다 말을 뒤집었다

안철수는 일찌감치 사드 배치 찬성으로 돌아섰다. 안보를 제일 공약으로 꼽으며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미국의 “전략자산”(핵무기!) 순환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안보 문제에서 ‘우클릭’ 하는 건 문재인도 오십보백보다. “북이 핵 도발을 계속하면 사드를 강행”하겠다면서, 10대 공약 최종본에서 ‘사드 배치 국회 비준 동의 추진’ 공약을 빼 버렸다. 기존 공약집에 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재연장 여부 검토’도 최종본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문재인의 공약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도 쏙 빠지고 없다. 박근혜의 적폐 중 사드 배치, 한일군사협정, ‘위안부’ 합의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것들인데, “적폐 청산” 대통령이 될 것임을 자임해 온 후보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그 모든 청산 약속을 헌신짝 던지듯 내버리고 있다. 문재인은 군 장성을 대거 영입해 “별만 100개 이상”이라는 자랑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계 후보들이 목소리를 내서 왼쪽의 압력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한데, 바로 안보 쟁점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약점을 보인다. 물론 사드 배치 철회와 ‘위안부’ 합의 무효와 재협의, 당사자간 다각도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점은 차별점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반대와 평화의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튼튼한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보 문제에서 일관된 비판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다음 연결 기사를 읽기 바랍니다 : 볼품없는 적폐 청산에서도 뒷걸음질치는 문재인 기업주 출신답게 시장주의자 면모 강화하는 안철수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문재인 vs 안철수 대결에 촛불운동의 염원은 없다

후원하기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밴드 공유 기사 제목과 주소 공유  인쇄

문재인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안철수 지지율이 오히려 급등하며 대선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 일부 여론조사의 조사 방법에 신뢰성 의혹이 제기됐지만, 적어도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 자체는 이제 현실로 보인다.

안철수 지지율 상승은 우선 구 여권이 워낙 대중적 불신을 사 도저히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의 지지율은 합쳐도 대체로 10퍼센트가 안 된다.

원내 제2당의 대선 후보가 같은 우익에게서 최악을 막기 위해 사퇴하라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고소하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박근혜 출당 요구를 거부했는데, 정작 친박 핵심 조원진은 박근혜를 지키려고 그 당을 탈당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이런 웃기는 자들에게 9년이나 통치받았다는 게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는 박근혜 정권과 구 여권 정당들이 군색한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만든 것이다. 퇴진 운동은 박근혜 정권을 궁지로 몰아 그 추한 실상을 더는 감출 수 없게 했다. 이 과정에서 그따위 인간을 상징 조작해 정권을 잡고 혜택을 누려 온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염증이 확 커졌다. 그래서 일단 이번에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정서가 대세가 됐고, 그래서 주류 야당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중도 보수층을 두고 경쟁하는 자본주의 야당들의 양강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는 것이 많은 촛불 운동 참가자들에게 씁쓸한 일일 것이다. 촛불들은 문재인·안철수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지배계급이 두 후보를 이미 길들이고 있고, 둘은 그에 순응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급히 이동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문-안의 체제 수호적 행보도 더 두드러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로 “두 후보는 … ‘대통령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경쟁을 해야 한다. 안보를 맡길 수 있고, 경제 쇠락을 되돌리고, 국민을 통합할 사람임을 보여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먹히는 데에는 지배계급이 국회 탄핵소추와 헌재 탄핵을 실행하고, 박근혜와 재벌 총수, 측근 실세들을 구속해 대중의 성난 기세를 누그러뜨려 온 효과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퇴진 운동의 유력한 이데올로기가 주류 야당의 헤게모니를 넘어서지 못한 한계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운동의 내용이 계급적으로 심화되지 못하고, 혁명적 좌파도 기층에서 대중을 계급투쟁적으로 돌파구를 내는 쪽으로 인도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가 기층 대중의 염원을 굴절시키는 메커니즘인 점도 봐야 한다.


강철수?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보수 지지층 상당수가 국민의당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 IT 자본가 출신 안철수가 훨씬 더 친화적으로 느껴지는 탓일 게다.

안철수도 보수층에 본격적으로 구애하며 이런 상황 변화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사드 배치 찬성에 유보적이던 입장을 버리며 적극 찬성을 분명히 했고, 10일에는 의료 민영화 등 친기업 규제 완화 법안인 규제프리존법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재판도 안 한 박근혜의 사면을 시사하고, “적폐 청산”에 반대하며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

이는 단지 득표 전략 때문만은 아니다. 안철수는 한국 지배계급 다수가 최근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는 정책들을 최근 쏟아낸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박근혜의 대표 적폐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철수의 최근 태도는 그의 계급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안철수는 자수성가한 벤처 기업주로 유명해졌지만, SK 최태원과 함께 회사를 세우는 등 확고히 자본가 계급의 일원으로 살아 왔다. 비리로 구속된 최태원의 사면 캠페인에 참여했고, 그 자신이 천억 원대 자산가다.

그는 한때 자수성가 신화로 노동계급 청년들에게도 선망되는 인물이었다. 때마침 분 힐링 열풍 덕분에 국민적 멘토로 인기를 얻고, 2012년 대선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었다.

그러나 그때조차 그는 성장과 안보를 강조하고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극복[하고] …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반(反)이명박 정서를 낡은 정치로 규정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층의 강력한 정권 교체 염원 때문에 결국 “새누리당의 정치 확장뿐 아니라 정권 연장을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자강론, 강철수론은 단지 이미지 쇄신인 것만이 아니라 (특히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지지층에 일일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호남의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서도 만만찮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기반 때문에 이번에도 안철수는 문재인보다 먼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해야 했던 것이다. 지지율 상승에도 어느 정도 초기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서로 상반된 기대를 거는 지지층을 “덧셈”한 결과지만, 그 덧셈은 결코 화학적 결합이 될 수 없다. 결국 모순된 지지층 때문에 안철수는 문재인 못지 않게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결국 개혁적 지지층을 배신할 때만 “강철수”가 될 것이다. 이따금 그냥 놔두면 지배계급 전체에 해를 끼칠 부패 인사를 제거하는 일은 지지할지라도 말이다.

보수 언론 등 우익 세력은 안철수가 당선하지 않더라도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을 이용해 문재인을 견제하고 가능하면 문재인의 더 노골적인 우경화도 이끌어내길 바랄 것이다. 안철수가 당선하면 여당이 의석을 40석밖에 못 가진 약체 정권일 테니, 길들이기 더 쉽다고 볼 수도 있다.

우익들의 안철수 궁여지책 선택에는 퇴진 운동이 바꾼 정치 지형을 다시금 되돌리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무현 5년, 민주당 10년

이런 상황에서 호남 등의 개혁 염원 야권 지지층이 계속 안철수를 지지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애써 박근혜를 중도 퇴진시키고 치르는 선거에서 다시 보수층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약점 때문에 퇴진 운동 초기에 박근혜 퇴진을 지지한 것 말고는 한 게 별로 없는 안철수가 지금 득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5년, 길게는 민주당 정부 10년 동안 대중이 개혁 염원을 배신당하고 삶이 더 힘들어진 환멸의 경험이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명박이 등장해 새로운 불행의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도 문재인과 친노 정치인들은 지지층의 기대가 너무 커서라거나, 노동운동과 진보 세력이 성급하게 정권을 비판해서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민주당 정부들의 실패를 온통 남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그래서 진보적 변화 염원 대중은 문재인을 떨떠름해 한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안철수가 정권 연장 세력과 손잡았다고 비판하지만, 그동안 문재인의 행보를 보면 안철수와 특별히 다른 게 없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지난해 총선부터 줄곧 중도 보수층을 더 끌어들이려고 경쟁해 왔다.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됐는데도 박근혜 정권의 각종 악행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근혜의 친기업 규제 완화나 노동 개악에서도 대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고, 세월호 문제에서도 민주당은 줄곧 유가족 뒤통수만 쳐 왔다.

결국 오른쪽 눈치를 봐 온 것이 오히려 우익의 기를 살려 줘 지금 안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니 지금 곤경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자신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정당의 대선 후보로서 문재인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조건부지만 사드 강행을 얘기하고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의 노동공약 질의에도 답변 시한을 어겨 마지못해 지각 답변을 했다.

물론 문재인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와도 연계가 있고, 그 때문에 노동운동 안에서도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할수록 정치 지형 자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문재인은 노동계급 대중에게 지지할 동기를 부여하지도 못한다.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시대 정신이 된 적폐 청산 ⓒ이미진

그런 점에서 촛불 운동을 화끈하게 대변했던 이재명 시장이 (문재인에게 유리해 패배가 예상된) 민주당의 경선 룰에 순응하고는 문재인 지지를 단순히 선언한 것은 유감스럽다.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겠다더니, 경선 패배 후 힐러리를 지지해 지지층을 실망시킨 샌더스의 잘못까지 따라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두 주류 야당의 위선적 차별화 경쟁을 비판하고 있으나,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안의 지지율 격차가 좁아지면서 완주 여부가 (그 가능성이 높여졌음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쟁점으로 남아 있고, 대선 이후 연립정부 참여 문제로 노동운동 안에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정치적 약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제국주의 문제에서도 약점을 드러냈는데, 심 후보는 유일한 노동계 후보로서 진보적 변화를 염원하는 대중을 잘 대변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야당들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단호하게 행동할 때에야 박근혜 퇴진 요구를 지배계급이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점을 교훈 삼아야 한다.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좌파가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안철수 친기업 성장과 보수, 문재인 전략적 모호함, 심상정 비교적 친노동

후원하기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밴드 공유 기사 제목과 주소 공유  인쇄

새누리당의 후신인 두 당이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져 군소 후보로 전락하면서 집권당 교체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상 최대 시위를 다섯 달 동안 벌인 사람들에게는 현 대선 국면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촛불 운동 덕분에 당선권에 쉽사리 접근한 두 주류 야당 후보들이 촛불의 염원을 구현하기보다는 중도보수 유동층 끌어들이기 경쟁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비서실장 출신 박지원과 동맹해 호남의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 기댔던 안철수는 최근 ‘민주당보다는 기업주 출신이 낫다’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으며 그들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은 이런 안철수를 정권 연장 적폐 세력과 손잡았다고 비판한다.

경제·노동 공약에서 문재인이 안철수와 차별성이 있다면 공공부문 일자리 80만 개를 창출하겠다하는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수익성을 낮춘다며 반대하는 문재인이 충분한 재원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것 같지 않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자고도 하지만, (엄연히 근로기준법이 주40시간 노동제이고, 예외적으로 52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노동부 행정지침을 출발점 삼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입법을 대단한 양 포장한다. 52시간 제한은 집권해서 노동부의 행정지침만 폐기해도 되는 문제다.

문재인은 성과연봉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그 추진 방식을 주로 비판한다. 최근 공무원 노동자 집회에서는 마지못해 공무원 성과퇴출제를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말이다. 문재인은 줄곧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12년 대선과 2016년 총선에서 한국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이 2017년 대선 후보 검증과 지지 후보 결정을 위한 한국노총의 노동정책 질의에는 시한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수모를 감수하며 지각 답변을 받아 줬지만, 노동계와 거리두기로 보수층에게 어필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안철수가 차차기 정권이 들어설 5년 뒤에야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해서 비판 받았는데, 문재인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만 하고 분명하게 목표와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 주요 입장

※ 19대 대선 공약 발표(2017년 4월 11일까지) 기준

주요 요구문재인안철수심상정
사드 배치 철회XXO
성과연봉제 폐기XO
한일군사정보협정 폐기입장 없음XO
철도, 의료, 에너지
민영화 반대
입장 없음모호
(삶에 밀접한 관계 있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
O
생명 · 안전 업무 외주화
· 비정규직 사용 금지

(정규직 고용 원칙)
입장 없음O
규제프리존법 폐기XO
최저임금 1만 원
(즉시)
모호
(점진적 인상 노력)
O
(2022년)
O
(2020년)
파견법 폐지입장 없음입장 없음O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O유보O
임금, 조건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X
(주 52시간)
X
(연간 1,800시간)

(주 40시간,
연간 1,800시간)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OXO
공무원, 교사 노동자
노동3권 보장
X
(노동기본권 보장)
X
(전교조 · 공무원노조
법적 지위 회복)
O
국공립 보육시설
40%로 확충
O입장 없음
(비율 제시 안 함)
테러방지법 폐지입장 없음XO
차별금지법 제정X입장 없음O
파업 손배 가압류 금지입장 없음
(제도 개선)
O
법인세 인상XXO
핵 발전 중단
신규 원전 반대

신규 원전 재검토

신규 · 건설 중 원전
모두 중단

문재인은 주요 야당 후보 중 가장 늦게 박근혜 퇴진 요구에 지지를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는 헌재의 평결 결과에 관계없이 승복하겠다고 했다.

안철수와 달리 상대적으로 포퓰리즘적 기반이 있는 문재인은 좌우 양쪽에서 민감한 쟁점에는 입을 다무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 비판을 피해 가려 한다.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3권, 규제프리존법, 사드 배치 등등. 물론 11일에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계속 핵을 고도화해 나간다면 그때는 사드 배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해 모호함을 조금씩 더 걷어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오른쪽 눈치 보기가 심해진 것은 안철수의 급부상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안철수는 반기업 정서는 실체가 없다며 전통적인 성장 담론을 되살린다. 또 정부는 사기업 성장을 위한 기반 닦는 것만 하고 일자리 창출 등에는 나서지 말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는 당연히 규제프리존법처럼 박근혜가 혈안이 돼 통과시키려 했던 규제 완화 조처들을 찬성하고 법인세 인상에도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동산 보유세나 상속증여세 인상에도 반대한다. 부자 증세에 반대하니 정부 재정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고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노동계급의 소득을 늘리는 계획은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딸의 재산 공개 거부로 구설수에 오른 안철수가 상속증여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도 부도덕하다.

당연히 박근혜의 노동 개악 폐기나, 민주적 권리 보장과 회복에 대한 공약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는 테러방지법 제정 때도 찬성했다.

기업주 출신 안철수가 싫어서 차라리 문재인이 낫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실천과 말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반면,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후보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노동계의 요구를 성과연봉제 완전 폐기나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파견법 폐지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계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야당 후보들과 달리 노조 투쟁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노란봉투법)나 위험 업무 정규직화, 고통분담은 상위 1퍼센트부터 등을 분명히 말한다.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도 출마해 노동계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있다.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도 주장한다. 진보당 해산이라는 국가 탄압을 겪은 후보답게 테러방지법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집시법 개정으로 경찰차벽과 물대포 등을 금지하는 정책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당선 가능성이 큰 두 대선 후보들이 벌써부터 노동자와 퇴진 촛불의 염원을 외면하고 우경화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과 영향력이 더 커져야 하는 이유다.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노동당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노동자 연대> 152호 | 발행 2015-07-06 | 입력 2015-07-04



■ 노동당 당대회 이후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당대회 유감 :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결집파가 내놓은 당원총투표 안건이 부결됐다. 이 안에 재석 대의원 2백86명 중 1백18명(41퍼센트)이 찬성했다.


이로써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의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이 주춤하게 됐다.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노동당 대의원들에게 진보 재결집 정당이 현재의 정의당보다 더 왼쪽의 정당으로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관련 기사인 151호 온라인 기사 ‘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를 참조하시오.)


노동당 자체의 정치 노선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적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통합 대 독자’ 갈등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가장 중대한 문제인 당의 통합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일반으로 당원 전체의 토론과 총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더 폭넓은 의견 수렴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나경채 대표 등이 내놓은 총투표 안은 당원들에게 통합 여부의 결정권을 주는 안이 아니었다.(결정권은 당대회에 있었다.) 이미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 추진”에 대표자 간 합의까지 한 마당이었다.


따라서 우경적 통합 결정을 위해 당대회를 무력화하려고 총투표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파의 의심을 풀 수 없었다. 결집파 지지 대의원들의 일부도 총투표 안건의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4자 통합보다 좌파적 정당으로서 투쟁 건설에 초점을 둔 총투표 반대 발언이 더 지지를 얻었던 이유다.


이런 불신에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정의당 천호선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천호선 대표는 “통합 신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이렇게 진보정당이 기반을 다진 후 …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 연합 … 정권교체 후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4자 통합에 반대하는 쪽이 경계해 온 우경 노선이다.


천호선 대표를 당대회에 초청한 나경채 대표 등 결집파 지도자들은 이날 자신들을 더 곤혹스럽게 한 천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누구도 나서서 비판하지 않았다.


4자 통합은 우경화


어쩌면 천 대표의 인터뷰는 노동당 내 좌파를 4자 통합 주도자들이 반기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치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 때 진보신당 좌파들의 합류를 꺼린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9월 진보신당 당대회를 앞두고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낸 일을 떠올리게 한다.


심상정 전 정의당 원내대표는 천호선과 대조적으로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함께하자며 옛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레디앙>, 6.24). 


그럼에도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부르크 강령(실천은 물론이고 말에서조차 자본주의 변혁과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반공주의를 표방한 강령)을 새 ‘이정표’로 내세워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천호선, 심상정 두 지도자는 이미 ‘헌법 내 진보론’이나 ‘튼튼한 안보’론으로 좌파와 선을 그은 바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의 일부인 노동당이 앞으로 우경화하지 않는 한, 4자 통합에 참여할 명분은 갈수록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당 내부에서 제동이 걸린 당대회 결과 때문에 진보 재결집 운동의 주도권은 지금보다 더 정의당 지도부에 쏠릴 것이다. 그래서 노동당 분열 위기는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이 글을 쓴 직후, 통합을 추진했던 나경채 대표와 권태훈·김윤희 부대표가 사퇴했다.)


다급해진 나머지, 노동·정치·연대와 연계된 민주노총의 중앙파·국민파 지도자들이 통합 정당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경화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의당과의 통합 때문에 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분열하는 것은 (선거적 성과는 거둘지 몰라도)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12년, 통합진보당이 총선에서 역대 최고 성과를 거뒀지만,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강요한 정치적 분화 탓에 다시금 분열로 이어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좌파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정치를 날카롭게 벼리며 기층에서 투쟁 건설에 기여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동당도 우경적 4자 통합에 합류하기보다 ‘운동 정당’으로 남아 노동자 투쟁, 각종 삭감, 세월호 등 여러 쟁점에서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 이로울 것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 이 글은 지난주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글이다.




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급진좌파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


6월 4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 준비를 위해 9월쯤에는 “구체적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전 위원장들 일부와 공공부문 노조 전현직 대표자 일부, 지식인, 예술인, 법률가 등도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관한 <노동자 연대> 입장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를 보시오.)

그런데 진보 재결집 논의가 진전될수록 노동당 안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5월 23일 3차 전국위원회에서 독자파 전국위원들은 진보결집기획단 활동을 사실상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나경채 대표가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으로 국민모임 정동영과 단일화해 사퇴하는 등 당론과 절차를 어기며 진보 재결집을 추구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때문에 나경채 대표는 6월 28일 당대회에 당원총투표 안건을 대의원 현장 발의로 냈다.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를 총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합당과 해산을 포함한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이므로 당원총투표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당원들을 토론에 끌어들이고 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더 민주적으로 보인다.(그러나 결집파의 이번 총투표 안건은 모호한 점이 있다.)

한편, 진보 재결집을 적극 추진해 온 것은 나경채 대표, 김종철·강상구 전 부대표 등이 중심인 ‘진보결집 전국당원모임’이다. 반면, 사회당계와 옛 진보신당 독자파 일부가 모인 신좌파당원회의는 좌파정당 독자 노선을 주장한다. 연합보다 노동당 강화가 우선이라는 ‘당의 미래’도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는 비판적이다. ‘무지개사회주의자연대’는 아직 공식 입장이 없다.

사실 ‘노동당’ 전체의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노동당은 정의당의 온건한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좌파 정당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노동당 진보결집파의 최근 행보를 보건대, 진보 재결집 정당이 정의당보다 더 왼쪽 정당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 대 독자’ 갈등은 기본으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주류 개혁주의 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통합에 참여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므로 그 통합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

현재 통합에 반대하는 쪽은 좌파 독자성과 ‘운동 정당’의 기치를 유지하며 기회를 엿보자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결집파인 김종철·장석준 전 부대표 등은 노동당과 정의당의 강령이 별 차이 없다고 반론을 편다. 이대로 가면 노동당의 약화가 되돌릴 수 없어져서 오히려 좌파에 불리해진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주류 사회민주주의 수준인 정의당 강령이나 4자 대표 공동선언이 “노동당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사회주의 대전환을 위해 탄생했다”고 규정한 노동당 강령에 못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정치적 차이를 흐리는 방식으로 통합 참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자세다. 이런 태도는 진보 재결집이 진보정치를 더 우경화시키는 데 일조할 거라는 의심을 키울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가 <레디앙> 릴레이 기고에서 다룬 ‘노동당 위기론’이 더 솔직한 진보결집파의 논거로 보인다.

한때 1만여 명을 훨씬 넘던 노동당의 당권자 수는 2010년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인 2012년 초에 약 6천6백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사회당과 통합한 2012년 4월 후 당권자 7천7백여 명으로 반등했다. 그런데 올해 초 당대표 선거에서 당권자 수는 5천5백60명이었다. ‘노동당’ 체제에서도 당원 감소세가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20~30대 청년 당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운영되는 지역 당원협의회가 62곳뿐이고, 그나마 상근자는 4.5명에 불과하다. 김종철 전 부대표는 ‘중앙당 적자가 매달 7백만 원이고 중앙당 상근자에게 최저임금 수준밖에 줄 수 없어 대신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6월 22일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결국 현 상태로는 노동당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유의미한 진보정치세력으로서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진보 재결집론에 깔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는 진보 분열이 위기의 큰 원인이고, 이런 분립 상태가 지속되면 정의당으로 표 쏠림 현상이 생겨 노동당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석준 전 부대표가 진보 재결집을 통해서 “노동당 강령의 메시지가 드디어 그 수신자에 가 닿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보정치 재결집: 소망과 현실

새누리당 정권이 고통전가 정책을 쉼 없이 밀어붙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정의당 등 진보결집 정당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겠다는 것은 쉽지는 않아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급진좌파가 이 당에 꼭 포함돼야 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왜냐하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가까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당면한 정세에 대한 좌파의 과제와 연결되는 문제다.

우선, 현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는 1997년 한국 경제 공황과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이후 노동운동의 정치적 각성이 최초로 주류 정당들에게서 독립적인 노동자 진보정당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이런 때는 좌파가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런 노동계급 정치의식의 이동에 함께하며 단결과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보정치 통합 노력은 두 차례나 분열을 겪었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갈등의 고조와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동운동 안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분화를 낳았다. 그것이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 특히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의 근본 배경이 됐다.

결국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스탈린주의 경향이 분리했다(노동당, 정의당 vs 옛 진보당). 개혁주의 경향도 좌우로 분화했다(노동당 vs 정의당). 더 급진적인 좌파들은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서는 빠져 있다. 이런 분열·분화 상태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쉽게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다.

둘째로, 관악을 재선거에서 국민모임 정동영이 큰 표차로 낙선한 것이나 노동당 당세가 약해진 것 등 때문에 지금 4자 통합 협상은 정의당이 주도할 공산이 큰 게 사실이다. 노동당 내 독자파들도 재결집의 핵심이 정의당과 노동당의 통합 문제라고 보고 있다.(당대회 끝장 토론 중)

정의당은 내부에 이질적인 경향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최근 당 강령 개정을 봐도 대체로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때 “헌법 내 진보”론을 설파하기도 했던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6월 24일 <레디앙> 인터뷰에서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1989년 독일사회민주당의 강령)처럼 낡은 이념과 과감한 단절을 통해 진보정치의 가치와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은 “노동계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날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20세기 서유럽의 좌파》, 이 책은 장석준 노동당 전 부대표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또한 도날드 서순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1960년대에 자본주의 폐지라는 목표를 단념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상징적 출발점 중 하나로 1959년 발표된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꼽는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반대를 포기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냉전적 반공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반공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결합은  노동계급 투쟁의 분출을 대할 때나, (냉전 시기) 제국주의 간 지정학적 경쟁에서 (자국과 경쟁하는 스탈린주의 국가에 반대해궁극적으로 자국 지배계급을 편든다는 뜻이었다.

즉,사회민주주의가 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 폐지나 계급투쟁을 기각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체제 안에서의 선거적 ‘변화’ 추구에 머물겠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단지 친소 공산당을 배척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계급투쟁적 방식에 반대하는 것이었으며, 국가 안보 개념을 수용한 ‘헌법 내 진보’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개혁 없는 개혁주의’ 단계를 지나 ‘개혁을 빼앗는 개혁주의’가 돼 있다.

이 때문에 옛 민주노동당의 창당 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했던 것이다. 또 유럽에서 시리자 같은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위기의 시대에 사회주의 대전환”을 추구하는 노동당의 지향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향보다 왼쪽이다. 천호선, 심상정 등 정의당 지도부가 올 초 백령도 해병대와 천안함 위령탑을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주문한 것도 노동당의 “평화주의”와 정치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라면,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온건한 개혁주의 정당에 합류해 정치적으로 우경화할 게 아니라 다가올 격변에 대비해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맞다.

당장 박근혜는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해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을 악화시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급진적 대안을 내놓고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데 직접 헌신할 ‘운동정당’이 더 중요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공무원연금 삭감을 사실상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 정의당과 ‘조직’을 합쳐서는 이런 과제 수행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의당은 ‘현대화’와 ‘진보의 세속화’, ‘생활진보’의 이름으로 ‘운동권 정당’과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군부대를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말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따라서 노동당이 독자적인 급진좌파 정당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노동자 투쟁, 민주주의, 세월호 등을 놓고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과 협력을 꾀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도 이로울 것이다.

<노동자 연대> 151호 | online 입력 2015-06-26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정의당의 현 지도부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서 개혁주의의 우파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줬다. 8월 28일(수) 당일만 해도 이정미 명의의 논평은 신중론이긴 했으나, 기계적 양비론은 아니었다. 비판의 무게중심은 국정원 비판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상무위원회에서 기조가 바뀌었다. 아마 하루종일 이석기 의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도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도] 녹취록의 존재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단순 국가보안법 사건이 아니라 ‘내란음모’ 건이니 최근 부쩍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해 온 정의당 리더들은 진보당을 애매하게 방어하는 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듯하다. 


자칭 ‘신중한 태도’를 공식 방침으로 하더니 급기야 ‘헌법 밖 진보는 보호할 수 없다’(심상정)는 발언을 거쳐 결국 체포동의안 찬성까지 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보당과의 경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진보당을 밀어내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제1파트너가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부차적 요소로 본다.)


천호선, 이정미, 박원석 등 현 지도부들은 수사를 받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며, 자신들을 진보당에게 그걸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국정원에게 현역 의원이 끌려가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책임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심지어 이는 수사기관에 범죄의 입증 책임이 있다는 부르주아 근대 법 논리에조차 못 미치는 발상이다.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렇다. 4·19 혁명광주민중항쟁 등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정해 놓은 나라에서 진보정당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황당하다


물론 소수의 무장 음모와 다수 민중의 봉기는 다르다그러나 이런 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기존의 헌정질서가 정당하냐 아니냐는 헌법에 대한 물신숭배가 아니라 정치적, 즉 민중의 의지를 실천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결국, 정의당 지도자들이 [아마 좌우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확고히 기존 국가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강요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상만 허용하고기존 체제 바깥을 상상하고 전복하려는 사상에 자유가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국가가 허용하는 사상에게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심 원내대표의 말대로라면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서도 무능할 수밖에 없다. 헌정질서를 지키려 대북심리전을 했다는 국정원의 국내수사권을 결국 인정하게 되므로 국정원 개혁을 일관되게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술 더 떠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 날 “아직도 골방에 앉아 1980년대 사회변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이런 후퇴를 정당화했다


국가가 보기에 ‘정의롭지 않은 논리는 골방에 모여 자신들끼리 한 토론마저 여론재판을 받고 비밀경찰과 사법기구의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정의당 지도자들의 엘리트적 국가 사랑은 사회민주주의 최신 버전의 ‘국가 공동체’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적 공동체’를 위협한 세력에게까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표상은 87년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근거해 이들은 진보당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공동체를 뒷전으로 놓는 ‘진영 논리’라고 하고 있다. 즉 진영 논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사민주의의 ‘국가·국민주의’(국민vs계급)의 새 버전이다. 공동체를 위해 모두 책임져야 하니, 노동자도 증세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무조건 노동운동 편을 들 순 없으며,(안 그러면 진영 논리니까.) 헌법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게임의 룰을 지켜가며 점진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틀린 이유는 이 사회가 근본에서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따위는 없다. 이 사회를 뿌리부터 분열시키는 그 분단선이 바로 계급인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 논리야말로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배척하는 친자본주의 ‘진영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새누리당의 제명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국회로 불러들여놓고 마녀사냥 반대라니 우습지만, 그거라도 반대를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결국, 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의 모순된 논리는 지배계급이 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현 기득권 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자세니 박근혜와 동맹을 할 수 있다느니, 노동자증세를 포함한 보편증세에 함께하겠다느니 하는 번짓수 없는 주장도 하게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정원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은 우파 지배자들은 목적을 위해서 현행 법과 선거정치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 독재가 끔찍한 유신 독재로까지 연장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본격화하려는 반동의 진격을 막고 복지와 민주주의의 확대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위해서는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필요하다


저들이 법과 제도를 어길 각오를 하고 반동으로 가는데, 헌법 내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는 데 강박을 가진 진보로는 이런 것을 쟁취할 수가 없다. 신호등만 믿고 길을 건널 순 없다. 차들이 신호등에 맞춰 멈춰서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진정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10ㆍ26 재보선에서 진보정당은 위기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 줬다.

우선 진보정당과 후보들은 무대 위에서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얻은 표는 2퍼센트 남짓이었다. 야권연대를 위해 ‘어차피 사퇴할 후보’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조차 최규엽 후보 선거운동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와 선을 대고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다.[각주:1]

진보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라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실질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온 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였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거둔 성적을 보면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11~27퍼센트를 득표한 것이다. 이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는 거의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노원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과 대조된다. 양천구에서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표의 70퍼센트도 채 가져가지 못했다.

반MB ‘계급’투표를 한 노동계급 청년세대가 민주당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으며 이들 중 의미있는 수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실체인 것이다[각주:2]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이 성공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강령까지 후퇴시키며 친자본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다가 진보대통합을 망쳐 버렸다.

그 결과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의 주도권을 안철수ㆍ박원순 등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에는 진보정당이 제대로 공백을 메꾸지 못한 탓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ㆍ청년들이 계급적 각성을 하며 진보를 갈망하기 시작하는데, 노동자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약해지는 역설을 자초한 것이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뼈아픈 패착이 아닐 수 없다[각주:3].  
 

계급적 분노
 
한편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그토록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던 유시민과 참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각주:4]. 참여당이 여전히 구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아류[각주:5]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분열까지 조장하면서 참여당과 통합하려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또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에게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회찬ㆍ심상정 등 통합연대 지도자들도 이 압박에 무원칙하게 타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각주:6] 사실이라면 유감스런 일이다. 

민주당의 아류로 비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를 진보정당이 흡수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고, 민주노총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재연할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일으킬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더 약화될 수 있다.

그리 되면
 ‘혁신과 통합’ 등 NGO 성향 인사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정당에 진보정당들이 들어오라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친노의 주도력은 많이 약화됐지만, 야권연대의 선거적 힘은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번째 역설인데, 야권통합의 실질적 대주주인 민주당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을 고집하면 일관되게 이 압력을 거스르기도 힘들다. 참여당은 진보정당과 ‘소통합’ 이후에 ‘혁신과 통합’과 함께 야권대통합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과의 통합이든 야권통합이든 모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위태롭게 하는 퇴행적 시도다. ‘노동 없는 정치’가 정치 불신의 근본 배경인데, 그 정치를 해야 할 당의 독자적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청년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1퍼센트 특권층이 지배하는 기성 정치 구조가 이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계급적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각성은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희망버스’와 최근 한미FTA 저지 운동이 그 사례다[각주:7]. 이들은 조직 노동운동의 투쟁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은 급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99퍼센트의 저항 운동’ 등을 건설하며 이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각주:8] 

그 과정에서 반한나라ㆍ비민주당 개혁주의의 현재 수렴점인 진보적 NGO들과도 개방적으로 협력해 급진화하는 청년 대중과의 소통과 공동 실천을 강화한다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이 계급적 각성의 급진적 정서에도 부합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급진화시킬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지해 선출한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든 나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든] 그런 대중행동으로만 개혁을 성취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68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 서울시장 재선거 과정이나 박원순 시장 선거운동, 그리고 안철수 현상에 관한 내 논평은 이전 포스트를 보세요. 

 
  1. 박원순 선본은 나경원에게 역전당한다고 경고등이 켜진 시점에서 노조들과 협약을 맺었다. 민주노총은 우리는 박 선본의 집토끼가 아니라며 협약을 해야 선거운동과 조합원 투표를 조직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2. 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흐름의 현재 정치적 수렴점은 NGO·의회 개혁주의로 보인다. 일부에서 민주노동당 대표냐, 야권연대당 대표냐 하는 비판을 듣는 이정희 대표가 당 바깥에서 인기가 높은 것도 이정희 대표가 상징하는 포지션이 여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렴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3.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 이 약돠되지 않았다면, 정치 지형상 급진화 속도는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민주당도 출마한 두 곳에서 민주노동당 등과 단일화해 나갔으나 4퍼센트, 8퍼센트를 득표했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부터 보이는 참여당의 득표력 부진은 회복 기미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5. 어떤 이들은 본류로 보기도 한다.참여당 지도부가 주로 노무현 정부의 친위 정치인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통합연대가 최종 결정한 결정문의 문구로만 봐서는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에 찬성했다고 보긴 어렵다. 약간 섣부른 비판이었다. [본문으로]
  7. 더 멀리 가면 2008년 촛불항쟁도 그럼 흐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다른 야당과는 필요하고 서로 의견이 같은 쟁점에서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사안별 연대를 하면 된다. 통합과 사안별 연대는 다른 문제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야권단일정당이나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개혁주의자들은 툭하면 “낡은 진보”를 들먹인다.

물론 진보가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새롭게 혁신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주로 진보적 원칙을 포기한 사람들이 자신의 후퇴를 정당화하고 진보정치에서 급진성을 제거하려고 할 때 ‘낡은 진보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계급’과 ‘대중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낡은 진보”라고 이들은 말한다.

이들의 첫째 근거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현재의 진보가 어떤 면에선 한나라당 뺨칠 정도로 수구적”이라며, “NL은 농경사회의 패러다임이고 PD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다.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국민국가의 산물인데, 민족해방론이 ‘농경사회 패러다임’이라는 황당한 주장은 일단 제쳐 두자.

△지난해 말 현대차 파업 당시 점거를 해산시키려는 사측과 노동자들의 충돌 이런 것을 보고도 ‘계급 갈등과 모순’을 강조하는 것이 낡았다고 할 텐가. ⓒ사진 이미진



과장과 달리 ‘정보사회’라 불리는 현상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는 것은 여전히 산업 노동자들이다.

스마트폰의 ‘기적’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집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신세계’는 거대 물류 창고를 관리하고 온종일 교통지옥을 오가며 운송ㆍ배달하는 노동자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계급은 낡지 않았다’

반도체를 만들다가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전자 노동자들과 아이폰을 만들다 연쇄 자살한 중국 폭스콘 노동자들이 ‘정보사회’의 숨겨진 진실인 것이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박정희가 만든 원진레이온 공장의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과 저들의 대응 행태도 결코 다르지 않다.

겉모습이 아무리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본질은 ‘자본주의 계급사회’다.

이런데도 “프로게이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래 사회 블루칼라의 모습”이라며 “노동운동은 끝났다”는 진중권의 말은 어처구니가 없다.

한편, “디지털 시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경기 침체와 물가 폭등, 실업과 빈곤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위기에 처한 자본가ㆍ투기꾼 들을 살리려고 세금을 퍼부으면서 그 때문에 줄어든 정부 재정을 충당하려고 노동자들의 복지와 일자리를 삭감하고 있다. 그래서 계급 간 격차와 불평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규항은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 ‘계급적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말”인데, ‘계급’을 말하면 “80년대 스타일”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둘째, 이제 더는 대중투쟁으로 사회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낡은 진보론’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것은 노동자 양보론으로 연결된다.

최근 출범한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의 이상이 상임대표는 지난해 “‘낡은 진보’는 고용주가 건강보험료의 60퍼센트를 부담(현재는 50퍼센트)하고, 정부가 국고로 30퍼센트를 부담(현재는 20퍼센트)하라고 요구한다. … 국민의 건강보험료 추가부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 [이런 요구는] 지금의 계급 역관계와 정치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복지 재원을 기업과 정부에게 요구하며 투쟁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노동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은 현실적인 ‘새로운 진보’라는 것이다.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는 “[민주당 개혁파와 함께 만들] 복지국가 단일정당[이] …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면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은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하고 말한다.

싸워서 개혁을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표로 집권하면 개혁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두 가지를 함축하는데, 하나는 대중행동보다 선거 득표와 정치엘리트들의 법안 협상을 우선하는 ‘정치’이고, 또 하나는 ‘계급 연합(협력)’이다.[각주:1]

대중행동보다 선거 득표와 정치엘리트들의 법안 협상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위해 민주당과도 손잡자는 것이다. 

이들은 “운동권 정당”, “낡은 진보”라는 표현으로 좌파들을 거리에서 핏대 선 모습으로 소리나 꽥꽥 지르면서 막상 현실적 변화는 못 이끌어 내는 무능한 집단으로 묘사하곤 한다..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지지하는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는 “10년 20년, 진보정치가 집권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최근 심상정 전 의원이 ‘정치인은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를 중시해야 한다’는 막스 베버의 주장을 인용하며 야권연대를 정당화하는 것과 유사하다.[각주:2]

정직하게 밝힌 신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실천의 동기가 되는 신념과 실천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해 진보의 원칙[신념]에서 벗어나는 정치 행보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각주:3]

그러나 김규항의 말처럼 “한국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는 언제나 의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즉 대중이 거리에서 직접 정치의 주역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 왔다.

“의회가 아닌 길거리”

1987년 민중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각주:4]과 청년들의 반보수 시위들[각주:5]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10년 집권도 가능했다. 2008년 촛불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과 의료 민영화 같은 것들을 멋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도로 민주당’ 정부만 만들면 복지 확대 등 엄청난 진보가 가능할 것처럼 과장하며 대중운동 건설을 방기하고 민주당과 계급연합에만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무책임’ 정치다. 좌파의 책임정치는 집권을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함께 싸우자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가 바뀌었다”며 정치적 후퇴를 정당화하는 개혁주의자들은 많았다. 1백 년 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베른슈타인도 그런 예다.

그는 ‘세상이 바뀌어서’ 마르크스가 말한 경쟁과 주기적 경제 위기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사라졌고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한 10여 년 뒤 자본주의의 모순은 야만적인 세계 전쟁을 불러 왔다. 그를 지지했던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전쟁에 찬성표를 던졌다.

오늘날에도 프랑스 사회당의 개혁주의자들은 사르코지만 몰아내면 된다며 신자유주의 전도사 IMF 총재 스트로스 칸을 대선 주자로 내세우다가 곤경에 처했다. “낡은 이념”을 버리고 추구한 실용주의가 낳은 결과다.

반대로, 올해 초 시작된 아랍 지역의 민중 혁명은 계급, 대중투쟁, 혁명, 제국주의 등이 여전히 생생한 현실임을 보여 줬다.


낡은 것은 우경화된 개혁주의 전략[각주:6]이고, 계급투쟁이야말로 현실이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57호에 실렸습니다. ☞ 기사 보기
  1. 이것이 최근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온 ‘정치가 우선한다’나 ‘정치의 발견’ 등을 교본 삼아 유시민, 심상정, 박용진, 최병천 등이 강조하는 “정치의 우선성”이다. [본문으로]
  2. 유시민도 최근에 낸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문으로]
  3. 최장집 교수와 그의 제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최근 막스 베버가 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정리해고법과 안기부법 등의 날치기에 맞선1997년 1월 대중파업은 당시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김영삼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인력 감축과 기업 합병 등에 맞선 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라는 요구도 컸다. 이것은 더 친사용자적이고 IMF에 더 친화적인 정당인 한나라당 집권에 반대하는 정서의 형성에 기여했다. 노무현은 여기에 바탕해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는 대통령이 되겠다” “반미가 대수냐”는 발언을 할 수 있었고 청년들의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본문으로]
  5. 1997년 민주노총의 1월 파업이 남긴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학생운동은 김영삼 대선자금 비리를 폭로하며 5월에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매일 벌였다. 상당한 지지를 받은 이 투쟁은 비록 학생들의 도덕적·정치적 오류로 사그라들었지만, 이 투쟁이 제기한 파장은 연말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말 안티조선 운동과 2002년 여중생 사망 항의 촛불운동,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시위 등. [본문으로]
  6. 사실상 사회적 자유주의(제3의 길)와 구분하기 힘든 우파 사회민주주의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2
18일 끝난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한 선본의 웹 홍보물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원들을 만나 다시 활동을 하자고 권유를 하면 대부분 ‘당이 사라지는데 지금 활동을 해서 뭐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진보신당은 이제 희망도 미래도 사라져 버린 당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경섭 진보신당 서울 마포구 당협위원장도 최근 <레디앙>에 “얼어 죽고 굶어 죽게 생겨 버렸다. … 진보신당은 사람을 모을 돈도, 사람들의 발과 입으로 내세울 의원도 없다.”고 털어놨다.

진보신당 내부는 이 당의 선거적 성공 가망이 점점 없어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이에 관해 더 자세한 제 견해는 ☞‘진보신당 논쟁과 대표 선거 ― 실패한 전략 반복하기?’를 보세요.)

존재의 위기감’ 때문에 심지어 분열 걱정까지 나온다. 통합파인 유의선 서울시당위원장 당선자가 당원총투표로 진로를 결정하자는 공약을 낸 것도 이런 맥락인 듯하다.

[현재 당원 모두]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으로 함께 갔으면 합니다. …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냥 따로 가자’ ‘제 갈 길 가자’는 불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과 절대 함께 못하겠다며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일부 독자파의 태도는 당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라고 비판했던 조승수 대표 자신이 ‘종북파’의 핵심이라던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후보 단일화로 당선했다. 진보신당 지방의원 25명 가운데 21명이 사실상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를 거쳐 당선했다.

독자파가 목소리를 높이지만, 냉정한 당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경섭 위원장은 독자 노선은 “그냥 고사되자는 거나 같은 소리”라고 비판한다.  

정경섭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적이 아니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고 옳게 지적한다. 진보정당이 차이점을 앞세워 분열할 게 아니라 이명박에 맞서서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 다수는 이런 단결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당 선거에서 ‘진보통합정당에 단결해서 참여하자’는 유의선 후보가 절반 가까운 득표로 당선한 것과 통합파 두 후보의 득표 합계가 70퍼센트에 육박한 것은 이것을 보여 준다.

통합파 안에서도 국민참여당 같은 친자본가 정당과도 통합할 수 있다는 최선 후보보다 진보정당 통합이 우선이라는 유의선 후보가 갑절 더 많이 득표했는데, 둘 모두 범야권 선거연합 가능성은 열어뒀다.

유 당선자가 특별히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당원 여론과 달리 당 지도부와 대의 기구에는 여전히 독자파가 많아 대의원대회에서 진보대통합 합류 방침이 통과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분열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당원을 통합진보정당으로 조직하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부 통합파 지도자들이 진보 대중의 진보대연합 지지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하는 수준의  민주대연합까지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내 글 보기 ☞ 연석회의 출범 ― 어떤 진보대연합인가)

심상전 진보신당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대연합의 파트너인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민주대연합 노선에 기울어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 지도부 주류가 실제로는 진보대통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두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는 민주당과 연합해서 이명박에 맞서겠다는 잘못된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민주당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직업안정법 개악을 한나라당과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묻지마 통합’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독자파의 일부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석준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처럼 “범민주당 정권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고, … [진보정당] 통합은 단지 그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단정하며 진보대연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선 진보신당 독자파의 태도는 일관되지도 않다. 말과 달리 독자파의 “진보정치의 독자성” 원칙은 ‘선거적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진보신당의 독자파 대부분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들의 야권연대에 침묵했다. 장석준 실장도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최근 제출한 당발전계획[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독자파가 지도부 다수인 진보신당은 민주당이 제안한 4·27 재보선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참가했다. 조승수 대표는 민주당을 비판했지만, 그가 서명한 공동 합의문은 “4·27 재보선부터 민주진보진영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였[]”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독자파들은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만 민주대연합을 비판하는 듯한 인상도 준다. 

무엇보다 조 대표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야권공조로 공장에 가 농성 해제 종용에 동참한 사실에 대한 비판을 당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독자파는 민주노동당과 재통합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만 일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재통합이 자신들이 주도한 분당/창당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싸우는 노동자들과 진보 대중이 바라는 진보대연합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나 홍익대 미화노동자 파업 같은 투쟁에서 진보세력이 충심으로 단결해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보의 진정한 민생정치 아니겠는가.

그런 연대와 승리, 단결과 신뢰가 누적돼야 연합 조직을 함께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더 큰 투쟁으로 갈 정치적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며, 선거에서 단일한 진보 후보를 내고 지지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장석준 실장의 말과 달리 다함께처럼 민주대연합에 반대하면서도 이런 투쟁적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추진하는 좌파들도 있다.

실제로 홍익대 투쟁처럼 진보정당과 진보 단체 들이 단결해 연대한 곳에서 노동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투쟁도 전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진보 양당이 단결한 곳에선 양당 지지율 합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이런 방침은 국민참여당 등처럼 그 지지층은 탐나지만, 그 지도부는 연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세력들에 대한 태도에도 해법을 줄 수 있다. 기준도 전망도 모호한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 ‘요구’와 ‘투쟁’으로 단결했을 때, 무능한 그 지도자들의 손아귀에서 진보적 대중을 왼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

반대로 그들에게 진보적 색을 칠해 주면서 연합하는 방식으로 하면 오히려 대중에게 그들에 대한 환상을 키워줄 뿐이다.

따라서 단언하건대, 다수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의심스런 행보를 핑계로 광범한 진보 대중의 단결 염원을 거부하는 것은 현명한 좌파의 태도가 아니다. 진보대연합을 지지하고 동참하면서, 그 속에서 진보대연합이 민주대연합의 사전 단계가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결과 투쟁에 복무하도록 노력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 점에서 현재 진보신당 내 통합 논쟁에서 빠진 것은 진보대통합의 목적에 관한 문제의식, “진보대통합이 어떻게 계급투쟁을 강화할 수 있느냐” 라고 본다. 어느 파도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집트와 중동의 민중 반란이 보여 주듯이 진정한 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에 있다. 진보대연합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 건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런 투쟁 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신뢰를 쌓으며 선거에서도 진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한편, 단일한 정당 형태로 통합했다가 다시 당내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정경섭 위원장은 “섣불리 통합했다가 다시 분열이라도 된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거의 끝”이라고 걱정한다.

신뢰에 바탕한 단결이 되려면 공통점을 앞세워야 하지만,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억압돼선 안 된다. 단일 정당 모델은 그 점에서 여전히 위험하다. 분당 경험은 차이점을 더 크고 분명하게 해 놓았다.

따라서 각 정치세력의 독자적 선전, 비판, 조직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10~20개의 진보적 행동강령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공동전선 모델이 단결을 위해 더 효과적이다.


※ 이 글은 수정·축약해 <레프트21> 51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보기   이 글은 그 기사를 보완해 논지를 더 보충한 것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가 ‘문제적 발언’을 쏟아내며 ‘연합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심 전 대표는 11월 17일 민주당의 이른바 486 의원 모임인 ‘진보행동’ 출범식에 진보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386세대”란 말 대신 “87세대”라는 표현을 쓰자며 공통점을 부각했다.

그는 23일 부산 ‘진보광장’ 토론회에서 “나는 개혁세력에게 …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반면에 진보 세력에게는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양 쪽 다 성찰이 필요하다. 이렇게 좁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7일 심상정의원이 민주당 모임에 참가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 민주당


심 전 대표가 했다는 “성찰”은 이렇다.

“용산, 비정규 집회... 열심히 외치고, 농성하고... 공허한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비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각주:1]

이제 그에게 진보적 개혁의 주체는 국가기구에 올라탄정부(집권) or 의회에 있는 ― 엘리트들이고 대중은 수동적인 개혁의 수혜 대상일 뿐인 것일까.

이런 발상에 따라 그는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당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상설협의체를 제안”했다[각주:2].


그래서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 하는 말은 민주당이 비정규직 같은 이슈에 관심을 보여 연합의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 하는 그의 주문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각주:3].


투쟁은 “공허”하니 민주당과 연합하자?


근로자파견법과 비정규직 악법 등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공격해 온 장본인인 민주당과 손잡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우리 편의 입장을 후퇴시키고, 투쟁을 가로막을 수 있다[각주:4].


이래로부터 투쟁이 “공허”하다며, 민주당과 하는 협력을 통한 ‘위로부터 개혁’을 강조하는 그는 국가기구의 위신과 권능을 인정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常勝]의 최정예 우리 군은 연전 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는 … 우려스런 현실”이라는 주장은 그의 이런 태도를 보여 준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등 침략적 한미군사동맹에 반대해 왔던 그로선 명백하게 진보에서 후퇴하는 변화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 노항래는 “이제 진보·개혁 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각주:5], 심 전 대표가 어떤 정치세력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성찰”을 통해 민주당의 “87세대”와 차이를 “좁혀 나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자신의 ‘연합정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이라는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 스스로 진보의 가치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그의 ‘연합정치’는 진보적 대의와 강령에서 후퇴하는 선거공학적 정계 개편 시도에 가깝다.

심 전 대표가 “공허”하다고 폄하했지만, 용산 철거민들은 “열심히 외치고, 농성한” 덕분에 그나마 총리 사과와 생계 보장을 받아냈다. 최근에는 기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구호대로 “함께 비를 맞은” 사람들과 끈질기게 싸워서 승리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투쟁 속에서 자본가 야당과는 다른 진보적 대안을 건설하는 일이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었습니다.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08

  1. 11월 23일 부산 진보광장 강연회에서. 출처는 심상정 블로그. 그래선지 그가 속한 진보신당이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지원에 열중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울산을 방문하지 않았다. 다만, 부산에 입원해 있는 분신한 황인화 조합원에게만 위문 방문을 했다. [본문으로]
  2.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추도식에서. [본문으로]
  3. 개혁세력이 진보의 이슈를 붙잡는 게 공동의 의제로 연합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면, 진보세력이 개혁세력의 힘을 먹겠다는 것은 사실은 진보세력이 개혁세력과 조직을 합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는 진보정당들이 더 큰 민주당 등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본문으로]
  4. 이것이 이명박의 비정규직법 개악 막기, 촛불항쟁 때 소고기 수입 막기, 미디어법 개악 막기, 타임오프제 막기, KEC/MBC 파업 등에서 숱하게 반복된 일이다. [본문으로]
  5. 12월 2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와 평화네트워크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안보 무능’이 문제라고 말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주장은 우려스럽다.

가령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 군의 대포들이 왜 유사시에는 새떼를 쫓고, 허공을 가르는지 의문 투성이일 뿐”이라며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常勝]의 최정예 우리 군은 연전 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심 전 대표는 앞뒤 맞지 않게 ‘평화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긴 하지만, “우리 군”의 ‘군사적 무능’을 걱정하는 그의 주장은 호전적 매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상승(常勝)의 남한 군대에게 바라는 것이 이런 전투인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종북주의’ 낙인이 찍힐까 봐 국회의 대북규탄결의안에 기권한 반면,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옳게도 반대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회대북규탄결의안―민주당의 호전성이 드러나다 를 보시오.)

그런데 정작 진보신당 안에선 아연실색케하는 주장들이 나온다.

최병천 사회민주주의연대 집행위원은 “나치즘과 파시즘은 ‘무찌르는 것’이 역사적 정의(正義)이지, ‘양비론적’ 평화를 외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북결의안을 찬성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단체 기획위원인 홍기표도 “외국의 포탄이 본토에 떨어진 마당에 … 단호하고 신속한 대응을 … 요구하는 게 … 무리한 건가” 하고 말하고는 조 대표의 표결로 “반공 정서에 물든 노동계급을 탈환해서 … 수권가능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 구상이 물 건너 가는것이 아닌가” 하고 비판한다.[각주:1]

냉전 우익의 반공주의를 연상시키는(수사와 구호를 일부 차용한) 이들의 주장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 조국의 수호를 외치며 전쟁을 찬성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 당들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혁명을 분쇄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야합했고[각주:2], 체제에 충성을 바친 대가로 기성 정치권에서 입지를 다졌다.

지금 북한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각주:3] 세계 민중과 남한 민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범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와 남한 정부가 진정한 위협 세력이다[각주:4].

이런 상황에서 진보신당 내 온건파들이 북한을 향한 호전주의 주장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남한 자본주의를 향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을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었습니다. 기사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995

  1. 최병천과 홍기표는 국회대북규탄결의안이 호전적이라는 점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의 반공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아전인수다. [본문으로]
  2. 이들은 반공을 당 강령에 포함시키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세력의 집권을 막으려는 미국의 시도에 협조했다. 미국은 이 레지스탕스들을 공산당이 주도한 점을 문제삼았다.경제적으로 마샬플랜을 제공했고 이탈리아 같은 경우 지중해 함대를 배치하고 위협했다.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서유럽 공산당들은 순순히 미국의 협박에 따랐다. 그리스는 그 결과 반나찌 저항세력이 미군에게 물리적으로 궤멸됐다. [본문으로]
  3. 쇠락한 독재국가 북한은 오히려 혐오 대상이다. 반공주의는 이 점을 이용해 북한 체제나 정권의 노선과 관계 없는 좌파 전체(그리고 사회주의 대안)의 신용을 떠어뜨리려 한다. [본문으로]
  4. http://www.left21.com/article/8993 를 보시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최근 비정규직 의제로 가치 중심 야권 연대를 이루자는 주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서도 보듯 비정규직 쟁점은 국민적 의제다. 실태도 매우 심각할 뿐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상당하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는 
1113일 “전태일 열사를 야권연대의 튼튼한 밧줄로 삼아야 한다”며 “야당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상설협의체를 제안”했다[각주:1].

사실 이는 진보 양당의 지도부가 추진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당장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서도 진보 양당은 민주당과 함께 공동조사단을 꾸려 울산 공장을 방문했다. 민주노동당은 야 4당의 의원 합동 총회를, 진보신당은 야 6당 공동대책기구를 제안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도 23일 민주당 대표 손학규를 만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노동 관련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범국민본부’(이하 범국민본부)에 함께하자고 제안했다[각주:2]. 2012년 총선까지 염두에 둔 제안이다.

심 전 대표의 “상설”협의체 제안은 6·2 지방선거 이후 주장해 온 ‘연합정치’의 새 버전인 듯도 하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유시민을 지지하며 후보를 사퇴한 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일부를 포함하는 연합정당 건설을 주장해 왔다.

진보신당 대표 선거 불출마 후 대외 활동을 자제하던 심 전 대표는 1117일 민주당의 이른바 486 의원 모임인 ‘진보행동’ 출범식에도 진보정당 인사로서 유일하게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386세대”란 말 대신 “87세대”라는 표현을 쓰자며 이들과 공통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야권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 진보정당도 과감한 변화를 해야 하고 틀에 안주하는 진보가 아닌 공동의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의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연합을 구성하자는 주장은 얼핏 진보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안 해결에서든 진보대연합에서든 민주당과 차이를 흐리는 방식의 연대는 비정규직 투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만 잡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 연대고, 파업 연대다. 이 싸움은 서로 계급을 대표해 싸우는 것이므로 계급연합으론 제대로 된 진지를 구축할 수 없다. 사진은 11월 22일(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장소에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조합원들이 붙인 연대파업 지지 대자보.



무엇보다 민주당 자체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기간제법, 파견법 등 각종 비정규직 양산법을 만든 당사자다.

따라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려는 연합이 되려면 민주당이 최소한 기존의 악법을 전면 개정하거나 폐지한다는 입장을 가져야 할 텐데, 지금껏 민주당은 이런 악법 도입을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임종석이 ‘진보행동’ 출범식에서 “노동”과 “복지국가”를 중심 가치로 삼아 연합하자고 주장했지만 공문구로 들리는 이유다. 지금 민주당의 누가 딱부러지게 “‘파업’을 지지한다. 정몽구와 기업주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가. 없다.

현대자동차 투쟁에서 보듯 비정규직 차별의 주범은 바로 대기업들이고, 민주당은 바로 그런 기업주들에게 후원을 받아 활동을 하고 정권을 운영한 정당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 노동부는 현대차 울산공장에 불법 파견 판정을 해놓고도 현대차 사측을 징계하지 않았다. 검찰은 명백한 위법인 불법 파견을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1조 원 가까운 비자금을 조성해 양재동 본사 비밀금고에 보관하다가 구속된 정몽구를 금세 특별사면·복권해 줬다. 

지금 현대차 사측이 대법원 판결마저 거부하는 것은 ‘불법 파견’ 문제가 단사 문제가 아니라 다수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그 속성상 대기업과 우파 언론들의 압력에 동요하다가 배신할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지금 현대차 자본에게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법질서 준수’을 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그 판결이 자신들이 만든 법을 문제 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야당 아닌가.

그러나 이들 말대로 “대화를 통한 해결” 방법을 믿고 투쟁을 자제했다가는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우리 편이 옳고 세력을 늘려 보이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교섭의 성사를 위해 우리 쪽도 투쟁을 자제하라는 압력을 담은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각주:3] 그래서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서도 야5당이니 야4당이니 하는 이름으로 진행될 중재 압력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 전 KEC 점거 파업 때도 야5당은 민주당 대표 손학규를 앞세워 ‘대화를 통한 해결’을 말하며 중재를 자처했지만,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며 노동자들의 농성 해제를 종용해 결국 승리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KEC 부지회장의 관련 인터뷰)

당시 이 과정에서 손학규를 도와 중재자 구실을 한 홍영표는 이번 현대차 울산공장에도 진보 양당과 공동조사단으로 갔는데, 사실 민주당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라는 중립적 자격으로 간 것일 뿐이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노동유연화를 더욱 촉진할 한미FTA 추진 실무를 맡은 바 있다.

그들이 와서 지지한다면 말릴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들을 믿거나 그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걸 도와주면, 그것은 중장기적으로 노동자투쟁과 진보정치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중재의 이름으로 농성 해제와 교섭을 맞바꾸는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그들과 협력해 중재에 나서는 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중재가 아니라 연대투쟁을 조직하라. 앞서 인용한 심상정 전 대표의 “비정규직 해결 야권 상설 협의체”는 범야권 정치연합 추진에 진보적 당의정을 입히는 구실을 할 뿐이다. 김영훈 위원장의 “제287년 항쟁” 제안도 마찬가지다.

1987년 당시 이른바 ‘민주’ 야당 지도자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양보받자마자 6월항쟁을 멈추자고 했고 7~9월 노동자항쟁은 외면했다. 이들은 진정으로 노동자 투쟁과 함께한 적이 없다.

오히려 되살려야 할 기억은 1997년이다. 그해 1월 민주노총은 대중파업을 벌여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국회의원 1백 명이 막지 못한 김영삼의 날치기를 철회시켰다.

그때 파업 노동자들은 집회에 찾아 온 노동운동 출신 민주당 의원[각주:4]들을 야유하며 쫓아 보냈다. 국회의원들보다 자신들의 집단적 힘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김영삼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항의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 달 간 대중파업을 벌였다. 매일 파업 노동자들 수만 명은 서울 도심에 모여 집회를 하고 행진을 했다. 당시 한국 정치의 주인공은 이 파업 노동자들이었다. 한 달 동안 9시뉴스는 파업 보도로 시작했다. 결국 김영삼은 아들을 구속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회에서 날치기를 철회했다. 김영삼은 완전한 레임덕이 됐고, 산 권력의 중재를 받지 못한 신한국당은 대선에서 분열했다. 민주노총의 파업이 바꿔놓은 정치지형과 집권여당의 분열, 그리고 경제 위기는 5·16 쿠데타 이후 37년 만에 일당국가에서 벗어나는 배경이 됐다.


※ 이 글을 다듬고 축약한 글이 <레프트21>에 실렸습니다.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953
  1. 전태일 40주기 추도식. [본문으로]
  2. 민주노총은 이를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영훈 위원장의 대회사를 통해 처음 공개 제안했다. 이것이 진보정당들의 비정규직 야권연대 구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본문으로]
  3.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주장은 중재의 목적을 교섭 성사에 둔다. 교섭 결과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교섭 성사를 위해 점거농성을 풀면 막상 교섭에서 사측을 압박할 가장 강력한 카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사측의 카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고와 징계, 고소고발, 경제적 압박 등. 이것이 어려운 투쟁을 할 때 중재자들이 당장 고마우면서도 위험한 이유다. [본문으로]
  4. 대표적으로 유신 시절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했던 원풍모방노조의 위원장 출신인 방용석이 발언도 못 해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밖에도 더 많은 의원들이 망신을 당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했던 배경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당시 국민회의가 말과 달리 노동자들을 위해 진정성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능한 야당 대신 스스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1. 진보신당은 9월 5일 당대회에서 ‘선거평가 및 당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당발특위)가 마련한 당 발전 전략()에서 새 진보정당 추진기구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당발특위 발전안(관련 기사 :  진보신당의 당 발전전략안 ― 진보신당의 모순을 보여주다)은 진보신당의 진로 ― 연합정치와 당 정체성 ― 를 두고 벌인 논쟁을 봉합하는 절충안이라고 평가절하돼 왔는데, 진보통합 추진기구 설치는 이런 발전안에서 몇 안 되는 구체적 실천 계획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문구상 질적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수정안 가결의 상징성이 큰 까닭입니다. 그래서 당 발전안 통과 후 연합정치 행보를 가속하려던 이른바 ‘통합파’의 입지가 당분간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
연합 지지파 안에서도 진보신당 상층부의 무원칙한 ‘연합정치’ 행보에 반감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각주:2].

그 결과, 심상정 전 대표는 대표 출마를 그뒤 고사하고, ‘독자파’ 출신 조승수 의원이 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했습니다. 


2. 독자파와 통합파는 쟁점을 선명히 드러내는 명칭은 아닌데, 그 본질을 살피다 보면, 또 손쉽게 둘을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통합파는 말그대로 통합정당을 추구하므로 진보신당 자체는 통합진보정당으로 용해되는 것이고, 독자파는 선거연합은 반대하지 않지만[각주:3], 진보신당을 유지하면서 연합을 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진보신당의 유지 여부가 쟁점인 것이죠.

물론 통합파도 통합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진보신당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 독자파도 세력의 재구성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으므로 우선 당을 강화하자는 데에서는 사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입장의 차이가 불구대천의 차이인지 사실 좀 의심스럽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바로 그런 당 강화에 걸린 양쪽의 필요 때문에, 논쟁 주제가 연합의 범위에서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 즉 당의 정체성 문제로 바뀐 것이라 봅니다. 연합이 제기된 것은 이대로는 진보신당이 존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체성 논쟁은 2년의 성공/실패 여부라는 평가 문제와 향후 진로 전망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쟁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논쟁 구도가 연합의 범위 문제로 시작해 당 정체성 문제로 간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독자파의 핵심들이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인 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연합의 범위 쟁점이 국민참여당·민주당에 머물지 않고 민주노동당 문제도 쟁점이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도탈당파에게 재통합은 창당 실패를 인정하는 거니까요.

사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진정한 차이는 진보신당 창당 기획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편의상 독자파와 통합파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도 그렇게 틀린 용어법은 아니겠다고 생각합니다.

3.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 중심의 실세 그룹들, 즉 유시민이나 천호선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한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최근 민주대연합 노선과 헌정회 지원과 인천 동구청장 사태 등으로 우경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통합파는 확실히 무원칙합니다. 그들은 진보신당의 위기를 선거공학에 바탕해 민주대연합에 가까운 통합 정당 노선으로 돌파하려 합니다.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과 하는 통합에 반대하는 점에서 독자파가 더 올바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자파가 사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같은 애초 진보진영의 독자 정당 건설의 목표를 좌파적으로 되살리며 통합파를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각주:4]. 그들도 마찬가지로 선거 논리에 기대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도 대부분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은 찬성합니다. 둘째, 진보 양 당의 재통합을 바라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진보 대중의 바람을 외면합니다. 셋째, 선거 기반이 거의 없는 사회당과 통합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더 좌파적인 그룹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그것은 독자파도 당 존립에 관한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통합파의 방식이 진보신당 주축 세력의 정치적 소멸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도로 민주노동당’에 그토록 반감이 큰 것도 그것이 자신들의 분당/창당 기획의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자주파와 세력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제도 선거판에선 집권당 출신인 국민참여당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통합이든 연합이든 자기 기반이 확실해야 지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통합파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통합파 리더들의 정치적(선거적) 상품성은 ‘진보정치’에 있기 때문에 진보신당이라는 기반을 버리고 개인적으로 통합 논의로 갈 순 없죠. 이 때문에 통합파가 당대회의 일시적 패배를 감수하고 독자파와 다시 동거에 들어간 것입니다.


4. 그렇다고 독자파에게 당장 실현가능한 뚜렷한 비전이나 기반이 있는 건 아닙니다. 조승수, 김정진, 한석호, 장석준 등 선도탈당파를 이뤘던 독자파들이 “주체의 재구성”을 이루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통합파의 “세력의 재구성”에 맞서 독자파가 내놓은 “주체의 재구성”은 실패한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조승수 의원은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재벌(=대자본)과 싸우는 당”이 되겠다고 했는데, 자본가 싸우는 당이 왜 노동자(계급 전체)당이 아니라 비정규직(계급 일부)당이어야 할까요.

장석준은 정규직(조직 노동운동의 주요 구성 집단)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됐고, “20대, 여성 등의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고 말합니다. 배제된 사람들의 당이 되자는 거죠.

즉,
비정규직당” 노선은 노동계급 정당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비정규직당” 노선은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 용어로 봐야 합니다.

독자파의 주요 인물들이 민주노동당 분당 전 정규직 노동운동의 정치·경제적 양보로 노동계급 복지를 늘리자는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장석준은 최근 이른바 ‘비정규직당 노선’을 196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좌파와 연관시키는 데, 당시 신좌파는 반스탈린주의나 환경 등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대변했으나 엘리트주의, 총체적 사회 분석의 결여, 종파주의 등으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구 좌파와 비교해 가장 중요한 특징은 노동계급 기반과 유리되면서 총체적 사회변혁 전략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1968년 이후 세계적 반란 사태(흔히 68혁명이라 부르는)에서 주요한 구실을 할 수 없었습니다. 체제를 뒤흔든 건 그들이 일차원적 인간이 됐다고 무시한 노동계급의 집단적 저항이었습니다.

결국, 친노동 이미지는 유지하되 조직 노동자 운동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 “비정규직당” 노선의 실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미 실패한 그 기획 말입니다[각주:5].



5. 장석준은 비정규직당 노선의 성공가능성을 386 유권자들의 가치 투표에서 찾습니다. 독자파도 마찬가지로 선거공학에 의존한다는 한 방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저는 20대와 여성으로 상징하는 미조직 청년 집단이 매우 불균등하고 유동적인 집단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진술이라 봅니다. 즉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 집단이 왜 자신들의 집단 투표가 아니라 386의 가치 투표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요.

이들이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에 친화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에 20대 청년층이 포섭돼 희망이 없다는 비관주의가 근거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 좌파가 마르크스의 말을 좇아 노동계급에 기초해 계급 정치를 주장할 때, 그것은 단지 교조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급’이라는 관계가 불가피하게 강요하는 것들, 즉 지배적 자본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작업장을 기초로 조직하게 되며 진보적 사회변화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들을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계급 정치를 고수하는 것은 이들 말로 어느 정도 이념의 경직성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직성을 피하려 계급 의제를 버린다면  그것은 첫째 주관적 소망 때문에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며, 둘째, 안정적 진지가 없는 전략은 불안정하고 득표에 의존하는 선거정치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정적으로 기업과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그들의 노동은 이들에게 사회를 멈출 수 있고 사회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에서 문제 해결 세력은 조직 노동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사화 변혁의 핵심 주체 세력입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조차 열쇠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연대에 있습니다. 장석준 등이 동희오토 투쟁을 강조하는데, 그 투쟁의 열쇠는 기아차(+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연대 투쟁에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서는 매우 중요한 항구적 진지입니다[각주:6].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포기하는 반동을 선택하지 않는 한 노동조합을 와해시킬 순 없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혁명이냐 반동이냐 하는 선택의 상황이겠죠. 이때야말로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이 결정적일 겁니다.

노동계급을 분할해 한쪽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이들을 분열시키고 내부 불신을 조장하는 것으로 우리 편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20대 불안정 노동층 또는 진보·개혁 성향의 청년 대중을 조직하는 것이 꼭 조직 노동자운동과 거리두기에 바탕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힘을 고무해 이 힘을 발휘하는 투쟁을 통해 청년들의 급진화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힘들어 보여도)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입니다. 이런 세력의 동원을 거부하는 건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을 만들겠다는 창당 목표와도 모순됩니다.

한편, 정규직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자들에 포섭됐다고 하는 건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거품(부채) 호황에 정규직 노동자 개인들 일부가 관심을 보이고 하는 건 포섭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소득이 자산 거품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벌어진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주요 기간산업과 공공부문에 조직 노동운동이야말로 한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위협적 존재입니다. 한국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에 한편에서 양보하면서도 한편에서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이들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국가운영과 경제(기업의 이윤활동)를 뒤흔들고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입니다.

조돈문 교수는 2년 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 민주노총 조합원 즉, 조직 노동자층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상시적으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와 대결하는 조직된 집단이 바로 이들입니다[각주:7].

덧붙여, 신자유주의 노선이 2008년 위기 이후 그 신용을 잃고 각국 지배자들이 혼합 정책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 거라는 점도 지적 대상입니다.

결국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며 유동적인 청년층에 기댄다는 것은 촛불항쟁 때와 같은 성장을 다시 한번 꿈꿔 보겠다는 것인데, 짧았던 황금시절의 추억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6. 정치 지형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당선 후 정치지형이 매우 우경화된 듯 보였고, 이런 보수화 흐름에 호응하지 않으면 2007 대선 72만 표에서 보듯 진보정당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진보신당의 창당 기획은 기존 진보정당보다 우경화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는 미조직 청년층을 선거적 관점에서 조직하려는 플랜이었습니다. 이 선거주의적 우경화가 진보신당을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당으로 만든 것이죠. 

이 기성정당 닮아가기가 진보신당 주도세력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새겨진 이미지, 즉 친북(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정통성)[각주:8]과 계급(자본주의와 적대)을 새 진보정당에서 지워버리려 한 까닭입니다.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들의 비판 방식과 내용은 좌파적이지 않고 우파적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진보신당이 촛불항쟁에서 성장한 것은 당시 정치 상황의 모순[각주:9](행동 수준과 이데올로기준의 격차)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프로젝트는 행동의 급진화가 아니라 사회의 보수화(우경화)를 예측하고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촛불항쟁이 사그라들고, 대신 이명박의 거듭된 실정 때문에 온건개혁주의가 성장하면서 민주당의 주요 주자들마저 진보와 복지국가를 읊조리며, 친노 세력이 부활해 국민참여당을 창당해 진보세력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마저 최근 우경화했습니다. 큰 바다 같던 오른쪽 공백은 더 큰 세력들이 채우고, 왼쪽 특히 조직 노동자 기반은 스스로 거리두기를 해 온 탓에 진보신당의 입지는 매우 협소해 졌습니다.

그럼에도 조직 노동운동이 그 위력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이른바 신좌파적 상상력은 성마른 미조직 청년층과 지친 노동운동 출신 활동가들에게 기대감을 일시적으로 줄 순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7. 이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의 창당기획이던 비정규직당 노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무정형의 청년세대 조직화에 성공도 해 봤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융화시키지 못해 곤란도 겪었잖습니까.

종북주의 비판도 대중적으로는 먹히질 않아 분당의 이유 즉, 존재의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국회의원을 둘이나 데리고 나왔는데도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의 양보를 얻고서야 의원 한 명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요즘 약해지면서 노동계급정당이라는 사상이 당장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공학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엄밀한 현실 분석과 전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08년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는 근본적 시야와 근본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즉 이 사회의 다수는 노동계급[각주:10]입니다.이명박 정부는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진보적 정치 대안의 부재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변혁의 전망,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는 노동계급 정치를 강화
(단결과 투쟁력, 정치의식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대자본가들의 권력을 위협하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하겠다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고, 사실상 차기 대표인 조승수 의원이 말한대로 재벌과 싸우려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진작 이랬어야죠. 사실 재벌과 싸우는 당이라는 기치는 창당 기획보다 진일보한 유일한 것으로 그나마 고무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결과를 내려면 계급 정치가 가장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것은 또 피하려 한다는 거죠.
진보신당 스스로 강령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말하고 있다면 당내 좌파는 이 문제에서 더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통분담론에 분칠을 한 건강보험하나로 같은 양보론이 아니라 강력한 시장 통제와 소득 재분배(강력한 누진세와 기본소득 등 도입), 부실기업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 등을 내놔야 합니다.

덧붙이면, 좌파의 대안 강령과 정책은 이런 운동을 고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근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보대연합도 노동계급을 진보적으로 단결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돼야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할 정치단체가 필수적이겠죠.

이것이 되려면 좌파는 ‘계급’과 ‘사회주의’라는 의제를 복원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불충분한 태도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는 것은 의회 활동과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분리하고 노동운동과 거리 두기 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10.2 최종 수정)
  1. 당분간은 이번 선거 출마에서 보듯 통합파가 양보해 분열을 막으려 할텐데, 대통합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 당의 분열을 선택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울 수 있는데다가, 각 정당의 통합시 통합파의 리더가 발휘할 영향력과 챙길 수 있는 지분은 진보신당의 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물론 표결 자체는 과반수에 3표를 넘겼습니다만, 원안을 지지한 사람들이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의 대주주라는 점을 고려해야죠. [본문으로]
  3. 사회당과는 통합을 하자는 독자파도 있죠. 또, 독자파들도 방법론은 분분하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4. 그들이 비록 대부분 PD좌파 출신이긴 하지만 말이다. [본문으로]
  5. 종파주의도 반영된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민주노총에서 소수파인 까닭에 정규직=민주노총=민주노동당 식의 개념짓기로 비정규직에 집착하는 면도 있다. [본문으로]
  6. 최근 유럽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맞서는 투쟁의 선두에는 노동계급이 있다. 엊그제 스페인의 1천만 명 총파업이나 프랑스, 그리스의 투쟁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투쟁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의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가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G20 항의시위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대규모로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본문으로]
  7. 어쩌니 저쩌니 해도 비정규직 문제로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하는 유일한 사회세력은 다름아닌 민주노총 조합원들입니다. [본문으로]
  8. 자주파는 원래 북한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므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이 문제에서 많이 변한 듯하다. 원인은 따로 살펴보겠다. 문제는 이 점이 자주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1980년대 민중운동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관계 없이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기구를 물려받고 미국 제국주의와 결탁해 건설돼 군사독재로 유지돼 온 대한민국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남한에서 친북노선 비판이 자칫하면 남한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은 게 이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 양 체제에 모두 급진적 비판을 가해야 한다. [본문으로]
  9. 촛불항쟁은 정권 퇴진을 외치고 수도 한복판에서 1백만 명이 참가하는 등 매우 급진적인 대규모 투쟁이었으나 이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온건개혁주의 수준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이명박의 반동 때문에 사람들이 급진화한 데서 오는 효과도 있었다. [본문으로]
  10. 경제 활동 인구의 3분의 2가 임금노동자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위탁 급식회사의 경영자인 순재와 보석, 이들과 결탁(?)한 교감 자옥, 그리고 이들의 가족인 평교사 현경. 이들은 무상급식에 어떤 의견일까요. 갈비를 나눠 먹기 싫어하는 해리가 무상급식을 좋아할까요. 집없는 신애와 세경에게 전교생 무상급식과 선별 무상급식 어떤 게 좋을까요.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입니다. 한나라당과 우익들은 ‘사회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그 반대편에선 사상 최대의 연대 기구라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약칭, 친환경무상급식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상급식 도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처럼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의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찬성이 79퍼센트(78.93)나 되네요. 응답자의 절반은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한다고 답했습니다. 엊그제 출범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에 2천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도 찬성한다죠. 저들의 우려대로 무상급식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요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충돌로 시작한 무상급식 논쟁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겁니다. 진보 공직자가 해야 할 좋은모범을 보인 거죠. 올 지방선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런 복지 의제가 주도할 듯합니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개별 가정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은 사상 최대인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은 부자에게 웬 무상급식이냐고도 합니다. 그렇겠죠. 부자에게 단체급식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식단을 못 준다는 뜻이니까요. 저들은 무상급식을 위해 돈도 내기 싫고, 밥상도 섞기 싫은 겁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 어쩌구,‘생명 존중 낙태 금지’ 저쩌구 하던 자들이 아이들 밥값 부담 좀 덜어주는 일에 핏대 세우며 반대하는 꼴이 우습네요. 저출산이계속되면 급식 예산 같은 건 금방 줄어들텐데, 뭐하러 애 낳으라고 선동하는지, 참.

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낳은 정치적효과를 우려합니다. 누구나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보편적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증세(와 부자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혜택이 보편적이므로 재원 부담도 국가와 사회의의무가 되니까요. 그들은 무상급식 만큼이나 무상급식 도입 후가 두려울 겁니다.

저들이 말하는 선별 급식(잔여주의 복지)은 기본소득 관련글에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시혜 대상이라는 게 떳떳하게 내세울 꺼리가 못 됩니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가난을 유지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설픈 소득 향상이 혜택을 앗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들은 경기도선관위를 앞세워 무상급식 지지 서명이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탄압에 나서는 한편, 한나라당 이름으로 선별 급식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선별 복지(잔여주의 복지)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 정책입니다.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되, 나머지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겁니다. 자본가들은 당연한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하나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거지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각주:1] 

덧붙여, 기업의 구실을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는 무상급식은 당연히 직영급식이 돼야 합니다. 지금 다수 학교가 위탁 급식입니다. 급식 회사와 계약해서 외부 민간 기업이 급식을 공급하는 거죠. 이 급식 기업들이 LG나 CJ 같은 대기업들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대기업의 노다지 시장을 위협하는 주장입니다.

위탁 급식은 기업 수익성을 위한 조치라는 점 말고도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찰 계약제는 저가 입찰을 유도하므로 급식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 급식업체에서 해당 학교에 보낸 직원들은 일단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기업이 돈을 버는 동안, 파견노동의 불안정성, 급식의 질이 모두 사실은 악화됩니다.

이런 식의 신자유주의(복지)야말로 지난 30년간 경제를 망치고 인구의 다수를 고통과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거품 호황이 사실은 개인들의 소비 부채에 의존해서 유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득은 역재분배됐는데, 복지는 비효율적 투자라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과 복지 예산이 조 단위로 삭감됐습니다.   


반면, 무상급식 찬성파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7일에 이정희·조승수 등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의무교육 대상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발의를 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부자 급식’어쩌구 하는 자들에게 급식은 교육 과정의 하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전국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드는 예산 추정치는 1년에1조 7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국회 예산처) 이명박이 4대강이나 국정 홍보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예산은 진짜 별 거아닙니다. 오세훈의 서울시 예산을 보면, 시정 홍보 예산이 급식 예산의 거의 열 배더군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는 지금 서울시 예산이면,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쉬운 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라는 것이겠죠. 고교생 때야말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플 땐데....
보편적 의무 (공)교육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무상급식도 노동계급의 문제기도 합니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 노동자는 좀더 삶의 여유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 의식을 교육받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훨씬 더 사회적 자신감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직영급식을 하게 되면, 급식 관련 직무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똑같은 비용이라도 직영이면, 위탁업체에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줄고 식자재 구입을 더 책임있게 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급식으로 노동계급 자녀들 영양 상태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정치인들도 매우 열심히 여기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무상급식 실현하겠다는데 과거를 들춰서 미안하지만, 집권당 시절에 민주노동당이창당 때부터 요구해왔는데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오히려 친환경 급식을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죠.

그런데, 지금은 김진표마저 “무상급식은 전국적 의제”라며 무상급식 찬성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시절에 무상급식에 반대했죠. 이는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당이 올해 다시 내놓은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사융사유 제한을 두자는둥 진보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5+4협상 국면에서 “가치연대를 추구하자”는 진보신당의 목소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이런 상황도 조금 작용했다고봅니다. “무상급식” 의제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이 먼저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지금 더 큰 세력이 자신의 의제로 삼으니까 역시 묻히네요.[각주:2]

민주당안의 무상급식 찬성파 중 천정배·이종걸 등과 유시민 등은 자신들의 특정한 복지 전략(논리)에 바탕한 듯합니다. [각주:3]

참여정부는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일 때, “사회투자 국가(정책)론”을 국가복지노선으로 채택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이 레임덕으로 들어간데다(한나라당이 조금의 복지 확대도 반대했죠) 주무장관인 유시민이 국민연금 삭감에만 열을 올려서 동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사회투자(국가)론" 영국의 신노동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제시한 복지정책 묶음입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비생산적 지출이 아니라 성장과 연계된 투자라고 말합니다. 복지를 투자로 보는 개념은 “결과의 평등”(고전적 복지국가) 대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출발선을 맞춰줘야 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아동·교육 복지를 매우 강조합니다.[각주:4] 영국의 블레어 정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늘어난 복지 부문이 아동급여 액수와 아동보육 예산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고용 분야에선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예산을 주로 쓰죠.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니까요. 

15일에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서천정배가 발표한 교육 분야 발표문의 제목은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최선’의 투자이다” 였습니다. 17일 학교급식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문은 민주당 쪽에서 작성한 듯 보이는데, "무상급식의 전면실현을 이뤄내는 과정은 건설토건사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대체하는 ‘사람중심의 역동적 성장전략’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장주의의 상식에 나름 부합합니다. 현실에서 제3의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복지의 조화를 이룰 거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말은 틀렸습니다. 도리어 경제 성과와 관계 없이권리로 제공돼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이런 복지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동 복지를 늘린 대신, '투자 효율성' 없는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희생됐습니다.

한편, 교육 투자가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라면, 교육은 경제의 하위 개념이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5]. 복지의 관점에선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겠지만, 이런 인적 자원 '투자'의 관점에선 학생들이 권리와 (수혜의 대가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수월성 교육과 돈 되는 학문의중시, 규율의 강조가 뒤따릅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무상급식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보편적 복지제도는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복지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줘야 할 의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되겠죠.

그래서 이런 전략에선 무상급식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를 디딤돌 삼아 국가부담 증가를 위한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다른 복지제도를 늘리라는 요구로 일관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아동·교육 복지에 특화된 사회투자국가론보다는 '확장성'이 크다고 할까요.

어떤 취지에서 도입되든 저는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무상급식 찬성파의 세력이 커진 것도 환영합니다. 비록 하이킥의 순재 가족들은 좀 힘들어 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개혁 요구라도 사람들이 뭉쳐서 행동하며 쟁취하려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지지자가 많아져야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요구로 뭉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선 요구 실현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대차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주들과 조중동,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무상급식 같은 초보적 개혁조차 극렬 반대하는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려면. 지난해 등록금 인하 논쟁시 이종걸의 협상이 보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각주:6].
저들이 버티는 건 현실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그 권력을 약화시키는 투쟁 없이는 협상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세력관계에 변동이 생겨야 저들이 버틸 힘이 줄어듭니다. 지금 출발은 좋습니다.

개혁 요구를 함께 내놓아도 이를 실현할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는 건 '지향점으로서 대안'(=이념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이 정책 대안 뿐만 아니라 이념적(거대담론) 대안 제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1. '무상급식'이 아니라 '책임급식' 등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적을 거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마케팅 차원인지, 프레임론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을 헷갈린 거라고 봅니다. 단어를 바꿔 홍보했다고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부자들과 이 정부는 단어가 아니라 내용에 반대하는 겁니다. '책임급식' 표현도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복지가 '권리'라는 생각을 더 늘리려면 이런 인기 있는 쟁점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처음부터 너무 온건한 의제를 잡은 게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복지가 완전 꽝이고 기득권 보수파가 꼴통들인 한국의 객관적 현실 탓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3. 정동영은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가 앞으로 자기가 내세울 정책브랜드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종걸·심상정이 유시민을 두고 '무상급식 반대'라고 비판했던데, 요건 좀 실수라고 봅니다. 유시민은 예산 조정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니 단계별로 실시하자고 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국정 운영 경험을 과시하려 단계별 실시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4. 민주당 이종걸이 대학 등록금 문제에 열의를 보인 것도 이와 연관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으로]
  5. 애초에 이런 의도가 사회투자국가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제 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고전적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에게 일부 복지 분야(아동과 교육처럼 어차피 자본에게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투자 유인이 있는 분야)를 자본의 재생산에 도움이 되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분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자본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려 한 '제3의 길'은 진보와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