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었지만, 보관용으로 올려 둔다. 집회를 앞둔 8월 26일 금융 노사는 잠정합의를 했다. 크게 성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배신적 합의도 아닌 애매한 합의였다. 어쨌거나 노사 합의의 결과로 피업은 물론이고 8월 29일 수도권 집회도 취소됐다. 원래 쓰기도 22일에 썼는데, 25일 올라갔으니 올라간지 이틀도 채 안 돼 집회가 취소된 것이다. 글의 효력이란 면에서 요즘 말로 망글이 된 셈이다.
금융노조 ― 9·14 하루 파업, 8·29 수도권 집회성과주의 폐지, 인력 확대로 장시간 노동 해결하라
금융산업 노동자들이 과도한 실적 경쟁 등으로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산하 지부 33곳의 조합원 1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간 노동시간 기준으로 한국의 금융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5.5개월, 한국 평균보다 약 4개월을 더 일한다.(※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조사에는 직장 내 성희롱 실태도 포함됐다고 한다.)
매일(주5일) 연장근로를 하는 노동자가 전체 조사 대상의 절반이다. 70퍼센트 이상이 적어도 주 3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 노동강도도 높아서 조사 대상 중 일주일(주5일 근무)에 한 번이라도 점심을 굶은 노동자가 절반을 넘고 10명 중 3명은 이틀 이상 점심을 굶었다. 10년 전 이명박 반대 촛불운동에서 청소년들이 외치던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하던 구호가 떠오른다. (관련 기사: ‘장시간 노동과 과당경쟁에 내몰린 금융 노동자들’을 보시오.)
성과주의
조합원들은 70퍼센트가 업무량 과다와 인력 부족을 초과 노동의 이유로 꼽았다. 업무량 과다와 인력 부족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일인데, 특히 지난 20년간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꾸준히 추진되면서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금융기관마다 성과주의가 강화되고 실적 압박과 직원 간 실적 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로사도 많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이 지난해 발표한 10년간(2008~2017년) 과로사 신청자수는 금융·보험업이 160명으로 건설업(800건) 다음이었다.
“고연봉 고스펙 직장”이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쉼없는 실적 경쟁 스트레스, 밥 먹을 틈 내기도 힘든 장시간 노동(특히 영업점), 성별을 떠나 한창 가장으로서 책임이 커져가는 나이에 명퇴냐 임금이 절반으로 깎이는 임금피크제냐 고민해야 하는 고용 불안 상황. 툭하면 귀족 노동자라고 비난받기 일쑤인 금융 노동자들의 냉혹한 현실이다.
금융노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KPI(핵심 성과 지표)와 CS(고객 만족)제도로 대표되는 실적주의를 축소·폐지하고 노동시간 제한과 대규모 신규 채용(금융노조 산하 기관에서 2만 9000명 규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노조는 지난해 KPI 항목이 많을수록 직원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소비자 보호도는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올해 산별 임단협에서 금융노조는 이 요구들을 포함해 임금 인상 4.7퍼센트, 임금피크제 개선, 국책금융기관 자율교섭(기획재정부의 예산 빙자 간섭 반대), 2차 정규직(기존 정규직 임금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방식의 불완전한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이사제 도입 등 노조 경영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상반기 산별 교섭에서 진전이 전혀 없었다. 지난해 당기순익이 11조 원을 넘긴 은행들은 임금 인상(물가인상률 수준인 1.7퍼센트 인상안 고수)은 물론이고 실적 경쟁과 노동강도 완화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은행마다 최고 경영진이 연루된 채용 비리가 터져 나왔지만, 은행들은 여론을 의식한 사회 기부에만 조금 돈을 썼을 뿐, 정작 채용을 늘리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반면, 채용 비리 연루 의혹을 받는 KEB하나은행의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행장은 상반기 보수로만 각각 13억 5100만 원과 7억 2500만 원을 챙겼다. 신한금융지주 회장, 신한은행 행장, KB국민은행 행장 등이 모두 상반기 보수로만 7억 원 넘게 받았다. 대부분 올 상반기 실적으로 성과급이 대폭 올라 지난해보다 보수가 늘었다.
파업
문재인 정부가 연초부터 노동 정책에서 우선회를 시작한 탓에, 지난해에는 ‘혹시나’ 하며 눈치를 보던 사용자들이 이제 노조를 강경하게 대하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8월 9일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금융노조가 문재인 정부에게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이유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은행원들의 고용 위기감을 조장하는 점이 있어 금융노조가 반대해 온, 은산 분리 완화도 추진할 태세다.(문재인은 대선 전 금융노조와 금산분리 준수 등을 약속했고, 금융노조는 대선과 올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노동 존중을 약속하고 심지어 당선 전 금융노조와 정책협약까지 맺었던 정부의 배신과 이를 이용한 사측의 오만한 태도는 조합원들을 자극할 만하다. 8월 7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휴가철인데도 조합원 82퍼센트가 투표해 93.1퍼센트가 찬성했다.
금융노조는 8월 23일 지부 대표자회의를 통해 9월 14일에 하루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8월 2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수도권 조합원·분회장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같다.
파업 조직화를 위해 8월 20일부터 부산은행 본점을 시작으로 지역과 주요 지부들을 순회하며 집회들을 열고 있다. 부산 500명 참석 등 조합원들의 지지가 있다. 9월부터는 정시 출퇴근, 프로모션(경쟁적 판촉 행사) 업무 중단 등 강도를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8월 14일에는 노동부에 장시간노동 특별근로감독도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지도부로선 정치적 압박과 부담도 있겠지만, 주춤거리면 안 된다. 투쟁으로 현장의 정당한 요구를 대변하는 게 진정으로 중요하다.
실적 경쟁과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금융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지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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