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2018 폐막
폭염보다 더 뜨거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들의 토론 열기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 속에 77개의 워크숍이 열린 맑시즘2018이 나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매년 개최되는 맑시즘은 올해에는 7월 19일(목)부터 22일(일)까지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가 “성폭력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연한 폐막 토론에는 250여 명이 참가했다. 청중 토론에서 발언들이 쉴 틈 없이 이어져 나흘간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를 짐작케 했다.
올해 맑시즘 등록자는 지난해보다 많았다. 낮 기온이 35도 이상 이틀 연속 이어질 때 발령되는 폭염경보를 뚫고서 수백 명이 마르크스주의와 운동의 전략·전술을 다루는 토론에 참가한 것이다. 주제가 77개나 되다 보니, 올해도 분강이 많아 참가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주최 단체인 노동자연대는 8월 공개 토론회, 대학 마르크스주의 포럼, 세미나 모임 ‘마르크스주의 ABC’ 등을 맑시즘2018의 후속 행사로 토론을 이어 갈 기획을 마련했다.
올해 맑시즘은 대학생과 조직 노동자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이론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골고루 관심을 끌었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의 쟁점을 다룬 토론·강연들에 대한 관심이 좀더 두드러졌다. 난민, 심리학 등 여느 좌파 토론회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주제들도 관심을 끌었다. 촛불의 여파가 다양한 운동이 성장할 자양분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총 211개 단체가 후원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의 후원이 늘었다. 민주노총, 현대중공업지부, 철도노조, 공무원노조 등 174곳에 이른다. 노조의 지회, 분회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다.
적극성
올해도 20대 청년·대학생들의 참가가 가장 많았다. 마르크스주의 기초 이론에서부터 한국·세계 노동계급·민중 저항의 역사까지 다양한 주제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경청하고 질문하는 대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승리한 경험을 해, 사회운동 참여에 우호적인 이 새 세대 참가자들은 노동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주제에도 관심을 보였고 또 적극적이었다. 맑시즘 기간 중에 열린 대학생 교류 행사들에도 대학생 50여 명이 참석해 소속 학교에 구애받지 않고 허물없이 토론하고 교류했다.
올해 맑시즘에는 노동자 운동의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와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 등 같은 일반적 주제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등 여러 부문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 경험과 방향 모색 등의 고민을 교류하는 주제까지 다양했는데, 거의 모두 인기 강연이었다.
경영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 농성 중인 현대중공업 조합원 활동가의 워크숍도 생생하고 고무적이었다. 주최측은 현대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에게 보낼 지지 메시지를 적어달라고 행사 중간에 급히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는데, 200명 이상이 메시지를 작성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조직 노동자 참가가 예년보다 대거 늘어 200명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과 노동운동 역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해당 주제에서 선배 노동자들이 말한 경험담도 꽤 유익했을 것이다.
조직 노동자의 관심이 꽤 높으리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맑시즘2018 후원 현황에서도 미리 볼 수 있었다. 노동조합들의 후원 중에 지회와 분회의 후원이 많았는데, 직접적인 연대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맑시즘이 노동자 연대의 장이자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같다. 가령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의 연대 메시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2017년 [맑시즘]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문제점과 예상되는 향후 상황들에 대해서 듣고 배웠습니다. 그때 그 문제들과 예견된 상황들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서 … 80일간의 서울역 농성으로 화답해야 했고, 이젠 더 강고한 투쟁을 준비해야 할 입장이어서 맑시즘 2018[이]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의 강연도 모두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였다. 197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로라 마일스는 영국 대학노조(UCU) 트렌스젠더로서는 최초의 전국집행위원이고, 대학노조 내 좌파모임의 사무국장도 지냈다. 이 경력이 웅변하듯이, 마일스는 성소수자 차별부터 교육, 심리학, 노동조합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며 귀한 경험들을 들려 줬다.
한편, 맑시즘 개최 장소인 고려대학교의 총학생회, 문과대학생회, 정경대학생회, 자유전공학부학생회, 미디어학부학생회 등 학생단체들과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이하 서경지부 고대분회) 등 13곳이 후원해 행사가 안정적이고 쾌적하게 진행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단체들은 정성이 담긴 연대 메시지도 보내 줘서 참가자들을 환영했는데, 특히 연초에 투쟁을 벌여 승리한 서경지부 고대분회가 보낸 정성 어린 메시지는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맑시즘의 인기 장소인 맑시즘 책방에서는 올해에도 마르크스주의 서적이 600여 권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서 25년 이상 마르크스주의 해설서로 스테디셀러였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가 전면 개역판으로 새로 나와 주목받았고,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도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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