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개원 합의는 19대 국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 주는 듯하다.
유혈 낭자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일원이던 강창희를 국회의장으로 ‘모시기’로 합의한 자들이 진보정당 의원들의 ‘국가관’을 심사하고 제명하자는 것이다.
선거 부정 때문에 자격 심사를 한다는 핑계는 위선일 뿐이다. 이번 총선 당선자 중 82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됐는데, 압도 다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입건도 되지 않은 이석기ㆍ김재연 의원만 ‘부정한 자격 취득’이라는 것은 역겨울 뿐이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돈을 주고 당원명부를 입수해 당선한 의원이 다섯 명이나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이런 자들에겐 의원직 박탈의 ‘박’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이런 양 당이 나머지 합의 사항 ― 이명박 불법 사찰과 내곡동 사저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에 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실시 등 ― 을 진지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18대 국회가 ‘이명박 거수기 국회’가 된 것처럼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초반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국회’로 만들려 할 것이다.
물론 박근혜는 대선을 의식해 한편에서 점잔을 빼며 ‘복지와 경제 민주화 코스프레’는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말과 달리 박근혜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우파 신자유주의자이자 재벌 찬양론자인 이한구를 밀었다. 대선 캠프엔, 삼성 임원 출신으로 전경련 부회장을 지내며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는 헌법 제119조 2항 삭제를 주장했던 현명관을 영입했다.
또 19대 국회 첫 입법안이라며 내놓은 법안들 중 사내하도급법은 ‘불법 사내하청 합법화 법’, ‘불법 사찰 금지법’은 ‘사찰 합법화법’이라 불릴 정도로 기만적인 엉터리 법이다. 새누리당 몫이 된 국회 문방위원장에는 민주당 최고위원회를 도청한 한선교가 내정됐다.
게다가 세계경제 위기가 다시 고조되면서 먹구름이 짙어지는 상황이다.
이명박도 7월 2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미증유의 혼란에 수반되는 위기[에서] … 재정은 국가 경제의 최후 보루 … 당장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우리 후손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 … 정부와 국회는 … 국익을 위해 대승적인 관점에서 더욱 협력해나가야 한다”며 경제 위기 앞에서 국가기구가 단합할 것과 ‘재정 긴축’ 기조에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넘치는 기층의 분위기와 괴리된 19대 국회도 폴리스라인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양극화와 정치적 유동성도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이명박 정부가 허점투성이 ‘무상보육’ 정책조차 선별 지원으로 후퇴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 새누리당은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 통합진보당 문제엔 하루에 하나 꼴로 대변인 논평을 내던 자들이 말이다.
사실 경제 위기 악화 조짐 속에서 전경련 등 기업주 단체들은 진작부터 19대 국회에 압력과 회유 공작을 펼쳐 왔다.
재계 5단체는 5월말에 국회 당선자 1백여 명을 초청해 축하 리셉션을 열며 친재벌 정책을 당부했고, 최근엔 전경련이 국회의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캠프를 추진하고 있다.
전경련은 이미 5월부터 ‘통합진보당이 부정선거에 휘말려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점, 따라서 민주통합당도 '좌클릭'에 부담을 느낄 것이란 점, 새누리당 역시 ‘보수 결집’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란 점 등”을 전망하며 친재벌 입법을 위한 대국회 압박과 로비를 강화해 왔다.
독립
이처럼 우파 정책 거수기 국회가 다시 4년 동안 반복될 조짐이 보이는 것에는 민주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민주당이 이런 우경화를 막을 의지와 능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검찰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축소 수사에 분노가 커지고, 노동자 투쟁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서둘러 개원 합의를 했다. 대중의 불만을 공식 정치 안으로 흡수하려고 시도한 것인데, 의회 다수파는 새누리당이니 결국 정국 주도권을 넘겨 준 셈이 됐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합의도 “통진당이 섞인 야권연대가 선거를 이긴다[면] … 북한 김정은 왕조와 공동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우파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사실 늘 반복해 온 일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불법사찰 특위 위원장을 새누리당에게 내주고 4대강 청문회 요구도 포기하는 대가로 각종 개발 이권이 걸린 국토해양위원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확보했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는 소수 야당이란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이던 15대 국회 중반부터 심지어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던 17대 국회까지 민주당은 늘 우파의 반대를 핑계로 개혁 입법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 왔다.
그러면서 1997년 경제 공황 속에서 정리해고 등 노동악법은 소수파 여당일 때도 한나라당과 협조해 통과시켰다. 결정적 국면에는 친자본 정당으로서 본색에 충실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미증유의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 국회 안에서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의 우파 노선에 진지하게 도전할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진짜 문제는 진보정당의 약체화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진보적 대중의 염원 덕분에 약진했지만, 내부 경선 부정이 드러나고 내분에 빠지면서 혁신도, 국가 탄압과 마녀사냥에 대한 대응도 모두 실패하고 있다. 1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마저 이런 약점들 때문에 존재감이 약화된 결과, 19대 국회는 ‘1퍼센틀 위한 경제 위기 고통전가 국회’, ‘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친박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 재원 논쟁이 벌어질 것이고, 경제 위기 대처 방안과 대선을 염두에 둔 각축이 주요 양상이 될 것이다. 2
이런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 같은 것으로 날치기 같은 우파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이 법의 본질은 법안 처리 권한을 원내교섭단체간 협상에 집중시키며 소수 진보정당을 배제하는 것이다. 두 당이 합의하면 진보정당의 물리적 저항을 처벌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원내 활동으로는 의회 안에서 노동자들과 피억압 민중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식정치와 기층의 분위기와 괴리되면, 그동안 진행된 정치 양극화가 더 심해져 정치적 유동성이 더 커질 것이다.
이는 18대 총선에서 우파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대중이 촛불운동으로 분노를 표현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대선을 코 앞에 둔 지금은 선거 심판론이 꽤 자리잡는 차이가 있긴 하다. 3
그럼에도 최근의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투쟁 등은 기층의 반발력과 잠재력을 보여 줬다. 이 투쟁의 와중에 한일군사협정 비밀 체결 시도에 대한 여론의 반발은 정부의 사과와 후퇴를 불러 왔다. 예고되는 금속노조의 투쟁도 상당한 힘이 될 것이다.
이명박의 레임덕 위기를 이용해 이런 투쟁 건설의 방향을 추구하면서 진보진영이 힘을 만회하고 정치적 대안을 재정립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대중의 정서와 괴리될 국회보다 국회 바깥의 대중행동 건설을 두 우선해야 한다. 진보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높인다며 정책의 급진성을 삭감하는 것은 도리어 우파의 자신감을 더 높일 것이다.
대중투쟁의 요구를 정책과 입법안에 선명히 반영해 원내 활동이 대중투쟁을 고무하고 돕도록 해야 한다. 긴축 재정 기조에 맞서 부자 증세와 군축을 통한 복지 재원 마련을 주장하며 독립적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당에 의존하지 말고 다시 불거진 이명박의 레임덕 위기를 이용해 반격을 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이 주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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