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시늉하며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대통령 국정(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적 평가가 문재인 집권 후 처음으로 6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한국갤럽, 리얼미터 조사).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두 달째 하락 중인 추세가 의미심장하다. 부정적 평가도 30퍼센트대로 늘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구 여권 청산 염원 등이 더해져 6월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뒤부터 지지율이 하락해 온 셈이다.
물론 여권 일각의 변명처럼 같은 기간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는 높다. 그러나 대선 득표율(41퍼센트)을 기준으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던 지지율이 정상화하고 있는 거라는 변명은 어처구니없다. 지지율 40퍼센트면 올해 5월 지지율이 반토막 난 것인데, 그 정도라면 아예 레임덕의 시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전통적 보수층의 일부가 자유한국당이 너무 무능하고 지리멸렬해 홧김에 민주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거나(서울 강남, 부산·경남 등), 잠시 지지하다가 철회해서 생긴 변화라면 지지율의 정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 하락에는 노동계급과 서민층이 염원한 개혁이 지지부진하거나 후퇴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진보층의 이탈이 가장 많았고,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정의당 지지가 늘어나면서 정의당 지지층의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적 평가도 낮아졌다고 조사됐다.
군색한 변명은 어떤 이들이 왜 문재인 정부에게서 지지를 거두는지를 반성적으로 돌아볼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 청와대 대변인이 (고가의 외제차) BMW 화재에 둔감하게 대응한 것을 지지율 하락 요인의 하나로 꼽는 한가함을 보이는 것일 게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평양 정상회담을 9월에 개최한다고 서두르는 데에는 지지율 걱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북·미 간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한반도 평화 진전의 답보도 지지율에 악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지지율 하락
그래도 문재인의 지지율 하락은 그의 우선회로 일어난 왼쪽에서의 이탈이 주된 요인이다.
이를 방증하는 점으로,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보수 언론들이 최근 며칠 새 “고독한 결단”, “노무현이 생존해 있었다면” 운운하며 문재인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글들을 쏟아 낸 것이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지지층의 진보 염원에 역행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지난 두 달간 벌인 일을 보면 보수 언론들의 격려를 받을 만도 하다.
여당 주도로 국회에서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켰다. 현재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식의 허구적 실체(자회사 방식 등)가 드러났는데도 강행하려고 한다. 장시간 노동을 근절한다더니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합법화했다. 그도 모자라 그조차 못 지키겠다는 기업들의 처벌을 유예해 줬다.
의료 영리화와 건강보험 약화를 앞당길 삼성 등의 규제 완화 요구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허용하려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청와대, 사법부(대법원 고위 판사 집단), 국회의원들 사이 추악한 반(反)노동계급적 재판 거래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그저 침묵이다. 쌍용차 노동자들,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용 피해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독재정권 간첩 조작 피해자들, 진보당 당원들, 전교조 등의 당연한 원상 회복 요구든 또는 반성은커녕 구속·수색 영장을 계속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하는 법원에 대한 것이든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도 말이다. 문재인이 임명한 대법원장 김명수도 문제의 일부가 돼 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원죄가 있는 KTX 승무원들만이 그나마 다행이게도 (원직이 아닌 자리로) 복직됐다.(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KTX 승무원 해고 문제의 결정적 원인인 자회사 채용 방식을 정규직화 방안으로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간단한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회조차 거부하고는 청와대 앞 폭염 속에서 단식하던 전교조 위원장도 외면했다. 그 기간에 문재인은 휴가를 가서 신간 대하소설을 읽었고, 교육부총리 김상곤은 “대학이 혁신 성장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새 정책을 선전하고 다녔다. 결국 전교조 위원장은 단식 27일 만에 병원에 실려갔다. 이게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는 삼성 총수 이재용을 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이 환대한 것과 대조된다. 이재용은 제3자 뇌물죄 등 핵심 혐의를 재판부가 무죄로 봐줬는데도 2심까지 유죄 판결을 피하지 못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부패 범죄자다. 이재용은 그룹 차원의 조직적 노조 파괴 혐의로도 수사 대상이 돼야 할 사악한 사용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삼성의 인도 공장에 가서 이재용을 만나 격려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8월 초 평택 공장에서 이재용을 만나 규제 완화 요구를 경청했다. 김동연은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파트너라는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방문”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이재용 등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재벌들을 다루는 재판부에게, 또는 현 정부 눈치를 보던 유성기업과 세종호텔 등 악덕 사용자들에게 주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가 무엇일지는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호의가 어찌나 고마웠던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주류 경제학의 격언처럼 이재용도 신규 투자 계획 발표로 화답하며 규제 완화를 꼭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부 내에서 기업주들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김동연 등을 경질하라는 요구가 정당한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게는 혁신 성장과 마찬가지로 “노동 존중”조차 그 파트너는 기업인 것 같다. 말만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기만적 노동 ‘개혁’의 실체를 보면 말이다.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문재인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에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정부가 (대선 당시 노조와 맺은) 정책협약(“금산분리 원칙을 준수한다”)을 깼다며 반발했다. 산별 임단협 결렬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금융노조는 쟁의조정 과정에서도 정부가 사측 눈치만 봤다며 비난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연금까지 동원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연계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판정을 회피해 이재용에게 특혜를 줬다.
누진제 전기료 걱정 때문에 서민층 다수는 이미 7월부터 에어컨 가동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8월 둘째주에 와서야 대책을 발표했다. 그조차 쥐꼬리만큼 깎아주는 것이라 서민들은 화가 나는데, 정부는 국민연금 고갈론을 다시 꺼내며 개악을 예고했다.
핵심은,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만68세까지 늦추고, 보험료를 인상하고, 받는 돈을 깎는 것이다. 연금을 내는 중년 노동자들에게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의 반복된 개악은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하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처음 60세에서 65세까지 잇달아 늦춰져 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잇달아 폭염을 선물한 셈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7월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온건한 진보 교수들에게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보유세를 대폭 올린 것도 아니면서 거래세도 건드리지 않아서, 이도 저도 아닌 방안이라며 말이다.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려고 기무사 문건을 폭로한 듯하지만, 요란한 소동 뒤에 간판만 바꾸는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다. 진보당 등 정치수에 대한 광복절 특사를 거절한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 대북 사업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구속을 정당화하려고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시민이 곧 경찰”이라며 7월 하순에 취임한 새 경찰청장 민갑룡의 첫 작품이 이런 것이다.
연인원 십수만 명이 참가한 몰카 대책 요구 시위에는 미온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가 8월 7일 발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도 그동안 진보진영이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제정 등은 후순위로 밀렸고, 사회적 약자 목록에서 성소수자 항목을 빼버렸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믿은 사람들에게도 실망과 배신을 선물한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문재인은 “등골이 서늘”, “식은 땀”, “두려움” 등의 단어를 쓰며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후 두 달 간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의 우려는 그 자신이 진보 염원층의 기대에 부응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던 셈이다.
노동계급 대중이 절절한 마음으로 들었던 촛불에 비춰 보면, 이제 문재인 정부에게는 적폐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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