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사태를 대하는 반제국주의 좌파의 임무.
할 말을 하라!
“파리 테러는 비극적 사건이고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을 일이지만, 그 사건 자체는 제국주의의 중동 간섭과 지배가 낳은 유산이다.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국가 공동체가 모두 단결하자’는 잘못된 프레임이다. 이는 오늘날 인종차별주의의 주류적 버전인 이슬람혐오증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런 이슬람 악마화는 제국주의자들과 극우익 세력들을 도울 뿐이다. 오늘날 광신적 이슬람 근본주의는 제국주의가 중동에 뿌린 야만과 증오(종파간 분열을 포함한)의 열매를 먹고 자란다.”
고향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들에게 후원받는 독재자들에게 유린되고, 이민 온 유럽에서는 2등 시민, 3등 시민으로 천대 받는 사람들의 종교를 비꼬고 모욕하는 것이 (풍자의 형식 때문에) 그 내용까지 옹호 받을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무슬림 망신주기는 소신 있는 풍자가 아니라 체제의 인종차별과 편견에 편승하는 것일 뿐이다. 우익적 광기에 눈 감는 일이다. 그래서 약자를 비꼬는 건 풍자도 아니다. 일베의 ‘홍어 택배’ 운운이나 구제불능의 여성 비하가 풍자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 받을 일도 아니고 단지 유해한 공해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게다가 프랑스야말로 아랍 출신 이주자들에게 식민 본국 아닌가. 아무리 테러가 규탄 받을 일이라 해도, 식민 본국 출신의 성공한 백인 엘리트들이 이민자들의 종교를 비꼬는 것이 칭찬 받을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강압적 조처 문제도 아닌데,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집단들의 극히 일부가 모욕적 행위자들에게 폭력으로 반응했다고 해서, 그것이 규탄 받아 마땅한 행동이라 해서, 이를 곧바로 ‘표현의 자유 수호’로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를 함께 비웃었다고 해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어디에도 기독교 신도라고 천대 받고 린치 당하며 열등인 취급 받는 나라는 없다. 히잡 금지는 있어도 십자가 금지는 없다.
흑인 차별을 예로 들어 보자.(오늘날 피부색 차별을 공식으로 옹호하는 집단은 거의 없으니까) 아파테이트가 종식되기 전, 남아공에서 흑인 전통 문화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하기가 주류 언론들에 실렸다면 어땠을까. (오늘날 미국에서 무슬림의 상당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는 피지배 민중에게 필요한 것이지, 국가가 체계적으로 조장하는 인종차별에 편승해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의 악덕을 가려주기 위한 은폐막이 돼서는 안 된다. 사실 앞으로도 서방 강대국 안에서 광신적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위협을 두려워해 인종차별적 표현들에게 허용된 자유가 위축되는 일이 있을 것 같진 않다.
표현의 자유는 제약없이 자유로운 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른 내용을 뜻한다. 사장들이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고 말할 자유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릴 (또는 올리라는 주장으로 지지를 얻을) 자유와 충돌한다.
사실 이번 테러 공격으로 ISIS나 알카에다 등이 목표한 바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역설로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동, 즉 무슬림 혐오를 오히려 부추겨 무슬림 청년 대중이 더욱 테러리즘 전략에 가까이 오도록 하는 것 말이다.
지금 이런 광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일거에 늘린 것은, 대중 행동을 통한 중동의 해방이 요원하다는 절망과 시리아 혁명 등을 종파간 다툼으로 파탄내려 한 역내 독재자들(예를 들어, 시리아 아사드)의 술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원인들을 더 거슬러 가면,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 강탈, 억압, 간섭 등이 더 근본적 원인으로 등장한다.
그 점에서 이런 테러 행위, 또는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의 문제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내재한 파시즘성 때문이라고 보는 따위의 주장들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초역사적·초사회적, 즉 극히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무슬림 독재자들? 이슬람 파시즘? 무슬림 독재자와 무슬림 민중이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 문제에서 종교가 분단선인가? 계급이 분단선인가?
막간의 혁명을 사이에 두고 서구화 추구 독재와 이슬람신정주의 추구 독재가 이어진 이란에서 종교가 독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정권은 히잡을 강제로 벗게 했고, 한 정권은 강제로 쓰게 했다.(터키의 케말 파샤 세력도 히잡을 강제로 금지시켰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었던가?)
많은 경우, 종교는 사회적 비극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에 가깝다. 중동에서 세속 좌파의 실패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가장 세속적이라는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선거로 집권한 2006년의 일은 PLO와 파타의 정치적 부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이처럼 종교를 사회적 계급관계의 반영물로 보고 종교 그 자체보다 종교를 낳는 사회적 맥락을 더 중시해 다루는 것이 칼 마르크스 이래로 종교를 대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태도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종교에 대한 태도는 각 집단의 계급적 처지, 상황, 전통 등에 따라 매우 다르다. 신정주의, 민주적 세속주의, 서구화 세속주의 등. 히잡을 쓴 중동의 여성 사회운동가들이 정치적 이슬람과 세속주의로 날카롭게 구분되는 일 등. 따라서 필요한 것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상황을 분별있게 보라는 것이다.
코르테스와 피사로의 중남미(잉카와 아스텍) 학살과 점령, 미국 KKK단의 인종차별 만행, 부시의 이라크 전쟁, 그리고 한국의 반공기독교 카르텔 따위를 두고 기독교 자체가 악마의 종교라고 하지 않는 바로 그 태도가 이슬람, 그리고 중동 출신의 피억압 민중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맥락에서 보는 진정한 배경은, 제국주의의 중동 억압과 독재자 후원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며,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서구에서 벌이는 이슬람혐오증(편견)이다. 그들은 이슬람 혐오증으로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적 간섭의 명분을 얻고 국내적으로는 피억압 민중을 분열시키길 바란다.
따라서, 테러 대상이 언론사였다는 점이 문제의 근원적 맥락, 즉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의 문제를 기각하지는 못한다. 그리고는 언론의 자유 문제로 몰고가는 것은 (그것이 표현의 자유의 기준과 목적, 한계에 대한 성찰을 촉발시키긴 했지만) 이 사건을 종합해서 다룰 적절한 프레임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칫 지배자들의 이런 시도에 좌파들이 독립적으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돕는 것이고 극우와 파시스트들을 고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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