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시작해 은행권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로 번진 은행권 채용 비리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은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에서 임직원 38명(12명 구속, 추가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성차별 채용으로 은행 자체를 기소)을 기소했다. 이중 은행장이 4명이다. 검찰은 신한금융그룹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발표한 채용 비리의 다수는 이미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난 것들이었다.
은행 내부 고위 임원 자녀 부당 합격, 은행과 거래 관계에 있거나 은행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층 자녀의 청탁 합격, 성별·학력 차별 채용 등 총 695건이 기소됐다.
은행들은 청탁 대상자 명부를 작성해 채용 과정에 활용했다. 이런 관행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국민은행에서는 채용팀장이 부행장 자녀와 이름·생년월일이 같은 지원자를 알아서 점수 조작으로 통과시켰다가 다른 인물임을 알고 최종 탈락시킨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특히 성 차별 채용은 학력 차별과 마찬가지로 커트라인을 넘은 지원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이라 죄질이 더 나쁘다.
KEB하나은행은 아예 처음부터 내부적으로 남녀 선발 비율을 4:1로 정해 놨다. 그러나 지원자에서 남성 비율이 50~60퍼센트 정도였으니, 여성 지원자들은 남성 지원자보다 적게 잡아도 두 배 이상 높은 경쟁률에 더 높은 커트라인이라는 피해를 본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아예 남녀의 합격을 대놓고 뒤바꿔 버렸다. 515명 합격자 중에서 남성은 113명이 추가 합격했고, 대신 여성 지원자 중 합격한 112명이 불합격으로 돼 버렸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채용 비리가 수년 간 저질러졌는데도 실권을 가진 최고 경영자들을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차별 채용 건은 은행 자체가 기소된 건인데 말이다. 조직적인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대규모 채용 비리가 일어났는데 시킨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기소된 695건 중 하나은행이 239건, 국민은행이 368건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적발된 채용 비리 과정 내내 최고 경영자였던 김정태, 윤종규 두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휴 규탄 성명을 내고 18일 오전에는 본점 앞에서 퇴진 요구 집회도 했다.
“당시 은행장으로서 채용비리의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윤종규 회장이 구속은커녕 기소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 채용 비리 사건의 발단은 금융감독원이 특정한 3건의 채용 비리 의혹, 그중에서도 서류전형 813등, 1차 면접 273등에서 최종면접 4등으로 합격한 윤종규 회장의 종손녀와 ... [또 다른 특혜를 받은] 전(前) 사외이사의 자녀였다.
“[윤종규 회장이] 구속자에 김앤장 변호사를 붙여 주고, 임원들과 부서장들이 100만 원씩, 30만 원씩 갹출을 해 도와 주려다 감독기관에 들켜 다시 돌려 주고, 구속자와 별도로 채용 비리 사건 대응을 위해 김앤장에 수십 억 원의 자문료를 주고 얻고자 한 결과[가 윤종규만 빠져나가는 것인가?]”
윤종규는 조합원의 파업 참가 방해와 노조 선거 개입 등을 자행하고 성과연봉제와 성과추진본부 도입 등 노동자 구조조정에 앞장선 악덕 경영자이기도 하다.
국민은행 다음으로 채용 비리 건수가 많은 하나은행의 회장 김정태도 윤종규와 마찬가지로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을 자행해 왔다.
“남녀 성비를 미리 결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해가며 성차별 채용을 했는데도 은행장과 지주회장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실제 업무를 수행한 실무자들만을 향했을 뿐 최종 책임자인 CEO들에게는 눈을 감았다. 특히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적폐 청산을 자임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매번 줄타기를 해 왔다. 이번에도 채용비리는 수사해 수십 명을 기소했지만, 해외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두 최고 경영자는 기소하지 않았다.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은 대규모 투자와 신규 채용 등으로 여론의 화살을 돌리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를 못살게 굴고, 청년들의 취업 꿈에 찬물을 끼얹은 은행권 적폐는 단죄를 받아야 한다.
금융노조와 해당 은행 지부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문제의 경영자들을 쫓아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6월 15일 금융노조는 산별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행위 수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사용자들이 노조 요구안을 모조리 거부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부도덕한 경영진 퇴진 요구가 임단협 투쟁과 결합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각종 비리에 연루된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정태와 행장 함영주가 물러나야 한다는 노조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 금융노조 하나KEB은행지부, 사무금융노조 하나외환카드지부 등 하나금융지주 산하 금융기업 노조들로 구성.☞관련 기사 참조)는 금융노조, 사무금융노조, 금융정의연대 등과 3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태 사퇴와 함영주 사퇴·구속수사를 촉구했다.
공투본은 최순실 비자금 조성에 협조하고, 특권형 채용 비리를 일으킨 현 김정태 체제를 “금융 적폐”로 규정하고 물러날 것을 요구해 왔다.
“KEB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전수 조사에서 시중은행 가운데 채용 비리가 가장 많은 곳 … 두 차례나 압수수색 … 직원들은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참담 … 국민들과 청년들, 그리고 하나금융의 직원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공투본은 금감원의 조사로 채용 비리가 드러났지만, 지주사와 은행측이 최근 1년치 말고는 “채용 관련 자료가 모두 삭제되어 복구가 불가능하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해 채용 비리 현황을 축소·은폐한 의혹도 제기했다.
그런데 3월 12일에 금융감독원 원장 최홍식이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시 “대학 친구 아들”의 하나은행 채용을 청탁한 의혹 때문이었다.
공투본은 “최 원장 채용비리 관련 의혹의 출처는 하나금융지주나 KEB하나은행 경영진”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금감원장의 잘못과 별개로] 현 경영진의 비리를 캔 금감원장에 대한 보복성 폭로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에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하나은행을 비롯한 은행권 채용 비리를 적발해 검찰에 넘겼다.
“자료 폐기는 과거 채용비리를 숨기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 … 은행의 주장대로 관련 서류가 폐기되어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최 원장의 2013년 채용 청탁 의혹을 알 수 있었을까 … 김정태 회장은 최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재직하였던 2013년 당시에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지위에 있었으며, 채용 관련 서류는 인사부서의 고위 임원이 아니라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월 초, 금융감독원이 KEB하나은행에 대한 채용 비리를 본격적으로 조사하였던 시기에 KEB하나은행 고위 임원이 ‘금감원이 채용비리 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최흥식 원장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면서 ‘옷을 벗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공투본은 김정태 회장 본인의 직계 가족 특혜 채용 의혹 사실도 공개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정태 회장의 직계가족인 남동생이 2006년 두레시닝 부산사업소에 입사하여 정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여동생의 딸은 2004년 KEB하나은행에 계약직으로 입사하여 2005년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현재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투본은 16일에도 추가 설명 자료(은행측 해명에 대한 반박)을 내며 이 의혹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김정태 회장 조카를 채용한] 2004년 당시 [김정태는 실세 부행장이었으며] … 면접 진행자들은 김정태 회장 영남사업본부 대표 시절 함께 근무한 사람들 … [영남 지역 채용 인사권을 가진] 당시의 영업추진부장은 추후 김정태 은행장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두레시닝은 하나은행의 각종 인쇄물, 판촉물, 물류배송등을 담당하는 KEB하나은행 행우회 투자회사로 은행임원들이 퇴직후 주로 두레시닝 임원이 됨. [두레시닝 주식 지분의 95.1퍼센트를 가진 하나은행 행우회는] 하나은행 재직 임직원 상호간의 친목과 공제 및 복지증진을 도모함이 목적인 비법인사단 … 채용당시 김정태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공투본은 “대학 친구 아들”의 채용 청탁 의혹만으로도 금감원장이 사퇴하는 마당에 회사 차원의 채용 비리에 더해 직계 가족의 채용 비리 의혹마저 터진 김정태 회장이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 2013년 채용 자료 등 ‘VIP 리스트’ 관련 증거를 인멸한 KEB하나은행 함영주 행장을 당장 구속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나공투본은 이처럼 금융 공공성과 금융 민주화에 역행하는 금융 적폐 김정태 체제를 청산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이에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도 비판했다.
“청와대는 민간기업 인사불개입 원칙을 들며 하나금융지주 사태의 조기 수습을 오히려 방해해 왔다. 어떻게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되었고, 국민의 재산으로 영업을 하는 은행을 민간회사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끌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금융 공투본은 3월 23일 하나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김정태 회장이 연임되는 걸 막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