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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21 진보 시늉하며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2. 2011.08.07 진보정당 우경화를 대하는 급진좌파의 전술 논쟁 4

진보 시늉하며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기사들 2018. 8. 21. 17:15

진보 시늉하며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 255호
  •  
  •  2018-08-14
  •  
| 주제: 
  • 공식정치
  •  
  •  주류정치

대통령 국정(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적 평가가 문재인 집권 후 처음으로 6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한국갤럽, 리얼미터 조사).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두 달째 하락 중인 추세가 의미심장하다. 부정적 평가도 30퍼센트대로 늘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구 여권 청산 염원 등이 더해져 6월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뒤부터 지지율이 하락해 온 셈이다.

물론 여권 일각의 변명처럼 같은 기간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는 높다. 그러나 대선 득표율(41퍼센트)을 기준으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던 지지율이 정상화하고 있는 거라는 변명은 어처구니없다. 지지율 40퍼센트면 올해 5월 지지율이 반토막 난 것인데, 그 정도라면 아예 레임덕의 시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전통적 보수층의 일부가 자유한국당이 너무 무능하고 지리멸렬해 홧김에 민주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거나(서울 강남, 부산·경남 등), 잠시 지지하다가 철회해서 생긴 변화라면 지지율의 정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 하락에는 노동계급과 서민층이 염원한 개혁이 지지부진하거나 후퇴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진보층의 이탈이 가장 많았고,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정의당 지지가 늘어나면서 정의당 지지층의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적 평가도 낮아졌다고 조사됐다.

군색한 변명은 어떤 이들이 왜 문재인 정부에게서 지지를 거두는지를 반성적으로 돌아볼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 청와대 대변인이 (고가의 외제차) BMW 화재에 둔감하게 대응한 것을 지지율 하락 요인의 하나로 꼽는 한가함을 보이는 것일 게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평양 정상회담을 9월에 개최한다고 서두르는 데에는 지지율 걱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북·미 간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한반도 평화 진전의 답보도 지지율에 악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지지율 하락

그래도 문재인의 지지율 하락은 그의 우선회로 일어난 왼쪽에서의 이탈이 주된 요인이다.

이를 방증하는 점으로,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보수 언론들이 최근 며칠 새 “고독한 결단”, “노무현이 생존해 있었다면” 운운하며 문재인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글들을 쏟아 낸 것이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지지층의 진보 염원에 역행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지난 두 달간 벌인 일을 보면 보수 언론들의 격려를 받을 만도 하다.

여당 주도로 국회에서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켰다. 현재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식의 허구적 실체(자회사 방식 등)가 드러났는데도 강행하려고 한다. 장시간 노동을 근절한다더니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합법화했다. 그도 모자라 그조차 못 지키겠다는 기업들의 처벌을 유예해 줬다.

의료 영리화와 건강보험 약화를 앞당길 삼성 등의 규제 완화 요구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허용하려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청와대, 사법부(대법원 고위 판사 집단), 국회의원들 사이 추악한 반(反)노동계급적 재판 거래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그저 침묵이다. 쌍용차 노동자들,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용 피해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독재정권 간첩 조작 피해자들, 진보당 당원들, 전교조 등의 당연한 원상 회복 요구든 또는 반성은커녕 구속·수색 영장을 계속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하는 법원에 대한 것이든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도 말이다. 문재인이 임명한 대법원장 김명수도 문제의 일부가 돼 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원죄가 있는 KTX 승무원들만이 그나마 다행이게도 (원직이 아닌 자리로) 복직됐다.(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KTX 승무원 해고 문제의 결정적 원인인 자회사 채용 방식을 정규직화 방안으로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간단한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회조차 거부하고는 청와대 앞 폭염 속에서 단식하던 전교조 위원장도 외면했다. 그 기간에 문재인은 휴가를 가서 신간 대하소설을 읽었고, 교육부총리 김상곤은 “대학이 혁신 성장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새 정책을 선전하고 다녔다. 결국 전교조 위원장은 단식 27일 만에 병원에 실려갔다. 이게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이 재판 중인 삼성 총수 이재용을 만나 격려한 것은 다른 악덕 사용자들을 고무할 것이다ⓒ출처 청와대

이는 삼성 총수 이재용을 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이 환대한 것과 대조된다. 이재용은 제3자 뇌물죄 등 핵심 혐의를 재판부가 무죄로 봐줬는데도 2심까지 유죄 판결을 피하지 못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부패 범죄자다. 이재용은 그룹 차원의 조직적 노조 파괴 혐의로도 수사 대상이 돼야 할 사악한 사용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삼성의 인도 공장에 가서 이재용을 만나 격려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8월 초 평택 공장에서 이재용을 만나 규제 완화 요구를 경청했다. 김동연은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파트너라는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방문”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이재용 등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재벌들을 다루는 재판부에게, 또는 현 정부 눈치를 보던 유성기업과 세종호텔 등 악덕 사용자들에게 주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가 무엇일지는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호의가 어찌나 고마웠던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주류 경제학의 격언처럼 이재용도 신규 투자 계획 발표로 화답하며 규제 완화를 꼭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부 내에서 기업주들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김동연 등을 경질하라는 요구가 정당한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게는 혁신 성장과 마찬가지로 “노동 존중”조차 그 파트너는 기업인 것 같다. 말만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기만적 노동 ‘개혁’의 실체를 보면 말이다.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문재인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에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정부가 (대선 당시 노조와 맺은) 정책협약(“금산분리 원칙을 준수한다”)을 깼다며 반발했다. 산별 임단협 결렬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금융노조는 쟁의조정 과정에서도 정부가 사측 눈치만 봤다며 비난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연금까지 동원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연계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판정을 회피해 이재용에게 특혜를 줬다.

누진제 전기료 걱정 때문에 서민층 다수는 이미 7월부터 에어컨 가동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8월 둘째주에 와서야 대책을 발표했다. 그조차 쥐꼬리만큼 깎아주는 것이라 서민들은 화가 나는데, 정부는 국민연금 고갈론을 다시 꺼내며 개악을 예고했다.

핵심은,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만68세까지 늦추고, 보험료를 인상하고, 받는 돈을 깎는 것이다. 연금을 내는 중년 노동자들에게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의 반복된 개악은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하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처음 60세에서 65세까지 잇달아 늦춰져 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잇달아 폭염을 선물한 셈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7월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온건한 진보 교수들에게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보유세를 대폭 올린 것도 아니면서 거래세도 건드리지 않아서, 이도 저도 아닌 방안이라며 말이다.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려고 기무사 문건을 폭로한 듯하지만, 요란한 소동 뒤에 간판만 바꾸는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다. 진보당 등 정치수에 대한 광복절 특사를 거절한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 대북 사업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구속을 정당화하려고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시민이 곧 경찰”이라며 7월 하순에 취임한 새 경찰청장 민갑룡의 첫 작품이 이런 것이다.

연인원 십수만 명이 참가한 몰카 대책 요구 시위에는 미온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가 8월 7일 발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도 그동안 진보진영이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제정 등은 후순위로 밀렸고, 사회적 약자 목록에서 성소수자 항목을 빼버렸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믿은 사람들에게도 실망과 배신을 선물한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문재인은 “등골이 서늘”, “식은 땀”, “두려움” 등의 단어를 쓰며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후 두 달 간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의 우려는 그 자신이 진보 염원층의 기대에 부응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던 셈이다.

노동계급 대중이 절절한 마음으로 들었던 촛불에 비춰 보면, 이제 문재인 정부에게는 적폐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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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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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우경화를 대하는 급진좌파의 전술 논쟁

기사들 2011. 8. 7. 15:02

사노위/노혁추 비판: 진정, 진보대통합의 우경화에 파열구를 낼 수 없는 것은 누구인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급진적 성격의 창당 강령을 폐기하고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 속에 참여당과 당 통합까지 시도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개입하면서 진보대통합의 우경화를 저지하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우경화하는 진보대통합을 폭로하면서 진보대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신당 독자파가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이하, 노혁추)도 바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정당이 아니라 “부르주아 좌파정당”에 불과하고 이들이 추진하는 진보대통합은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의] 재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함께가 이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속에서 우경화를 저지하려고 투쟁하는 것은 “대중의 꽁무니를 쫓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최근에 발표한 <사노위>15호 “다함께, 자신의 모순을 말하라!”와 16호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 진보정치의 파산에 대한 수줍은 자기고백”, <혁명> 창간준비 1호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과 “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등의 기사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얼마 전에 격렬한 논쟁 끝에 분열한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다함께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사노위 분열에 대한 다함께의 분석과 평가(전지윤,《마르크스21》10호, “사노위의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에 대해서는 둘 다 약속한 듯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마치 외부에 화살을 돌리면서 자신들 내부의 난점은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진보양당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진보대통합의 방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는 두 단체와 다함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그 외에도 두 단체와 다함께는 공통점이 많다.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고, 이를 위해서 혁명가들의 독립적 당이 필요하고 이런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의 지향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어떤 ‘진보’도 현재의 막장 정치지형을 넘어설 수 없다”(사노위)면서, 마치 지금의 대립이 혁명적 당을 건설하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대립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대립은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대중의 개혁주의 의식과 조직에 연루를 맺고 그 속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대중 조직과 연루되길 회피하면서 그 밖에서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에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두 단체는 민주노동당 같은 노동계급 대중조직에 연루를 맺고 개입할 필요성을 부정한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성격에 대한 혼란이 깔려있다.

예컨대 사노위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며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성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노혁추는 민주노동당이 강령 교체로 “노동자정당이라는 성격조차 잃게”됐으며 “부르주아 좌파 정당”이라고 말한다. 또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당을 참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레닌과 볼세비키는 확고한 전략적 원칙과 전술적 유연함을 통해 결국 대중에 뿌리내리고 역사상 최초츼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했다.

이런 주장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일부 합리적 핵심은 있지만, 옳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영국 노동당을 일러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개혁주의 정당이 노동계급에 기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개혁을 목표로 삼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런 정치로는 두 계급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일관되게 자기 기반인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저항과 순응이라는 대립물이 복잡하게 통일된 모순적 혼합물인 것이다.
따라서 레닌은 개혁주의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그 당이 기반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도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로서 등장했다. 투쟁 속에서 각성한 [그러나 혁명 투쟁의 경험은 없는 한국의] 선진 노동자들의 첫 독립적 정치 표현체가 개혁주의정당인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지금도 여전히 인력과 재정에서 조직 노동자들,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주로 노조 상층 간부들을 매개로 한다. 당 지도자들과 노조 지도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에 개혁주의적 분업을 따른다. 당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에 치묵하고, 정치 활동은 선거와 의회정치로 협소화된다. 그래서 이 당은 운동 안에서 모순적 구실을 한다.

그래서 다함께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을 환영하면서도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기성 권력 체제는 민주노동당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덕망’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 “장외 투쟁”을 삼가고 의회 내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부르주아 정당들과 “상생”하라는 것이다. … 민주노동당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압력에 조금씩 적응할 것이다. (최일붕, <다함께>30호, 2004년 5월1일)

그러므로 다함께가 “민노당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규정을 회피”(사노위)했다는 비난은 근거 없는 것이다. 다함께는 이 당의 개혁주의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당이 노동운동과 맺은 유기적 관계를 보고 이 당에 개입해 온 것이다. 이 당의 노동계급적 기반 때문에 노동운동의 쟁점들이 당내에 반영되고, 이 당의 정책과 실천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최근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민주당 비판을 회피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모두 파업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들이었다. 투쟁 상황이 당내 쟁점으로도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이런 관계를 이용해 노동자 대중과 그 운동 속에 개입하고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훈련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을 주요한 도전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와 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이나 진보대통합 쟁점에 개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있던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일소하는 창당 강령 폐기에 혁명가들이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우경화를 막는 주요한 과제였다.

제도권에 진출해 의원까지 배출한 진보정당의 강령에 반자본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선동을 위해서도 유리한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소수 괴짜들의 주장’이 아니라는 상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같은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강령 후퇴는 그 상징적 효과 때문에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후퇴시키고 혁명가들에게도 불리한 조건을 만든다. <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은 제도권 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강령에 사회주의를 담고 있었다’며 강령 교체를 환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을 우경화시키려면 바로 노동운동과의 유기적 관계 때문에 노동계급 기반과 멀어지거나, 아니면 이 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야 한다. 아직 이들은 노동계급 기반가 단절하기보다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 수동적 기반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이나.

따라서 혁명가들은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급진성을 약화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된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건설해야 했다.

실제로 다함께는 이번에 강령 후퇴 반대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 안팎의 노동자 대중을 향해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ㆍ선동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강령 후퇴에 반대하는 전투적 소수파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당대의원 대회에서 노동조합원들, 심지어 자주파 활동가들까지 포함해 대의원 3분의 1이 강령 후퇴에 반대표를 던지게 됐다.

강령 후퇴가 “이제야 자신들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아간 것”(노혁추)일 뿐이라며 냉소하며 반대 운동을 회피해서는 결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다.

혁명가들이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노혁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ㆍ대선 선거 대응을 위한 개편”일 뿐이라고 냉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적 진실일 뿐이다. 진보대통합은 단결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이기도 하다는 것을 봐야 한다. 최근 실시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에서 73.8퍼센트가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을 나타냈고, 88.7퍼센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비슷한 여러 여론조사와 같은 결과다.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 다수는 아직 통합 진보 정당을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노동계급이 이 당으로 단결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자신의 독자적 조직과 정치를 유지하면서도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통합 진보 정당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고무하고 투쟁 건설에 유용한 구실을 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후통첩

물론 현재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강령 후퇴와 참여당과 통합 등을 통해 진보대통합을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 재판”(노혁추)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우경화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참여 자체를 반대한다”(노혁추)면서 단지 밖에서 비판적 폭로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밖에서 폭로하면서 “노동자들은 즉각 민주노동당과 단절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을 고민”(노혁추)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그 과정에 개입하면서, 진보대연합이 참여당과 통합이나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 등으로 나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게 더 나은 대응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진보정당을 버리고 혁명정당으로 오라’고 최후통첩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가들의 입장과 노선이 왜 더 올바른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노위와 노혁추는 이런 관점이 없다. 심지어 노혁추는 “노동자들의 99퍼센트 이상은 민주노동당의 밖에, 90퍼센트 이상은 민주노총의 밖에 있지 않은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미래”라고까지 주장한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개입할 생각은커녕, 거의 인연을 끊자는 식인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밖에 있는 노동자 90퍼센트’의 다수가 민주당이나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이런 종파적 태도의 이면에는 진보정당들의 우경화가 오히려 왼쪽의 공백을 낳아서 급진좌파에게 유리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노위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통합을 원한다? 그렇다”면서도 “진보대통합의 기만성을 폭로해 나가야 한다”고만 주장한다.

조직 노동자 다수가 영향력을 받고 있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이 우경화하는 것을 저지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폭로하면서 기다리면 자기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헛된 기대만 하는 셈이다. 운동의 우경화를 방관해 종파가 성장하겠다는 발상은 종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레닌은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작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아무리 반동적일지라도 프롤레타리아나 반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있는 기구들과 협회 및 결사체들에서 체계적으로, 참을성 있고, 끈덕지고 끈기 있게 선전과 선동을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어야만 하며,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런 대중 속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 대중을 반동적인 지도자들, 부르주아지의 앞잡이들, 노동귀족들, 또는 부르주아화한 노동자들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둠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개혁주의 조직과 단절해야 혁명가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런 종파적 자세는 결과적으로 진보대통합 연석회의에 참가신청한 다함께를 반자본주의 단체라며 배제한 채 우경적 조항을 삽입하고
, 참여당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려 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좌파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태도를 결과적으로 [의도하든 않든] 도울 될 뿐이다. 이대로 된다면 그 상황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사노위와 노혁추처럼 개혁적 진보정당과 어떤 협력도 할 수 없다는 종파적 태도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책략에 이용돼 우경화를 재촉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만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이 당 지도부의 우경화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전투적 당원 노동자들과 소통하거나 대화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의 우경화, 계급연합에 파열구를 낼 수 없”(사노위)는 것은 진보대통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다함께가 아니라 오히려 사노위와 노혁추다. 이들은 혁명가들이 독자적인 강령과 조직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 보고, 독자적 강령과 조직을 바탕으로 현실에 개입하며 유연한 전술을 구사할 필요성은 외면해 버린다.(그 점에서 두 단체는 당 건설과 운동 개입을 혼돈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를 위한 당연한 전제다. 다함께도 민주노동당 개입 활동을 위해 독자 조직과 [기관지 중심의] 실천, 강령을 포기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러나 당 건설 선포만 하면 나머지 과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노위와 노혁추는 한 무리의 혁명가들이 모여 강령에 합의하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선포하면 자동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지도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사노위와 노혁추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당 건설을 하려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들은 혁명적이지 않은 노동계급 대중 속에서 이들의 운동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함께 경험하고 때로 타협하고 때로 논쟁하면서 당을 건설하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뛰려 했다.

그러나 사노위 실험이 실패하면서 이런 발상의 한계가 드러났다. 실제로 이들은 “강령으로 무장하지 않고는 꽁무니 전술과 정치적 대기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그토록 강조하지만, 막상 강령은 제정도 못 하고 분열했다.


대중과 함께 배우기

이들은 전쟁과 전략에 관해 늘 떠들지만, 막상 전투가 일어나면 ‘전투 하나로 전쟁이 결정나지 않는다’며 참전을 기피하는 장군과 같다. 추상적으로 그 말 자체는 맞지만, 실전에서 전투 없이 승리하는 전쟁은 없다.

민주노총의 공식 결의로 만든 ‘비혁명적인’ 진보정당조차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 4~5년이 걸렸고 지금도 민주노총 조합원의 5퍼센트 정도를 당원으로 조직했을 뿐인데, 혁명정당이 현실 개입 속에서의 지난한 고투와 노력 없이 강령 통일과 창당 선언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은 몽상이다.

지금 혁명가들은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바라면서 동시에 민주당과 선거연합도 필요하다고 보는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에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제의 성패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투쟁 경험과 개혁주의 의식이 모순을 빚어내는 지점을 포착해 운동과 의식의 도약을 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앞서 예로 든 전북 버스나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의식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회피하는 사노위와 노혁추의 태도는 노동 계급 대중이 투쟁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원칙과 어긋난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 [자신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곳곳에서 노동계급은 저항을 개시했고, 아랍에서는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혁명이 현실인 시대에 혁명가들은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선진노동자들과 이 지도자들 사이에 간극을 낳을 것이고 진보진영 안에서 정치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다. 이 간극을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고, 혁명가들의 세력을 넓혀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책무가 혁명가들에게 있다.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중차대한 과제를 회피하지 않길 기대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62호 온라인 기사로 실린 것을 약간 보완한 것이다. (☞ 기사 바로 가기)


저작자표시 비영리 동일조건 (새창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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